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규 2020-11-11

사람의 수명은 정해진 것일까. 질병에 걸리는 것과 건강은 운명이나 숙명일까? 아니면 자기하기 나름일까?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하나님의 섭리로 푼다. 하지만 신의 뜻이라는게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모른다는 말과 같다. 사람의 죽음의 원인으로는 ‘생활습관’ 50%, ‘생활환경’ 25%, ‘사고’ 5%이며 ‘유전’이나 ‘체질적인 이유’는 20%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20%만 선천적인 이유이며 후천적으로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당하는 것이 무려 80%라는 뜻이다. 평소에 환경이나 습관을 조심해서 관리하면 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 죽음을 애매하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죽음뿐 아니라 병도 그렇다. 병에 잘 걸리는 체질에 대해 선천적인 이유를 말하지만 그것도 사실 불과 20%에 불과하다. 어느 사람이든 그 가계에 이런저런 유전적인 소인이 없는, 완벽히 건강한 집안이 어디 있을까? ‘격세유전’이라고 해서 한 세대로 뛰어 넘어 유전되는 것도 있는데 그것까지 포함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모든 병에 걸릴 DNA는 항상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노력과 관리 때문으로 봐야 한다.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나쁜 음식, 독한 음식을 먹으면 몸속에 그대로 쌓여 병이 된다. 좋은 음식, 맑고 깨끗한 음식을 먹으면 몸이 또 건강하게 된다. 지금 당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일정한 임계의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몸으로 드러나게 된다. 평소에 운동을 하고 몸 관리를 하는 사람은 그게 다 몸으로 드러나서 병치레를 하지 않으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지만 평소에 이런저런 무리수를 두는 사람은 때가 되면 다 몸으로 나타나서 결국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성격이나 혈액형도 2대 8의 원리가 타당하다.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 있는 비율은 20%, 후천적인 교육이나 자기계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은 80%다. 유전적이거나 또는 체질적인 연약함은 후천적인 자기계발과 학습으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평소에 성결의 훈련을 하는 사람과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맺히는 열매가 다르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성경말씀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임상을 하면서 내린 결론은 사람의 질병이나 수명은 성품에 갇힌다는 것이다. 건강관리와 수명관리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말이 맞다. 성격이 느긋하고 부드러운 사람은 대체로 오래 살고, 늦게까지 건강을 유지한다. 2대 8의 원리에서 당연 8이 중요한데 그건 곧 생활습관과 환경이다. 생활습관과 환경을 바꾸면 지금보다 훨씬 건강해지고 오래 살 확률이 80%는 더 된다. 성경에 보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도 염려, 걱정, 근심하는 시간에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신령한 그리스도인은 근심과 걱정을 기도로 대신하기에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지만 믿음이 적은 이는 기도 대신에 근심과 걱정, 염려와 불안, 긴장으로 이어진다. 감사와 기쁨이 없다. 결국 구조의 문제이다. 구조가 바뀌어야 기능이 좋아지는데, 구조를 고치지 않고 기능만 기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의학에서는 우리의 몸이 기와 혈로 이뤄져 있다고 본다. 기(氣)는 원기 즉 생명력이고, 혈은 피를 포함한 모든 수분이다. 기는 항상 가볍게 팽팽 잘 돌아야 건강하고, 혈은 항상 맑고 깨끗해야 건강한 법이다. 그래서 건강한 생활습관과 환경은 기를 가볍게 하고, 혈을 맑게 하는데 주안점 을 둔다. 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는 기가 가벼운 음식을 먹고, 그러한 생각과 말은 물론 그러한 감정을 가져야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만큼 기를 가볍게 하는 일은 없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기가 가볍게 되는 일은 없다. 혈을 맑게 하려면 약 알칼리성의 음식을 담백한 상태로 적게 먹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네 입맛을 자극하는 것은 모두 설탕, 소금, 기름기가 많이 들어가 있다. 이런 음식들은 맛은 있지만, 피를 탁하게 만들어 만병의 원인이 된다. 아무리 기가 가벼워도 혈이 맑지 못하면 허탕이다. 중년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피 때문에 생기는 병이 많다. 피가 탁해져 생기는 병들은 곧바로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심근경색, 뇌경색, 당뇨, 고혈압, 동맥경화증등은 사실상 모두 피와 관련된 질병들이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다. 성전을 성전답게 건사하기 위해 우리는 신령한 연습을 해야 한다. 성경은 그것을 ‘거룩’이라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건강’이라 말한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 의하면 ‘살리는 것은 영’이다. 영이 살아야 육이 산다. 영이 죽으면 육도 죽는다. 영적으로 거룩하고 깨끗해지면 그 영혼이 거하는 집인 몸은 자연히 깨끗하고 건강해진다. 건강도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한다. 디모데전서에 있듯이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 육체의 연습과 경건의 연습을 많이 함으로 건강연습도 함께 이뤄가는 멋진그리스도인들이 됐으면 참 좋겠다.

