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라 기자2018-11-14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1980년 암울한 시대에 좌절하고 고뇌하던 수많은 청춘을 위로한 노래 '청춘'의 가사 일부다. 40여 년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었지만, 2018년의 청춘은 여전히 '청춘'을 노래한다. 그렇다면 청춘의 아픔은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초상'일까? <위클리굿뉴스>는 창간 1주년을 맞아 주변의 크리스천 청년들이 처한 실제적인 고민을 요청해, 청년 멘토들과 함께 이에 대해 짚어보고 해답을 모색하는 특집 기획을 연재한다. 이번호에서는 청년사역과 목회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를 만났다. Q. 살다보면 소위 잘 나간다는 비기독교인의 삶을 보며 비교의식을 가질 때가 많다. 특히 고난 가운데 주님 안에서 감사와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크리스천 청년도 많은데. 송태근 목사(이하 송): 현실의 문제를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재확립해서 이겨내는 것이 믿음의 선진들이 취했던 태도이다. 바울은 현실적 불행에 대해서 현실에서 대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분명히 한다(빌 3:8). 베드로도 스스로를 '나그네'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분명한 '소망'을 성도들에게 설명한다(벧1:1).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느끼는 절망감에 대해서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거나 현실적인 행복의 조건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만일 누군가 신앙을 그렇게 설정하고 유혹한다면 잘못된 가르침이다. 성경은 바른 '소망'을 바라볼 것을 말하고 있다. 분명한 소망을 붙잡을 때 현실을 이길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은 영국의 헨리 8세(왼편)와 <대사들>(오른편)이라는 작품이다. 헨리 8세는 1534년 수장령을 선포했다. 영국 국왕이 영국 교회의 머리라고 선언한 것이다. 교황에게 대적할 만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헨리 8세로 인해 영국과 로마 교황청의 관계가 나빠졌고, 프랑스에서는 이 둘을 중재하기 위해 두 명의 대사들을 보냈다. 두 명의 대사를 표현한 그림이 오른편의 <대사들>이다. 그림 속 두 사람 사이에 많은 물건이 나온다. 이 그림을 그린 한스 홀바인은 정치적 분열과 혼란한 시대에서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중재를 도모하는 의미를 표현하는 많은 물건을 대사들 사이에 배치했다. 두 사람 가운데 길게 늘어진 그림은 해골이며,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한다. 왼편 상단에는 녹색 커튼 뒤로 마치 숨은 그림처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그려 넣었다. 즉 홀바인은 세상은 잘나가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역사는 커튼 뒤에서 예수님이 지켜보며 움직이고 계신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현실을 살면서 잘나가는 사람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보며 불행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한스 홀바인의 조언처럼, 역사를 움직이는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기억한다면 현실의 절망감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위클리굿뉴스 Q. 주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릴 때가 많다. 믿음과 구원의 확신, 어떻게 가질 수 있나. 송: 처녀가 스스로 잉태하는 것이 가능한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이해되는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다면 어떤 상태로, 어디로 가게 되는지 상상이 가는가? 크리스천은 이처럼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다. 믿음은 우리의 행위나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믿음의 확신은 하나님의 선물(엡 2:8)이다. 하지만 반드시 '성경'을 '통해서' 얻은 것이어야 한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끊임없는 고통과 풍랑 속에서 살아간다. 그럴 때도 흔들리지 않고 확신 있게 나아갈 수 있는 것 역시 '성경을 통해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아래 그림은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가 젊은 시절에 그린 작품이다. 신앙을 가진 청년이었지만, 그 역시 결혼, 성공, 행복에 대한 문제로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렘브란트는 배의 풍경을 빛과 어둠으로 나눈다. 왼편의 빛에 노출된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모습이다. 풍랑을 만나면 '보편적으로' 누구든지 이런 모습으로 몸부림친다는 것을 표현한다. 반대로 오른편의 제자들을 보면 예수님 앞에서 풍랑이 일어난 것에 대해 원망하기도 하고, 체념하기도 한다. 예수님을 모신 배는 항상 고요한 바다를 항해하지 않는다. 풍랑을 만나고 폭우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모신 배는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구든지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이 비단길, 꽃길을 간다고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붙잡는 것임을 믿어야 한다. ▲렘브란트의 <갈릴리 바다의 풍랑 속 예수> ⓒ위클리굿뉴스 Q. 늘 상황에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라 여기고 실행해왔다. 설령 스스로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내 의지에 따른 결정일까봐 망설이게 된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궁금하다. 송: 하나님의 시선이 있음을 믿고 걸어가야 한다. 어떤 길은 우리의 시선에 완벽한 길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사망의 길이다(잠 14:27). 반면 때론 이해되지 않는 일을 만나지만 지나고 보면 그것이 하나님이 인도하셨던 과정임을 고백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 그럼 어떻게 앞길을 계획하고 걸어가야 할까? 과거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믿는 것, 비록 내일이 보이지 않아도 지금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내어드리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비전을 쫓는 삶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때로는 자유의지를 통해서 결정되는 실수마저도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신다. 그것을 믿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필요하다. 