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구 선교사 2020-06-2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선교지의 소식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첫 번째 변화는 선교 현장에 남아 있는 선교사들의 움직임이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는 선교사 자신도 감염이나,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진원지가 될 것을 염려해 출입을 자제했다. 하지만 선교 현장에서 현지인 성도들의 어려움이 들려오고, 이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선교사들이 현지인들과 천 마스크를 만들어 공급하거나, 식량을 사 이웃들에게 나누는 소식들을 접하게 된다. 선교사들이 전하는 소식에 의하면,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많은 선교현지 사람들이 고마워한다고 한다. 지금은 구제와 방역의 초기 단계로 상황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소식들이 많이 들린다. 한국교회는 이럴 때일수록 선교사들의 기도편지와 소식들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선교사 자신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현지인들의 어려움을 돌보며,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와 후원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둘째는 선교사역이 코로나19로 인해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중단되면서 초기에는 당황하며 초조해하던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멈춰진 순간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더욱 굳건하게 하고, 선교사로서 그동안 미뤘던 자기 계발에 많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제한이 많은 지금의 상황에서 선교사를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들을 활성화하고, 가능한 지원 방법 연구 및 선교사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 바라기는 여러 선교관련 단체에서 진행되는 선교사를 위한 교육이 다양하게 공유돼 많은 선교사들이 양질의 많은 강좌들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많은 정보와 교육의 기회가 있더라도, 선교현장의 선교사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적절한 교육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를 위해 선교교육을 담당하는 단체들과 사역자들이 힘을 모아 함께 연구하고, 공유 플랫폼을 구성해 선교사들이 쉽게 자신들에게 맞는 선교교육을 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로 많은 선교사들은 ‘코로나19 이후 선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언론과 방송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앞 다퉈 ‘코로나19 이후’에 대한 예측을 하고 있다. 각 분야에서 코로나19 이후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들의 발 빠른 움직임에 비하면, 현장에서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많은 선교사들은 이를 대비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러기에 선교사를 파송·후원·지원하는 단체들이 함께 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이를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착실히 준비해 코로나19 시대를 이기는 미래선교의 방향과 전략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서는 이를 위해 ‘코로나19 비상대책 계획’을 수립하고, 6월 중순부터는 ‘코로나19 이후 선교’를 위한 포럼을 중장기적 계획을 준비 중이다. 많은 미래 이슈들을 선교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새로운 시대 적합한 선교전략을 제시하려고 한다. 또한 다양한 주제의 ‘미니특강’과 보다 많은 선교사, 후원교회와 후원자, 선교를 위한 기관 단체들과의 다양한 ‘좌담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코로나19의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선교를 위한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김근수 총장 2020-06-27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우리는 열심히 현시대를 살아가지만, 사실상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함은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일관됩니다(마16:2). 오늘의 말씀은 이 시대를 경고하며 무뎌진 시대감각을 일깨워줍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시기에 관해 “자다가 깰 때”라 규정합니다(행1:11).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자다가 깰 때”란 어떤 때입니까? 새 시대가 동터 오는 때입니다. “자다가 깰 때”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뜻합니다. 성경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기점으로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롬13:11). 죽음 이후의 영생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종말이든 우주의 종말이든 깨어서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종말에 대한 예조들로는 이단의 창궐, 전쟁의 발발, 재난의 발생, 교통발달, 도덕적 타락, 서로 간의 배신, 사랑이 식어짐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조들을 비추어 영적으로 매순간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질 새 시대는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습니다(롬13:11). 시대의 종말도 가까워왔지만, 개인의 종말은 우리의 죽음과 함께 찾아오기에 참으로 임박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임박한 종말로부터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에 이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깨어 우리의 믿음을 살펴보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 말씀합니다(눅18:8). 우리는 믿음 안에 거하고 믿음을 잃지 않도록 매순간 말씀 앞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깨어있지 못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 동일하게 우리의 믿음 없음을(막4:40), 믿음이 부족함(마6:30)을 엄히 책망하실 것입니다. 반대로 믿음 안에 거하면 “믿음이 큰 자(마15:28)”로 칭찬하실 것입니다.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는 것 같이 겨우 구원받는 부끄러운 구원(고전3:15)이 아닌 은혜 받을 만한 때에 주님의 은혜를 흡족히 받아 풍족한 구원을 받도록 합시다(고후6:2). 동시에 어둠의 일을 벗어버릴 때 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워왔습니다. 이제는 어둠의 일을 벗어버릴 때입니다(롬13:12). 구체적으로 어둠의 일이란 무엇입니까? 어둠에 일에 대해 본문 13절은 상세히 기록합니다. 방탕, 술취함 등으로 쾌락의 자리에 거하는 일, 음란, 호색 등으로 음행의 자리에 거하는 일, 다툼, 시기 등으로 분쟁의 자리에 거하는 일이 바로 어둠의 일입니다(롬13:13).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빛의 갑옷을 입을 때입니다(롬13:12). 빛의 갑옷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심으로 그의 의의 옷을 입는 것은 어둠의 일을 청산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녀들이 바로 빛의 아들입니다(살전5:5). 빛된 자녀들이 되려면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깨어 의를 행하여야 합니다(고전15:34).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새사람을 덧입는 것만이 인생의 참 소망입니다(엡4:22). 또한, 이 시기는 사랑이 식어지는 때입니다. 종말의 때에는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집니다(마24:1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평생 다 갚아도 갚지 못할 사랑을 주님께 빚졌습니다. 우리는 이를 잊지 말고, 날마다 그 사랑을 더욱 경험하며 받은 사랑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전해주는 핵심적인 일은 바로 전도함으로 복음의 빛을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오늘의 때는 바로 사랑해야 할 때요, 전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점점 더 가까워옵니다. 칠흑 같은 밤이 점점 깊어질수록 새 아침의 해는 동터옵니다. 이를 기억함으로 매순간 영적으로 자다가 깰 때 입니다.