이영훈 위임목사 2020-11-15

요즘 어느 신문, 어느 방송을 봐도 감사를 고백할만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귀에 들리는 소식들은 우리를 두렵고, 우울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이야기들뿐이다. 벌써 10개월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전 세계 약 5,000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도 약 130만 명이나 생겨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년 하반기로 예상되는 백신과 치료제 보급이 이뤄질 때까지 현재의 확산세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신체적, 경제적 피해를 당했다. 연쇄 작용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두워지며 심리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급증했다. 그렇다고 사회 다른 분야에서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빈부의 격차는 오히려 심해지고, 정치권의 권력 다툼도 여전하다. 북한의 도발은 끊이지 않는데다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상승한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서민들의 신음이 깊어져만 가고 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감사할 일이 없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감사할 것을 요구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감사에있다. 그런데 주변에 고난만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이러한 요구는 부당하고 무리한 것처럼 생각된다. 우리는 감사가 어떠한 사건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 감사가 일종의 감정이라면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해서, 특히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일들에 대해서 감사할 수 없다. ‘감정’으로서 고난에 대해 감사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평판을 의식한 거짓된 모습일 것이다. 감사는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다. 좋은 일이 다가올 때나, 어려운 일이 다가올 때나 감사의 태도를 가진 사람은 감사로 그 일에 반응한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에게 훌륭한 감사의 모범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 바로 400년 전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청교도들이다. 그들이 마주해야 했던 삶의 자리엔 분명 지금 우리가 마주한 어떠한 고난에도 비교하기 어려운무겁고 힘겨운 고난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낯선 환경 속에서 질병과 굶주림 그리고 원주민과 야생 동물의 위협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무려 44명의 사람들이 추위와 기아로 사망했다. 그들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자녀들, 부모,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음 해 곡식을 뿌려 수확한 뒤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그들이 감사한 것은 단지 수확물에 대한 것만 아니었을 것이다. 농사일에 서투르고 노동력이 부족했던 그들이 거둔 수확은 감사하기엔 너무 적었다. 그들은 여전히 굶주렸으며, 혹독한 추위가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허락된 모든 시간과 상황을 선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믿음 때문이다. 감사의 태도는 모든 일이 합력해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에서부터 나온다. 오늘날 고난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할 뛰어난 정책이나, 새로운 기술, 막대한 지원이 아니라 400년 전 선조들이 소유했던 감사의 태도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에서 고난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난 가운데 매몰돼 원망과 불평 가운데 살지 말자.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감사의 태도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만이 빛 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이정기 목사 2020-11-29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칠흑같이 어두운 고난의 밤을 만날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될 때가 있다. 그러나 주님은 칠흑같이 어두운 고난의 밤을 통과할 때, 고난속에 방치해 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찾아오신다.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은혜의 통로가 기도이다. 우리가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는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기도는 인간의 무능과 하나님의 전능이 연결되는 고리이다. 구하면 주시고, 문을 두드리면 열어 주시고, 환난 날에 건져주신다. 시 50:1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칼빈은 기도를 은총의 수단이라고 했다. 막 9:2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했다. 약 4:2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고 하셨다. 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도들의 삶이어야 한다. 일하면서도 기도하고, 운전하면서도 기도하고, 걸어가면서도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호흡과 같다. 호흡이 멈추면 죽는 것처럼, 기도가 멈추면 영적으로 죽는 것이다. 사탄의 관심은 성도들이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기도 없는 성경공부, 기도 없는 봉사, 기도 없는 종교의식에는 안심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하면 사탄은 떨기 시작하고, 우리를 떠나간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기도하다가 중단하는 것이다. 자녀의 대학 합격을 위해 열심히 기도한다. 그런데 합격하면 기도를 중단한다. 대학 시험을 앞두고 있는 자녀가 타락하기 쉬운가? 대학에 합격한 후에 타락하기 쉬운가? 당연히 후자이다. 그런데 정말 기도가 필요할 때는 기도하지 않는다. 믿음의 기업을 세우기 위해 열심히 기도한다. 그런데 기업이 안정되면 기도하지 않는다. 기업을 세우기 위해 땀 흘려 일할 때에 유혹이 많은가? 장사가 잘 돼서 많은 돈을 벌 때 유혹이 많은가? 당연히 후자이다. 그런데 정말 기도가 필요할 때는 기도하지 않는다. 지금은 컴퓨터 클릭 시대이다. 클릭하면 원하는 정보가 금방 튀어나온다. 이러한 영향때문에 기도하고 나서 기다릴 줄을 모른다. 컴퓨터에서 클릭하는 것처럼, 기도하면 즉각적으로 응답이 와야 하는데 응답이 더디니까 기도에 대한 회의가 생긴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실까? 기도가 정말 필요할까? 기도의 본질은 정보의 획득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깊은 대화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위기를 만나도, 어떤 문제를 만나도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통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야곱도 기도로 위기를 축복으로 만들었다. 한나도 기도로 위기를 축복으로 만들었다. 모세도, 히스기야도, 다윗도, 에스더도, 바울도, 기도로 위기를 축복으로 만들었다. 위기속에 있다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우리는 기도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대부분 성경 한 구절에만 매달리며 균형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시고 몹시 힘들어하셨다. 고민하고 슬퍼하셨다.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극도의 고민과 슬픔을 기도로 해결하셨다. 기도하신 후에 달라지셨다.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신다. 상황이 바뀐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님을 잡아죽이려는 자들이 더 가까이 온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은 고민도 슬픔도 없었다. 오히려 고민거리를 향해 힘있게 나아가신다. 기도란 고민거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없애는 것이다. 예수님이 기도하셨지만 고민거리, 걱정거리는 그대로 있었다. 상황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마음이 바뀐 것이다. 기도하던 중에 고민도 사라지고, 걱정도 사라지고, 슬픔도 사라지고, 믿음의 용기가 생긴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효과이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브닌나로 인하여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서 슬퍼하며 울고 음식도 먹지 않았다. 남편의 위로도 소용없었다. 그러나 한나는 괴로워하고만 있지 않았다.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통곡하며 기도한다.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생각하사 아들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며 기도한다. 그리고 기도 후에 달라졌다. 돌아와서 음식을 먹었다. 얼굴에 근심 빛이 사라졌다. 한나가 기도하고 돌아오니 그를 괴롭히던 브닌나가 변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없던 아들이 바로 생긴 것도 아니다. 문제가 여전히 있는데도 기도하고 나니 내가 달라진 것이다. 기도의 능력은 내가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달라지고 나니 상황도 달라지고, 문제도 해결되었다. 기도는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것이다. 고통속에 있는가? 기도할때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가? 기도할 때이다. 사방팔방이 다 막혀있는가? 기도할 때이다. 전혀 소망이 없는가? 기도할 때이다. 나의 필요만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역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자. 상황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나를 바꾸어 보자.

