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정 기자2019-03-13

길거리에서 현금 137만원이 든 비닐봉투를 발견해 주인에게 돌려준 환경공무관의 사연이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바로 서울 양천구 소속 환경공무관이 그 주인공이다.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있는 박 모 환경공무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분리수거 될 뻔한 137만 원 주인 찾아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주변에서 너무 칭찬들을 해주셔서 부끄러워요.” 주인 없는 돈이나 물건을 봤을 때 누구나 일단 욕심이 들 수 있다. 때문에 박 씨의 선한 실천과 이야기가 아직은 살 만한 세상임을 새삼 일깨운다. 그의 양심적 행동은 2월 26일 오후 1시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 인근 도로를 청소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검은색 봉투를 발견했다. 박 씨는 봉투를 집어들 때만 해도 누군가 쓰레기봉투를 무단투기 했을 것으로 단정했다. 그런데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봉투를 열어 본그는 화들짝 놀랐다. 그 안에 현금 뭉치와 지갑이 들어 있던 것이다. 현금다발만 총 137만 원이었다. 박 씨는 “지갑 속 신분증을 확인하고, 주인에게 당연히 돌려줘야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소속 반장님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곧바로 파출소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곧장 인근 지구대를 찾아갔고 신분증 조회를 통해 현금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주인은 바로 인근에 위치한 김밥집 사장이었다. 돈을 잃어버리고 찾을 방법이 없어 난감해하던 현금 주인은 연락을 받고 단숨에 달려왔다. 그는 “잃어버린 돈을 찾아줬다는 얘기를 뉴스에서만 들었는데 내가 그 주인공이 되니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밥집은 박 씨의 청소 담당구역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박 씨는 현금 주인과 김밥집에서 한번 더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당시 현금 주인의 식사 대접을 사양한 박씨는 ”괜히 부끄럽고, 주인에게 부담 주기 싫었다”며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알려지는 것이 부끄럽다”고 겸손히 말했다. 박 씨의 이같은 선행은 일상생활에도 녹아있다. 그는 동료 환경공무관들과 함께 지난 5년간 꾸준히 불우이웃 돕기를 실천해오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불우이웃에 쌀을 기부했다. 또 월드비전을 통해 아프리카 잠비아 소외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박 씨는 환경공무관으로서 매일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신월동 곳곳의 청결을 책임지고 있다. 일하다 보면 종종 청소하는 사람이라면서 무시하는 사람들로 인해 속상함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박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이 ‘천직’이라고 자부했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면서 “내 자신이 청소하고 난 자리가 깨끗해진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박 씨.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며 주변의 칭찬에 고개를 흔드는 환경공무관 박 씨의 양심적 선행은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박혜정 기자2019-04-22

세상에서 누구보다 하루가 아깝게 시간을 달리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원기’와 ‘미겔’이다. 홍원기 군은 우리나라에서 소아조로증을 앓고 있는 단 한명의 아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여러 번 방송에 소개돼 사연이 널리 알려졌다. 원기 가족과 특별한 인연인 ‘미겔’ 역시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콜롬비아 출신 아이다. 소아조로증 환아인 이 아이들은 노화 속도가 일반인보다 8배 정도 빨라 일상생활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기대수명이 약 15세, 최대수명이 20세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해서라면 안 해 본 것이 없는 원기 아빠 홍성원 목사는 시야를 넓혀 원기와 같은 아시아계 소아조로증 환아들의 치료를 돕고 아이들 간 교제의 장 마련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홍 목사를 통해 원기와, 최근 방한한 미겔을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축구보는 것보다 아빠랑 대화하는 게 더 좋아요” 지난 19일 본지가 만난 원기는 의젓한 아이였다. 원기를 만나기 위해 데일카네기코리아가 후원하고, 아시아프로제리아 재단(사무국장 홍성원 목사)이 주최한 ‘소아조로증 환자 후원의 밤’을 찾았다. 후원의 밤에서 진행된 토크콘서트에는 원기와 홍 목사가 사회자의 질문에 맞춰 각자의 답변을 스케치북에 써 선보였다. 원기와 홍 목사의 대화에는 친구 같이 티격태격하면서도 돈독한 애정이 묻어났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원기는 “아빠와 함께 대화하는 것”이라면서 “다양한 리액션과 표정으로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아빠가 좋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빠와 다툼이 있을 때 아빠가 자신의 주장만 맞다고 하는 것은 고쳤으면 좋겠다”고 말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끌어냈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원기는 “그동안 나를 돌봐줘서 고생한 점이 고맙다”라고 대답해 감동을 전하기도. 국내 유일한 소아조로증 환자인 원기(14)는 다섯 살 되던 해 소아조로증으로 진단 받았다. 소아조로증은 전 세계적으로도 100여 명 밖에 보고되지 않은 희귀질환이다. 의학보고서에 따르면 이 질환을 겪는 아이들은 1미터 정도의 키에 앙상한 팔다리로 구부정하게 걸으며, 손발톱조차 몇 개 남아있지 않다. 아직까지도 마땅한 치료약이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 임상실험 중에 있다. 그런 아이를 옆에서 찢어지는 마음으로 지켜본 원기 부모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아이의 치료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했다. 홍 목사는 “유명한 치유사역자를 찾아다니면서 기도 받는 것은 물론, 침도 맞아보고 지방 줄기세포 주사용법도 시도했다”며 “그러던 중 미국 보스턴 조로증재단과 연락해 4년을 기다린 후 임상실험에 참여했고, 2년치에 해당하는 약을 받아 한국에서 아이에게 약을 먹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4년을 기다렸던 약을 단 몇 일만에 끊어야 했다. 원기가 약을 먹은 지 일주일 째,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연이어 심한 구토 증세를 보인 것이다. 원기가 먼저 “약을 그만 먹겠다”고 말했다. 부모도 아이의 병이 나아지는커녕 더 고통스러워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약을 먹일 수 없었다. 그런데 약 복용을 중단하자 원기는 활력을 되찾았다. 밥도 잘 먹고 평소처럼 웃으면서 일상생활을 되찾았다. ▲방한한 미겔과 그의 엄마 마그다를지난 18일서울 삼성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데일리굿뉴스 원기 친구 미겔, 예수님이 허락한 한 영혼 4년이라는 기다림이 무색했던 홍 목사는 당시 좌절과 상실감이 컸다. 하지만 이는 원기에게는 친구가, 홍 목사에게는 사명감이 확고해지는 기회로 바뀌었다. 보스턴 아동병원에서 원기와 동갑이자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콜롬비아 출신 미겔을 알게 된 덕분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원기와 미겔은 금새 친해졌고 여전히 각별한 우정을 자랑한다. 홍 목사는 “아이들은 ‘게임’하면서 정말 잘 논다”면서 “각자 자기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스마트폰 화상통화를 통해 연락한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소아조로증 환자를 돕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프로제리아 재단을 시작했다. 아시아 지역 내 소아조로증 환아를 한국에 초청하여 치료법과 정보를 개발·공유하고,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과 가족들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미겔 역시 홍 목사의 권유를 따라 보스턴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끊고 몸 상태가 호전됐다. 이는홍 목사가 재단을 출범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홍 목사는 “약을 끊으니 컨디션이 나아지는 현상이 원기 뿐 아니라 미겔에게서도 나타났다”며 “나지 않던 머리카락이 다시 나고, 헛배 부른 것이 빠지며 식욕도 좋아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며칠 전 한국을 방문해 ‘소아조로증 후원의 밤’ 행사에도 참석한 미겔은 콜롬비아에는 자신 외 2명의 소아조로증 환아가 있음을 전하며 “한국에 올 때마다 사랑받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고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미겔에게 외국에 있는 아빠와도 같다. 그는 콜롬비아 현지에서 엄마와 단 둘이 어렵게 살고 있는 미겔에게 교육, 옷, 생필품, 한국에 오고갈 때 드는 비용 등을 지원하고 있다. 홍 목사의 가장 큰 바람은 원기와 미겔, 이 아이들이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도록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여러 가지 임상실험을 통해 치료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 또한 재정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겔처럼 아시아계 소아조로증 환아를 한국으로 초청할 시 통역해 줄 봉사자들도 절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소아조로증 환아를 돌보는 것이 곧 그의 사명이라고도 고백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이미 확증하셨다. 때문에 또 다른 징표를 보여주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매일 밤 원기를 보며 기도하고 원기의 순간순간을 바라보며 삶과 죽음을 동시에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원기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자 선물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 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참된 신앙임을 믿는다.”

