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련 기자2017-11-24

지난 9월 서울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주민토론회에서 수십 명의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일명 '무릎 영상'이 공개되면서 특수학교 설립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올해로 개교 20주년을 맞은 밀알학교가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 밀알학교는 체육관과 미술관 공연장 등을 동네 주민과 공유하며 특수학교가 지역사회와 융화한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밀알학교를 건축한 이는 바로 유걸 건축가다. 한 매체를 통해 보도된 유걸 건축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밀알학교, 예배당 대신 세워진 장애아 교육 공간 20년 전 문을 연 밀알학교는 남서울은혜교회가 예배당 대신 장애아 교육 공간을 짓기로 하면서 설립됐다. 남서울은혜교회의 성도이기도 한 유걸 건축가는 당시 학교의 설계를 맡았다. 하지만 서울 한 복판에 특수학교가 세워진다는 말에 20년 전에도 주민들의 반대가 이어졌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유걸 건축가는 밀알학교를 지을 때도 아주 살벌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밀알학교도 설계 시작부터 주민 반대가 굉장히 거셌습니다. 주민이 반대하니 강남구청에서 허가 인증을 해주지 않으려 했어요. 시공사가 현장에 갖다 놓은 중장비 한 대가 부서진 적도 있었죠." 밀알학교 건립 문제는 결국 법정으로 향한 뒤에야 해결됐다. 2~3개월 지연된 끝에 큰 고비는 넘었지만 한정된 대지와 예산으로 특수학교를 짓는 일도 쉽지 않았다. 자폐아를 비롯한 발달 장애아들의 특성을 고려하면서도 특수학교라는 정체성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아야 했다. 고민 끝에 탄생한 학교는 1층부터 4층까지 뚫린 거대한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한 본관으로 구성됐다. 4층 높이 유리로 마감한 한쪽 벽면과 폴리카보네이트로된 반투명 지붕은 외부의 공기와 빛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실내에서도 유리 밖 낮은 구릉과 녹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트리움은 밀알학교에서 일종의 마당인 셈이다.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것은 종소리가 들리면 뛰어나올 마당이 있는 공간이죠. 우리나라 학교 건축을 보면 그래서 정말 마음이 아파요. 좁은 복도에 교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만 하죠." ▲밀알학교 음악당 (사진제공=연합뉴스) "한국사회 특수교육, 외국 사례 본 받아 통합교육으로 가야" 본관과 분리된 듯하면서도 이어지는 별관은 체육관과 공연장, 카페, 미술관 등으로 구성돼있다. 주말마다 교회 예배당으로 쓰이는 체육관을 비롯해 아래층 밀알미술관 등은 지역주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이 중 지역주민에게 가장 사랑 받는 공간은 공연장이다. 수천 송이 꽃이 만개한 듯한 도자 벽화는 유 건축가가 이곳을 올 때마다 한 번씩 들여다보는 명작이다. 홀 내부 작품들은 난반사로 근사한 음향을 만들어내,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공연을 자청한다고 한다. 지역사회의 굉장히 좋은 자산이 된 것이다. 이 밖에도 유치원실, 통합감각실, 체력단련실 등이 학교를 구성하고 있다. 경제적 제약과 지금보다 한참 뒤떨어진 기술 수준 속에서 아쉬운 점은 없을까. "쓰는 분이 마음 편히, 구석구석 잘 쓰면 그것이야말로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건축가는 이번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논란을 보며 '20년이 지나도 똑같다'는 생각과 함께 무척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좋은 장애인 특수학교가 있는 일이 자랑스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뜻 밖의 말도 내뱉었다. 이어진 설명을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특수학교 설계가 처음이다 보니 외국에서 시범 케이스가 될만한 곳이 있나 하고 찾아봤죠. 그런데 미국은 통합교육을 하기에 일반 학교에서 다 같이 교육하고, 일본도 일반학교에서 한 반에 1,2명씩 받아들여서 함께 공부하더라고요. 비용은 훨씬 많이 들겠지만, 우리도 장애아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통합교육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한혜인 기자2017-12-13

