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정 기자2018-09-27

기자는 최근 기독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C작가를 인터뷰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섭외 요청 과정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C작가는 기자에게 "데일리굿뉴스가 이단이 아닌지"를 먼저 물었다.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그는 "이단들이 저희 만화를 가지고 장난을 쳐서요"라며 "초면에 죄송하지만, 섭외나 작품 관련 문의 연락을 받으면 꼭 이단인지 아닌지 확인하기로 작가들과 합의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를 직접 만난 자리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C작가는 몇 년 전, 성인만화가에서 기독만화가로 전향하면서 G사이트에 기독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고료는 따로 받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지인으로부터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의 작품이 이단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화내용도 이단의 교리 내용으로 바뀌어 인터넷에 게시돼 있다는 이야기였다. C작가는 그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분해서 손이 떨린다고 했다. 당시 그는 작품을 올린 사이트에 연락했지만, "변호사를 직접 고용해 법적 소송 절차를 밟는 것이 대응책"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해 봤지만, 그 때 당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삼류작가가 도와달라고 외치는 목소리에 누구 하나 들어주지 않았다고 작가는 회상했다. 이와 관련 본지는 C작가의 기독만화가 여전히 이단관련 사이트에서 활용되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이 이단으로부터 도용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약 6, 7년 전 일이기도 했고, 당시 C작가가 이단에 도용됐다는 증거자료를 따로 보관해 놓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가 말 한 해당사이트는 현재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작가들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했다. 2007년 즈음 기독만화가의 길을 걷게 된 K작가 역시 온라인사이트에 만화를 연재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작품이 신천지에 무단 도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2013년에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고 한다. K작가의 작품이 신천지만화로 바뀌어 업로드 된 사이트는 현재 해당 게시물을 삭제한 상태다. 이에 본지는 K작가가 이단사이트에서 캡쳐한 도용된 만화 이미지를 원작 만화와 비교해 봤다. 확인 결과, 2007년도에 그가 연재한 원작만화의 그림체와 이단만화로 쓰이고 있다는 제보 속 그림체가 완벽히 일치했다. 원작만화 속 말풍선에는 K작가가 쓴 기독교적 고백 이야기가 실려 있었지만, 도용된 만화에서는 이단 정체성과 교리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2011~2012년 사이 왕성하게 활동을 했던 H작가의 작품도 여전히 신천지관련 사이트에서 쉽게 검색되고 있다. 원작을 그대로 게시하고, 제목만 달리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은, 이단에 대한 두려움과 물질적·시간적으로 어려운 환경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K작가는 "기독만화가들은 작품활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그런 우리가 법적인 절차에 따라 시간과 경비를 들여 대응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라고 호소했다. H작가는 "이단에 대한 워낙 흉흉한 소문이 많기에 무서워서 항의 전화도 못했다"며 "개인이 어느 이단집단을 대상으로 잘못된 것을 지적하기에는 겁이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독만화가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의논하고 대처하기 위한 자체모임을 갖고 있다. 작가들은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을 지키는 노력이 최선이라고 여기며 개선책을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이들의 이야기는 몇 년 전에 발생한 일이다. 최근에도 이런 일들이 지속 되는지는 아직 확인 되지 않았지만, 기독교만화 콘텐츠가 이단에 무방비로 노출된 현실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기독교만화 콘텐츠 도용문제는 저작권 문제와도 직결되는 만큼 구체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민성식 기자2013-07-23

지난 22일 종교교회당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부산 총회 100일 맞이 상임위원회 및 제6차 기도회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총무 김영주 목사가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참석, 격려사를 맡았다. 이로써 김총무의 WCC 부산 총회 한국준비위원회(KHC) 집행위원장 복귀가 공식화 됐다. 지난 2월4일 이른바 ‘1.13 공동선언문’ 사태로 사퇴한 지 137일 만이다. ‘주도권 탈환’ 위해 결단 김 총무의 집행위원장 복귀는 KHC와 국내 4개 WCC 회원 교단 등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는 김 총무 자신의 결단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다. 김 총무가 스스로 복귀를 결단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짚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김 총무는 자신이 집행위원장에서 빠져 있는 상황이, 부산 총회 준비에 있어서 ‘주객이 전도돼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WCC 총회는 아무리 ‘복음주의 계열의 참여’를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최대의 에큐메니칼 축제’인데도 불구하고, 그 준비 과정에서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끌고 있는 교회협 총무가 빠져 있다는 것은 부산 총회의 에큐메니칼 특성을 희석시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부산 총회의 준비와 참여에 있어서 누가 ‘주체’가 돼야 하는가 하는 질문과 연결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복귀의 두 번째 이유가 됐다. 즉, 부산 총회의 준비와 참여에 있어서 주체는 교회협과 회원 교회, 그리고 에큐메니칼 진영이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김 총무가 집행위원장에서 빠져 있는 상황은, 이같은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시키고 있다고 본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부산 총회를 위해 지원됐거나 지원될 예정인 23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국고 보조금에 대한 관리와 집행이 이원화돼 있는 지금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국고 보조금은 교회협 법인인 한국기독교 연합사업유지재단의 통장으로 입금돼 유지재단 이사장인 김 총무의 결재가 있어야 인출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보조금을 사용해 예산을 집행하는 것은 KHC이다. 그러나 만일 보조금을 사용하고 향후 정산하는 과정에서 ‘털끝만큼’의 문제라도 생긴다면, 그 책임은 모두 교회협이 져야 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말하자면, 자칫 교회협은 부산 총회를 위해 받은 국고보조금을 사용해 보지도 못한 채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김 총무는 집행위원장에 복귀해 자신이 준비 실무의 전반적인 과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함으로써 회원 교단과 에큐메니칼 진영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동시에 국고 보조금 등 예산 집행과 관련된 문제점도 해결해 나가려는 복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김총무의 의도는, KCH 측에 제시한 복귀의 ‘전제조건’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김 총무는 자신이 복귀 문제와 관련, 최근 김삼환 상임위원장과 박종화 준비위원장 등 KHC 인사들을 만나 세 가지의 전제 조건을 제시했다.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4개 WCC 회원 교단 총무와 나아가 WCC의 회원이 아닌 교회협 회원교단 총무들도 참여하는 ‘집행위원회’를 KHC 안에 구성할 것 △실무를 위해 WCC 중앙위원이자 실행위원인 정해선 교회협 국제위원회 컨설턴트를 사무차장으로 KHC 사무국에 배치할 것 △ 교회협과 KHC 사이에 국고보조금의 사용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것 등이었다. 난데없는 ‘공동 사무차장’ 체제 따라서, 김 총무가 그리고 있는 ‘복귀의 효과’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 세 가지 전제조건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고, 또 그것이 향후 부산 총회를 준비해 나가는 과정에서 김 총무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인지를 판단해 봐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김 총무의 의도는 첫 단계부터 꼬여 가고 있는 형국이다. 우선 지난 22일 아침, 정동 달개비에서는 KHC 상임위원회 임원회가 열렸다. 이 자리는 KHC가 공식적으로 김 총무의 조건을 받아들여 이날 오전 11시에 열리는 ‘부산 총회 100일 맞이 상임위원회 및 제6차 기도회’에서 김 총무의 복귀를 공식화하고 MOU를 체결하기 위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두 번째 조건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김 총무의 요구에 따라 정해선 컨설턴트를 사무차장으로 임명하기로 결의하면서, 김삼환 상임위원장의 요구에 따라 고세진 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도 함께 사무차장으로 임명하기로 전격 결의해 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서, KHC내에 정해선과 고세진이라는 두 명의 사무차장이 공존하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는 결국 김영주 집행위원장과 정해선 사무차장, 그리고 조성기 사무총장과 고세진 사무차장이라는 이원 구조가 언제든 대립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해선 사무차장과 함께 KHC의 실무를 주도적으로 챙겨 보려던 김 총무의 의도가 출발부터 벽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MOU가 체결되는 과정에서는 더 심한 난맥상이 드러났다. 