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경 기자2019-10-14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전 분야에는 신실하고 유능한 크리스천들이 많다. 그들의 선한 영향력은 복음의 향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선교사역이 된다. 본보는 ‘리더스미션’이라는 타이틀 아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심어주는 모범 크리스천 CEO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기업을 꾸려온 지 어느덧 20여 년이 흘렀다. 작은 철물점에서 시작해 국내 굴지의 건설기업이 되기까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얄궂게 위기와 기회는 늘 동시에 찾아왔다. 그럼에도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데는 '오직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 이철수 반석종합건설 대표가 풀어놓은 지난 날의 이야기다. "순종하며 나아갈 때 역사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 위에 신앙의 집을 짓는 사람은 마치 '반석 위에 지은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시련과 고난이 닥쳐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반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은 홍수가 나고 비바람이 불어 닥치면 반드시 무너지기 마련이다. 세상 가운데 '반석 위에 집을 짓겠다'는 신념으로 기업을 꾸려온 지 자그마치 28년간의 세월이다. 11일 만난 이철수 대표는 "창립 이래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놀라우신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가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1991년 설립한 회사는 아파트 재건축과 도시형생활주택, 다세대주택 등 주거환경개선을 위해 노력 중인 건설 기업이다. 아파트 재건축 사업과 교회건축 등을 주력사업으로 성장하며 주거환경을 선도하고 있다. 건설업계 CEO로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이 대표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일찍 세상에 눈을 뜬 그는 사업가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했다. 상도동 빙수골이라는 마을에서 작은 철물점을 운영한 게 모든 것의 출발이었다. "어릴 때부터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유독 셈이 빨랐어요. 사업이라면 '자신있다' 싶어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올라와서 작은 철물점을 했지요. 당시 집 개보수도 하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집을 지어달라는 제안을 건넨 거죠. 전문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근처에 집 짓는데 무작정 쫓아가서 책임자에게 배우면서 했어요. 그때는 가장 아름답고 견고한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 기술하나 없던 그가 믿었던 것은 '오직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뿐이었다. 이 자신감은 매 현장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됐다고 그는 고백했다. 이 대표는 "하나님께서는 만날 자를 예비해주심은 물론 도저히 사람의 힘으론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을 때마다 행해주셨다"며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건설현장에서의 간증은 지난 2017년 GOODTV 프로그램을 통해 전파를 타기도 했다. 반석종합건설과 기쁨의교회의 놀라운 인연이 소개가 된 것. 당시 기쁨의교회 이종선 목사는 성전건축을 위해 시공사 선정을 두고 기도에 임했었다. 순전히 기도 응답에 따라 만난 이가 이 대표였던 것이다. "이종선 목사가 저희 회사에 대한 기도 응답을 받고 여러 가지 입찰 과정도 다 생략하고 바로 시공사 선정을 결정하셨습니다. 그때 이 목사께서 해준 얘기가 잊혀지지 않아요. 기쁨의교회 성전건축을 계기로 앞으로 국내의 많은 교회를 건축하도록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것이란 말씀이었죠." 이 때문일까. 그 이후로 교회건축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실제로 향후 교회건축에도 전념할 계획이다. 인터뷰 내내 '주님 영광을 위해 모두 헌신할 것'이라고 강조한 이 대표는 기업경영도 신앙생활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나아가겠단 다짐을 전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9장 23절은 사무실 정면에 들어서면 크게 보이는 성경구절이다. 이 말씀을 가리키며 이철수 대표는 "하나님 안에서는 능치 못함이 없다"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믿고 정직과 신뢰로써 기업을 운영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힘쓰겠다"는 말을 남겼다.

조유현 기자2019-10-04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목회자, 선교사들의 사례비나 복지가 열악해 사역 환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건강 악화로 치료를 받아야하지만 마음 놓고 병원에 갈 수도 없는 현실이다. 사역자들의 이 같은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유희덕 목사가 발 벗고 나서 그들을 섬기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에 건강 악화 방치하지 않도록 인천 꿈동산교회 유희덕 목사는 2011년 ‘미사랑의료복지선교회’를 설립해 9년동안 사역자들의 건강을 책임져 왔다. ‘미사랑의료복지선교회’는 목회자, 선교사, 다문화 가정 등을 위한 의료 후원 단체이다. 유 목사는 2005년부터 ‘나눔과 기쁨’(대표 서경석) 소속으로 지역사회 독거노인과 차상위계층 돌봄 사역을 활발히 이어왔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섬기면서 의료 후원 사역에, 특별히 동역자들을 향한 마음을 주셨고 이 때 ‘미사랑의료복지선교회’가 생겨나게 됐다. “요즘 목회환경이 너무 열악한데 미사랑선교회 통해서 적어도 건강만큼은 유지하면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도우려고 선교회를 시작했어요. 특히 미자립교회 돕는 일에 일정부분 동역한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섬기고 있습니다.” 선교회는 처음 설립 당시 5군데 제휴병원으로 시작했다. 현재는 제휴병원과 협력업체가 780곳으로 확대돼서 사역자들이 점점 가까운 병원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종합병원, 각종 의원 등이 선교회와 제휴를 맺고 병원의 복지예산, 선교비 등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치과의 경우 제주도 포함 전국 어디서든 30분 내 이용 가능한 제휴 병원이 있을 만큼 곳곳에서 의료후원에 동참하고 있다. 현재 선교회 회원 18300여 명이 의료 후원 혜택을 누리고 있다. 처음에는 사역자들만 가입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어려운 일반 교인들도 이용하고 있다. 유 목사는 더 많은 목회자와 의료후원이 절실한 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며 도전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는 국내외선교사, 선교지원주민, 미자립목회자 등을 위한 ‘세계의료복지센터’ 건립을 계획하고 추진 중에 있다. 그는 의료 선교 사역에 한국교회의 관심과 기도를 간곡히 청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달려서 속히 제휴병원과 협력업체를 어디서든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선교회 사역을 위해 기도 부탁드리고 추진 중에 있는 ‘세계의료복지센터’를 위해서도 많은 후원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차진환 기자2019-09-27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전 분야에는 신실하고 유능한 크리스천들이 많다. 그들의 선한 영향력은 복음의 향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선교사역이 된다. 