드라마 '허준', '이산', '동이'의 OST 메인 연주자이자 작곡가로서 대중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세계적인 플루티스트 송솔나무.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하나님의 연주자'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그의 아름다운 연주 뒤에는 학창시절 왕따, 아버지의 부도, 플루트리스트로선 치명적인 신체적 약점처럼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다. 송솔나무 집사의 파란만장한 신앙 스토리를 <신앙계> 12월호에서 만났다. 13살에 줄리어드 장학생 입학…왕따로 힘든 시절 겪기도 송솔나무 집사는 만 13세에 음악 영재들이 가는 학교인 줄리어드 프리스쿨의 장학생으로 입학할 만큼 주목 받던 인재였다. 꿈의 무대라 불리는 미국 카네기홀과 링컨센터에서 수 차례 독주회도 가진 바 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는 전 세계 100여 국에서 악기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송솔나무 집사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폭력을 피해 숨어 다니는 왕따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나 방 2개에 화장실 1개인 이모부 집에 14명이 함께 살았습니다. 학교에 가면 매일 맞고 다니는 왕따였고, 집에 오면 사촌형에게 맞아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가 플루트란 악기를 만난 건 아이들의 눈을 피해 들어간 학교 화장실에서였다. 변기에 쭈구리고 앉아 있던 그에게 플루트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소리를 따라 찾아간 학교 밴드부 플루트 선생님 앞에서 한국에서 몇 달 배운 적 있는 애국가 한 소절을 불렀다. 선생님은 그의 가능성을 알아봤고, 이후 플루트는 그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힘든 학교생활을 버텨내는 원동력이 됐다. 어려움 속에서 힘이 됐던 플루트였지만, 그에게는 플루트 연주자로 성공하기에는 어려운 약점이 있었다. 플루트는 악기 특성 상 호흡량이 중요한데, 알레르기성 천식으로 송 집사의 폐활량은 일반인의 63~64% 밖에 되지 않는다. 남들보다 손가락이 짧고, 오른쪽 다리는 십자인대파열로 수술했다. 몇 해 전부터는 변이형 협심증으로 약물 치료 중이다. 처음에는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심장이 아플 때는 "하나님을 전하는데 더 복을 주셔야지 왜 심장까지 아프게 하냐"고 원망했다. 그때 하나님은 그가 연주 때마다 들고 다니는 수천만 원의 알토플루트나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수억 원의 백금 플루트가 아닌 낡은 스텐레스 파이프로 만든 악기를 다시 보게 하셨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스텐레스 파이프 악기는 배관용으로나 쓰이는 스텐레스 파이프를 쓰지도 못하게 잘라놓고 거기에 구멍까지 뚫어놨습니다. 이런 파이프를 어디다 쓰겠습니까? 이 파이프의 입장에선 난 이제 끝이구나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파이프가 악기가 돼 저와 함께 세계를 돌며 아름다운 멜로디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다니며 공연…"곳곳서 하나님 역사 일어나" 송솔나무 집사는 학창시절 왕따, 아버지의 부도, 천식을 비롯한 신체적 약점으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 플루트리스트로서의 소명을 확인했다. 이에 송 집사는 하나님이 부르는 곳이면 길이 없고, 전기가 없고, 관객이 적어도 어디든 찾아갔다. 고통 속에 힘들어하던 그를 찾아온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다. 100여 곳을 돌며 플루트를 연주했던 송 집사에게 남수단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악기라고는 북소리가 전부였던 사람들이 그의 연주를 통해 복음을 접했기 때문이다. "연주를 시작하려는 데도 사람들이 시끄러우니까 추장이 막대기를 갖고 떠드는 사람들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그런데 연주가 시작되자 모두가 조용히 플루트 소리에 귀 기울였어요. 메시지를 전하자 여기저기서 훌쩍 거리더니 예수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일본은 송 집사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찾아간 나라 중 하나라고 전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모두가 일본을 떠날 때, 송 집사는 악기와 구호물품을 갖고 일본으로 향했다. 