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김영주 총무가 공식적으로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 한국 준비위원회(KHC)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지만, 교회협 교단장들이 이에 대해 다시 ‘복귀를 권고’하고 나섬으로써, 부산 총회 준비를 둘러싸고 교회협 내부에서 ‘엇박자’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6일 열린 교회협 교단장 총무 회의 광경. 이 자리에서는 첫 번째로 김영주 총무의 KHC 상임집행위원장 복귀 권고를 결의한 바 있다.

교회협 내의 ‘엇박자’

김영주 총무가 ‘상임집행위원장 복귀 불가’ 의사를 처음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지난 13일 ‘WCC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가 모인 자리에서였다. 이것은 결국, KHC와는 상관없이 이 협력위원회를 중심으로 국내 4개 WCC 회원 교단과 교회협 회원교단, 그리고 에큐메니칼 진영이 함께 부산 총회를 준비해 나가는, 이른바 ‘투 트랙’ 구조를 공식화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김 총무는 같은 날 이같은 뜻을 담은 서신을 회원 교단장들에게 발송했다. 이 서신에서 김 총무는, “부산 총회가 본래의 에큐메니칼 전통을 계승하고, 특히 한반도와 아시아에서 생명·평화·정의의 신앙고백을 실현하는 역사적인 총회가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이것은 교회협 실행위원회가 구성해 주신 ‘WCC 제10차 부산총회 협력위원회’를 통해서 실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총무는 교단장들을 직접 만나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지난 20일 회원 교단장들을 서울 시내의 한 음식점으로 불렀다. 그러나 애틀랜타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통일 협의회에 참석했다 돌아오는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정작 김 총무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고, 대신 교회협 실무자들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교단장들은 다시 한 번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복귀를 권고’했다. 그리고 오는 6월1일 다시 한 번 회원 교단장 총무 모임을 갖기로 했다. 말하자면, 김 총무의 결단에 교단장들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교단장들이 다시 한 번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복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투 트랙’ 구조가 현실화되는 것은 결국 WCC 총회를 유치해 놓고 한국 교회가 갈라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서, 김 총무가 상임 집행위원장으로 복귀하고, 그를 통해 KHC의 ‘협의회적 구조’를 복원해 총회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같은 교단장들의 뜻은, 어떻게 보면 교회협 실행위원회의 결의를 번복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KHC가 보여 준 행보와 이에 대한 교회협 차원의 대응을 되짚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KHC, ‘협의회적 과정 복원’ 계속 거부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복귀 권고’가 처음 나온 자리는 지난 4월6일 열렸던 ‘교회협 회원 교단장 총무 긴급 연석회의’였다. 그런데 이날 모임에서 김 총무의 복귀를 권고한 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국내 4개 WCC 회원 교단 총무들과 김 총무, 그리고 조성기 KHC 사무총장 등 6인이 ‘공동 집행위원장단’을 구성, KHC의 사업과 예산을 직접 관리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4월23일 열린 KHC 상임위원회는 이같은 결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총회 장소를 부산에서 서울로 옮기는 방안을 연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협의회적 과정의 복원’을 원했던 교회협 회원교단들의 뜻을 송두리째 무시한 KHC의 ‘도발’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로 인해 4월25일 열린 교회협 실행위위원회에서는,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하기에 이른다. 이 위원회는 원래 ‘지원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제안된 것이었지만, KHC의 행보에 분노한 실행위원들이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KHC에 대한 대책을 포함해서 부산 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이름도 ‘협력위원회’로 바꿔 통과시킨 것이다. 사실상 이로써 교회협은 ‘투 트랙’의 준비 과정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바로 이틀 전에 있었던 교단장 총무회의의 결정 사항이었던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복귀 권고’가 이날 실행위원회에서는 사실상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 것이다. KHC가 멋대로 총회 장소를 서울로 옮기는 일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김 총무가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한다 해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그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협력위원회’를 구성해 총회 준비를 해 나간다는 결의를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날 실행위원회에서는 ‘김 총무의 상임 집행위원장 복귀’와 ‘투 트랙을 전제로 한 협력위원회의 구성’을 맞바꾼 것이다. 교단장들이 다시금 ‘김 총무의 상입 집행위원장 복귀를 권고’하는 것이 실행위원회의 결의를 번복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김 총무의 상임 집행위원장 복귀는 근본적으로 KHC 내에 ‘협의회적 과정’을 복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KHC는 그동안 계속해서 이를 거부해 왔다. 이것은 지난해 11월 KHC가 조직을 개편하면서 ‘실행위원회’를 삭제함으로써 국내 4개 WCC 회원교단 총무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면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리고 이른바 ‘공동선언문 사태’로 김 총무가 상임 집행위원장을 사퇴한 이후에도 ‘협의회적 과정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회원교단들로부터 계속 제기돼 왔지만, KHC는 철저하게 이를 외면했다. KHC는 지난 3월26일 열린 상임위원회를 통해 조직의 확대 개편을 결의했으나, 여기에 회원교단 인사들을 참여시킨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복귀 불가’ 선언은 ‘거부’에 따른 선택

결국 김 총무의 ‘상임위원장 복귀 불가’ 선언은 KHC의 계속되는 ‘거부’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기 싫어서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김 총무가 복귀하지 못하는 이유는 김 총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KHC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김 총무의 상임 집행위원장 복귀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본질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교단장들이 모르고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교단장들만이 알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실들이 있다.

먼저, 만일 교단장들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면, 지난번 교회협 실행위원회에서 김 총무의 복귀 문제를 슬그머니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분명하게 김 총무에게 복귀를 권고했어야 했다. 그러나 교단장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교회협 회장이자 KHC 상임위원장의 한 사람인 김근상 주교가 김 총무에게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 나도 상임위원회에서 빠지겠다는 뜻을 밝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교단장들 중 적어도 김근상 주교의 경우는, 김 총무의 복귀는 의미가 없으며 나아가 KHC 상임위원회 역시 함께 총회를 준비할 파트너가 되기 힘들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근상 회장을 비롯한 교단장들은 김 총무에게 다시 한 번 상임집행위원장 복귀를 권고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교단장들이 사태의 본질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오는 6월1일 모임에서 다시 한 번 거론된 뒤 분명한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동안 KHC가 보여 준 행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설사 김 총무가 교단장들의 권고에 따라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한다 하더라도, 교단장들이 원하는 것처럼 KHC내에 협의회적 과정이 복원돼 총회 준비 과정을 국내 4개 WCC 회원교단들이 관장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KHC는 4개 교단이나 에큐메니칼 협의과정과는 상관없는 인물들로 상임위원회를 확대 개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총무가 복귀하고 예전에 거론됐던 6인의 ‘공돋 집행위원장단’이 구성된다 하더라도, 확대 개편된 상임위원회의 ‘산하 기구’가 될 수밖에는 없다. 실질적으로 KHC의 예산과 사업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기 힘들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교회협 실행위원회가 결의한 바대로 WCC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를 중심으로 에큐메니칼 진영과 대해 총회의 내용을 채워 나가기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부산 총회의 중요한 ‘호스트’ 중 하나인 교회협 내의 WCC 비회원교단들의 소외를 막기 위해서는 이런 구조가 더욱 절실하다.

결국 지금의 상황에서는 교단장들의 결단에 따라 교회협이 총회를 준비해 나가는 방향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김 총무는 이미 결단을 내렸지만, 아직까지 교단장들은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 고민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교단장들 스스로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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