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라 기자2019-02-20

올해는 3·1절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기념적인 해다. 이를 기념해 정부, 지자체 등 각 기관 및 단체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기획·진행되고 있다. 3·1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한국 교계에서도 3·1운동의 정신과 의미를 되새기는 기념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이 가운데 3·1운동을 문화예술로 승화시킨 오페라 <함성, 1919>가 막을 올려 눈길을 끈다. 오페라 <함성, 1919>를 통해 민족지도자들의 애국, 신앙, 사랑을 알리겠다는 작곡가 박재훈(97) 목사를 만나 100년 전 그날의 뜨거운 함성을 들어봤다. <함성, 1919>가 터지기까지 올해 97세가 된 작곡가 박재훈 목사는 '어머님의 은혜', '산골짝의 다람쥐', '송이송이 눈꽃송이', '펄펄 눈이 옵니다',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시냇물은 졸졸졸졸' 등 우리 귀에 익숙한 동요를 작곡한 '동요계의 대부'이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오페라 <함성, 1919>는 소위 잘나간다는 박 목사가 무려 40년간 염원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는 박 목사. 그는 시간이 흐른 후 비로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새뮤얼 모펫(마포삼열) 선교사로부터 1973년에 제안을 받았습니다. 3·1운동에 관한 오페라를 하라는 그의 말에 가슴이 벅차올랐지요. 미국에서 음악공부를 더하고 10년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저를 40년간 훈련시키실 줄몰랐습니다. 그런데 작곡은 대본이 들어와야 할 수 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대본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저는 60세에 늦둥이 목사가 되었고 교회를 개척하면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를 다듬고 변화시키셨습니다. " 대본이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였다. 지난 2013년 대본을 받은 박 목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작곡을 시작했다. 그렇게 문성모 목사가 대본을 쓰고 박 목사가 곡을 붙여 구성된 작품, 오페라 <함성, 1919>가완성됐다. 정확히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민족의 함성 '대한독립만세' 3·1운동은 민족의 독립의지와 저력을 보여주며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항일독립운동이다. 또 33인 민족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지식인, 학생, 농민 등 각계각층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다. 박 목사는 이 점에 주목했다.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교회에서도 민족의 함성 '대한독립만세'는 끝없이 퍼졌습니다. 이것이 3·1운동입니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죽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분들의 함성으로 대한독립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박 목사는 작품 속에서 3·1운동의 주인공인 민중의 함성을 잘 드러내길 원했다.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오페라 <함성, 1919>는 합창오페라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민중들의 함성을 많은 분량의 합창으로 담아내, 당시 3·1운동 현장에 있는 듯한 감동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오페라 <함성, 1919>는 한 사람의 능력으로혼자서 만든것이 아니라는박 목사. 그는 "하나의 작품을 위해 지휘자인 이기균 목사 등 수많은 관계자들이 수고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오페라 <함성, 1919>가 올바르고 거룩한 제사의 번제로 태워드리는 작품이 되도록 관계자들 모두 정신적· 육체적으로 낮아지게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박 목사는 이번 작품이 일회성 행사가 되지 않길 바라면서 오페라 <함성, 1919>를 통해 젊은 세대들이 우리의 역사를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기를 희망했다. 아울러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통해 감동을 받아 어려운 이 시대에 구국의 함성, 회개의 함성, 거룩한 함성이 터지길 바란다. 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오페라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오페라 <함성, 1919>는 오는 3월 1일(금) 오후 5시, 2일(토) 오후 3시, 7시 30분에 여의도 KBS홀에서 공연한다. 입장료는 R석 28만 원 / S석 18만 원 / A석 12만 원 / B석 8만 원 / C석 5만 원 / D석 3만 원이다. 뮤지컬과 관련한 자세한 문의는 (사)고려오페라단(02-883-7753)으로 하면 된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오페라 <함성, 1919> 포스터ⓒ데일리굿뉴스

윤인경 기자2019-01-11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를 남겨 오랫동안 파문을 일으킨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기독교인으로, 모 교회의 장로였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스스로 끊는 자살은 여전히 교회 내에서 죄악시되는 분위기지만 자살을 선택하는 기독교인들은 생각보다 많다. 지난해 한국생명의전화 이사장으로 취임해 자살예방과 생명존중 가치를 널리 확산시키고 있는 이성희 목사를 만나 생명에 대한 목회적 철학을 들어봤다. "생명, 하나님이 주신 것 가르쳐야" 14년째 OECD 국가들 중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 자살에 대한 문턱은 교회 안에서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전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 엄청난 일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죽는 것도 이해가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성희 목사 역시 "교회 다닌다고, 예수 믿는다고 자살 안 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자살이 죄라는 것을 교인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얘기를 꺼내는 것을 꺼려할 뿐, 보이지 않는 자살률이 교회에 생각보다 높다"며 "한국생명의전화에 걸려오는 상담 전화 가운데서도 기독교인의 비율이 꽤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교회에도 사별자, 우울증, 이혼자, 경제적 어려움 등 정신적으로 급격히 약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살이 특정 목회자나 교회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최근 목회자들 중에서도 유가족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묻는 사례가 많아지는 등 자살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자살예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막연하다. 이성희 목사는 무엇보다 생명의 중요성을 계속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라는 성경적 가르침이 꾸준히 필요하다"며 "자살에 대한 인문학·사회학적 접근은 한계가 있는 반면 신앙적인 접근은 가장 분명하고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또 신뢰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슬픔을 이기는 데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충분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목사는 "누구도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그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우는 것 자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준다"며 "답을 제시하고 채워주는 것이 아닌, 마음을 꺼내도록 하는 것이 상담의 가장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전염성' 높은 자살…가장 잘 막을 수 있는 곳, 교회 기독교인의 자살은 다른 교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더 나아가 막연하게 '나도 할 수 있다'는 모방 심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성희 목사도 자살을 예방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자살이 전염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이상하게도 '나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살 충동을 느끼고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로 이어질 확률이 몇 배나 높다"고 설명했다. 자살을 예방하고 자살자 유가족들을 회복시키는 것은 의학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치유되고 회복되어야 하는 만큼, 관계지향적인 집단인 교회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또 적극 나서야 하는 일이다. 이성희 목사는 "몸이 아프면 영혼이 약해지고, 마음이 낙심하면 건강도 안 좋아지는 것은 영적인 생명과 육적인 생명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교회가 영적인 생명 뿐 아니라 육적인 생명 또한 구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인구가 늘어나고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을 잘 못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차 무뎌지는 것이지요. 연일 사람들이 죽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생명에도, 죽음에도 무감각해지고 있어요. 한 생명이 참 귀하다는 것을 계속 기억하고 주변 사람들의 생명을 관찰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박혜정 기자2019-01-28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사랑의 사도'라 불리는 인물이 있다. 바로 요한이다. 그의 일대기를 담은 성서극 <사랑을 노래한 사도요한>은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으며 살아있는 순교자라 할 수 있는 요한의 삶을 조명해 뜨거운 울림을 주고 있다. 작·연출을 맡은 김기자 대표(극단 환희)를 만나 작품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도 요한의 예수님 향한 변치 않은 사랑 "요한은 자신을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자라고 단언할 만큼 예수님을 강력하게 사랑했다. 예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이 극 속에 따듯하게 녹아있다." 김기자 대표는 사도 요한의 삶을 조명해 예수님을 향한 그의 변하지 않는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작품은 이른바 '사랑의 복음서'라 불리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 요한계시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극단 환희의 성경 인물 시리즈 △2009년 첫 작품 <예수의 사랑> △자살 방지 메시지가 담긴 <베드로와 유다> △가나안 정복전쟁을 위해 고군분투한 여호수아 이야기 <주와 함께한 여호수아>에 이은 네 번째 작품이다. 김 대표는 사도 요한을 인물소재로 정한 이유에 대해 "지난해 본 극단에서 진행했던 연극 <동성애> 공연을 준비하며 사도 요한의 사랑에 대해 일부 성 소수자들이 잘 못 해석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며 "사도 요한이 처음부터 끝까지 외친 그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연극은 4인극으로 젊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돋보인다. 김 대표는 "작품에서 두 명의 배우가 어린시절 요한과 노년의 요한을 연기한다"며 "20대 전후 예수님을 만난 요한과, 90세가 넘기까지 하나님 한 분을 위해 일평생 바친 노년의 요한을 실감나게 연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노년기의 요한을 연기한 배우 양윤모는 "약 2000년 전 인물인 요한을 공감하고 표현하기 위해 내가 먼저 하나님 안에서 신앙적인 교제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또 김 대표는 예수님의 죽음 이후 사도 요한의 대사를 통해 전해지는 마리아의 심정과 그 옆에서 동시에 연출되는 마리아의 모습, 극 중 마지막에서 순교자들이 십자가를 세우는 장면 등을 주목할 만한 관람 포인트로 꼽았다. 그는 "얼마 전 목사님 부부가 관람하러 오셨다. 이들은 마리아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그가 걸었던 노정을 따라 걸으며 애통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시더라"며 "사도 요한은 마리아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제자였기에 영감을 얻어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이번 작품이 따뜻한 위로를선사할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적 도전이 되는 자리가 되길 바람을 전했다. 그는 "기독교인 중에도 일명 주일예배만 드리고 가는 선데이크리스천들이 많다"며 "그토록 '사랑의 복음'을 외친 사도 요한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이 '나의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랑을 노래한 사도요한>은 오는 3월 12일까지 랑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 현재 티켓은 포털사이트를 통해 예매 시 1인 당 1만 2,700원이다. 기독교 단체 3인 이상 경우 연령과 관계없이 1인 당 1만 원에 예매할 수 있다. 관련 문의는 극단 환희(010-7516-1126)에 하면 된다. ▲어린시절의 사도요한(배우 김정현)과 장성한 사도요한(배우 양윤모)

