[정재영 칼럼] 청렴 사회를 위한 교회의 역할

정재영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등록일:2016-10-03 14: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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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영 교수
김영란 법의 시행

9월 28일자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 법이 시행되면서 우리 사회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이제까지 온정주의 또는 오랜 관습이라는 이름 아래 묵인되어왔던 관행들에 제동이 걸렸고, 이 법에 적용 받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예전부터 원칙과 절차보다는 연고주의에 터한 온정이 사회의 작동원리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관습 아래 온갖 비리와 편법 그리고 부정 청탁으로 인해 사회 질서가 어지럽혀졌고 그 결과 우리 사회의 청렴도는 매우 낮은 수준을 면치 못했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의 청렴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김영란 법이 제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오늘날과는 다른 규범이 사회에 기본 질서를 규정했다. 개인의 권리보다는 나이와 신분에 따른 지위 고하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개인은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신념 아래 새로운 질서가 요구되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규범과 이전의 규범이 충돌한 채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지 못하여 이른바 ‘아노미’ 상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 혼란의 와중에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편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면 사회는 더욱 더 큰 혼란 속에 빠지게 되고 원칙과 절차를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김영란 법은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시민들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질서가 자리 잡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고 보고 법을 통해서 질서를 잡으려고 하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법에 따르면, 부정 청탁과 같은 비리와는 무관해 보이는 행동까지도 실제로는 법에 저촉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아예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금품이나 선물을 주고받지 않고 밥도 얻어먹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른바 ‘더치페이’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밥을 사주며 인심 쓰기를 좋아하고, 선물을 주고받음으로써 온정을 나누던 일종의 미풍양속까지도 법에 의해 제동이 걸리게 됨으로써 우리의 삶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금융실명제 또는 그 이전의 가정의례준칙 이래 가장 혁신적인 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몇 가지 쟁점

언론에서 많이 다뤄진 바와 같이, 이 법에는 그 모호성으로 인해 여러 가지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법의 적용 대상자의 범위라든지 직무 관련성 여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없다는 등의 문제가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법이 시행된 지 일주일이 되어가는 현재 시점까지도 국민권익위에 문의가 빗발치고 있고 이에 대해 권익위의 유권해석도 오락가락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또한 이 법이 직접적으로 종교를 통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기독교 언론인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 단체나 종교인들이 학교 시설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 법의 적용 대상자에 포함되고 있다. 따라서 순수한 종교 행위에 대해서조차 법이 개입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는 과연 법이 시민들의 삶을 어느 정도까지 개입하고 통제할 수 있느냐 또는 해야 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얼마 전에는 간통죄마저도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통제라는 취지로 폐지된 가운데 김영란 법은 오히려 시민들의 삶에 더 깊이 개입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운전 중 심정지를 일으킨 택시 기사를 방치하고 해외여행을 떠나 택시 기사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들에 대해 법의 처벌을 기대했지만 처벌할 법이 없어서 공분을 산 일이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 있어서 이런 경우에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과연 선행을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가 또는 선행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가 하는 논쟁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개인들의 삶에 대해 지나치게 사사건건 법이 규정하고 개입하게 되면 자유로운 시민들의 공간 곧 시민사회가 위축될 우려도 있다. 법이 시행되면서 교수들은 외부 강의 나가기를 꺼리기도 하는데 그 결과 시민들의 알 권리나 배움의 기회가 박탈될 수 있다. 이렇게 사회적인 관계가 위축되면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사회 자본이 축소될 가능성마저도 생기게 된다. 사회 자본이란 협력 행위를 촉진해 사회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 조직의 속성을 가리키는 말로, 사회학자인 퍼트남은 사회 자본은 생산성이 있기 때문에 특정 목표를 더 쉽게 달성하도록 해 준다고 말한다. 곧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보이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많은 것을 성취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영란 법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관계가 약화되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까지도 위축시킴으로써 오히려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법의 정착을 위한 교회의 역할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우리 사회의 청렴도를 높인다는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거쳐 법이 시행되기에 이른 마당에 이를 적극 수용하고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한편에서는 경제 활동이 침체될 것을 우려하기도 하지만, 기존의 경제 활동이 부정 청탁이나 비리와 편법이 난무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러한 경제 발전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기는 어렵다. 언론 보도에서도 큰 타격을 입은 식당이나 가게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이 법 덕분에 호황을 누리는 곳도 있다고 하니, 이 법이 반드시 경제에 부정적으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경제 위축을 걱정하기보다는 원칙과 정의를 바로 세움으로써 사회 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세월호 사건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원칙과 절차를 지키는 사람들이 더 손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계에서는 교회를 성역이라고 여겨 사회법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보다 청렴 수준이 더 뒤처지고 교계 선거에서는 여전히 금권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최근 이슈가 되었던 큰 사건마다 기독교인들이 연루된 것이 한국 교회의 현주소이다. 따라서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법에 대한 지나친 논쟁을 벌이기보다 성경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도덕적인 규범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법의 모호성이나 쟁점과 상관없이 더 엄격한 도덕적 기준에 따라 투명하고 정직한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교회 안에도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많이 있을 것인데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우리 사회의 청렴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일들은 투명하고 원칙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한 공동체라면 모든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공동체 환경에서 훈련받은 기독교인들은 교회 밖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도 올바른 원칙에 따라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성경의 정신과 어긋나는 일들이 난무하는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이 이에 맞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공동체의 힘으로라야 가능한 일이다. 전래 초기에 기독교인들은 정직하고 성실하여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분 보장이 되었던 것처럼, 한국 교회가 스스로 공동체를 형성하여 ‘신앙의 사회화’를 이루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힘을 실어줄 수 있을 때 우리 사회의 청렴 수준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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