원래 김 총무와 KHC의 계획은 11일 오전 6차 기도회가 끝난 직후 체결식을 갖고, 이 자리에서 김 총무의 ‘복귀의 변’도 발표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MOU의 초안을 받아 본 교회협 직원들이 ‘이런 내용으로는 안 된다’며 문제를 제기, 결국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문구를 수정한 뒤 체결식을 갖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에 따라 6차 기도회가 끝난 직후 체결식을 갖는 것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김 총무 역시 기도회가 끝나고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지금은 힘들고 저녁에나 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식사 직후 KHC 측에서는 ‘체결식을 곧 할 예정이니 기자들은 대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기다림이 있은 후 체결식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교회협 직원들은 “누구도 MOU의 최종 문구를 보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김 총무는 직원들이 ‘문제가 있으니 문구를 제대로 다듬을 때까지 기다리자’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약간의 수정을 거친 뒤 ‘체결’을 강행했던 것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서명한 내용이 제기된 문제들을 충분히 수용하고 있다면 상관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종 서명된 MOU의 내용은, KHC를 ‘갑’, 교회협을 ‘을’이라고 칭한다는 내용만 빠졌을 뿐 나머지 부분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김 총무가 무엇에 떠밀렸는지는 몰라도,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둘러 서명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위험한 불씨’ 그대로 안은 채... 교회협 직원들이 제기하는 MOU의 내용상의 문제는, “전반적으로 돈은 KHC가 쓰고 책임은 교회협이 진다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책임과 관련된 부분을 보다 세심하게 다듬을 필요가 변호사에 의해 제기됐음에도 김 총무가 이를 무시하고 서둘러 체결을 강행했다는 게 교회협 직원들의 불만이다. MOU의 성격에 대해서도 김 총무와 KHC 측의 생각이 크게 다르다는 것 역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체결식이 끝난 직후 김 총무는 “결제 시스템 등과 관련된 부속 합의서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김삼환 상임위원장은 이 말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부속 합의서는 필요없다”고 잘라 말했다. MOU에 대한 양측의 상반된 입장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결국 사무차장을 임명하는 일이나 MOU를 체결하는 일 등에 있어서, 이를 통해 주도권을 회복하고 재정 문제도 챙기려 했던 김 총무의 의도는 그 첫 단추부터 제대로 꿰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따라서 김 총무는 집행위원장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밖에서 계속했던 힘겨운 싸움을 안에서 계속해야만 하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회협 직원들의 불만은 불만대로 높아져 있어, 이들을 다독이고 이끌어 가는 일 역시 떠안게 됐다. 문제는, 사무차장 임명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직원들이 ‘미루는 것이 좋겠다’고 한결같이 반대한 MOU의 체결을 서둘러 강행한 김 총무의 ‘속내’를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사퇴를 몰고 온 ‘1.13 공동선언문 사태’의 재판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결정적인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김 총무의 집행위원장 복귀와 MOU 체결 안에 숨어 있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사실, 김 총무가 기대했던 ‘에큐메니즘의 복원 내지 주도권 회복’과 ‘재정운용의 투명성’이라는 두 가지 전제는 이미 ‘1.13 공동선언문 사태’와 ‘2600만원 무단 인출 사건’으로 그 뿌리째 흔들렸다. 따라서 김 총무가 두 가지의 전제를 회복하기 원했다면, 먼저 이 두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리를 먼저 하고 넘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김 총무가 복귀하는 과정이나 MOU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이 전제들을 실현하려는 김 총무의 의도는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이는 결국, 향후 유사한 사태가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위험한 불씨를 그대로 안은 채, 김 총무는 다시 KHC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민성식 기자2013-07-19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김영주 총무의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 한국준비위원회(KHC) 상임집행위원장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일까? 결론은 그렇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만, 당사자인 김 총무는 ‘아직 생각 중’이라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 열린 교회협 제 61회기 제3차 실행위원회 회의 말미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신복현 위원은 “김 총무가 상임집행위원장에 조건 없이 복귀해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박수로 정리하자”고 제안했고, 위원들이 이에 대해 박수로 화답했다. 실행위원회서 김영주 총무 복귀 공식 제기 물론 이 제안이 실행위원들에 의해 박수로 받아들여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김 총무 자신은 이에 대해 어떤 분명한 입장도 공식적으로 표명하지 않았다. 회의 후 기자들의 집중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겠다”고 원론적인 대답만 내놓았을 뿐이다. 김 총무가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한 다는 것은, 이른바 ‘공동선언문’ 사태로 촉발된 교회협을 포함한 에큐메니칼 진영과 KHC 사이의 ‘결별’이 공식적으로 종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결별’은 그동안 ‘투 트랙 구조를 통한 부산 총회 준비’와 이를 전제로 한 ‘WCC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를 교회협이 구성한 것으로 구체화됐다. 따라서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복귀가 거론되기 위해서는, 공동선언문 사태가 종식되기 위한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 그런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총무의 복귀가, 그것도 교회협 실행위원회라는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김 총무의 상임 집행위원장 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사퇴 이후 지금까지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의 발원지는 주로 KHC 상임위원인 국내 4개 WCC 회원교단 교단장들이었다. 그리고 일부이긴 하지만, 4개 교단 총무들 중에서도 ‘협의회적 과정의 복원’을 이유로 복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김 총무 자신은 이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근본적으로, 복귀를 한다 해도 자신과 4개 교단 총무들이 분명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 총무의 이같은 생각에 동의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교회협 실행위원회가 ‘WCC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 구성을 결의한 것은, 적어도 교회협 주변에는 ‘복귀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협력위원회’는 김 총무가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하지 않은 상태에서 에큐메니칼 진영과 함께 총회에 필요한 준비를 해 나가기 위한 일종의 ‘공동전선’이었던 셈이다. 이 ‘공동전선’이 가능했던 이유는, 국고보조금을 비롯한 부산 총회 준비를 위한 예산이 교회협의 재단인 한국기독교 연합사업 유지재단의 통장을 통해 입출금되고, 따라서 유지재단 이사장인 김 총무가 예산의 인출과 집행에 대한 ‘결재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KHC의 조바심이 표출된 사건이 바로 ‘2600만원 무단 인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주 총무, 이미 마음 굳힌 듯 그런데, 이 ‘공동전선’에 어느 날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동전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협력위원회에서 김총무의 복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심지어 윤길수 위원장마저도 공식적으로 ‘복귀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김 총무의 ‘복귀 불가’를 외치던 4개 교단 총무들 역시 ‘복귀의 필요성’에 동조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18일의 실행위원회에서 김총무의 ‘복귀 제안’ 발언을 한 인물이 바로 가장 강하게 ‘복귀 불가’를 외쳤던 인물이라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이것은 결국, KHC 측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김 총무의 복귀를 위한 ‘포위작전’을 시작했고, 그 대상은 협력위원회 주변을 비롯한 ‘복귀 불가론자’들이었으며, 이들이 차례로 그 포위작전에 의해 설득을 당했음을 의미한다. 김총무 역시 이런 부분에서 많은 외로움을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총무에게 불리하게 돌아간 분위기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른바 ‘2600만원 사건’ 이후 여론은 오히려 김 총무에게 불리하게 흘러갔다. 