아래 그림은 독실한 신앙을 가진 아담 엘스하이머라는 화가의 작품 <이집트로의 도피>다. 당나귀에 탄 요셉과 마리아는 이집트로 피난 중이다. 이들 뒤에는 온통 먹구름뿐이고, 요셉은 등불 하나만을 의지한 채 어둠을 헤쳐나가고 있다.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할까? 그러나 그것은 요셉의 시선이다. 하나님의 시선은 어떨까? 요셉이 지나온 과거(오른편)에는 밝은 달이 떠 있다. 그들이 만날 미래(왼편)에는 먹구름이 더 크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할 목자들이 있고, 하늘에는 별이 있어서 그들을 인도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시선이며, 그분의 방식이다. 때때로 우리는 먹구름 속을 걷는 것처럼 어둡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이런 시선으로 보고 계신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비전이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아담 엘스하이머의 <이집트로의 도피> ⓒ위클리굿뉴스 Q.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삶에 적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갈수록 더해지는 태도에 마음이 괴롭다.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참고 이해해야 하나. 송: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갈등과 미움 없이 순적하게 지낼 수 없다. 신앙의 양심으로 살아가면서 관계에 어려움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두려워해서 피한다면 바울은 '세상 밖으로 나가라'고 말한다(고전 5:10). 바울의 표현대로 우리는 어차피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또한 말씀을 실천해서 빛과 소금이 돼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세상에서 타협하고 침묵하라는 것은 아니다. 사랑과 용서를 해야 할 영역이 있지만, 불의와 모순까지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용서하고 감싸줘야 한다. 그러나 도를 넘은 것이라든지, 불의의 영역이라면 과감히 끊어야 한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이중계약, 뇌물, 성희롱, 성차별, 부당함 등까지 참고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역이 모호해지면서 크리스천이 사회에서 영향력을 상실했다. 지금 괴로워하는 부분이 개인적인 부분인지, 아니면 과감히 끊어야 하는 부분인지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크리스천이 가져야 하는 시선은 개인의 행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어두운 곳까지 미쳐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세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16세기 네덜란드 종교개혁 화가였던 피테르 브뢰헬의 <거지들>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당시 사회를 풍자한다. 농부, 관리, 군인, 상인들이 목발을 짚고 있는데, 네덜란드 속담을 반영하고 있다. '거짓은 목발을 짚는다'라는 속담이다. 사회의 모든 영역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브뢰헬은 이 그림의 핵심을 오른편 뒤에 검은 옷을 입고 지나가는 종교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사회는 불의와 위선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종교인들이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있음을 풍자하고 있다. 혹시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속에서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피테르 브뢰헬 <거지들> ⓒ위클리굿뉴스 (위클리굿뉴스 11월 11일, 47호 기사)

성현 목사 기자2018-11-02

흔히 한국사회에서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본 영화는 영화적 재미를 넘어서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특별히 영화 <신과 함께>는 2017년 12월 1편 '죄와 벌'이 1,400만 명을, 2018년 8월 2편 '인과 연'이 1,200만 명이라는,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연속 1,000만 명이 넘는 관객 동원을 기록한 영화가 됐다. 개봉 전 이미 전 세계 100개국이 넘는 곳에 선판매가 되었고, 폭발적인 흥행과 이후의 기대에 따라 3, 4편이 제작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과연 크리스천들은 영화 <신과 함께>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할지를 짚어봤다. ▲성현 목사 (필름포럼 대표, 창조의정원교회 담임목사) ⓒ위클리굿뉴스 1. <신과 함께>의 흥행 요인 우선 상업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제대로 간파한 감독의 역량을 들 수 있다. 김용화 감독은 <오! 브라더스>(2003), <미녀는 괴로워>(2006), <국가대표>(2009)까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흥행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 300억 원이 넘는 제작?홍보비용을 들였던 <미스터 고>(2013)가 흥행에 실패하며 큰 어려움에 빠졌다. 그러다 다시 한 번 제작비 400억 원의 <신과 함께>라는 대작영화를 만들게 되는 기회가 찾아왔고, 관객이 어떤 코드에서 호응하는지 면밀히 분석해 이를 영화에 반영했다. 여기에 <미스터 고>를 만들며 쌓인 CG(Computer Graphic)에 대한 노하우가 결합되어 세련되면서도 안정적인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이 영화의 주 관객층이 4~50대와 10대였다는 통계를 보면, 가족 단위로 관람하기에 좋은 영화였다는 점 또한 흥행요인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큰 인기를 모았던 원작 웹툰(주호민 作)의 '저승-이승-신화' 구조 속에 담긴 단편적인 에피소드와 다양한 캐릭터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잘 엮어내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영화의 서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음으로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용서'와 '위로', '구원'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1편은 '모성애'로, 2편은 '부성애'로 풀었다. 그 안에 형제, 유사가족의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졌고,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 또한 관객들이 심판자가 아니라 주인공들의 사연을 경청하는 방식을 취하게 함으로써 영화에 온기를 더했다. 또 한 가지는 <신과 함께>의 영화적 배경이 한국인에게 익숙하면서도 한번 쯤 경험해 보고 싶던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신과 함께>는 불교의 세계관을 주요 모티프로 삼되 유교, 도교와 민간신앙이 혼재된 사후세계를 그리고 있다.