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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기] 1/26(화) [기획] 만화 속 진화론, 제대로 알고 보자 外
한혜인 기자(hanhyein@goodtv.co.kr)
등록일:2021-01-26 09: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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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6월 회고록 발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오는 6월 회고록을 발간한다. 유엔 전문 온라인매체 패스블루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단호한 : 분열된 세계 속 국가들의 단합’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오는 6월 컬럼비아대 출판부를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반 전 총장은 책의 서문에서 "국가들 사이의 분열, 일부 세계 지도자들이 뿜어내는 위험한 증오의 수사, 다자주의에 대한 위협이 어느 때보다 더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반 전 총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자기중심적인 이러한 지도자들은 자신의 전략을 노출하고 성과를 자랑하는데 이는 국제 외교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 것이라고 거듭 약속하고 (북한과의) 합의가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줌으로써 김정은의 힘을 키워줬다”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반 총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 및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한 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특히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는 “예측불가능하고 믿을 수 없고 무책임하며 고압적인 도널드 트럼프가 국제협약을 약화시켰다”며 “역사적인 실수”라고 비판했다.
예자연, 정세균 총리에 '교회發 감염' 관련 공개질의
"2020년 7월8일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모두발언 중'교회의 소규모 모임과 행사에서 절반의 감염사례가 나왔다'는 근거를 알려주시기 바란다" 예배회복을위한자유시민연대(대표 김진홍, 김승규, 이하 예자연)가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코로나19 교회발 감염과 관련, 공개 질의를 했다고 5일 밝혔다. 이같은 질의를 한것은 앞서 수차례정부 발표의 근거를알기 위해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질의했으나, 지금껏 충분한 답변을 듣지 못 했다는 이유에서다. 예자연 측이 근거 제시를 요구한 정부의 발표는지난해 7월 8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대본 회의에서 이뤄졌다. 이날 정 총리는"최근 감염사례를 분석해보면교회의 소규모 모임과 행사로부터 비롯된 경우가 전체의 절반가량 차지하고 있다"며 전국의 교회를 대상으로 핵심 방역수칙 의무화를 지시했다.이에 따라 정규예배 이외의 모든 소모임과 행사가 금지되고,출입명부 관리도 의무화됐다. 8월 18일에는 수도권 교회를 대상으로 방역 조치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19일 0시부터 수도권 지역의 교회에모든 대면 모임과 행사는 물론 대면 예배를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예자연 측은 "이러한 정부 발표이후 교회가 감염원의 원인인 것처럼 보도하는 기사들이 쏟아져교회에 대한불신이 높아졌으며, 교회 내부에서도 교회에 대한 조치에 항의하는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코로나19 방역은 모두가 협력해야 할 과제이기에 총리의 발표가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발표라면 수용하겠다"면서도"만일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국민에 사과하고 교회에 대한 방역 조치를 다른 감염위험시설과 마찬가지로 형평성 있게 변경해줄 것을 정중히 바란다"고 요청했다. 끝으로 "3월 15일까지 위 질의에 대하여 충분한 답변이 없으면부득이하게 법적인 조치를 할 수 밖에 없다"며 총리의 응답을 기다리겠다고 덧붙였다.