다시 말해서 ‘대사를 앞두고 돈을 갖고 대범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돼 갔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총무는 국고 보조금 사용과 관련해서 일말의 문제라도 생긴다면 그 책임을 모두 교회협이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차라리 자신이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하는 것이 오히려 그런 문제의 소지를 없애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 총무는 18일 실행원회 직후 개인적인 자리에서 ‘그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는 복귀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김 총무는 사실상 2600만원 사건 이후 상임집행위원장 복귀 쪽으로 상당부분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사건 직후 김삼환 KHC 상임위원장과 박종화 준비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고, 이 자리에서 세 가지의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조건은 첫째, ‘공동선언문’에 대해 김삼환 상임위원장과 김 총무가 함께 유감을 표명하는 ‘공동의 문서’를 발표하자는 것과 둘째,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할 경우 4개 교단 총무가 공동집행위원장 등의 형식으로 함께 참여하는 것, 그리고 김 총무가 지명하는 실무자 한 사람이 KHC 사무국에 동행하는 것이었다. 한편, 실행위원회 당일인 18일 아침에 열린 교회협 회원교단장 회의에서 김 총무는 상임집행위원장 복귀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김 총무의 발언에서 ‘공동의 문서’와 관련된 이야기는 빠져 있었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말하자면 ‘복귀’는 기정사실화 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공동선언문에 대한 입장 표명은 복귀 조건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행위원회 석상에서 마침내 ‘김 총무의 조건없는 상임집행위원장 복귀’ 제안이 나왔다. 하지만 사실상 마음을 굳힌 김 총무는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아직 생각중’이라는 입장만 공식적으로 내놓았을 뿐이다. 과연 김 총무의 복귀는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방식’의 복귀가 지니는 의미와 파장은 무엇일까? 결국 이렇게...‘모양 빠지는’ 복귀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총무의 복귀는 이제 ‘누구나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것이 됐다. 하지만, 김 총무 스스로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주변에 의해 ‘조건 없는 복귀’가 제안됐다는 점에서, 복귀를 하더라도 ‘상당히 모양이 빠지는 복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공동의 입장 표명’이 빠졌다는 점이 지적될 필요가 있다. 사실 김 총무가 공동선언문의 폐기를 선언하고 상임집행위원장을 사퇴한 것은 스스로 ‘속죄염소’가 돼 에큐메니칼 진영을 위로하는 동시에, 투 트랙의 준비구조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김 총무가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한다는 것은 투 트랙의 구조가 ‘원인무효’ 됐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공동선언문 사태에 대한 정리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그래야 이로 인해 상처를 받았음에도 김 총무라는 ‘속죄염소’를 믿고 총회 준비에 참여했던 에큐메니칼 진영에게 계속 참여할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총무는 이 과정을 생략하려 하고 있다. 이는 에큐메니칼 진영에게 상당한 혼란과 상처를 동시에 안겨 주는 일이다. 이에 대해 김 총무는 ‘만일 김삼환 위원장과 함께 공동선언문 문제를 다시 거론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신이 김 위원장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복귀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결정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공동 문서를 발표함으로써 김 상임위원장의 복귀 요구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김 총무가 사태와 상황을 ‘정 반대로’ 해석하고 있는 부분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김 총무는 복귀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판단하고도 이를 자신의 분명한 입장으로 발표하지 않고 실행위원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그것도 현장에서 가타부타 분명한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채 ‘아직 생각 중’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이는 어쩌면 김 총무 자신도 복귀의 ‘명분’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에 복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지금이라도 복귀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목표와 전략을 분명하게 수립하고 복귀를 선언해도 늦지 않다. 지금 김 총무의 복귀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는 쪽’은 오히려, ‘명분’과 ‘돈 문제’를 함께 챙겨야 하는 KHC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주변의 목소리에 떠밀리는’ 형식으로 은근슬쩍 복귀하고 넘어가는 것은 KHC의 ‘포위 작전’에 항복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전략도 이념도 없는 백기 투항’이라는 불만이 교회협 실무진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성식 기자2013-08-0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김영주 총무가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 한국 준비위원회(KHC) 집행위원장에 복귀함에 따라, 그동안 교회협의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 KHC로 이원화돼 있던 부산 총회의 준비과정이김 총무와 회원교단 총무들로 구성되는 ‘집행위원회’로 일원화되는 과정을 밟아 가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교회협 실행위원회가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를 구성하고 또 이 협력위원회의 결의에 의해 교회협과 KHC 사이의 ‘실무협의회’가 구성된 것은, 김 총무가 KHC 밖에서 부산 총회 준비 과정을 챙겨야 했던 상황, 다시 말해서 ‘투 트랙’ 구조의 총회 준비가 불가피한 상황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총무가 집행위원장에 복귀함으로써 이런 상황은 사실상 ‘원인 무효’가 돼 버렸다. 이는 결국, 김 총무가 직접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KHC 사무국이 실무를 하나하나 챙길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김 총무는 지난 29일 오전 KHC 사무국의 보고를 받기도 했다. KHC의 실무를 챙겨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 김 총무만은 아니다. 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회원교단 총무들 역시 같은 입장에 놓이게 됐다. 지난 31일 열린 총무단 회의에서는, 집행위원회에 교회협 가맹 9개 교단 총무는 물론, KHC에 참여하고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측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무도 참여시키기로 했다. 다시 말해서, 국내 11개 교단 총무들이 부산 총회 준비과정을 직접 챙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부산 총회 준비를 둘러싸고 두 가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하나는, 그동안 외부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KHC의 예산 수립과 운용 계획이 사실상 공개돼 교단 총무들의 직접적인 검증을 받게 됐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투 트랙’을 전제로 구성된 교회협의 ‘부산 총회 협력위원회’와 ‘실무협의회’의 필요성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이미 31일의 총무단 회의에서도 제기됐다. 이날 회의에서 총무들은, “KHC가 정한 교단 분담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것은 교단 분담금이 적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KHC가 교단과 아무런 협의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분담금을 책정했고, 교단들은 사실상 이 금액을 책임지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KHC가 책정한 교단 분담금은 총 26억5000만원에 달한다. 구체적으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8억원, 기독교대한감리회 6억원, 한국기독교장로회 3억원, 대한성공회 1억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5억원,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측 3억원, 그리고 기타 교단 5000만원 등이다. 이 중 이제까지 예장 백석측이 3억원을 모두 납부했고, 나머지 교단들은 기하성 2억원, 감리교 3억여원, 통합측 1억원 등 일부만 납부한 상태다. 따라서, KHC가 책정한 교단 부담금이 뜻대로 걷히기는 이미 힘들어진 상황인 듯 하다. 그러나 더 문제는, 교단 분담금 이외에도 KHC가 잡고 있는 ‘수입’ 계획이 지극히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KHC가 잡아 놓고 있는 수입의 총액은 69억 5000만원. 이 중 앞에서 말한 교단 분담금 26억5000만원과 정부 지원금 23억원을 제외한 20억원은 ‘준비위원회 임역원 분담금’12억원과 ‘다양한 모금목표’를 통한 8억원의 모금을 통해 조달하는 것으로 돼 있다. ‘준비위원회 임역원 모금’으로는, 50명의 상임위원장단으로부터 7억원을 모금하고, 250명의 임역원으로부터 5억원을 모금한다는 것이 KHC의 계획이다. 그러나, 이미 상임위원의 수를 128명으로 늘여 놓은 상황에서 존재감이 없어진 ‘상임위원장단’이 모금에 참여할 것인지도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250명에 이른다는 ‘임역원’도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게다가, 과연 KHC가 이 불분명한 대상들을 상대로 ‘모금을 위한 노력’을 했는지도 미지수이다. 