본보는 ‘리더스미션’이라는 타이틀 아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심어주는 모범 크리스천 CEO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교회가 궁금해 문턱을 넘었던 24살 청년은 이제 교회를 짓는 중년이 되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건축업계에 뛰어들었지만 신념 하나는 명확했다. 교회 건축은 정직해야 한다는 것. ㈜제이풀건설 이철운 대표의 건축 신념이다. 교회건축은 크게 신축, 재건축, 증축 및 리모델링 등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교회건축CM과 건축설계감리, 인테리어와 시공 등 일반 건물보다 적은 예산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가운데서 부당한 이윤을 취하는 행위를 일절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손해를 보면 봤지 부당하게 건축하지 않았다. 약속한대로 최선을 다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믿음-축복-타락-회복’의 단계를 거치며 지금의 신앙인으로서 바로 설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목회자의 길을 걷는 아들, 믿음의 가정을 이룬 딸의 삶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한다. 건축뿐만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살피고 도움될만한 일들을 주선하는 ㈜제이풀건설 이철운 대표. 또 건사모(교회건축을 사역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 운영국장과 GOOD TV 운영이사를 역임 중인 그를 만났다. Q. 예수를 영접한 계기는 어떻게 되나 A. 20대 초반 청년시절 호기심에 교회 문턱을 넘었다가 이후 쭉 교회를 다녔다. 경기 성남에서 기독교 백화점을 운영했는데 사업이 잘 되다 보니 교만해졌고 교회와 멀어져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영성회복 프로그램을 통해 전심으로 주님을 영접하게 됐다. 그때의 감사함을 잊지 못한다. 이후 16년간 영성 회복 캠프에 봉사로 섬겼으며 일터와 사역, 가정에서도 바로 서기 위해 노력 중이다. Q. 남들보다 늦게 건축의 길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A. 운영하던 사업이 악화될 때 ‘동혁건설’이란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작은 회사였지만 당시 규모가 큰 교회의 건축 계약을 수주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건축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도 또 하나의 간증이다. 입찰했던 기업 중 우리 회사가 가장 열악했다. 하지만 최종 후보에 올랐고 선택받았다. '회사가 크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죠'란 교회 목사님의 목사리가 생생하다. 작은 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책임감을 갖고 일하기 시작했다. Q. 특히 교회건축에 몸담게 된 이유는 A. 모든 건축업 관계자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쪽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운영에 불투명함을 많이 알게 됐다. 적어도 교회를 세우는 일에서만큼은 이러한 일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 들었다. 이런 뜻을 함께하는 분들이 모여 ‘건사모 – 교회건축을 사역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만들어졌고 정직한 경영과 교회와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Q. 교회건축에 임하는 개인적인 신념이 있는가 A. 지금 제이풀건설에 오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오로지 ‘정직한 경영’을 하겠다는 것. 건축 일을 하면서 추가적으로 들어오는 금전적 유혹을 모두 거절하고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서는 것이 개인적인 신념이다. 또한 교회건축을 약속과 사명감으로 정직하게 짓겠다는 마음을 항상 새기고 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A. 자녀들의 삶을 보니 믿음의 1세대였던 나와는 달리 형통의 복을 갖고 있는 듯 하다. 하나님이 이끌어 가심을 느낀다. 딸, 아들이 하나씩 있는데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자라주었다. 특히 아들은 선교의 꿈을 안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언제까지 건축을 하게 될 지 모르겠지만, 아들의 선교지에 교회를 세우고 금전적으로 후원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박재현 기자2019-09-26

IT 중심지로 알려진 성남시 판교는 관련업계에 종사하는 젊은 남성 비율이 많다. 그러다 보니 직업 특성상 크리스천 비율이 4%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설립 3주년을 맞은 '판교신우회'는 판교 복음화를 위한 찬양공연과 집회 등 다양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판교 직장인 신우 예배 네트워크 구축 퇴근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지만 판교테크노벨리에서는 직장인과 동네주민들까지 몰려들어 행사 장소를 가득 매운 채 함께 찬양을 부르고 있다.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 사람들 사이로는 비신앙인들도 함께 찬양을 즐기며 은혜를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번 공연은 판교신우회가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판교지역 직장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마련한 공연이다. 찬양과 예배를 통해 직장과 지역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제이어스와 함께 하는 나눔콘서트'는 지난 20일 오후 6시 30분 경기 성남시 판교 유스페이스 광장에서 열렸다. 이번 공연에는 CCM가수 제이어스가 찬양을 인도했으며, 새로운교회 한홍 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판교신우회는 이러한 찬양공연과 집회 등을 열어 판교 직장인들의 신우 예배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특히 매주 목요일 점심시간마다 직장 연합예배 모임을 가져 말씀과 교제의 시간을 나누고 있다. 이 연합예배 모임을 통해서 판교신우회가 시작됐다. 판교신우회 박태형 대표는 "예전에는 주일에만 예배를 드렸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루에 절반 가까이 생활하는 직장에서도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해 판교신우회를 만들게 되었다"며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된 동료 크리스천들과 목사님까지 8명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직장 동료 크리스천 8명으로 시작했던 판교 신우회는 3년이 지난 지금 60여명이 함께 찬양과 기도를 드리고 있다. 회원들이 평소 알고 지냈던 직장동료와 지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모임이 초대하다 보니 이렇게 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여성을 위한 여성 공부 '마더와이즈'와 기독교의 기본적 교리를 나누는 '기독교 에센스 CES' 등 다양한 협력 프로그램도 비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3년 동안 판교신우회 직장 연합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김재학 회원은 "전에는 회사에서 혼자 신앙생활을 했다면 이제는 같이 할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가 생긴 것에 감사 드린다"며 "무엇보다 직장을 위해 기도하고, 판교 땅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박태형 대표는 "앞으로 판교에 있는 주요 건물들마다 신우회가 생겨 서로 연합해 은혜를 나눌 수 있길 바란다"며 "언제나 누구든지 가까운 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모임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민주 기자2019-10-06

