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는 말이 있다. 도심 속 화려한 그늘 속에서 텐트와 천막을 치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대부분 쪽방촌을 가기도 어려운 극빈자들로 이곳까지 흘러들었다. 본격적인 장마를 앞두고 무더위에 지친 용산역 텐트촌을 직접 다녀왔다.
 
 ▲우리 사회의 극빈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서울 용산역 인근 텐트촌 ⓒ데일리굿뉴스
 
서울 용산역에는 비밀의 섬이 있다. 도심 속 그늘에 가려져 인근에서 오래 거주한 사람들조차 이곳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역사와 서울드래곤시티를 잇는 구름다리 밑, 빽빽이 들어선 나무와 수풀 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다.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자 텐트와 천막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집 없는 노숙인들이 모여 사는 '텐트촌'이다.
 
용산 텐트촌에 노숙인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것은 약 15년 전. 현재는 노숙인 30여 명이 생존을 위해 터를 잡고 생활하고 있다. 대부분 쪽방촌조차 갈 수 없는 극빈자들이다. 저마다의 이유로 사회에서 밀려나 텐트촌까지 흘러들었다.
 
텐트촌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박OO(가명, 61) 씨는 15년 전 이곳에서 처음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텐트촌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태어날 때부터 노숙인은 아니었다. 청량리에서 고물상을 운영했으나 일이 잘 안 풀렸고 경제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박 씨는 "오갈 데가 없던 차에 우연히 아는 동생이 텐트촌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고 같이 살게 됐다"며 "여기서 지내다 보니 시간이 어느덧 이렇게 훌쩍 흘러 버렸다"고 했다.
 
텐트촌의 환경은 열악 그 자체였다. 누군가는 거리의 노숙보다 낫다고는 하지만, 현장에서 느낀 바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도 나오지 않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텐트 주변에는 쓰레기가 곳곳에 쌓여 있어 악취가 진동했다.
 
텐트 안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쓰레기와 상자가 널브러져 있고, 그 위로 벌레들이 기어다녔다. 안쪽으로는 돗자리와 때 묻은 이불이 깔려 있었다.
  
특히 여름은 이곳 노숙인들에게 가장 힘든 계절이다. 겨울은 침낭이나 이불 등으로 추위를 견딜 수 있지만, 여름철엔 30도에 육박하는 폭염과 모기떼들을 오롯이 맨몸으로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역 인근 텐트촌. 텐트 주변에 쓰레기가 쌓여 있다. ⓒ데일리굿뉴스

하지만 이들에게 더위와 굶주림보다 힘든 것은 따로 있다. 노숙자들을 향한 세상의 시선이다. 10년 넘게 노숙 생활을 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현재 텐트촌 노숙인들을 섬기고 있는 김재남(프레이포유 자원봉사자) 씨. 그 역시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 당시 가슴을 찌르는 가장 큰 아픔이었다고 밝혔다.
 
김 씨는 "노숙인들은 세상을 살아가다가 여러 가지 문제를 겪고 자의 혹은 타의로 거리에 내몰리게 된 것뿐"이라며 "단지 노숙인이라는 것만으로 다른 시선으로 보거나 사람 같지 않게 보는 시선은 가혹하다"고 했다.
 
이어 "비록 노숙인을 이해할 수 없어도 그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면 좋겠다"며 "그럴 때 이들이 마음을 열고 세상으로, 주님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텐트촌 노숙인들과 오랜 시간 함께한 사역단체들은 이들의 자활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어떤 체계적인 프로그램이나 물질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사역단체 프레이포유(대표 손은식 목사)의 김선종 목사는 노숙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이라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거리나 좁은 방 등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물질적인 게 아니라 관심과 사랑"이라며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의미에서 노숙인들을 내 이웃, 내 형제·자매, 내 부모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섬겼던 것처럼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 소외된 곳을 비추는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며 "노숙인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사랑의 마음을 잊지 않고 계속 기도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천보라 기자]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