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기독교인들조차 무의식적으로 '전생', '인연', '액땜'과 같은 말을 사용하고, 이사를 하거나 먼 길을 떠날 때 날수를 따라 동·서·남·북 네 방위(方位)로 돌아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는 귀신을 뜻하는 '손'이 없는 날 이사를 가려는 풍습이 존재하며, 새해가 되면 평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토정비결'을 보고, 결혼을 앞두고 '궁합'을 확인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영화제작을 시작할 때 고사 드리는 모습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직도 한국인 대다수의 심성에는 <신과 함께>에서 그리는 사후세계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꽤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신과 함께>의 사후세계관은 대다수의 한국 성인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접해온 <전설의 고향>이나 '전래동화' 이야기의 영화버전인 셈이고, 어린이들에게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와 같은 한국형 판타지인 셈이다. 이런 복합적인 요소들이 상승효과를 내면서 <신과 함께>는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무려 2,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던 것이다. 2. <신과 함께>의 세계관 <신과 함께>에 담긴 세계관은 무엇일까? 우선 불교의 세계관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사람의 사후에 저승으로 가게 되며 이곳에서 49일을 지내며 7번의 재판을 받는다. 죽은 사람이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까지 49일이 주어지며, 이후에 지은 업에 따라 과보를 받는다. 그래서 이 기간에 이승에 있는 사람들이 재를 지내주게 된다. 7번의 재판은 거짓, 나태, 불의, 배신, 폭력, 살인, 천륜 등 7가지 항목이며, 모든 재판을 통과한 자만이 환생할 수 있다. 여기에 불교에서는 죽은 사람이 혼자 심판의 시기를 걷는 것과 달리 영화에서는 우리나라의 민간신앙에 나온 삼차사가 등장해 이 시기를 함께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신과 함께>는 불교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사후세계관을 보여준다.ⓒ위클리굿뉴스 사실 이러한 사후 세계관과 죄에 대한 인식은 서구에도 등장한다. 고대에는 죽음이 끝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과 죽음 너머 영혼이 사는 세계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서구교회 역시 4세기 경 사막의 수도사 에바그리우스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7가지 대죄(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정욕)를 6세기 경 교회로 가져와 천년 이상 피해야 할 큰 죄로 여겨왔다. 13세기 단테의 신곡에는 여행자 단테가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 베르나르두스의 안내를 따라 지옥, 연옥, 천국으로 여행하는 내용도 나온다. 이처럼 사후 세계관에 대한 생각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동양과 서양 모두에 있었고, 죄에 대한 인식 역시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3. 기독교의 생명력 '부활' 이야기해야 그렇다면 한국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이 영화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까? 또한 이 영화를 보고 감동과 공감을 표시한 많은 비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접촉점을 가지고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그 핵심은 '부활'에 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막 12:27)이시다. 성경에 나온 심판과 상(賞)주심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로서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며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선포하고 누리고 나누며 사는 삶을 살도록 요청하기 위해 주어진 경고이자 소망의 근거가 되는 말씀이다.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끝을 의미한다. 죽음은 절망일 수밖에 없고, 두려움일 수밖에 없다. 영화 <신과 함께>를 보며 사람들은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심판에 대한 자각과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 지점에서 종교적 차이를 들어 금하거나 다름을 거론하는 것에만 그친다면 소극적인 대응이 될 수밖에 없다.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인간의 철학과 유한한 종교가 다다르지 못하는 지점에서 기독교의 생명력을 이야기해야 한다. 구원의 지평까지 나아가야 한다. '후회'를 넘어 삶의 방향이 바뀌는 '회개'가 중요하며, 스스로의 깨달음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실존의 한계를 깨뜨리사 긍휼과 은혜로 구원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히 4:14-15) 기독교에 소망이 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 구원은 피안(彼岸)으로의 도피나 훗날 주어질 보상 정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이미 시작된 역사적 사건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4.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질서 놓쳐선 안 돼 철학자들과 문학가들이 끊임없이 사후세계를 탐구하고 형상화하는 까닭은 이 땅에서의 부조리함과 고난에 대한 이유를 찾기 위함이다. 웹툰부터 영화까지 제작된 <신과 함께> 역시 마찬가지다. 대중적인 성공의 기저에 흐르는 사람들 그리고 시대의 갈망을 기독교 신앙은 읽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복음이 왜 이 시대에도 여전히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는지 더욱 확신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문화와 철학, 종교가 가리키는 진리의 이정표 너머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새 창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주님의 영광은 만인에게로 흘러 들어가고, 만인에게서 흘러 나온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거울이 아니라 빛이지요." C.S.Lewis 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 나온 대화 중 일부다. 우리에겐 오늘도 영원의 빛을 구하는 사람을 향한 공감적 시선이 필요하다. 더불어 우리에겐 그 빛을 삶과 문화를 통해 창조적으로 증언할 소명이 있다. 다시 <천국과 지옥의 이혼> 중 일부를 나누며 글을 맺고자 한다. "자네는 자유라는 선물 덕분에 창조자와 가장 닮은 존재가 되었고, 영원한 실재의 일부가 되었지... 자네는 영원한 실재의 정의(定義)를 결코 파악할 수 없어... 우리는 그것을 몸으로 살아내야 한다네."

