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계 기자2018-04-06

그의 삶에는 여러 은인들이 있다. 신앙적으로는 기도의 삼겹줄로 엮여 있는 부모님과 외할머니, 그리고 에드나 어머니가 계신다. 특히 에드나 어머니는 하나님과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들었다. 처음 에드나 어머니를 만났을 때를 잊지 못한다. 처음 어머니를 만났을 때 부자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직업은 편의점 직원이었고 태어나서 한 번도 비행기를 타 본적이 없는 미국의 소시민이었다. 45년간 매달 보내온 15달러는 그녀에게는 큰돈이었다. 조 교수는 이때 어머니의 후원금이 성경 속 과부의 두 렙돈과 같은 것임을 깨달았다. 잊지 못하는 사람들 또 다른 사람은 노벨상 수상자인 바루크 블럼버그 박사다. 그는 간염 바이러스를 최초로 발견하고 백신을 개발한 인물이다. "블럼버그 박사의 제안으로 함께 스탠퍼드 대학에 가게 됐습니다. 그가 제안하기를 시간의 60%는 세계적인 에이즈 대가인 토머스 메리건 교수와 보내고, 40%는 자기하고 보내자는 겁니다. 그런 분이 바이러스는 안 가르쳐주고 매일 누굴 만날 때마다 저를 불러 같이 동석하게 했습니다. 교과서에서 볼 법한 노벨상 수상자는 물론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한 CEO, 유명 정치인 등 평생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세계적인 사람들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블럼버그 박사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조 교수의 생각과 사람의 지경을 넓혀준 것이다. 과학자인 그를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통섭형 인재로 바꿔줬다. 또한 1년간 메리건 교수와의 연구를 통해 에이즈 전문가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발로 뛰는 에이즈 전문가 사실 에이즈 바이러스 자체에 관심이 있었지 실제로 에이즈 걸린 사람을 보지도, 만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아시아·태평양 에이즈 학회장을 맡아 현장에서 에이즈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면서 '고통'이 뭔지,'가난'이 뭔지를 보게 된다. 특별히 그의 삶의 전환점이 된 계기가 있었다. 2006년 여름 태국 방콕에서 있던 일이다.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을 상담하다 그의 아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다. 설득 끝에 임신한 그의 아내도 검사를 받게 했는데 우대로 여자는 물론 뱃속의 아기까지 감염이 된 상태였다. 그 사실만 알려주고 차마 떠날 수 없었던 조 교수.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 부모는 태국의 의사에게 맡기고 아기 치료비는 제가 댔습니다. 아기는 어른과 달리 2년 만에 그것도 50만 원 정도면 치료가 됐습니다. 50만 원을 가지고 사람을 살린다?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논문 하나 더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깨닫게 됐습니다. 돈을 모아야겠다고 다짐했지요." 에이즈는 이미 치료약만도 40개다. 치료를 받아도 완치는 안 되지만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질환이 돼 55년을 더 산다. 이제 에이즈는 두려운 질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치료비가 너무 비싸다는 것. 에이즈 감염 또는 에이즈 환자 3,700만 중에 2,200만 명이 아프리카에 사니 그 돈을 감당할 수가 없다. 에이즈는 이미 질병이 이슈가 아닌 사회적·경제적 이슈가 된 상황이다. 이 일을 위해 조 교수도 열심히 뛰고 있다.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2030년까지 에이즈 퇴치를 위해 국제기구들과 함께 노력할 것입니다. 에이즈를 퇴치하려면 총 73조원의 비용이 드는데 제가어떻게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에드나 어머니가 후원해주신 15달러가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그 15달러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켜 73조원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신앙계 3월호에서 발췌>

천보라 기자2018-02-20

평창올림픽 선수촌이문을 활짝 열고 선수단을 맞았다. 세계 각국의 선수단이 입촌하면서 평창선수촌의 유승민 선수촌장은 손님맞이에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본지는 대한민국 유일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자 선수촌장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분주하게 달려온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한국 유일의 IOC 위원, 한국 스포츠 알리다 유 촌장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IOC 선수위원이다. 그는 스포츠 외교관이라 불리는 IOC 선수위원으로서 한국 스포츠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가 2016년 IOC 선수위원에 도전했을 당시 스포츠계는 그의 낙선을 예상했다. 