김명전 GOODTV·데일리굿뉴스 대표이사 2020-07-06

일본의 아베 총리가 G7(세계주요7개국) 정상회의에 한국을 초청한 것을 반대하고 나섰다. G7 개최국인 미국이 정상회의를 9월로 연기하면서 한국을 초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밝힌 초대 배경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재 “G7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둘은 “G7 형태는 시대에 뒤떨어져 (1973년 출범) 한국, 러시아, 호주, 인도를 초청하고 싶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코로나19 책임문제, 무역전쟁, 홍콩보안법 등 논의에서 중국을 견제할 친 서방그룹의 확장에 있다. 그럼에도 주최국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트럼프의 ‘푸들’이라 불렸던 아베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말이어서 힘이 빠졌다 보는 걸까. 아니면 본디 ‘일본 스타일’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난감하게 됐다. 아베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베가 사면초가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30% 밑으로 떨어지는 일까지 생겼다. 일본인 68%가 신뢰하지 않는다는 조사까지 나왔다. 2012년 12월 재집권 이후 2018년까지는 비교적 순항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도 밀월시절이었다. 2018년부터 미국의 외교정책이 중국과 한반도, 북한 핵 문제에 집중되면서 관심 밖으로 밀렸다. 지난해 일본 참의원 선거는 반한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 올려 보수 세력의 이탈을 막으며 선방했다. 여기까지다. 지난해 7월, 아베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 이후 악재가 겹치고 있다. 코로나19로 아베의 야심작 2020‘도쿄올림픽이 무산됐다. 코로나 방역도 실패했다. 경제도 최악의 상황이다. 2분기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20% 이상 급락할 전망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악이다. 궁지에 몰렸다. 정치적 돌파구를 찾고 있다. 아베는 10월 쯤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하려 한다. 한국을 선거용 제물로 삼으려는가? 국제경제를 논할 때 종종 ‘일본화(Japanification)’라는 용어를 쓴다. 그 뜻은 일본경제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디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져 20년 이상 장기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용어가 되었다. 현재도 그 늪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30년 동안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엔저를 통한 수출 지원, 채권과 주식 등 외상을 치료하는 데 몰두했다. 경제정책은 경직되어 있고, 구조조정은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채다. 코로나19로 세계경제가 위축되고, 일본에 활력을 일으키려던 올림픽이 무산되면서 출구를 잃었다.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도 일본의 타격이 더 크다. 한국의 불매운동으로 토요타와 닛산은 영업이익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닛산은 16년 만에 철수한다. 1위 일본 맥주는 완전히 한국시장을 잃었다. 정치 실패를 경제로 가리려다 일어난 대 참사다. ‘일본화’가 이제 ‘일본의 실패’로 대체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우리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 할 만큼 괜찮은가? 그렇지만은 않다. 일본이 한국 수출을 규제한 반도체 소재는 수입이 더 늘었다. 규제 당시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의존도는 44%, 포토레지스트는 92%였다. 1년이 지난 현재 포토레지스트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9%, 플루오린폴로아미드는 7.4% 늘었다. 불화수소만 12.3%로 낮아졌다. 물론 기초 소재 산업을 일으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더 속도를 내야 한다.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된다. 언제, 어떻게 장애물을 놓을지 알 수 없다. 한국의 G7 초청 결과를 주목한다. 이번은 한국이 미국의 초청을 받은 입장이라 큰 부담이 없다. 중국은 트럼프의 결정을 반대한 아베에 고마워할 것이다. 트럼프의 대응이 궁금하다. 미국 전국가안전보좌관 볼턴 회고록에도 아베가 북미관계 개선, 남북관계 진전을 반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에 유익한 것은 모두 반대다. 일본을 앞서는 길밖에 없다. 그동안 다소 부진했던 경제성장 전략을 보완할 기회다. 급선무는 규제완화다. 노동개혁, 기업구조조정, 스타트업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 구조조정은 지금이 적기다. 사양산업과 경쟁력 없는 부실기업을 재정비해야 한다. 코로나가 상황을 만들어 주고, 아베가 신발 끈을 고쳐 매라고 독려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행운이다. 분발하자. 한국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일본이 발목을 잡더라도 한국은 손목을 잡아 줄 수 있는 그때가 다가왔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좀 더 품격 있고 어른스러워져야 한다. 땡큐, 아베!

여주봉 목사 2020-06-28

필자는 지난번부터 영적 지도자의 임무를 살펴보고 있다. 영적 지도자의 임무는 사람들을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인도하는 것이며, 영적 지도자들은 성령님께 의존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영적 지도자의 임무에 대하여 세 가지를 더 살펴보려고 한다. 영적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책임을 진다 (accountable to God). 영적 리더는 하나님께 대한 예민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영적 리더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인도하는 책임을 가진다.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는 그는 영적 리더로서의 그의 임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영적 리더는 필요한 것을 인식하고,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고민하고, 애통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주님의 지혜와 인도를 구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섬기고 순종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바란다. 특히 영적 리더는 따르는 자들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따르는 사람들을 탓하는 것은 영적 리더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오늘날 심지어 목회자들, 주일학교 교사나 소그룹 리더들 중에도 성도들을 탓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자기의 잘못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잘못된 태도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회개해야 할 죄다. 또한 그러한 태도는 반드시 치유되어야 할 쓴 뿌리다. 영적 리더가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그러한 쓴 뿌리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흘러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그 리더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그 쓴 뿌리가 반드시 치유되어야 한다. 영적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총리 요셉과 총리 다니엘의 삶에서 이 부분을 잘 볼 수 있다. 모든 성도는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의제를 발견하고 자신이 먼저 그 일에 헌신할 뿐 아니라, 그 주변의 사람들을 그리로 인도한다는 의미에서 영적 리더다. 특히 최근 들어 일터 사역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로잔 운동을 중심으로 모든 성도는 일터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알아,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섬겨야 한다는 운동이 일고 있다. 예수님의 복음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적 리더는 하나님의 사람들뿐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만 하더라도 세계 500대 기업에 속하는 기업의 총수들 60명 이상을 대상으로 자주 리더십 컨퍼런스를 인도한다고 한다. 영적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의제를 위해 일한다. 영적 리더십의 가장 큰 장애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보다 자기의 의제를 추구하는 것이다. 소위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지 않는 영적 리더들은 자기가 세운 계획과 목표를 위해 자기 방식대로 일하며, 어떤 일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결정권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공격적인 목표들을 세우고 위대한 꿈을 꾸고, 사람들에게 소위 비전을 제시하고 나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의제에 동의하셔서 그들을 도와주시고 복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것은 영적 리더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사실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역사를 가장 가로막는 것 중 하나다.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을 뒷받침하시는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그분은 오직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것을 행하셨다(요 5:17, 19-20). 예수님께서 반복적으로 “내 아버지의 일”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예수님께서 본, 문자 그대로 아버지의 일이었다. 영적 리더는 교회를 위한 것이건 회사를 위한 것이건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 그는 하나님의 의제를 보고 그 일에 삶을 드리면서, 사람들을 그리로 인도한다. 영적 리더는 심지어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는다. 당연히 하나님은 사람들의 정당한 필요를 채우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영적 리더의 주된 관심사는 사람들의 필요가 아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의제를 위해서 일한다. 예수님의 삶을 보라. 예수님은 누구보다 사람들을 사랑하셨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의제를 위해 사셨다(막 1:35-38).