박혜정 기자2019-03-27

기독교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6년을 거쳐 3권의 <만화로 읽는 천로역정>으로 재탄생했다. 지난달 말 초판인쇄된 약 4,000부가 완판돼 중판인쇄에 들어갔을 만큼 <만화로 읽는 천로역정>은 실감 나는 그림과 생동감 넘치는 구성력으로 많은 크리스천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저자 최철규 작가를 만나 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독자들의 이해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방향성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천로역정'이지요." <만화로 읽는 천로역정>은 '크리스천'이라는 한 남자가 고난을 헤치고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보는 고전으로 알려진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최철규 작가의 고뇌와 섬세한 손길을 통해 생동감 넘치는 만화로 재탄생한 것이다. 최 작가는 책이 주는 메시지에 대해 "고난을 헤치고 끝내 천성에 이르는 '순례자의 길'을 말하고 있다"면서 "300여 년이 넘도록 수많은 사람에게 크게 사랑받는 이 불후의 명작을 총 3권의 극만화로 풀어내 원작의 메시지와 감동을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장장 6년간 이어진 최 작가의 고뇌와 노력의 흔적들이 책 <만화로 읽는 천로역정>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유명 만화가 이현세 작가의 수제자다운 섬세하고도 사실적인 그림 표현은 물론, 독자들이 쉽게 책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차별성을 뒀다. 책에는 고집쟁이, 변덕쟁이, 도움, 소망, 두 마음 등 수많은 감정이나 생각 등이 등장인물로 표현되고 새로운 장소가 나오는데 최 작가는 독자들이 이를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해당 그림 외곽에 색을 넣어 구분했다. 그는 "새로운 인물이 나오면 파란색 테두리, 새로운 장소가 나오면 초록색 테두리로 표시했다. 또 본문과 관련된 성경 구절을 삽입하여 독자들이 성경말씀을 따로 찾아보지 않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어려운 문구와 여러 가지 장면을 만화를 통해 쉽게 풀어내 독자들이 내용을 빨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책을 읽은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로부터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최 작가는 출간 후 목회자와 평신도들은 물론 초중고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두세 번 이상 완독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최근에는 한 어린 아이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는 신앙고백을 들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6년 간 원고 집필하며 '순례자의 삶' 몸소 깨달아 최 작가는 6년 이라는 시간이야 말로 결국 자신을 먼저 순례자로 만드신 하나님의 영적 훈련기간이었음을 고백했다. 기독교 만화가로 전향하기 전까지 성인만화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는 소위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넓고 화려한 길'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좁은 길'을 걷는 삶에 대한 수 없는 갈등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작업 초반에 수작업만으로 그림을 그리다보니 검지 인대 파열로 1년 간 손가락을 쓸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주변 지인들로부터 "적당히 (예수님을) 믿어라"라는 소리도 들었으며 녹록치 않은 형편에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1년 간 그의 휴식은 오히려 천로역정 이야기를 탄탄하게 하는 초석이 됐으며 부족한 것들을 실제적으로 채우시는 은혜를 경험했다. 최 작가는 "작업을 잠시 내려놓고 쉬는 동안 <천로역정> 다른 버전 책들을 100독했다. 이 때 나의 노력으로 삶의 관문을 통과하려 했던 잘못된 신앙태도를 발견했다"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삶의 가치관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고 시원케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책 (3)권에 나오는 '예수님의 의'에 대한 내용도 보완했다"고 전했다. 최 작가는 "오랜 시간 끝에 책이 나오자마자 7살 딸 아이가 먼저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울러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지 못한 채 세상과 믿음의 길 사이에서 타협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책이 믿음의 안내서 역할이 되기를 소망했다. "하나님은 이 책이 나오기까지 나와 우리가족을 먼저 철저한 순례자의 삶을 살도록 바꾸셨다. 우리는 총 세 권의 책 위에 손을 얹고 이같이 기도했다. '이 책이 교회 공동체 안에 있지만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깊이 들어오지 못한 채 타협하는 이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데 쓰임 받게 해주세요'" 한편 저자 최철규 작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의 삶을 살다 회심했다. 1991년 이현세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만화계에 입문해 성인 만화가로 데뷔했다. 9권의 성인 만화책을 출간했으나 1998년 중한 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이를 계기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기독교 만화가로 전향했다. 그의 첫 기독교 단행본 <만화로 읽는 천로역정> 세트(3권)는 갓피플몰을 비롯해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혜정 기자2019-04-05

노숙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는 특별한 학교가 있다. 바로 성프란시스대학이다. 이곳에서 노숙인들은 인문학 강좌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로 복귀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노숙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찾아주고 있는 성프란시스대학은 어떤 곳인지 현장을 직접 찾았다. 삶이 무너진 이를 위해 세워진 학교 지난 3일 오후 6시,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노숙인 자활공간 ‘문화공간 길’에 들어서니 삼삼오오 테이블에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노숙인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서로 형님, 누님, 동생이라 부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다름아닌 성프란시스대학 15기 학생들이 오후 7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강의에 앞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던 풍경이다. 이들은 약 1달 전 입학한 새내기 신입생이다. 총 26명이 3월부터 6월까지 1학기, 9월부터 12월까지 2학기 과정을 밟는다. 1년 동안 일주일에 3회 2시간 씩 철학, 한국사, 예술사, 문학, 글쓰기 등 총 5개 과목을 배운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이곳에 입학한 이들은 지식이 채워지는 것 이상으로 마음의 위안을 받고 있다. 지인의 소개를 받고 입학했다는 김 모씨(37)는 “인문학 공부를 통해 나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고, 무엇보다 여러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성격이 많이 밝아졌다”며 “모두가 친구, 형, 동생 같다”고 말했다. 보증을 잘 못 서게 되면서 거리로 앉게 됐다는 김 씨는 잠잘 곳 조차 마땅치 않았다. 일하던 제조회사에서 퇴직한 것은 물론 가족들과 인연이 끊긴지도 오래다. 현재는 노숙인의 자활과 자립을 돕는 서울시 다시서기종합센터를 통해 지역 내 복지관에서 일하며 잠자리 제공을 받고 간간이 고시원 생활도 병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숙인으로 전락할 경우 인간관계와 사회성이 결여된 채 거리를 헤맨다. 이러한 노숙인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자립을 돕기 위해 시작된 것이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수업이다. 이곳에서는 노숙인들을 존중하는 뜻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성프란시스대학 실무 책임자인 안상협 학무국장은 “무료급식, 취업, 주거지원 등 현재 노숙인 복지서비스만으로 선생님(노숙인)들의 고충을 다 채우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바로 끊어진 인간관계 개선”이라며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노숙에까지 이른 것이다. 때문에 이들 대부분 자존감이 낮고 가슴이 무너져 있다. 이를 회복하고 사회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 대학의 취지”라고 밝혔다. 대학 시작은 미국 얼 쇼리스 교수의 클레멘트 과정이 바탕이 됐다. 얼 쇼리스 교수는 1995년부터 노숙인이나 마약중독자, 죄수 등을 대상으로 윤리철학과 예술, 역사, 논리학을 강의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절반 이상 가량의 사람들이 사회로 복귀하게 됐다. 인문학 수업중 ‘글쓰기’가 노숙인들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다고 안 국장은 전했다. 그는 “특히 ‘글쓰기’가 선생님들의 자신감 회복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자신의 힘든 시절과 앞으로의 계획을 기대하면서 글을 쓰고 발표하는 시간이다. 선생님들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토론함으로써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성프란시스대학 13기 수료생 홍진호씨 이야기를 안 학무국장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안 국장은 “홍진호 선생님은 음주로 인해 가정과 직장을 등졌고 200원이 없어 밥을 먹지 못했던 분이었다”며 “그는 다시서기센터와 대학 인문학 과정을 통해 현재는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에 취업했다. 고정적인 수입을 받으며 신용도 회복하고, 가족과 다시 결합했다. 쪽방고시원 생활을 벗어나 거주지도 마련했다”고 전했다. 한편 올해로 15년째 인문학 강좌를 이어온 성프란시스대학은 2005년 대한민국 최초로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과정을 개설했다. 이달까지 노숙인 337명이 공부했다. 코닝정밀소재와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으며 지난 1일 성프란시스대학 총장에 김성수 성공회 주교, 학장에 허용구 신부가 임명됐다.

