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기도 운동을 위하여 War Room운동(골방기도, 개인 공간을 기도 장소화해 깊이 기도하는 운동)을 펼치고, 일찌감치 바리스타로서 지역 사회를 위한 카페 문화를 활발히 행하던 중, 이제는 작지만 성실한 목회로 노년의 부친을 복음으로 영접하여 세례를 베푼 목사. 최근에는 ‘방스팡세(Bang’s Pensees)‘라는 이름으로 SNS 매일 QT를 통해 신앙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목사 그가 방석운 목사(용인 하베스트교회 담임-초교파)이다.

 
 ▲세례 받던 날 고 방덕수 성도의 모습 ⓒ데일리굿뉴스
그는 은사이신 이강천 목사(바나바훈련원장)로부터 긍정 영향을 받아 공동체 활동에도 열심이다. 그 부인과 영애는 각각 간호사 출신으로, 영적 돌봄에 헌신한 가장과 육적 케어에 헌신하는 사회적 봉사 가족이기도 하다. 그러한 그에게 부친 고 방덕수 성도는 오랜 기간 기도의 대상이었다.

지난 27일, 방석운 목사는 그의 개인 커뮤니티를 통해 부친의 부고를 냈다. 6·25 발발 시 19세로 홀로 월남한 그의 부친의 부음이었다. 향년 89세. 용인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안치 후 대전 현충원 안장 예정이다.

고인은 함경남도 북청군 덕성면 죽전리 출신이었으나 월남 후 전쟁 중 국군에 장교로 입대해 사지를 넘나들었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살았지만 평생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 국가에 충성되고 강직한 성품이었으나 가정에서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녀들은 먼저 복음을 영접하였고 크리스천 가족들로 번성하게 됐지만, 고인은 여전히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자신을 가장 의롭게 여기며 사신 것이다.

그러던 그가 83세 되던 해에 교회에 출석했다. 이어 2년 전에는 둘째 자녀인 방석운 목사의 집례로 세례까지 받았다. “아버지의 확신에 찬 아멘’은 온 가족이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 감사해 하는 방석운 목사는, “평생 그리워한 고향 땅 북한의 죽전리 대신 인생의 마지막을 이곳 용인의 죽전동에서 마치게 하신 하나님의 기가 막힌 계획이었습니다”라며 부친의 별세를 은혜로 승화시켰다.
 
 ▲故 방덕수 성도의 평소 환한 모습을 영정으로 담다 ⓒ데일리굿뉴스

방 목사의 연령대 세대가 대체로 그러하듯, 고 방덕수 성도도 생전에 자녀들에게 ‘사랑한다’는 언어 표현을 전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자신이 교회 출석과 복음을 영접한 이후로는 그 안색이 달라졌고, 늘 평안한 모습이셨다고 한다. 하루는 “고맙다. 미안하다” 하시던 이야기가 ‘사랑의 표현’이 되었다는 방 목사는, “고인의 최근 편안해 하셨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자 평상복 차림을 영정 사진으로 꾸몄습니다”라며 변화된 부친의 모습을 전했다.
 
 ▲짧은 만남 잠시 유가족들이 한자리에 하다 ⓒ데일리굿뉴스

노년의 행복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노년층의 급속한 증가로 전국적으로 심화되는 노령사회이기에, 이번 아들 목사의 세례 집례와 아버지 성도의 수세 이야기는 물질적 행복이나 유한한 지상에서만의 행복이 아니다.

영원한 본향이 있음을 마지막까지 증거 하는 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사랑이나, 그 자녀들의 권면을 받아 늦으나마 복음을 영접함으로써 자녀들에게도 최고의 선물인 믿음을 남겨 놓은 ‘선한 사례’가 됐다. 복음증거는 그 시기에 있어 늦은 때는 없음을 보여 주는 ‘긍정 사례’가 됐다
 
세례일에 성도들과 함께 ⓒ데일리굿뉴스

“야곱처럼 단독으로 피난 온 한 청년을 결국에는 70년 만에 영원한 당신의 땅으로 이끄시고, 삼대에 이르는 온 가족 복음화의 크리스천 가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주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하신 말씀대로 이뤄졌습니다”라는 문안의 글을 남긴 방석운 목사의 커뮤니티 포스팅은 지금도 SNS에서 O2O를 무론하고 잔잔히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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