심지어 "다른 후보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는 등의 이유로 그의 출마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그가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후배들을 위한 마음이 컸다. "은퇴 후 바로 지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제가 몰랐던 선수들의 고충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선수들이 맞닥뜨린, 예를 들어 은퇴 후 진로 등의 문제에 대해 정작 제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더 넓은 곳에서 선수들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어려움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확고해진 계기가 됐습니다." 유 촌장은 IOC 선수위원으로 바라본 한국 스포츠 위상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한국은 4대 메이저 경기를 모두 개최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로 '스포츠 강국', '스포츠 선진국'으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전 세계가 평창동계올림픽을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3번의 도전 끝에 성공한 평창동계올림픽은 성공개최를 염원하는 모든 국민의 마음이 합쳐진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유승민 평창선수촌장이 올림픽 국가대표로활약했던 당시의 모습 ⓒ데일리굿뉴스 내 집처럼 편안한 선수촌에 중점 유 촌장은 지난달 23일 선수촌장 임명식을 가졌다. 그는 "선수촌장이라는 중임을 맡겨주신 정부, 평창조직위, IOC에 감사한다"면서 "막중한 책임이 따른 선수촌장 임명에 어깨가 무겁다.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선수촌장의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일찌감치 선수촌에 입촌한 유 촌장은 구석구석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점검 또 점검했다. 그의 꼼꼼함 덕분에 평창선수촌을 방문한 이들의 평가는 매우 높다. 최근 평창동계올림픽 참관을 위해 방한한 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도 선수촌을 둘러본 후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며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선수촌이라고 하면 화려한 시설보다는 선수들이 편안하게 묵을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창 날씨가 굉장히 춥다 보니 난방상태나 온수를 비롯해 식당이나 다양한 시설, 동선 등 여러 가지 중점을 두고 신경 썼는데, 많은 분들이 선수들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이고 굉장히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해주고 계십니다. 바흐 위원장은 본인도 선수촌의 좋은 방을 배정해달라는 농담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평창 마운틴 클러스터에 위치한 평창선수촌은 3,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주거구역, 운영구역, 선수촌 플라자 크게 3가지로 나눠진다. 선수촌에는 편의점, 은행, 피트니스 센터, 미용실, 종교 시설 및 식당 등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다양한 편의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또 레스토랑은 450여 개의 음식이 뷔페식으로 준비되어, 식단을 조절하는 선수부터 종교식을 찾는 선수까지 모두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유 촌장은 무엇보다 선수촌에서 머무는 선수들이 조금의 불편함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저를 필두로 선수촌의 모든 스태프들이 선수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 늘 주시하며 대비하고 있다"면서 "선수들이 느끼는 불편한 점은 바로바로 피드백을 받아 조치하려고 준비한다"고 밝혔다. ▲유승민 평창선수촌장(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스태프와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전 세계에 화합의 장 되길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이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 '화합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중요한 올림픽이라고 생각한다는 유 촌장. 그는 "대회가 끝난 후 전 세계인들의 기억 속에 강하게 자리 잡는 올림픽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렇다면 그의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유 촌장은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최대한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지금 가장 큰 목표"라며 평창선수촌장의 역할 수행과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꼽았다. 