스타들의 성경읽기 ‘문화선교’ 도구로
유명 연예인 성경낭독…일반에도 ‘관심’ 미디어 홍수시대, 복음 전하는 도구로 성경은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인 동시에 가장 많이 읽힌 책이다. 하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읽기에는 쉽지가 않다. 만약 좋아하는 연예인이 성경을 읽어준다면 어떨까? 코로나19로 비대면 소통이 활발해지는 요즘, 유명 연예인이 들려주는 성경 콘텐츠가 크리스천은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관심을 받고 있다. 배우 겸 인기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인 최시원 씨는최근 개인 유튜브 채널에 창세기와출애굽기를 낭독한 영상을 올렸다.그의 목소리를 들으며성경을한글 및영어자막으로 볼 수 있는 형태다. 시청 길이가 각각 2~3시간에 이르지만,수만 명이 시청하고 800여 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성경낭독을 들은 국내외 팬과 누리꾼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선한 영향력을 전해줘서 감사하다", "매번 실패하던 성경읽기에격려와 도전을받았다"등의 댓글을 달았다. 최 씨는“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음성으로라도 좋은 말씀을 나누고 싶어 성경통독을 시작한다”며 "힘든 시기,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저버리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오디오성경'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배우 신애라(사진=신애라유튜브캡처) 앞서 데뷔 32년차 배우 신애라 씨도 성경낭독으로 대중을 만나고 있다. ‘신애라이프 오디오성경’이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성경콘텐츠를 올린 지 만 1년이 넘었다. 그의 낭독콘텐츠는 매일 아침 오전 6시에 업로드 되고 있다. 신 씨는 "시각장애인이나 암 환자 등 성경을 혼자 읽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분들이 참 많더라"라며 "좀 더 친근감 있는 연예인들이성경을 읽어주면힘이 되겠다 생각해서 '나부터 읽자' 결심했다"고 밝혔다. 블로그나 유튜브 댓글을 보면 신 씨와 함께 성경통독을 시작했다는 사람도 생겼다. 한 누리꾼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모태신앙인데 육아를 핑계로 성경을 한 자도 읽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로 많은데 신애라 언니와 함께 매일 하루에 2장씩 성경을 읽기로 결심했다"고 적었다. 전문가들은 연예인의 경우보여주는직업이기에 오디오 콘텐츠와 어울리지 않을 수 있으나, 스타들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친근감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평가했다. 일반 대중에겐 복음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크리스천들의 신앙회복을 돕는 새로운 방식의 '문화선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선교연구원 백광훈 원장은 "성경읽기는 복음 그 자체를 가지고 소통하는 것이기에 좋은 영향을줄 수 있다"며"무엇보다 스타들이 조금 더 책임을 갖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감 있는 신앙생활을 살아갈 수 있는 동력도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크리스천 연예인들의 성경 콘텐츠처럼 대중에게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도구와 소통 플랫폼이 계속 마련되는 게 필요해보인다"고 덧붙였다.
"카페 창업으로 목회 이어가도록 도와"
코로나19로 많은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미자립교회의 경우 재정적인 문제로 목회를 이어가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카페 창업을 지원해 목회를 이어가도록 돕는 곳이 있어 취재했다. 카페 노하우, 미자립교회 목회자에 전수 '커피북스' 브랜드도 제작…출판사와 협업도 코로나19 장기화로 월세조차 내지 못하는 미자립교회가 많다. 일부 목회자들은 거리에 내몰리기도 한다. 커피 전문 기업을 운영하는 박경대 대표는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위해 커피 창업 노하우를 전수하기로 결심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목회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페어로스트 박경대 대표는 "목회자들이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카페를 통해 생업을 유지하면서, 선교적 삶을 지속적으로 감당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어 이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박 대표는 커피 관련 국제 단체인 스페셜티커피협회(SCA)에 소속돼 바리스타와 카페 창업을 교육하고 있는 커피 전문가다. 직접 커피 제조에 필요한 기술과 카페 운영 노하우를 가르친다. 교육은 하루 4시간씩 총 6회를 진행하며, 원하면 스페셜티커피협회 기본과정에 응시해 자격증을 취득할 수도 있다. 박 대표는 카페 목회나 선교를 위해 커피 브랜드 '커피북스'도 만들었다. 북카페 형태로 출판사와 협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박 대표의 지원을 받아 '커피북스 1호점'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노승진 목사는 경제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카페가 신앙을 나누는 비전센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커피북스 1호점 노승진 목사는 "브랜드와 각 종 노하우들을 제공받아 많은 도움이 됐다"며 "뿐만 아니라 커피를 매개로 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신앙의 상담까지 할 수 있는 영역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 목회자 등 카페 목회를 꿈꾸는 이들에도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경대 대표는 "이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잘 정착해서, 후에는 선교지에도 하나의 모델이 되어 작은 지역 센터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며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를 지속하는 데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세상 변해도 봉사는 언제나 중요”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는 봉사활동은 많은 제약이 생겼죠. 