박혜정 기자2019-02-06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1987년 세계탁구권선수권 복식 금메달,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식 금메달. 80년대 대한민국 탁구를 최고의 자리로 올려 '탁구계의 전설'로 불리는 이가 있다. 바로 양영자 탁구 감독(대한체육회 꿈나무)이다. 양 감독의 탁구 인생이 그의 인생 1막이라면, 인생 2막은 1997년 남편과 함께 몽골로 떠나 선교사로서의 삶을 산 것이라 할 수 있다. 몽골 현지에서 남편의 성경 번역 작업이 끝난 뒤 2012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탁구와 선교 사역을 접목한 인생 3막을 꿈꾸며 탁구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탁구와 선교가 어우러져 하나 된 양 날개를 가지고 남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양영자 감독. 그의 30년 전 탁구전설 이야기부터 몽골 선교이야기, 그리고 탁구복음선교사로 인생 3막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신앙스토리가 한 책에 담겨 출간됐다. 2007년 <평생감사>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전광 목사가 양 감독을 직접 인터뷰 해 책 <주라, 그리하면 채우리라>에 담아낸 것. 전 목사는 "팬심에서 시작해 양 감독의 삶과 신앙이 한국 교회에 신앙적 도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기자가 직접 만나 본 양 감독은 예수님 없이 살 수 없음을 고백하며 그 사랑을 나누는 사역에 헌신하고 있었다. -책을 내보자는 전광 목사의 제안이 여러번 있었지만 그 때마다 거절했다. 그런데 올해 책을 출간하기로 마음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선교지에 있을 때 받은 제안이어서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책을 내야 할 뚜렷한 목적이 없었다. 현지에서 살아가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재작년 목사님을 다시 뵈었을 때 내가 먼저 목사님께 여전히 책 쓰실 마음이 있으신지 여쭤봤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조울증을 앓고 있더라. 자살문제도 심각하고… 나 또한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고 오랜 시간이 걸려 회복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했는지를 책에 담아 전하고 싶었다. -우울증 정도는 얼마나 심각했나? 선수생활 올림픽 은퇴 후 제2의 삶을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막상 내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우울증의 시초였다. 그 때 당시 주위 사람들의 권면으로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소속으로 감독활동을 했다. 선수 경험만으로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론과 실기를 겸한 지도자가 되고자 대학원을 입학했는데, 어머니가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난 뒤 아주 심각한 우울증을 겪게 됐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아침에 해 뜨는 것도 싫었다. 계속 집에만 있다 보니 10kg 넘도록 살 찌고, 거식증과 환청까지 지옥 같은 생활이 2년 간 지속됐다. 병원에서 받은 약 조차 안 먹고 죽고 싶었으니까… 신앙생활은 해 왔으니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지옥 간다는 말 때문에 한꺼번에 쌓아 놨던 약을 먹기도 했다. -그토록 극심했던 우울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가 주변 사람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돌봄, 그리고 말씀을 통한 묵상훈련 덕분이다. 우울증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나를 교회 한 권사님이 자카르타로 데려가 주셨다. 그 곳에서 지금의 남편, 이영철 선교사를 만났고 그는 우울감에 빠진 나를 영적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보듬어준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결혼 전 김양재 목사(그 때 당시 집사)를 통해 QT를 시작했다. 이후 또 다른 집사와 말씀 공부와 묵상훈련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이 시간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특히 어린 시절 엄하셨던 아버지와, 오빠를 향한 미움, 분노의 감정 등 내 안에 치유돼야 할 것들이 말씀의 광채가 비치면서 회복됐다. -몽골선교 중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몽골현지인들을 섬기고 헌신하기 위해 마음먹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서에 익숙한 사람으로서 그 나라만의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현지인들과의 사례가 여러 번 발생하면서 부끄럽게도 현지인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밥을 먹는데 얼굴 한쪽이 움직이지 않는 안면마비가 찾아온 것이다. 한 달이 넘게 지속됐다. -안면마비와 향수병…선교지에서의 고난을 어떻게 이겨냈나 척박한 곳에서도 영성을 유지할 수 있던 것은 묵상훈련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침말씀 QT를 통해 내게 주신 교훈이 있었다. 바로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4)"라는 말씀이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으로 선교지에 위로를 전하기 위해 왔는데 문화충격이라는 이유로 마음의 문을 닫은 자신에 대해 반성했다. 그 때부터 개개인의 집에 방문해 그들의 아픔이 무엇인지 듣고 기도하며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평생을 탁구인으로 살았다. 양 감독에게 탁구란? 탁구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뒤 깨달았다. 이를 미처 깨닫지 못 했을 때는 나의 뛰어남 때문에 성적이 잘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 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재능, 달란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중심의 삶 속에서 명예를 추구했던 가치관이 예수그리스도 영접 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바뀌었다. 한 손에는 라켓과 다른 한 손에는 복음이라는 양 날개를 달고 사역할 것이다. -앞으로 계획과 비전은 한국에 돌아와 '꿈나무 청소년 감독'으로 아이들을 지도한지 어느덧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가난한 마음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진로를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맡게 된 일이다. 특히 유소년의 시기는 미완성의 상태로 자신을 만들어가는 기간이다. 때문에 아이들에 대해 지도자의 집중적인 관심과 사랑의 돌봄이 중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일정상 주일예배를 가지 못하는 날에는 합숙소 인근 교회에서 아이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거나 방에서 같이 찬양하고 성경공부를 할 때도 있다. 아이들이 최고의 환경에서 최선의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나의 모든 역량과 능력을 총동원 할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복음이 심겨지고 이들이 어릴 때부터 복음을 알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의 인생 3막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인 탁구와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인 복음을 전하는 '탁구 복음 선교사'의 삶이 되길 꿈꾼다. ▲책표지