천보라 기자2019-04-19

'사회적 약자' 혹은 '비정상' 등 우리 사회는 그동안 장애인을 장애인으로만 바라봤다. 편협한 시선 속에 장애인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이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존재'로 각인됐다. 이런 세상의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장애를 가진 몸으로 환경을 보호하고 소외된 이웃까지 돕는 장애인이 있다. 1년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작은 손수레 하나를 끌고 거리에 나서는 그는 지역에선 이미 유명인사다. 지난 17일 강원도 원주 명륜동의 한 거리에서 어김없이 손수레를 끌고 가는 이금자(65) 씨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작은 금자씨가 쏘아올린희망이라는 공 "종이컵 줍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멈추지 않고 했어요. 몸은 고달팠지만 제 삶의 낙이고 희망이었기에 종이컵 모으기를 멈출 수 없었어요. 저는 종이컵을 그냥 모으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모았어요. 제가 몸은 비록 이렇지만 저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해요." 금자 씨는 선천적 왜소증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키 101cm 몸무게 32kg. 남들과 조금 다른 신체를 가졌을 뿐인데 세상은 금자 씨에게 너무 가혹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온갖 놀림과 설움을 받고 세상으로부터 숨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부모님이 아프셔서 저희 형제 모두 남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어요. 얼마 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제들마저 연락이 끊겼죠. 천애고아가 돼서 내 의향도 없이 이 집 저 집 수도 없이 떠돌아다녔어요. 삶이 너무 힘들어서 나를 몇 번이나 버렸어요. 그런데 안 되더라고요. 결국 후유증만 남아 아직까지 고생하고 있어요." 죽는 것조차 마음처럼 쉽게 되질 않았다. 몇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결국 그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되면 최소한 살아나 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마음의 담을 허물고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갔다. 거기서 머물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힘닿는 데까지 도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원주시 새마을회에서 '종이컵 줍기 운동'에 동참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제가 여기저기서 일 돕는 모습을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이 몸을 끌고 할 자신이 없어서 1년이나 안 하고 버티고 있었는데, 동장님이 3년만 해보라고 계속 설득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종이컵 줍기 운동'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담배꽁초, 침 등 온갖 쓰레기가가득 차지저분한데다 손도 여간 많이 가는 게 아니었다. 새마을회원들도 다들 오래 못 가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무엇보다 금자 씨를 힘들게 한 건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였다. "어느 날 혼자서 종이컵을 수거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뒤에서 '꼴값 떨고 있네', '지가 뭘 한다고 저길 쫓아다니냐'며 흉보더라고요. 그런 소리 듣는데 속이 상하죠. 내가 몸이 이러니 배움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스스로 싸워서 이겨야겠더라고요.더 열심히 수거해서 나같이 배움이 부족해 고생하는 학생들을 돕자고 마음먹었죠." 원주 새마을회와 함께 하는 폐종이컵 수거는 자원재활용운동으로 시작해 장학금 기부로 확산됐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금자 씨의 폐종이컵 수거를 통해 만들어진 장학금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수많은 학생이 꿈과 희망을 갖고 학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됐다. ▲이금자 씨는 매일 동네 곳곳을 다니며 폐종이컵을 수거해만든 장학금을 어려운 학생들에게 기부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금자 씨는 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동행해보니 폐종이컵이 많기는 정말 많았다. 금자 씨는 "불과 하루 전날 동네 곳곳을 다니며 폐종이컵를 수거했지만, 또다시 쌓이는 종이컵을 보니 어제 수거한 것이 무색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몇 시간을 돌았을까. 금자 씨의 수레엔 어느새 그의 키와 맞먹은 자루가 실렸다. 금자 씨가 일주일 동안 수거하는 폐종이컵의 양은 최소 45kg. 우리가 흔히 쓰는 종이컵 한 개의 무게가 보통 3.5g이라고 하니, 어림잡아도 종이컵 1만 2,000개 이상을 수거해야 한다. 금자 씨가 1년간 수거하는 폐종이컵은 보통 5t, 종이컵 30만 개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이렇게 종일 수거한 폐종이컵은 모아서 고물상 등에 가져다준다. 예전엔 휴지로 맞교환하거나 근처 재활용 공장에서 10kg당 2,400원 정도에 매입했다고 한다. 공장이 이전한 후론 이 금액마저도 받지 못하지만, 금자 씨는 걱정이 없단다. 각종 단체에서 받은 상금이나 강의를 통해 얻은 수익금 등을 보태 전보다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자 씨는 기부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은 무조건적인 지원에 쏠리지 않고,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이끌고 인도해주는 것에 집중돼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장애인들이라고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아이한테 맞는 아이숟가락이 있고 어른에게 맞는 어른숟가락이 있듯이 우리도 그래요. 육체적으로 도와줄 장애인이 있고, 정신적으로 도와줄 장애인이 있어요. 정작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만들면 안 되잖아요. 이런 걸 판단해서 도와주고, 개개인에게 맞는 것을 가르쳐주면서 이끌어줬으면 좋겠어요.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요." ▲비록 장애를 갖고 있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는 이금자 씨의 모습 ⓒ데일리굿뉴스