데뷔한 지 약 1년 6개월. 신인이지만 ‘선한 음악을 하겠다’는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각종 라이브 공연, 축제 무대, 방송, SNS 등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밴드가 있다.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국내외에서 인지도를 쌓아나가고 있는 5인조 실력파 밴드 W24(더블유트웬티포)다. 최근 남미에서 라이브 투어를 마치고 돌아와 10월 국내 단독 콘서트를 앞둔 W24를 만나근황과 향후 계획, 음악에관한 이야기를들어봤다. 국내외 떠오르는 차세대 밴드 W24 W24는 ‘World 24 hours’의 약자로 ‘전 세계 24시간 우리의 음악이 들려졌으면 좋겠다’라는 포부를 가지고 2018년 3월 데뷔했다. 김종길(드럼, 리더), 정호원(보컬), 박아론(건반), 김윤수(기타), 박지원(베이스)으로 구성된 W24는 작사·작곡, 편곡과 프로듀싱까지 직접 해내는 실력파 밴드다. 지금까지 3곡의 디지털 싱글(Love Me, 소심해SOSIME, 솔파미레도)과 2장의 미니앨범(1집 Singing Dancing, 2집 거기 잠시라도 ‘Stay A Moment’)을 발표했다. 데뷔한 지 9개월 만에 AAA(Asia Artist Awards)에서 포커스상을 받는가 하면 칠레의 국가적인 행사 ‘텔레톤’(Teletón) 40주년 행사에 K-POP 아티스트 최초로 초청받는 쾌거를 이뤘다. 얼마 전에는 온라인 공식 팬카페도 개설됐다. 공식 팬클럽 이름은 ‘EVERY(에브리)’로 정했다. Every 뒤에 단어를 붙여야 표현이 완성되는 것처럼 모든 나라, 모든 팬과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다. W24만의 남다른 ‘싹’ ‘실력파 리얼 밴드’라는 수식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W24를 떠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라이브 공연’이다. 밴드로서 단합된 팀워크를 보여주는 동시에 멤버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5명 모두 캐릭터가 확실한 만큼 다양한 음악을 들려준다는 강점도 있다. 실제 W24 팬 중에는 방송보다는 공연을 보고 좋아하게 됐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연주를 실시간 방송으로 접한 뒤 직접 공연장을 찾는 이도 있을 정도다. W24는구성원 5명 중 4명이 음악 전공자다. 어렸을 때 교회나 학교에서 악기를 접하고 전공까지 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보컬 호원은 국제지역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어릴 적부터 합창단, 교회 찬양팀으로 활동했고, 플루트·클라리넷·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해 본 경험이 있어 음악과 친숙했다. 정호원은 “원래 꿈은 승무원이었다. 노래를 좋아하고 즐겨 불렀지만, 가수를 직업으로 선택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W24의 특이점은 또 있었다. 멤버 5명 중 3명(종길, 호원, 윤수)이 군필자라는 것과 멤버 모두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팅에 가거나 팬들을 만나면 삶의 낙이 뭐냐는 소리를 듣곤 하지만 술과 담배 없이도 멤버들끼리 재미있고 즐겁게 잘 지낸다”는 것이 이들의 소신이다. ▲W24는 지난 9월 8일부터 에콰도르를 시작으로 칠레, 아르헨티나 순으로 라이브 투어(Live Tour)를 진행했다. 사진은 에콰도르 공연 후 찍은 것.(사진제공=제이아미엔터테인먼트) 최근 남미 투어에서 느낀 것 W24는 해외 팬들과의 소통에 강하다. 특히 중남미 국가에서 인기가 많다. 칠레에서 태어나 19년 동안 남미에서 자란 보컬 호원이 영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한 덕에 세계 팬들과 원활하게 소통해왔기 때문이다. W24의 SNS나 유튜브, 네이버 V-LIVE 등 소통 채널을 보면 다른 멤버들도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 등 다양한 언어로 인사하며 팬들과 소통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강점으로 데뷔 때부터 중남미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W24는 최근 칠레, 에콰도르, 아르헨티나에서 라이브 투어와 방송으로 해외 팬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방문했던국가 마다 그곳만의 향기와 느낌이 달라 인상적이었어요. 이구아나 공원도 가고, 탱고도 관람하고, 남미 전통음식인 empanada(엠빠나다)도 먹고요. 무엇보다 남미 팬들을 만나면서 팬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는데 울컥하더라고요.” 공연장에서 작게는 120명, 많게는 4-500명의 팬을 만났다는 이들은 “갈 때마다 과분한 사랑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칠레 팬들은 저희를 보기 위해 1년을 기다렸다.어떤 팬은 울기도했다.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공연에는 못 왔지만 가는 곳마다 응원을 아끼지 않는 분도 있었다"며 "저희와 저희노래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면서 음악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위로와 힘 되는 ‘선한 음악’ 하고파 작년 W24는 남미의 한 팬으로부터 “죽고 싶었는데 W24 노래를 듣고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들의 음악이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는 것이 음악 하는데 큰 원동력이 된다고 고백했다. W24는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 생명을 주는 선한 음악을 계속해 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떼고 있지만, 목표를 향해 계속 달려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팀이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마음을 모아서 음악으로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중에는 저희가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어느 곳에 있든지 저희가 하고 있는 음악, 말하고 있는 메시지나 가치관이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김종길) “세상이 돌아가는 걸 보면 소외, 분열, 깨어짐과 같은 메시지를 받을 때가 많은 것 같아요. 함께하는 기쁨과 즐거움의 가치를 W24가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호원) “요즘 주변에 어려운 분들이 많잖아요. 그냥 W24가 좋다는 단순한 생각을 넘어서 궁극적으로는 저희 음악을 통해 누군가가 실제로 오늘을 살아갈 힘과 소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박아론) “계속 도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목표에 대해 과감해지려고 합니다. 저희는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음악을 하는 목적이 분명해요. 그래서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관객의 숫자나 호응보다는 지금 우리 음악을 듣고 있는 한 사람이 치유 받는 게 진짜 값진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윤수) “저희를 보고 무언가 새로움을 찾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뭔가 다르다'를 느끼도록 하는 밴드가 되고 싶어요.” (박지원) ▲W24의 단독콘서트 'FALL in W24' 티켓은 멜론티켓에서 구매할 수 있다. 티켓을 구매하면 포토카드와 엽서, 공연 후 사인회 참여권이 제공된다.(사진제공=제이아미엔터테인먼트) 10월 12일부터 이틀간 단독 콘서트 W24는 국내 첫 단독콘서트를 앞두고 있다. 콘서트는 10월 12~13일 양일간 올림픽공원 뮤즈라이브홀에서 ‘W24와 함께하는 하루’라는 주제로 열린다. 멤버들은 “한 두 시간 안에 새벽부터 아침, 점심, 밤까지 W24의 24시간을 함께하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며 “꼼꼼하게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안 오셨다가 나중에 후회하실 수도 있으니 많이 와 달라”고 당부했다. W24는 콘서트 이후에도 2집 활동으로 국내외에서 방송과 공연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좋은 음악 뿐 아니라 CF나 예능 등 다방면에서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고 싶다는 W24, 향후 행보가 기대된다.