최상경 기자2019-02-03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사람을 향하는 기술이 아름답다." 우연히 접한 한 학생의 응원 댓글이 3D프린팅 창업자의 사업방향을 바꿔놓았다.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전자의수를 만드는 '만드로' 이상호 대표 얘기다. 촉망 받는 연구원으로 기술적 탐구에만 매진했던 그는 '돈이 없어 전자의수를 쓰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모토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기존 전자의수의 가격을 '스마트폰 한대 값'으로 낮췄다. 기술은 도구일 뿐 '중요한 것은 가치'라 말하는 그를 직접 만나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난이 또 다른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한쪽 손이 불편한 고등학생 예비 뮤지션, 일터에서 양팔을 잃은 30대 가장. 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맞춤형 3D프린팅 전자의수를 제공한 기업가의 사연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이상호 대표다. 원래 3차원(3D) 프린터 소프트웨어(SW)개발 업체였던 만드로가 전자의수로 사업방향을 선회한 건 이상호 대표의 뚜렷한 목표 때문이었다. 누구든지 전자의수를 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이 대표 스스로의 다짐이 작용한 결과기도 하다. 그에 따르면, 국내외 절단장애인 수만 명 가운데 1%도 안 되는 극소수만이 제대로 된 의수 혜택을 받고 있다. 사업성을 고려하기 전에 이런 사실이 그를 더욱 자극했던 부분이다. 이 대표는 "움직이지 않는 일반 의수가 200만~300만원 가격 대이며 손가락이 작동하는 외국 제품의 경우 4,000만 원을 호가한다"며 "결국 돈이 없어 의수를 구입하지 못하는 현실인 셈이다. 이 현실이 안타까워 의수 개발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애초부터 전자의수의 사업화를 염두해 두고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억대 연봉의 대기업 연구원으로서의 삶이 있었고, 이런 지위를 등지고 아무도 뛰어들지 않는 사업의 길로 들어선 데는 우연히 접한 글의 영향이 컸다. "3D프린팅이 취미라 관련 커뮤니티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거기서 동년배 절단장애인의 글을 접했어요. 비싼 전자의수의 가격을 감당키 어려워 '3D프린터로 의수를 제작할 수 있냐'는 문의내용이었지요. 그를 위해 한 달만 시간을 내기로 마음 먹었던 게 지금에 이르게 됐습니다." 공장 프레스 사고로 양손을 잃은 동호인을 돕고자 재능기부하는 셈치고 의수제작에 나섰던 게 사업의 시작이 된 것이다. ▲3D프린터로 제작하는'전자의수'ⓒ데일리굿뉴스 오랜 노력의 결과, 스마트폰 가격의 '전자의수' 창업 4년 차인 지금,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차곡차곡 경험을 축적했다. KTX를 타고 전국방방곡곡의 절단장애인들과 만남을 갖는가하면 이들의 피드백을 통해 개선을 거듭했다. 2016년 7월, 첫 전자의수가 출시되기까지 1년 반 동안에는 1,000번이 넘는 설계 수정을 거치기도 했다.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드는 손 모형은 3D프린팅으로 원가를 절감했고, 불필요한 기능은 빼고 대체하면서 가격을 낮췄다. 그 결과 기존 의수의 30배 가량 저렴한 149만원으로 가격 책정이 가능했다. 이 대표는 "가격이 저렴한 이점도 있지만 3D프린터로 손쉽게 제작이 가능해 유지보수가 간편하다는 장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2년 간에는 코이카의 해외 지원프로그램으로 선정돼 시리아 난민 지원 사업에 주력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400대의 전자의수를 요르단에 기증했으며, 현지인들을 대상으론 워크숍을 전개해 자체적인 개발이 가능하게끔 도왔다. 이 대표는 "중동 난민 가운데 절단장애인이 특히 많다"며 "이들 난민들의 전쟁상흔을 치료할 전자의수 제작에 나설 계획"이라고 내비쳤다. 오로지 절단장애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진력해 온 이상호 대표. 그는 앞으로도 보다 개선된 의수제작에 매진하겠다는 열정을 보였다. "이 일을 하면서 목격한 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손이 없어 고통 받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손에 장애가 따른다는 건 주변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힘든 점이 너무 많죠. 이들의 고충을 이해하며 사람을 향하는 기술을 완성하고 싶어요. 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적 측면에 중점을 두며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박혜정 기자2019-01-16