김명전 GOODTV·데일리굿뉴스 대표이사 2020-07-06

일본의 아베 총리가 G7(세계주요7개국) 정상회의에 한국을 초청한 것을 반대하고 나섰다. G7 개최국인 미국이 정상회의를 9월로 연기하면서 한국을 초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밝힌 초대 배경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재 “G7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둘은 “G7 형태는 시대에 뒤떨어져 (1973년 출범) 한국, 러시아, 호주, 인도를 초청하고 싶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코로나19 책임문제, 무역전쟁, 홍콩보안법 등 논의에서 중국을 견제할 친 서방그룹의 확장에 있다. 그럼에도 주최국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트럼프의 ‘푸들’이라 불렸던 아베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말이어서 힘이 빠졌다 보는 걸까. 아니면 본디 ‘일본 스타일’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난감하게 됐다. 아베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베가 사면초가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30% 밑으로 떨어지는 일까지 생겼다. 일본인 68%가 신뢰하지 않는다는 조사까지 나왔다. 2012년 12월 재집권 이후 2018년까지는 비교적 순항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도 밀월시절이었다. 2018년부터 미국의 외교정책이 중국과 한반도, 북한 핵 문제에 집중되면서 관심 밖으로 밀렸다. 지난해 일본 참의원 선거는 반한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 올려 보수 세력의 이탈을 막으며 선방했다. 여기까지다. 지난해 7월, 아베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 이후 악재가 겹치고 있다. 코로나19로 아베의 야심작 2020‘도쿄올림픽이 무산됐다. 코로나 방역도 실패했다. 경제도 최악의 상황이다. 2분기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20% 이상 급락할 전망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악이다. 궁지에 몰렸다. 정치적 돌파구를 찾고 있다. 아베는 10월 쯤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하려 한다. 한국을 선거용 제물로 삼으려는가? 국제경제를 논할 때 종종 ‘일본화(Japanification)’라는 용어를 쓴다. 그 뜻은 일본경제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디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져 20년 이상 장기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용어가 되었다. 현재도 그 늪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30년 동안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엔저를 통한 수출 지원, 채권과 주식 등 외상을 치료하는 데 몰두했다. 경제정책은 경직되어 있고, 구조조정은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채다. 코로나19로 세계경제가 위축되고, 일본에 활력을 일으키려던 올림픽이 무산되면서 출구를 잃었다.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도 일본의 타격이 더 크다. 한국의 불매운동으로 토요타와 닛산은 영업이익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닛산은 16년 만에 철수한다. 1위 일본 맥주는 완전히 한국시장을 잃었다. 정치 실패를 경제로 가리려다 일어난 대 참사다. ‘일본화’가 이제 ‘일본의 실패’로 대체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우리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 할 만큼 괜찮은가? 그렇지만은 않다. 일본이 한국 수출을 규제한 반도체 소재는 수입이 더 늘었다. 규제 당시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의존도는 44%, 포토레지스트는 92%였다. 1년이 지난 현재 포토레지스트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9%, 플루오린폴로아미드는 7.4% 늘었다. 불화수소만 12.3%로 낮아졌다. 물론 기초 소재 산업을 일으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더 속도를 내야 한다.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된다. 언제, 어떻게 장애물을 놓을지 알 수 없다. 한국의 G7 초청 결과를 주목한다. 이번은 한국이 미국의 초청을 받은 입장이라 큰 부담이 없다. 중국은 트럼프의 결정을 반대한 아베에 고마워할 것이다. 트럼프의 대응이 궁금하다. 미국 전국가안전보좌관 볼턴 회고록에도 아베가 북미관계 개선, 남북관계 진전을 반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에 유익한 것은 모두 반대다. 일본을 앞서는 길밖에 없다. 그동안 다소 부진했던 경제성장 전략을 보완할 기회다. 급선무는 규제완화다. 노동개혁, 기업구조조정, 스타트업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 구조조정은 지금이 적기다. 사양산업과 경쟁력 없는 부실기업을 재정비해야 한다. 코로나가 상황을 만들어 주고, 아베가 신발 끈을 고쳐 매라고 독려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행운이다. 분발하자. 한국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일본이 발목을 잡더라도 한국은 손목을 잡아 줄 수 있는 그때가 다가왔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좀 더 품격 있고 어른스러워져야 한다. 땡큐, 아베!

