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기 칼럼] 한국 교회가 왜 비난을 받고 있나?

이정기 목사 (신나는교회 담임)

등록일:2020-09-27 10: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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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기 목사. ⓒ데일리굿뉴스
한국 교회가 사회로 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한국 교회가 비난을 받는 것은 너무 기독교적이어서가 아니다. 너무 종교적이어서가 아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않고, 기독교가 기독교답지 않아서 비난을 받는 것이다. 지금 기독교가 받고 있는 비난이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하는 비난인지, 그리고 무엇을 겨냥한 비난인지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비난을 받는 것인가? 아니다. 그 분의 인격을 표방하면서 전혀 그리스도의 인격을 찾아볼 수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비난을 받는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이 비난을 받는 것인가? 아니다. 사랑을 외면한 종교인들의 위선과 교만과 형식주의가 비난을 받는 것이다. 만고의 진리인 성경의 내용이 비난을 받는 것인가? 아니다. 성경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를 실천하지 못하는 교회의 잘못된 전통, 제도 및 교권이 비난을 받는 것이다.
 
현재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기독교가 비난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첫재. 진실성 결여 때문이다. 일부 확진 판정을 받은 목사와 신도들이 도주하거나 거짓말을 했다. 동선을 숨겼다가 집단 감염 사태들이 벌어졌다. 동선을 처음부터 확실하게 말했다면 추가적인 감염을 최소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말 하는 것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이다. 우리는 사소한 거짓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를 취하여, 국민 모두가 경제적인 피해를 무릎쓰고 참여했다. 그런데 일부 교회가 대면 예배를 강행하는 모습들을 보며 교회가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기독교의 근본 정신이 비난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비난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 정신을 교회가 거스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비난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조치가 맘에 들지 않는다.

방역에 힘써 달라고 협조를 당부해야 하는데 방역을 위한다는 이유로 비대면 예배를 교회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대통령은 일부 교회 문제를 두고 '방역조치를 방해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과격한 표현을 하고, 국무총리는 '구상권을 행사한다.'고 하고, 법무부 장관은 '법이 허용하는 모든 수단을 통해 엄정하게 조치한다.'고 하고, 여당 대표는 '방역을 회피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며, 마치 한국교회를 범죄 집단처럼 취급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강력히 대처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교회는 적극 참여해야 한다.
 
예수님은 마5:13,14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세상 밖의 소금이 아니다. 세상 밖의 빛이 아니다. 빛과 소금이 필요한 곳은 바로 세상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무대이다. 세상과 떨어져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생각할 수 없다. 마5: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세상속에 살면서 빛을 비추어야 한다.

착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22:39절에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한다.
 
눅10장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난다. 강도들이 옷을 벗기고 때리고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간다. 한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간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준다.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고 한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이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묻는다. 율법 교사가 대답한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사마리아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강도 만난자의 참된 이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셋째. 교회의 세속화 때문이다. 거룩은 교회의 본질이다. 주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다. 롬12:1절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 교회의 매력은 거룩이다. 세상과 달라야 한다. 구별되는 것이 영향력이다. 거룩함을 잃어버리면 그때부터 교회는 능력을 상실해 버린다.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세속화이다. 세속화란 세상과의 구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추구하는 것의 차이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가치관의 차이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교회는 말씀의 순수성을 유지하며 거룩한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 세속적인 것들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속에 바른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신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순결인 것처럼, 교회의 생명은 거룩이다.
 
기독교는 행함의 종교이다.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야고보 사도는 강조했다. 세례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치면서 강조한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였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이익도 없고, 구원도 없다.<약2:14>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약2:17> 갈6: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셨다.

 '내가 선한 것을 생각하고, 선한 것을 좋아하고, 선한 것을 지지하므로 나는 선한 사람이다.'그렇지 않다. 그 정도로는 선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바리새인들도 선한 것을 생각하고, 선한 것을 좋아하고, 선한 것을 지지했다. 그런데 주님께 책망만 들었다. 행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선을 이루기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다. 선을 행하되 포기하지 말자.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심는것도 내가 하는 것이고, 선을 행하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지만, 거두게 하시는 것은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선을 행하면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의 신뢰, 잃어버린 교회의 신뢰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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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영
2020-09-2811:26:09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된 그리스도 인으로써 주님의 진리를 전하며 살기원합니다. 아멘!

김현순
2020-09-2811:03:51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앎에서 끝나지않고 삶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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