이는 8억원을 잡고 있는 ‘다양한 모금목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KHC의 계획에 의하면, 1000개 교회와 300만 기도운동 회원, CMS 회원 및 기관 단체를 대상으로 3억원을 모금하고, CBS와 CTS, C 채널 등 언론을 통한 공동 모금 캠페인을 통해 5억원을 모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000개 교회와 300만 기도운동 회원이 과연 존재하는지도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부산 총회 개회를 100일도 남겨두지 않은 지금 CBS 등 방송을 통한 모금 캠페인 계획도 잡혀 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모금목표’는 아직까지 허수로 남아 있는 것이다. 결국 KHC가 이제까지 잡아 놓고 있는 예산 수입 계획은, 23억원의 정부 보조금을 제외하고는 대폭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더 심하게 말한다면, 정부 보조금과 향후 줄어들 교단 부담금을 빼놓고는 사실상 기대할 만한 수입원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KHC의 지출 계획 역시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12억9156만3600원에 달하는 ‘예비비’이다. 이는 총 예산 69억5000만원의 18.6%에 해당하는 것으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비율이다. 게다가 제대로 모이지도 않는 프로그램위원회의 회의비와 식사비가 2억5650만원이나 잡혀 있다. KHC 측에서도 이같은 예산 계획상의 허술함을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30일 열린 총무 회의에 참석한 KHC 측의 한 인사는 교단 분담금 현실화 요구에 대해 “지출 계획이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므로 그런 부분을 조정하면 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렇게 치밀하지 못한 KHC이 예산 운용계획이 앞으로 집행위원회를 통해 어떻게 수정되고 또 집행될 것인지의 문제가 관심거리로 떠오르게 됐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예산상의 수치에 국한된문제가 아니라, 사업 내용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라는 점에서, 당초 KHC가 계획하고 있던 사업이 어떤 형태로 변경될 것인지도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것이 사업의 목적이나 의미와 관련된 논란으로 이어질 경우, 그 파장은 훨씬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반도 평화 프로젝트 프로그램의 경우, KHC가 잡고 있는 예산은 2억원이지만, 이 중 국고에서 지원할 예정인 예산은 ‘홍보물 제작’을 위한 8000만원 뿐이다. 이는 평화열차 등의 프로그램에 국고를 거의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가뜩이나 예산 규모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논란을 피해 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교회협과 KHC 사이의 사업 협력 등을 위해 구성된 협력위원회와 실무협의회의 계속 존재 여부가 관심거리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두 기구의 존재 필요성은 사실상 ‘원인무효’가 됐지만, 앞으로 계속 사업 내용에 대한 조정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두 기구의 존속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두 기구의 활동이 논란 등으로 인해 난관에 봉착했을 때, 이에 대한 보고를 받고 방향을 정해줘야 할 교회협 실행위원회가 부산 총회 직전인 오는 10월 셋째 주에나 열린다는 사실, 그리고 실무협의회를 통해 합의된 사항 역시 총무들로 구성된 집행위원회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 등을 감안한다면, 두 기구가 존속한다 하더라고 그 역할은 지금보다 대폭 축소될 수 밖에 없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민정 기자2018-11-21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리더십 교체가 잇따라 화제다. 소망교회와 거룩한빛광성교회는 민주적인 절차로 후임을 확정했고, 지구촌교회는 담임목사가 선교를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도 담임목회자의 퇴임 소식을 알렸다. 이재철 목사는 18일 고별설교를 마친 후 경남 거창으로 낙향했다. 그는 성도들에게 “나(이재철)를 철저하게 버리라”고 거듭 강조했다. ‘적당히’가 아니라 ‘철저하게’ 버리라 했다. 그래야 자신의 떠남이 완결될 수 있다면서. 이들의 선택이 주목 받는 이유를 새삼 말할 필요가 있을까. 한쪽에선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하는 한 장로교회가 세습으로 떠들썩한 이 시점에, 이들의 용단은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성경 말씀이 있다. 당연한데 지키기가 쉽지 않다. 다름 아닌 교회가 그 증거다. 그래서 씁쓸하다. 하지만 희망을 본다. 누군가는 ‘내 것’이라며 당연하게 누리는 기득권을, 홀연히 내려놓고 물러서는 이들이 있어서. 누군가는 ‘움켜쥐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는 것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떠나가는 이들이 있어서. 양화진에서 20여 년 간 살아온 이재철 목사가 경남 거창으로 내려간 건 어떤 연고가 있어서가 아니다. 후임목회자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게 첫 번째 이유고, 땅값이 싸다는 게 또 다른 이유란다. 돈을 모으지 않는 부부의 형편을 고려해 평당 10만 원인 땅을 찾다 거창에 정착하기로 했다고. 물론 이 목사는 은퇴 예우금도 일체 받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 사는 8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겠단 뜻을 밝혔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명예로운 퇴장은 ‘내려놓음’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이들의 내려놓음이 한국교회를 넘어 이 사회를 선하게 물들이는 생수의 강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혜정 기자2018-11-07

"하루하루 믿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영적으로 방황하고 넘어지는 내 자신을 들여다 보게 돼 눈물이 멈추지 않아요." , "신앙 때문에 박해 받으면서도 끝까지 복음을 전한 바울의 믿음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던 관객들의 소감이다. 현재 상영중인 영화 <바울>은 이 시대 크리스천들에게 '믿음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바울이 처형 당하기 직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신앙 고백하는 장면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바울이 기독교 박해자였던 때 핍박했던 스데반과 기독인들, 그리고 예수님이 천국에 입성한바울을 환영하며 맞이하는 장면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회복과 안식의 시작이라는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 <바울>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담대한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순교한 그의 노년기를 조명하고 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30년(서기 67년), 기독교 박해가 극심했던 시기다. 로마제국의 황제 '네로'는 자신의 광기로 벌어진 대화재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리고, 교인들을 짐승들의 먹이로 삼거나 불태우는 등 핍박을 가한다. 이 가운데 초대 교인들은 두려움과 공포감에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현실의 어려움 앞에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는 등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내적으로 흔들리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준다. 이들의 영적 지도자 바울은 네로의 명령으로 감옥에 갇히고 사형만을 기다리고 있다. 바울의 동역자이자 의사 누가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교인들의 믿음을 격려 해 줄 수 있는 이가 바울이라 믿고 찾아간다. 영화는 바울의 일생과 신앙적 조언을 사도행전으로 기록하며 신앙적으로 성숙해 가는 '누가'를 관심있게 조명한다. 한편, 로마에서 은신처를 마련하고 신앙공동체를 이끄는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 기독교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희생한 초대 교인들의 삶까지 다양한 신앙인들의 모습을 다룬다. 바울은 방화범이라는 누명을 쓴 채 로마제국의 폭력을 당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오히려 사랑으로 맞서라고 조언한다.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바울> 영화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복음 선포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열정을 감동적으로 녹여낸다. 예를 들어, 바울은 자신의 참수형을 집행해야 하는 교도소장 모리셔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모리셔스는 바울의 제안을 따라, 딸의 병을 누가에게 맡긴다. 딸의 병이 낫자, 모리셔스는 바울에게 감사를 전하는데, 이에 바울은 "주님의 복음이 전해졌기 바란다"고 대답한다. 익히 잘 알려져 있듯이,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알기 전 로마 시민권을 가진 비기독교인이자 기독교 박해자였다. 그러나,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면서 이방인의 사도로 임명되고, 초대교회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성경 계시의 저자 40여 명 가운데 가장 많은 책을 저술한 저자기도 하다. 성경 66권 중 최소 13권은 바울이 쓴 책이다. 그는 복음 전도를 위해 히브리식 이름 '사울'에서 로마식 이름 '바울'로 스스로 바꾸고, 이스라엘을 넘어 로마와 에베소, 고린도, 빌립보 등 세계를 다니며 전도여행을 했다. 오늘날의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등 아시아와 유럽지역에 기독교 전파를 위해 헌신한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최초의 선교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죽음을 이기는' 믿음과 사랑, 용서다. 아울러 '어떠한 현실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점에서 오늘날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개개인의 신앙을 돌아보게 한다. 사도 바울처럼 영웅적인 죽음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영역에서 복음으로 인해 감사하고 사랑하며, 용서를 실천하는 것이 이 시대 믿음의 여정을 걷는 크리스천들이 이어갈 순교정신 아닐까.