추억의 드라마 '은실이'(1998)에서 빨간양말(성동일)의 그녀 영숙씨로 출연해 주목 받은 탤런트 정주은. 그는 최근 6년 간 배우에서 가방사업가로 변신해 관심을 모은다.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활력을 찾고자 시작한 사업이 전 세계 고아들을 돕는 선교적 사명으로 자리 잡았다. 사업을 통해 소외된 아동들의 생명을 살리고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비전이라는 정주은을 직접 만나봤다. 인도 고아원에서 하염없이 쏟아진 눈물…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자그마한 가방매장에 들어서니 천연가죽 소재에 세련미를 뽐내는 가방들이 진열돼 있다. 깔끔한 화이트 벽지가 가방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이곳은 SBS 8기 공채 탤런트 정주은의 가방브랜드 '토브(TOVE)' 매장이다. 정씨는 '토브'를 통해 세계 고아들을 돕고 있다. 사업을 시작한 2013년 8월, 그는 하나님께 사업수익금 절반을 국내외 소외 아동을 위해 쓰겠다고 약속했다. 전 세계 불쌍한 고아들을 구제하는 일에 힘을 보태는 것을 사업적 가치로 삼은 것이다. 6년 째 사업을 이어온 정씨는 당초 서원기도대로 꾸준히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국내외선교사 및 NGO단체를 도우며 고아 구제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스와질랜드 음불루지 지역에서 에이즈와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고아들을 위해 '아동돌봄센터' 신축을 지원했다. 센터는 올해 초 완공을 앞두고 있다. 소비자들 역시 이처럼 고아를 돕는 사업가치에 긍정적인 반응이다. 제품에 만족할 뿐 아니라 기도로 사업을 응원해주며 꾸준히 구매하는 이른바 '마니아 고객층'도 형성됐다. 별다른 마케팅 없이 오직 '카카오스토리' 하나로 가방을 홍보하고 있는 정씨는 일명 '카스' 페이지를 통해 기도제목은 물론 고아들을 위한 기부금 사용현황을 공유하며 고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때문에 정씨는 "기부는 자신 혼자가 아닌 고객들과 함께 이뤄지고 있다"며 고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씨가 고아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있는 것은 그의 확고한 비전 때문이다. 20대부터 교회학교 교사로 헌신했을 만큼 아이들을 좋아한 그는 2007년 DTS훈련 아웃리치에서 방문한 인도 고아원에서 고아를 향한 비전에 확신을 가졌음을 설명했다. "DTS 훈련 6개월 동안 비전을 찾게 해달라는 기도제목 하나만 두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웃리치로 인도 고아원을 찾아갔는데 도착하자마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흘렀다. 그 곳에서 만난 '리노아'라는 여자 아이는 내게 다가와 '내 이름을 자신의 손에 새겨달라'고 말하는데 그 순간 '고아를 섬기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느껴졌다. 보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기적 같은 간증들, 사업 이어가는 원동력 정씨의 가방사업은 고아를 향한 그의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통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정씨는 비전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애초 가방사업을 계획했던 것은 아님을 전했다. 그는 "아이를 갖기 위해 드라마 '내 딸 꽃님이'(2012) 이후 휴식기를 가졌다. 하지만 좀처럼 아이 소식이 없어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며 "한 번도 디자인을 배워본 적 없는 내가 활력을 갖기 위해 취미로 가방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산부인과로부터 '염색체 이상'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받아 사업운영에 회의감도 들었다. 그는 "사업이 잘 운영되는 것과 달리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당장 기도원을 찾았고 매일 눈물로 보냈다"며 "'하나님이 아이를 주시지 않으려고 이 일을 시키시는 것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를 낳고 싶은데도 혼자 디자인부터 제조, 홍보까지 직접 발로 뛰며 일개미처럼 살았다"고 회상했다. 숨가쁘게 가방 사업을 위해 달려온 지 1년 만에 그는 그토록 기다리던 임신 소식을 들었다.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현재 그는 5살 난 건강한 아들을 키우고 있다. 그는 "이처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자 감사 그 자체"라면서 "토브(TOVE)와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은 것 모두 기적"이라고 고백했다. 이러한 간증거리를 통해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 그의 믿음은 사업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더불어 사업의 수익금 규모와 상관없이 수익을 통해 고아들을 섬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함을 전했다. 더불어 소외아동에게 생명과 꿈을 전하는 일을 기쁜 마음으로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토브는 히브리어로 '선(善)', '좋은'이라는 뜻이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이다. '토브'에 담긴 의미처럼 앞으로도 좋은 가죽으로 가방을 만들고, 수익금을 통해 전 세계 고아들의 생명을 살리는 선한 일에 동참하겠다."

박혜정 기자2019-01-14

불교국가 태국에서 소파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복음사역을 펼쳐온 이른바 산업선교사가 있다. 바로 조용득 선교사(Stephano Cho)가 그 주인공이다. 이제 그는 23년 간 태국에서의 활동을 잠시 내려놓고 미얀마 양곤에서 가구학교장 활동에 주력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미얀마에서 새롭게 산업선교를 펼칠 것이라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태국 소파사업은 '선교의 장'이죠" 조용득 선교사를 부르는 또 다른 타이틀이 있다. 바로 '태국 소파왕'이다. 그는 1998년 IMF 위기 후 한국에서 실패와 좌절의 시간을 견뎌내고 단 돈 8만원으로 태국 현지에서 소파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그는 미국과 캐나다, 스페인 등 56개국으로 소파를 수출하고 태국 왕실의 소파 제작을 할 만큼 23년 째 소파 제왕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에게 사업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업장이 곧 '선교의 장'이 되는 것이었다. 태국 땅을 찾았을 당시 평신도 직분이었던 조 선교사는 선교하는 기업 즉 '비즈니스 선교'라는 비전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사업장에서 복음사역을 실천했다. 소파 제조공장에서 직원들과 예배를 드리는 것이 사역의 첫 시작이었다. 매주 월요일 오전 8시 직원들과 아침예배를 드렸다. 그는 "예배 시 직원들이 전혀 오지 않더라도 지적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며 "참석 여부에 대해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했고, 당일 예배에 오는 이들과 찬양과 기도 말씀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소파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그의 선교사역도 확장됐다. 특별히 조 선교사가 태국에서 주력한 사역은 '안경선교'다. 1년 간 2만 여명의 현지인을 대상으로 안경을 제공하는 사역을 펼쳤다. 시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형편때문에 안경을 맞추지 못하는 현지인들을 돕기 위함이다. 한 번 사역을 진행할 때 약 400~500명이 찾아오는데 그 중 무려 10%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적을 경험했다고 간증했다. "시력검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경말씀을 읽도록 했다. 안경 도수를 맞출 때 요한복음 3장 16절을 말씀을 보여주면서 크게 읽어보라고 했다. 태국어 성경책도 나눠주고 대기장소에 찬양을 틀어놔 자연스럽게 찬양을 듣도록 했다." 그는 좀 더 깊이 있는 선교사역을 위해 본격적인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2012년 美 위클리프 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그해 대한예수교장로회 미주합동총회 태국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렇게 23년 간 소파사업과 함께 선교사역을 펼쳐 온 그는 지난해 9월 태국 현지 한인연합교회 선교사 소속으로 미얀마에 선교사로 파송됐다. 비즈니스 선교, 미얀마 양곤서 다시 시작 조 선교사가 태국에서 다져놓은 입지를 내려놓고 미얀마 선교행을 결정하기까지 고민과 내적갈등이 있었다. 그는 "기도 중 하나님이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를 어기고 다시스로 떠난 요나의 모습이 떠올랐다"며 "소파사업은 아내에게 맡기고 미얀마 사역의 길에 오르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전했다. 그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미얀마 땅을 밟았지만 당초 열악한 환경에다 어떻게 선교사역을 펼쳐야 할 지 막막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는 말이 있듯 조 선교사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미얀마 땅에서 우연한 기회로 현지 사역을 펼치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만났다. 동시에 그의 사역방향도 정해졌다. "현지 국립 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수십년 간 현지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김성철 목사와, 크리스천들이 활동하고 있는 국제 비정부기구 INGO 생명문화운동재단과 인연이 닿았다. 이 단체 소속으로 미얀마 양곤시 중앙에 있는 국립 제1기술학교의 가구학교장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오는 4월 개강을 앞두고 있는 기술학교는 미얀마 정부가 배움에 소외된 청년들에게 선진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산업 일꾼 양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립됐다. 조 선교사는 "미얀마 정부는 자국민들이 가난하다 보니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줄 것을 내게 요청했다"면서 "국내 중소기업을 일으켜 달라는 뜻인 셈"이라고 밝혔다. 미얀마 정부가 태국에서 소파사업으로 성공한 이력이 있는 조 선교사의 기술 전수를 적극 환영한 것이다. 이에 조 선교사는 "가구학교장 활동 역시 주님을 전하는 통로다. 미얀마 정부는 내게 기술전수를 원하고 있지만, 나는 기술과 '복음'을 같이 전할 것"이라며 앞으로 미얀마에서의 선교 사역에 대한 기대와 함께 기도를 요청했다. 그는 "학교 수업 후 학생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사영리를 전할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크리스천으로서 참된 삶을 보여줄 것"이라며 "미얀마 청년들이 가구제조 기술을 배워 윤택한 삶을 누릴 뿐 아니라, 복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미얀마국립기술학교 부설 미얀마국립가구학교