김근수 총장 2020-06-27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우리는 열심히 현시대를 살아가지만, 사실상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함은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일관됩니다(마16:2). 오늘의 말씀은 이 시대를 경고하며 무뎌진 시대감각을 일깨워줍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시기에 관해 “자다가 깰 때”라 규정합니다(행1:11).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자다가 깰 때”란 어떤 때입니까? 새 시대가 동터 오는 때입니다. “자다가 깰 때”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뜻합니다. 성경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기점으로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롬13:11). 죽음 이후의 영생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종말이든 우주의 종말이든 깨어서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종말에 대한 예조들로는 이단의 창궐, 전쟁의 발발, 재난의 발생, 교통발달, 도덕적 타락, 서로 간의 배신, 사랑이 식어짐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조들을 비추어 영적으로 매순간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질 새 시대는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습니다(롬13:11). 시대의 종말도 가까워왔지만, 개인의 종말은 우리의 죽음과 함께 찾아오기에 참으로 임박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임박한 종말로부터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에 이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깨어 우리의 믿음을 살펴보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 말씀합니다(눅18:8). 우리는 믿음 안에 거하고 믿음을 잃지 않도록 매순간 말씀 앞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깨어있지 못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 동일하게 우리의 믿음 없음을(막4:40), 믿음이 부족함(마6:30)을 엄히 책망하실 것입니다. 반대로 믿음 안에 거하면 “믿음이 큰 자(마15:28)”로 칭찬하실 것입니다.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는 것 같이 겨우 구원받는 부끄러운 구원(고전3:15)이 아닌 은혜 받을 만한 때에 주님의 은혜를 흡족히 받아 풍족한 구원을 받도록 합시다(고후6:2). 동시에 어둠의 일을 벗어버릴 때 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워왔습니다. 이제는 어둠의 일을 벗어버릴 때입니다(롬13:12). 구체적으로 어둠의 일이란 무엇입니까? 어둠에 일에 대해 본문 13절은 상세히 기록합니다. 방탕, 술취함 등으로 쾌락의 자리에 거하는 일, 음란, 호색 등으로 음행의 자리에 거하는 일, 다툼, 시기 등으로 분쟁의 자리에 거하는 일이 바로 어둠의 일입니다(롬13:13).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빛의 갑옷을 입을 때입니다(롬13:12). 빛의 갑옷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심으로 그의 의의 옷을 입는 것은 어둠의 일을 청산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녀들이 바로 빛의 아들입니다(살전5:5). 빛된 자녀들이 되려면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깨어 의를 행하여야 합니다(고전15:34).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새사람을 덧입는 것만이 인생의 참 소망입니다(엡4:22). 또한, 이 시기는 사랑이 식어지는 때입니다. 종말의 때에는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집니다(마24:1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평생 다 갚아도 갚지 못할 사랑을 주님께 빚졌습니다. 우리는 이를 잊지 말고, 날마다 그 사랑을 더욱 경험하며 받은 사랑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전해주는 핵심적인 일은 바로 전도함으로 복음의 빛을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오늘의 때는 바로 사랑해야 할 때요, 전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점점 더 가까워옵니다. 칠흑 같은 밤이 점점 깊어질수록 새 아침의 해는 동터옵니다. 이를 기억함으로 매순간 영적으로 자다가 깰 때 입니다.

여주봉 목사 2020-06-28

필자는 지난번부터 영적 지도자의 임무를 살펴보고 있다. 영적 지도자의 임무는 사람들을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인도하는 것이며, 영적 지도자들은 성령님께 의존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영적 지도자의 임무에 대하여 세 가지를 더 살펴보려고 한다. 영적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책임을 진다 (accountable to God). 영적 리더는 하나님께 대한 예민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영적 리더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인도하는 책임을 가진다.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는 그는 영적 리더로서의 그의 임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영적 리더는 필요한 것을 인식하고,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고민하고, 애통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주님의 지혜와 인도를 구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섬기고 순종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바란다. 특히 영적 리더는 따르는 자들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따르는 사람들을 탓하는 것은 영적 리더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오늘날 심지어 목회자들, 주일학교 교사나 소그룹 리더들 중에도 성도들을 탓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자기의 잘못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잘못된 태도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회개해야 할 죄다. 또한 그러한 태도는 반드시 치유되어야 할 쓴 뿌리다. 영적 리더가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그러한 쓴 뿌리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흘러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그 리더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그 쓴 뿌리가 반드시 치유되어야 한다. 영적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총리 요셉과 총리 다니엘의 삶에서 이 부분을 잘 볼 수 있다. 모든 성도는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의제를 발견하고 자신이 먼저 그 일에 헌신할 뿐 아니라, 그 주변의 사람들을 그리로 인도한다는 의미에서 영적 리더다. 특히 최근 들어 일터 사역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로잔 운동을 중심으로 모든 성도는 일터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알아,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섬겨야 한다는 운동이 일고 있다. 예수님의 복음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적 리더는 하나님의 사람들뿐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만 하더라도 세계 500대 기업에 속하는 기업의 총수들 60명 이상을 대상으로 자주 리더십 컨퍼런스를 인도한다고 한다. 영적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의제를 위해 일한다. 영적 리더십의 가장 큰 장애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보다 자기의 의제를 추구하는 것이다. 소위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지 않는 영적 리더들은 자기가 세운 계획과 목표를 위해 자기 방식대로 일하며, 어떤 일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결정권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공격적인 목표들을 세우고 위대한 꿈을 꾸고, 사람들에게 소위 비전을 제시하고 나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의제에 동의하셔서 그들을 도와주시고 복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것은 영적 리더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사실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역사를 가장 가로막는 것 중 하나다.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을 뒷받침하시는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그분은 오직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것을 행하셨다(요 5:17, 19-20). 예수님께서 반복적으로 “내 아버지의 일”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예수님께서 본, 문자 그대로 아버지의 일이었다. 영적 리더는 교회를 위한 것이건 회사를 위한 것이건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 그는 하나님의 의제를 보고 그 일에 삶을 드리면서, 사람들을 그리로 인도한다. 영적 리더는 심지어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는다. 당연히 하나님은 사람들의 정당한 필요를 채우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영적 리더의 주된 관심사는 사람들의 필요가 아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의제를 위해서 일한다. 예수님의 삶을 보라. 예수님은 누구보다 사람들을 사랑하셨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의제를 위해 사셨다(막 1:35-38).

