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진환 기자2020-07-09

치과의사인 한 남자가 있다. 병실 안의 환자도 중요하지만, 그에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 문제들이 더 눈에 밟혔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를 기업의 형식으로 풀 때,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동감한 미국 명문대 출신의 한 청년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 대열에 합류했다. 기업의 방식으로 소셜임팩트(사회적가치)를 창출하는 기업, 닥터노아의 박근우, 계요한 대표를 만났다. 세상엔 노아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노아는 방주를 만드는 데 100년 이상의 시간을 쏟았다. 주변에서 온갖 멸시를 받으면서도 하늘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 그는 결국 세상을 구하는 도구가 됐다. 바쁜 삶을 살며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성경 속 노아란 인물은 정신 나간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박근우 대표는 미래를 준비하는 노아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닥터노아의 시작이 그랬다. 확실한 신념을 갖고 무언가에 미쳐 미래를 꿈꾸는 이 시대 노아를 찾고 지원하는 투자회사로 출발했다. 현재 닥터노아는 ‘자연과 사람에 책임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제품을 만든다’는 미션으로 ‘대나무 칫솔’을 제조하는 회사다. 생산하는 칫솔만큼 플라스틱을 대체해 그만큼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다. 나아가 10~20년 뒤 플라스틱 칫솔을 더는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대나무를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대나무는 주로 아열대계절풍기후를 중심으로 풍부하게 존재하는 자원인데 저소득국가 빈곤층이 거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나무 원자재의 부가가치를 높여 대나무 산지 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는 방법으로 대나무 칫솔을 고안하게 됐다. 최근 닥터노아의 공동대표로 정식 합류한 계요한(이하 John) 대표는 “빈곤을 탈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소비자들에게 친환경의 품질 좋은 제품을 제공할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며 “우리가 성장함에 따라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냐”고 말했다. ▲닥터노아는 대나무 칫솔과 치약의 생산·판매를 통해 대나무 농부와 지역 여성들의 자립을 돕고, 플라스틱 칫솔을 대체해 환경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데일리굿뉴스 서로를 괴짜라고 부르는 두 공동대표 “박 대표님 처음 봤을 때, 정말 특이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업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자는데, 뭐 하는 분이냐고 물어봤더니 칫솔을 만든대요. 앞뒤가 안 맞는 거죠.” “존 대표는 하버드 나와서 월스트리트 안 가고 우간다 촌구석으로 갔어요. 말라리아 4번 걸렸대요. 제가 의사잖아요. 얘기 들어보면 한 번은 죽을 뻔했어요. 미친 거죠. 괴짜예요.” 서로를 더 별나다고 말하는 두 사람이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이해 안 가는 선택을 해왔다. 박 대표는 한국 사회에서 선망의 직업 중 하나인 ‘의사’보다 ‘대나무 칫솔’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John 대표는 하버드란 명문대 간판을 내려놓고 불현듯 우간다로 떠나 정수사업을 펼쳤다. 남들이 말하는 소위 ‘꽃길’보다 ‘고생길’을 택했다. 박 대표는 “현재 어려운 문제를 푸는 중이며 변화될 미래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숱한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며 살아왔지만 해마다 4천 미터가 넘는 산에 오를 정도로 도전적인 사람이다. 그는 수동적인 삶보다는 스스로 답을 구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박 대표는 인도네시아에서 국제구호 활동을 하던 중 진정한 예수님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약자를 지나치지 않고 섬겼던 예수의 삶을 닮아가는 것이 삶의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대나무 산지에 관한 글을 보았고 그 지역 사람들의 자생을 돕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나무로 만든 고부가가치의 상품 개발, 지금의 대나무 칫솔이 되었다. 존 대표의 경우, 도전적이고 우직한 성격인 목사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예수를 만나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던 그의 아버지. 이후 춘천과 서울 등 여러 곳에 개척교회를 세웠다. 미국에서 선교사가 많이 나오는 시절이 있었는데 세속화된 미국으로 건너가 교회를 세우겠다며 불현듯 온 가족이 이민을 하게 됐다. 존 대표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이다. 도전에는 그에 따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부모님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그는 “우리 집에서는 성공의 정의가 돈이나 명예, 권력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성공은 무조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고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다. 목적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집안의 가풍이었다”고 말했다. ▲‘자연과 사람에 책임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제품을 만든다’는 미션 달성을 위해서, 박근우 대표는 앞으로 회사의 전반적인 운영을 존 대표에게 이임할 계획이다. 모세의 팔을 받쳤던 아론처럼 존 대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닥터노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닥터노아 맨땅에 헤딩해가며 지금까지 회사를 키워온 박 대표는 서서히 대표직을 내려놓고 존을 새 리더로 내세울 계획이다. 그 옛날 모세를 도왔던 아론의 역할을 자처하겠다는 것. 박 대표는 “이 친구를 리더로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의 미션을 더 확실하게 성취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 당사자인 존 대표는 과감하면서도 터무니없는 제안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수긍한 상태다. 닥터노아에 합류하게 된 이유도 박 대표가 자기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고 근거 없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컨설턴트로 6개월, 정식 대표로 합류한 지는 2달여, 존 대표는 짧은 시간 동안 닥터노아의 많은 것을 바꿨다. 단순한 제조 과정부터 회사 전반적인 부분이 혁신적으로 바뀌고 있다. 빠르게 회사 내실을 다져가며 미국 진출의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 닥터노아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당초 목표였던 미국 시장 진출을 눈앞에 두고 담금질 중이다. 존 대표는 3가지 큰 목표와 5가지 구체적 운영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미션과 비전이란 큰 방향을 잡았지만, 올해 하반기와 내년까지 각각 구체적 목표를 가져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조직을 개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개인과 팀, 회사 전체가 성장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역량을 평가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성장에 몰입하는, 모든 면에서 성장하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세상에 가치를 더하는 기업 ‘1% For the Planet’이라는 단체에 가입한 닥터노아는 환경단체를 위해 수익금의 1%를 기부하고 있다. 