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에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다. 그것은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이라는 단체로부터 온 것으로, ‘목회자 소득세 신고 지원’ 활동을 시작하니 교회협 회원 교단 소속 목회자들에게 홍보를 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메일에는 소득 신고 대행 신청 서류와 포스터 등의 자료도 첨부돼 있었다.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의 ‘목회자 소득세 신고 지원’ 포스터.
교회협으로서도 반가운 메일이었다. 교회협 역시 ‘교회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운동의 과제 중 하나로 목회자 납세를 설정해 놓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이 갑갑해 할 수도 있는 소득 신고를 대행해 줄 수도 있다니, 반가움을 넘어서 고맙기까지 한 메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교회협은 지난 2일 교회재정투명성제고위원회를 열어 교회의 재무제표와 회계 처리의 기준안을 만들기로 결의한 바 있다. 땅에 떨어져 있는 한국교회의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 교회 재정의 건강성 혹은 투명성 확보와 목회자들의 납세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메일은 정말로 교회협에게는 엄청난 ‘응원군’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은 교회협과 같은 이른바 ‘에큐메니칼 진영’이 아닌 복음주의 진영에 속해 있는 ‘개혁운동 그룹’이 결성하고 운영하는 단체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주의 진영의 개혁운동 그룹이 에큐매니칼 진영인 교회협에 ‘함께 하자’고 손을 내민 것이다.

기자는 이 소식을 듣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 중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바로 교회일치운동, 즉 에큐메니칼운동과 교회개혁운동의 상관관계이다.

아주 고전적인 에큐메니칼운동 이론에 의한다면, 에큐메니칼운동이 지향하는 것은 교회가 교회로 바로 서게 하는 것(Let churches be the Church), 즉 교회의 개혁과 선교적 사명의 수행 두 가지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내용상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교회가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일치에 합당한 구조로 스스로를 개혁해 나가야 하고, 개혁을 이루지 못한 교회가 선교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교회에서는 이 두 가지가 서로 다른 실체처럼 여겨져 왔다. 에큐메니칼운동은 진보적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교회들이나 하는 것이고, 개혁운동은 보수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교회들이나 하는 운동 정도로 인식돼 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우선 에큐메니칼운동은 진보적 사회 참여와 동일시됨으로써 에큐메니칼운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과연 교회가 무엇이기에 하나가 되자고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 다시 말해서 ‘교회론’에 대한 논의가 거의 무시돼 왔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에큐메니칼운동이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적인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다 보니, 진보적 사회운동과 동일시되던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즘이 그 목적 의식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반면, 개혁운동 단체들의 운동은 아직 교회 정관 마련을 통한 교회의 민주적 운영과 재정의 투명성 문제나, 세습, 그리고 목회자의 성윤리 등과 같은 것에 대한 ‘사안별 정화 운동’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이 자체로도 큰 의미를 지닌 것은 분명하고, 또 많은 결실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교회는 항상 개혁돼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는 개혁 교회의 이념에 따라 ‘늘 개혁을 향해 열려 있는 교회’를 만들기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에큐메니칼 진영이 일치에 걸맞는 교회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에큐메니칼 교회론’(Ecumenical ecclesiology)을 정립하는 데 실패했다면, 한국의 개혁운동 진영 역시 총체적 개혁운동의 교회론적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는 ‘개혁운동의 교회론’(Ecclesiology for reformation)을 정립하는 단계에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양 진영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기자는 감히 그것을 ‘에큐메니칼운동과 개혁운동의 통합’이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세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른바 ‘하나의 거룩하고 사도적이며 보편적인 교회’(One holy, apostolic and catholic Church)의 이념을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적인 차이를 떠나 추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에큐메니칼운동이 추구하는 교회의 모델이나, 개혁운동이 추구하는 교회의 모델이나 모두 이 이념과 통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하나의’라는 수식어가 에큐메니칼 진영이 말하는 ‘일치’를 상징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라는 수식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모든 지체, 즉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집합체이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함께 먹고 마시며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거룩한 공동체’(Holy Comm)이다. 개혁운동이 추구하는 교회의 진정한 모델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의 진정성과 온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은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생명과 그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정의와 평화로 가득찬 세상, 말하자면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맛보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에큐메니칼 진영이 실현하려 하는 복음이나, 개혁운동 진영이 선포하려 하는 복음이나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같은 내용의 복음을, 다른 방식으로 선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세상이 교회에게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교회가 교회답다는 것을 보여 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다움은 세상을 향한 교회의 봉사, 즉 선교를 통해 표현된다. 그런데 제대로 된 선교를 위해서는 ‘교회답지 않은 모습’의 극복이 전제돼야 한다. 교회의 개혁과 선교 과제를 수행하는 일이 둘이 아닌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이 분열이건, 아니면 타락한 교회의 모습이건, 진정한 선교를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돼야 한다.

한 가지를 사족처럼 덧붙이자면, 코 앞으로 다가온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가 한국교회에 뭔가 의미를 주기 위해서라도 에큐메니칼운동과 개혁운동의 통합은 반드시 필요하다. 개혁운동 진영에서는 조금 의아해 하실지도 모르겠으나, 지역 교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생각해 보자. 사실, 개혁운동 진영이라고 해서 부산 총회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개혁운동 진영에 속한 교회나 에큐메니칼운동 진영에 속한 교회나 모두, 안으로는 WCC에 대한 몰이해를 극복해야 하고, 밖으로는 WCC 총회를 반대하는 목소리와 싸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큐메니칼 진영과 개혁운동 진영의 협력과 통합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참으로 길고 어려운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지금부터라도 각 지역에서 에큐메니칼 진영의 교회들과 개혁운동 진영의 교회들이 일종의 ‘써클’같은 것을 만들어 지역의 문제를 위해 협력해 나갈 것을 권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그리고 WCC에 대해 배우고, 간극을 좁혀 나가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필요하다면, WCC 총회 기간 동안 해외교회 대표들을 교회로 초대하는 일도 함께 하면서, 지역에서부터 ‘함께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에큐메니칼운동과 개혁운동의 통합 같은 거창한 담론은, 그런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