최상경 기자2019-01-13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우리의 미래 삶에 대한 답은 어디에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고도의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해 사람을 능가한다는 데 있다. 기술에 의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고 '초지능화' 되다 보니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다. 너무 낙관할 필요도, 비관할 필요도 없지만 다가올 극명한 변화에 대처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이 변화에 대한 대응은 그리스도인도 논외가 아닌 과제가 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을 기독교적 관점으로 조명한 책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책을 집필한 이윤석 목사(독수리기독학교 연구소장•FMnC 선교회 사역총무)는 새로운 시대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역할'에 주목했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기독교가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나름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고도의 기술발전, '세속적 물질주의' 우려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일상 속에 침투하게 되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이로움을 주면서도 그 이면엔 윤리적 문제와 몰가치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윤석 목사도 이 같은 걱정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과거에는 교회에 와서 기도하며 매달려야 했던 일들이 이제는 기술로 어렵지 않게 해결되곤 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세상을 조금씩 더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하나님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질 겁니다." 암 진단에 활용되고 있는 IBM의 인공지능 '왓슨'만 봐도 지구상의 어떤 의사와는 비교가 안되게 방대한 지식을 탑재했다. 그것을 검토해 최적의 방안까지 제공해준다. 분명 하나님의 전지하심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비그리스도인들의 경우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의 경지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고도의 기술 발전은 하나님의 속성을 인간 편에서 경시하거나 그 자리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다는 게 이 목사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더없이 중요하게 여겼다. 이 목사는 그 역할을 말하기 앞서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관점의 정립'이 가장 시급히 요구된다고 밝혔다. "유물론과 과학주의는 4차 산업혁명의 주된 사상으로 볼 수 있어요. 이 사상은 곧 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 주며, 이것 자체가 구원이자 천국이라고 여기는 거죠. 기독교가 말하는 참된 구원과는 거리가 아주 멀어요. 이런 현상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구원이 무엇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성경적 관점에서 바라봐라 보고 해석해야 할 필요성이 생깁니다." 빈번해질 '윤리적 결정'…"그리스도인들의 제언 요구돼" 실제 관점의 정립만으로 변화에 대한 대응이 가능해 보였다. 그가 연구소장으로 있는 독수리기독학교의 경우, 2017년부터 전교생을 대상으로 4차 산업혁명에 관한 교육을 전개 중이다. 조회 시간을 이용해 강의하는 가하면 학부모들로 구성된 학교발전위원회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준비에 초점을 맞춰 운영되고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에 크고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학생들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시도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등 새로운 혁명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시간을 가졌죠. 무엇이 옳고 그른지 관점이 정리된다는 피드백이 많았어요. 관점이 정립되고 온전히 이해하게 되면 세상이 어떤 식으로 변화되던 크게 두렵지 않게 되죠.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두고 기성 교회들의 '걱정'이 많은데,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해주며 이해와 분별력을 갖게 하는 것만으로 대응이 가능해요."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 목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언자의 역할'이 요구된다고 꼽았다. 그가 '성경적 관점'을 계속해서 강조한 이유기도 하다. 과학기술 혁명 시대에는 윤리적,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기 때문에 신앙적인 관점의 올바른 제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중국의 한 과학자가 유전자 편집을 거쳐 쌍둥이 여아 출산에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생명과 인간을 재정의하는 등 윤리적인 결정을 하게 되는 상황이 빈번해 지겠죠. 크리스천들은 이 가운데 성경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해요. 과거 변화의 시대에 교회가 선도적인 역할을 했듯이 다시 한번 리더역할을 자청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땝니다."

박혜정 기자2019-01-09

스프레이 페인트로 터널이나 건물 외벽 등에 그림을 그리는 힙합문화 예술행위를 '그래피티'라고 한다. 그래피티라고 하면 반항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거리낙서'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문화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는 한 청년이 있어 관심을 모은다. 바로 그래피티 아티스트 황은관 씨다. 지난 8일 홍대의 한 카페에서 황 작가를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 복음 전도의 접촉점이죠" "성전에 앉아만 있지 않으시고 거리에 나와 복음을 전한 예수님처럼 저도 복음 들고 거리에 나오고 싶었어요." 공공예술이 전도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그래피티'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황은관 작가의 말이다. 그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시작한 것이 '그림 그리기'"라며 "길바닥에서 예술을 하는 정서가 좋아 그래피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갇혀있는 것보다 거리로 나와 불특정 다수 시민들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그래피티의 매력을 느꼈다는 것이다. 본래 미술 전공자가 아닌 황 작가는 뒤늦게 예술세계에 입문했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미적 재능을 인정 받았지만 부모의 반대와 가정환경 영향으로 예술의 길을 포기해야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와 일반4년제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취미활동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2015년 군복무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자'라는 다짐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그는 성경말씀을 예쁜 글씨로 적는 '캘리그래피' 작업을 먼저 시작했다. 당시 그는 어려워진 가정 형편과, 교회에 대한 회의감, 세월호 사건과 같은 사회 문제 현상 등으로 좌절과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신앙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힙합문화를 적용한 그래피티 스타일의 글씨작품을 만들며 정서적으로 회복을 경험했다. SNS에 공유된 그의 작품들은 입소문을 타고 작품전시를 해보자는 기획자의 러브콜도 받았다. 실제로 전역 후인 2017년 그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스타트업 미술전시회를 열었다. 이는 그가 직접적으로 그래피티 세계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 전시회 준비 차 작가 섭외 과정에서 그래피티 크루와 인연을 맺은 그는 지난해 2월 초 그래피티 크루로 합류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돌려말하기' 보다는 '직설적'으로 복음 전해 그래피티를 통해 복음을 잇기 위한 그의 열정은 그의 작품 세계에도 반영됐다. 그는 작업을 할 때 소위 '돌려 말하기'보다는 직설적이면서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잘 그리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했다. 예를 들면 그의 작품 중에는 예수님 얼굴이 중점적으로 크게 표현됐다. 실제로 그의 작품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에서는 예수님의 얼굴과 그 주변에 성경구절이 적혀 있다. 황 작가는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라며 "출퇴근 길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며 이 그림을 볼 때 위로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렸다"고 설명했다. 그러한 그의 작품에 대해 믿지 않는 대중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을까하는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복음적 메시지를 작품에 녹여내 복음을 돌려서 말하기보다는 대중들이 보기에 감탄스러울 만큼 직설적이고 확실하게 표현을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열정과 달리 그래피티 작업환경 특성상 어려움도 따른다. 사유재산인 건물 등에 함부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불법이어서 그래피티는 허가된 구역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공식적으로 그래피티 작업을 허용한 곳은 서대문구 신촌기차역 인근 터널과 강남구 압구정 일대 등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고 쉽게 벽에서 마주칠 수 있는 그림을 통해 어떻게 하면 선한 영향력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그래피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래피티가 비기독교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전도의 접촉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말 내 작품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지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SNS를 통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는 대중들의 응원에 힘을 얻고 있다"며 "길거리를 지나는 대중들이 자연스럽게 내 작품을 보고 쉼과 위로를 받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서대문구 한 터널에 그려진 황 작가의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데일리굿뉴스