천보라 기자2019-10-03

우리 주변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좌절에 빠지거나 심지어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고난의 가시밭길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어진 고난의 길을 헤쳐 나가는 사례들은 은혜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별기획 '복음이 희망이다'에서는 고난 중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열매를 맺어나가는 가슴 따뜻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꽃제비', '탈북자', '장애인' 등의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대한민국 장애인아이스하키(ice sledge hockey) 국가대표 최광혁(32·강원도청). 생사의 갈림길을 넘고 희망을 보여준 그의 인생 스토리는 2018평창패럴림픽 폐막 직후인 지난해 3월 데일리굿뉴스와 GOODTV 뉴스를 통해 보도되며 묵직한 울림을 줬다. 이제는 이름 앞에 '불굴의 장애인아이스하키 국가대표'라는 수식어가 붙은 최광혁. 그를 1년 6개월여 만에 다시 만났다. 평창패럴림픽에 따른 영광과 부담 지난 5월 초, 체코의 오스트라바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대한민국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세계선수권 동메달 결정전에서 울린 승전보였다. 대표팀은 이날 값진 동메달을 획득하며 3년 연속 '세계 TOP 3'를 달성했다. 체코에서 금의환향한 영광의 주인공 중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동메달 획득의 숨은 주역, 최광혁이었다. 그는 개최국 체코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종경(46·강원도청)의 네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대표팀 승리에 쐐기를 박는 데 일조했다. 최광혁과의 두 번째 만남은 오랜 기다림 끝에 성사됐다. 현재 강원도에서 합숙하며 훈련에 매진 중인 그는 10월까지 스케줄이 빡빡하게 차 있었다. 인터뷰는 세계선수권이 끝난 후 5개월여 만에 이뤄졌다. 역시나 세계선수권 이야기로 시작됐다. "평창 이후 첫 대회가 이번 세계선수권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걱정이 많았어요. 은퇴 등 여러 이유로 선수 구성에 변화가 있었거든요. 그래도 올림픽 때 메달권에 있었는데, 저조한 성적이 나오진 않겠냐는 마음의 부담이 있었죠." 그러나 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선수들은 훈련에 매진하며 호흡을 맞춰나갔다. 각고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공식이 다시 한번 확인된 순간이었다. 최광혁은 "물론 평창패럴림픽과 메달의 의미는 다르지만, 동메달과 함께 순위를 지켰다는 데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광혁에게 평창패럴림픽은 많은 의미가 있었다. 동메달은 값진 영광인 동시에 버텨내야 할 무게였다. 매사 조심성이 많아졌고, 행동 하나하나에 책임감이 뒤따랐다. 이를 위해 스스로를 혹독하게 채찍질했다. 무엇보다 평창패럴림픽 직후 쏟아진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는 그에게 부담을 안겼다. "사실 인터뷰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저희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장애인 아이스하키에 관심을 두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하나라도 더 알리기 위해 나선 거예요. 그런데 제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이야기만 집중적으로 보도되더군요." 그러나 대표팀 후원 행사에 참석한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어린 나이에 혼자서 그런 고난을 이겨내고 대단하다"라거나 "작은 일에도 불만이 생기고 마음이 어려웠는데 너무 부끄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비로소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도시락 나눔 봉사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최광혁은 합숙에 들어오기 전까지 1년가량 비영리단체 '유니시드'와 함께 서울역 노숙인과 독거노인에게 도시락 300여 개를 전하고 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교회에 모여서 직접 반찬을 만들고 도시락에 담아 전해드리고 있다"며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보람 있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 최광혁 ⓒ데일리굿뉴스 희망 전하며 세상에 선한 영향 끼치고파 최근 탈북 여성이 장애를 가진 어린 아들과 아사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탈북자 출신 최광혁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그는 이번 사건을 통해 탈북자나 장애인 등 소외된 이웃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대해 씁쓸함을 느꼈다. 무조건 편견으로 대하는 일부 사람들의 차별이 여전히 만연하다고도 지적했다. "물론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나냐', '잘살아 보겠다고 왔으면 잘 살지, 왜 죽고 난리냐', '그럴 거면 한국에 오지 말지, 애는 무슨 죄냐' 등 댓글이 많았어요. 그걸 마주했을 때 제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래도 과거보다 조금씩 변화하는 한국 사회를 보며 감사함을 느낀다는 최광혁. 그는 "제가 탈북해 처음 한국에 왔을 당시만 해도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모두 머리에 뿔이 난 것처럼 신기하게 바라봤다"며 "그때와 비교하면 희망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오늘도 희망을 향해 달린다는 최광혁. 그는 최근 탈북자 출신 장애인들이 취미로 활동할 수 있도록 아이스하키팀을 결성하고, 더 나아가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 중이다. 또 학부 전공을 살려 최대한 저렴하고 내구성 좋은 튼튼한 의족을 만들어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도 전했다. 그렇다면 그가 밝힌 최종 꿈은 무엇일까. "여전히 신앙의 기복이 있고 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선교사가 해외로 파송되고 또 각지에서 좋은 일을 하는 크리스천들을 보며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저 또한 하나님 집에 거하면서 말씀을 전해 듣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크리스천이 되길 소망합니다."