김양규 2020-11-25

후진국일수록 감염성 질환이 많고, 선진국일수록 알레르기 질환이 많다는 통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이다. 알레르기 질환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을 보아서도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설수록 생활이 점점 편리해진다. 이전에는 전혀 불편을 못 느꼈던 것들이 옆에서 자꾸 불편하다고 부추기니 정말 불편한 것처럼 느껴져서 불편하지 않도록 고치고 또 고친다. 불편한 것들을 자꾸 고쳐서 편리하게 만든다. 선진국이라는 말을 자세히 보면 편리한 문명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은 견디지 못한다. 조금도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며 즉문즉답을 원한다. 전북 진안에 가면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샘’이 있다. 거기에 사는 100세 가까운 노부부는 매일아침 걸어서 샘으로 가서 물을 떠와서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마신다고 한다. 그 어느 집에나 있는 수돗물이 아니라 일 년 사시사철을 물 뜨러가는 구 시대적인 삶을 지금껏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지금도 팔다리가 건강하고 허리에 힘이 있으며 구부러지지 않고 머리도 총명하고 기억력도 왕성한 것을 TV를 통해 봤다. 대개 나이가 들면서 치매가 오는데 통계에 의하면 65세 이상의 노인 가운데 10%, 80세 이상 노인 중 20%가 치매환자라고 한다. 치매에 걸린 이들을 보면 대부분이 편한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 일찍 며느리를 보고 집안일을 며느리에게 맡기고 일손을 놓은 분들, 집안의 대소사, 식구들 식사문제까지도 며느리에게 넘겨버리고 편하고 편하게, 또 편하게 사는 사람들 중에 치매가 일찍 오고 많이 온다. 늘그막에까지 자신의 손으로 집안일을하고 밥을 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잔일을 처리하는 분들 중에는 치매가 올 겨를이 없다는 말이다. 손품 발품의 원리이다.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힘들고 불편하고 고되다는 측면에서 보면 한없이 그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 권장하는 것은 손품 발품의 원리 때문이다. 손품과 발품을 많이 팔지 않으면 우리 몸은 금방 못쓰게 된다. 허리가 아픈 사람들 중에 가만히 있어야 되는 사람은 10% 미만이다. 자꾸 활용해야 된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손·발품을 많이 팔아야 더욱더 건강해진다. 손품과 발품을 팔지 않고 편하게 무얼 얻으려고 하면 안 된다. 제일 좋은 음식은 제철에 나오는 음식이다. 필자는 매일아침 녹즙을 짜먹는다. 필자가 직접 장에서 녹즙거리를 구입해 다음날 새벽 운동 후 녹즙을 짜서 가족들 에게 다 마시게 한다. 일거리로 보면 한없이 많다. 시간도 걸리고 손·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지만 그 의미와 가치를 알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한다. 우리의 한 끼 식사도 밖에서 돈만 주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지만, 굳이 집에서 먹는 것은 좋은 재료에 깨끗한 음식을 먹기 위한 발버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은 건강을 위해 몸에 좋은 음식을 적극적으로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안 되는 것은 귀찮기 때문이다. 손품, 발품을 팔기 싫다는 말이다. 방법이 없다. 손·발품을 팔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다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생각지 않았던 병이 발병하는 건 모두 손품발품을 아꼈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렇다. 사람들을 점점 게으르게 만든다. 한없이 편리하게 이끈다면서 다른 한편으론 자꾸만 더 게을러지게 만든다.게으르다는 말은 자신들의 손품, 발품을 팔기 싫다는 말이다. 한방의서에서는 병이 나기 전에 미리 치료해주는 의사를 ‘신의’로 귀신같은 의사라고 한다. 그리고 약으로 하는 ‘약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음식으로 하는 ‘식치’라고했다. ‘의식동원’이라고 해서 약치와 식치가 같은 근원을 가진다고 했다. 우리가 큰 병에 걸리면 그때서야 이 약 저 약, 이 음식 저 음식을 구하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손·발품을 파는데 현명한 사람은 그 전에 미리 그렇게 행한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영적인 손·발품을 많이 판다는 뜻이다. 자기가해야 할 일과 함께 이웃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손·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는 말씀이 그 말씀이 아닐까.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다. 남들이 모두 편리함만을 추구하며 앞으로 나아갈 때 오히려 불편을 감수해서라도 건강을 위해 손·발품을 많이 파는 사람들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 다. 노력하고 투자한 만큼 반드시 돌아온다. 좋은 것으로 심으면 좋은 것을, 악한 것으로 심으면 악한 열매를 얻는다.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손·발품을 파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지혜가 새삼 강조되는 요즘이다.

김양규 2020-12-02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병에는 공격인자와 방어인자가 있다. 질병을 치료하는 관건은 공격인자를 없애주거나 약화시켜주고, 방어인자를 강화시켜주는 것이다. 소위 와사풍이라고 하는 ‘안면신경마비’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안면신경마비는 뇌에 문제가 발생함으로 인한 중추성인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다수 말초성으로 인해 발병한다. 안면신경의 말초가 흐르는 귀 뒤에 ‘유양돌기’라고 하는 톡 튀어져 나온 부분이 있다. 그 부분에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인해 발병하는 경우가 유독 많다. 여기서 언급하게 되는 바이러스는 공격인자다. 바이러스는 죽지 않는 균이다. 한방적인 치료의 관건은 공격인자인 바이러스를 약화시켜 쫓아내고, 방어인자인 몸의 저항력을 높여주는데 있다. 그래서 한방적인 용어로 설명하면 원기를 보하면서 사기를 쳐내는 요법을 쓰는 것이다. 폐결핵을 예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결핵균은 우리 몸을 해하는 공격인자다. 하지만 폐결핵은 결핵균을 많이 마셔서 생기는 병이 아니다. 결핵균은 공기 중에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모두 결핵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격인자가 아무리 공격을 많이 한다고 해도 몸 안의 방어력, 방어인자가 강하면 우리 몸은 결핵균의 공격에도 끄떡도 안하게 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결핵의 원인은 결핵균이 아니라 ‘영양실조’로 인한 것이라고도 말한다. 방어인자 즉 우리 몸속에서 저항력이 약하기 때문에 질병이 발병한다는 의미다. 알레르기 질환도 그렇다. 밖에서 공격하는 공격인자 알레르겐과 몸 안의 저항력, 즉 방어인자와의 싸움이다. 공격인자가없는 곳에서 산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어디 우리가 교과서적인 환경에서만 살 수가 있을까. 질병을 물리치기 위한 한방적인 치료법으로는 공격인자인 알레르겐과의 접촉을 최대한 적게 하면서 몸 안의 저항력인 원기를 보강시켜주는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육체적인 질병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다. 환경 역시 공격인자가 된다.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이나, 사회생활에서의 어찌할 수 없는 스트레스 등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향하는 공격인자가 된다. 따라서 치료의 관건은 공격인자를 최소화하고 방어인자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우리를 위협하는 다양한 질병의 위협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부모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환경들이 우리 몸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환경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는 본인의 내적인 저항력, 원기, 방어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결국 방어인자의 문제인 셈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공격인자는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해 왔고, 공격인자의 공격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 세지면 세어졌지 결코 약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살아가면서 우리 몸의 방어인자를 더욱 강화시켜줘야 각종 질병의 위협을 견뎌내고 이겨낼 수가 있다. 우리 몸의 방어력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면역력’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 회복력’이다. 면역력은 병에 잘 안 걸리는 힘이고, 자연회복력은 걸린 병에서 빨리 낫는 힘이다. 이 둘을 합해 ‘원기’라고 한다. 원기의 70%는 위장에서 온다. 음식을 먹고 소화·흡수시키기를 잘하면 방어력이 70%가량은 생긴다는 뜻이다. 나머지 30%는 정신력에서 온다. 음식을 못 먹어도 정신력이 강하면 방어력이 30% 가량은 유지된다는 뜻이다. 크리스천의 삶에서도 영적인 힘과 파워는 대단히 중요한 방어인자가 된다. 우리의 심령이 영적으로 맑고, 밝고, 건강하면 더불어 정신도 건강해진다. 그러면 육체는 그에 따라 자연히 건강해지게 된다. 우리 몸속의 방어력이 훨씬 강화되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은 뇌 속에서 행복호르몬인 엔도르핀, 세로토닌, 도파민 등의 분비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자연히 힘이 나고 방어력이 강해져서 웬만한 공격인자의 공격에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몸은 영이 살아야 육이 사는 구조로 돼 있다. 이는 곧 임상결과에서도 드러난 사실이다. 건강한 영적생활을 하는 사람은 육체적으로도 건강을 보너스로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영적인 공격인자의 크리스천을 향한 공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끈질기지만 성령님의 임재하심에 따른 방어력을 강화시켜 나간다면 결코 넘어지거나 쓰러지지 않고 강인하게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의 몸은 ‘성전’이라는 개념으로 스스로 잘 지켜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 요하다.

