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 ⓒ데일리굿뉴스
예로부터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라고 해서 하늘은 높아지고 말은 살찌는 계절로 일 년 중 가장 기후가 좋고 먹을 것이 풍족한 시기로 꼽혔다. 천고마비라는 말과 함께 짝을 이루는 것은 바로 등화가친(燈火可親)일 것이다.
 
옛날에는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 책을 읽는 주경 야독이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낮보다는 밤의 글읽기 환경이 더 중요했다고 하는데 가을바람이 선선한 저녁이면 등잔을 켜도 여름밤처럼 덥지도 않고 모기나 날파리가 덤벼들지도 않았을 테니 잠을 쫓아 주는 풀벌레 소리와 함께 책 읽기에는 그만인 환경이었을 것이다.
 
사계절 가운데 봄도 날씨가 좋긴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봄은 밭을 갈고 파종을 해야 하는 등 농사일로 바쁘고 고단한 시기이기 때문에 한가로이 책장을 넘기고 있을 마음의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가을걷이를 끝내고 마음까지 풍요로워진 가을이 가장 글 읽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등화가친 이라는 옛말이 무색하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때고 냉난방 장치를 작동시키면 쾌적한 환경에서 책장을 넘기며 자신만의 독서삼매경에 빠져 들 수 있으니 사시사철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이란 말을 두고 어디론가 훌쩍 여행이나 떠나고 싶고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손짓하는 산에나 오르고 싶은 등 책을 멀리 하고 싶은 유혹에 휘말려 책이 하도 안 팔리니까 출판계에서 책을 읽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야외활동이 많은 탓인지 국내 대형서점의 책 판매량도 급감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제 오늘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서울에 10월 중 한파 특보가 내려진 것은 2004년 이후 17년 만이라고 하고 전국 곳곳에 한파 경보가 발령되니 이렇다 하게 책 한권 펼쳐보기도 전에 독서의 계절 가을이 왔나 싶기가 무섭게 훅 지나가는 것은 아닌가 아쉽기 그지없다.
 
사실 개인적으로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적으로 가장 불편한 것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눈의 노화를 들곤 했었다.

젊을 때는 환히 보이던 것들이 어느새 눈을 찌푸려야만 보이고 이제는 눈을 아무리 찌푸려 본들 잘 보이지 않고 대충 감만 잡아야 할 뿐이다.
 
과학의 도움을 받아 다초점렌즈를 착용해 봐도 젊은 시절의 가독력에 비하면 형편없이 떨어져 세월 무상 인생무상에 우울해지고 의기소침해지는 때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상적인 기분을 떨쳐 버리기에 제격인 것은 조용히 책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으로 독서를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언제나 푸르기만 할 것 같던 오월의 신록도 가을이면 낙엽을 떨구는 것이 자연의 섭리 아니겠는가?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긴 하지만 안중근 의사께서 형장으로 끌려가기 전 간수에게 읽던 책을 마저 읽게 해 달라고 마지막 소원을 이야기하셨던 일화를 떠올리며 활자 책의 매력에 나도 한번 흠뻑 빠져 보고 싶은 2021년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한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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