그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힘든 훈련을 견뎌내고 고생한 선수들에게 "올림픽을 위해 수많은 땀을 흘린 후배들이 자랑스럽다"며 "부디 주님의 은총과 함께 본인들이 목표한 결과, 좋은 성적을 거두고 행복한 올림픽으로 남길 바란다"도 선배로서의 따뜻한 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유 선수촌장은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이를 통해 화합의 장이 열릴 수 있도록 국민들의 성원과 응원을 당부했다.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이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대회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온 선수들, 특히 대한민국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많은 응원과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PROFILE 주요이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대한체육회 이사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집행위원 평창동계올림픽 선수촌장 국제탁구연맹 이사 주요수상 2002 부산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복식전 금메달 2004 아테네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전 금메달 2008 베이징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동메달 2012 런던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은메달

신앙계 기자2018-04-06

에이즈(AIDS) 분야 아시아 최고의 전문가이자 건국대학교 생명과학특성학과 교수인 조명환 박사. 현재 미국 메릴랜드대학 미국정치학 겸임교수이자 아시아·태평양 에이즈학회 회장으로 에이즈 퇴치에 앞장서고 있다. 미국인 후원 어머니 기도·격려 힘든 유학생활 극복 '세계 최고에 도전하는 한국인 과학자' (1998), '올해의 국제 과학자'(2006), '아시아를 대표하는 올해의 인물'(2009), '올해의 新한국인大賞'(2011), '대한민국을 이끄는 재계인물 500인'(2013), 2013 '대한민국 창조경영 대상', 미국 메릴랜드 대학 '2016년 글로벌 교수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무렵인 1956년생인 조 교수는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 장로가 연결해준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미국인 에드나 넬슨의 후원을 받게 된다. 미국인 어머니 에드나 넬슨은 조 교수의 나이 45세 되던 해에 사망하기까지 매달 15달러와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 말미에는 꼭 세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그의 사랑을 믿어라.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한다." 이 문구들은 평생 그의 삶 구석구석을 밝히는 빛이 됐다. 하나님의 개입하심 사실 예전의 조명환은 책상에 오래 앉아있었지만 공부는 늘 못했다. 그래서 갈 대학도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 고향분이 집에 찾아왔는데 건국대 교수였다. 처음 만난 분의 꿈이 뭐냐는 물음에 당황한 나머지 얼떨결에 '교수'라고 말해버렸다. 그랬더니 뜻밖에 입학 할 학과를 제안했다. "교수가 되려면 남이 하지 않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건국대에 미생물공학과가 있는데 미달이 될 수도 있다며 지금은 인기 없어도 10년 뒤쯤 생명공학 시대가 오니 지원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적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대학생이 되고 싶어 입학원서를 냈다. 그리고는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됐다. 하지만 대학생활은 꿈과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들 1시간 공부할 때 3시간 이상을 공부해야 겨우 따라갈 수 있을 만큼 늘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데 대학을 막 졸업한 24세 때 덜컥 결핵 판정을 받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1년간 농장에 내려가 요양을 해야 했다. 도무지 이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고난과 은혜가 같이 공존한다(창 3:18)는 것을 깨닫게 됐다. 기다림을 통해 인내를 배웠고, 어떤 고난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오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차츰 몸은 회복됐고 기적적으로 1983년도에 미국 오하이오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생활은 그에게 살얼음판이었다. 영어와 전공 실력 부족으로 결국 두 학기 만에 학교에서 쫓겨났다. 이런 상황을 에드나 어머니께는 말했다. 그녀는 그때도 15달러와 함께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라.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한다"는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하루빨리 이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지만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또 한 번의 기적이 찾아왔다. 