여주봉 목사 2020-11-30

최근 코로나19로 드러난 우리의 예배 현실은 회복되어야 할 절실한 필요 가운데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참된 예배 받기를 열망하시며 기다리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 열망을 알 때 우리의 예배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홀로 합당하신 분이다. 우리 하나님은 오직 유일한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예배와 사랑과 존경을 받기에 홀로 합당하신 유일한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우리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기 6:4-5). 우리의 예배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예배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있고, 예배는 오직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 외에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홀로 합당하신 분인 것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열망하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지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계획을 보면 알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이사야 43:7) 사람의 존재 목적 중 가장 우선되는 것 중 하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는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정확하게 예배의 정의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자녀 삼으신 이유,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으시고 그 보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함이다(에베소서 1:3-1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의 역사들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예배를 받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의 예배를 열망하신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 하나님은 요단강을 가르시는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물론 하나님이 다른 일반적인 방법들을 사용하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요단강을 가르는 놀라운 일을 행하신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여호수아 4:23-24)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찬양하고, 하나님이 이루신 놀라운 역사들로 인하여 기뻐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렇게 우리의 예배를 열망하실까?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열망하시는 가장 주된 이유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할 때를 생각해 보라. 상대방으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많이 듣기 원하고, 때로는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왜 그럴까?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 받기를 열망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원하신다. 우리의 헌신이나 봉사나 헌금보다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을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없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간다. 우리의 눈이 돈에 고정되고 돈이 우리의 삶을 다스리고 지배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돈을 예배하고 있는 상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눈을 고정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갈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기를 열망하신다. 이처럼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은 매우 크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구하여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하는 열망보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열망이 훨씬 더 크다. 하나님의 그 열망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의 예배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이정기 목사 2020-11-29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칠흑같이 어두운 고난의 밤을 만날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될 때가 있다. 그러나 주님은 칠흑같이 어두운 고난의 밤을 통과할 때, 고난속에 방치해 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찾아오신다.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은혜의 통로가 기도이다. 우리가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는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기도는 인간의 무능과 하나님의 전능이 연결되는 고리이다. 구하면 주시고, 문을 두드리면 열어 주시고, 환난 날에 건져주신다. 시 50:1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칼빈은 기도를 은총의 수단이라고 했다. 막 9:2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했다. 약 4:2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고 하셨다. 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도들의 삶이어야 한다. 일하면서도 기도하고, 운전하면서도 기도하고, 걸어가면서도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호흡과 같다. 호흡이 멈추면 죽는 것처럼, 기도가 멈추면 영적으로 죽는 것이다. 사탄의 관심은 성도들이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기도 없는 성경공부, 기도 없는 봉사, 기도 없는 종교의식에는 안심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하면 사탄은 떨기 시작하고, 우리를 떠나간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기도하다가 중단하는 것이다. 자녀의 대학 합격을 위해 열심히 기도한다. 그런데 합격하면 기도를 중단한다. 대학 시험을 앞두고 있는 자녀가 타락하기 쉬운가? 대학에 합격한 후에 타락하기 쉬운가? 당연히 후자이다. 그런데 정말 기도가 필요할 때는 기도하지 않는다. 믿음의 기업을 세우기 위해 열심히 기도한다. 그런데 기업이 안정되면 기도하지 않는다. 기업을 세우기 위해 땀 흘려 일할 때에 유혹이 많은가? 장사가 잘 돼서 많은 돈을 벌 때 유혹이 많은가? 당연히 후자이다. 그런데 정말 기도가 필요할 때는 기도하지 않는다. 지금은 컴퓨터 클릭 시대이다. 클릭하면 원하는 정보가 금방 튀어나온다. 이러한 영향때문에 기도하고 나서 기다릴 줄을 모른다. 컴퓨터에서 클릭하는 것처럼, 기도하면 즉각적으로 응답이 와야 하는데 응답이 더디니까 기도에 대한 회의가 생긴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실까? 기도가 정말 필요할까? 기도의 본질은 정보의 획득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깊은 대화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위기를 만나도, 어떤 문제를 만나도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통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야곱도 기도로 위기를 축복으로 만들었다. 한나도 기도로 위기를 축복으로 만들었다. 모세도, 히스기야도, 다윗도, 에스더도, 바울도, 기도로 위기를 축복으로 만들었다. 위기속에 있다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우리는 기도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대부분 성경 한 구절에만 매달리며 균형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시고 몹시 힘들어하셨다. 고민하고 슬퍼하셨다.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극도의 고민과 슬픔을 기도로 해결하셨다. 기도하신 후에 달라지셨다.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신다. 상황이 바뀐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님을 잡아죽이려는 자들이 더 가까이 온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은 고민도 슬픔도 없었다. 오히려 고민거리를 향해 힘있게 나아가신다. 기도란 고민거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없애는 것이다. 예수님이 기도하셨지만 고민거리, 걱정거리는 그대로 있었다. 상황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마음이 바뀐 것이다. 기도하던 중에 고민도 사라지고, 걱정도 사라지고, 슬픔도 사라지고, 믿음의 용기가 생긴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효과이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브닌나로 인하여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서 슬퍼하며 울고 음식도 먹지 않았다. 남편의 위로도 소용없었다. 그러나 한나는 괴로워하고만 있지 않았다.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통곡하며 기도한다.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생각하사 아들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며 기도한다. 그리고 기도 후에 달라졌다. 돌아와서 음식을 먹었다. 얼굴에 근심 빛이 사라졌다. 한나가 기도하고 돌아오니 그를 괴롭히던 브닌나가 변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없던 아들이 바로 생긴 것도 아니다. 문제가 여전히 있는데도 기도하고 나니 내가 달라진 것이다. 기도의 능력은 내가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달라지고 나니 상황도 달라지고, 문제도 해결되었다. 기도는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것이다. 고통속에 있는가? 기도할때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가? 기도할 때이다. 사방팔방이 다 막혀있는가? 기도할 때이다. 전혀 소망이 없는가? 기도할 때이다. 나의 필요만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역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자. 상황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나를 바꾸어 보자.