하지만 그런 상황과 여건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은 또 생기기 마련이죠. 봉사도 계속 변하고 발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설 대목장을 앞둔 지난달 6일 울산시 울주군 언양알프스시장. 한 손에 소독액을, 다른 손에 헝겊을 들고 시장 상점들을 차례대로 돌며 출입문 손잡이부터 계산대까지 꼼꼼하게 닦는 여인이 있었다. 주인공은 경남 울산시 울주군의 울주군 여성자원봉사회장 김양심 씨(63)다. 김 씨는 이날 봉사단원 20여 명과 함께 몇 시간에 걸친 소독 작업을 후, 준비해간 마스크를 행인들에게 나눠줬다. 이날 방역 봉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대목 오일장이 열리기 전날 이뤄졌다. 1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소독·방역은 이제 당연하고 필수적인 봉사활동의 하나가 됐다. 봉사활동이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게 김 씨의 생각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변화의 필요성을뚜렷하게 증명했다. ▲김양심 씨가 회장으로 있는 울주군여성자원봉사회의 회원들이지역 내 취약계층에 전달하기 위해 천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데일리굿뉴스 김 씨의 울주군여성자원봉사회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졌을 때 수천 장의 천 마스크를 만들어 취약계층에 보급했다. 어린이집·학원 차량이나 택시를 소독하는 ‘방역 정류장’ 봉사에도 참여했다. 김 씨는 “25년 전에는 복지사 방문도우미가 없어 마을마다 돌며 독거어르신 댁을 방문해 청소와 목욕을 시켜드리고 반찬도 챙겨드리면서 말벗도 돼 드렸다. 특히 매년 5월 가정의 달에는 독거어르신 합동 생신상차림 행사 등 다양하게 봉사를 해왔다. 그 외 산불이나 수해 등 재해를 당하는 곳이 있으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조그만 힘이라고 보태려고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기존에 해오던 봉사활동에 변화가 생겼지만 김 씨는 봉사를 중단하지 않았다. 이제는 코로나 시기에 적합한봉사활동인 마스크 만들기와 소독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울주군과 롯데삼동복지재단과 함께 봉사활동 연계물품지원사업 협약식 때의 김양심 씨(가운데).ⓒ데일리굿뉴스 봉사활동 30년이 코앞인 김 씨는 2년 임기의 울주군여성자원봉사회장을 연임하며 4년째 맡고 있다. 울주군여성자원봉사회는 11개 읍면에서 286명의 회원들이 회장인 김씨와 함께 봉사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김 씨의 오랜 봉사활동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일까. 지난 2019년 9월에 불어 닥친 태풍 미탁으로 인해 경북 울진의 한 산골마을의 산사태로 가옥이 절반가량 피해를 한 집을 봉사원들 30여 명과 함께 방문해 하루 종일 흙덩이를 치우고 살림살이를 제자리로 갖춰놓았을 때였다. ▲태풍으로 수해피해를 당한 가정을 방문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김양심 씨와 울주군여성자원봉사회원들.ⓒ데일리굿뉴스 당시 피해를 당한 집은 귀농 2년차의 부부였는데 채 농촌생활 적응도 하기 전에 당한 변으로 아내는 쇼크로 병원에 입원했다. 남편도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하소연할 때였다. 그러나 김 씨와 봉사자들의 종일 수고에 힘을 내보겠다고 용기를 내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김 씨는 “이름 때문에 ‘양심은 안 팔아먹겠다’는 우스갯소리처럼 마음을 다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재영 칼럼] 종교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서 종교의 위치 우리 사회에서 종교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불교가 지배종교의 위치를 차지했던 시대를 지나 유교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고, 근대 이후에는 국교가 폐지되고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매우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존재해왔던 샤머니즘과 다양한 신흥종교들까지 포함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매우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종교 전시장과 같은 사회이다. 그러나 인구센서스 결과에서는 종교 단체에 속한 공식 종교 인구는 전체 한국인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제도 종교에 속한 사람들은 줄고 있지만 한국인의 정서나 심성에 종교성이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교는 우리 사회에서 지배 종교의 자리를 내어준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인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유교의 가르침을 여전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우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목회자들도 ‘장유유서’는 중요한 덕목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정도다. 유교는 다른 종교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기독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가 유교화되는 경향을 낳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본인의 종교를 무속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점집을 찾거나 굿을 하는 등 무속 신앙을 갖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무속은 오랫동안 미신으로 여겨져 왔지만, 여전히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오히려 최근에 더 증가하는 추세이다. 