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득이한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상자. 가로 70cm, 세로 60cm 작은 공간이지만, 지금까지 이 공간을 거쳐 새 생명을 얻은 아이들 수만 해도 천 명에 가깝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생명의 상자로 불리고 있는 ‘베이비박스’를 찾아 이종락 목사의 사역 이야기를 들어봤다.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를 통해 천여 명에 가까운 아기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됐다.(주사랑공동체교회 페이스북 갈무리)

베이비박스에 담긴 아기들만 960여 명
 
최근 주사랑공동체교회(담임 이종락 목사)의 사역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드롭 박스(The Drop Box)'가 개봉하며, ‘베이비박스’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서울 관악구 난곡동에 위치한 작은 교회의 사역이 세상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역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이종락 목사는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큰 축복이었다”고 말한다.
 
이 목사의 둘째 아들 은만 씨(30)는 전신마비로 태어나 누워서만 생활할 수 있다. 그런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돌보는 그의 모습을 통해 교회에 장애아들을 맡기는 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고, 이는 소문이 돼 퍼져 언제부턴가 말도 없이 교회 앞에 아기를 버려두고 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2007년 어느 봄날, 새벽 3시 20분에 전화 벨이 울렸어요. 수화기 너머에서 건네온 말은 ‘죄송합니다. 장애 아기가 태어났는데 키우지 못하겠습니다’ 였죠. 직감적으로 뛰쳐나갔더니 대문 앞에 놓인 생선박스에는 아기가 담겨있었어요. 주변에는 생선 냄새를 맡은 길고양이들이 몰려 있고, 아기는 저체온증이 와서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만 같았죠. 아기를 품에 안고 올라오는데 ‘잘못하다간 우리 대문 앞에서 어린 아이 사체가 발견되기 십상이겠구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생겼어요. 날이 밝자마자 철공소를 하는 친구에게 연락해 갓난아기를 담을 수 있는 상자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죠.”
 
이것이 베이비박스의 첫 시작이다. 건물 외벽을 뚫어 설치한 베이비박스는 바깥과 안쪽 모두에서 문을 열 수 있도록 만들었고, 누군가가 문을 열고 아기를 놓으면 건물 안쪽에서 자동으로 벨이 울려 곧바로 알 수 있도록 했다.
 
이 목사가 베이비박스를 만든 목적은 단 하나다. 길가에 버려지는 소중한 생명들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베이비박스가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이곳에 놓여진 아기들은 모두 960여 명에 달한다. 대부분 미혼모의 자녀이거나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기다.
 
“누구나 다 사랑 받고 축복 받고 태어나야 하는데, 아기들이 부모의 사랑과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누군가는 그 역할을 대신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쓰레기통에서부터 화장실, 계단, 길거리, 빈집까지. 아기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가만 있을 수가 없겠더군요. 이것은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어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천하보다 귀하게 지음 받은 존재인데 장애아라고 해서, 미혼모의 자녀라고 해서 사랑 받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이종락 목사ⓒ뉴스미션
“아기들 걱정에 아플 시간도 죽을 시간도 없었다”
 
교회도 처음에는 아기들을 받아들이는 일만 했지만, 이제는 사역의 범위를 넓혀 아기를 놓고 가는 부모들과 만나 상담을 진행하고,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아기 용품과 생활비 등을 지원한다. 미혼모 쉼터를 마련해 거처 제공 및 직업 소개를 돕기도 한다.
 
실제로 상담을 통해 격려를 받고 용기를 얻어 아기를 되찾아가는 경우도 많다. 이 목사는 시간이 지나 부모들이 아기를 데리고 함께 찾아올 때가 있다며, 그때가 가장 보람된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까지 모두 9명의 아이를 입양했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 중 입양이 되지 않은 장애아들을 직접 키우는 것이다. 이들 중 3명은 전신마비이며, 3명은 앉아서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다. 또 다른 3명은 정신지체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이 목사는 단순히 이들만의 아버지가 아니다. 베이비룸을 통해 눈물 흘리던 미혼모들의 아버지이자, 베이비박스에 담겼던 천여 명 아기들의 아버지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계획이 아니었음을 고백하며, “앞으로도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만 따라 가겠다”고 다짐한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가 문을 닫게 되길 매일같이 기도한다. 지금까지 아플 시간도 죽을 시간도 없었다고 말하는 이 목사는 앞으로도 그날이 오기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달려나가겠다고 전했다.
 
“베이비박스가 문이 닫힐 때까지, 미혼모들이 눈물 흘리지 않을 때까지, 이 아이들이 휘청대지 않을 때까지 이 일은 계속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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