쫓겨난 학교의 교수가 추천서를 써주겠다는 것이다. "제가 그 교수님의 강의에서 C를 받았는데 추천서를 써준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 어느 날 우편함에 애리조나대학교에서 편지가 와있었다. 편지 내용은 찰스 스털링 교수가 지도해보겠다고 나섰는데 이 교수를 지도교수로 수학하고 싶은 경우 입학을 허락하고 아니면 입학할 수 없다는 이상한 조건이 달려 있었다. 찬밥 더운밥을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애리조나대학교 미생물·면역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됐다. 알고 보니 찰스 스털링 교수는 에이즈 연구가였다. 그래서 조 교수도 에이즈 연구에뛰어들게 됐다. "대학 전공도, 교수라는 꿈도, 심지어 미국에 유전공학을 공부하러 왔는데 에이즈를 공부하게 된 것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1983년도에 에이즈 바이러스가 규명됐는데 에이즈가 뭔지도 몰랐던 제가 1985년부터 에이즈를 연구하게 돼 졸지에 선구자가 됐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신앙계 3월호에서 발췌>

한혜인 기자2018-04-06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북한 교도소에서 속삭이듯 찬양이 울려 퍼진다. 3대 독재 체제에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는 건 참으로 어려워 보이지만, 하나님은 북한 땅에도 역사하고 있었다. 세번의 탈북 과정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한 이영주 집사를 만나 그의 파란만장한 탈북 스토리를 들어봤다. '비스킷'만한 교도소서 누린 은혜 이영주 집사(열방샘교회)의 탈북 스토리는 1997년부터 시작된다. 3번의 탈북 시도와 2번의 북송, 고된 심문과 고문, 3년 반의 교도소 생활. 그가 한국으로 오는 여정은 고난의 길이었다. 이 집사에게 들은 북한 교도소의 환경은 단순히 열악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했다. 200여 명 남짓 들어갈 만한 '비스킷'만하게 작은 잿빛의 교도소에는 1,200여 명의 사람들이 수용돼 몸 한 번 제대로 뉘이기 어려웠다. 나오는 음식은 쥐똥, 강냉이, 생옥수수 몇 알, 다 뜯어먹은 옥수수 심대, 모래, 흙이었다. 씻지도 않은 거친 생 음식은 삼키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간부들이 중간에 가로채 먹을 것이 없어 아사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특히 북송된 사람들은 교도소에서 '반역자'로 불리며 고된 심문을 받았다. 중국에서 교회에 다녔다는 사실이 들통 나면 가차 없이 처형이다. 이들에게 인권은 없다. 교도소 간부들은 알몸 수색, 온갖 비난과 폭력, 살인까지 서슴지 않았다. 눈물로 매일을 보냈던 이영주 집사는 어느날 하나님이 그를 북한 교도소에 보내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그의 삶은 '북한 교도소의 복음 전도사'로 180도 변했다. "꿈에서 봤던 통통한 여자 간부가 전화 받는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됐습니다. 전화기 색깔까지 똑같았습니다. 이후, '하나님이 날 이곳에 섬기라고 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순종하면서 사람을 섬겼습니다. 중국에서 하나님 만난 탈북민들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어려움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 싶다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북한 교도소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 친밀했다고도 덧붙였다. "삭막한 교도소서 눈 뜨고, 속삭이듯 기도했죠." 물론 '다른 사람은 한 번에 가는 한국을 나는 왜 두 번이나 막으시나'하고 하나님이 너무나 불공평하다 생각해 하나님을 원망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북한 교도소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다고 고백했다. "하루는 '하나님 저 금식기도 하고 싶은데 기도할 공간 좀 마련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교도소에서 5명만 감방으로 옮겨졌는데, 5명이 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었죠." 이 집사는 교도소 사람들에게 찾아가 하나님을 전했다. 간부의 귀에 들어가면 그의 상황이 곤란해지니 사도신경이 써진 종이를 몰래 건넸다. 더 용기를 낸 날에는 중국에 갔는데 교회가 있어서 살짝 다녀봤는데 너무 좋다고 돌려 말했다. 이 집사는 남한에서 큰 소리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일조차 감사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처럼 교도소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한국에 도착해 하나원에서 2011년 12월 1일에 나왔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너희 여기서 태어난 게 얼마나 축복인 줄 아냐'고 소리쳐 외치고 싶었습니다." 요즘 이 집사의 가장 큰 기쁨은 눈을 감고 기도할 수 있는 것, 찬양하고 싶을 때 먼지 가득한 담요를 덮고 숨어서 찬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가 교도소에서 뿌렸던 씨앗처럼, 지금도 북한 땅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서서히 복음이 전해지는 중이다. "북한이 희망 없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복음 통일을 위해 미리 예비하는 국가임을 알길 원합니다."