김양규 2020-11-25

후진국일수록 감염성 질환이 많고, 선진국일수록 알레르기 질환이 많다는 통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이다. 알레르기 질환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을 보아서도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설수록 생활이 점점 편리해진다. 이전에는 전혀 불편을 못 느꼈던 것들이 옆에서 자꾸 불편하다고 부추기니 정말 불편한 것처럼 느껴져서 불편하지 않도록 고치고 또 고친다. 불편한 것들을 자꾸 고쳐서 편리하게 만든다. 선진국이라는 말을 자세히 보면 편리한 문명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은 견디지 못한다. 조금도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며 즉문즉답을 원한다. 전북 진안에 가면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샘’이 있다. 거기에 사는 100세 가까운 노부부는 매일아침 걸어서 샘으로 가서 물을 떠와서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마신다고 한다. 그 어느 집에나 있는 수돗물이 아니라 일 년 사시사철을 물 뜨러가는 구 시대적인 삶을 지금껏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지금도 팔다리가 건강하고 허리에 힘이 있으며 구부러지지 않고 머리도 총명하고 기억력도 왕성한 것을 TV를 통해 봤다. 대개 나이가 들면서 치매가 오는데 통계에 의하면 65세 이상의 노인 가운데 10%, 80세 이상 노인 중 20%가 치매환자라고 한다. 치매에 걸린 이들을 보면 대부분이 편한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 일찍 며느리를 보고 집안일을 며느리에게 맡기고 일손을 놓은 분들, 집안의 대소사, 식구들 식사문제까지도 며느리에게 넘겨버리고 편하고 편하게, 또 편하게 사는 사람들 중에 치매가 일찍 오고 많이 온다. 늘그막에까지 자신의 손으로 집안일을하고 밥을 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잔일을 처리하는 분들 중에는 치매가 올 겨를이 없다는 말이다. 손품 발품의 원리이다.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힘들고 불편하고 고되다는 측면에서 보면 한없이 그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 권장하는 것은 손품 발품의 원리 때문이다. 손품과 발품을 많이 팔지 않으면 우리 몸은 금방 못쓰게 된다. 허리가 아픈 사람들 중에 가만히 있어야 되는 사람은 10% 미만이다. 자꾸 활용해야 된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손·발품을 많이 팔아야 더욱더 건강해진다. 손품과 발품을 팔지 않고 편하게 무얼 얻으려고 하면 안 된다. 제일 좋은 음식은 제철에 나오는 음식이다. 필자는 매일아침 녹즙을 짜먹는다. 필자가 직접 장에서 녹즙거리를 구입해 다음날 새벽 운동 후 녹즙을 짜서 가족들 에게 다 마시게 한다. 일거리로 보면 한없이 많다. 시간도 걸리고 손·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지만 그 의미와 가치를 알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한다. 우리의 한 끼 식사도 밖에서 돈만 주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지만, 굳이 집에서 먹는 것은 좋은 재료에 깨끗한 음식을 먹기 위한 발버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은 건강을 위해 몸에 좋은 음식을 적극적으로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안 되는 것은 귀찮기 때문이다. 손품, 발품을 팔기 싫다는 말이다. 방법이 없다. 손·발품을 팔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다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생각지 않았던 병이 발병하는 건 모두 손품발품을 아꼈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렇다. 사람들을 점점 게으르게 만든다. 한없이 편리하게 이끈다면서 다른 한편으론 자꾸만 더 게을러지게 만든다.게으르다는 말은 자신들의 손품, 발품을 팔기 싫다는 말이다. 한방의서에서는 병이 나기 전에 미리 치료해주는 의사를 ‘신의’로 귀신같은 의사라고 한다. 그리고 약으로 하는 ‘약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음식으로 하는 ‘식치’라고했다. ‘의식동원’이라고 해서 약치와 식치가 같은 근원을 가진다고 했다. 우리가 큰 병에 걸리면 그때서야 이 약 저 약, 이 음식 저 음식을 구하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손·발품을 파는데 현명한 사람은 그 전에 미리 그렇게 행한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영적인 손·발품을 많이 판다는 뜻이다. 자기가해야 할 일과 함께 이웃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손·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는 말씀이 그 말씀이 아닐까.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다. 남들이 모두 편리함만을 추구하며 앞으로 나아갈 때 오히려 불편을 감수해서라도 건강을 위해 손·발품을 많이 파는 사람들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 다. 노력하고 투자한 만큼 반드시 돌아온다. 좋은 것으로 심으면 좋은 것을, 악한 것으로 심으면 악한 열매를 얻는다.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손·발품을 파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지혜가 새삼 강조되는 요즘이다.