김신규 기자2018-11-05

한반도 훈풍일까? 위기일까? 위클리굿뉴스는 지난 호에서 창간 1주년 기획 특집으로 종전선언과 비핵화 논의 등 급변하고 있는 '대전환의 한반도' 현실을 짚어봤다. 또한 이러한 시점에서 통일 독일의 경험을 비춰 우리 국민들의 남북통일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시각을 조명했다. 이번 호에서는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인 남북의 평화통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 사회나 한국교회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를 살펴본다. 현 한반도 상황에 대해 일부의 우려도 없지 않다. 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기운은 훈풍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한반도가 전쟁의 도가니로 들어갈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전망한다.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에 대한 일말의 기대는 '수사적 표현'에 불과할 뿐 체제 선택의 문제가 남북이 서로 양보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분단 70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과 북은 사상과 문화적으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북통일이 현실이 돼도 한동안 사회적 혼란과 남북한 국민들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정치적인 통일에 앞서 우선 남북 교류협력과 사회경제적 통합이 우선 중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최소한 대만식이나 홍콩식의 통일방안도 남북한 통일 대안이 될 수 있다. 통일 준비 제대로 하고 있나?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종전선언과 북핵 폐기가 논의되는 현 시점에서 오히려 통일준비의 퇴보를 우려한다. 모든 정책이 평화라는 미명 하에 '분단고착화, 영구분단'으로 가고 있다는 시각이다. 그러면서 현 정부가 북한주민의 노예적 생활상황, 북한의 잔혹한 인권탄압 등을 거론하지 않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낭만적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막대한 통일비용과 남북 경제적 차이에 따른 우리의 경제적 손실도 우려한다. 그러나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 제품의 단가 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또 통일 후 인구가 늘어나지만, 반면에 활용할 수 있는 큰 땅이 생기고 풍부한 자원이 생긴다는 점도 우리의 장점으로 부각된다. 탈북지식인들로 구성된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는 "현재의 북한 주민들에게는 남한과 같은 사회 경제제도와 자본주의 시장 등에 대한 시장의 적응능력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독일이 통일될 당시에는 동독의 시장규모도 아주 작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제도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였다. 동독과 서독의 경제제도는 물론 시장과 의식적인 측면에서 지금의 남북한과는 완전히 달랐다"며 일부에서의 통일비용 우려는 기우라는 설명이다. 올해 남북정상회담을 '평화혁명'이라고 밝혔던 서울대 통일연구원 김병로 교수는 남북의 평화적 공존이 통일보다 먼저라는 점을 강조했다. 4·27판문점 선언은 북한 비핵화와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냈는데, 이런 훈풍을 한국교회와 죽음도 불사한 북녘 신앙인들의 오랜 기도 결실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통일은 남북이 서로 다른 두 체제가 하나로 결합되는 과정인 만큼 양국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한 채 상호 협력하는 △독립국가연합(CIS) △유럽연합(EU) △아세안(ASEAN)과 같은 협의체 성격의 연합제. △구소련 △미국 △독일 등처럼 외교권과 군사권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체제인 연방제.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 아래 점진적 통일을 지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통일 시대 한국교회의 역할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통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70년 분단을 겪어온 만큼 통일을 위한 연합과 협력의식, 마인드가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C국에서 탈북민 사역을 했던 김동춘 목사(SFC 대표간사)는 성경에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연합과 협력의 좋은 모델을 한국교회의 통일 준비 모델로 제시했다. 그는 "70년을 넘게 전혀 다른 사고체계와 행동양식을 가졌던 남과 북이 만났을 때 갈등 발생은 당연하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이런 갈등 해소와 통일코리아를 세우기 위한 연합과 협력의 정신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즉 학사 에스라의 영적각성과 능력 있는 총독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건축은 연합과 협력의 모델인데 북한교회 세우는 것과 북한사회 치유하는 것에 대한 협력이 균형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불어오는 훈풍으로 '통일이 온다'란 기대감이 지나치게 높은 점도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 성도들은 일희일비하기보다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도록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기독교적인 통일은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는 통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개방과 부흥에 중점을 두고 북한을 섬기는데 집중해야 한다. 또한 남북한 사람들을 포함한 동북아의 다양한 민족들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할 통일이후의 사회를 한국교회가 준비해야 한다. (위클리굿뉴스 11월 04일, 46호 기사)