조준만 기자2019-01-08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찬송가 586장) 찬송가 586장의 가사는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100년 전 이 땅의 교회는 민족의 위기 앞에 '결단'했고 참과 거짓의 싸움에서 '참'의 자리에 섰다. 당시 한국 교회는 민족의 문제를 껴안은 공동체였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이념과 종파를 뛰어넘어 협력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러한 연합과 민족 사랑의 정신을 잃고 분열과 갈등을 보이며 세상의 걱정거리로 전락했다. 어떻게 하면 한국교회가 작지만 뜨거웠던 100년 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학자와 목회자로 민족과 교회의 관계를 연구해온 문성모 목사(강남제일교회· 前 서울장신대 총장)를 만나 고언을 들어봤다. "교회는 민족과 운명 공동체" 문성모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위기 가운데 있다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 예배의 모습이 갱신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그는 "오늘날 한국교회는 총칼에 대한 위협이나 독재에 대한 항거는 없지만 국론이 사분오열되어 있다"며 "민족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정신적 지주의 지위를 잃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1운동 당시 한국교회의 모습은 오늘날과 달랐음을 강조했다. "100년 전 한국교회는 작지만 강한 교회였습니다. 전체 인구수 대비 2% 남짓의 적은 수였지만 사회적 영향력은 그보다 훨씬 큰 25% 정도였습니다. 요즘은 반대로 기독교 인구수는 25%지만 영향력은 2% 정도인 형편입니다. 이제 우리는 삼일운동 당시의 교회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3·1운동 당시의 교회는 민족의 문제를 안고 함께 고민하던 공동체였습니다. 민족을 위해서라면 종교, 이념을 넘어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민족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는 공동체로써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유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1993년부터 '어떻게 하면 희미해져 버린 한국교회의 민족 사랑을 되살릴 수 있을까'를 놓고 고민했다. 그런 고민의 결실이 바로 '삼일운동 기념예배 프로그램'이다. "광주제일교회에 시무할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어디 알릴 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제가 3·1운동과 관련해서 모은 자료와 예배 노하우를 담은 소책자를 알리는 광고를 냈는데 무려 1,000 교회가 넘게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많은 교회가 민족과 3·1운동에 관심은 있지만, 자료가 없거나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쌓아온 삼일운동 기념예배 노하우와 자료를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예배 세미나'를 통해 한국교회 전체와 나눌 계획이다. GOODTV기독교복음방송이 후원하는 이번 세미나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1993년부터 26년간 삼일운동기념예배를 드려온 문성모 목사의 비결이 공개된다. 세미나 참석자 전원에게 △삼일운동 100주년 예배순서와 설교문 △독립선언서 원본과 풀이본 △옛 애국가(Auld Lang Syne) 악보 △예배시연과 구체적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성경과 찬송가만 가지고 있으면 3·1운동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살려 재현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기획됐다. 세미나 일정은 오는 1월 21일(월) 오전 11시 강남제일교회에서 열리며 세미나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홍성호 목사(010-2899-5858)를 통해 문의하면 된다. 문 목사는 이번 세미나가 "한국교회, 특별히 작은 교회와 농어촌교회가 우리 신앙의 뿌리가 얼마나 위대했는지, 민족을 사랑했는지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인경 기자2019-01-08

버려진 아기의 생명을 보호하는 베이비박스. 해마다 이곳을 찾는 부부가 있다. 서울 동작경찰서 임정일(53) 경감과 이사임(50) 부부가 바로 그 주인공. 8년째 베이비박스를 후원하는 이들 부부의 특별한 사연을 소개한다. 29년 차 베테랑 형사 "아기 다룰 땐 조심조심"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이종락 목사) 담벼락에 구멍을 뚫어 만든 베이비박스는 딱 신생아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크기다. 아기가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항상 따뜻하게 유지된다. 바깥문이 열리면 알람이 울려 교회 내부에서 베이비박스 안쪽 문을 열고 아기를 구조한다. 임 경감 부부는 8년째 어린이날과 명절, 연말이 되면 쌀과 기저귀, 분유 등 생활필수품과 후원금을 들고 이곳을 찾는다. 찌는 듯이 더웠던 몇 해 전 여름에는 더위에 약한 아기들을 위해 에어컨을 기부하기도 했다. 임 경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아내가 유산을 한 뒤 아기가 안 생겼다. 10년을 기다리다가 입양을 생각했는데 관련 내용을 찾다가 우연히 베이비박스에 대해 알게 됐다"며 "우리는 아기가 생기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버려지는 아기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고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아내가 먼저 봉사활동을 하자고 얘기를 꺼냈고, 매년 꾸준히 기부와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부부에게 기적처럼 아기가 생겼다. 부부는 딸의 돌잔치 축의금과 돌반지 등을 전부 베이비박스에 기부했다. 이종락 목사는 아이 이름을 '선교하는 아이'라는 뜻의 선아라고 지어줬다. 어느덧 8살이 된 딸은 부부와 함께 매달 베이비박스를 찾는다. 따뜻한 물에 아기들을 씻기고 입양 되지 못한 장애아동들을 보살피며 청소와 빨래도 돕는다. 임 경감은 "처음에는 장애아동들을 보고 무서워하며 울었지만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게 같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진 시대지만, 다른 사람들을 돕는 건 점점 쉽지 않아지고 있다. 임 경감은 무엇보다 나보다 조금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성경에서도 베푸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이 있는데 나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라며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내가 조금 덜 쓰면 나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 경감은 강남·서초 경찰서 등 강력계를 거친 29년 차 베테랑 형사다. 지난 2010년에는 현금 1억 원이 든 가방을 훔친 용의자를 붙잡아 특진도 했다. 하지만 그는 범인을 잡는 것보다 아무 힘 없는 갓난아기를 씻기는 게 더 어렵다. 임 경감은 "혹시 아기가 다칠까 봐 조심조심 하다 보면 어느새 목덜미가 땀 범벅이 된다"며 웃음을 보였다. 이종락 목사는 "그 동안에는 임 경감이 쑥스러워하며 봉사하는 걸 알리기 원치 않아 사진 한 장 없었다"며 "연말과 새해를 맞아 이 훈훈한 소식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 재차 설득했다"고 전했다. 2019년 새해가 밝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올해 8명의 아기들이 베이비박스에 왔다. 이종락 목사는 "교대 근무를 해야 되는 바쁜 경찰 업무 중에도 비번 때 찾아와 봉사하고 후원하는 게 쉽지 않은데도 베이비박스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발벗고 나서준다"며 "사랑의 빚을 많이 졌고 너무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부부는 베이비박스 후원 외에도 위례성복교회 집사로 섬기며 지역 독거노인들을 위한 반찬 봉사, 해외 선교 등에 참여하고 있다. 임 경감은 "후원도 필요하지만 실제로 아기들을 돌볼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사람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갖고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인경 기자2019-01-04