김시우 2020-11-20

성자 예수님은 성경적 효의 모범을 보였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효를 실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에게는 구세주이시지만, 하나님 아버지 편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한 효자였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십계명 중 부모 공경 계명을 인용하며 바르게 가르쳤다(마 15:4~9, 막 7: 6~14 등). 효자 예수님의 부모 공경(효) 실천 모범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최성규 ‘효신학개론’ 참조). 1. 제5계명의 절대성 : 예수님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을 포함한 율법에 대한 자세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는 말씀 속에 잘 함축돼 있다. 2. 성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효의 모범을 보임 (1)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빌 2:6-8).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신적 위엄을 스스로 버리고 인성을 취함으로 성부하나님께 순종하시는 효의 모본을 보였다. (2)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아버지의 교훈을 인간에게 증거하셨다(요 7:16-17).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녔다. 그러므로 십자가 죽음 앞에서 인간과 동일한 고통 속에서 성부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 성부 하나님께 대한 어떠한 원망도 없이 모든 것을 아버지께 위탁하고 인간구원의 위대한 사역을 위해 순종으로써 죽음을 맞았다(눅 22:42). 3.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 (1)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을 도움으로써 효를 실천했다. (2) 예수께서는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모친의 소원에 대한 효를 실천했고(요 2:1-12), 십자가 죽음 앞에서 아들의 죽음에 따른 고통과 허전함을 생각한 예수께서는 제자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도록 부탁했다(요 19:27).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성경적 효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효를 생각하면 무슨 효인들 못할 게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이며, 효의 에너지이다. 효는 인간 행복을 위한 사랑의 명령이다. 예수님처럼 성경의 효를 실천하고 가르치자. 효가 살면 가정·교회·나라도 산다.

김양규 2020-11-19

우린 흔히 한약이라 하면 보약만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한약이라 하면 보약(補藥)인 줄만 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약에는 보약뿐 아니라 사약(瀉藥)도 있다. 여기서 사약이라고 하면 죽을 사(死)자가 아니라 ‘깎을 사’, ‘쏟을 사’를 의미한다. 보약은 허할 때 쓰는 약이요, 사약은 실할 때 몸을 깎는 약이다. 보약과 사약을 논하려면 먼저 ‘허증’과 ‘실증’을 알아야 한다. 한의학의 용어 중에 허증(虛症)과 실증(實症)이 있다. ‘허증’이란 허약하다는 말로 ‘원기가 부족한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원기가 부족할 때는 원기를 돕는 약을 쓴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보약이다. 간심비폐신(肝心脾肺腎)의 오장 중에 어느 곳의 원기가 부족한지 그 환부를 알아내어 처방을 한다. 보약이라고 다 같은 보약이 아니다. 병증에 따라 어느 부위를 보하는지 모두 다르다. 기가 허한 사람에게는 ‘사군자탕’, 혈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사물탕’을 쓰는데 기와 혈이 모두 부족한 사람에게는 ‘사군자’에다 ‘사물탕’ 즉 ‘팔물탕’을 쓴다. 팔물탕에 두어 가지를 더 넣으면 ‘십전대보탕’이 되고, 여기에 녹용을 가미하면 ‘녹용대보탕’이 된다. 한방의 보약개념은 이렇다. 반면에 실증도 있다. ‘실증’이란 원기가 강하다는 뜻이 아니라 사기(邪氣) 즉 병 기운이 가득한 것을 말한다. 그래서 사기가 가득할 때는 사기를 깎는 약을 쓴다. 그게 바로 사약이다. 사약이란 원기를 보하는 것이 아니라 사기, 즉 병 기운을 쳐내는 치료약을 말한다. 감기를 예로 들자면 감기 초기에는 열이 나고 온몸이 아프며 기침과 함께 콧물이 흐른다. 이때는 사기 즉 병 기운이 가득한 때이다. 이 경우 감기 치료를 위해 깎는 약인 사약을 쓴다. 사약은 오래 쓰지 않는다. 2-3일 정도면 끝난다. 하지만 감기가 오래도록 낫지 않고 별다른 증상 없이 잔기침만 나고 자꾸 피로해진다면 이때는 사약보다 보약을 쓸 때다. 즉 감기를 치는 약만 써서는 안 되고 원기를 북돋우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 이렇게 할 경우 원기가 회복돼 남아있는 감기기운을 퇴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허리가 아플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 실증일 때는 어혈과 담을 푸는 사약만을 쓴다. 하지만 오랜 기간 낫지 않아 허증에 빠지면 보약을 처방해야 한다. 원기를 도와주지 않으면 사약만으론 치료가 안 되기 때문이다. 모든 병이 다 같은 원리다. 깎는 약을 써야 할 때인가, 보약을 써야 할 때인가를 잘 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잘 하는 의사를 ‘명의’라고 한다. 한 마디로 허증과 실증을 가려내 보법과 사법을 적절히 해야 병이 치료가 된다. 오늘날은 옛날처럼 먹을 걸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오는 허증보다는 너무 많이 먹고, 피우고, 마셔서 오는 실증이 많다. 그래서 사실 실증을 치료하는 사약이 더 필요한 시대다. 약물요법 외에도 사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다이어트라든지 헬스는 모두 사법이다. 몸속에 가득찬 독소를 빼내는 요법이다. 이처럼 요즘은 바야흐로 사법의 시대다. 우리 몸은 허할 때는 원기를 보하고, 실할 때는 사기를 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육신도 이럴진대 영은 어떨까. 영에도 허증과 실증이 있다. 영의 허증은 어떤 것인가?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성분에서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온전한 성령의 열매가 못된다.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가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아홉 가지 성분이 골고루 깃들었을 때 비로소 열리는 아름다운 하나의 열매이기 때 문이다. 허증은 이들 중 어느 것이 부족한 상태이다. 어느 것이 부족한지 아는 진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강화·보충해줘야 한다. 그게 영혼의 보약을 써는 보법이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두 손을 벌린다. 영적 보약 처방을 기도하는 것이다. 영의 실증은 또 어떤 것인가. 실증은 영적인 무거운 짐이다. 제거해야 할 무거운 죄, 그 지고 있는 죄의 짐을 말한다. 실증의 치료엔 사법을 쓴다고 했다. 쳐내고 꺾어내고 잘라내고 떨쳐버리는 치료다. 그때 우리는 성령 안에서 새로운 다짐과 결심, 고백의 기도를 드린다. 이때 하게 되는 기도는 ‘주옵소서’가 아니라 ‘하겠습니다’라는 의지의 기도가 된다. 영혼이 살아야 육체가 산다. 살리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마 6:31~32)의 문제가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방인들은 거기서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르다. 하나님의 나라, 그분의 의에 생명을 건다. 거기에 모든 것이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다루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이영훈 위임목사 2020-11-15