천보라 기자2018-10-29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한반도 평화통일은 그간 현실과는 거리가 먼 '소원'이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달라졌다. 올해 3차례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등 남북 관계에 이례적인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통일을 향한 우리의 소원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듯 보인다. 이런 가운데 국민 절반 이상이 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은 최근 남북 관계 및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국민들의 인식 변화를 가늠하기 위해 '2018 통일의식조사'를 발표했다. 조사는 전국 16개 시도 만 19세 이상 74세 이하 성인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전문 면접원에 의한 1대 1 면접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 59.8%가 "필요 또는 매우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이는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응답으로 지난 2017년보다 5.7% 증가했다. '통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는 "같은 민족이니까"라고 답한 응답자가 45.1%였다. "남북 간에 전쟁위협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응답도 31.4%로 뒤를 이었다. 반면 통일의식에 대한 불신과 우려 역시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통일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24.2%는 "반반 또는 그저 그렇다"고 답해, 지난 10년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도 16.1%나 차지했다. 지난해보다 5.3%포인트 하락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치다.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통일이 되지 말아야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 34.67%가 "통일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이라고 답했다. 이어 "통일 이후 생겨날 사회적 문제"(27.67%), "정치체제의 차이"(19.33%), "사회문화적 차이"(13.33%) 순이었다. 독일의 경험은 어땠을까. 1989년 11월 9일, 동·서독을 가로막던 베를린 장벽 앞엔 거대한 인파가 운집했다. 동독 사람들은 곡괭이와 해머로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고, 장벽 건너편 서독 사람들은 부서진 장벽 콘크리트 덩어리를 받아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로부터 11개월 후, 독일인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통일 독일 시대'가 도래했다. 분단 45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통일에 대한 환상은 곧 깨져버렸다. 통일 직후 불어 닥친 높은 실업률과 마이너스 성장률, 고금리 등에 독일은 신음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2010년까지 20년 동안 약 2조 유로(약 2,600조 원)라는 막대한 통일비용이 지출되면서 독일 경제는 극심한 침체기를 겪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내적 분단과 그에 따른 갈등은 생각보다 컸다. 지역·종교·정치·이념 등 격차를 극복하기까지 오랜 진통과 큰 희생이 뒤따랐다. 통일의 후유증은 25년간 지속됐다. '독일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이자 '독일 최고의 현자'로 꼽히는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는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동방정책(서독이 소련과 동유럽 국가에 대해 취해온 관계정상화정책으로 이를 통해 동독과의 관계도 개선하고자 했다)을 계승해 독일 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입지적 인물이다. 슈미트 전 총리는 서독이 오랜 시간에 걸친 통일 준비에도 '통일과정에서의 7대 과오'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996년 방한 당시 한반도 통일에 대해 조언하며 "동독 국영기업의 민영화, 동독 통화에 대한 후한 가치 책정, 서독인과 동등한 수준의 실질임금 약속 등은 중대한 실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슈미트 전 총리는 "어쨌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보다 통일비용이 세배 더 소요될지라도 통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과정에서 희생은 언젠가 뒤따른다"면서 "이를 대비하기 위해선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려는 정치·경제적 준비와 정신·심리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독일 통일은 한반도 통일의 '당위성'과 '우려'를 동시에 설명하는 대표적 사례다. 통일에 대한 섣부른 환상과 지나친 우려는 오히려 분단만큼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이 될 수 있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통일 한국'은 '통일 독일'보다 더 험난한 통일과정에 부딪힐 것"이라며 "구체적이고 철저한 통일 계획과 국내외 정세의 변화에 대비하는 탄력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위클리굿뉴스 10월 28일, 45호 기사)

천보라·조준만 기자 기자2018-10-29

