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에 대해 수출규제를 강행한 지 1년이 지났다. 1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결과적으로 한국에 기술 자립을 시도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반면 일본은 수출기업들의 실적악화라는 역풍을 맞게 한 원인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에는 기술 자립을 시도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반면 일본 기업은 이익이 급감하면서 역풍을 맞았다.(사진제공=연합뉴스)

일본기업 이익 손실...역풍 맞은 일본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한국에 진출한 일본 주요 기업의 매출은 급감했다. 우리 국민들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일본 식음료와 자동차·부품, 생활용품 업종 등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한국에 진출한 일본 소비재 기업 31곳이 2019년 한국에서 올린 매출액은 전년 대비 평균 6.9% 줄었고, 영업이익은 71.3%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건 식음료 업종이다.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19.5% 감소했고,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적자로 전환했다. 아사히 맥주로 유명한 롯데아사히주류는 매출이 50.1%(624억 원) 감소했고, 308억 원의 영업 손실이 났다. 즉석 수프 ‘보노’로 알려진 한국아지노모의 지난해 매출도 2018년 대비 34.2%, 영업이익은 70.6% 감소했다.

자동차·부품(-16.8%) 매출 감소도 상당했다. 혼다코리아의 작년 매출은 전년 대비 22.3%(1천41억 원) 줄었고, 146억 원의 순손실을 냈다.

이밖에 의류·생활용품 타격도 컸다. 의류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1.3%(4천 439억 원) 급감했고, 2천 402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일본 의류브랜드 데상트코리아(-15.3%), 세탁세제 ‘비트’를 판매하는 라이온코리아(-12.9%), 생활용품 브랜드 ‘무지’를 운영하는 무인양품(-9.8%)도 매출이 일제히 줄었다. 화장품업종(-7.3%), 유통업종(-3.4%)도 위축됐다.

한국엔 소·부·장 기술 자립 기회로 작용

일본이 고전하는 동안 한국은 단기간에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의 국산화, 해외 판매사 다변화라는 성과를 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핵심소재인 3개 품목(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플루오린폴리이미드)의 일본 의존도가 90%나 됐던 국내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일본에 의존했던 공급처 다변화와 국산화에 빠르게 뛰어들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소·부·장 산업에서 일본 의존도를 낮추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는 별 차질이 생기지 않았고, 올해 1∼5월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 비중은 12%로 작년 동기의 44%보다 줄었다”고 밝혔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기판인 실리콘웨이퍼에 그려진 회로도에 따라 기판을 깎아내는 식각(蝕刻) 공정에 쓰인다.

핵심소재 생산업체 솔브레인·램테크놀로지는 이미 지난해 수출규제 조치 직후 공장 증설을 통해 액체 불화수소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SK머티리얼즈는 해외 의존도가 100%였던 기체 불화수소의 국산화에 성공해 순도 99.999%의 양산을 시작했다. 연간 15t 규모로 출발해 3년 안에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국내산 핵심소재를 제품에 반영하고, 해외 수입 경로를 다변화하는 성과도 있었다.

삼성, LG 등 디스플레이업계는 1년 만에 일본산 액체 불화수소를 100% 국내기업 제품으로 대체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산 제품에 액체 불화수소 사용 비중을 늘렸고, 기체 불화수소는 미국 등을 통해 수입을 다변화했다.

5㎚ 이하의 초미세 공정에 쓰이는 EUV(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 당장 국산화하지 못했으나 산업통상자원부가 듀폰과 협의해 투자를 유치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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