선거 때나 입시 철마다 점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손 없는 날’을 찾아 이사 가고, 건물을 짓거나 이전할 때는 으레 고사떡과 돼지머리가 등장한다. 결혼 전 궁합을 보는 것은 필수로 여겨진다. 자신이 소속된 종교와 상관없이 무속에 기대어 삶의 중요한 선택을 결정하고 있다. 등록된 무속인 수가 30만 명에 이르고, 비등록 무속인을 합하면 전체 무속인 수는 5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엄밀하게 무당과 신도의 관계를 유지하지는 않더라도 굿, 점사, 치성을 하는 사람은 줄잡아 10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종교의 부작용 이렇듯 많은 종교가 존재하고 종교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그리 뚜렷하지 않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정서적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거나 출세나 성공의 도구로 여기는 기복신앙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의 사회적 기능인 사회통합이나 사회변동의 과정에서는 정작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종교는 오히려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기 때문에 종교 간에 경쟁이 심하고 다른 종교를 존중하지 않아서 생기는 갈등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경향은 우월의식이나 배타성이 강한 종교일수록 더 심한데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슬람교의 교세가 매우 약한 우리 사회에서는 기독교가 두드러진다. 기독교 중에서도 개신교는 가톨릭에 비해 유일신 신앙을 더 강조하고 종교 다원주의를 강하게 반대하기 때문에 배타적인 성격이 더 짙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종교로 개종시키려고 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게 되면 그 독단성으로 인해 건전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기독교는 오랫동안 지성인들의 비판 대상이 돼 왔다. 2006년 ‘만들어진 신’으로 종교의 허상을 주장한 리처드 도킨스는 ‘신, 만들어진 위험’으로 다시 비이성적 믿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사회학자인 필 주커먼은 ‘신 없는 사회’와 ‘종교 없는 삶’을 통해서 무종교 사회가 선할 수 있으며 종교 없는 사람도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음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비교종교학을 연구하는 미국 침례교 목사인 찰스 킴볼은 종교의 타락을 경고하는 다섯 가지 위험 징후를 다루고, 종교의 본질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종교가 사악해질 때’라는 책을 냈다. 그는 교리나 전통의 차이를 떠나 정의와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가 끔찍한 폭력과 반사회적 악행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건전한 종교 생활을 위하여 최근 우리 사회에서 ‘종교 중독’이 이슈가 되고 있다. 종교 중독이란 종교로 인해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고 종교에만 몰두하게 돼 일상생활조차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비단 개신교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종교에 빠져서 생활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헌금을 드린다든지, 모든 일을 지나치게 영적으로만 해석해서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때로는 특정 이념과 종교를 결합해 심각한 확증 편향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는 모두 과잉 종교화 돼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저해하는 반사회적 결과를 일으킨다. 따라서 건전한 종교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매순간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서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확보하고 편견에 사로집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종교적 관점이나 신념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고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면 스스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자신과 같은 부류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서는 제대로 판단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점검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성경 말씀을 절대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성경 말씀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절대화 할 수 없다.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어떠한 이념이나 세계관이나 가치관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성경 말씀에 대해서는 자의적인 해석을 하지 말고 다양한 해석이나 견해를 비교하면서 보편타당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성경적’이라는 말도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가 1년 이상 지속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지칠대로 지친 상태다. 이럴 때 종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이 돼 주어야 한다. 종교로 인해서 더 힘들어지거나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모든 종교인들이 더욱 노력을 해야 할 때다.