그 외에도 사회적, 환경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 후원과 기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부한 액수도 매달 공개하고 있다. 몇 개의 칫솔을 팔았고 그 개수만큼 플라스틱을 얼마나 줄였는지도 공유하고 있다. 말로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냈는지 구체적인 지표를 지속해서 게시할 예정이다. 사람과 자연에 책임질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윤리적으로 판매하는 기업으로 성장해나가는 첫걸음이다. 박 대표는 “세상에서 칫솔 가장 많이 파는 회사보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신규 기자2020-07-15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청소년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92년 명지대학교에 청소년지도학과가 생긴 후 2기 학부생으로 지원했던 것이 계기가 됐죠. 당시 30대 1의 치열한 경쟁을 기록했더군요.” 한국소년보호협회 김기남 이사장은 이후 1990년대 후반 청소년 상담 수업을 계기로 구로청소년쉼터(현 금천청소년쉼터)에서 청소년 상담사로 활동할 기회를 갖게 됐다. 청소년지도사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그 시작은 쉽지 않았다. “상담 첫 시간을 위해 아이들에게 다가가 밝게 인사하는데 거실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어느 누구하나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들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리더군요. 순간의 어색함을 만회하기 위해 일부러 아이들 방을 열고 다시 인사했는데도 계속 저를 무시하며 밖으로 나가버리더군요.” 기대와 다른 반응에 실망감도 느꼈지만 아이들에게 다가가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가출청소년들대부분이 외부 시선에 굉장히 민감하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리고 잠시 왔다 가는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실망 때문이기도 했다. 긍정적인 성격의 김 이사장은 계속 아이들과 만남을 이어갔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세미(가명)와의 상담을 계기로 위기청소년을 돕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게 됐다. 세미는 다행히 김기남 이사장과 서너 차례 만남 후에 친해지게 됐다. 세미는 TV 드라마에서 남녀주인공이 경양식 집에서 돈가스를 먹는 장면을 보며 신기해했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던 가난한 조손가정의 세미에게는 누구나 한번쯤 먹었을 돈가스나 경양식집도 낯설고 생소했다. 김 이사장이 사주던 돈가스에 감동하던 세미의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대학 졸업 후 2002년 청심청소년수련원을 시작으로 서울시립금천청소년쉼터, 한국청소년진흥센터, 서울시립은평청소년수련관, 청소년 이동쉼터 등에서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특히 김 이사장은 “이제는 위기청소년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며 2006년부터는 청소년 이동쉼터 활동에 주력해왔다. ▲청소년들을 위한 버스 이동쉼터에서 김기남 이사장(맨 왼쪽)과 관계자들.ⓒ데일리굿뉴스 버스 이동쉼터에서는 청소년들이 부담없이 와서 간식을 먹거나 놀 수 있다. 청소년전문가들의 상담도 진행된다. 이를 통해 가출청소년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기도 하고, 도저히 가정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의 청소년들에게는 쉼터를 연결해주는 일도 한다. 이듬해 김 이사장은 강동구 성내동의 오륜교회(담임 김은호 목사)에서 ‘다음 세대를 살리는 교회’를 모토로 설립한 (사)인터넷꿈희망터의 사무국장으로 부임해 인터넷 중독에 빠진 청소년들을 위한 상담사역에 힘썼다. 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전국 청소년쉼터협의회장으로도 활동했다. 김 이사장은 그동안의 활동을 인정받아 지난 4월부터 법무부 산하의 (재)한국소년보호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한국소년보호협회는 소년원 등에서 출소한 보호소년 등의 선도·보호, 사회정착지원, 청소년 비행예방을 위한 공익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김기남 이사장과 청소년업무 관계자들이 회의를 하고있다.ⓒ데일리굿뉴스 김 이사장은 “그동안 교육부는 학교 안 청소년을, 여가부는 학교 밖 청소년을, 법무부는 범죄청소년 업무를 담당해왔다. 문제는 이들 부처 간 청소년들을 대하는 시점과 보는 관점이 달라 서로 유기적인 협력이잘 되지 못했다”며 “앞으로 법무부의 청소년 케어시스템을 여성부의 청소년쉼터 활동 등과 공유하는 등 부처 간 제각각의 사업추진에 대한 문제점을 개선하는데 노력할 것”이라며 향후 비전을 밝혔다.

김신규 기자2020-08-06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1962년 전남 무안군 일로읍에서 태어난소년 최중석은 초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경운기에 치어 발목과 허리고관절 부근을 심하게 다쳤다. 결국 한 학기를 휴학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올라와 인쇄골목 일대의 퇴계로에서 1995년까지 특수인쇄기술자로 일했다.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시작된 사고후유증은 한창 일할 때도 지속됐으나, 생업전선에 있을 때는 우직하게 고통을 견디기만 했다. 결국 인쇄업을 떠난 2년 후에야 장애인 등급을 받은 그는 복권방을 운영하면서 동대문구 관내 장애인들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동대문구지회와 인연을 맺으면서 관내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의 삶을 걷게 된 것이다. “장애인이 되면서 장애인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할까요? 힘겨운 삶을 영위하는 관내 중증장애인들의 복지와 권익을 위해 일해 왔습니다. 본업보다도 오히려 지회 일에 더 주력했지요.” 2017년에는 12기 지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올해 13기 지회장으로 연임되면서 더욱 바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낚시대회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장애인들. ⓒ데일리굿뉴스 그가 동대문구지회장으로 취임한 후 바깥출입이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을 위해 펼친 사업이 ‘장애인 낚시대회’다. 지난 2018년 6월에 처음 시작된 이 대회는 40여명의중증장애인들을 데리고 경기도 용인 묵리낚시터에서 낚시를 즐기면서 바깥공기를 마음껏 마시도록 했다.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는 장애인들 2명씩 한 조를 이뤄 낚시를 하게 합니다. 좀처럼 남을 도울수 없는 장애인들에게 서로 남을 돕도록 유도합니다. 장애인들에게 협동심과 타인을 향한 배려심을 기르게 하기 위해서죠.” 장애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 2년 간 낚시대회에는 상당한 액수의 비용이 지출됐지만 그 비용의 상당액은 최 지회장의 사비로 메워졌다. 올해는 지난 두 차례의 대회보다 인원수를 대폭 늘린 150명 이상 의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대회를 준비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행사가 취소돼 아쉬움을 남겼다. ▲정월대보름 윳놀이대회 전경.ⓒ데일리굿뉴스 매년 정월대보름에는 장애인들을 위한 윷놀이(척사대회)도 개최한다. 이 대회 비용의 상당수 역시 최 지회장 사비로 치러진다. 이처럼 최 지회장은 구청의 보조금과 각계의 후원금으로도 부족한 예산은 언제든지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부족분을 충당해나간다. “지회장은 월급 대신 매월 100만 원의 판공비가 주어지는데 장애인들을 위한 지회의 사업에 제 판공비 전액이 사용되죠. 예전에는 판공비가 다른 용도로 활용되는 사례도 있었지만, 이제 저의 판공비 전액은 장애인들의 복지에 사용됩니다.” 최 지회장은 장애인뿐 아니라 관내 주민들의 생활불편에 따른 민원해결에도 앞장서왔다. 