요즘 어느 신문, 어느 방송을 봐도 감사를 고백할만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귀에 들리는 소식들은 우리를 두렵고, 우울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이야기들뿐이다. 벌써 10개월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전 세계 약 5,000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도 약 130만 명이나 생겨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년 하반기로 예상되는 백신과 치료제 보급이 이뤄질 때까지 현재의 확산세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신체적, 경제적 피해를 당했다. 연쇄 작용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두워지며 심리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급증했다. 그렇다고 사회 다른 분야에서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빈부의 격차는 오히려 심해지고, 정치권의 권력 다툼도 여전하다. 북한의 도발은 끊이지 않는데다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상승한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서민들의 신음이 깊어져만 가고 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감사할 일이 없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감사할 것을 요구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감사에있다. 그런데 주변에 고난만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이러한 요구는 부당하고 무리한 것처럼 생각된다. 우리는 감사가 어떠한 사건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 감사가 일종의 감정이라면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해서, 특히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일들에 대해서 감사할 수 없다. ‘감정’으로서 고난에 대해 감사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평판을 의식한 거짓된 모습일 것이다. 감사는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다. 좋은 일이 다가올 때나, 어려운 일이 다가올 때나 감사의 태도를 가진 사람은 감사로 그 일에 반응한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에게 훌륭한 감사의 모범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 바로 400년 전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청교도들이다. 그들이 마주해야 했던 삶의 자리엔 분명 지금 우리가 마주한 어떠한 고난에도 비교하기 어려운무겁고 힘겨운 고난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낯선 환경 속에서 질병과 굶주림 그리고 원주민과 야생 동물의 위협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무려 44명의 사람들이 추위와 기아로 사망했다. 그들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자녀들, 부모,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음 해 곡식을 뿌려 수확한 뒤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그들이 감사한 것은 단지 수확물에 대한 것만 아니었을 것이다. 농사일에 서투르고 노동력이 부족했던 그들이 거둔 수확은 감사하기엔 너무 적었다. 그들은 여전히 굶주렸으며, 혹독한 추위가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허락된 모든 시간과 상황을 선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믿음 때문이다. 감사의 태도는 모든 일이 합력해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에서부터 나온다. 오늘날 고난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할 뛰어난 정책이나, 새로운 기술, 막대한 지원이 아니라 400년 전 선조들이 소유했던 감사의 태도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에서 고난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난 가운데 매몰돼 원망과 불평 가운데 살지 말자.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감사의 태도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만이 빛 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정용구 선교사 2020-11-12

코로나로 인해 많은 변화가 찾아 온 2020년이 어느덧 서서히 겨울로 진입하고 있다. 매년 이때쯤은 서서히 한해를 마감하고 내년을 계획하는구상들을 시작하는 시기다. 올해는 코로나의 장기화로 내년을 계획하는 것이 불투명한 시기가 됐다. 이러한 시대를 살고 있는 선교사들도 내년을 계획하는 일이 쉽지 않다. 선교지로 가는 항공편이 조금씩 열리지만, 선교지의 생활이 안정권으로 자리를 잡기에는 위험부담과 변수가 많은 시기다. 이에 필요한 일들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선 지금까지 자신의 사역에 대한 정리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사역들, 관계된 사람들, 기도편지, 사역사진, 후원해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인사,자신의 사역지에 대한 연구 자료 등을 시간적 여유를 두고 정리를 해 보는 것이다. 정리를 통해 자신과 사역들을 돌아보고, 더욱 분명한 계획을 세우는 디딤돌이 될 수 있는 귀한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특징으로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집안 장식에 관련된 인터넷 홈페이지나, 핸드폰 어플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심지어 TV 프로그램에서는 ‘집을 정리 정돈해 주는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시청률이 서서히 높아진다. 실제로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은 정리정돈이 안된 연예인들의 집을 ‘집 정리 전문팀’이 방문해서 집안과 살림들을 살핀 뒤에 제3자의 입장에서 산뜻하게 정리를 해 준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이다. 이 ‘신박하다’라는 뜻은 ‘이틀 밤을 머물다’라는 원래의 뜻보다도 ‘새롭고 놀랍다’란 뜻을 지닌 신기하면서도 참신한 경우에 사용되는 ‘신조어’가 됐다. 실제로 정리된 자신의 집을 보면서 집 주인들은 감탄사를 이어간다. 이 프로그램은 제3자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공간을 보거나 더 새롭게 정리를 잘 할 수 있다는 취 지를 가지고 있다.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많은 사역으로 인해 정말 제대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러 선교사역 가운데 꾸려진 짐이나, 선교용품들, 계속적으로 누적되는 스케줄로 인해 후속 조치를 못한 많은 일들이 널려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코로나 기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고, 무엇보다 영적으로 주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얼마 전 KWMA에서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 제작된 방송에서 “코로나로 힘든 것도 많았지만, 너무 바쁘던 아빠가 쉼을 가져서 좋다”라는 선교사 자녀의 이야기가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불투명해진 코로나 이후의 사역에 대해서 성급하게 뭔가 쫓기듯이 계획하기보다는, 오히려 이 기간을 차분하게 자신의 삶과 선교사역을 돌아보고 정리하기를 기대한다. 이는 선교사만이 아니라 후원교회와 파송단체도마찬가지다. 그동안 제대로 선교사를 잘 후원했는지, 파송한 선교사를 위한 지원과 동역을 제대로 했는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재점검해야 한다. 선교에 대한 신박한 정리를 통해서도 이전에 보지 못한 선교자원이 발견되고, 선교 동력도 발견될 수도 있다는 기대해 본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가 길어지는 의외의 상황에서 많은 ‘정답’들이 나올 수 있다.