김신규 기자2018-10-31

1517년 10월 31일은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회당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날이다. 당시 가톨릭교회의 로마 성베드로대성당 신축자금 마련을 위해 일반 신자들로부터 죄를 사해준다는 ‘면죄부’를 파는 행위와 같이 교회의 잘못된 부조리와 죄악들에 대한 토론을 요청했던 루터의 당초 의도는 종교개혁의 큰 횃불로 불타올랐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거창하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작은 하나의 불씨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역사의 흐름을 바꿨을 정도로 위대했다. 그리고 500년이 흘렀다. 한국교회는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행사는 행사로 그쳤을 뿐, 그 후 1년이 흐른 한국교회는 여전히 개혁의 대상으로 손색(?)이 없다.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의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모 대형교회의 세습은 한국교회는 물론 비기독교인들로부터 온갖 조롱과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정작 해당 교회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해당 교회와 관련해 드러나는 각종 추한 모습들을 부끄러워하기보다 교회를 흔들려는 ‘마귀’의 세력들에 의한 공격으로 치부했다. 자신들을 향해 자성을 촉구하는 쓴소리를 한 뜻있는 교계 인사들과 목회자들의 목소리는 물론 수많은 한국교회의 성도들을 ‘사탄의 종’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종교개혁 500주년은 분명 의미가 남다르다. 그래서 그 참 의미를 되돌아보고 진리 사수를 위한 새로운 다짐과 새 출발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만,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에 외형적으로 무엇인가를 보여줘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일까? 다양한 행사와 퍼포먼스에만 치중해왔다는 느낌이 든다. 수많은 성도들이 모인 가운데 기념예배를 드리고 학술대회를 하는 등 종교개혁의 의미부여에 치중했지만, 정작 기념예배에서의 환상의 화음을 자랑하는 찬양과 회개의 부르짖음을 보여주는 울부짖는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듣기 싫어하는 ‘소음’이 된 것만 같다(사 1:11). 지난 2007년의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행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초의 좋은 목적과 취지는 하나의 ‘보여주기식’ 퍼포먼스로 막을 내렸을 뿐 이후 한국교회의 변화된 모습은 없었다. 지난 2014년 원로목회자들이 주축이 돼 보여줬던 ‘한국교회와 목회자 갱신을 위한 회초리기도대성회’는 한국교회 개혁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퍼포먼스의 결정판(?)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원로목회자들은 한국교회의 분열과 타락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회개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잘못된 현상들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회초리를 들고 스스로 자신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나 기자의 눈에는 그저 하나의 ‘코미디’ 같았다. 한국교회를 깨치는 데 일조했다기보다 한국교회를 ‘희화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도 한국교회의 모습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고, 한국교회의 신뢰성은 지속적으로 땅에 떨어졌다. 진정한 각성과 회개가 없는 가운데 억지로(?)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한 몸부림을 보여주려는 퍼포먼스의 결과론인 것만 같아 씁쓸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의 거대한 퍼포먼스 이후 1년이 지났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한국교회가 완전히 망하는 것이 그나마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인내의 섭리는 무엇일까. 그야말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낮은 곳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음에도 묵묵히 복음사역을 감당하는,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의 남겨진 선지자들’과 같은 헌신자들 때문이 아닐까?

윤인경 기자2018-10-26

열여섯 살 전후의 젊은 나이를 의미하는 이팔청춘(二八靑春).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라는 말처럼 혈기왕성한 젊음이 떠오르는 단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이팔청춘들, 청소년들은 아프다. 종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은 각종 스트레스와 불만을 잊어버리려 스마트폰에만 시선을 고정한다. 이에 청소년 사역자들의 고민도 깊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기독 청소년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 주일에 잠깐 중고등부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게 현장 사역자들의 목소리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가 기독교교육주간을 맞아 마련한 교육정책 팁세미나에서 만난 P 목사는 강연 내내 노트북으로 쉴 새 없이 타이핑하고 있었다. 세미나실을 가득 채운 주일학교 교사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전라북도 군산의 한 교회에서 사역하는 그는 이번 세미나에 참석하려고 이른 새벽부터 올라왔다고 했다. 청소년에 대한 그의 절실한 고민은 무엇일까. P 목사는 학교 심방을 통해 발견한 아이들의 모습이 교회에서와는 너무나 달라 놀랐다고 털어놨다. 교회에서는 믿음이 좋다고 생각했던 학생들이 또래들과 함께 어울리는 학교에서는 거침없이 욕을 하는 등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는 것. 주일학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그는, 청소년 사역이 교회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매일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울 용산구 충신교회의 중고등부 사역은 이러한 P 목사의 가려운 부분을 제대로 긁어준 듯 했다. 충신교회에서는 가정예배와 온가족기도회 등을 통해 믿음의 가정을 세우는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청소년 사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강연을 맡은 우충만 목사는 초기 한국교회에서는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인에게 어떠한 교회 직분을 부여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18년 창간된 기독교 월간지 '성경잡지' 창간호에는 가정예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는 글이 무려 10여 쪽에 달했다. 해당 글에서는 가정예배를 드리는 집의 자녀는 완전한 교육을 받는 것이며,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은 작은 천국을 이루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1933년 창간된 감리회보 7월호에도 신앙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정예배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이 실렸다. 한국교회 역사 속에서 신앙의 선배들이 가정예배를 통해 기독교 문화의 대를 이어온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다. 갈수록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지난해에는 심지어 '저에겐 당신의 전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전도거부카드가 등장하기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아이들과 어린 학생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복음은 여전히 힘이 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녔기에 더 감동적이고,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한국교회의 다음세대를 살리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은 수없이 제기돼왔다. 다양한 캠프와 수련회, 프로그램을 고안해보지만 그 어느 것도 뾰족한 수가 되지 못하는 가운데, 가정 안에서 부모가 신앙을 전수하는 가정예배가 바로 다음세대를 세우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연희 기자2014-04-28

거대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헬기 한 대가 앉았다 다시 왔던 길로 서둘러 돌아간다. 이때 중년으로 보이는 부부가 서로 팔을 잡아주며 헬기가 앉았던 부근 간이천막 속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여자의 애절한울부짖음이 터져나온다. 일순간 저녁을 준비하는 자원봉사자, 카메라를 만지던 기자, 길을 지나던 사람들 사이 정적이 흐른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생때같은 자식이 차가운 주검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안다. 이제는 주검을찾은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는 것을 말이다.애 끓는 어미의 울부짖음을 들으며한편으로는 ‘그래도 저 부모는 아이를 찾았네...’라고 안도해야 하는 잔인한 현장에서모두가 그만 고개를 떨군다. 세월호 침몰 10일을 넘기고 있는 진도 팽목항의 상황이다. 단 한명의 생환자 없이 주검만 늘어 실종자가 사망자보다 적어진 지금, 팽목항은 정적이 감돌고 있다.생존에 대한 간절함은 초동 대처에 미흡했던 정부에 대한 분노,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변했고, ‘이제 제발 시신만이라도 찾게 해달라’는 애원으로 바뀌어 속울음을 삼키고 있는 중이다. 감리교 호남서연회 김두현 목사(진도교회)는 “사고 수습 기간이 길어지면서 풍경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기 자식이 아닌것에 안도했다면, 지금은 죽은 자식 찾아 장례식장으로 떠나는 유족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외로움, 두려움이 이들에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점점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내 자식은 영영 찾지 못하는 것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이들에게 있다. 