천보라 기자2019-04-15

'18년째 최악의 기독교 박해 국가', '2018 민주주의 지수' 최하위(167위), '2018 세계언론자유지수' 최하위(180위), '경제자유지수' 최하위(180위), '인신매매 실태' 최하위(3등급, Tier 3), '인터넷 및 소셜미디어 보급률' 최하위(각각 0.08%, 0.06%)등. 전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각종 보고서에서 수십 년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한반도에 평화 무드가 조성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은 '비핵화'에 쏠렸다. 그동안 '북한'이라고 하면 독재나 핵 등 안보 문제가 등호처럼 따라붙었다. 그사이 정작 관심을 둬야 할 북한 인권은 안보 문제에 가려져 공론화되지 못했고, 북한에서는 지금도 최악의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다. 북한 보는 시선 '안보'에서 '사람'으로 "균형이 안 맞습니다. 비핵화 등 안보 문제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변화는 북한 주민에서 시작됩니다. 북한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김정은, 핵 등에 갇혀있어요. 이런 안보 프레임은 북한의 강점이죠. 그러나 약점은 주민이라는 프레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위해서는 김정은, 핵이 아닌 북한 주민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북한을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 중구 을지로 링크 사무실에서 만난 박석길 링크(LiNK, Liberty in North Korea) 한국지부장은 북한을 바라보는 고착화된 프레임이 가장 문제라며 '사람 중심'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북한에 접근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의 점진적 발전을 위해서는 안보와 인권 문제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박 지부장은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북한 주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박 지부장은 영국에서 태어난 자신이 북한 인권단체에 몸담게 된 계기도 작은 관심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한국계 영국인인 그의 조부모는 북한 함경북도 출신이었다. 아버지와 집안의 뿌리는 그가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영향을 미쳤다. 자연스레 북한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겼고 학구적인 관심으로 이어졌다. "국제 이슈에 대해 일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북한과 관련된 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유엔 본부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됐는데, 그때 우연히 링크를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링크에서 처음 탈북자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들과 친구가 되고 '호형호제' 할 정도로 가까워지면서 북한 주민에게 처한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이슈인지 체감하게 됐습니다. 지극히 호기심에서 시작된 관심이 탈북자 친구들을 통해 열정으로 전환된 것이죠." ▲링크는 2010년부터 전 세계 후원자들의 후원을 통해 탈북자들의 구출과 정착을 본격적으로 돕고 있다.ⓒ데일리굿뉴스 英왕실 훈장…탈북자 1,000명 구출 공로 국제 비정부기구 링크는 북한 사회의 변화와 주민의 자유를 바라는 한인 대학생들에 의해 2004년 미국 예일대에서 처음 만들어진 북한 인권단체다. 한국지부는 2012년에 설치돼 현재 박 지부장 등을 포함해 7명이 활동하고 있다. 링크는 2010년부터 후원을 통해 탈북자들의 구출과 정착을 본격적으로 돕고 있다. 2010년부터 8년간 링크의 도움을 받은 탈북자 수만 약 1,000명, 2018년 한 해 동안 한국 등에 정착한 탈북자 수도 326명에 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링크는 다큐멘터리나 영상물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국제사회에 북한 사회를 알리고 있다. 또 탈북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박 지부장이 제작하고 탈북 청년들이 출연한 다큐멘터리 <장마당 세대(The Jangmadang Generation)>도 그 일환 중 하나다. 박 지부장은 장마당 세대와 같은 탈북자들이 북한 사회의 '변화의 주체'라고 강조한다. 탈북자들이 북한의 가족에게 보내는 돈이나 정보 등을 통해 북한 사회의 변화와 자유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지부장은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이 안전하게 탈북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빅 픽처(Big Picture)'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지부장은 최근 몇 년간 북한과 중국의 국경 경비가 강화되고 탈북비용이 크게 오르면서 탈북자 수가 많이 줄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과거 몇 백만 원이었던 도강비가1,000~2,000만 원으로 올랐다. 아무리 돈을 벌고 모아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거기에 중국 내 단속도 강화돼 동북지역에서뿐만 아니라 남부지역에서도 탈북자들이 잡힐 정도"라고 밝혔다. 박 지부장은 이처럼 중국에서탈북자들이 붙잡혔다는 연락을 받을 때 가장 힘들다고 고백했다. 그는 "탈북자들이 잡히는 경우 한국 정부나 미국 대사관 등을 모두 동원해서 북송을 막으려고 노력하지만, 일이 잘 안 풀릴 때가 있다"며 "탈북자와 그 가족을 생각하면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 일을 하며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였을까. 그는 "부모를 따라 탈북한아이들을 만나거나 탈북자들이 한국에서새 생명을 출산할 때"라며 "탈북이 그 한 사람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을 생각하면보람을 느낀다"고 미소를 지었다. 박 지부장은 최근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일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국가공로훈장(MBE)을수여 받았다. 올해 MBE에는 영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인 해리 케인도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북한 주민들의 자유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MBE의 영광을 돌린다는 박 지부장. 그는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밝은 미래를 위해 동참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한국에서 벌써부터 북한 주민과 탈북자를 위해 응원과 지원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 북한 사회의 직접적인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 주민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더 많은 분들이 북한 주민을 응원하고 관심 가져주셔서 북한 땅에 하루빨리 자유가 찾아오길 바랍니다." ▲박석길 링크 한국지부장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장마당 세대(The Jangmadang Generation)> ⓒ데일리굿뉴스

김신규 기자2019-03-31

경기도 용인시에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고통 받는 독거노인, 장애인 가정 등 소외계층을 찾아 집을 수리해주는 봉사단체가 있다. 행복을 같이하는 사람들(행같사, 회장 정의훈)이 그 주인공이다. 행같사의 회원들은 ‘한국크리스토퍼 리더십코스’의 수강·수료생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어둠을 탓하기 보다는 한 자루의 촛불을 켜라’는 모토 아래 하나가 됐다. 타인의 행복증진을 위한 리더로서의 덕목을 배우는 과정에서 그 실천과제를 위해 32기~33기의 수료생들이 취약계층의 집수리를 결의한 후 ‘행같사’라는 봉사단체를 조직한 것이다. 이들은 ‘만원의 행복’ 기금을 조성하고 재능기부의 방식으로 지난 2013년 8월 1호 집수리 봉사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3월 30일 오희옥 애국지사 자택을 방문해 102호 주거환경개선 집수리 봉사를 시행했다. 행같사 회원들은 집수리 봉사 외에도 과거 도움을 베풀었던 수혜자에게 밑반찬을 제공하거나 집안 청소 등의 후속봉사도 잊지 않는다. 이외에도 사후관리팀을 통해 건강 식물 키우기, 마음치유(미술심리 심리상담)등 별도 봉사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아침 8시 30분부터 집수리 봉사가 이뤄집니다. 이를 위해 봉사회원들이나, 복지시설, 공공기관 등에서 추천 의뢰받은 복지사각계층의 대상자들 가운데서 봉사대상자가 정해지면 집행부 회의를 거쳐 봉사의 필요인원과 물품 등을 확인한 후 본격 봉사에 나섭니다. 매월 집수리 봉사에는 20~30여명의 봉사자들이 참여하지요.” 정의훈 회장에 의하면 행같사의 지난 6년여 봉사 기간 동안 집수리 봉사활동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전문가와 비전문 봉사자들 간의 긴밀한 협업시스템 때문이다. 어느 봉사현장에서든 인테리어와 건축, 전기 등 관련 분야 업종에 종사하는 회원들이 구심점 역할을 감당했다. 또 공무원, 식당주인 등 다양한 직업군의 비전문 회원들은 직접 몸으로 일하며 봉사의 효율성을 높였다. 이렇게 100호의 집수리 경험이 축적되다 보니 어느새 회원들은 집수리 분야에서 전문가 뺨치는 기술력을 갖췄다. 행같사의 집수리 봉사는 현재 용인시 지역 내로 한정돼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은 “보다 큰 규모의 국가적 재난 등에는 언제든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봉사에 임할 자세가 돼 있다”고 밝힌다. 아울러 1,200여 명의 크리스토퍼 용인지부 동문들 가운데 봉사의 본질을 성실히 이행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언제든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집수리 봉사의 영역을 더 넓히기 위해 환풍기 교체, 화장실타일·페인트·단열필름 등의 설비분야에 공모사업을 계획·추진하고 있다.