천보라 기자2018-03-07

고신대학교복음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는 지난 1992년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로부터 시작해 2014년 12월 병동을 오픈하고 본격적인 병실 호스피스를 시작했다. 오픈 이래 4년 안 되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가족, 지역민의 신뢰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는 고신대복음병원 호스피스. 임호섭 센터장은 이러한 성장배경엔 병원 설립 이념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이 있다고 말한다. 영원한 안식 위한 안내자 고신대복음병원 호스피스병동 센터팀에게 호스피스는 돌봄과 섬김 그리고 사랑이다. 그들은 환자와 가족을 향한 사명과 죽음에 대한 가치가 없으면 호스피스병동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호스피스병동 센터팀에는 자발적으로 지원해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올해 취임한 임 센터장도 마찬가지다. 임 센터장은 30대 무렵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고 한다. 때마침 염창환 교수(前 서울성모병원 완화의학과 임상과장)의 연락을 받고 그는 서울로 향했다. 염 교수를 만난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대체의학인 줄 알고 갔는데 호스피스였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죠." 그러나 이후 더 놀라운 일이 생겼다. 원치 않게 오게 된 호스피스에서 점점 변화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처음엔 어려웠죠. 사람이 없어서 잠도 못자고 새벽까지 일하는 게 부지기수였거든요. 너무 힘이 든데 이상하게 보람 있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는데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오히려 제가 많은 것을 얻었죠. 결국 호스피스가 저의 길이라고 확신하게 됐어요. 하나님의 이끄심이라고 생각해요. 제게 이 일을 맡기신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웃음)" 호스피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갈 길 멀어 최근 죽음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웰 다잉(Well Dying)’이 부각되면서,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터부시됐던 죽음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인 측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임 센터장도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실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은 의료진도 마찬가지예요. 호스피스를 시작하려면 환자분의 의식이 명료해야 하고 몇 개월의 여명이 남아있어야 해요. 그래야 삶을 정리할 여유가 있거든요. 그것이 호스피스의 목적이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환자가 굉장히 안 좋은 상황에서 의뢰를 받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호스피스를 시작할 수 없어 많이 안타깝죠." 임 센터장은 먼저 한국사회의 호스피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변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의료계와 언론 등이 호스피스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호스피스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환자 중에서 암에 대한 치료를 놓치면 안 되는 환자가 있다"면서 "반대로 의미 없는 치료를 유지하면서 호스피스의 기회마저 놓치는 환자도 없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임호섭 센터장(좌측)의 주관 하에 호스피스완화의료팀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위클리굿뉴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 호스피스병동에서는 환자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매주 한 번씩 진행되는 원예, 미술, 음악 요법과 자원봉사자를 통한 침상목욕, 세발, 아로마 테라피, 손발 마사지, 찜질 등은 환자들에게 호응이 좋다. 또 가족사진 촬영과 생일, 결혼기념일 등의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임 센터장은 "궁극적으로 '영혼 구원' 측면 이 부분에 초점을 더 두고 있다. 환자들의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지 함께 기도하고,영접 예배, 세례식 등도 진행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총 23명의 환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말했다. 현재 호스피스병동에서는 2주에 한 번씩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지난달부터는 마지막 주 목요일마다 원목실 주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저희는 신앙을 베이스로 합니다. 육체적인 돌봄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돌봄도 중요하거든요." 죽음은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고도 한다. 죽음 앞에 설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센터장과 호스피스병동은 환자들이 죽음이란 거울을 잘 비춰보며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 짓고, 또 다른 시작인 영원한 안식을 준비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임 센터장은 마태복음 25장 40절 말씀을 마음에 새겨 주님께 하듯 환자와 가족들을 섬기겠다고 밝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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