제기동의 성일중학교 앞 등굣길 500m 도로에 휠체어 통행과 학생들의 보행로 확보를 위해 거주자우선 주차공간을 없애고 왕복 통행로를 조성시켰다. 보행흐름에 방해되는 전봇대는 외곽으로 이전시켰다. 또한 종암초등학교의 통행로 확보를 위해 좌우 인도 위에 있던 전봇대를 없애고 인도를 넓혀 아이들의 보행안전에 기여했다. 골칫거리였던 마장램프의 원활한 교통 흐름을 위한 도로와 인도의 구조 변경도 이뤄냈다. 최중석 지회장은 “지회장이 될 때 후원금은 절대 개인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회장 임기를 마치면 쓰다 남은 사업비 등은 모두 후임자에게 넘길 것을 서원했다”라며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며 실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신규 기자2020-07-29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사)참좋은친구들은 1992년부터 서울역 지하와 남산공원, 파고다공원, 독립문공원 등에서 노숙인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과 진료활동을 펼치고, 국내외 긴급구호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해오고 있다. 1989년 설립돼 그해 5월 서울역광장에서 무료급식을 시작해온 참좋은친구들은 현 이사장 신석출 장로가 고교후배인 김범곤 목사와 함께 우리 사회 음지의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설립했다. “노숙인쉼터를 운영하는 청량리의 가나안교회 후원회장으로 섬기면서 후원금 마련 및 정기후원자 섭외, 무료 급식배식 등으로 섬겨왔는데 이것이 참좋은친구들 설립의 계기가 됐습니다.” ▲참좋은친구들 신석출 이사장이 무료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데일리굿뉴스 당초 참좋은친구들 후원회장을 맡았던 신석출 장로는 설립자 김범곤 목사가 별세한 후 총신대 총장을 역임한 김인환 이사장에 이어, 2015년 11월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현재 참좋은친구들은 노숙인, 장애인, 독거노인, 저소득층들을 대상으로 정기휴무일인 매주 월요일과 장애인 면담 및 목욕봉사의 날인 토요일을 제외한 주5일 아침저녁으로 무료급식을 시행한다. 아침식사는 대략 180명 정도, 저녁에는 300여 명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물론 정식으로 급식이 지원되지 않는 토요일과 평일 점심에는 일부에게 빵과 우유를 지급한다. 대략 일주일에 5,000명가량이 이곳에서 아침과 저녁 끼니를 해결한다. 그렇다 보니 예산 문제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요즘엔 코로나로 경제적인 상황이 더 어려운 실정이지만, 신 이사장은 하루 2끼 무료급식을 포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한 끼 식사가 절박한 이웃들의 생명을 위한 일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와 보건소에서 여러 차례 급식중단을 권고했지만 우리가 급식을 중단하면 여기서 밥을 먹는 노숙인들이 술에 취한 채 길거리를 방황하다 보면 오히려 코로나19의 위험에 더 취약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급식을 중단할 수 없죠. 그 대신 철저한 방역수칙을 지키며 밥을 제공합니다.” ▲참좋은친구들은 무료급식을 하기 전에 먼저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주일에는 외부 목회자들을 초청해 예배를 드린다. 주일예배에서 찬양을 드리는 찬양대원들의 모습. ⓒ데일리굿뉴스 하루 두 차례의 급식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식사 전에 먼저 30분가량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주일에는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외부 목회자를 초청해 예배를 드린다. 무료급식 현장이 주일에는 ‘참좋은교회’로 바뀌는 셈이다. 신 이사장은 어려운 이들에게 단순히 밥만 제공하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그는 “참좋은친구들은 어려운 이들의 영혼까지 책임지는 선교의 기관이 돼야 한다”는 점을 직원들이나 봉사자들에게 늘 강조한다. 아울러 노숙인들에게 다시 한 번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도록 하기 위한 교육도 진행한다. 매월 첫 주 수요일과 매주 목요일에는 무료진료 서비스도 제공한다. 무료진료는 소망교회 등 대형교회 성도들로 구성된 의사와 약사들, 순천향병원 등의 협력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노숙인 및 저소득층을 위한 여러 재활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한 노숙인은 재활에 성공해 결혼은 물론 농장을 운영하면서 교회 장로로 세움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신 이사장은 “한국교회는 물질적으로 큰 성장을 이룬 만큼 사회를 선도해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교회가 변하면 대한민국이 변하고 머지않아 남북통일도 이뤄지지 않겠느냐”며 “이런 때일수록 함께 기도하면서 나가자”고 말했다.

김신규 기자2020-08-06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1962년 전남 무안군 일로읍에서 태어난소년 최중석은 초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경운기에 치어 발목과 허리고관절 부근을 심하게 다쳤다. 결국 한 학기를 휴학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올라와 인쇄골목 일대의 퇴계로에서 1995년까지 특수인쇄기술자로 일했다.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시작된 사고후유증은 한창 일할 때도 지속됐으나, 생업전선에 있을 때는 우직하게 고통을 견디기만 했다. 결국 인쇄업을 떠난 2년 후에야 장애인 등급을 받은 그는 복권방을 운영하면서 동대문구 관내 장애인들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동대문구지회와 인연을 맺으면서 관내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의 삶을 걷게 된 것이다. “장애인이 되면서 장애인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할까요? 힘겨운 삶을 영위하는 관내 중증장애인들의 복지와 권익을 위해 일해 왔습니다. 본업보다도 오히려 지회 일에 더 주력했지요.” 2017년에는 12기 지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올해 13기 지회장으로 연임되면서 더욱 바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낚시대회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장애인들. ⓒ데일리굿뉴스 그가 동대문구지회장으로 취임한 후 바깥출입이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을 위해 펼친 사업이 ‘장애인 낚시대회’다. 지난 2018년 6월에 처음 시작된 이 대회는 40여명의중증장애인들을 데리고 경기도 용인 묵리낚시터에서 낚시를 즐기면서 바깥공기를 마음껏 마시도록 했다.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는 장애인들 2명씩 한 조를 이뤄 낚시를 하게 합니다. 좀처럼 남을 도울수 없는 장애인들에게 서로 남을 돕도록 유도합니다. 장애인들에게 협동심과 타인을 향한 배려심을 기르게 하기 위해서죠.” 장애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 2년 간 낚시대회에는 상당한 액수의 비용이 지출됐지만 그 비용의 상당액은 최 지회장의 사비로 메워졌다. 올해는 지난 두 차례의 대회보다 인원수를 대폭 늘린 150명 이상 의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대회를 준비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행사가 취소돼 아쉬움을 남겼다. ▲정월대보름 윳놀이대회 전경.ⓒ데일리굿뉴스 매년 정월대보름에는 장애인들을 위한 윷놀이(척사대회)도 개최한다. 이 대회 비용의 상당수 역시 최 지회장 사비로 치러진다. 이처럼 최 지회장은 구청의 보조금과 각계의 후원금으로도 부족한 예산은 언제든지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부족분을 충당해나간다. “지회장은 월급 대신 매월 100만 원의 판공비가 주어지는데 장애인들을 위한 지회의 사업에 제 판공비 전액이 사용되죠. 예전에는 판공비가 다른 용도로 활용되는 사례도 있었지만, 이제 저의 판공비 전액은 장애인들의 복지에 사용됩니다.” 최 지회장은 장애인뿐 아니라 관내 주민들의 생활불편에 따른 민원해결에도 앞장서왔다. 제기동의 성일중학교 앞 등굣길 500m 도로에 휠체어 통행과 학생들의 보행로 확보를 위해 거주자우선 주차공간을 없애고 왕복 통행로를 조성시켰다. 보행흐름에 방해되는 전봇대는 외곽으로 이전시켰다. 또한 종암초등학교의 통행로 확보를 위해 좌우 인도 위에 있던 전봇대를 없애고 인도를 넓혀 아이들의 보행안전에 기여했다. 골칫거리였던 마장램프의 원활한 교통 흐름을 위한 도로와 인도의 구조 변경도 이뤄냈다. 최중석 지회장은 “지회장이 될 때 후원금은 절대 개인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회장 임기를 마치면 쓰다 남은 사업비 등은 모두 후임자에게 넘길 것을 서원했다”라며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며 실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은결 기자2020-08-03