지난 2017년 10월 31일 창간한 <위클리굿뉴스>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 땅의 모든 생명과 자연을 보전하고 아끼자는 취지로 '창간기획-생명존중 환경사랑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난해 11월(본지 3호) 낙태를 시작으로 자살, 안전사고, 미세먼지, 우울증, 지구 온난화 등 지금까지, 총 32회에 걸쳐 진행된 캠페인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주제를 공론화시키는데 앞장섰다. 창간 특집호를 맞아 환경, 생명, 사회적 이슈 중 여섯 가지 주제를 꼽아 지난 1년간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생명·환경 다양한 이슈 따뜻한 시선으로 다뤄… 한국사회·교회 나가야 할 방향 끌어내 # 나는 19살, 사랑이 엄마입니다(제4호-낙태 편) 지난해 11월 안산시 위드맘 한부모가정 지원센터(대표 이효천 선교사)에서 만난 은지 양은 19살 미혼모였다. 은지 양은 인터뷰 내내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놨다. 낙태 논란에는 생각이 많은 듯 입술을 지그시 다물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인터뷰 말미 과거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물론 포기할 건 많죠. 주변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고 다른 대우를 받을 거예요. 그런데요. 살만해요. 힘들지만은 않아요. 그리고 행복해요." 그로부터 11개월 후, 대학 새내기가 된 은지 양은 현재 4살 된 딸 사랑이와 함께 살고 있다고 전해왔다. '낙태죄 폐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뜨겁다. 헌법재판소는 6년 만에 낙태죄 위헌 여부를 두고 공개변론을 열었고, 선고를 6기 재판부로 넘겼다. 유남석 신임 헌법재판소장은 현안을 연내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해묵은 논란은 첨예한 대립 속에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 生死의 갈림길, 호스피스병동의 하루(제15호-웰 다잉 편) 지난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당시 일각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을 이른바 '웰 다잉법'이라는 왜곡된 의미로 부르면서 사회적 논란이 불거졌다. 인생을 아름답고 평안하게 마무리한다는 의미의 '웰 다잉'. 죽음을 유독 터부시하는 한국사회에선 여전히 낯설고 불편한 말이기도 했다. 이에 본지는 지난 2월 진정한 '웰 다잉'을 찾기 위해 고신대 호스피스병동을 어렵게 섭외해 단독취재에 나섰다. 호스피스병동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간 갖고 있던 부정적인 선입견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중엔 환자 김선희 씨(가명)도 있었다. "이곳에 와서 비로소 하루를 소중히 보내고 있다"는 김 씨. 그는 천천히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취재가 끝나고 3주 후, 김 씨의 부음을 들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난 현재, 남편 이철우 씨는 "호스피스에서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며 "아내의 당부대로 두 아들과 서로 보듬어주고 아껴주며 하루하루를 이겨내고 있다"고 전했다. # 난민, 평화를 찾는 순례자들(제19호-난민 편) 2018년 3월, 시리아 내전의 격화와 미얀마 로힝야족 인종청소로 인해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렇듯 수많은 난민이 고향을 잃고 떠돌아도 난민 문제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주변인이었다. 그러다 올해 6월, 제주도에 549명의 예멘 출신 난민들이 입국하면서 '난민' 이슈는 국내뉴스가 됐다. 하지만 난민을 보는 상당수 한국인의 눈길은 곱지 않다. 난민을 받지 말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7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다. 우려의 시선을 넘어선 혐오가 가짜뉴스를 타고 퍼지고 있다. 불과 70여 년 전 나라를 잃은 이 땅의 사람들도 전쟁과 박해를 피해, 중국과 미국, 러시아를 떠돌았던 난민이었다. 상해임시정부는 정치적 난민이 수립한 망명 정부였다. 기억하자, 우리도 한때 난민이었음을. # 출산절벽 현실로…인구감소 2023년부터(제29호-저출산 편) 아기 울음소리 그친 대한민국. 한국 사회와 정부가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출산장려정책을 편 지 10년. 이 기간 집행된 출산 관련 예산은 80조 원이나 된다. 하지만 출산율은 나아지기는커녕 통계마다 사상 최저와 최악을 경신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금까지의 '출산율 목표'정책에서 벗어나 '아이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삶의 질 개선'으로 정책의 방향을 수정했다. 출산절벽이 젊은 세대의 장시간 노동, 주거 불안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신혼부부와 청년층의 주거 지원을 확대하고 아빠들의 육아 참여를 높이기 위해 '배우자 출산 휴가' 기간을 늘리는 새로운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여성들의 경력단절 문제, 출산 휴가를 마음껏 이용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여전하다면 대한민국 저출산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 세상의 모든 'Useless'를 'Useful'로 바꾸다(제30호-환경의 날 편) 올해 봄 '라돈 침대 사태'가 확산하면서 한국 기업의 경영 윤리 및 사회적 책임 결여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이 가운데 '제품, 그 내면의 사람이 중심이다'라는 이념으로 성장해가는 사회적 기업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한해 약 400만 톤의 버려지는 폐차 가죽시트를 재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모어댄(최이현 대표)'은 BTS 리더 RM과 SK 최태원 회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이 주목하면서 착한 소비의 열풍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새터민과 경력단절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채용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인터뷰 후 4개월이 지났다. 