[이영훈 칼럼] 쉼표의 시간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새로운 적과 치열한 싸움을 했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상황 속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된 사람들은 속절없이 감염돼 큰 고통을 겪거나 심하면 생명을 잃었다.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도 국가적 차원의 강력한 방역 명령으로 인해 일상의 삶이 제한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상실이 꼭 역기능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상의 제약은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혹은 사회의 관습을 따라 살아왔던 삶의 모습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예를 들면 회사의 재택근무를 들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사회가 되면서 많은 회사가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 제도를 도입했다. 처음 재택근무를 도입할 때는 근무 효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등 여러 우려의 목소리들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온라인으로 업무를 진행하면서 불필요한 중간보고와 잡무, 그리고 상하 인간관계에 소모되는 시간과 정신적인 에너지들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효율이 늘었다는 보고가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선입견에서 벗어나 더 나은 업무수행 방식을 찾게 된 것이다. 교회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집단 중 하나가 바로 교회다. 코로나19로 인해 진행하던 행사들을 멈추고 나니, 정작 이 행사들이 교회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교회의 귀한 자원이 불필요한 곳들에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코로나19가 준 귀한 교훈 중 하나다. 무엇보다 교회의 본질적인 면에서도 코로나19는 많은 변화를 가져다줬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퍼진 이후 교회의 두 가지 존재 목적인 ‘모여’ 예배하는 것과 ‘흩어져’ 전하는 것이 모두 제한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예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면 예배를 강행해야 하는가?’, ‘비대면 예배를 예배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다양한 질문이 교계에서 오갔다. 아직 누구도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교계의 일치된 답을 제시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나 당연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던 예배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다. 같은 비대면 예배라도 아무런 생각 없이 화면을 보며 드리는 예배와 진지한 고민 속에 드리는 예배는 분명 다를 것이다. 교회의 또 다른 중요한 본질인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것도 많은 도전이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어려워진 것도 한 이유이지만, 그와 더불어 코로나19 상황 가운데 교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대중에게 드러난 점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이제 한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거룩함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본격적인 온라인 시대가 열리면서 교회는 더욱 투명하고, 성실하며, 더욱 진실한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을 깊이 깨닫게 됐다.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이 시간을 잘 활용해서 타인과 사회의 시선 속에서 바라보던 나를 깨고 정말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내가 누구이며,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시간을 익숙했던 모든 것을 일단 멈추고 더 나은 답을 찾아보는 쉼표로 활용하길 원하신다. 한국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여주봉 칼럼] 예배 회복 4
지난번 우리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성전 회복 사건을 통해 교회와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열망이 얼마나 큰지를 보았고, 거기에 비추어 오늘날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하는 절실한 필요들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교회와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조금 더 상세하게 보기 위해 성전에 담겨진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성전(처소) 삼고 거하기 원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그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으로 머물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을 지도하시고 그들 가운데 운행하기 원하신다. 구약의 성전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세워졌다. 그리고 구약의 성전에 담겨진 하나님의 목적은 신약의 교회를 통해 온전히 이루어졌다. 즉, 신약의 교회가 구약의 성전의 완성이다. 바울은 신약의 교회와 성도가 살아계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한다(고린도전서 3:16, 6:19). 구약의 성전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비전과 열망, 즉 하나님 백성들을 성전 삼고 그들 가운데 거하기 원하셨던 하나님의 비전과 열망이 신약의 교회에서 성취된 것이다(고린도후서 6:16).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성전 삼고 거하신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하나님이 구약의 성막에 대하여 말씀하신, 출애굽기 29:42-26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도 발견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구약의 성막이나 성전은 신약의 교회와 성도를 향한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9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비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영광으로 임하기 원하신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기 원하신다 3)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운행하기 원하신다 4)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나기 원하신다 5)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도하기 원하신다 또한, 성전에 담겨진 하나님의 비전은 곧 우리의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에 기초하여 우리의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열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 가운데 영광으로 임하기 원하신다. 