정재영 교수 2020-06-26

교회의 위기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반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교회는 유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3개월 이상 예배당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온라인 예배나 가정 예배로 대체되면서 교회의 존재 이유마저 흔들리고 있다고 느낄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교회들을 중심으로 ‘조용한 전파’가 발생하면서 교회가 다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초기에는 신천지라는 이단이 주목을 받았고 정통 교회들은 그것을 잘못된 신앙관에 기초한 탓이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정통 교회들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고 있다. 특히 불교와 천주교가 법회와 미사를 중단한 것과 비교되며 개신교회는 가장 사회의식이 부족한 종교로 전락한 실정이다. 현장 예배가 중단되면서 전통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던 교회들이 더욱 타격을 크게 받고 있다. 주일 성수는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만 지켜지는 것이라고 여겨서 출장을 가더라도 주일을 껴서 가면 안 되고 심지어 명절에조차 본교회에서 주일을 지키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전염병 때문에 주일 성수를 못하는 상황에 적잖이 당황하게 됐다. 마찬가지로 헌금은 미리 새 돈으로 준비하여 주일 예배 시간에 헌금주머니나 헌금함에 넣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예배당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면서 헌금 생활도 원천적으로 차단을 당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온라인 계좌를 알려주고 헌금을 하라고 안내하기도 뭔가 석연치 않게 여겨졌다. 그러나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그 의미를 중시하던 교회들은 코로나 이전에도 온라인으로 예배를 중계하거나 예배 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출장을 가거나 몸이 아파서 예배당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에 사용하도록 해 이번 상황에 받는 충격이 덜했다. 또한 이미 온라인 계좌로 헌금을 내도록 하고 있는 경우에도 이전과 다름없이 어렵지 않게 헌금을 드릴 수 있었다. 필자가 10여 년 전에 헌금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에서 일반 성도들은 온라인이나 신용카드로 헌금을 드리는 것에 80%가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목회자들은 과반수가 찬성하여 의식의 차이를 나타냈었다. 일반 성도들이 목회자들보다 더 전통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목협’이 조사한 결과에서는 일반 성도들도 온라인 헌금에 대해서 과반수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의 시간 차이도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기존의 방식으로 헌금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인식의 변화가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본질과 비본질의 구별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활동 중에는 신앙의 본질에 해당하는 요소들과 본질적이지 않은 요소들이 혼재해 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신앙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그 예배의 형식은 다양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엄숙한 예배를 드릴 수도 있지만 찬양 중심의 열린 예배를 드릴 수도 있고 뜨거운 성령 집회를 할 수도 있다. 한 세대 전만해도 교회당에서 기타를 치는 것은 쉽게 용납될 수 없었지만, 요즘에는 전자 기타를 칠 뿐만 아니라 강대상 바로 옆에 드럼 세트가 놓여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사실 피아노가 처음 교회당에 들어올 때에는 그 소리가 가볍고 경망스러워서 예배 악기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에 교회를 개척하면 피아노 헌금을 가장 먼저 할 정도로 인식이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주일에 예배를 교회당에서 드려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전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성경에 초대교회는 교회당 건물에서 시작되지 않았고 가정에서 시작됐다. 한국의 초기 교회 역시 건물이 지어지기 전에는 집에서 모였었다. 물론 지금과 같이 제도화 되어서 건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잘못 되었거나 비성경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반대로 교회당에서 모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이 잘못 되었거나 비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가정교회의 전통을 따라서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들도 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 그리고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교회당에 모이지 않고 온라인 예배로 대체하거나 가정 예배로 전환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훼손하면 안 되는 본질적인 요소이고 어떤 것은 수정이나 보완이 가능한 비본질적인 요소인지 대해서 숙고가 필요하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코로나 19는 교회에 큰 위협이 되고 있지만 이제는 이것을 변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신앙의 본질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신앙생활이나 관행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던 것으로부터 신앙의 본질을 이해하고 본질에 충실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전환할 필요가 있다. 예배당에 모이기를 힘쓰는 것만큼이나 세상에 보냄 받은 자로서 신앙을 실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이다. 예배당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교세를 자랑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교회는 세상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자기들끼리만 만족해하는 폐쇄적인 동질집단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교회 역사에서도 나타난다.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는 ?기독교의 발흥?이라는 그의 책에서 신흥종교였던 초기 기독교가 어떻게 신자들을 끌어들이면서 주요 종교로 성장하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염병이 돌던 당시에 이교도들은 전염병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자신의 신앙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염병으로부터 도피했고 환자들도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전염병을 이해했고, 이웃 사랑의 규범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염병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돌보았다. 당시에는 의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돌봄만으로도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되었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위대한 종교로 성장하는 데 주요 요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중세 기독교는 달랐다. 거대 왕국을 이룬 중세 기독교는 전염병에도 사람들을 교회당에 모았다가 오히려 전염병이 급속하게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사람들은 전염병의 위협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교회로 모인 것인데 이 행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돌보기보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고 헌신한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은 전염병 때문에 고통을 받고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이웃들을 보고 마음 아파하고 그들을 돕기보다 좁은 의미의 신앙생활에 더 매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안타깝다. 필자가 몇 년 전에 미국에 갔을 때 만났던 한 미국인 목사는 미국 교회들이 지나치게 건물 중심의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에 실망해 예수님의 본을 따라 온 마을 다니며 소외당한 이웃과 사회 약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일별로 다른 장소를 빌려서 빈곤층의 사람들과 공동 식사를 나누며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들이 자신의 성도이며 여기가 자기가 목회하는 교회라고 말하였다.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어 교회에 대한 새로운 발상을 보여주었다. 이제 한국 교회도 변화가 필요하다. 코로나 19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교회가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여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정기 목사 2020-06-25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은혜 받고, 믿음으로 축복 받는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믿음 떨어지면 축복도 떨어진다. 믿음이 더해지면 축복도 더해진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눅22:32> 사탄이 욥을 시험한다. 물질을 빼앗아 가고, 자녀를 빼앗아 가고, 건강을 빠앗아 간다. 궁극적인 목적은 믿음을 빼앗아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믿음을 지켜 갑절의 복을 받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믿음 보시기를 원하신다. 믿음 보시고 축복하시기 원하신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선포할 때마다 기적이 일어났다. 문제가 해결되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는자에게는 역사가 일어난다. 롬14:23절에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말씀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도 믿음으로 해야 한다. 찬양도 믿음으로 해야 한다. 구제도 믿음으로 해야 한다. 금식도 믿음으로 해야 한다. 헌금도 믿음으로 해야 한다. 봉사도 믿음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13:5절에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다. 우리에게 믿음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믿음이 흔들리면 인생도 흔들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보라. 믿음이 흔들리자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는다. 가롯유다를 보라. 믿음이 흔들리자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 넘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라. 믿음이 흔들리자 성령을 속인죄로 죽는다. 믿음이 흔들리면 인생 전체가 흔들린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었던 요셉, 욥, 다니엘, 다니엘의 3친구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인생도 흔들리지 않았다. 믿음으로 시험을 통과한 후에는 더 큰 축복의 열매가 있었다. 사람이 낙심하고 불안해 하는 것은 다 비슷하다. 그 뿌리가 똑같다. 암담한 현실, 무능한 자아, 그리고 예전과 같지 않은 현재의 초라한 모습, 이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낙심하게 하고 불안하게 한다. 우리의 믿음까지 흔들리게 한다. 낙심과 불안의 원인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초점을 연약한 자신에게 맞추면 항상 낙심할 수밖에 없다. 10명의 정탐꾼을 보라.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들을 바라보았기에 아낙자손들 앞에서 자신들을 메뚜기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들을 밥이라고 생각했다. 믿음이 흔들릴때 하나님을 바라보라. 낙심하고 불안하여 믿음이 흔들릴 때 극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믿음은 주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를 보면 넘어진다. 사람을 보면 넘어진다. 환경을 보면 넘어진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121:1-2절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인생길엔 어려움도 있고, 기쁜 일도 있다. 낮도 있고, 밤도 있다. 행복하고 기쁠 때는 주를 향해 찬송하고, 외롭고 괴로울 때는 눈을 들어 도움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시선을 바꾸어 주님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변하여 기도가 되고, 전날의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믿음이 흔들릴때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42:5> 낙심하며 불안해 하는 자신을 꾸짖고 있다. 우리는 연약해서 어려움을 만나면 낙심한다. 이럴 때 환경에 휘둘리는 나 자신을 꾸짖어야 한다. '왜 돈 때문에 낙심하느냐? 왜 건강 때문에 낙심하느냐? 왜 사람 때문에 낙심하느냐? 왜 환경 때문에 낙심하느냐?' 그리고 자신에게 이제는 그런 것을 바라보지 말라고 명령해야 한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명령해야 한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환경이 변하든 변하지 않든 낙심을 이겨낼 수 있다. 믿음이 흔들릴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라.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도 낙심하고 불안해 한다. 그러나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다. 낙심 때문에 하나님을 더 집요하게 부른다는 것이다. 불안할수록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서 달려 간다는 것이다. 낙심, 불안, 염려, 걱정은 왜 생기는 것인가? 내가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다 사라진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84:12> 현실은 자주 우리를 낙심하게 하고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매달린다. 그러면 낙심이 사라지고 불안이 사라진다. 하나님이 때가 되면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고, 질병도 고쳐 주시고, 자녀 문제도 해결해 주신다. 문제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고,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문제를 통해 은혜속에 헤엄치는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너무 좋으신 분이다.