코로나19로 지난 봄학기 국내 대학 대부분이 온라인 강의로 전환했다. 하지만 각양각색의 강의 플랫폼과 서버 접속, 음향 문제 등으로 학교와 교수진, 학생 모두 큰 혼선을 빚었다. 이런 가운데 기존 온라인 교육시스템을 기반으로 인재를 배출해온 숭실사이버대학교는 이번 입시에서 역대 최고의 지원자 수와 경쟁률을 보였다. 숭실사이버대 정무성 총장을 만나 입시 성공 요인과 비전을 들어봤다. 매년 입시경쟁률 상승...올해 2.6대 1 평생 무료수강, 장학금 등 혜택 다양 GOODTV 협력으로 미디어 선교까지 숭실사이버대학교는 최근 7개 학부, 23개 학과에서 진행된 2020학년도 2학기 정시모집에 1,170명 이상이 지원해 2.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입시의 성공 요인에 대해 정무성 총장은 “코로나 이후 온라인 교육의 중요성이 더 강조됐다”며 “콘텐츠 부분에서 숭실사이버대가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숭실사이버대는 Full-HD 제작이 가능한 무인 자동화 스튜디오를 갖췄다. 교수들이 이곳에서 강의를 촬영하면 온라인 홈페이지에 업로드된다. 이 밖에도 우수한 교수진, 융합 전공 개설, 모바일 학습관리 시스템으로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으로부터 서비스품질 우수기관 인증을 받았다. 한국U러닝연합회에선e-Learning 우수 콘텐츠 품질 인증도 취득하면서 콘텐츠와 서비스, 시스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정 총장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자격증 취득이 가능한 실용적인 전공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점도 입시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정 총장은 “숭실사이버대학교가 ‘진리와 봉사’라는 기독교 정신과 교육 이념으로 정체성을 확실히 가져가며 매년 입시에서 두드러지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며 “다양한 연령층이 배우고, 자격증을 취득해 평생 일을 할 수 있는 실용적인 학과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숭실사이버대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걸맞게 평생 무료수강 혜택 등 다양한 지원정책과 장학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정 총장은 “숭실사이버대의 대표적인 자랑은 이 학교를 졸업하면 평생 전공과목 무료수강이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목회자와 가족, 교회 성도들을 위한 특별한 장학금을 제공하고 선교지 봉사활동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숭실사이버대는 기독교 대학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신앙 교육 콘텐츠 마련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GOODTV와 업무협약을 맺고 기독교 교육과 문화 확산에도 힘을 모으기로 했다. 정 총장은 선교적 비전도 갖고 있다. 기독교 대학의 전 세계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숭실사이버대학의 교육 콘텐츠가 함께 전해지길 기대하며 국제화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는 “어떤 사이버대학교보다 저개발국가, 해외 선교사와의 교류도 다양하게 하고 있다”며 “해외 대학들과 연계해 기독 정신을 담은 온라인 콘텐츠를 국외로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김신규 기자2020-07-29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사)참좋은친구들은 1992년부터 서울역 지하와 남산공원, 파고다공원, 독립문공원 등에서 노숙인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과 진료활동을 펼치고, 국내외 긴급구호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해오고 있다. 1989년 설립돼 그해 5월 서울역광장에서 무료급식을 시작해온 참좋은친구들은 현 이사장 신석출 장로가 고교후배인 김범곤 목사와 함께 우리 사회 음지의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설립했다. “노숙인쉼터를 운영하는 청량리의 가나안교회 후원회장으로 섬기면서 후원금 마련 및 정기후원자 섭외, 무료 급식배식 등으로 섬겨왔는데 이것이 참좋은친구들 설립의 계기가 됐습니다.” ▲참좋은친구들 신석출 이사장이 무료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데일리굿뉴스 당초 참좋은친구들 후원회장을 맡았던 신석출 장로는 설립자 김범곤 목사가 별세한 후 총신대 총장을 역임한 김인환 이사장에 이어, 2015년 11월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현재 참좋은친구들은 노숙인, 장애인, 독거노인, 저소득층들을 대상으로 정기휴무일인 매주 월요일과 장애인 면담 및 목욕봉사의 날인 토요일을 제외한 주5일 아침저녁으로 무료급식을 시행한다. 아침식사는 대략 180명 정도, 저녁에는 300여 명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물론 정식으로 급식이 지원되지 않는 토요일과 평일 점심에는 일부에게 빵과 우유를 지급한다. 대략 일주일에 5,000명가량이 이곳에서 아침과 저녁 끼니를 해결한다. 그렇다 보니 예산 문제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요즘엔 코로나로 경제적인 상황이 더 어려운 실정이지만, 신 이사장은 하루 2끼 무료급식을 포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한 끼 식사가 절박한 이웃들의 생명을 위한 일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와 보건소에서 여러 차례 급식중단을 권고했지만 우리가 급식을 중단하면 여기서 밥을 먹는 노숙인들이 술에 취한 채 길거리를 방황하다 보면 오히려 코로나19의 위험에 더 취약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급식을 중단할 수 없죠. 그 대신 철저한 방역수칙을 지키며 밥을 제공합니다.” ▲참좋은친구들은 무료급식을 하기 전에 먼저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주일에는 외부 목회자들을 초청해 예배를 드린다. 주일예배에서 찬양을 드리는 찬양대원들의 모습. ⓒ데일리굿뉴스 하루 두 차례의 급식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식사 전에 먼저 30분가량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주일에는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외부 목회자를 초청해 예배를 드린다. 무료급식 현장이 주일에는 ‘참좋은교회’로 바뀌는 셈이다. 신 이사장은 어려운 이들에게 단순히 밥만 제공하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그는 “참좋은친구들은 어려운 이들의 영혼까지 책임지는 선교의 기관이 돼야 한다”는 점을 직원들이나 봉사자들에게 늘 강조한다. 아울러 노숙인들에게 다시 한 번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도록 하기 위한 교육도 진행한다. 매월 첫 주 수요일과 매주 목요일에는 무료진료 서비스도 제공한다. 무료진료는 소망교회 등 대형교회 성도들로 구성된 의사와 약사들, 순천향병원 등의 협력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노숙인 및 저소득층을 위한 여러 재활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한 노숙인은 재활에 성공해 결혼은 물론 농장을 운영하면서 교회 장로로 세움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신 이사장은 “한국교회는 물질적으로 큰 성장을 이룬 만큼 사회를 선도해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교회가 변하면 대한민국이 변하고 머지않아 남북통일도 이뤄지지 않겠느냐”며 “이런 때일수록 함께 기도하면서 나가자”고 말했다.