서울 강서구 염창동 사랑교회에는 주일 오후만 되면 외국인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한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위치한 교회를 어떻게 알고 찾아오나 싶을 만큼, 네팔·영국·필리핀 등 10여 개 국적의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김덕겸 목사는 인터넷과 생방송 라디오 어플을 통한 다문화 방송을 그 비결로 꼽았다. 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외국인 선교에 앞장서고 있는 사랑교회를 찾아가봤다. 다문화 선교에 앞장…"우리는 모두 나그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약 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제 거리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지만, 복음적 관점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전도하는 교회는 많지 않다. 김덕겸 목사는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지나치는 외국인들을 그냥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관심"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자국어로 복음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예배를 드리거나 설교, 찬양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교회나 기독교단체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3개월 시범기간을 거쳐 2018년 2월 개국한 다문화복음방송에는 김 목사와 교인들이 깜짝 놀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공식 홈페이지와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복음을 듣는 이들이 하루에 많게는 2만 명에 달했다. "이 다문화 방송을 듣고 개종한 분들이 많아요. 특히 무슬림권 사람들은 본국에서는 전혀 복음에 대해 듣지 못하다가 한국으로 온 뒤 우연히 방송을 통해서 복음을 듣게 돼요. 방송을 듣고 교회로 찾아오는 외국인들도 있고 친구들도 데리고 옵니다."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13개 언어로 제공되는 설교·찬양 콘텐츠는 영상으로도 볼 수 있고, 오전 4시부터 자정까지 생방송 라디오로도 들을 수 있다. 김 목사는 "언제, 어디서든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미디어 사역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특히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낯선 타지에서 다닐 교회를 찾기 어려운 외국인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문화복음방송에는 사랑교회의 영어예배 뿐만 아니라 유튜브에 올라오는 각국의 설교·찬양 콘텐츠, 타 교회의 외국인 예배를 촬영해 보기 좋게 편집한 양질의 영상들이 수시로 업로드 된다. 즉 13개 국가의 복음방송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인 셈이다. 김 목사는 미자립교회 등 규모가 작은 교회들도 다문화방송을 통해 얼마든지 외국인 선교를 시작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그는 "일단 외국인들을 교회로 초청하고 방송을 연결해주면 연결고리가 생긴다"며 "다문화 선교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 한국교회에 다시금 불이 지펴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사랑교회 주일 예배는 필리핀어와 영어, 한국어 등 3개 언어로 진행된다.(사진제공=사랑교회) "하나님 가장 기뻐하는 일은 선교…더욱 관심 가져야" 사랑교회에서는 주일 예배가 필리핀어(타갈로그어)와 영어, 한국어 등 3개 언어로 진행된다. 각각 현지인 목사와 전도사가 예배를 진행한다. 매주 토요일에는 본국 역파송을 목표로 외국인 성도들을 훈련시켜 지도자로 양육하는 세계외국인선교신학교 수업이 열린다. 또 갈 곳 없는 외국인들이 임시 처소로 쉬었다 갈 수 있도록 교회 근처 연립주택 두 채를 얻어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형교회에서 할 법한 많은 사역들을, 규모가 크지 않은 사랑교회가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교인들의 열정 때문이다. 교인들은 매주 구역별로 돌아가며 손수 식사 봉사에 나서고, 자발적으로 영상제작과 라디오 편성 등을 담당하며 다문화복음방송 PD로 섬기고 있다. 매년 교회 예산을 편성할 때도 선교예산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김덕겸 목사는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식사와 옷, 비자, 신원보증 등의 필요도 채워줘야 하기 때문에 외국인 사역은 특히 재정을 많이 필요로 한다"며 "선교적인 마인드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외국인 성도들을 섬기는 교회 교인들이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외국인 전도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만큼 그 열매도 적지 않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묻자 김 목사는 "평생 무슬림으로 자라온 이란 여성이 한국에 와서 복음을 듣고, 교회에서 양육을 잘 받아 기독교로 완전히 개종했다"며 "신학을 공부한 뒤 지금은 전도사로 섬기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랑교회를 방문하는 이들마다 '교회가 살아있고 생동감이 넘친다'고 입을 모아 칭찬한다. 김 목사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선교"라고 힘주어 말했다. "요즘 한국교회가 많이 어렵고 침체됐다고 하지만, 아직 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뜨겁게 살아있습니다. 교회의 사역 방향이 분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을 하면, 성도들이 스스로 교회를 찾아 오고 자원해서 섬깁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보내신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한국교회가 더욱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다문화복음방송 공식 홈페이지에서 언어를 선택하면 해당 언어로 설교와 찬양을 보고 들을 수 있다.ⓒ데일리굿뉴스

한혜인 기자2019-01-01

2019년이 밝아오는 가운데, 시민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새해 맞이에 나섰다.시민들의 새해 소망을 들어봤다. 유독 힘들단 소리가 많이 들려왔던 2018년.시민들은 한 해 동안 묵혔던 고민들 뒤로 하고, 희망차게 새해를 맞이했다. 더불어 한국교회가 시민들에게 더 큰 희망과 위로를 전하길 소망했다.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불안감이 상당하다면서도, 함께 힘을 모은다면 희망이 보일 것이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이상현(40, 경기 남양주시) 씨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최저임금이 오르기 때문에 자영업자들의 걱정이 많겠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취업난으로 힘들었을 취업준비생들의 2019년 바람은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과 청년들을 위한 질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다. 박은경(23, 서울 은평구) 씨는 "올해 주변에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면서 "좋은 스펙에도 불구하고 합격 소식이 생각보다 적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취업이 문이 활짝 열리고 도전 가능한 범위가 넓어지는 등 취업 환경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군인들은 건강이 최우선 순위였다. 서동현(23, 공군17비행단) 씨는 "새해에는 다치지 말고, 아무 일 없이 군 생활 평탄하게 마무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8년은 남북관계의 긴장이 완화되면서, 탈북민들이 한반도통일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이란 목소리가 유독 높아진 해이기도 하다. 탈북민들은 2019년에도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 선교적 소명을 감당하겠다고 다짐했다. 2004년 탈북한 최모 씨도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 제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끝으로 작은교회 목회자들은 건강, 가정, 학업, 재정 등의 문제로 힘든 현대인들이 모든 염려를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맡겨드리는 2019년이 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한국교회가 소외된 이웃뿐만 아니라, 불안과 분노로 마음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갖는 한 해가 되길 소망했다. 도화장로교회 김성환 목사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은 내 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길 바란다"면서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살면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놀랍게 성장할 수 있다"고 전했다. 목회자들은 또,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국교회를 향한 비판이 거세진 것을 우려하며, 목회자가 먼저 바로 설 수 있도록 교인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조준만 기자2018-12-26