모세와 아론이 성막에서 제사드리고 나와서 백성들을 축복할 때에도(레위기 9:23-24),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고 하나님께 찬양드릴 때에도 여호와의 영광이 그곳에 가득했다(역대하 5:13-14). 오늘날도 하나님은 하나님 백성들의 예배 가운데 영광으로 임하기를 원하신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 가운데 거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 신앙의 모든 면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다. 그래서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얼굴 빛을 황폐한 성소에 비춰달라고, 즉 하나님의 임재로 하나님의 성소에 돌아와 달라고 간구했다(다니엘 9:17). 그리고 오늘날 우리를 성전 삼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 가운데에도 그분의 임재로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 3)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 가운데 운행하기 원하신다. 바울도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 가운데 하나님께서 두루 행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고린도후서 6:16).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또한 우리의 예배 가운데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기 원하신다. 4)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통해 우리와 만나기 원하신다. 구약의 성막이 지어진 목적 중 하나도 하나님이 그 백성들과 만나기 위함이었다(출애굽기 29:42-43). 또한 모세가 회막에서 하나님을 찾아 나아갔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만나주셨고 하나님과의 친밀함 가운데로 인도하셨다. 회막(만남의 장막)이라는 이름처럼, 우리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5)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통해 우리를 지도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이 성막을 통해 주신 약속 중 하나는, 성막에서 그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겠다는 것이다(출애굽기 29:42). 실제로 하나님은 성막 위에 떠오르는 구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예배를 통해 우리를 구체적으로 지도하시고 인도해 가시기를 원하신다. 참된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비전과 열망이 보이는가? 나는 하나님의 그 열망을 보면서, 오늘날 심각하게 침체되어 있는 우리의 예배가 이렇게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예배로 모일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큰 영광으로 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모든 예배마다 하나님이 강한 임재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가 그 임재 안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하나님이 광야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기적을 행하셨고 초대교회의 예배에서 놀라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던 것처럼, 우리의 예배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친히 운행하시며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많은 성도들이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친밀함의 행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고 우리를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성경적 효와 가정] 가족 사랑의 효
성경적 효 실천에서 가족 사랑이 중요한 이유는 관계를 맺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천부와 땅의 아들 아담과의 부자 관계는 아담과 하와의 결혼 관계보다 우선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순종하는 성경적 효 실천의 근거가 된다. 우리나라의 ‘건강가정기본법’에서 ‘가족’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다. ‘민법’은 가족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 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정의한다. 성경은 가족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강조·언급한다. 1. 가족은 하나님이 세워 주신 최초의 공동체다. 가족은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보존·이어지는 곳으로서 최우선으로 보호·유지돼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담의 독처(혼자 살아감)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 그래서 돕는 배필과 함께 가정을 이루도록 하셨다(창 2:22∼24). 가족은 하나님이 세우신 최초의 공동체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이며, 인간에게는 ‘기쁨’의 공동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단어는 ‘가족’이라고 한다. 2. 성경은 가족 안에서 서로 돌봐주라고 명령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우리는 가족을 하나님의 마음과 방법으로 돌봐야 한다. 성경적 효는 단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잘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부부가 서로를 돌아보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며,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는 가족 간 돌아보는 전방위적인 의미다. 3. 가족이 행복하면 사회가 안정되고 국가도 부강하다. 하나님이 세우신 최초의 공동체인 가정에서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행복해진다면 사회와 국가는 안정되고 부강해진다. 가족학의 세계적 권위자 버지니아 사티어는 저서 ‘사람 만들기’에서 가정은 사람 만드는 공장과 같다. 사회를 좀먹는 불량인간들의 생산은 가족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동양 고전 ‘효경’은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할 수 없다”고 했다. 성경대로 가족 간 사랑의 효 실천이 화목한 가정, 행복한 세상을 건설하는 지름길이다.