박은결 기자2020-07-27

코로나 19로 문화예술계가 큰 타격을 입고 있지만 K-POP 등 문화가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는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그 범주는 더 확대되고 있다. 하나의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쓰는 공연기획자와 연출가. 그 꿈을 키워가는 학생들을 양성하고 있는 백석 예술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이은미 교수를 만나봤다. ‘합력해 선 이루는’ 기획자·연출가 배출 이은미 교수는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예술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성악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미국에 있는 예술경영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경영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 교수는 공연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성악을 그만두고 예술경영을 선택했을 때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은 오롯이 이 교수의 몫이었다. 이런 상황 가운데에서 오히려 후배들이 이론적 기초를 닦을 수 있도록 정보를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교수와 같은 시기를 보낼 학생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현장에서 괴리를 느끼지 않도록 돕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에 2008년, 백석예대로 오게 됐다. 이 교수는 한 공연을 무대 위로 올리기까지 작품과 아티스트를 선정하는 것부터 대관, 투자, 홍보 등을 맡는 공연기획자, 그리고 실제 공연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콘셉트와 연출을 고민하는 공연연출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고 하잖아요. 공연기획연출 전공은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가 부딪힐 때 잘 조율할 수 있는 기획자와 연출가를 배출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교수는 기독교의 사랑을 실천 할 수 있는 공연기획자를 양성하기 위해 늘 고민한다. 그는 “공연기획자에게는 배려와 사랑의 마음으로 지켜봐 주고 진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며 "그런 마음이 있어야 좋은 기획자로 성장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학생과 현장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 ‘사랑이 빠지면 영혼이 없는 기획자’라고 표현하는 이 교수는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실행 할 수 있는 기획자를 양성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학생들이 가진 달란트가 무엇인지 찾아주고 현장에서 자기의 몫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부대끼며 수업과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백석예대에 와서 이렇게까지 전공에 애정을 갖게 될 줄 몰랐다’, ‘교수님과 신앙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만난다. 이 교수는 “이럴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며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신앙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다”고 전했다. 올 3월부터 이 교수는 서초문화재단 비상임 이사로 임명됐다. 코로나 19로 공연시장에도 다각적인 변화들이 있는데, 현장의 흐름과 지원사업의 변화를 파악해 학생들의 진로와 관련된 정보들을 연결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젊은 청년 인재들을 양성하는 지원 사업과 분야가 확대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겠다”며 “현장에서의 역할들을 수행하면서 지금의 코로나 19 상황에서 학생들을 잘 연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정은 기자2020-07-23

1983년, 4살짜리 한 소년에게 기적이 찾아왔다. 심장병을 앓고 태어났지만 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이길우(브렛 할버슨)씨는 미국의 한 비영리 단체를 통해 수술을 받고 극적으로 살아났다. 그의 수술을 위해 미국으로 데려간 건 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내외. 방한 중이었던 레이건 전 대통령 내외는 미국의 비영리 장기구득기관인 '기프트오브라이프'로부터 심장병을 앓고 있는 한국 어린이 두 명을 데려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당시 국내 심장병 수술이 필요한 어린이만 600여 명. 이길우 씨가 그 중 한명으로 선택돼 미국에 가게 된 거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후 그는 미국인 가정에 입양돼 자랐다. 그러다 2004년도 레이건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됐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고 수소문 끝에 2007년그녀를 만났다. 27년 만의 재회다. 이 상황을 한국과 미국 언론이 보도했고 뉴스를 통해 이 씨의 이모와 연락이 닿아 그는한국에 있던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해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던 이 씨는 한 클라이언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그는 "NGO에서 심장병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하는 친구를 안다"며 이 씨에게 소개해줬다. 그 단체는 과거 이 씨의 심장병 수술을 성사시킨 '기프트오브라이프'였다. 이 씨에게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다. 그는 "내 과거 속 모든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건 기적이었다"며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다니던 보험 회사를 그만두고 기프트오브라이프 뉴욕 지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간 자신이 받았던 도움을 이제는 또 다른 심장질환을 앓는 아이들에게 돌려줘야겠다는 마음에서다. 그는 "일하면서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 전 세계 1,300만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그때부터 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전했다. 작년부턴 공식적으로 한국 지부 대표를 맡아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기프트오브라이프는 전 세계 열악한 환경의 어린이들이 무료로 심장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곳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한 국가에서 직접 치료하기도 하고 전문의료진을 현지에 파견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1975년 창사 이래 지금까지 3만 7,000여 건의 수술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이 대표는 여전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들이 많다고 말한다. "매년 약 130만 어린이들이 심장병을 앓고 태어나지만 93%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그는 설명했다.그러면서 "성별이나 인종, 종교에 상관없이 전세계 모든 아이들이 심장병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37년 전, 새 생명 얻은 은혜를 기억하고, 앞으로도 심장병을 앓는 어린 환우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고싶다"고 말했다.

