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를 극복하고 한국화 거장이 된 운보 김기창(1913~2001)의 곁에는 삶의 동반자이자 예술적 동지였던 박래현(1920-1976)이 있었다.
 
▲일본 유학 시절 박래현의 수작인 <단장>. 단단하고 말끔한 인물과 정물의 묘사력이 돋보인다.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 총독상을 수상했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그동안 '운보의 아내'라는 수식어가 더 많이 붙었지만, 박래현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다.

섬유예술이 막 싹트던 1960년대 선보인 태피스트리와 다양한 동판화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1970년대에 선보인 판화 작업은 20세기 한국 미술에서 선구적인 작업으로 평가된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20세기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 미술가 박래현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 '박래현, 삼중통역자'를 29일부터 덕수궁관에서 개최한다.

전시는 회화, 판화, 태피스트리 등 작품 138점과 아카이브 71점으로 김기창 아내가 아닌 예술가 박래현의 성과를 조명한다.
 
▲박래현, '노점', 1956, 종이에 채색, 267x210cm(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박래현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43년 '단장'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받았다. 해방 후에는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한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1956년 대한미협과 국전에서 '이른 아침', '노점'으로 대통령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1960년대 김기창과 함께 동양화의 추상 실험을 이끌었고, 1967년 상파울루비엔날레 방문을 계기로 중남미를 여행한 뒤 뉴욕에 정착해 판화와 태피스트리로 영역을 확장했다. 7년 만에 귀국해 1974년 개최한 판화전은 한국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1976년 1월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했고, 대중과 평단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전시 제목 '삼중통역자'는 박래현이 자신을 표현한 말이다. 미국 여행에서 그는 여행가이드의 영어 설명을 구화와 몸짓으로 김기창에게 전달했다. 동행한 수필가 모윤숙에게 박래현은 자신이 '삼중통역자와 같다'고 했다.
 
▲박래현, '작품', 1970-1973, 태피스트리, 119.2x119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시에서 '삼중통역'은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라는 세 가지 매체를 넘나들었던 박래현의 예술 세계를 의미한다.

전시는 먼저 박래현이 일본에서 배운 일본화를 버리고 수묵과 담채로 당대의 미의식을 구현한 '현대 한국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단장', '이른 아침', '노점'이 한자리에서 공개된다.
또한 화가 김기창의 아내이자 네 자녀의 어머니로 살았던 박래현이 예술과 생활의 조화를 어떻게 모색했는지 살펴본다. 여성지에 실린 박래현의 수필에서도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했던 박래현을 만날 수 있다.

세계를 여행하고 이국 문화를 체험한 뒤 완성해 나간 독자적인 추상화도 전시된다. 1960년대 세계 여행을 다니며 박물관의 고대 유물들을 그린 스케치북 등이 독자적인 추상화의 완성 과정을 보여준다.
 
▲박래현, Retrospetion of Era, 1970-73, 종이에 판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끝으로 판화와 태피스트리의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동양화의 표현영역을 확장한 박래현의 마지막 도전을 조명한다. 타계 직전 남긴 동양화 다섯 작품, 판화와 동양화를 결합하고자 했던 시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소장가들의 적극적 협력으로 평소 보기 어려웠던 작품들이 대거 전시장으로 외출했다"며 "열악했던 여성 미술계에서 선구자로서의 빛나는 업적을 남긴 박래현 예술의 실체를 조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덕수궁관 전시는 내년 1월 3일까지이며, 내년 1월 26일부터 5월 9일까지는 청주관에서 전시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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