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교회사를 연구하는 몇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이 지난 9월 7일 베를린 중심가에서 약간 외곽에 위치한 반제 하우스를 탐방했다. 반제(Wannsee)라는 호숫가 바로 앞에 세워져 있는 예쁜 빌라였던 반제하우스는 후에 나치의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됐다.
 
 ▲김홍근 선교사가 반제하우스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데일리굿뉴스

먼저 김홍근 선교사(유대인 사역)는 “당시 유럽은 반유대주의(Antisemitism) 뿐만 아니라 인종 차별의 분위기가 지극히 만연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기울어진 국가의 형편으로부터 관심과 비난의 화살을 돌릴 대상이 필요했다. 히틀러가 유대인 전체를 향한 혐오로 확대 사용하면서, 독일 내에 유대인을 향한 미움과 분노가 더욱 정당화됐다”고 설명했다.
 
‘반제 컨퍼런스’(Wannsee Konferenz)로 알려진 회의는 반제하우스에서 1942년 1월 20일 친위대(SS)와 국가사회주의당(NSDAP)의 고위 대표 15명이 모여 논의한 것을 말한다. 그들은 유대인 말살 계획을 세우고 최종 해결안을 확정했었다. 소위 최종 해결책이란 독일 점령지의 유대인들을 폴란드로 실어 와서 모조리 죽이는 것을 의미했다.
 
외무·법무·내무성·국무성을 대표한 차관들과 친위대 대표자들이 회담 참석자에 포함됐다. 즉 나치 독일 차관급 수뇌부의 회합이다.
 
회담을 소집한 것은 국가보안본부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국장이 주재했고, 회담 중 하이드리히는 어떻게 유럽 유대인들을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시켜 그들의 죽을 자리인 폴란드 총독부에 소재한 강제수용소로 보낼 것인지 대략적 윤곽을 제시했다.
 
또한 하이드리히는 일단 유대인들을 총독부로 실어오기만 하면 그 뒤 죽이는 것은 친위대의 소관이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추방 전문가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회담에서 결정된 모든 유럽계 유대인을 살해하려는 계획과 이 대량 학살에 대한 독일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 즉 ‘유대인 문제에 관한 최종 해결책’의 문건을 직접 작성했다.
 
참가자들은 각자 각 방별로 흩어져 전시장의 자료와 미디어 설명을 들었다.
 
 ▲반제 컨퍼런스 2층 도서관. ⓒ데일리굿뉴스

이곳 전시장은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독일 1933-1939년의 인종차별 정치와 유대인 박해’, ‘바이마르 공화국의 통합과 반유대주의’, ‘남동부 유럽에서의 전쟁과 대량학살’, ‘독일군의 가능한 전략적 움직임’, ‘유럽 유대인들의 대량학살로 가는 길’, ‘반제 회의’, ‘15명의 회의 참가자 및 1945년 이후 회의록’, ‘하우스 역사’, ‘강제 노동 및 죽음의 수용소’, ‘과거와 현재’ 등의 주제로 돼 있다.
 
2층 미디어 도서관에는 유럽의 유대인 역사, 반유대주의, 박해와 대량 학살, 국가 사회주의, 인종 차별주의, 신나치즘, 추모 문화, 1945년 이후 나치 역사 등에 시청각 미디어 컬렉션과 촬영된 잡지 및 마이크로필름에 대한 파일 묶음이 있다.
 
회담 장소였던 반제하우스 별장은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홀로코스트 추모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반제 컨퍼런스 탐방에 참석했던 몇 사람의 소감을 들었다. 정승안 목사(베를린주안교회)는 “아름다운 장소에서 이처럼 악한 일들이 이뤄졌음을 생각하게 됐다. 본질을 외면하고 왜곡시킬 때 얼마나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주님의 뜻으로 부터 멀어질 때 이러한 일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너무도 평온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깨어 있어야 하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신용철 목사(하노버비전교회)는 “젊은 지성을 세우고 넓히는 책들의 공간이 반제 컨퍼런스 위층에 있다! 반인륜적인 사건의 장소 위에 웬 뜬금없는 도서관일까 싶다가 꽃 같은 땅을 피로 물들인 것은 왜곡 된 지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반지성적인, 반성경적인 것을 반성하라’, ‘죄를 반대하라’는 무언의 가르침 같다”고 말했다.
 
김민영 자매는 “죽음의 결정이 시작된 반제하우스, 크고 탁 트인 창문을 통해 빛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방에서 어떻게 그토록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결정이 내려질 수 있었는지…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빌라와 주변 풍경에 더욱 가슴이 먹먹해졌다. 전시는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고 철저하게, 침착하게 그날의 회담 전후 과정과 내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의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여전히 아파서 신음하고 있을 모든 상하고 깨어진 심령들을 회복시켜 주시길 기도하게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참가자들은 모두 반제 호숫가에 모여 식사를 하면서 서로 느낀 소감을 나눴다. 또 오는 11월에 독일 통일 유적지 또는 동독 박물관, 슈타지(동독 비밀경찰) 박물관 등 역사적인 한 곳을 정해 탐방하기로 했다.  
 

[김현배 선교사기자]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