김신규 기자2020-07-15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청소년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92년 명지대학교에 청소년지도학과가 생긴 후 2기 학부생으로 지원했던 것이 계기가 됐죠. 당시 30대 1의 치열한 경쟁을 기록했더군요.” 한국소년보호협회 김기남 이사장은 이후 1990년대 후반 청소년 상담 수업을 계기로 구로청소년쉼터(현 금천청소년쉼터)에서 청소년 상담사로 활동할 기회를 갖게 됐다. 청소년지도사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그 시작은 쉽지 않았다. “상담 첫 시간을 위해 아이들에게 다가가 밝게 인사하는데 거실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어느 누구하나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들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리더군요. 순간의 어색함을 만회하기 위해 일부러 아이들 방을 열고 다시 인사했는데도 계속 저를 무시하며 밖으로 나가버리더군요.” 기대와 다른 반응에 실망감도 느꼈지만 아이들에게 다가가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가출청소년들대부분이 외부 시선에 굉장히 민감하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리고 잠시 왔다 가는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실망 때문이기도 했다. 긍정적인 성격의 김 이사장은 계속 아이들과 만남을 이어갔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세미(가명)와의 상담을 계기로 위기청소년을 돕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게 됐다. 세미는 다행히 김기남 이사장과 서너 차례 만남 후에 친해지게 됐다. 세미는 TV 드라마에서 남녀주인공이 경양식 집에서 돈가스를 먹는 장면을 보며 신기해했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던 가난한 조손가정의 세미에게는 누구나 한번쯤 먹었을 돈가스나 경양식집도 낯설고 생소했다. 김 이사장이 사주던 돈가스에 감동하던 세미의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대학 졸업 후 2002년 청심청소년수련원을 시작으로 서울시립금천청소년쉼터, 한국청소년진흥센터, 서울시립은평청소년수련관, 청소년 이동쉼터 등에서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특히 김 이사장은 “이제는 위기청소년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며 2006년부터는 청소년 이동쉼터 활동에 주력해왔다. ▲청소년들을 위한 버스 이동쉼터에서 김기남 이사장(맨 왼쪽)과 관계자들.ⓒ데일리굿뉴스 버스 이동쉼터에서는 청소년들이 부담없이 와서 간식을 먹거나 놀 수 있다. 청소년전문가들의 상담도 진행된다. 이를 통해 가출청소년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기도 하고, 도저히 가정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의 청소년들에게는 쉼터를 연결해주는 일도 한다. 이듬해 김 이사장은 강동구 성내동의 오륜교회(담임 김은호 목사)에서 ‘다음 세대를 살리는 교회’를 모토로 설립한 (사)인터넷꿈희망터의 사무국장으로 부임해 인터넷 중독에 빠진 청소년들을 위한 상담사역에 힘썼다. 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전국 청소년쉼터협의회장으로도 활동했다. 김 이사장은 그동안의 활동을 인정받아 지난 4월부터 법무부 산하의 (재)한국소년보호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한국소년보호협회는 소년원 등에서 출소한 보호소년 등의 선도·보호, 사회정착지원, 청소년 비행예방을 위한 공익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김기남 이사장과 청소년업무 관계자들이 회의를 하고있다.ⓒ데일리굿뉴스 김 이사장은 “그동안 교육부는 학교 안 청소년을, 여가부는 학교 밖 청소년을, 법무부는 범죄청소년 업무를 담당해왔다. 문제는 이들 부처 간 청소년들을 대하는 시점과 보는 관점이 달라 서로 유기적인 협력이잘 되지 못했다”며 “앞으로 법무부의 청소년 케어시스템을 여성부의 청소년쉼터 활동 등과 공유하는 등 부처 간 제각각의 사업추진에 대한 문제점을 개선하는데 노력할 것”이라며 향후 비전을 밝혔다.

김신규 기자2020-07-10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급격한 고령화의 진행으로 노인요양 시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치매 중풍 등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 가정을 요양보호사가 방문하는 방문요양서비스, 노인들을 낮 시간에 돌보는 ‘데이케어센터’ 등 다양한 실버산업이 성행하고 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강북햇살데이케어센터 이선분 대표는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원래 유아교육을 전공했던 이 대표는 지난 13년간 유치원 교사와 원감을 지냈다. 그러다 지난 2004년 복지관에 근무할 기회가 주어졌고, 복지관에 근무하면서 점차 사회복지에 관심과 흥미를 느끼게 됐다. 이후 만학으로 사회복지학을 공부해서 사회복지사가 됐다. 당시 이 대표가 근무했던 복지관은 노인들을 위한 복지사업을 주로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 대표가 노인무료급식 업무를 맡으면서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13년 복지관에서 데이케어센터를 개소했습니다. 중풍이나 파킨슨병, 치매 등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을 복지관 내 데이케어센터에서 돌보면서 점차 데이케어센터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결국 복지관을 퇴직한 후 2017년 12월 강북햇살데이 케어센터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어르신 생일잔치에서 이선분 대표(마이크 잡고 있는 사람)가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굿뉴스 특히 이 대표는 센터를 이용하는 노인들을 ‘부모처럼 모시자’는 각오로 노인들을 보살핀다. 직원들에게도 가족적인 분위기의 센터를 강조한다. 또 치매 노인들의 경우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지만,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정성을 다해 대화하고 섬긴다. 그러다보니 가끔 정신이 맑을 때 직원들과 이 대표에게 감사를 표하는 치매노인들을 보면서 한없는 보람을 느낀다. ‘센터에 다니고부터 치매증상이 많이 개선돼 호전됐다’며 보호자 가족이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건강보험공단 데이케어센터 평가를 할 때 이곳 어르신들의 보호자 가족들 다수가저희 시설에 높은 점수를 줬더라고요. 너무감사하고 보람이 됐습니다.” 통상적으로 데이케어센터는 노인들의 활동에 제약을 두는 경우가 많다. 쉽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그 반대다. 노인들을 많이 움직이도록 적극 유도한다. 재활운동기구도 갖췄다. ▲강북햇살데이케어센터는 노인들을 활동하도록 유도해 인지 건강 및 신체기능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특히 센터 이용 노인들이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신체기능향상을 위한 햇살체조, 인지기능향상을 위한 건강 체조를 비롯해 민요교실, 맨손체조, 시사뉴스, 웃음·미술치료, 노래교실, 공연단(마당극) 초청 등 각종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치매예방을 위한 노인 개별 맞춤 프로그램인 퍼즐, 칠교놀이, 장기 등의 프로그램도 노인들에게 인기다. 때문에 간혹 병원에 입원하는 이곳 노인들은 햇살데이케어센터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면서 “햇살센터가 천국”이라고 말한다. 이 대표는 “어르신들이 집에만 계시다보면 사고나 고독사의 위험이 높다”면서 “데이케어센터나 치매와 중풍환자들을 위한 시설을 보급·확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선분 대표는 최근 코로나19로 힘든 관내 노인가정을 위해 라면 20박스(50만 원)를 지원하는 등 주민자치위원회 활동, 농촌마을돕기, 적십자 활동 등 대외봉사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차진환 기자2020-07-09