김민주 기자2019-10-02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전 분야에는 신실하고 유능한 크리스천들이 많다. 그들의 선한 영향력은 복음의 향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선교사역이 된다. 본보는 ‘리더스미션’이라는 타이틀 아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심어주는 모범 크리스천 CEO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놀다가도 종소리만 들리면 어디론가 향하던 한 친구를 호기심에 따라갔다. 그곳에는 수요일 저녁마다 어린이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있었다. 그때부터 신앙생활이 시작됐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소년은 현재 '길산업'이란 회사를 경영하며 아시아 선교에 힘쓰는 사업가가 됐다. 길산업 최옥창 대표의 이야기다. 그는 초·중·고 시절 매일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면서도 공부를 잘해 학교에서 반장을 놓치지 않았고, 대학교에서는 과 대표를 맡으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첨단 모터 연구원으로 일하며 좋은 아이디어를 내 자산 5,000억이 되는 회사를 만들었고, 기술과 노하우를 가지고 직접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탁월함의 원천은 하나님과의 동행에 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과 동행' 경영의 핵심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남들 앞에 서고, 주보 만들고 하면서 제 안에 있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나는 길산업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고 생각해요. 기획력과 아이디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연구하고 기술개발도 해 온 거예요." 길산업은 청소기·냉장고·세탁기·자동판매기·정수기 등에 들어가는 소형 모터와 펌프를 제조하는 회사다. 부품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경쟁력 있는 모터를 내놓고자 최 대표가 1996년도에 설립했다. 길산업의 '길(G.I.L)'은 'GOD Is Love'의 약자다. 회사를 세우기 이전부터 첨단모터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최 대표는 회사 설립 후 사업의 다양화를 위해 특화사업도 시도하고 있다. 현미만을 먹어야 하는 당뇨 환자들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쌀의 혈당지수(GI)를 기존 84에서 50으로 낮추는 기계 특허 기술을 7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했다. 수십조에 달하는 경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과 발명진흥협회 금상, 태국발명협회 금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가족,간병인의수고를 덜어줄목욕 겸용 휠체어를 개발해 특허 출원을 준비하고 있다. "아침에 눈뜨고 자기 직전까지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걸 느꼈어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믿고, 사람이 해야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다 맡겨드리자는 생각으로 살아왔어요." 최 대표에게 신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 힘으로 일터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냈다. 연구원으로 근무할 때 회사에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우회를 만들었다.대표이사가 불교라 감히 그 누가 기도모임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던 찰나였다. 모임 이후 40명 정도가 모였다. 나중에는 불자인 대표이사가 오히려 예배 장소를 제공하는 등 도움을 주는 일도 있었다. ▲2018년 9월 부천 참좋은교회에서 열린 '아시아 선교대회' 사진. 교회의 선교 장로로 섬기고 있는 최 대표는 아시아를 다니며 선교사들을 격려하고 돕는 '순회 선교사'의 꿈도 갖고 있다.ⓒ데일리굿뉴스 아시아 선교에 더욱 힘쓸 것 그는 회사를 경영하는 것도, 교회를 섬기는 것도 결국 '선교를 위해서'라고 밝혔다. 현재 장로로 있는 부천 참좋은교회에서는 10년째 선교 장로로 섬기고 있다. 2006년 필리핀 단기선교를 다녀온 뒤 선교에 눈을 뜨게 된 최 대표는 필리핀에 있는 선교훈련센터를 지원하고, 아시아권에 있는 선교사를 양성하는 일을 교회와 함께 해왔다. 지난 2018년 9월에는 담임목사를 도와 아시아 10개국 선교사를 초청하는 '아시아 선교대회(Asia For Christ)'를 기획·진행했다. 최옥창 대표는 올해 5월부터 GOODTV 운영이사 및 글로벌선교방송단 9기 교회기자로 활동하며 미디어 선교에도 동참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후반기 인생 30년은 총알을 잘 준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쏠 수 있게 준비되고 싶다"며, "열심히 일해 얻은물질을 가지고 선교에 더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믿음의 1세대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그는 아내와 딸, 아들, 92세 노모와 믿음 안에서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도 전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키면서 달려갈 길을 마치고 싶어요. 그래서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예배의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해요. 우리 크리스천들은 예배하면서 힘이 나잖아요. 하나님이 선한 일을 맡기시려고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유창선 기자2019-10-02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교회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황덕형 서울신학대학교 신임 총장은 최근 신학대학의 문제를 사회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찾았다. 교회가 신뢰를 잃어버렸기에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의 위상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가교회를경원시하다보니 많은 기독교인들이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사회적인 기준에 의해 행동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황 총장은 이를 위해 "무엇보다 목회자는 물론이고 그리스도인이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변하는 시대에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크리스천의 기본인 성경교육도 강화하려는 이유다. 황 총장은 지역사회와의 협력도 강조했다. 교회를 보는 사회적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지역밀착형 강소대학을 만들 계획이다. 이미 지역사회 협력단도 구성했다. 황 총장은 "영어 교육이나 다문화가정 돌봄 등 지역사회 요구를 대학이 수용하고,이를 통해키운 인재를 학교로 오게 하는 선순환적인 생태계가 목표"라면서 "사회적인 생태계와 크리스천의 내적 정체성이 확립될 때 사실 신학대학문제는 해결될 수 있고한국 기독교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덕형 서울신대 총장(왼쪽 네번째)이 학생 홍보대사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데일리굿뉴스 황 총장은 위기 극복을 넘어 서울신학대학교를 기독대학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키우겠단 구상도 밝혔다. 신학대학 중 하나가 아닌 서울신학대라는 새로운 브랜드다.이를 통해 신학대학의 한계와 일반대학이 지닌 세속성 모두를 극복할 수 있다며 '혁신 150'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그는 “혁신 150 프로그램은 학교 내 150개 문제를 수정해 설립 150년이 되는 해에 세계 명문 허브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한 것"이라며 "교회가 다시 한번 세상의 꿈과 희망이 되도록 '그리스도의 종'이란 정체성을 잊지 않고 섬기겠다"고 말했다.

김민주 기자2019-09-29

전남 완도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사시사철 푸른 섬 청산도에는 220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산다. 그런데 이곳에 병원이라곤 단 한 곳뿐이다. 청산도와 인근 섬 주민들은 아플 때 모두 '푸른뫼중앙의원'을 찾는다. 이곳엔 '청산도 슈바이처'라 불리는 외과의사 이강안 원장이 있다. “환자들이 새벽 5시 반인데 벌써 와 있어요. 나를 믿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즐거워요” 올해 여든넷인 이 원장은 청산도에서 16년 째 밤낮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그를 찾아오는 환자는 하루 평균 120명, 많을 때는 150명에 이른다. 밤 중 자택을 찾아온 환자라도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다. 간단한 약품을 자신의 방에 구비해 두고 응급환자를 치료한다. 이 같은 경우 돈을 받지 않고 치료해주는 게 다반사다. 인근 섬에서 진료 요청이 들어오면 배를 타고 직접 왕진을 가기도 한다. 이강안 원장은 1962년 전남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 잠실병원 부원장과 혜민병원장을 거쳐 1993년 서울 화곡동에 이강안의원을 개원해 10년 이상 일했다. 그러다 2004년 친구로부터 ‘청산도에 병원이 하나 있는데 의사가 4번이나 바뀌어 폐원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2년 봉사나 하자는 생각으로 아내와 함께 청산도에 온 것이 ‘청산도 지킴이’가 된 계기였다. “이웃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베풀고 나누며 사니까 주위에도 좋게 말해주는 거지 보면 별 것 없어요. 베풀수록 행복한 것이고,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죠.” 이 원장은 완전하진 못해도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살고자 노력할 뿐이라고 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 장기려 박사에게 영향을 받은 그는 ‘사랑을 행하며 사는 것이 사람다운 삶’이란 신념으로 15년 이상을 의료봉사에 힘쓰고 베풀며 살아왔다. 소록도 한센인에게 건빵 100박스를 보내고, 가난한 주민에게 보청기를 사주고, 돈이 없어 점심을 못 먹는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다방면으로 나눔을 실천해왔다. 이 원장은 이 같은 섬김과 헌신적인 의료봉사 공적을 인정받아 지난 7월, 귀감이 되는 참 의료인에게 수여되는 성천상 7번째 수상자가 됐다. 받은 상금 1억 원마저 기부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고 있다. 그의 바람은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 넘치는, 이웃을 진심으로 위하다 간 의사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우리 병원은 사랑이 넘치는 진료실, 정신과 육체 모두 치유되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유창선 기자2019-09-27