윤인경 기자2019-03-20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등기념일이 되면 어김없이선물상품의과대포장논란이불거진다. 화려한포장으로뻥튀기되는가격뿐아니라불필요한 쓰레기가지나치게많이발생하는문제가지적된다. 그런데이벤트날에만이런문제가생길까? 기념일이 아닌 일상에서도 포장이안된상품을찾기어려운요즘, 국내최초로포장없는가게를운영하고있는‘더피커(The Picker)’ 송경호대표를만났다. "가지고 온 용기에 필요한 만큼만 담아 가세요" 가끔씩 부모님에게 '노오란양은주전자를고사리손에쥐고한되, 두되씩막걸리를 받아왔다'는소설같은 옛날 얘기를듣곤했다. 지금이야동네마트에만가도쌀, 고기, 생선할것없이전부깨끗하게비닐로포장된채로판매되고있지만, 불과한세대전만해도집에있는빈통이나그릇을가지고가서쌀한되, 미역두쪽, 명태한마리를담아오곤했다는것이다. 서울에서가장‘핫’한거리중하나인성수동일대에위치한‘더피커’는바로이같은방식으로식료품을판매하고있었다. 더 피커(The Picker)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사고 싶은 만큼만 골라(pick)갈 수 있다는 뜻과 수확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겼다. 이곳에는비닐봉투도없고포장지도눈에띄지않는다. 쌀과콩, 오트밀등곡물들이투명한유리통에담겨져있고, 손님들은 저마다 가지고온용기에필요한양만큼담는다. 저울에올려무게를재고사진을찍어계산대에보여주면가격라벨없이도구입이 가능하다. “우리가장을볼때깨끗하게포장된물건이편하다고생각하는데, 사실엄밀히살펴보면편하지만은않아요. 물건을집는그찰나의순간만편할뿐, 막상집에가서포장을벗기고버리고분리수거를해야하는수고로움이뒤따르죠.” 일찍부터포장폐기물에대해관심이많았던송경호대표는‘쓰레기가아예안 나오게할수있는방법은없을까?’ 고민했다. 이미발생한쓰레기를잘썩게하거나재활용을하는것도중요하지만, 처음부터쓰레기를만들어내지않는것이더본질적인해결책이라는생각이든것. 그렇게송경호대표는 '제로웨이스트(zero-waste·쓰레기없이살기)'를실현하는식료품점, 국내최초의포장없는가게더피커를열었다. 매장한켠에는비건레스토랑을함께운영해판매재고로인한쓰레기를줄이는순환체계도갖췄다. 바질페스토샌드위치와건강샐러드는SNS를통해입소문이나일부러찾아오는손님들까지생길만큼‘성수동맛집’이됐다. ▲손님이 가져온 용기를 저울에 올려놓고 '0'으로 맞춰준 뒤, 원하는 상품을 필요한 만큼 담아 무게를 재고 사진을 찍어 계산을 하는 방식이다.ⓒ데일리굿뉴스 '건강한소비'로 만드는 건강한지구…"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을까요?" 제로웨이스트에대한인식이전무하다시피했던2015년 문을연더피커는손님들에게도, 농산물을납품하는농부들에게도생소한가게였다. “대부분농가에서생산부터포장, 유통까지하다보니까대용량벌크포장으로제공받아도그안에다시소분포장이되어있어이중포장을하는농가들이많았어요. 소분포장을하지않는농가를일일이찾아다니느라발품을많이팔아야했죠. 당시까지만해도환경문제에대한관심이미흡하다보니의아해하시는 분들이많았어요.” 송 대표는 지난해소위‘쓰레기대란’ 사건이벌어진뒤로 환경오염에대한 경각심이 커진 것을 체감하고있다. 그래서인지 더피커를찾는손님들도실제로눈에띄게늘었다. 그는“꾸준히찾아오는단골손님들의비중도크지만, 환경보호를위해서뭐든해야겠다는생각은있는데구체적으로어떻게해야하는지잘모르는분들, 한번체험해보고싶은분들이많이방문한다”고귀띔했다. 그중가장기억에남는손님을묻자송대표는 "에코백을들고엄마와함께가게에온, 기껏해야초등학교저학년쯤 돼 보이는아이가생각난다"고대답했다. “그동안모은동전들을가지고와서사고싶은물건을사는아이의모습이정말즐거워보였어요. 환경을보호해야한다고하면죽은돌고래배에플라스틱이가득한모습, 코에빨대가꽂힌바다거북을떠올리면서억지로편리함을참는경우가많아요. 그런데그런식으로하면1년도채못가더라고요. 죄책감때문에하고, 하기싫은데억지로하는게아니라실천할수있는만큼만즐겁고재미있게하면좋겠어요.” 더피커의공동대표인송경호·홍지선씨는지난해 교회에서결혼식을올린크리스천부부다. 송대표는“‘보기에좋았더라’라고하신하나님의말씀대로사람과환경이회복되는날을꿈꾸고있다”며“여러방면에서제로웨이스트를실천하는가게들이전국곳곳에생겨났으면한다”고밝혔다.

최상경 기자2019-03-08

법의 테두리에서 밀려난 채 부모가 된다는 부담을 안고 불안하게 서있는 미혼모가 우리 곁엔 생각 외로 많다. 이들은 아이를 낳는 것부터 출생신고, 주거마련, 생계까지 녹록지 않은 현실에 부딪혀 쓰러지곤 한다. 이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상 가운데 일어날 수 있도록 자립을 돕는 부부가 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인생의 동반자가 돼 '온정의 손길'을 건네고 있는 러브더월드(Lovethe World) 박대원 대표·서지형 이사 부부가 그 주인공들이다. 복지 사각지대 미혼모 600가정 지원 "오늘 같이 살던 미혼모 한 분이 원룸으로 이사 가는 날이에요. 드디어 머물 수 있는 거처를 얻었거든요. 미혼모들이 산다고 하면 주인들이 색안경을 끼고 꺼려하는 경우가 많죠. 아이가 울어 대기라도 하면 나가라는 말까지 듣는 예도 있었어요." 8일 경기도 수원 러브더월드 사무실은 이사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침대 챙겼어요?", "이따 세시쯤 가서 들여다 봐야 할 것 같은데…" 오가는 대화 속에 짐작을 가능케 했다. 러브더월드 박대원 대표·서지형 이사 부부는 그야말로 미혼모들의 자립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미혼모들의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면 함께 병원에서 대기도 하고, 출산 후엔 미역국을 손수 끓여주는 등 산후조리까지 나선다. 한때는 자가집에서 같이 산 미혼모들이 10명을 넘길 때도 있었다. 자신들의 방을 미혼모들에게 내어준 것이다. 이 같이 미혼모들과 부대끼다 보니 부부의 사역이 자연스레 밖으로 알려지게 됐다. 박 대표는 "어떻게 알고 연락을 주셨는지 인연들이 닿아 현재는 미혼모 640여 명과 꾸준히 교제하며 지원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부부가 돕는 이들은 여러 사유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로 밀려난 미혼모·미혼부가 대부분이다. 거주지가 없어 출생신고가 불가능하거나 조건 불충족으로 정부지원에 기댈 수 없는 형편들이 많다. 2015년 러브더월드를 설립한 이래, 부부는 이런 그들에게 거주지·물품 지원 등과 정서적인 케어까지 모두 제공해 주고 있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해요. 그런데 옆에서 찬찬히 들여다보면 마음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지요. 이들은 어찌됐던 한 생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당장 갈 곳이 없거나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된 절망적 상황 가운데서도 말이죠.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먼저 건네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요." 지금처럼 미혼모를 섬기게 되기까지 당초 계획에 따른 일은 하나도 없었다. 서 이사는 "우리 부부는 70세까지 인생 설계가 돼 있을 정도로 계획적인 삶을 추구했다"며 "이 사역을 하면서 계획이란 게모두 무너져 버렸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신 대로 오게 됐다"고 고백했다. 결혼 16년 차인 부부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결혼 후의 삶을 계획하던 당시 이들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얘길 들었다. 교제하던 중 서 이사가 난소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고민 끝에 서 이사는 먼저 이별을 고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서로의 곁을 지켰고 결혼까지 이르게 됐다. 박 대표는 "저희 부부에겐 11년간 아이가 없었다. 목회자로 섬기는 중 입양을 위해 여러 기관을 찾았지만 거절 당했다"면서 "그렇게 기관을 전전하면서 자연스레 미혼모들의 삶을 보게 됐고, 이들이 계속 뇌리에 남아 시작한 일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밝혔다. 지금은 기적적으로 두 아이를 입양해 행복한 가정도 꾸렸다. 이들 부부는 새 삶을 얻은 만큼 이 삶을 귀중히 여기며 '생명을 살리는 일'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최대한 많은 미혼모들을 도우면서 이들에게 '하나님의 참 사랑'을 알려주는 것이 부부의 최종 꿈이다.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외면치 않으시고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으로서 그 사랑을 입은 우리는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흘러 보내야 합니다. 저희 부부는 결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저희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며 함께 하는 삶을 배우면서 더불어 살고 싶습니다."