모어댄은 이달 '컨티뉴 합정 스토어'를 오픈하며 '같이' 가는 '가치'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반면 라돈 침대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라돈침대 피해자 집단소송 청구액은 52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다 할 책임과 배상은커녕 추석 연휴 전까지 약속된 침대의 전량 수거조차 지켜지지 못했다. # 플라스틱 시대 "이제는 끝내야 할 때"(제34호-플라스틱 편) 그리스어 'Platikos'에서 따온 '플라스틱'은 가볍고 질긴 비닐봉투에서 단단한 자동차의 내장재, 빨대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으로든 변신했다. 인간은 플라스틱에 열광했고 그 편리함에 푹 빠졌다. 지난 100년은 '플라스틱의 시대'였다. 하지만, 신의 선물처럼 등장한 플라스틱은 점차 지구 환경과 인간의 건강에 재앙이 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은 먹는 샘물과 소금에 녹아들었고, 커다란 플라스틱은 대양을 뒤덮었다. 이에 플라스틱 퇴출을 위한 움직임이 국내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2030년까지 현재 34%인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70%까지 올리고 10월부터 과대포장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위클리굿뉴스 10월 28일, 45호 기사)

조준만 기자2018-10-29

[종교개혁 500주년 그리고 1년] 지난해 한국 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여러 가지 행사들로 떠들썩했다. 한국교회 현주소를 진단하는 학술대회가 잇따랐고, 회개를 촉구하는 기도회와 각종 심포지엄이 열렸다. 교단과 교회연합기관들은 종교개혁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말과 구호들을 쏟아냈다. 요란했던 종교개혁 500주년을 보낸 한국교회. 그들이 진단했던 교회 안의 모순과 잘못들을 개혁해 나가고 있을까? '종교개혁 500주년' 우리는 무엇을 했고, 어떤 것들을 남겼을까. 다양한 행사와 구호 넘쳐났지만 결과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는 다양한 행사와 사업들을 진행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잠실실내체육관에서 '2017 한국교회 대각성 기도회'로 모였다. 이는 한교총이 출범한 이후 실시한 첫 대규모 행사였다. 기도회에 모인 1만여 명의 성도들은 무릎을 꿇고 회개를 부르짖었다. 또한 신학계는 '종교개혁500주년 기념 공동학술대회'를 열고 '종교개혁과 한국교회 개혁과 부흥'이란 주제로 예배와 논문 발표의 시간을 가졌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은 '말씀에 바로 선 개혁교회, 종교개혁 다시 시작하다'를 주제로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전국 목사장로기도회를 종교개혁 500주년 의미와 연계해 진행했고, 예장통합과연합하여 장로교심포지엄을 개최하여 양 교단 공동기도문을 만들어 선포했다. 또한 '전국신학생설교대회'를 열어 교단 소속 신학생들에게 개혁신학과 종교개혁 정신을 정립하도록 독려하는 시간을가졌다. 예장통합은 총회의 주제를 '다시 거룩한 교회'로 정하고 95개 조항으로 구성된 '종교개혁 500주년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처럼 대형 집회와 신학 포럼 위주의 일회성 행사에 그친 한국교회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들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준다. 일각에서는 기념사업을 이끈 교계 인사들이 개혁과 회개를 언급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개혁의 대상들이 개혁의 주체로 나서 개혁을 호소하니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2007년,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기념하여 수많은 집회와 예배를 통해 '부흥이여 다시 오라'고 부르짖었지만 성대한 기념대회 이후 한국교회가 기대했던 '성령의 바람'은 불지 않았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들은 여러모로 2007년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교회 위기라는 말은 이제는 언급하기조차 식상한 말이 됐다. 사회적 신뢰도는 꼴찌에 교인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너도나도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기독교 윤리관점에서 한국교회를 진단해온 손봉호 교수는 한 콘퍼런스에서 "한국교회가 몰락해야 개혁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도덕성과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 불의한 교회가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다. 현재 한국교회의 상황은 암울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적은 수였지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다. 조국 독립운동과 근대화, 민주화, 그리고 교육과 복지사업에 있어서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문제는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 교회 세습, 성장에 목매는 교회, 신학교 난립과 이권 다툼까지. 이런 현상 기저에는 도덕성과 공정성의 결여가 깔려있다. 도덕성과 공정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돈’이 자리하고 있다. 500년 전 마틴 루터를 비롯한 개혁가들은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개혁을 멈춘 교회, 자기 깨어짐과 갱신의 역동성을 잃어버린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종교개혁 500주년 그리고 그 후 1년. 한국교회는 여러 행사를 개최하며 엄숙한 신앙의 말들과 구호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쏟아낸 '말'들이 세상의 구석구석에 얼마나 가 닿았는지는 의문이다. 종교개혁 501주년을 맞은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모순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성대한 말의 향연속에서 개혁, 회개, 갱신을 이야기했지만 교회 안팎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한국교회. 세상은 이해하지못하는 교회만의 언어로 '우리만의 잔치'에 그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위클리굿뉴스 10월 28일, 45호 기사)