매일 새벽 5시 기도회를 하면서 찾아오는 이들을 위로하고 기도해주고 있다” 김두현 목사는 감리교 호남서연회 전남서지방 소속으로 진도체육관 옆에 마련된 감리교 부스에서 생수, 생필품 등을 나눠주고 있다. 사고 3일 동안은 로만칼라를 착용하고 현장에 찾아가 조심스럽게 가족들에게 다가가 기도하며 보냈다고 했다. 부스 안에는 여기저기 기도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권사, 집사, 장로 등기독인 가족들이 찾아와 실종자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쪽지에 적어 남기고 갔다. 그 중에는 ‘000 시신 수습 감사합니다’란 메모도 눈에 띄었다. 여기서 만난 한 실종자 친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외로움이 있다. 2학년 8반 손주녀석이 아직이다”라고 말했다. 사고 지점과 좀더 가까운 팽목항에서 만난 한 실종자 가족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습되는 시신도 줄고 애가 탄다. 어제도 해수부장관이 찾아왔기에 몰려가서 크게 항의했다. 그러고 나니 시신이 좀 더 오는 것 같더라”라며 속절없는 불신을 드러냈다. 실종된 단원고 2학년 2반 김00 학생의 큰엄마란다. 처음에는 아이 부모가 함께 내려왔는데, 중학교 아들이 혼자 안산에 있는 것을 힘들어해서 엄마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정부쪽에선 인양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기간도 길어지고, 그나마 수색작업도 중단된다. 시간이 없다. 조금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때.....” 진도를 찾은 25일. 그 다음날부터 사고 지점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비가 오고 수색도 중단됐다고 했다.‘이번에는 내 아이가 나오지 않을까’하는 바람이 자꾸만 물거품이 되고 있는 셈이다. 오랜 기다림으로 지치고 희망을 잃은 가족들에게서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누군가 안타깝게 말했다.잔인한 시간이 흐르고 있는 지금, 교회는 뭘해야 할까 묻고 또 묻는다. 오늘로 사고 13일째를 맞으며 사망자가 거의 190명에 가까워졌다. 점차 사람들의 시선도 합동분향소가 세워진 안산으로 향한다. 그렇지만 가족을 기다리는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팽목항에 눈을 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절망 속에 불신과 외로움, 우울감,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곁에서함께 울며 기다려주는 것이 남은 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110여명의 학생과 어른들이 진도 앞바다에 갇혀있다. 한국재난구호 조성래 목사는 “실종자 가족에게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될 시점까지 팽목항에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옆에 조용히 있어주며 안아주고 들어주는 일 밖엔 할 게 없다. 기독교가 잘 할 수 있는 게 바로 이런 것 아니겠나. 그냥 들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 ▲팽목항에는 전국에서 보내온 기도편지가많았다. 사진은 한게시판에걸려있는응원의 메시지ⓒ뉴스미션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거처인 진주실내체육관모습. ⓒ뉴스미션

민성식 기자2013-06-23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총무 김영주 목사)는 지난 20일 유성에서 지역 교회협과의 간담회를 갖고, 지역 교회협의 활성화와 지역 교회협과 교회협의 관계 설정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현재 지역 교회협은 부산과 강원 등 전국 9개 지역에 구성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과거 군사정권 시절 ‘지역 인권위원회’ 형식으로 조직돼 지역 교회협으로 발전했다. 다시 말해서 공교회성보다는 운동성을 위주로 조직됐던 것이다. 게다가 조직 단위도 ‘랜덤’ 그 자체다. 부산 같은 광역시가 있는가 하면 정읍 같은 소규모 지역도 있다. 조직 방식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지역 교회협은 그 지역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대변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협은 1년에 한두 차례씩 지역 교회협 관계자들을 초청, 간담회 등을 갖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오곤 했다. 간담회 때마다 지역 교회협이 교회협에 요청하는 것은 한가지로 요약된다. 중앙과 지역의 연결고리를 공식화해 달라는 것이다. 지난 20일의 간담회에서도, 지역 교회협을 담당하는 상설 위원회를 교회협 안에 설차해 달라는 의견과, 교회협의 프로그램 위원회에 지역 교회협 대표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지역 협의체의 참여는 필수적이고도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중앙에서 정책을 수립하면, 이 정책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회원 교단과 그 교단에 속한 지역의 개교회들이다. 그런데 이 연결고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지역 협의체이다. 다시 말해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역 협의체가 교회협의 논의 구조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협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미 이 문제를 두 차례나 논의했으나 그때마다 엉뚱한 이유들 때문에 무산됐다. 이 문제가 처음 다뤄진 것은 지난 1990년대 초반. 지역 협의체의 대표를 실행위원회와 총회에 참여시킨다는 내용의 정관 및 세칙 개정안이 총회에 상정됐다. 그러나, 정족수 미달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표결조차 하지 못했다. 정관 개정안을 다룰 수 있을 만큼의 총대가 자리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06년, 당시 ‘교회협 발전과 개혁을 위한 특별 연구위원회’가 지역 협의체 대표를 총대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은 ‘개혁안’을 완성했다. 그러나 일부 교단의 반대로 지역 협의체 대표의 총대 참여는 개혁안에서 제외됐다. 당시 일부 교단들은 왜 여기에 반대했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지역협의체의 ‘구성’에 있었다. 사실, 지역 교회협은 그 구성이 지역에 따라 매우 들쭉날쭉이다. 교회협의 회원 교단이 모두 참여하고 있는 지역도 드물 뿐만 아니라, 비회원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 지역도 많다. 따라서, 이런 지역 협의체가 임의로 총대를 파송할 경우, 교회협의 ‘공교회성’이 손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역 협의체의 조직 과정과 특성을 도외시한 것이다. 그토록 공교회성이 중요하다면, 애초부터 지역 협의체를 창립할 때 공교회성을 충족시키도록 교회협이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든지, 아니면 그런 들쭉날쭉한 조직이 ‘지역 교회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을 막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운동을 위한 조직으로 구성될 때에는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다가, 정작 논의기구에 참여하려 할 때에 와서야 문제를 삼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지역 협의체의 논의구조 진출을 막은 ‘진짜’ 이유는 뭘까? 그것은 아무래도 ‘교단 이기주의’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현재 교회협 실행위원과 총대의 수는 세칙으로 정해져 있다. 큰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각 교단들이 차지하고 있는 ‘점유율’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 협의체가 총대를 뽑아 파송할 경우, 이 ‘점유율’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물론 지역 협의체의 ‘들쭉날쭉한 구성’에 있다. 말하자면, 교단들은 현재의 점유율이 변하거나 비회원 교단이 논의구조에 참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역협의체의 역사와 특성을 도외시한 것인 동시에, 지금의 교회협 운영방식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현재 교회협 실행위원회에는 CBS를 비롯해서 대한기독교서회와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 그리고 한국 YMCA 전국연맹의 대표가 ‘회원 연합기관의 대표’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CBS나 서회에는 교회협 회원 교단이 아닌 교단도 참여하고 있다. YMCA의 경우는 아예 공교회 기구도 아니다. 따라서 지역 협의체의 대표를 배제했던 2006년의 논리는 지금에 와서는 전혀 맞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교회협은 지역 협의체의 대표를 하루 속히 논의 구조에 참여시키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가 언제 다시 시작될지는 지금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역 협의체를 교회협 논의구조에 포함시켜야 하는 ‘진짜 이유’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지역 교회협은 ‘협의체’라기보다는 ‘운동성’을 전재로 한 ‘운동체’로 조직된 것이다. 따라서 그 구조와 운영방식은 ‘공교회 협의체’인 교회협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협의체인 교회협은 그 구조상 운동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교회협도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그 취약한 운동성을 보강하기 위해서는 지역 협의체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서 운동성의 강화를 위해서는 협의체적 구조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연합기관을 회원으로 받아들인 것 자체가 교회협으로서는 협의체적 구조를 상당부분 양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협이 한 실무자는, “운동성과 협의적 구조를 동시에 갖추기 원한다면 ‘이중구조’가 불가피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결국, 갈수록 약해져 가는 교회협의 운동성을 강화하기 위해 협의체적 구조에 대한 심각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재고‘의 내용 속에는 지역 협의체 뿐만 아니라 에큐메니칼 진영에 속한 바닥 운동단체들의 문제도 함께 포함될 수밖에 없다.