치과의사인 한 남자가 있다. 병실 안의 환자도 중요하지만, 그에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 문제들이 더 눈에 밟혔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를 기업의 형식으로 풀 때,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동감한 미국 명문대 출신의 한 청년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 대열에 합류했다. 기업의 방식으로 소셜임팩트(사회적가치)를 창출하는 기업, 닥터노아의 박근우, 계요한 대표를 만났다. 세상엔 노아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노아는 방주를 만드는 데 100년 이상의 시간을 쏟았다. 주변에서 온갖 멸시를 받으면서도 하늘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 그는 결국 세상을 구하는 도구가 됐다. 바쁜 삶을 살며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성경 속 노아란 인물은 정신 나간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박근우 대표는 미래를 준비하는 노아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닥터노아의 시작이 그랬다. 확실한 신념을 갖고 무언가에 미쳐 미래를 꿈꾸는 이 시대 노아를 찾고 지원하는 투자회사로 출발했다. 현재 닥터노아는 ‘자연과 사람에 책임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제품을 만든다’는 미션으로 ‘대나무 칫솔’을 제조하는 회사다. 생산하는 칫솔만큼 플라스틱을 대체해 그만큼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다. 나아가 10~20년 뒤 플라스틱 칫솔을 더는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대나무를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대나무는 주로 아열대계절풍기후를 중심으로 풍부하게 존재하는 자원인데 저소득국가 빈곤층이 거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나무 원자재의 부가가치를 높여 대나무 산지 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는 방법으로 대나무 칫솔을 고안하게 됐다. 최근 닥터노아의 공동대표로 정식 합류한 계요한(이하 John) 대표는 “빈곤을 탈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소비자들에게 친환경의 품질 좋은 제품을 제공할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며 “우리가 성장함에 따라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냐”고 말했다. ▲닥터노아는 대나무 칫솔과 치약의 생산·판매를 통해 대나무 농부와 지역 여성들의 자립을 돕고, 플라스틱 칫솔을 대체해 환경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데일리굿뉴스 서로를 괴짜라고 부르는 두 공동대표 “박 대표님 처음 봤을 때, 정말 특이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업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자는데, 뭐 하는 분이냐고 물어봤더니 칫솔을 만든대요. 앞뒤가 안 맞는 거죠.” “존 대표는 하버드 나와서 월스트리트 안 가고 우간다 촌구석으로 갔어요. 말라리아 4번 걸렸대요. 제가 의사잖아요. 얘기 들어보면 한 번은 죽을 뻔했어요. 미친 거죠. 괴짜예요.” 서로를 더 별나다고 말하는 두 사람이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이해 안 가는 선택을 해왔다. 박 대표는 한국 사회에서 선망의 직업 중 하나인 ‘의사’보다 ‘대나무 칫솔’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John 대표는 하버드란 명문대 간판을 내려놓고 불현듯 우간다로 떠나 정수사업을 펼쳤다. 남들이 말하는 소위 ‘꽃길’보다 ‘고생길’을 택했다. 박 대표는 “현재 어려운 문제를 푸는 중이며 변화될 미래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숱한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며 살아왔지만 해마다 4천 미터가 넘는 산에 오를 정도로 도전적인 사람이다. 그는 수동적인 삶보다는 스스로 답을 구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박 대표는 인도네시아에서 국제구호 활동을 하던 중 진정한 예수님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약자를 지나치지 않고 섬겼던 예수의 삶을 닮아가는 것이 삶의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대나무 산지에 관한 글을 보았고 그 지역 사람들의 자생을 돕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나무로 만든 고부가가치의 상품 개발, 지금의 대나무 칫솔이 되었다. 존 대표의 경우, 도전적이고 우직한 성격인 목사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예수를 만나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던 그의 아버지. 이후 춘천과 서울 등 여러 곳에 개척교회를 세웠다. 미국에서 선교사가 많이 나오는 시절이 있었는데 세속화된 미국으로 건너가 교회를 세우겠다며 불현듯 온 가족이 이민을 하게 됐다. 존 대표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이다. 도전에는 그에 따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부모님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그는 “우리 집에서는 성공의 정의가 돈이나 명예, 권력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성공은 무조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고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다. 목적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집안의 가풍이었다”고 말했다. ▲‘자연과 사람에 책임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제품을 만든다’는 미션 달성을 위해서, 박근우 대표는 앞으로 회사의 전반적인 운영을 존 대표에게 이임할 계획이다. 모세의 팔을 받쳤던 아론처럼 존 대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닥터노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닥터노아 맨땅에 헤딩해가며 지금까지 회사를 키워온 박 대표는 서서히 대표직을 내려놓고 존을 새 리더로 내세울 계획이다. 그 옛날 모세를 도왔던 아론의 역할을 자처하겠다는 것. 박 대표는 “이 친구를 리더로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의 미션을 더 확실하게 성취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 당사자인 존 대표는 과감하면서도 터무니없는 제안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수긍한 상태다. 닥터노아에 합류하게 된 이유도 박 대표가 자기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고 근거 없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컨설턴트로 6개월, 정식 대표로 합류한 지는 2달여, 존 대표는 짧은 시간 동안 닥터노아의 많은 것을 바꿨다. 단순한 제조 과정부터 회사 전반적인 부분이 혁신적으로 바뀌고 있다. 빠르게 회사 내실을 다져가며 미국 진출의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 닥터노아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당초 목표였던 미국 시장 진출을 눈앞에 두고 담금질 중이다. 존 대표는 3가지 큰 목표와 5가지 구체적 운영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미션과 비전이란 큰 방향을 잡았지만, 올해 하반기와 내년까지 각각 구체적 목표를 가져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조직을 개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개인과 팀, 회사 전체가 성장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역량을 평가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성장에 몰입하는, 모든 면에서 성장하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세상에 가치를 더하는 기업 ‘1% For the Planet’이라는 단체에 가입한 닥터노아는 환경단체를 위해 수익금의 1%를 기부하고 있다. 그 외에도 사회적, 환경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 후원과 기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부한 액수도 매달 공개하고 있다. 몇 개의 칫솔을 팔았고 그 개수만큼 플라스틱을 얼마나 줄였는지도 공유하고 있다. 말로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냈는지 구체적인 지표를 지속해서 게시할 예정이다. 사람과 자연에 책임질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윤리적으로 판매하는 기업으로 성장해나가는 첫걸음이다. 