박혜정 기자2019-03-07

성경, 예배, 기도 등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는 요소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기독만화책이 발간됐다. 바로 <어서와. 교회는 처음이지?>다. 24세에 만화가로 데뷔한 조대현 목사는 기독인들의 올바른 신앙생활을 돕고자 기독교 핵심교리를 재미있는 만화로 그려냈다. 교회가 처음인 사람들, 비기독인들이 읽기 좋아 저자 조대현 목사는 이 책 속에 ‘예수님은 누구인지’, ‘성경은 무엇인지’, ‘예배는 왜 드려야 하는지’ 등 기독교 핵심교리와 더불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루하지 않은 만화로 유쾌하게 풀어냈다. 조 목사는 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신앙적 기초를 쉽고 재밌는 만화를 통해 세울 수 있을 것”이라며 “어린이교육선교회, 어린이청소년 집회, 개척교회 목회 등 10년 간 목회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크리스천에게 실제적으로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고민하다 핵심교리를 짚어 주기로 결정했다. 구상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10년 전인 2009년은 그가 현재 목회하고 있는 조인교회를 갓 개척했을 때다. 당시 지하에서 교회를 운영하던 조 목사는 계단 벽면에 쓰인 ‘개독교’라는 낙서를 봤다고 한다. 언론·방송보도를 통한 한국교회 비리에 분노한 누군가의 소행이었다. 그는 “우리사회에서 지탄받는 한국교회의 현주소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동시에 바른 기독교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알리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 책은 비기독인들을 위한 ‘전도책’으로도 소개됐다. 조 목사는 “교회를 전혀 안다니는 비기독인들이 혼자 책을 읽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전도책”이라면서 “진정한 교회, 올바른 교회의 모습은 무엇인지에 대해 쉬운 언어와 만화로 표현했다”고 전했다. 때문에 각 장 별 만화 대사는 비기독인들이 궁금증을 갖고 물어볼 법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예를 들면 '헌금 드리기'에 관한 내용 중 만화 대사는 “왜 헌금을 내라고 하죠?”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총 16가지 교리가 △교회는 처음이지? △예수님을 처음 알았지? △성경은 처음 읽지? △신앙생활은 처음하지? 등 8개 목록으로 정리됐다. 특히 ‘신앙생활은 처음하지?’ 장에는 △주일 지키기 △예배 드리기 △찬양 드리기 △헌금 드리기 등 신앙생활의 실제적인 일들이 만화로 풀이됐다. 또, 조 목사에 따르면 이번 책은 전도만화세트 기획의 일환으로 출간된 것이다. 2017년 출간한 <하루만에 꿰뚫는 만화 성경관통>이 기획의 첫 단계다. 이 책은 성경말씀 신구약 핵심내용을 재미있게 만화로 담아냈다. 이번에 출시한 <어서와 교회는 처음이지?>는 기독교 교리와 함께 실제적인 신앙생활 이해를 돕는 만화책이다. 그는 “오는 5~6월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에 관한 전도 만화책자를 손바닥 만한 크기의 책으로 출간할 것”이라며 “이로써 전도만화세트 기획이 완결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개척교회, 농어촌·미자립교회, 해외 선교사들이 비기독인을 전도할 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만화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며 “성경·교리·예수님에 관한 전도만화세트 기획을 완성해 효율적인 전도에 사용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어서와. 교회는 처음이지?>는 책제목처럼 교회에 처음 출석한 사람들을 반기며 이들의 초기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한 책이다. 아울러 신앙생활을 이어온 기간과 상관없이 기독교 교리에 대해 체계적으로 잘 모르는 교인이나, 교회학교 어린이들의 신앙적 기초 지식을 정립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한편 24세에 만화가로 데뷔한 조대현 목사는 28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기독교 만화 <울퉁불퉁 삼총사>를 발표했다. 이후 <한나 엄마>, <만화 성경관통>, <만화 천로역정>, <조지 뮬러> 등 40여 권의 작품을 발표했다. 15년 동안 언론사 시사만화와 만평을 그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작곡 8곡이 담긴 <위로, 예수> 음반을 발표하고 만화설교와 찬양집회를 결합한 <만찬 콘서트>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현재는 서울 송파구 조인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윤인경 기자2019-03-03

몇해전, 고시원침대에서굶어죽은채발견된청년에대한뉴스가전국적으로보도됐다. 마침뉴스를보고있던 한 신부는청년들이따뜻한밥한끼는먹을수있도록해야겠다는결심을했다. 2017년 12월, 사제복 위에 앞치마를 두른 신부는 김치찌개를 단일 메뉴로 식당을 열었다. 가톨릭신부가 식당을개업했다는소식은많은이들의관심을모았다. 이소식은미국LA의한인교회목회자에까지전해졌다. 평소‘너희가먹을것을주라(마14:11)’는말씀을목회 철학으로삼아온 목회자는망설임없이한국으로건너와‘2호점’을열었다. ‘가성비 甲’ 3천원김치찌개로청년들을위한식당을운영하는이문수신부, 최운형목사의이야기를들어봤다. 김치찌개 3천원에 공깃밥 무한리필, 취업 등 청년들 고민 상담도 ‘김치찌개3천원. 밥과샐러드는 무제한입니다.’ 밥을먹기도전에 벌써배가부른듯한문구다. 요즘 식당메뉴를보면6~7천원짜리가태반인데, 이곳에서는같은금액으로2인분을먹을수있는셈이다. ‘내가살게’라는말도전혀부담스럽지않게나온다. 지난2017년겨울, 서울성북구정릉시장에문을연‘청년밥상문간’은천주교글라렛선교수도회 이문수신부가운영하는밥집이다. 칼칼한빨간국물에아낌없이썰어넣은김치, 큼지막한두부에돼지고기까지들어있는김치찌개가메인메뉴. 지난월요일부터는야채비빔밥과청국장도새롭게메뉴에추가됐다. 가격은변함없이3천원이다. “사실먹을게없어서굶는시대는더이상아니에요. 천원이라도있으면편의점가서삼각김밥이나빵, 컵라면을사먹을수있죠. 그런데그건제대로된식사가아니에요. 대충때우는거죠. 그마저도굶는청년들이많더라고요.” 처음에는밥을무료로제공하려는계획이었다. 그러다생각이바뀌었다. ‘내가청년이라면무료급식소에올까?’ 한두번은오겠지만계속오기는힘들것같다고생각했다. 주변의청년들도오히려얼마간돈을내고먹는것이마음이편하다며조언을곁들었다. 그렇게 이문수 신부는 3천원에김치찌개와무한리필밥을제공하는것으로결정했다. 어느덧점심시간무렵이되자식당자리가꽉찼다. 대부분청년들이었지만나이가지긋한어르신들도간간이눈에띄었다. 이문수 신부는하루손님이평균90명인데절반은중고등학생과대학생, 절반은일반인들이온다고귀띔했다. 이신부가직접김치찌개를끓이는건아니다. 요리는전문주방장에게맡겼다. 이문수신부는서빙을도우면서손님들과대화를나눈다. 개중에는그가가톨릭신부라는사실을알고상담을청하는사람들도꽤자주있다. 'N포 세대' 청년들은경제적어려움이나취업고민등을이신부에게털어놓곤 한다. 이문수신부는“겉으로는아무렇지않게다니는청년들중에도사실은형편이어려운경우가많더라”며“자신의가난한상황을드러내지않기때문에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사실 막막하다. 이렇게 싸고 푸짐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곳곳에 많이 생기면 청년들의 마음에 큰 위안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손님들로 식당이 가득 찼다. '청년밥집 문간'은 어느새 마을 주민들의 단골식당으로 자리잡았다.ⓒ데일리굿뉴스 목사님이 직접 끓인 김치찌개…"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 마세요" 그바람에대한 응답이었을까. 이문수신부가청년밥상문간을연지4개월만에 한 목회자가 찾아왔다. 미국LA한인타운의세계선교교회에서시무하던최운형목사는지난해3월우연히청년밥상문간을소개하는기사를보게됐다. 평소목회 철학이‘너희가먹을것을주라(마14:11)’였던최목사는가난한청년들을위한밥상사역에나서야겠다는생각을했다. 미국중형교회에서안정적으로목회를하고있던 최 목사가 느닷없이한국에가서식당을개업하겠고 선언하자, 아내와두딸은물론주변사람들까지만류했다. 하지만최목사의결심은확고했다. 그는한달음에한국으로건너가정릉시장의이문수신부를찾아갔다. “쉽진않았지만그렇다고그렇게어려운결정도아니었어요. 아무래도당장생계가걱정되긴했지만, 항상강대상에서‘무엇을먹을까무엇을마실까염려하지말라’는 말씀을 강조했던 것이 결심을굽히지않을 수 있었던 힘이 됐죠.” 그때부터몇달간최목사는한국과미국을 오가며목회정리와식당개업준비에분주히움직였다. 마침내 지난해10월 연신내역인근에두번째청년밥상문간이 문을 열었다. 이곳에선 전직주방장출신의도움을받아최운형목사가직접김치찌개를끓여내고있다. 초반에는맛이없어서손님들이안오면어쩌나걱정했지만, 지금은제법맛이난다고. 17년전 한국에서목회를 했던 홍제동 홍광교회교인들이 소식을 듣고 봉사자로일손을보태주고있어더없이든든하다고최목사는말했다. 그의목표는생각보다소박했다. 식당운영을잘해서좋은밥집이되는것, 그래서청년들과혼자사는분들을오랫동안돕는것이 목표다. 밥상은 사실 배를채우기위한것만은아니다. 누군가가차려준밥상에는사랑과돌봄이가득담겨있고, 맛있는밥을함께먹으면서 사람들 사이엔 정이쌓인다. 그런밥상이바쁘고각박한현실속에서점차홀대를받고있다. 싸고푸짐한 밥집이있다는사실만으로도마음이넉넉하고따뜻해지는신부님표, 목사님표‘3천원김치찌개’를응원할수밖에없는이유다. 최목사는주일아침마다동네교회로출석하고있다. 부목사, 담임목사로 10년넘게강대상에서설교를전하다가이제는평신도로예배를드리니갑작스러운변화가낯설터였다. 하지만최운형목사는“강대상이아닌현장에서사역하고싶다는생각을오래전부터했기때문에그어느때보다마음이편하고좋다”며웃음을지었다. 그러면서교회 수도, 교인들도줄어드는데목회자수는 계속 증가하는한국교회 현실을 우려하기도 했다. 최목사는“담임목회자정년이70세로보장돼있는상황에서신학생들과젊은목회자들은정말힘이들것”이라며“담임목사는 일찍은퇴해 파트타임으로도움을주는 등 젊은목회자들에게기회를주는것이필요하다”고강조했다. ▲청년밥상 문간 앞에는 따뜻한 사랑에 감사를 표하는 청년들이 붙인 포스트잇이 수십 장 붙어있었다.ⓒ데일리굿뉴스