민성식 기자2013-06-10

한국의 대표적인 장로교단 중 하나인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가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표면적으로 보면 기장의 탄생은 한국 장로교회의 두 번째 분열의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1907년의 평양 대부흥운동 이후 한국 장로교회의 주류로 자리를 잡은 이른바 ‘개인적 내세적 구원관을 중시하는 보수 신앙과 신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신앙과 신학운동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기장60주년이갖는의미 이 같은 ‘새로운 신학과 신앙의 태동’에는 장공 김재준 목사와 조선신학교(한신대 전신)가 가리잡고 있다. 그는 송창근, 채필근 목사 등과 함께 1938년 조선신학교를 설립했고, 당시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한국 장로교회의 총회 인준 신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1940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조선신학교를 총회 직영 신학교로 인준한다. 그러나 일부 신학생과 신학자들은 김재준 목사의 신학 노선과 교육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1947년에 열린 제 33회 총회에서는 재학생 51명이 김재준 목사의 신학적 성향과 성경관을 문제 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이듬해인 1948년에는 장로회신학교가 재건되고 이듬해인 1949년에 열린 제35회 총회에서는 장로회신학교도 직영 신학교로 인준, 결국 한 교단에 두 개의 직영 신학교가 공존하게 됐다. 하지만 1951년 제 36회 계속총회는 조선신학교의 직영 인준을 취소했으며, 다음해인 1952년 제 36회 총회에서는 김재준 목사에 한 면직안과 조선신학교 출신 목회자에 대한 불채용안이 가결됐다. 나아가 1953년의 제 37회 총회에서는 면직 결의가 재확인되기에 이른다. 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치달은 것이다. 결국 같은 해 6월 김재준 목사를 지지하는 조선신학교 측은 조선신학교 강당에서 ‘법통 제38회 총회’를 열고 ‘복음의 자유, 신앙양심의 자유, 자립자조의 정신, 세계교회 정신’을 표방하는 새로운 교단을 창립했고, 이듬해 교단 명칭을 ‘대한기독교장로회’로 개칭했다. 오늘날의 ‘기장’ 교단이 탄생한 것이다. 기장이라는 교단의 탄생은 당시 내걸었던 슬로건처럼 ‘복음의 자유, 신앙양심의 자유, 세계교회 정신’을 모토로 하는 ‘새로운 진보적 장로교단’이 한국에도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기장의 탄생은,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를 기치로 탄생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측과 함께, 그동안 한국 장로교단에서 무수하게 벌어졌던 ‘교회 분열’과는 다른 차원에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기장의 이 같은 출범 정신은 내부적으로는 ‘사회참여의 신학’으로,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비롯한 에큐메니칼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에큐메니칼운동의 ‘하나님의선교 신학’을 적극 수용, 이를 다시 사회참여의 신학에 적용했다. 1970년대 이후 기장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배경에는 ‘사회참여의 신학’과 ‘하나님의 선교신학’이 자리 잡고 있었단 것이다. 1970년대는 한국교회가 대규모 부흥운동을 통해 급격한 성장을 이룬 시기이기도 했지만, 국가조찬기도회의 시작에서도 볼 수 있듯 당시 박정희 정권과 교회 사이의 ‘정교유착’ 역시 고착화되던 시기였다. 그 결과, 1970년대 말의 이른바 ‘긴급조치’와 ‘10월 유신’으로 대변되는 폭압적 독재 정권 아래에서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같은 인권 유린 사태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장의 교회들과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을 바탕으로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리고 기장의 이같은 경함은 ‘민중신학’으로 집약됐으며, 이것은 나아가 1980년대 꽃을 피운 ‘민중교회운동’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1980년대 들어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뒤, 기장의 사회 참여는 민주화 인권운동과 민중선교운동에서 그치지 않고, 평화통일운동으로까지 넓혀져 갔다. 이것은 민주화를 위한 근본적인 요건이 민족 자주성의 회복과 이를 통한 분단체제의 극복이라는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후 기장은 1980년대 들어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연구를 계속, 1987년까지 두 번에 걸쳐 평화통일문서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기장의 이같은 사회 참여는 큰 희생을 불러 왔다. 무엇보다 기장에 대한 독재 정권의 탄압이 극심했다. 박형규, 문익환 목사 등 목회자는 물론이고, 수많은 한신대 학생과 교단 청년들도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교단 소속 교회들 역시 탄압의 대상이 됐다. 노상예배를 드려야 했던 사울제일교회 사태나, 송암교회 본당 최루탄 투척 사건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큰 희생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교단의 성장이 완전히 침체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기장 교회에 대한 정권의 탄압과 공작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교회의 보수화와 대형교회 중심주의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러자 기장 내에서도 사회 참여에 대한 비판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그것은 성령운동과 교회 성장을 우선시하는 목회자 그룹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지금에 와서는 기장 소속 교회들 중에서도 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처럼 교회 성장을 중시하는 경향이 갈수록 기장의 주류적 경향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 성장을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해 기장이 출발 당시부터 내세웠던 신학적 신앙적 정체성, 다시 말해서 이른바 ‘기장성’이 엷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잆다. 왜나하면, ‘기장성’은 기장이라는 한 교단의 정체성에서 머무르지 않고, 70년대와 80년대 이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외치며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예언자적 자세를 견지했던 한국 그리스도인 모두의 신앙고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앙고백이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도 바로 ‘신학과 신앙양심의 자유’를 내세웠던 기장의 창립 이념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의 현대 교회사에서 기장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이다. 보수적이고 내세적인 신앙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풍토 속에서, 기장은 그리스도교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를 제시하고 실천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창립 60주년을 맞는 기장은 지금 ‘기장성의 재건’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기장 총회가 6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선언문은, 지금의 상황에서 어떻게 ‘기장성’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이것을 제대로 실천해 나가면서 예전과 같은 동력과 에큐메니칼 지도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기장에게 맡겨진 몫이다, “우리의 기장성에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분리도 있을 수 없다. 한국 기독교 일각에서는 지금도 구원의 본질은 오직 개인의 영혼구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구원은 개인 영혼에 국한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개인과 사회만 아니라 온 우주를 포함하는 구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와 지구의 모든 문제를 신앙의 문제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민성식 기자2013-05-27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김영주 총무가 공식적으로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 한국 준비위원회(KHC)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지만, 교회협 교단장들이 이에 대해 다시 ‘복귀를 권고’하고 나섬으로써, 부산 총회 준비를 둘러싸고 교회협 내부에서 ‘엇박자’가 나타나고 있다. 교회협 내의 ‘엇박자’ 김영주 총무가 ‘상임집행위원장 복귀 불가’ 의사를 처음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지난 13일 ‘WCC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가 모인 자리에서였다. 이것은 결국, KHC와는 상관없이 이 협력위원회를 중심으로 국내 4개 WCC 회원 교단과 교회협 회원교단, 그리고 에큐메니칼 진영이 함께 부산 총회를 준비해 나가는, 이른바 ‘투 트랙’ 구조를 공식화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김 총무는 같은 날 이같은 뜻을 담은 서신을 회원 교단장들에게 발송했다. 