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다수의 교계 언론들이 비슷한 뉴스를 전했다. 북한 지하교회의 지도자들이 북한의 상황을 ‘전쟁 분위기’라고 전하면서 ‘북한이 전쟁 준비가 아닌 평화를 추구하도록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이 뉴스들은 모두 미국 오픈도어스의 홈페이지에 실린 내용을 그 ‘소스’로 하고 있다. 미국 오픈도어스는 북한의 상황을 상세하게 전하면서, “전쟁과 미사일 발사 가능성에 대한 수사의 이면에는 20만명에서 40만명에 달하는 북한 기독교인이 당하는 고통과 박해가 숨어 있다”는 제리 딕스트라 대변인의 말을 덧붙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접하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우선 북한 ‘지하교회’의 존재에 관한 것이다. 물론 존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우리는 북한 지하교회의 존재를 전제로 북한 선교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겨 왔다. 일단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실체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지하교회’인 만큼 실체가 드러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오픈도어스의 홈페이지는 ‘지하교회의 지도자들’의 말을 인용해 소식을 전하고 있다. 여기서 두 번째 의문이 생긴다. 과연 그들이 외국의 선교단체를 향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던 기자의 뇌리를 스쳐간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부활절 남북 공동기도문’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와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사이의 합의를 거치지 못한 채 ‘반쪽짜리’로 발표된 경위를 취재하던 중 일어난 ‘돌발 상황’이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이훈삼 교회협 정의평화국장은 “지금처럼 남한이 군사훈련을 하고 북한이 거기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남북한 사이의 모든 통신이 두절된다”고 말했다. 그러니 부활절 공동기도문에 대한 답신도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마친 이훈삼 국장이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은 다 보내면서...”
 
이것은 결국 부활절 공동기도문에 대한 답신이 아닌 또 다른 ‘서신’이 조그련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기자는 모든 ‘레이더’를 동원해 ‘또 다른 서신’의 존재와 내용을 취재했다. 취재를 통해 얻은 결론은 이것이다. 문제의 ‘서신’은 조그련 국제국장 이종로 목사의 명의로 교회협뿐만 아니라 세계교회협의회(WCC) 국제위원회(CCIA)에도 보내졌고, 그 내용은 “지금 한반도가 전쟁의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으니 남북한과 세계의 그리스도교 형제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확인을 할 수는 없었다.
 
모두가 일다시피 조그련은 철저하게 북한 당국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단체다. 따라서 조그련이 보낸 서신에는 북한 당국의 뜻이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기자가 취재한 서신의 존재와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오히려 북한 당국이 ‘전쟁을 할 의사’를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 된다. 미국 오픈도어스가 전하는 ‘북한 지하교회 지도자’들의 말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생각한다면, 북한 지하교회 지도자들의 메시지가 미국 오픈도어스를 통해 전해진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전제해야 할 것은, 최근 북한과 외부의 통신은 철저하게 두절돼 있으며, 북한 당국이 하고 싶은 말만 외부로 흘러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 오픈도어스가 전하는 메시지는 첫째, ‘완전한 창작’일 수도 있고, 두 번째로는 교회협과 WCC 이외의 해외 교회에 보내진 조그련의 서신을 ‘마사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셋째로,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다니는 사람들’에 의해 전해진 것일 수도 있다.
 
경우야 어찌됐건, 중요한 것은 이런 내용의 소식이 지금 극도의 긴장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 관계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북한을 ‘전쟁 준비에 광분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밝힌 바와 마찬가지로, 조그련의 서신은 정 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조그련의 서신이 진짜로 존재하고 내용도 기자가 취재한 것과 같다는 사실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확인’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존재와 내용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이야기해 준 내용이 놀랍도록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성격의 서신이 조그련으로부터 날아든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니다.
 
미국 오픈도어스가 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도 아닌 외국 선교단체가, 출처가 불분명한 메시지를 인용해 북한을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지하교회 교인들을 탄압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누그러트리기보다는 조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선교단체들이 북한의 소식을 전하는 방식과, 또 그것을 국내 매체가 인용, 보도하는 방식이 보다 신중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화지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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