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월 평양을 방문한 권호경 당시 NCCK 총무가 김일성 주석을 면담하고 찍은 기념사진. NCCK와 조그련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왼쪽부터 강영섭 목사, 권호경 총무, 김주석, 박경서 당시 WCC 아시아국장, 고기준 당시 조그련 중앙위원장.(사진출처:박경서 지음, ‘Reconciliation Reunification’)

남북한 교회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 31일 부활절에 새문안교회에서 드려진 올해 부활절 연합예배에서는 예년과 다름 없이 ‘남북교회 부활절 공동기도문’이 낭독됐다. 그러나 이 기도문은 남북한 교회의 합의를 거치지 않은 ‘반쪽짜리’ 기도문이었다.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의 응답이 없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단독으로 발표한 것이다.

남북관계 경색 여파, 남북교회 관계에도 영향 미쳐

남북교회 부활절 공동기도문은 지난 1996년부터 해마다 NCCK와 조그련의 합의를 통해 발표돼 왔고, 합의 없이 남한 교회가 단독으로 발표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올해 부활절 공동기도문의 경우, 대규모의 한미 합동 군사훈련인 키 리졸브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종교계 뿐 아니라 모든 부문의 남북간 통신이 두절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 들어 남북한 교회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 주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오는 10월30일부터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 10차 총회에 조그련 대표가 참석하는 것이 사실상 ‘무산’됐다는 점이다. NCCK 화해통일위원회 관계자 역시 조그련으로부터 ‘부산 총회 참가가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음을 시인했다. 부산 총회의 의미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 줄 수 있는 ‘이벤트’ 하나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몇 가지 부수적인 사건들을 도미노처럼 몰고 왔다. 원래 WCC 국제위원회(CCIA)는 부산 총회를 앞두고 4월 중 제주도에서 조그련 대표까지 참석하는 ‘동북아 평화와 안보에 관한 국제협의회’를 개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조그련 대표가 부산 총회에 참가하기도 힘든 마당에 이 협의회에 참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판단한 CCIA는, 장소를 홍콩으로 옮겨 오는 6월 초에 개최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이유는 ‘조그련 대표의 참석을 위해서’이다. 여기에서는 CCIA는 물론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대표도 참석한다.

또, 부산 총회에 제기할 한반도 평화통일 관련 의제를 집약하기 위해 국내에서 개최하려 했던 ‘한반도 평화통일 국제협의회’ 역시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지난 2월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부산 총회를 위한 기획마당’에서는 WCC 부산 총회 한국준비위원회(KHC)와 NCCK 화해통일위원회가 공동으로 이 협의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KHC는 아직 국내에서의 협의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은 ‘아직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실상 계획이 없었던’ 것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NCCK 화해통일위원회는 이 국내 협의회를 개최하는 대신 5월에 미국 애틀란타에서 미국연합감리교회가 주최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문제에 대한 국제협의회’에 참석하고, 여기서 부산 총회에 제기할 의제를 정리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NCCK-조그련 30년 돈독한 관계 금가나?

NCCK와 조그련은 지난 1986년 글리온 회의에서 WCC CCIA의 주선으로 처음 만나 30년 가까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WCC 제 7차 캔버라 총회부터는 양 기구의 대표들이 나란히 참석, 세계의 에큐메니칼 형제들에게 그동안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져 준 것에 대해 함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합동 예배를 드려 왔다. 따라서 이번 부산 총회에 조그련 대표들이 참석하는 것은 하나의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런 ‘당연해 보였던 일’이 무산된 것이다.

조그련으로서도 NCCK가 ‘호스트’가 돼 치르는 WCC 부산 총회에 참석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비록 장소는 한반도 내 부산이지만, 세계 교회로서는 가장 큰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불참하게 된 것일까?

가장 커다란 이유는 물론 최근 경색을 넘어서 극도의 긴장으로 흐르고 있는 남북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부문을 막론하고 북한 주민이 남한 땅에 발을 들여놓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조그련 내부의 상황도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조그련은 지난해 1월 강영섭 중앙위원장이 별세한 이후 아직까지 위원장을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강영섭 위원장은 김일성 주셕의 혁명동지인 강양욱 목사의 아들로, 북한 내 서열이 높은 인물이었고, 따라서 조그련의 위상도 강영섭 위원장 시절이 가장 높았다. 따라서 강영섭 위원장 사망 이후 조그련의 북한 내 위상이 급격하게 하락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또한 지금 정권 교체기에 있는 북한의 상황이 조그련의 행보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을 수도 있다.