이 서신에서 김 총무는, “부산 총회가 본래의 에큐메니칼 전통을 계승하고, 특히 한반도와 아시아에서 생명·평화·정의의 신앙고백을 실현하는 역사적인 총회가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이것은 교회협 실행위원회가 구성해 주신 ‘WCC 제10차 부산총회 협력위원회’를 통해서 실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총무는 교단장들을 직접 만나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지난 20일 회원 교단장들을 서울 시내의 한 음식점으로 불렀다. 그러나 애틀랜타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통일 협의회에 참석했다 돌아오는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정작 김 총무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고, 대신 교회협 실무자들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교단장들은 다시 한 번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복귀를 권고’했다. 그리고 오는 6월1일 다시 한 번 회원 교단장 총무 모임을 갖기로 했다. 말하자면, 김 총무의 결단에 교단장들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교단장들이 다시 한 번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복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투 트랙’ 구조가 현실화되는 것은 결국 WCC 총회를 유치해 놓고 한국 교회가 갈라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서, 김 총무가 상임 집행위원장으로 복귀하고, 그를 통해 KHC의 ‘협의회적 구조’를 복원해 총회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같은 교단장들의 뜻은, 어떻게 보면 교회협 실행위원회의 결의를 번복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KHC가 보여 준 행보와 이에 대한 교회협 차원의 대응을 되짚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KHC, ‘협의회적 과정 복원’ 계속 거부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복귀 권고’가 처음 나온 자리는 지난 4월6일 열렸던 ‘교회협 회원 교단장 총무 긴급 연석회의’였다. 그런데 이날 모임에서 김 총무의 복귀를 권고한 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국내 4개 WCC 회원 교단 총무들과 김 총무, 그리고 조성기 KHC 사무총장 등 6인이 ‘공동 집행위원장단’을 구성, KHC의 사업과 예산을 직접 관리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4월23일 열린 KHC 상임위원회는 이같은 결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총회 장소를 부산에서 서울로 옮기는 방안을 연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협의회적 과정의 복원’을 원했던 교회협 회원교단들의 뜻을 송두리째 무시한 KHC의 ‘도발’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로 인해 4월25일 열린 교회협 실행위위원회에서는,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하기에 이른다. 이 위원회는 원래 ‘지원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제안된 것이었지만, KHC의 행보에 분노한 실행위원들이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KHC에 대한 대책을 포함해서 부산 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이름도 ‘협력위원회’로 바꿔 통과시킨 것이다. 사실상 이로써 교회협은 ‘투 트랙’의 준비 과정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바로 이틀 전에 있었던 교단장 총무회의의 결정 사항이었던 ‘김 총무의 상임집행위원장 복귀 권고’가 이날 실행위원회에서는 사실상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 것이다. KHC가 멋대로 총회 장소를 서울로 옮기는 일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김 총무가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한다 해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그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협력위원회’를 구성해 총회 준비를 해 나간다는 결의를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날 실행위원회에서는 ‘김 총무의 상임 집행위원장 복귀’와 ‘투 트랙을 전제로 한 협력위원회의 구성’을 맞바꾼 것이다. 교단장들이 다시금 ‘김 총무의 상입 집행위원장 복귀를 권고’하는 것이 실행위원회의 결의를 번복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김 총무의 상임 집행위원장 복귀는 근본적으로 KHC 내에 ‘협의회적 과정’을 복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KHC는 그동안 계속해서 이를 거부해 왔다. 이것은 지난해 11월 KHC가 조직을 개편하면서 ‘실행위원회’를 삭제함으로써 국내 4개 WCC 회원교단 총무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면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리고 이른바 ‘공동선언문 사태’로 김 총무가 상임 집행위원장을 사퇴한 이후에도 ‘협의회적 과정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회원교단들로부터 계속 제기돼 왔지만, KHC는 철저하게 이를 외면했다. KHC는 지난 3월26일 열린 상임위원회를 통해 조직의 확대 개편을 결의했으나, 여기에 회원교단 인사들을 참여시킨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복귀 불가’ 선언은 ‘거부’에 따른 선택 결국 김 총무의 ‘상임위원장 복귀 불가’ 선언은 KHC의 계속되는 ‘거부’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기 싫어서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김 총무가 복귀하지 못하는 이유는 김 총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KHC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김 총무의 상임 집행위원장 복귀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본질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교단장들이 모르고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교단장들만이 알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실들이 있다. 먼저, 만일 교단장들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면, 지난번 교회협 실행위원회에서 김 총무의 복귀 문제를 슬그머니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분명하게 김 총무에게 복귀를 권고했어야 했다. 그러나 교단장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교회협 회장이자 KHC 상임위원장의 한 사람인 김근상 주교가 김 총무에게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 나도 상임위원회에서 빠지겠다는 뜻을 밝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교단장들 중 적어도 김근상 주교의 경우는, 김 총무의 복귀는 의미가 없으며 나아가 KHC 상임위원회 역시 함께 총회를 준비할 파트너가 되기 힘들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근상 회장을 비롯한 교단장들은 김 총무에게 다시 한 번 상임집행위원장 복귀를 권고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교단장들이 사태의 본질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오는 6월1일 모임에서 다시 한 번 거론된 뒤 분명한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동안 KHC가 보여 준 행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설사 김 총무가 교단장들의 권고에 따라 상임집행위원장에 복귀한다 하더라도, 교단장들이 원하는 것처럼 KHC내에 협의회적 과정이 복원돼 총회 준비 과정을 국내 4개 WCC 회원교단들이 관장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KHC는 4개 교단이나 에큐메니칼 협의과정과는 상관없는 인물들로 상임위원회를 확대 개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총무가 복귀하고 예전에 거론됐던 6인의 ‘공돋 집행위원장단’이 구성된다 하더라도, 확대 개편된 상임위원회의 ‘산하 기구’가 될 수밖에는 없다. 실질적으로 KHC의 예산과 사업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기 힘들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교회협 실행위원회가 결의한 바대로 WCC 부산 총회를 위한 협력위원회를 중심으로 에큐메니칼 진영과 대해 총회의 내용을 채워 나가기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부산 총회의 중요한 ‘호스트’ 중 하나인 교회협 내의 WCC 비회원교단들의 소외를 막기 위해서는 이런 구조가 더욱 절실하다. 결국 지금의 상황에서는 교단장들의 결단에 따라 교회협이 총회를 준비해 나가는 방향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김 총무는 이미 결단을 내렸지만, 아직까지 교단장들은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 고민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교단장들 스스로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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