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 잔해 철거작업 현장.(사진출처=연합뉴스)

삼풍 사고 당사자가 고백하는, 참사 이후의 삶

아들 생일상을 차리려 시장에 다녀오던 어머니, 함께 탔다가 생사가 갈린 부녀, 산행을 간다고 나가신 아버지. 

지난 9일 광주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로 숨진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안전사고가 터질 때마다 재발 방지를 외치지만, 비극적인 참사는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다.

세월호 등 각종 참사는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희생자들의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1995년 6월 29일 역대 최악의 인명 참사로 기록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 산만 씨(필명)는 “참사는 다른 누군가의 일이 아닌 모두의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사고 당시 자신의 경험담을 엮어 책으로 출간했다. 스무 살에 삼풍백화점에서 일당 3만 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산만 씨는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푸른숲)에서 사회적 참사가 어떻게 개인에게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지 고백한다.

방황의 나날들…우울증·무기력에 시달려 

지상 5층 지하 4층 총 9개 층의 건물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0초였다. 당시 내부에는 손님과 직원 1,500명 정도가 있었다. 

그중 사망자는 502명, 구조된 인원은 40명. 구조된 사람들은 모두 지하에 있던 사람들이었고 1층부터 5층 지상층에서는 단 한명의 생존자도 나오지 않았다. 

산만 씨는 건물 전체가 무너진 A동에 있었는데, 누군가의 호출로 B동으로 가는 도중 사고가 일어나 겨우 살 수 있었다. 그는 “건물 상판이 한층 씩 차례로 무너지면서 그 압력으로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고 튀어나가기도 했다”면서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피비린내가 진동했다”고 떠올렸다. 25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다.  

저자는 사고 후 오랜 기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렸다. 지금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친 아버지의 자살, 친오빠의 학대, 우울증과 자살 기도, 직장 내 괴롭힘과 퇴사 등 생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번번이 돌부리가 됐다고 털어놓는다. 

또 이를 이겨내기 위해 오랜 시간 치료를 받았고, 이제는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고 전한다. 불행에 집중하기보다는 불행으로 얻어낸 것들에 주목한 결과라며, 살아 있으면 다 살아지고 괜찮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마음먹은 뒤로는 살아남은 자로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왔다. 고통스러워도 계속 글을 쓴 이유다. 

타인을 향한 연대로 함께 극복해야

‘삼풍백화점 참사’는 형태와 이름만 바뀔 뿐 계속 일어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겪는 불행이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상처를 기록으로 남기고, 사고로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과 함께하며 타인의 고통을 보듬는다. 또 다른 참사를 겪는 유가족들을 이해하고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데까지 나아간다. 

참사로 고통 받는 사람이 생기지 않으려면, 아픔을 꺼내 함께 마주하며 타인을 향한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게 저자가 말하고픈 핵심이다. 

쓰라린 상처를 덧나게 내버려두지 않고 타인을 껴안는 저자의 태도는, 삶에서 붕괴를 겪어낸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준다. 그날 우연히 그 자리에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살아남은 우리들에게는 ‘참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과제를 안긴다. 그가 1995년 사고와 함께 봉인한 기억을 기어코 끄집어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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