정용구 선교사 2020-06-2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선교지의 소식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첫 번째 변화는 선교 현장에 남아 있는 선교사들의 움직임이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는 선교사 자신도 감염이나,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진원지가 될 것을 염려해 출입을 자제했다. 하지만 선교 현장에서 현지인 성도들의 어려움이 들려오고, 이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선교사들이 현지인들과 천 마스크를 만들어 공급하거나, 식량을 사 이웃들에게 나누는 소식들을 접하게 된다. 선교사들이 전하는 소식에 의하면,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많은 선교현지 사람들이 고마워한다고 한다. 지금은 구제와 방역의 초기 단계로 상황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소식들이 많이 들린다. 한국교회는 이럴 때일수록 선교사들의 기도편지와 소식들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선교사 자신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현지인들의 어려움을 돌보며,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와 후원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둘째는 선교사역이 코로나19로 인해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중단되면서 초기에는 당황하며 초조해하던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멈춰진 순간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더욱 굳건하게 하고, 선교사로서 그동안 미뤘던 자기 계발에 많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제한이 많은 지금의 상황에서 선교사를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들을 활성화하고, 가능한 지원 방법 연구 및 선교사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 바라기는 여러 선교관련 단체에서 진행되는 선교사를 위한 교육이 다양하게 공유돼 많은 선교사들이 양질의 많은 강좌들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많은 정보와 교육의 기회가 있더라도, 선교현장의 선교사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적절한 교육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를 위해 선교교육을 담당하는 단체들과 사역자들이 힘을 모아 함께 연구하고, 공유 플랫폼을 구성해 선교사들이 쉽게 자신들에게 맞는 선교교육을 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로 많은 선교사들은 ‘코로나19 이후 선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언론과 방송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앞 다퉈 ‘코로나19 이후’에 대한 예측을 하고 있다. 각 분야에서 코로나19 이후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들의 발 빠른 움직임에 비하면, 현장에서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많은 선교사들은 이를 대비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러기에 선교사를 파송·후원·지원하는 단체들이 함께 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이를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착실히 준비해 코로나19 시대를 이기는 미래선교의 방향과 전략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서는 이를 위해 ‘코로나19 비상대책 계획’을 수립하고, 6월 중순부터는 ‘코로나19 이후 선교’를 위한 포럼을 중장기적 계획을 준비 중이다. 많은 미래 이슈들을 선교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새로운 시대 적합한 선교전략을 제시하려고 한다. 또한 다양한 주제의 ‘미니특강’과 보다 많은 선교사, 후원교회와 후원자, 선교를 위한 기관 단체들과의 다양한 ‘좌담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코로나19의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선교를 위한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정용구 선교사 2020-06-19