박 대표는 “세상에서 칫솔 가장 많이 파는 회사보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창선 기자2020-02-12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 제조·판매나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구매나 이용 주기가 짧은 업계에서 주로 쓴다. 건설이나 인테리어 쪽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이유다. 인테리어 전문기업 ‘트라이앵글’ 오태경 대표는 예외다. 오 대표가 영업 차원에서 말하는 게 아니라 고객에게서 듣는다. 오 대표는 “단골 고객이나 이들이 소개해주는 고객이 대부분”이라며 “창업도 단골 고객 투자로 성사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끝낸 한 공사도 10년 전 고객이 다시 맡겼다. 대표가 아닌 직원 시절 ‘오 실장’을 기억하고 찾았다. 당시 근무하던 회사가 아닌 창업 2년도 안 된 ‘트라이앵글’에 의뢰한 이유도 오 대표 때문이다. 오 대표를 찾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일 처리가 꼼꼼하고 약속된 일정을 지켜서다. 인테리어 특성상 수정이 잦아도 고객과 현장을 오가며 조율해낸다. 현장에 따라 고객 요구를 너머 최적의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고객과 눈높이를 맞추려 명함에는 ‘대표’가 아닌 ‘실장’이라고 적었다. 오 대표는 “내부 환경을 바꾸는 일인 만큼 정성을 쏟는다”며 “공사 현장이라 거친 면도 있지만 여성 특유의 세심함과 꼼꼼함이 오히려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덕분에 협력업체도 한번 오 대표와 연을 맺으면 끊기 어렵다. 합을 맞춘 지 기본 10년이다. 오 대표는 “인테리어 사업 특성상 실제 시공을 맡는 업체와 협력이 필수”라며 “작업에 차질이 없도록 공사대금을 앞당겨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대금 지급이 늦은 인테리어 업계에서는 반길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오 대표는 수익 대부분을 쌓아둔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무실과 모델하우스 인테리어2개 부문이 전부다. 안정적인 기반이 우선이라고 봤다. 인테리어 회사지만 정작 트라이앵글 사무실 내부는 방치 수준이다. 대표 연봉도 전 직장 수준에 맞췄다. 나름 회사 대표지만 형편은 직원 시절과 달라진 게 없다. 지켜보는 협력업체 사이에서는 열일을 제쳐 놓고서라도 오 대표 발주는 맡는다는 얘기가 돌 정도다. 오 대표의 진가는 현장에서 빛을 발한다. 트라이앵글이 맡은 현장에서는 철거와 마감, 설치 등 전혀 다른 작업이 동시에 이뤄진다. 철거와 동시에 도배나 도색으로 마감하고, 설치까지 순차적으로 빈틈없이 진행된다. 지연되는 작업은 나머지 인력이 힘을 보탠다. 현장에서는 오 대표더러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다는 농담도 자주 나온다. 우스갯소리지만 견적부터 현장까지 완벽히 파악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오 대표는 “작업 전에 모든 담당자들을 불러 작업 내용과 절차를 조율한다”며 “현장에서 협력이나 지원이 가능하도록 작업자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자칫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견적을 비롯한 모든 미팅 장소로 현장을 고집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여기에 여성 특유의 세심함을 덧입혔다. 함께 일하는 직원 3명 모두 여성이다. 같은 문제도 대응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경험으로 알고 있어서다. 오 대표는 “인테리어는 무엇보다 현장을 알아야 한다”면서 “직원 모두 작업 전 과정에 능숙하도록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훈련도 현장에서 이뤄진다. 오 대표가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며 거든다. 15년 넘게 쌓인 내공과 노하우도 아끼지 않는다. 현장 특성상 말보다 행동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견적부터 시공, 고객 불만 대응 등 모든 업무를 혼자서 맡을 수 있도록 꼼꼼하게 챙긴다. 오 대표가 실무에서 물러나도 회사 운영에 지장이 없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게 목표다. 오 대표는 안정화 기간을 거쳐 내년부터는 외형 성장에도 힘을 싣기로 했다. 광고나 홍보도 적절히 이용할 생각이다. 올해 안에 성장에 필요한 기반과 실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오 대표는 “15년 넘게 인테리어 업계에 몸담으면서 ‘미래가 없다’는 말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며 “후배들에게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어 비전을 심어주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한혜인 기자2020-07-07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해 큰 사랑을 받았던 크리스천 가수 이미쉘 씨가 새 앨범 준비에 한창이다. 올해 하반기 발매를 목표로 앨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고 싶다는 이미쉘 씨를 만나봤다. "차별로 인한 상처, 신앙의 힘으로 치유"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곡들을 가사로 풀어내고 멜로디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가사에서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제가 부르는 노래와 쓴 곡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궁금해하고 영접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생길 수 있는 그런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가수 이미쉘 씨는 노래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음악을 처음 시작했던 마음 그대로 단 한 명이라도 노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면 충분하다는 것이 이 씨의 생각이다.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들이 음악과 신앙을 통해 치유된 것처럼 노래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포부도 전했다. 이 씨가 처음 하나님을 만난 건 15년 전 12월 24일, 교회 성탄전야제에서다. 이날은 혼혈이라는 이유로 당했던 차별과 폭력으로 8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15살 소녀가 세상과 마주하게 된 날이기도 하다. 이 씨는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는 것과 학교조차 다니기 어려웠던 어려운 집안 형편, 남들과 다른 피부색 등으로 친구들의 구타와 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교회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데 '아, 내가 교회에 다녀야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교회에 처음 나갔던 날은 마치 꿈꾸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씨는 "사람들의 온기가 그리웠다"며 "교회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보내준 따뜻한 말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는 기분을 느꼈다"고 전했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면의 상처도 서서히 회복됐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처, 어머니를 원망했던 마음, 주변의 차별적인 시선으로 쌓인 마음의 벽이 신앙으로 치유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음악에 대한 재능도 교회 찬양팀으로 섬기면서 발견했다. 이 씨는 "하나님의 뜻대로 노래의 달란트를 사용하고 싶다"며 "이번 앨범도 처음 음악을 접했을 때의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쉘 씨는 올해 8월 음반 발표를 목표로 미국에 있는 기획사와 앨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노래로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는 가수 이미쉘 씨. 그녀의 새로운 앨범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가수 이미쉘 씨의 신앙이야기는 오는 8일 오전 9시(재방송 8일 오후 10시 10분, 9일 오전 3시) GOODTV <매일 주와 함께>에서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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