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식 목사ⓒ데일리굿뉴스

자동차 면허 따고 운전한 후 3년이 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어디서 기원한 말인지 모르지만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3년 차는 위험했습니다. 처음 자동차 사고를 낸 시점이 운전한 지 3년 되는 해였습니다. 감사하게도 큰 사고는 아니었습니다.
 
언덕 위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가 하품하는 순간 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발이 떨어졌고 차는 밀려서 앞 차를 살짝 추돌했습니다. 처음 운전할 때는 초보운전이라 늘 조심했습니다. 그렇게 1·2년이 지나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점점 차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사고가 난 것입니다.
 
익숙함은 중요합니다. 익숙함의 반대는 미숙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날 때 모든 것이 어색하고, 미숙합니다. 그러나 점점 익숙함의 자리로 자라갑니다.
 
신혼 시절에 먹던 음식과 중년이 되어서 먹는 음식은 사랑이라는 양념은 같지만, 맛은 정말 다릅니다. 음식을 만드는 손맛이 달라져서 최고의 맛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니 늙어서도 어머니의 맛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익숙함이 위험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가벼워질 때입니다. 이 정도면 된다고 생각이 들어올 때 사고가 납니다. 단지 운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삶의 모든 순간이 같습니다. 가볍게 대하는 순간 위기가 찾아옵니다. 가벼움은 단지 긴장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벼움의 근원은 교만입니다. 자신을 확신하는 교만이 사고를 만들어냅니다. 그동안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던 순간 위기가 찾아옵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익숙함의 자리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익숙해져야 할 때 여전히 미숙한 상태에 있다면 그처럼 안타까운 것은 없습니다. 바울은 신앙에 있어서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자가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장성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선생이 돼야 하는데 여전히 엄마 젖이나 먹고 있으면 되냐고 책망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예수님을 기록한 말씀을 보면 지혜와 키가 자라나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했습니다(눅 2:52). 익숙함의 자리로 나가는 것이 사랑스러움입니다. 이렇게 미숙함이 아니라 항상 익숙함으로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람이, 성숙함이 가벼워지는 순간입니다.
 
즉 키는 자라는 데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익숙함의 자리로 나가지 않습니다. 즉 외모는 화려하지만, 인격은 바닥이라면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익숙함이 가벼워지는 순간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가벼움은 교만을 함의합니다. 익숙해지면 누구든지 자신 있어 합니다. 그래서 가볍게 생각하고, 말하고 대처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사고가 일어납니다.
 
언젠가 한 모임에서 교만에 가득한 말을 들으면서 아찔했습니다. 음주운전 단속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음주 운전하면서 사고를 내는 것은 운전이 미숙해서 그렇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숙한 사람은 운전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자신은 운전경력이 수십 년이 됐기에 문제없다고 자신했습니다. 얼마나 끔찍했는지 모릅니다. 익숙함이 가벼워질 때, 교만이 그 자리를 차지할 때 참담한 결말이 다가옵니다.
 
이것이 단지 생활의 현장에만 있지 않습니다. 신앙의 모습에서도 같습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익숙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온라인 예배입니다. 사람들이 점점 온라인으로 예배를 시청하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각종 통계를 보면 온라인과 현장 예배를 함께하는 교회를 선호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여차하면 예배 시청하겠다는 자세입니다. 예배는 인격입니다.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자라나게 하십니다.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인격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교육과 교제, 즉 성례가 있습니다. 서로를 향한 한마디의 말이 오갈 때 사람은 존재 이유를 확인합니다. 그런데 온라인 시청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교제 없이, 간섭 없이, 나눔 없이 신앙하기를 원합니다. 혼잡 문화의 영향이 이제 교회에 깊이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시대의 문화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성경의 가르침은 참고로 여겨집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한 번만 생각해보면 자신이 하는 행동을 교정할 수 있습니다. 나 홀로의 신앙은 참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익숙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타납니다. 처음 예배할 때의 어색함은 시간이 갈수록 담담해집니다. 예배순서도 쉽게 적응합니다. 온라인 예배도 그러합니다. 어색함은 사라지고 편리함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가벼워지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가벼운 반드시 교만의 자리로 자라고, 교만은 자의적 신앙에 이르고, 마침내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익숙함이 가벼움이 되지 않도록 싸워야 합니다. 지금은 회복될 예배의 자리를 소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함으로 기도할 때 죄를 죽일 수 있고,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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