한국교회가 세상의 신뢰를 저버린 지 오래다. 세상의 희망이던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됐다.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한 번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먼저 바로 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내달 17일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영적 회복을 도모하는 컨퍼런스가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해 미국 10대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한 장막교회 짐 심발라 목사를 초청했다. 컨퍼런스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대회장을 맡은 한소망교회 류영모 목사를 만났다. Q: 짐 심발라 목사는 어떤 분인지 A: 사실 처음엔 잘 몰랐다. 행사를 맡고 준비하면서 알게 됐다. 한 마디로 대단한 분이다. 미국 교회가 위기에 접어들 때 빛을 발했다. 주민 대부분이 가난하고 거리에는 노숙자와 갱들이 넘쳐나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장막교회를 개척해 미국 10대 교회로 키웠다. 합창단이 특히 유명하다. 찬양할 때 성령의 부으심이 강력하다. 에이미 상도 여러 번 받았다. 요즘 심발라 목사 설교를 듣는다. 매번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낀다. 심령에 불을 붙이는 분이다. 미국 장막교회에 임하셨던 부흥의 불길이 한국 땅에도 이어지길 기대한다. 주제를 ‘다시 불을 붙이다’는 뜻의 ‘리이그나이트’로 정한 이유다. Q: 기존 목회자 대상 컨퍼런스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A: 이번 컨퍼런스는 프로그램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다. 심발라 목사에게 처음 강연을 요청할 때만 해도 노하우를 배우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심발라 목사는 교회가 위기라고 하는데 그 중심에 목회자들이 있다고 했다. 목회자들이 달라지면 교회가 바뀌고, 그 시대 역사가 달라진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결국 위기는 교회가 부흥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컨퍼런스는 본질을 회복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종착점은 내년에 열리는 ‘2020 서울 페스티벌’이다. 목회자 컨퍼런스는 징검다리다. 1973년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 초청 집회 때처럼 엄청난 부흥의 불길이 2020년에도 일어날 것이다. Q: 어떤 분들에게 도움이 될지. A: 특별히 다음세대 목사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그들이 희망이다. 절망하면 안 된다. 가슴 속에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 새로운 열정이 불타올라야 한다. 한국교회는 누가 뭐라해도 세계교회 희망이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명령은 한국교회만 감당할 수 있다. 함께 부르짖어야 하는 이유다. Q: 따로 준비한 이벤트도 있는지 A: 점심시간을 이용해 한국교회 한국교회를 아우르는 통계자료를 발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한국교회 현주소를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전 등록자 2000명에게 선착순으로 드리려 한다. 올해 설립된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준비했다. 부족하지만 후원이사회 회장을 맡고 있다. Q: 목회자 외에 교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지 A: 오전과 오후는 목회자를 위한 시간이다. 저녁 집회는 열려있다. 누구나 올 수 있다. 찬양과 기도 시간이다. 20일 주일에는 온누리교회와 신길교회, 한소망교회 등 세 번에 걸쳐 집회가 있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다. 한국교회 위기다. 욕을 많이 먹는다. 비판이 날카로워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다. 지난 130년 동안 교회가 위기라고 말하던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임하셔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셨다. 교회는 희망이다. 누가 뭐라해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은 교회에 있다. 우리는 희망을 만들어야 할 사람들이고 함께 외쳐야 한다.

최상경 기자2019-09-24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전 분야에는 신실하고 유능한 크리스천들이 많다. 그들의 선한 영향력은 복음의 향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선교사역이 된다. 본보는 ‘리더스미션’이라는 타이틀 아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심어주는 모범 크리스천 CEO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자녀를 글로벌 리더로 양육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주입식 교육과 부모가 관장하는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적 책임의식을 강조하는 성경적 리더가 되도록 양육하십시오." 아는 뇌를 쓰는 뇌로, 말과 글이 첫 단추임을 강조하는 두뇌학자이자 뇌교육자인 홍양표 박사. 30여 년간 두뇌를 연구하며 교육 현장에서 상담한 사례를 통해 부모가 아이의 뇌를 알고 키울 때 아이의 학습능력이 향상되고 행복하게 성장한다는 공식을 이끌어냈다. 그런 그가 말하는 오늘날 '자녀 양육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에게서 이론적인 조언을 들을 줄만 알았는데 신앙 관점에서의 따뜻한 제언들이 이어졌다. 지식 습득에 치우친 교육,'인성 함양'이 중요 '한국좌우뇌 교육계발 연구소 소장. 리더스브레인상담센터 센터장.' 국내 뇌과학분야의 전문가로 정평이 난 홍양표 박사(60)의 공식 직함이다. 이제껏 '두뇌계발'의 외길을 걸어온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것은 '균형'이었다. 16일 만난 홍 박사는 "인간의 좌뇌는 공부를, 우뇌는 감성과 창의성의 역할을 각각 감당한다"면서 "현재 자녀교육은 지식 습득을 발달시키는 좌뇌 교육에 치중돼 있다"고 밝혔다. 그에 말에 따르면 아이의 평생 성격은 대체로 10세 이전에 형성된다.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아이의 '두뇌선호도'를 파악해 좌뇌와 우뇌를 균형 있게 발달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홍 박사의 견해다. "인간의 뇌는 교육을 받으면 그쪽으로 고정돼 버립니다. 아는 뇌, 즉 지식 습득에 치우치게 되면 인성 함양에 어려움이 따르지요. 아이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에 맞춰 두뇌 발전에 도움을 줘야만 올바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 '주입식 교육'과 '부모의 지나친 과잉보호'를 없애고 아이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유도·훈련 시키는 것이 그가 말한 자녀 양육의 핵심이다. '지식은 있으나 지혜가 없는 아이들이 많다'고 지적한 그는 "아이가 주변에서 즐겁게 선택하고 행동하고 경험하도록 부모가 지지할 때 하나님이 주신 재능, 곧 '달란트'가 발견되고 발휘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께 맡긴 삶,놀라운 역사로 이어져 '아이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 부모들의 어려운 숙제를 명쾌히 풀어주면서 홍 박사는 뜻하지 않게 유명세를 얻었다. 다양한 방송활동은 물론 전국을 돌며 강연을 진행, 자녀교육의 해결사로 주부들의 '아이돌'이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다. 여기저기서 찾는 강연자가 되기까지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홍 박사는 고백했다. 신앙생활의 위기 끝에 경험하게 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자 동행하심이었다고. 인생의 크고 작은 고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큰 위기가 찾아왔다. 교회 일이든 신앙생활이든 오로지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임해왔던 10여 년 간의 세월이었다. 홍 박사는 "제 신앙 인생은 50세 전후로 정확히 나뉜다"며 "앞장서서 열심히 교회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헌신할 자리나 봉헌할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 기쁨이 사라지고 신앙생활의 회의감이 들더라"라고 밝혔다. 그렇게 무턱대고 찾아간 기도원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일도 신앙생활도 해왔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철저히 깨어졌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자리들을 그에게 마련해주셨다. '매 강연 때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낀다'는 그는 "세상 속에 들어가 하나님을 간증하며 가정을 바로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부모가 최선을 다하면 아이의 삶이 바뀔까. 아이의 성공을 위한 길은 무엇일까. 마지막 질문에 홍 박사는 성경구절로 답을 대신했다. 여호수아 6장 26절은 그의 신앙 지지대 역할을 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의 퍼지니라."