[성경적 한의학] 정신병과 귀신들림
정신병의 90%는 정신분열증이다. 정신분열증은 요즘 ‘조현병’이라는 용어로 대체되고 있다. 그 주된 증상은 환각과 망상의 두 가지다. 환각과 망상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에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의 과잉분비가 원인이라고 하는 학설이 주요 학설도 대두되고 있다. 도파민은 흥분성 호르몬인데 이것이 적당량 분비되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과잉 분비되면 환각과 망상과 같은 이상증상들이 생길 수 있다. 환각이란 환청, 환시, 환미, 환취, 환촉의 다섯 가지를 말한다. 그중의 하나라도 있으면 환각이라고 한다. 환각 중에 환청이 제일 많고 환시는 그 다음으로 많다. 망상에는 사고 장애와 감정 장애가 있다. 즉 이상한 생각이 자꾸 드는 것과 이상한 감정이 자꾸 생기는 것이다. 망상과 환각을 모두 갖고 있으면 이를 정신분열증이라 한다. 이중에 한 가지만 있을 때는 분열증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정신분열증은 한방에서는 ‘기란’(氣亂)이라고 하는데 기가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우리 몸의 기는 항상 가볍게 팽팽 도는즉 순기를 잘해야 한다. 그런데 기가 거꾸로 도는 역기 현상이나, 기가 체하거나 막히는 기체, 기색, 기가 어지럽게 도는 기란 증상이 나타나면 정신이 어지러워져서 분 열의 증상이 나타난다. 한방에서는 기의 순환을 바르게 해주는 약재를 써서 치료한다. 우리 몸의 가슴윗부분은 항상 물이 있어서 시원해야 하고, 배꼽 아래쪽은 불이 있어서 따뜻해야 한다. 하지만 기의 순환이 잘못되면 이것이 반대로 돼 가슴 윗부분이 더우면서 열이 나고, 배꼽 아래쪽이 차가우면서 시리게 되는 상열하한(上熱下寒)증상이 생기게 된다. 가슴 위로 열이 차올라서 신경이 예민해지고 정신이 분열되거나 우울에 빠지는 등등의 증상이 생기게 된다고 본다. 이것은 육체의 병이므로 육체를 치료하므로 당연 치료될 수 있는 문제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정신분열증으로 나타나는 것을 귀신들림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귀신들림과 정신분열증은 완전히 다르다. 귀신들림은 영적인 문제요, 정신분열증은 육체의 문제이다. 정신은 육체의 한부분이요, 육체에 속하기 때문에 육체가 약해질 때에 정신이 약해진다. 그러나 귀신들림은 영적인 문제이다. 물론 영과 정신을 완전히 구분할 순 없지만 마귀에게 사로잡히는 것을 귀신들림이라고 한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약물에 대해 반응을 한다. 하지만 귀신들린 자는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다. 귀신들린 자를 약물로 치료했다는 기록은 없다. 예수에 대한 적대감이나 부인은 귀신들린 자에게 는 꼭 있는 요소다. 그러나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그러지는 않는다. 예수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또한 성경적으로 보면 귀신들린 자의 가장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있으면서 적대시 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정신분열증은 결코 그렇지 않다. 괴력에 대한 문제도 확연하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괴력이 없다. 담을 뛰어넘거나 쇠사슬을 끊는 괴력이 없다. 하지만 귀신들린 사람은 그런 괴력이 있다. 그건 귀신의 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건만 봐도 정신분열증과 귀신들림은 완전히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에서 정신분열증상이 있으면 귀신들린 것으로 오 해하고 ‘기도해야 낫는다’면서 일체의 약물치료 거부와 함께 기도원으로 가게 만든다. 정신적인 질환도 육체 질환의 한 부분이며 분명히 약을 쓰면 치료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사회에서는 이런 병을 왜 이단시할까. 이건 중대한 문제다. 중세의 마녀사냥이 그랬다. 정 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마녀에게 사로잡혔다고 하면서 화형 시켰던 처절한 흑역사가 우리 종교사에 분명히 있다. 문제는 그것이 그때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정통을 자랑하는 기독교 안에서 이런 일들이 너무나 흔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아연할 뿐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감기나 배탈로 고생할 수 있고 수술을 받을 수 있듯이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약해지고 어려워지면 그 원인을 찾아 가족치료나 환경 개선과 집단치료를 통해 근본적인 치유를 할 생각보다, 사람을 도외시하며 매장시키려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무식한 처술이다. 육체의 병과 영혼의 병을 구분할 줄 알자. 육체의 병이 깊어지면 무슨 병이든 영적인 유혹과 시험을 받고 사탄의 틈탈기회가 될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지식 없는 사람들의 예사로 던진 한마디가 사람을 실족케 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