박혜정 기자2019-02-28

오는 3월 16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2019 김복유 월간 콘서트’ 1차 티케팅이 발매 시작 2분 30초만에 매진을 기록했다. 2차 티케팅까지 오픈할 만큼 이번 콘서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표곡 ‘잇쉬가 잇샤에게’와 ‘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건다’ 등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작사법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크리스천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CCM싱어송라이터 김복유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삶의 매 순간 받은 영감으로 노래 썼죠” “그댈 기다리오. 스무살의 나는 주께 맡겼다오. 사랑이란 내 선택을. 이제 잠이 드오. 주의 머리맡에. 주께 드렸다오. 설렘이란 내 감정도…행복을 연습하겠소. 문 잠긴 동산이 되어…” 한 편의 시와 같은 이 글귀는 CCM 가수 김복유의 ‘잇쉬가 잇샤에게’ 가사 도입부분이다. 잇쉬와 잇샤는 히브리어로 남자와 여자, 아담과 하와를 뜻한다. 노래내용 초반에는 남녀가 자신의 ‘짝’을 찾기 전까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설렘이란 감정도 주님께 맡기겠다는 신앙고백이다. 중반부에는 남녀가 만나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 후반부에는 결혼식에서 사랑의 서약을 하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등 한 편의 러브스토리 드라마 같다. 때문에 이 곡은 결혼식 축가로도 인기가 높다. 덕분에 지금의 김복유가 CCM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2017년 백석대 음악학과 졸업공연에서 이 노래를 불렀고, 공연장면을 자신의 SNS에 업로드하면서 반응이 뜨거웠다. 이를 계기로 학교 스튜디오를 빌려 직접 앨범을 만들어 발매했다. 놀라운 점은 이 노래가 탄생한 시기가 약 8년 전, 김복유가 20대 초반 시절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때 연애 한번 안 해본 솔로였던 그가 이 곡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설교말씀 영향이 컸다. “출석하는 교회 청년부에서 대학생 시절에는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연애를 자제시키는 분위기였다. 당시 결혼이 너무 하고 싶었고 이상형을 만나면 더욱 행복해질 것이라는 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을 만나도 행복하지 않다. 지금부터 행복을 연습해야 한다’는 설교에 깨달음을 얻고 이 곡을 쓰게 됐다.” 현재 사랑 받고 있는 그의 노래들 대부분 역시 ‘잇쉬가 잇샤에게’처럼 20대 초반에 쓰여졌다. 지난해 디지털앨범으로 선보인 ‘전부가 되소서’, ‘나는 사마리 여인에게 말을 건다’, ‘그때 우린’ 등이 해당된다. 당시 음악 전공자가 아니던 김복유가 명곡들을 쓸 수 있던 이유는 삶의 순간순간 하나님이 주신 영감을 따라 즉흥적으로 연주하고 기록한 덕분이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작곡·작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며 “곡들에 대한 애착이 강해 그 때 스스로 저작권위원회에 등록까지 해놓았다”고 말했다. 이어 “마음이 어려울 때 기도실을 찾아가 기도하던 중 감사의 고백이 나올 때, 설교내용에 감동을 받을 때마다 기타로 자유롭게 연주하며 휴대폰에 녹음했다. 말씀묵상과 간증거리를 기록한 일명 기도노트도 작성했다”며 “주님이 주신 창의력과 노래이기에 소중히 여겼다. 사람들이 뭐라 해도 하나님이 내 노래를 좋아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계속 노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복유가 노래하는 이유 처음부터 그가 싱어송라이터의 길에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한 것은 분명했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년 전인 2013년까지만 해도 아무도 그의 노래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교회 기도실에서 사람들은 기도하고 나는 앞에서 찬양을 부르는 역할을 맡았다. 직접 쓴 곡들을 불렀는데 내가 찬양을 하면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고 다 나가버렸다. ‘가사가 너무 많다’, ‘이해하기 힘든 노래다’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약 5년 가까이 자신이 만든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눈물로 기도했다는 그는 주변의 기도를 통해 자신의 노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는 "사람들이 세운 기준에 내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 자신을 위해 노래해달라는 마음의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이 언젠가 나에게 청중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신뢰하게 됐다”며 “그 때부터 자유로운 마음으로 노래 불렀다”고 전했다. 이를 계기로 재수를 거쳐 영어과를 다니던 김복유는 2014년 백석대 실용음악과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2014년 CCM아티스트들과 찬양사역자들을 배출하는 오디션 제4회 CCM루키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CCM 세계에 정식 입문했다. 뮤지션 친구들과도 자연스레 인연이 닿았다. 2년 전 서익주 퍼커셔니스트와 팀을 이룬 어쿠스틱 노래풍의 ‘보라밴드’를 결성했고 올해 2집 앨범 ‘Genesis(창세기)’를 발매했다. 작년에 열린 전국 투어 콘서트를 시작으로, 올해 ‘2019 김복유 월간 콘서트’까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정신 차려보니 정말 내가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김복유. 모태신앙인 그는 어려운 집안형편으로 열악한 재정에 시달렸지만 그때마다 실질적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일상 속에서 늘 하나님과 대화하듯 기도한다는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실제적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앞으로 그의 비전 역시 주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선물로 여기고 사랑하는 하나님을 기쁨으로 노래하는 것이다. 기회가 되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김복유는 “이 땅에서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일상 속에서 느끼면서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받은 영감으로 음악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박혜정 기자2019-02-27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심옥주 소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고 이들의 활동을 조명하는 책 <나는 여성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을 펴냈다. 그는 책을 통해 아이를 기르거나 남편을 외조하는 등 전통사회 한국여성이라는 틀을 깨고 강한 리더십과 진취적인 모습으로 역사적 활동을 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했다. “일제의 무력 침략 하에 피해 입은 이들을 ‘어머니’라고 생각하면 사명감으로 알릴 수 밖에 없다”는 그를 직접 만나봤다. 여학생 비밀결사대, 만세운동 확대 불 지폈다 심옥주 소장은 2009년 비영리법인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를 설립하고, 독립운동 역사를 알리기 위한 발굴작업과 학술연구 등을 하고 있다. 윤희순 의사를 비롯해 주목받지 못한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유관순상, 2015년 학술상을 받았다.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총망라하는 연구조사를 올해로 10년 째 이어온 심소장은 2016년 출간한 <여성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알리다>를 읽기 쉽게 풀이한 <나는 여성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를 출간한 것.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소소한 역사적 사건들과 이들의 진취적인 여성상을 쉬운 서체로 다시 풀어냈다. 특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전개 과정에서 전국 곳곳에 여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독립운동의 결의를 다지며 비밀리에 조직한 단체 ‘비밀 결사대’ 관련 내용이 눈길을 끈다. 예를 들면 △부산 최초의 여성교육기관 일신여학교(현 동래여자고등학교) △1903년 10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마펫이 평양에 설립한 숭의여학교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숭의여학교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결성한 항일비밀 결사 조직 송죽결사대 등이 있다. 심 소장은 “호수돈여학교 비밀 결사대’와 ‘숭의여학교 송죽결사대’는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강화하는 비밀 집회를 주기적으로 가진 대표적인 비밀 결사대였다”며 “3.1운동 이후에도 임시정부요원 활동을 하며 대한애국부인회 활동 등의 주역으로 만세운동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유관순 열사 뿐 아니라 권애라, 장정심, 김경희, 황에스더 등 뚜렷한 역사의식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구국운동을 전개한 리더십을 가진 여성지도자들이 여기 포함된다. 이러한 여학생들의 주체적인 움직임은 1886년 서울 이화학당, 1887년 정신여학교 설립 등 여성교육 확대와 교회의 역할이 컸다는 의견이다. 그는 “기독교는 당시 전통사회 그림자 속에 갇혀있던 한국여성에게 여성들 개개인은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시킴으로써, ‘내가 이 사회에 뭘 할 수 있을까’라는 희생과 봉사정신을 심어주었다”며 “교육기관 설립과 확산은 당대 여학생들이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애국·애족사상을 갖고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사회적 입지를 굳히게 했다”고 부연했다. 저평가 되는 한국 어머니들의 피해, 사명감 심어줘 ▲책 <나는 여성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 심 소장이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활동을 알리는 데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한말 최초 여성의병장 윤희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다. 그는 “윤희순 의사는 유교집안 여성으로서 시아버지, 친정아버지, 남편, 아들 모두 독립운동가였다. 당시 사회분위기 속 그는 현모양처로 뒷바라지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의병단을 꾸리고 의병가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나라사랑 정신을 일깨웠다”면서 “가문에서 독립운동 정신의 주춧돌 역할이자 리더적인 면모를 보인 그가 매력적이었기에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고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이 확인될 때마다 짜릿함을 느낀 그는 작년 부산대 교수직까지 내려놓고 서울로 올라와 여성독립운동가 연구와 자료조사에 더욱 집중했다.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을 향한 그의 열정이 어디로부터 나오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대답했다. ‘무모한 일에 괜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도 있었다. 연구소가 비영리로 꾸려지다 보니 정부나 외부의 지원도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심 소장은 “이때까지 우리나라 역사는 남성 위주로 기술돼 여성 활동가들의 기록이 미진하다”면서 “한국 어머니들이 역사적으로 입은 피해가 인정받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이라도 열어 놓을 수 있다면 사명감과 책임감을 다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심 소장은 무명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여성들의 활동을 알릴 수 있는 기틀 마련을 위해 정부에 제안을 준비 중이다. 그는 “여성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는 분들을 보면 모호한 서훈 기준으로 훈격이 저평가 되는 부분들이 많다. 이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민관 소통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전국을 총괄해 여성독립운동을 연구할 수 있는 정부 주도 ‘여성독립연구센터’ 설립을 위한 기초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다음세대가 한국여성의 역사성을 되찾는 데 동참할 수 있도록 오는 3월 8~9일 서울 광화문에서 청소년들이 재능기부로 직접 그린 ‘100점 전시회’를 계획 중이다. 끝으로 심 소장은 “독립을 향한 열망에는 남녀노소가 없었다. 여성도 독립운동의 대열에 함께 서 날선 총칼을 들이미는 일제에 태극기로 맞서 싸웠다”며 “여성이 남성 활동가의 뒷바라지만 하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지 않고 함께 조국을 지켜내고 버텨냈던 시기였기에 그들 모두가 독립운동의 중심이고 대한민국 광복을 이끈 주역”이라고 강조했다.