차진환 기자2019-09-22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사회 첫발을 내딛으며 이웃사랑을 실천한 한 청년. 가정형편상 부득이하게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군인의 길. 그곳에서 나눔의 기쁨을 깨닫고 지금까지 헌혈과 후원을 이어온 사람이 있다. 26년 간 201회 헌혈?정기후원 ‘공군 헌혈왕’ 안상기 소령 충북 보은군 출신 안상기 소령(43?학사 106기)은 어린 시절 헌혈버스를 보고 무작정 올랐다. 왜 버스에 탔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 헌혈해 왔다. 1993년 12월 시작해 현재 201회, 최근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 명예대장 표창장을 수여 받았다. 안 소령은 최근 언론을 타며 ‘공군 헌혈왕’으로 불렸다. 주변 지인들로 박수를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쑥스럽죠. 사실 훌륭한 분들은 따로 있어요. 저보다 더 많이 헌혈하신 분들도 많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이 더 고생하시죠”라고 말했다. 충북 충주시에서 군생활을 시작한 그는 중증장애인 복지시설인 “나눔의 집”을 25년 가까이 후원 중이다. 임관 초창기 선임들과 봉사활동을 갔는데 이것을 계기로 충주에서 일하는 6년 동안 거의 매주 그곳을 찾았다. 안 소령은 “주중엔 군생활과 대학교 학업을 병행하면서 주말이 되면 헌혈을 하거나 ‘나눔의 집’에 갔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그냥 즐거웠어요”라며 지난 날을 회상했다. 지역을 떠난 후에도 지금까지 후원하고 있다. 긴 시간 헌혈과 후원을 이어오는 데는 지금의 아내도 역할이 컸다. 서로 만나기 전부터 각각 봉사활동을 해왔고 결혼 후 정기후원에 이견이 없었다. 지난 달 두 부부는 그 동안 모은 120장의 헌혈증을 대한적십자사에 기증했다. 헌혈도 헌혈이지만 위독한 환자 발생 시 바로 도울 수 있도록 ‘조혈모세포(골수) 기증도 신청한 상태다. 언제 요청이 올지 모르니 항상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제 헌혈은 안소령에게 습관이 됐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헌혈봉사에 동참할 생각이다. 안 소령은 “나의 작은 노력이 귀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자부심이 들어요. 또 헌혈 할 때마다 건강상태도 확인할 수 있죠. 많은 분들이 헌혈에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김신규 기자2019-09-20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전 분야에는 신실하고 유능한 크리스천들이 많다. 그들의 선한 영향력은 복음의 향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선교사역이 된다. 본보는 ‘리더스미션’이라는 타이틀 아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심어주는 모범 크리스천 CEO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6명의 목회자 배출 신앙명문 가정 “전산 분야에서 공무원으로 20년간 재직한 후 퇴직해 1991년 부산에서 조선소 사업에 뛰어들었지요. 그런데 1997년 IMF 경제위기 당시 회사의 부도로 빈털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죽 힘들었으면 3대째 신앙을 이어오던 모태신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으려고도 했을까요.” 교회건축을 사역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이자 교회건축 컨설팅 전문 회사 제이풀의 권혜진 회장(68, 해든교회 장로). 그의 집안 신앙내력을 보면 할머니가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고 큰 아버지와 아버지, 고모가 그 신앙을 이어받았다. 큰 아버지는 일제시대 중후반 경북 안동시 남후면 무릉리에서 무릉교회를 개척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에 차출된 큰 아버지는 결국 일본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아픔도 있다. 할머니의 신앙 지도 아래 어릴 때 드리던 가정예배는 후일 기업예배로 발전했다. 지금도 아버지와 드리던 가정예배 때의 말씀이 그의 귀에 쟁쟁하다. 할머니의 신앙유산은 집안에서 6명의 목회자를 배출하는 신앙명문가정의 기틀을 확립하게 했다. 새가족정착 사역 전문가로 ▲참아름다운교회 새가족세미나 인도 후 기념촬영. ⓒ데일리굿뉴스 권 회장은 또 교회에서 새가족정착 사역 전문가로 통한다. 그의 경험과 분석에 의하면 그동안 아파트 단지 등이 새로 조성되는 신도시 교회의 경우 많은 새로 이주한 신자들이 교회를 찾지만 막상 정식 교인으로 등록하는 경우는 당초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재 거의 다수의 교회 새가족 사역은 새가족을 담당하는 팀만의 사역에 머물러 있고 나머지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은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새로 찾는 상당수의 새가족 성도들은 새 교회에 정착 못하고 상처를 받고 떠나는 형편입니다.” 권 회장은 새가족 정착을 위한 사명감에서 이 문제를 고민·연구하면서 ‘배려’와 ‘칭찬’에 핵심을 둔 나름의 새가족 정착 프로그램을 만들고 적용시켰다. 또 이를 여러 교회를 방문해 중직자 세미나를 통해 알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새가족에게 칭찬과 배려를 아끼지 않음으로 그들이 새로운 교회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고 적응·정착하도록 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새가족들이 새로 옮긴 교회에 잘 적응하는 결과를 얻은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잘 나가던 사업가에서 부도의 아픔 극복하기까지 한편 권 회장은 지난 1991년 공무원을 그만 두고 부산에서 조선소 사업을 뛰어들어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한때 사업이 호황을 누리기도 했으나 1997년 IMF사태의 영향으로 한 순간에 회사는 부도가 나고 빈털터리가 됐다. 소위 잘 나가던 시절이 지나간 후의 좌절감과 가족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게 된 것이 쓰라린 상처가 돼 삶을 포기하려 한 적도 있었다. 그런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이 한 영성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과 섭리를 깨닫게 되고 삶의 용기를 얻게 된다. 이 영성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프로그램의 다른 참여자들에게 자신의 삶과 신앙을 간증하는 강사로 사역 하게 됐다. 새롭게 시작한 교회건축 제2의 인생 ▲울산대현교회 입당예배중 교회에서 권혜진 회장(왼쪽)에게 감사폐를수여하고 있다. ⓒ데일리굿뉴스 그러던 어느 날 그 영성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교육생이 권 회장의 간증을 듣고 자신의 회사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게 된다. 그곳이 바로 교회음향 전문 회사였다. 당시 그는 부도의 아픔이 가시지 않았기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3개월간 기도해보겠다고 했고 그렇게 기도의 응답을 받고 함께 일하기로 했다. 그때가 1999년 10월이었다. 