인디오들이 모여 사는 브라질 아마존 검은강 유역. 빛깔이 검어서 검은강이라고 불리는 이 강은 브라질과 콜롬비아, 베네수엘라의 국경을 통과하며 흐른다. 아마존에 사는 인디오들은 이 강을 젖줄 삼아 듬성듬성 마을을 이루며 살아간다. 검은강의 상류 지역 중 하나인 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Sao Gabriel da Cachoeira)에는 한국인의 이름을 딴 길이 하나 있다. 이 길의 이름은 '허운석 선교사의 길'이다. 아마존 인디오들을 위해 헌신하다 2013년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고(故) 허운석 선교사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남편 김철기 선교사는 1991년부터 허 운석 선교사와 딸 수산나, 아들 지훈과 함께 아마존 선교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독충과 독사, 척박한 토양, 무더운 날씨로 인해 '녹색의 지옥'이라 불리는 아마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최근 치료차 한국을 찾은 김철기 선교사를 신촌교회에서 만났다. 김 선교사는 가장 먼저 아내이자 동역자였던 허 선교사 이야기를 꺼냈다. "허운석 선교사는 아마존에 묻히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매장지를 태어난 고향이 아닌 아마존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동안 복음에 저항했던 사람들조차 허 선교사의 떠남을 통해 마음을 열게 됐습니다." ▲아마존에서 27년간 사역한 김철기 선교사를 지난 12월 22일 신촌교회에서 만났다.ⓒ데일리굿뉴스 녹색의 지옥이 '은혜의 강'으로 김 선교사 부부는 '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아마존으로 떠났다. '녹색의 지옥'으로 불리는 아마존, 그곳은 적응 자체가 불가능한 땅이었다. "뱀에 먹혀 죽든 창에 찔려 죽든 죽기는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생각했지만 연중 계속되는 폭염, 몸이 둥둥 뜨는 것 같은 습도, 시간대별로 나타나 온몸을 뜯는 벌레는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환경이 사실은 하나님이 아마존을 보호하시는 방식임을 깨달았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이 이 같은 환경이 아니었으면 벌써 오래 전에 훼손됐을 겁니다." 늘 새롭게 적응해야하고 마음을 놓을 수 없기에 주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해야 했다. 그래서 김 선교사는 아마존에 세운 선교회의 이름을 '아마존 은혜의 강 선교회'로 지었다. 환경뿐 아니라 문화도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사고방식과 식생활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원숭이 머리가 요리로 나오고 악어 개미탕을 별미로 먹는다. 또한 이들의 영적 세계는 샤머니즘과 애니미즘이 지배하고 있어 복음에 적대적이었다. 저주하고 복수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했다. 독충들과 벌레에 물려 상처로 짓무르고 피범벅이 된 선교팀을 보고 인디오들은 비로소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음을 함께 나누고 같은 자리에서 고난 받는 것이 복음이구나 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마존에 오셨다면 이들과 함께 낮은 자리에 거하지 않으셨겠어요?" ▲2012년 언더우드 선교상을 수상한 김철기·허운석 선교사의 모습. 김 선교사는 이 사진을 볼때마다 '부끄럽다'고 말한다. 입술로는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지만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던 자신의 '위선'을 마주하기 때문이다.ⓒ데일리굿뉴스 김 선교사와 허 선교사가 아마존에서 일군 선교의 열매는 크다. '검은강 상류 신학교'를 설립해 지금까지 100여 명 이상의 졸업자를 배출해 그 중 80여 명이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강을 따라 거주하는 인디오 형제들을 돌보는 병원선 사역도 꾸준하게 진행 중이다. 많은 이들이 김 선교사 내외가 이룩한 사역의 결실들을 칭찬한다. 사역의 열매로 2012년에 허 선교사와 함께 '언더우드 선교상'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의 일은 많이 했지만 그 안에 주님은 계시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종교적 야망이었습니다. 주님을 버리고 내 거룩한 야망을 쫓아 살았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연약한 존재인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아마존을 품겠다, 인디오 형제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지요. 저는 위선자 중에 위선자였습니다." 김 선교사는 '주님의 일'을 '주님'과 착각하는 이들이 자신의 말을 듣고 돌이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은 달라요. 이제라도 주님 안에서 주님으로 인해 살려고 합니다." 24년 만에 '말라리아 신고식' 치러 허 선교사를 먼저 보내고 홀로 남겨진 김 선교사는 건강이 많이 약해졌다. 충격과 아픔으로 불면증이 왔고 면역력 약화로 각종 질병에 노출됐다. 뜨거운 적도의 태양에 상한 눈은 안압이 높아졌고 녹내장이 왔다. 각종 성인병으로 몸은 성한 곳이 없다. 검사와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는 김 선교사는 "인디오 형제들은 늘 말라리아로 고생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껏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았어요. 저들을 이해하기 위해 기도하며 말라리아를 구했는데도 말라리아를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2015년 4월에 댕기열과 말라리아를 같이 앓게 됐습니다. 브라질에서도 굉장히 드문 경우지요. 그리고 6월에는 악성 말라리아, 10월에 다시 말라리아와 댕기열에 걸렸습니다. 1년 만에 24년 간 걸리지 않았던 말라리아에 세 번이나 걸린 거죠. 그제야 비로소 아마존 선교사가 된 것 같았어요. 내 사역의 드러냄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내 자아와 육신이 약해져 인디오 형제들을 온전히 이해하게 됐으니까요." ▲인디오 마을 제루살렝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김철기 선교사 ⓒ데일리굿뉴스 그는 아마존 사역의 고단함이 밀려 올 때 허 선교사와 함께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모질고 악하면 절구를 찧는 고통 속에 넣으실까, 이렇게 때려야만 변화 받을 수 있기 때문일까?" "힘든 것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기대와 소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배려가 우리의 자아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제 그의 가장 큰 기도제목은 종교적 성취가 아닌, 아마존 영혼들의 구원과 회복이다. "아마존 검은강 지역에는 여전히 복음을 알지 못하는 15개 미전도 부족이 남아있어요. 이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제게 기도제목입니다." 그는 최근 아마존에서 겪었던 일들과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자아가 깨진 이야기를 담은 참회록 <가슴 찢는 회개>를 펴냈다. 김 선교사는 "이 참회록이 '주님 없이 주님의 일'을 하는 이들이 돌이키는데 작게나마 쓰임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더불어"허운석 선교사가 남긴 <내가 왕바리새인 입니다>, <그리스도만 남을 때까지>를 통해 한국교회가 회복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prev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goodtvICGICGCCMLOVE굿피플KCMUSA기독뉴스GoodPeople아멘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