한국에서 선교사로 파송 받아 선교지로 가게 되면 한국의 주소지는 대개 부모의 주소지나 친형제자매의 주소지로 옮겨진다. 그래서 간혹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오면 여러 편지가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선교사가 한국에 입국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사용할 휴대폰을 개통하게 된다. 많은 선교사가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기에 선불폰 요금제를 주로 사용한다. 이 요금제는 인터넷 데이터 제공은 어느 정도 되지만 통화료가 비싸다. 그리고 공항에서 짐을 찾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4인 가족일 경우 여행가방의 부피와 짐들이 많아서, 최종 목적지까지 가려면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동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절차를 거쳐 예약을 해 놓은 안식관이나 부모 거주지 혹은 친인척의 집에 도착하게 된다. 이것이 코로나19 이전의 선교사들의 한국 입국 흐름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이 입국 흐름이 바뀌었다. 먼저는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자가격리 앱을 설치해서 인증을 받고 일일 자가진단을 제출한다. 특별검역신고서와 건강상태 질문서 작성 후 코로나19 유증상이면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는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영종도 임시 격리 시설에서 최대 24시간까지 대기해야 한다. 코로나19 증상이 없는 경우에도 지난 4월 1일부터는 해외입국자의 자가격리 의무화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해외 입국자 전용버스나 KTX를 타고 정해진 자가 격리소나 주거지로 이동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선교사들에게 어려움이 생긴다. 그 이유는 갈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선교사 안식관들이 정부가 요구하는 자가격리 시스템에 맞게 운영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간혹 있더라도 식사나 생활 편의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빈약하다. 부모나 친지를 찾더라도 선교사가 혼자 방을 쓰면서 자가격리를 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더군다나 해외에서 밀려오는 입국자를 위한 시설이 부족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서 지역 관공서에서 추가확보를 위해노력을 하지만 전화 문의를 해도 그 수요를 따라 잡기에는 한계가 많아 보인다. 최근 해외에서 코로나19 확진자의 증가로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와야 되는 선교사들이 발생한다. 이를 위한 자가격리 시설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이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선교사 파송 단체 실무자들로부터 많이 듣게 됐다. 교회가 운영하는 수양관?훈련센터, 선교센터, 개인 숙박 시설을 운영하는 이들을 통해 어려운 형편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한 자가격리 시설로 활용해 주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정부의 자가격리 시설 기준에 대한 인준과 보건당국의 방역이 잘 공조가 되고, 지역 주민들의 이해와 협조가 되도록 지역 관공서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시설들이 선교사들만이 아니라 해외 한인교회 성도들과 일반 해외 입국자, 특히 해외 유학생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협력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이 아닌 모두가 우리의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실질적이고, 분명한 해결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해외에서 수고하는 우리 재외동포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아름다운 손길이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계속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신동식 목사 2020-06-17

코로나19로 주변부부터 위기가 시작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에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교회는 재정 운영에 지혜가 필요하다. 교회가 어려우면 반드시 함께 고통을 나눠야 하는영역이 있다. 바로 선교지다. 경제적 위기의 순간에 가장 아픈 것이 선교다. 그러나 이때 선교사들의 준비도 필요하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불편을 잘 감당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어떤 순간에도 선교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다만 고통은 함께 짊어져야 한다. 셋째 영적 신앙고백을 깊게 가져야 한다. 삶의 위기는 영적 전쟁을 일으킨다. 가장 무서운 시험이 바로 의식주의 시험이다. 이 시험처럼 강력한 파괴력이 없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해 섬기지 말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라인 예배로 인해 나타난 시험이 정리되기 전에 재정적 시험이 밀려올 것이다. 상황이 결코 만만치 않다.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한국교회가 제대로 된 영적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교회의 신앙 수준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다. 교회에 대한 이해, 예배에 대한 준비, 믿음에 대한 고백, 구원에 대한 바른 지식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의식 등 전반적으로 점검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내부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반응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이번 기회에 어떠한 모습으로 이겨낼 지 기대하게 된다. 힘들수록 원칙으로 가는 것이 이기는 길이라 생각한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세상의 소리를 이길 수 있는 복음의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믿음의 선배들이 각종 위기의 순간에 이겨냈던 믿음의 고백이 정말 중요하다. 넷째 교회 생태계의 혼란을 잘 견뎌야 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교회의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 우선 신자들이 예배에 대한 자율적인 생각을 가지게 됐다. 교회들이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여지없이 드러났다. 예배에 대한 춘추전국시대를 바라보듯 다양한 이야기들이 각종 정보를 통해서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리되지 않은 채 쏟아져 나오는 것은 자칫 교회를 혼돈에 빠질 수 있게 한다. 지역교회의 손상도 문제다. 코로나가 진행되고 온라인 예배가 지속하면서 예배와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여지가 넓어졌다. 기독방송과 대형교회는 다양한 콘텐츠를 송출하고 있다. 신자들은 다양한 방송을 볼 수 있게 됐다. 담임목사 이외의 설교를 계속 들을 수 있는 합법적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참여하면 세미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특별히 성경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변화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에 손상을 가할 수 있다. 또 교회로 모이는 것은 흩어지기 위함임을 인식하고 혼자 있을 때의 신앙과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흩어진 교회가 어떻게 교제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흩어진 교회는 교인들만의 공간을 넘어서 이웃과의 공간을 만드는 연습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교회는 단순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예배와 성찬과 성경 교육으로 단순하게 개편하고 죄짓지 않으면 삶을 즐길 수 있는 믿음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실천적으로 자발적 불편을 살아야 한다. 교회는 교회대로 성도는 성도대로 자발적 불편의 실천을 통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어야 한다. 어려울 때교회는 생명의 방주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도 지나가리라” 어거스틴의 고백이다. 하님이 은혜를 주시면 뜻하지 않은 선물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위기도 지나간다. 그리고 준비된 자들에게는 위기 후에 영광을 갖게 된다.