이렇게 권 회장은 교회건축 분야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교회건축 전문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교회건축 분야에 종사한지 1년여 만에 그는 대형교회의 한 곳인 인천 주안장로교회의 음향공사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 성과로 인해 교회건축분야에서 존재감을 각인시켰으며 그 자신 교회건축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 이상 교회음향 영업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교회인테리어와 건설영업 분야로 발을 넓혀 교회건축의 전 분야를 섭렵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한편으로는 교회건축 관계자들에 대한 엉뚱한 오해와 그에 따른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그럴수록 더 겸손하고 믿음의 자세로 교회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교회건축 관계자들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불식시키는데 노력해왔다. 교회건축의 정체성 확립 ‘건사모’ 사역 그러던 중 현재 제이풀건축의 대표인 김도현 장로를 알게 돼 함께 일하게 됐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교회건축을 통해 한국교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모임을 조직하게 됐다. 그것이 현재의 ‘교회건축을 사역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건사모)이다. 올해 5주년이 된 건사모는 처음 16개 교회건축 관련업체들로 출발했으나 현재는 30개의 회원사로 성장했다. 건사모는 현재 북한교회 100개 세우기 운동과 좋은 교회 좋은 소식 전하기 운동, 배려와 칭찬 운동으로 한국교회 부흥에 이바지할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수년 째 건사모 회장으로 섬기는 권 회장은 회원들에게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긍정적 분위기를 만들어 어렵고 힘든 시기에 한국교회를 부흥시키는 성도가 될 것을 먼저 강조한다.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제이풀(J-FULL)은 교회건축 CM·설계, 교회건축시공·증축·리모델링, 교회인테리어 등 교회건축 컨설팅 전문회사다. 그는 “제이풀은 ‘Jesus Full’의 약자로 예수를 통해 풍성함을 누리자는 의미”라며 “교회건축의 기획부터 입당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을 관리한다”고 회사의 역할을 소개했다. 제이풀은 또 해외선교사들이 선교현지에서 교회를 건축하려 할 경우 선교지를 직접 방문해 설계에서부터 건축에 이르기까지 선교를 위한 재능기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고 한다. 권혜진 회장은 “새가족 전문가로서 현재 교회출석을 않는 소위 가나안교인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면서 “한국교회가 세계선교를 위해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교회 내부의 병든 곳을 치유하고 개척교회를 섬길 수 있는 평신도 사역자를 파송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유창선 기자2019-09-20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에서 고난의 순간을 맞게 된다. 하지만 고난이 반복된다면 견디는 것조차 버겁기 마련이다. 방황했던 청년시절을 지나 미숙아로 태어난 딸의 기적적인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했다는 이규운 목사의 사연을 취재했다. 이규운 목사는 아내 대신 종종 딸 하음이의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간다. 두 살 터울 동생을 함께 데려오려는 이유도 있지만 하음이만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이 들어서다. 이 목사에 따르면 사실 10년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평범한 일상은 상상도 못했다. 당시 하음인 또래보다 두 달 먼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뒤늦게 얻은 딸 하음이가 태어난 기쁨도 잠시, 이 목사 부부는 하음이가 뇌병변 장애를 가질 거란 얘기를 들었다. 머리 속에 피가 고여 있어 뇌병변 장애 가능성이 80%가 넘는다는 것이다. 하음이가 첫 돌을 맞을 때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게 병원 측 설명이었다. 이 목사 부부는 이후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이가 잠시만 보채도 마음을 졸여야 했다. 자칫 아이가 잘못될까 외출은커녕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했다. 정상적인 성장과정도 이들 부부에게는 염려의 연속이었다. 뇌병변 장애아의 특징 중 하나가 까치발이란 얘기에 아이 발만 쳐다보는 게 일상이 되기도 했다. 하음이 엄마 전희경 사모는 “모든 잘못이 엄마인 나에게 있는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렸다”면서 “그때마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라는 찬양을 부르며 우리 가정에 닥친 환난이 떠나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하나님은 음성으로, 때로는 환상으로 이 목사를 위로하셨다. 하루에 12시간씩 여러 달 동안 금식 기도할 때도 하나님은 이 목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 은혜로 하음이가 나을 거라는 확신을 주셨다. 큰 개구리가 하음이 머리를 삼키려다 뱉어내는 꿈도 보여주셨다고 이 목사는 기억했다. 이 목사는 “내 의는 하나도 없다”며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하음이가 회복됐다”고 고백했다. 이 목사가 꿈을 꾼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음이는 기적처럼 회복됐다. 병원 검사결과, 머리 속을 채웠던 피가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이 목사는 “조직폭력에 연루돼 자칫 죽을 수도 있던 위기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 하음이도 고쳐주셨다”며 “그 은혜가 너무 벅차 복음이 뚜렷하게 내 안에 새겨졌다”고 말했다. 하음이의 회복을 통해 받은 은혜와 믿음은 이 목사에게 복음을 전하는 가장 확실한 도구가 됐다. 수많은 집회를 다니면서 전하는 복음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뿐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기도 위례신도시에 ‘신나는교회’를 세운 것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기에 가능했다. 이 목사가 믿음으로 세운 교회는 하나님 은혜로 채워졌다. 예배당을 메운 의자, 교회카페 집기와 인테리어 소품 대부분 거저 얻었다. 예기치 않게 리모델링을 앞둔 교회나 폐업하는 키즈카페 등에서 무료로 지원받은 것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기적과도 같은 일 모두 하나님은혜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고 이 목사는 고백했다. 자연스레 목회 비전도 이 목사처럼 잃어버린 한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목사는 “하나님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면서 “누구보다 확실한 믿음으로 한 영혼을 구원하는 데 남은 생애를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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