천보라 기자2019-02-20

올해는 3·1절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기념적인 해다. 이를 기념해 정부, 지자체 등 각 기관 및 단체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기획·진행되고 있다. 3·1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한국 교계에서도 3·1운동의 정신과 의미를 되새기는 기념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이 가운데 3·1운동을 문화예술로 승화시킨 오페라 <함성, 1919>가 막을 올려 눈길을 끈다. 오페라 <함성, 1919>를 통해 민족지도자들의 애국, 신앙, 사랑을 알리겠다는 작곡가 박재훈(97) 목사를 만나 100년 전 그날의 뜨거운 함성을 들어봤다. <함성, 1919>가 터지기까지 올해 97세가 된 작곡가 박재훈 목사는 '어머님의 은혜', '산골짝의 다람쥐', '송이송이 눈꽃송이', '펄펄 눈이 옵니다',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시냇물은 졸졸졸졸' 등 우리 귀에 익숙한 동요를 작곡한 '동요계의 대부'이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오페라 <함성, 1919>는 소위 잘나간다는 박 목사가 무려 40년간 염원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는 박 목사. 그는 시간이 흐른 후 비로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새뮤얼 모펫(마포삼열) 선교사로부터 1973년에 제안을 받았습니다. 3·1운동에 관한 오페라를 하라는 그의 말에 가슴이 벅차올랐지요. 미국에서 음악공부를 더하고 10년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저를 40년간 훈련시키실 줄몰랐습니다. 그런데 작곡은 대본이 들어와야 할 수 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대본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저는 60세에 늦둥이 목사가 되었고 교회를 개척하면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를 다듬고 변화시키셨습니다. " 대본이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였다. 지난 2013년 대본을 받은 박 목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작곡을 시작했다. 그렇게 문성모 목사가 대본을 쓰고 박 목사가 곡을 붙여 구성된 작품, 오페라 <함성, 1919>가완성됐다. 정확히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민족의 함성 '대한독립만세' 3·1운동은 민족의 독립의지와 저력을 보여주며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항일독립운동이다. 또 33인 민족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지식인, 학생, 농민 등 각계각층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다. 박 목사는 이 점에 주목했다.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교회에서도 민족의 함성 '대한독립만세'는 끝없이 퍼졌습니다. 이것이 3·1운동입니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죽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분들의 함성으로 대한독립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박 목사는 작품 속에서 3·1운동의 주인공인 민중의 함성을 잘 드러내길 원했다.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오페라 <함성, 1919>는 합창오페라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민중들의 함성을 많은 분량의 합창으로 담아내, 당시 3·1운동 현장에 있는 듯한 감동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오페라 <함성, 1919>는 한 사람의 능력으로혼자서 만든것이 아니라는박 목사. 그는 "하나의 작품을 위해 지휘자인 이기균 목사 등 수많은 관계자들이 수고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오페라 <함성, 1919>가 올바르고 거룩한 제사의 번제로 태워드리는 작품이 되도록 관계자들 모두 정신적· 육체적으로 낮아지게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박 목사는 이번 작품이 일회성 행사가 되지 않길 바라면서 오페라 <함성, 1919>를 통해 젊은 세대들이 우리의 역사를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기를 희망했다. 아울러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통해 감동을 받아 어려운 이 시대에 구국의 함성, 회개의 함성, 거룩한 함성이 터지길 바란다. 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오페라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오페라 <함성, 1919>는 오는 3월 1일(금) 오후 5시, 2일(토) 오후 3시, 7시 30분에 여의도 KBS홀에서 공연한다. 입장료는 R석 28만 원 / S석 18만 원 / A석 12만 원 / B석 8만 원 / C석 5만 원 / D석 3만 원이다. 뮤지컬과 관련한 자세한 문의는 (사)고려오페라단(02-883-7753)으로 하면 된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오페라 <함성, 1919> 포스터ⓒ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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