김양규 2020-11-11

사람의 수명은 정해진 것일까. 질병에 걸리는 것과 건강은 운명이나 숙명일까? 아니면 자기하기 나름일까?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하나님의 섭리로 푼다. 하지만 신의 뜻이라는게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모른다는 말과 같다. 사람의 죽음의 원인으로는 ‘생활습관’ 50%, ‘생활환경’ 25%, ‘사고’ 5%이며 ‘유전’이나 ‘체질적인 이유’는 20%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20%만 선천적인 이유이며 후천적으로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당하는 것이 무려 80%라는 뜻이다. 평소에 환경이나 습관을 조심해서 관리하면 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 죽음을 애매하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죽음뿐 아니라 병도 그렇다. 병에 잘 걸리는 체질에 대해 선천적인 이유를 말하지만 그것도 사실 불과 20%에 불과하다. 어느 사람이든 그 가계에 이런저런 유전적인 소인이 없는, 완벽히 건강한 집안이 어디 있을까? ‘격세유전’이라고 해서 한 세대로 뛰어 넘어 유전되는 것도 있는데 그것까지 포함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모든 병에 걸릴 DNA는 항상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노력과 관리 때문으로 봐야 한다.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나쁜 음식, 독한 음식을 먹으면 몸속에 그대로 쌓여 병이 된다. 좋은 음식, 맑고 깨끗한 음식을 먹으면 몸이 또 건강하게 된다. 지금 당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일정한 임계의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몸으로 드러나게 된다. 평소에 운동을 하고 몸 관리를 하는 사람은 그게 다 몸으로 드러나서 병치레를 하지 않으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지만 평소에 이런저런 무리수를 두는 사람은 때가 되면 다 몸으로 나타나서 결국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성격이나 혈액형도 2대 8의 원리가 타당하다.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 있는 비율은 20%, 후천적인 교육이나 자기계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은 80%다. 유전적이거나 또는 체질적인 연약함은 후천적인 자기계발과 학습으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평소에 성결의 훈련을 하는 사람과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맺히는 열매가 다르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성경말씀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임상을 하면서 내린 결론은 사람의 질병이나 수명은 성품에 갇힌다는 것이다. 건강관리와 수명관리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말이 맞다. 성격이 느긋하고 부드러운 사람은 대체로 오래 살고, 늦게까지 건강을 유지한다. 2대 8의 원리에서 당연 8이 중요한데 그건 곧 생활습관과 환경이다. 생활습관과 환경을 바꾸면 지금보다 훨씬 건강해지고 오래 살 확률이 80%는 더 된다. 성경에 보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도 염려, 걱정, 근심하는 시간에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신령한 그리스도인은 근심과 걱정을 기도로 대신하기에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지만 믿음이 적은 이는 기도 대신에 근심과 걱정, 염려와 불안, 긴장으로 이어진다. 감사와 기쁨이 없다. 결국 구조의 문제이다. 구조가 바뀌어야 기능이 좋아지는데, 구조를 고치지 않고 기능만 기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의학에서는 우리의 몸이 기와 혈로 이뤄져 있다고 본다. 기(氣)는 원기 즉 생명력이고, 혈은 피를 포함한 모든 수분이다. 기는 항상 가볍게 팽팽 잘 돌아야 건강하고, 혈은 항상 맑고 깨끗해야 건강한 법이다. 그래서 건강한 생활습관과 환경은 기를 가볍게 하고, 혈을 맑게 하는데 주안점 을 둔다. 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는 기가 가벼운 음식을 먹고, 그러한 생각과 말은 물론 그러한 감정을 가져야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만큼 기를 가볍게 하는 일은 없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기가 가볍게 되는 일은 없다. 혈을 맑게 하려면 약 알칼리성의 음식을 담백한 상태로 적게 먹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네 입맛을 자극하는 것은 모두 설탕, 소금, 기름기가 많이 들어가 있다. 이런 음식들은 맛은 있지만, 피를 탁하게 만들어 만병의 원인이 된다. 아무리 기가 가벼워도 혈이 맑지 못하면 허탕이다. 중년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피 때문에 생기는 병이 많다. 피가 탁해져 생기는 병들은 곧바로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심근경색, 뇌경색, 당뇨, 고혈압, 동맥경화증등은 사실상 모두 피와 관련된 질병들이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다. 성전을 성전답게 건사하기 위해 우리는 신령한 연습을 해야 한다. 성경은 그것을 ‘거룩’이라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건강’이라 말한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 의하면 ‘살리는 것은 영’이다. 영이 살아야 육이 산다. 영이 죽으면 육도 죽는다. 영적으로 거룩하고 깨끗해지면 그 영혼이 거하는 집인 몸은 자연히 깨끗하고 건강해진다. 건강도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한다. 디모데전서에 있듯이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 육체의 연습과 경건의 연습을 많이 함으로 건강연습도 함께 이뤄가는 멋진그리스도인들이 됐으면 참 좋겠다.

김시우 2020-11-11

최근에 ‘성경적 효’에 대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성경적 효’란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성경의 말씀 실천이 결여된 것이 큰 약점이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등에서처럼 성경은 말씀순종, 사랑실천을 강조한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는 행함을 등한시했다. 야고보서 2장 26절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증거 한다. 이신칭의의 교리를 선포하는 로마서도 12장부터는 구원받은 성도가 일상적인 삶에서의 방향성에 대해 다룬다. 그러나 최근 사회에서 행함이 없는 기독교인들을 보고 오히려 교회를 걱정한다. 이때에 의식 있는 기독인들이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해법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목회 신학자인 바클레이는 현대의 위기는 신학적이나 철학적인 문제가 아닌 도덕의 문제, 윤리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교회가 늘어나고 목사와 성도의 숫자는 많은데도 비난을 받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교회에서 시대에 맞게 바로 가르치지 못하거나, 예수사랑과 사랑실천을 좀 더 체계화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목사들의 설교가 ‘기도와 믿음’의 중요성 총론만 외치고, 구체적 행함의 각론 제시가 없다. 하나님의 도덕법인 십계명 즉 대신(對神)계명과 대인(對人)계명을 바로 가르치고 지키지 못한 연고다. 성경은 ‘명령’과 ‘약속’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분의 약속을 믿는 것이 바로 성경적 효이다.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설립자 최성규 목사는 성경 속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7대 실천’항목으로 구체화했다. 1.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김, 2. 부모·어른·스승공경, 3. 어린이·청소년·제자사랑, 4. 가족사랑, 5. 나라사랑, 6. 자연사랑·환경보호, 7. 이웃사랑·인류봉사.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모범을 보이신 것이다. 이제 각 가정의 (조)부모와, 교회의 목회자들이 성경7효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칭송을 받아 개인이 잘되고 장수하고(엡 6:2-3) 교회도 부흥(행 2:47)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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