조준만 기자2018-08-12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다." 어린왕자 속 이 구절은 꽤 낭만적으로 읽힌다. 끝없는 모래의 지평선과 이정표 없는 초원은 모험을 꿈꾸는 이들을 유혹한다. 포털에 몽골사막을 검색하면 다양한 사막투어들이 검색된다. 현대인들에게 사막은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장소. 하지만 사막의 면적이 빠르게 넓어지고 사막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던 오아시스가 사라지고 있다. 몽골 환경녹색개발부 통계에 따르면 10년 전 5,000여 개였던 몽골의 호수는 사막화로 최근 2,000여 개 수준으로 급감했다. 고비사막을 건너면 곳곳에 있던 호수는 이제 말라붙은 그 흔적만이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몽골을 비롯한 중국 등 관련국과의 공조,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국가 간 공조는 아직 걸음마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푸른 청소년들이 몽골의 사막화를 막기 위해 나섰다. '한국숲사랑청소년단(Korea Green Ranger)'은 '글로벌 숲탐방 원정대'를 조직해 몽골의 사막화를 방지하고자 '희망의 숲'을 조성하고 있다. 30여 년 동안 나라의 미래인 청소년들을 '녹색 파수꾼'으로 키워내고 있는 '한국숲사랑청소년단'을 취재했다. 한반도와 몽골에 심는 '녹색희망' ▲'한국숲사랑청소년단' 이종인 사무처장 ⓒ위클리굿뉴스 1980년대 서울. 나라는 산업화에 한창이었고 '안전하게'보다는 '빠르게'성장하는 것이 우선시되던 때였다. 요즘처럼 환경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고 하늘은 온통 매연으로 뒤덮여 시절. 샐러리맨들의 와이셔츠가 점심쯤이면 이미 새카매지곤 했다. 환경에 대한 인식도 관심도 부족하던 1989년, '한국숲사랑청소년단'은 '한그루녹색회'라는 이름으로 첫 발을 내딛은 이후 '푸른숲선도원', '그린레인저', '숲사랑소년단'등의 이름으로 30여 년 동안 약 70여만 명의 대원을 배출했다. "1989년 이래 지금까지 한국숲사랑청소년단을 통해 많은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체험과 봉사활동을 하며 숲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배우고 창의성과 바른 인성을 키워왔어요." 이 사무처장은 실제로 숲사랑청소년단 활동을 통해 숲과 산림에 관심을 가져 산림학과에 지원하거나 캠프 봉사자로 나서는 등 어른이 되어서도 '숲'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숲과 청소년 모두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해요. 미래의 청소년들이 숲을 '알아가고(Aware)', '봉사(Serve)'하며, '감사(Thank)'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삶을 '만들어(Form)'간다면 얼마나 넉넉한 인격의 아이들로 자라날까요? 아이들에게 숲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면 보통 무섭다고 해요. 그런데 숲에 가서 크고 작은 나무와 새, 곤충들을 접하다 보면 자연스레 숲과 자연, 생명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30여 년 동안 꾸준하게 나무를 심고 청소년을 길러온 한국숲사랑청소년단의 관심은 이제 한국을 넘어 북녘 땅과 몽골 땅을 향하고 있다. "조림사업에 성공한 대한민국과 달리 북한은 여전히 벌거숭이 상태로남아있어요." 실제로 북한은 부족한 식량 조달을 위해 나무를 베어 다락밭을 만들고 열악한 에너지 사정으로 나무들을 땔감으로 가져다쓰는 통에 홍수와 가뭄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글로벌 숲탐방 원정대' 그는 17개 시·도의 한국숲사랑청소년단 대표 대원들을 선발해 북한의 청소년들과 함께 나무를 심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한의 청소년들이 함께 나무를 심는 그날이 오기를 그리고 숲을 통한 치유의 손길로 전쟁의 남은 상흔이 사라지고 남북이 거리낌 없이 오가는 그날을 꿈꿔요. 삼천리금수강산의 나머지 절반인 북한 땅이 다시 푸르러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숲사랑청소년단은 지난 2017년 여름 청소년 대원과 지도교사로 구성된 '글로벌 숲탐방 원정대' 40여 명을 중국으로 보내 백두산 생태를 살펴보고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 항일독립운동지 등을 살펴보며 통일시대를 위한 준비 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돌아왔다. ▲2017년 ‘글로벌 숲탕방 원정대’의 백두산 탐방의 모습ⓒ위클리굿뉴스 그리고 앞서 2016년에는 심각한 사막화로 한반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몽골에 사막화 방지를 위해 청소년 대원과 지도교사 40여 명의 원정대를 파견했다. 원정대는 현지에서 기후변화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몽골의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에 대해 배우고 함께 나무를 심으며 글로벌 리더가 갖춰야하는 세계관과 자신감을 함양하고 돌아왔다. "나무심기뿐만 아니라 유목민들과 문화교류, 게르에서의 숙박을 통해 기후변화와 사막화가 전 지구적인 문제임을 원정대 친구들이 많이 느끼고 돌아왔어요." 올해도 8월 5일 한국숲사랑청소년단은 몽골로 '희망의 숲' 원정대를 파견한다. 2년 전 심었던 '희망의 숲'은 얼마나 잘 자라고 있을까, 그리고 올해는 얼마나 많은 새로운 '희망'을 심고 돌아오게 될까? 마지막으로 한국숲사랑청소년단이 꿈꾸는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이 궁금했다. 이 사무처장은 "한국숲사랑청소년단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푸르게 그리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그린 리더'를 키워내기 위한 활동이다. 이 일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최근 용마산에 나타난 산양(천연기념물, 멸종위기 1급) 이야기를 들려주며 "백두대간에 살아가는 사람, 동식물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날이 와서 숲을 통해 남북이 하나 되는 일에 한국숲사랑청소년단이 밑거름이 되겠다"고 밝혔다. 한국숲사랑청소년단을 통해 한반도와 세계 곳곳에 푸르른 숲이 계속해서 생겨나길, 깨끗하고 푸른 숲이 이들을 통해서 지켜지길 기대해 본다. ▲2016년 ‘글로벌 숲탕방 원정대’의 몽골 나무심기 ⓒ위클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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