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은 한국의 대표적인 노동운동가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죽음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세상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했던 청년 전태일 열사의 삶과 신앙을 살펴봤다.
 
 ▲전태일 열사(왼)와 그의 일기 ⓒ데일리굿뉴스

전태일 열사 50주기…"노동자의 인간다운 삶" 강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50년 전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다.
 
1966년 전태일 열사가 평화시장에서 근무하던 시절 하루 기본 노동시간은 15시간이었다. 야간작업이 이어졌고 잠이 오면 각성제를 먹고 일했다. 공장 안은 먼지로 숨 쉬기조차 어려웠으며 햇빛도 들지 않았다. 높이는 1.5미터로 허리조차 펼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일당은 단돈 50원이었지만, 이마저 업주의 재량으로 정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에 전 열사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햇빛을 보고 일할 수 있고, 휴일근무는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근로기준법 준수를 촉구했다. 하지만, 변화의 여지가 보이지 않자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한복판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22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역사 전문가들은 그의 이러한 행동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기독교 신앙이 바탕이 됐다며 "자신의 돈을 아껴서 노동자들에게 풀빵을 사서 먹이는 등 이타적인 삶을 실천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 열사가 남긴 메모와 일기 곳곳에서 전 열사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묘비에도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이 새겨져 있다.
 
한국민중신학회 최형묵 회장은 "1970년 8월 9일 일기의 한 대목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며 "전태일 열사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태일 열사의 분신항거 직후 교계에서도 노동자들의 인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70년 11월 16일 기독교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각 교단 청년 대표 20명은 전태일 분신항거 관련 노동조건 개선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며칠 후인 11월 22일 새문안교회 대학부와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은 금식기도회를 갖고 추모 농성을 이어갔다. 12월 25일 연동교회에서는 합동 추모예배가 진행됐다.
 
한 줌의 햇빛을 누릴 권리를 외치며 사라져간 그날 이후 50년이 흘렀지만, 여전한 안전불감증과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노동자들의 희생은 현재진행형이다. 변화를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했던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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