이정기 목사 2020-06-03

밤에는 아침을 기다리고 겨울에는 봄을 기다린다. 하루 하루가 기다림의 연속이다. 약속시간을 기다리고, 전화오기를 기다리고, 누군가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외출한 자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요즘은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종식되기만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신앙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고, 병 낫기를 기다리고, 문제해결을 기다리고, 믿음의 성숙을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림은 영적인 문제이다. 사단이 기다리지 못하게 방해한다. 서두르게 한다. 모든 것에는 다 하나님의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때가 있고, 잉태할 때가 있으면 출산할 때가 있고,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기도했으면 응답 받을 때가 있고, 하나님의 징계가 있으면 회복하실 때도 있다. 모든 것은 다 기다림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을 잘 못한다. 구약에 하박국도 성질이 급한 선지자였다. 하박국 1장을 보면 ‘어찌하여, 어찌하여’하면서 하나님께 호소한다. 호소하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2:3> 기다리라고 하신다. 성경에 축복받은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기다림의 시간들이 있었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려 약속의 아들을 얻었다. 요셉은 13년을 기다려 꿈을 이루었다. 모세는 80년을 기다려 쓰임받았다. 노아는 120년 기다려 구원받았다. 기다렸더니 응답해 주셨다. 시편 40편은 다윗의 시이다. 다윗이 2절에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라는 표현을 한다. 그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표현이다. 기가 막힐 웅덩이란 말은‘끔찍한 웅덩이, 소름끼치는 웅덩이’라는 의미이고, 수렁이라는 말은‘늪지대, 진창’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웅덩이와 수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어느날 다윗이 사울왕을 모시는데 갑자기 왕이 자기를 향해 창을 던진다. 또 사랑하던 아들 압살놈이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려고 달려든다. 우리도 때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고 힘들어 한 경험이 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다윗의 기다림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었다. 소망이 있었기에 기다린 것이다. 믿음이 있었기에 기다린 것이다.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것은 아주 어린시절이었다. 다윗은 힘든 상황에서도 기름부음 받은 것을 잊지 않았다. 다윗이 왕이 되기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기다리고 기다렸다.<시40:1> 아브라함은 10년을 기다리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다. 기다리면 이삭을 낳고, 기다리지 못하면 이스마엘을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를 아는 것이 지혜이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부르짖으며 기다리고 기다린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기다렸더니 건져 주셨다. 기다렸더니 반석위에 세워 주셨다. 기다렸더니 입에 찬송이 있게 하셨다. 기다렸더니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다. 기다렸더니 축복하신 것이다. <시40:2-3> 기다림은 깨어지고 부서지는 시간이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시고 우리는 진흙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빚어 멋진 작품을 만드신다. 진흙은 빚어지는 과정속에 깨어지고 부서지는 고통을 경험한다. 그런 과정을 통과하면 영광의 날이 오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깨트리실 때, 녹로에 올려놓고 돌리실 때, 뜨거운 가마에 넣으실 때 하나님과 싸우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한다. 절대 순종해야 한다. 기다림은 믿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믿음은 흔들린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초조해 지고, 조바심이 생기고,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꼭 사단의 속삭임이 있다. 그러므로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믿음의 진정성을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한다. 부정을 말하지 말고 긍정을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신다. 내게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크고 크시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때가 되면 이루신다.’ 기다림의 끝에는 축복의 열매가 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주께서 함께하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기다렸더니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셨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다렸던 다니엘을 사자굴이라는 웅덩이에서 건져주셨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다렸던 한나를 슬픔의 수렁에서 건져주셨다. 아들 사무엘을 낳게 하셨다. 기다림의 끝에는 축복의 열매가 있다.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우리가 할일은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려야 한다. 응답이 더딜찌라도 기다려야 한다. 어둠이 지나가면 새벽이 온다. 다윗처럼 기도하고 다윗처럼 기다려서, 건져주시고, 세워주시고, 찬송하게 하시는 은혜가 우리의 삶에도 가득하게 하자.

여주봉 목사 2020-05-31

헨리 블랙가비 목사는 영적 리더십을 ‘하나님의 의제(God’s agenda)를 향해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그 속에 포함된 5가지 요소를 기술한다. 나는 헨리 블랙가비 목사가 그것을 잘 기술했다고 생각하고, 그 요소들을 간단히 살펴보면서 영적 지도자의 임무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래야만 비전의 올바른 이해와 영적 리더십과의 연관성이 더 뚜렷해진다. 첫째. 영적 지도자의 임무는 사람들을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인도하는 것이다. 영적 리더십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의제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므로 영적 리더는 하나님의 의제(agenda), 즉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리더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어떻게 그곳에 이르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만약 리더가 그것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참된 리더가 아닐뿐더러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방향을 잃고 방황할 것이다(잠 29:18). 그래서 영적 리더십과 비전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나는 과거에 대학생 사역에 대하여 관심 있던 한 전도사에게 “당신은 하나님께서 지금 캠퍼스에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보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대학생 사역을 위한 리더로 부르신 것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렇다 할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리더십은 영향력이다. 영적 리더는 하나님의 의제를 보고 자신이 먼저 그것을 향해 달려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그리로 인도하기 위해 영적인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만약 영적 리더가 자신의 지위, 무력, 세속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타락한 것이다(렘 5:31). 반면에 참된 영적 리더인 바울은 간사한 속임수를 사용하지 않았고, 자신이 먼저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살전 2:3-6). 이처럼 영적 리더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옳은 방법은 하워드 가드너가 잘 말한 것처럼 설득과 본보기이다. 영적 리더의 임무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하나님의 의제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뜻에 순종했으면 리더는 자기 임무를 다한 것이다. 반면 영적 리더가 사람들을 하나님의 의제로 인도하는 데 실패했다면, 그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리더십은 결과로 측정된다. 그래서 영적 리더십을 공부하다 보면, 참으로 겸손해지는 것을 느낀다. 둘째.영적 지도자들은 성령님께 의존한다. 궁극적으로 사람들 속에 영적 변화를 가져다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므로 영적 리더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나님께서 영적 리더에게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보이시면, 영적 리더는 자신이 먼저 그 일에 온 삶으로 동참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나누고 그들을 인도한다. 이때 매우 중요한 것이 있다. 영적 리더는 하나님의 행하심과 비전을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가감없이 나누고, 성령께서 그들 마음 속에 역사하셔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보게 하실 뿐 아니라 그 비전에 온 삶으로 동참하게 하시도록 오직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영적 리더는 사람들에게 그 비전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리더가 청중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이 결단하도록 영향을 끼친다. 어떤 리더들은 자신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면서 성도들에게 자신이 받은 감동대로 해야 한다고 강요하기도 한다. 또 어떤 영적 리더들은 자기가 세운 목표에 사람들이 헌금으로 동참하게끔 온갖 감언이설과 다양한 예를 가지고 그들의 감정에 호소한다. 이것은 모두 전적으로 타락한 것이다. 성령을 의지하지 않는, 하나님이 없는 수단과 방법들은 전부 타락한 것들이다. 그래서 헨리 블랙가비 목사는 그의 책 『영적 리더십』에서, 리더가 설득하려고 하는 비전은 하나님께서부터 나온 비전이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비전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리더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나눌 때 성령께서 듣는 사람들의 마음 눈을 열어 그것을 보게 하시고 그것에 동참하도록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영적 리더들은 자신이 인도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이 인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는 삶을 살도록 그들을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은 결국 영적 리더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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