북한의 WCC 불참 통보, 역시나지만 이례적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일찍 부산 총회 불참을 통보하는 것은 조금 이례적이다. 설사 불참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러 가지 실무적인 문제를 따져 본 뒤에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NCCK와 조그련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조짐이 나타난 것은 지난 2009년 홍콩에서 열린 ‘도잔소 회의 25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통일 국제협의회’였다. 이 협의회에 참가했던 신선 당시 NCCK 지도력개발위원회 위원의 참관기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회의가 기대와 긴장 속에서 진행되는 동안, 각 발제에서 북의 정책이나 인민의 현실이 공개될 때마다 북측대표는 마이크를 잡고 항변과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표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대조선 정책과 핵의 문제로 6자회담 위반이라는 점, 일본은 북의 파멸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 북의 내부사정과 김정일 위원장의 신변 언급을 했던 발제자에 대하여 항의하고 도잔소 회의는 당국자들의 회의가 아니라 교회관계자의 회의이니,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교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특히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은 6·15공동선언을 전면무시한 상황이라며, 북의 목적은 조선반도의 비핵화이므로 이는 미국의 대 조선반도 정책에 달려있다며, 현재 북한은 ‘사탕 알이 없이는 살지만 총알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상황임을 강조하였다. 핵문제, 지속적인 인도주의적 지원, 연방제 등이 언급된 공동성명 문안 수정에 의견이 교차되어 잠시 휴회하고 조율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발제의 내용 등이 북한 대표를 심하게 자극해 회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회의 이후 조그련이 NCCK나 WCC와의 접촉을 꺼리기 시작했으며, 그런 분위기가 부산 총회 불참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이 협의회 이후에도 남북 교회의 만남과 접촉은 꾸준히 이어졌으며, 지난해에도 북경과 심양 등지에서 실무 접촉을 가진 바 있다는 게 NCCK 화해통일위원회 관계자의 주장이다. 특히 2011년 12월에는 대북 지원품의 분배 상황을 모니터하기 위해 남한 교회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으며, 이 때 조그련은 순안예배소라는 ‘가정교회’를 공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남북교회 관계 넘어 한반도 평화 통일에 대한 근본적 논의 필요

NCCK와 조그련의 관계에 대한 진실은 NCCK와 조그련만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진실이 ‘미래’에 미칠 영향이다.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미래는 부산 총회 직전에 치러지는 ‘평화열차’ 프로그램이다. 계획대로라면 평화열차는 북한을 거쳐 부산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남북한 교회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면, 과연 평화열차가 북한을 통과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평화열차’ 프로그램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북한을 통과하느냐 마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평화열차 조차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평화열차 프로그램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부산 총회 기간 동안 주말 프로그램으로 총회 참가자들이 비무장지대를 방문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야를 조금 더 넓혀서 생각해 본다면, 남북 관계가 극도의 긴장으로 흐르고 또 남북한 교회의 관계마저 예전 같지 않은 ‘어려운 상황’은 또 다른 기회일 수 있다.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찬란한 역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교회 선언’(88선언)은 통일운동에 대한 억압이 가장 심하던 시절에 나왔다. 이후 DJ 정권의 ‘햇볕정책’으로 남북 교류가 자유로워진 후에는 오히려, 교회를 비롯한 민간부문의 통일운동이 ‘만남과 교류, 그리고 지원’의 차원을 넘지 못했다. 통일의 원칙이나 통일 이후 한반도의 체제 등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나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정부 당국에 의해 독점됐던 것이다.

따라서 지금 NCCK에 필요한 것은 남북관계나 남북교회의 관계를 걱정하는 일이 아니라, 다시 한 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에 나서는 일이다. 그리고 그 논의의 장에 북한 교회도 참여하도록 끊임없이 불러내 하나의 목소리를 내면서, 그 목소리를 근거로 남북한 교회가 함께 새로운 통일운동에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WCC 등 국제 에큐메니칼 기구와의 연대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부산 총회에서 다뤄질 한반도 관련 의제의 하나는 ‘포스트 도잔소’, 다시 말해서 앞으로 진행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에큐메니칼 차원의 협력 방안이다. ‘포스트 도잔소’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그 내용은 ‘도잔소 어게인’이 돼야 한다는 것을, 지금의 남북한과 남북 교회를 둘러싼 상황은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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