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음’이라고 생각한 신앙이 ‘미신’은 아닌지 도발적으로 묻는 질문의 책이 출간됐다. 조성노 목사의 <믿음인가, 미신인가인가>(넥서스크로스)가 그것. 장신대 에서 현대신학과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1995년 개척한 푸른교회를 20년째 목회하고 있는 조성노 목사는 ‘아는 만큼 믿을 수 있다’는 전제 아래, 혹 지금의 믿음이 ‘맹신’은 아닌지, 누구를 믿는지 기초를 돌아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조성노 목사는 신론부터 종말론까지 교의학 체계를 망라한 설교집을 통해 성도들이 신앙의 기초를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뉴스미션

믿은 ‘대상’ 대신 ‘자기 소원’만 있으면 ‘미신’

이 책은 조성노 목사의 설교 40편을 7개 주제로 묶은 것으로, 성서와 교리를 기초부터 탄탄하가 점검하고 다지기 위한 목적으로 구성됐다. 교의학 체계를 따라 신론에서부터 종말론까지를 다루고 있다. 자칫 난해할 수도 있는 주제들이지만, 크리스천이라면 꼭 알아야 할 신앙의 기초들로 구성됐다. 조성노 목사를 만나 믿음인지, 미신인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지 물었다.

조성노 목사는 20년 동안 성도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미신적으로 믿는 모습’ 때문에 못마땅해 했던 순간들을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그런 성도들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미신적 풍토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란 설명이 이어졌다.

“한국교회가 지금쯤은 우리의 신앙이 믿음인지 미신인지 생각해 봐야할 시점이 왔다고 봐요. 성도들을 보면 항상 미신적으로 믿더라고요. 그게 성에 안 차고 못마땅했지만 또 한편으론 이해가 되요. 우리 풍토가 미신적이니까요. 정한수 떠놓고 치성 드리듯 하나님도 그렇게 믿는 행태가 성도들 안에도 만연하지요”

조성노 목사는 믿음이냐 미신이냐의 가장 큰 차이를 ‘대상’에 뒀다. 누구를 믿느냐는 것이다. 기독교인에게 ‘누구를 믿느냐’니 의아했지만, 결국 성도의 믿음이 결국에 ‘자기 소원’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미신’에 불과한 신앙이라는 답변이었다.

“믿음과 미신의 가장 큰 차이는 ‘대상’이예요. 결국 미신은 대상을 알 필요가 없거든요. 미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소원’ 즉 '자기'예요. 대상이 아니지요. 미신은 어떻게든 치성을 드려 소원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지요. ‘천지신명’은 천지에 있는 모든 신이예요. 무슨 신이든 상관없으니 내 치성을 받고 소원을 이뤄달라는 거지요. 그런데 기독교 신앙은 그게 아닙니다. 대상이 중요하지요”

“알아야 제대로 믿을 수 있다”

참된 ‘믿음’은 곧 믿는 대상에 대한 확실한 앎에서 시작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기독교 신앙은 대상을 아주 성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신이 주문하는 신앙 방법이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자기 소신껏 믿지 말라는 하십니다. 치성행위가 아니라 내가 누군지 제대로 알고, 내가 바라는 그 방법으로 신앙하라는 거지요”
 

하나님을 아는 것에 관심이 없고 단지 의식이나 제사에 참여하듯 예배를 드리고 내 소원을 빌기에 바쁘다면 그것은 자기 소신껏 신앙하는 ‘미신스러운 믿음’일 뿐이라는 것이다. 종교개혁 이전까지는 서양도 그랬다. 성경을 사제가 독점하던 시절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는 것을 사제를 통해서만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 성경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조성노 목사는 참된 믿음의 본질이 결국 ‘신뢰’에 있다고 역설했다. 하나님에 대한 앎은 그분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 그것이 진짜 ‘믿음’이라는 것이다.

“종교개혁 전까지도 신자에게는 맹목적 ‘믿음’만 강요됐어요. 중세시대에는 교리와 성경을 통제했지요. 쉬운 말로 믿음은 ‘신뢰’라고 봅니다. 우리가 사람을 신뢰할 때도 무턱대고 신뢰하진 않지요. 잘 알고 믿음이 가야 신뢰하지 않습니까, 기독교 신앙도 본질상 똑같아요. 믿음의 대상에 대해 알아야 신뢰가 가지요. 모르고 무턱대고 믿는다거나 신뢰한다는 것 자체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미신이죠. 기독교 신앙이 아무리 아름답고 건전하고 좋은 것이라 해도, 증거나 정보없이 덮어놓고 믿으면 기독교도 미신이 될 수밖에 없어요. 결국 신앙을 모르게 되면 강조되는 것은 ‘자기 소원’뿐이지요”

신뢰가 전제되지 않은 신앙, 대상에 대한 앎이 충분치 않은 신앙이 결국은 신앙과 삶이 이분화 된 성도들을 양산해 냈다는 것이 조 목사의 분석이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신앙과 삶이 완전히 이분화 돼 있어요. 교회에선 다 믿음 좋고 신실한데, 교회 문만 나가면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지요. 그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삶을 살기 원하는지 정보가 없어서 그래요. 아는 것은 전부터 있어 온 우상숭배 방식뿐이죠. 한국 사람들이 의식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고 하는데, 이게 미신이예요. 헌금은 일종의 복채지요. 하나님이 진정으로 요구하시는 건 삶의 한복판에서 ‘변화’입니다. 예배 의식만이 아니라 삶에서 하나님이 주문하고 기대하는 삶을 살라는 거예요”

종말론적 신앙, 기독교인들이 찾아야할 자세

조성노 목사는 ‘삶의 변화’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앎’을 꼽았다. 처음으로 돌아가 ‘대상에 대한 앎’이 삶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앎이 결국 삶이지요. 살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이죠. 알고도 그렇게 못 사는 건 별개의 문제예요. 지금의 한국교회 성도들은 너무 몰라요. 하나님을 모르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살 수 없지요. 아는 만큼만 믿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7가지 주제 중에 가장 관심 있는 주제를 물었다. 조 목사는 ‘종말론’이 요즘 가장 큰 관심사라고 말했다.

“교회 안에 종말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고, 긴장감이 없어요. 깨어 있고 근신해야 하는데 너무 맥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기독교 신앙은 종말신앙이예요. 예수님도 승천하시면서 ‘살아있는 자 중에 볼 자들도 있으리라’ 하신 거니까 금방 오실 줄 알았던 거죠. 그만큼 종말이 가까웠다는 의식으로 살라는 거예요. 산상수훈의 메시지도 긴박한 종말 의식이 있을 때 그렇게 살 수 있는 거거든요. 종말론적 삶을 살 때 현실에서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종말 의식이 없으니까 흥청망청하고, 마냥 여기 살 것도 아닌데 경쟁적으로 열심히 집을 짓고 사는 거예요. 긴장감이 절대적으로 결여돼 있는 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한계고 약점이지요”

나의 신앙이 믿음인지, 미신인지 알기 위해 질문을 바꿔도 될 듯 싶다. ‘당신은 종말론적 삶을 살고 있습니까’ 라고. 

조성노 목사는 독일 본대학교와 뮌헨대학교 신학부에서 현대 신학과 역사 해석학을 공부했다. 그후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현대신학과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지난 1995년 개척한 푸른교회 담임목사로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다. 저서 및 편역서로는 <신약성서의 신빙성>, <프락시스>, <복음과 문화>, <현대신학개관>, <역사와 종말>, <사자가 포효할 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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