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보다 짧은 초단편소설집 '후후후의 숲' 출간

"책을 잘 안 읽는 시대가 돼버리고 있잖아요. 이런 시대에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다 좀 더 짧은 분량의 이야기는 어떨까, 독자들도 책 읽는 데 좀 더 재미를 붙이지 않을까 생각했죠."
 

신작 소설집 '후후후의 숲'(스윙밴드)을 펴낸 조경란(47) 작가는 6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소설집을 내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보통의 소설집은 단편소설 5-9편 정도를 묶어서 내지만, 이 책에 담긴 소설은 일반적인 단편소설보다 훨씬 더 짧다. 엽편(葉片)소설, 장편(掌篇)소설(손바닥소설), 혹은 초단편소설 등으로 부를 수 있는 3∼6쪽(원고지 10매 안팎) 정도의 짧은 이야기다.
 

SNS 게시글이든, 뉴스 기사든 휴대전화 안에서 휙휙 넘기며 볼 수 있는 짧은 글을 선호하는 이 시대에 조경란 작가는 '가장 짧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로 소설의 새로운 형식을 실험한 것이다.
 

작가는 '손바닥소설의 대가'로 불리는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처럼 "언젠가는 나도 손바닥소설을 써야지"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기도 했다.
 

이런 생각들을 실천에 옮겨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작년 겨울부터 본격 구상에 들어가 올해 1월부터 아주 짧은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했다. 5개월 동안 매일 두 시간씩 부지런히 써나갔다. 그렇게 완성한 작품 31편이 책에 담겼다.


아주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작가가 쓰기에는 오히려 더 어려웠다고 했다.


"쉽지 않아요. 간결하면서 함축적이어야 하고 섬세하면서 여운이 길어야 하잖아요. 짧은 시간에 어떻게 쓸까 고민했는데, 뻔한 이야기라도 그 안에서 독특한 장면을 포착해내는 식으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렵지만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앞으로도 두 시간씩 매일 이렇게 쓰고 싶어요."
 

이렇게 쓴 이야기들은 쉽게 금방 읽히고 웃음이 터지는 장면도 많다. 그러면서도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어 읽고 나면 생각할 거리들이 남는다.
 

특히 패러디 형식으로 기존의 이야기를 비튼 작품들이 눈에 띈다.
 

'두루미와 나의 진짜 이야기'는 서로의 차이를 헤아리지 않고 자기에게 맞는 접시에 음식을 담아준 여우와 두루미의 이야기를 변형해 진정한 우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소설 속 두루미는 수프를 접시에 내놓은 여우가 당황하지 않도록 참으로 지혜롭게 대처하는 멋진 친구다.
 

"두루미는 '나를 한 번도 자기 생각대로 바꾸려고 한 적도 없고 내가 하지 않은 말들을 다른 친구를 통해 얻어듣거나 내가 말하기 전까지 알고 싶은 기색을 내비친 적도 없으며 무엇보다 언제나 너를 믿는다' 라는 사인을 보낸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두루미와 나의 진짜 이야기' 중)
 

카프카의 동명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변신'에서 주인공의 퇴직한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토끼로 변신해 식탁에 앉아 책만 읽는다. 카툰 그리는 일을 하는 노처녀 딸은 "아버지한테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 오랜만에 말을 걸어보기로" 하고, 이를 계기로 서로에 대한 이해나 소통이 별로 없던 부녀지간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토니의 고민'은 주인공이 남자친구인 영국인 토니에 관해 들려주는 이야기다. 속옷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입을 정도로 무소유에 가까운 삶을 사는 토니는 한국에 와 지내며 주인공의 삶에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다 결국 돌아간다. 이 이야기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소비하며 사는 우리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다 어떻게 나왔을까.
 

"우선 예전부터 마음속에 갖고 있던 이야기들을 적어봤어요. 단편소설이 채 되지 못한 이야기나 삽화, 이미지로 남아있는 장면들이 아주 많았죠. 거기에 그때그때 더 쓰고 싶어지는 이야기들이 생각났어요. '느린 편지'는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인데, 단편소설로는 잘 안되다가 이번에 써지더라고요. 이렇게 쓰다 보니 정작 갖고 있던 이야기는 절반밖에 못 썼어요."
 

'느린 편지'는 고등학교 2학년인 조카 '진석'이가 이모에게 쓴 짧은 편지글이다. 진로 문제로 엄마와 크게 싸우고 다음날 학교를 땡땡이친 진석이는 영종도 휴게소에 있는 '느린 우체국'에서 엽서를 쓴다. "이모는 지금 일 년 전에 내가 쓴 엽서를 읽고 있는 거야. 그때는 내가 고3이 돼 있겠지?"라고 쓴 부분을 세월호와 연결해 읽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렇게 슬픈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희망과 위로의 기운을 담고 있다. 표제작 '후후후의 숲'도 번번이 입사시험에 떨어지는 취업준비생이 동네 공원에 나와 사람들과 소통하며 위로를 받는 이야기다. 공원에서 '말테 선생'으로 불리는 남자는 "사람은 숨을 제대로 쉬어야 한다"며 사람들에게 '후, 후, 후' 하고 숨을 크게 내쉬게 한다.
 

"사회적으로 밀려나고 소외됐다고 생각하는 많은 분이 잠시라도 안전한 장소에서 제대로 숨을 쉬면서 긴장을 풀고 이완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정상적이기 힘든 상태가 오고 슬프고 아프고 괴로운 일이 있는데, 잠시라도 안전한 장소가 주어진다면 좀 더 살아갈 만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썼죠."
 

그는 요즘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이르면 올해 겨울, 늦어지면 봄쯤 나올 것 같아요."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한 그는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국자이야기', '풍선을 샀어', 장편소설 '식빵 굽는 이야기', '혀', '복어' 등을 냈다. 문학동네작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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