이시노마키, 센다이, 후쿠시마 등 피해지역을 돌며 절망에 빠진 이재민들을 위로했다. "일본 이재민들에게 '내 고향'이라는 곡을 연주하면서 우리의 진짜 고향은 천국이라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자신의 집이 떠내려가도 울지 않던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후 센다이에만 교회가 4곳이 세워지는 등 일본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이후 송 집사는 일본에서 70회 이상 자비량으로 헌신해 연주하며, 일본 선교의 마음을 품었다. 현재 그는 일본에 집을 얻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역하고 있다. 송솔나무 집사의 연주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녹아있다. 그의 인생이 산 증거다. 그래서 오늘도 꿈꾸는 모든 이들을 향해 도전한다. 그의 유일한 꿈은 '빨리 하나님의 꿈을 알아차리고 순종하는 것'이다. "무엇이 되겠다는 내가 정한 꿈을 놓고 기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신 대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최고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만 좇아가면 내가 위대해질 필요가 없지요. 순종만 하면 됩니다."

한연희 기자2017-11-03

국민 90%가불교 라마교를 믿고, 5%는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 몽골. 그 어디에도 기독교가 뿌리내릴 자리가 없어보이는 이 곳에 복음의 씨앗이 기적적으로 심겨서 결실을 맺고 있다. 몽골의 교회들은 재정 자립이 어려워 늘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게 현실인데, 100% 몽골 현지 크리스천들의 헌금으로 건축하고 자립한 교회가 있어 희망이 되고 있는 것.목회자도 현지인이다. 몽골은 기독교 기반 약하지만 포기 않는다 안식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함팅토야교회(몽골 울란바토르) 잉케 목사는 조용하면서도 다부진 여성 목회자의 전형이었다. 몽골과 신앙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고 눈이 반짝였다. 잉케 목사 "몽골은 기독교적 신앙 기반이 매우 약하다"면서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남자들이 한참 나이에 승려가 되고, '작은 벌레조차 죽이면 자녀 세대에 해악이 따른다'는 가르침 때문에 혁명이나 변화를 두려워한다. 게다가 유목민 생활권이라 정착이 잘 안된다"고말했다. 또한 "그런 환경에서 순수하게 몽골 기독교인들의 힘으로 건축한 함팅토야교회는 척박한 환경에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수많은 몽골의 교회들과 선교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잉케 목사에 따르면 기독교 복음은 아시아에서 한국보다 몽골에 먼저 들어갔다. 하지만 유목 생활 때문에정착하지 못했고, 믿음이 들어가도 금방 시들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95%가 불교와 이슬람교도인 상황까지 감안한다면 선교적으로 매우 척박한 곳이 분명하다. 하지만 몽골에 희망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잉케 목사는 "3박 4일 영성훈련 프로그램을 한국교회(예장 통합)에서 들여와 교인들을 훈련시키고 있다"면서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얄팍한 마음에 하나님의말씀이 깊이 들어가 진정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장로와 집사들도 훈련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지인들이 설립한 함팅토야교회는 선교사역의좋은 모델 잉케 목사는 "특히 지난해 2억원이 넘는 돈을 모아 교회를 건축했다"면서 "모두 교인들의 헌금으 ▲안식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잉케목사를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데일리굿뉴스 로 이뤄진 일이었다. 출석 교인이 200여명 되는데 두 가정은 집을 팔고,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헌금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타 지역 목회자들에게도 물어봤는데, 몽골에서 교인들이 예배당을 스스로 지은 사례는 전무후무했다"면서 "그들도 함팅토야교회 자체에 많이 놀랐고 희망을 본것 같았다"고 말했다. 교회는 자체 경비를 헌금으로 충당할 만큼 재정자립이 됐다. 5년전 자립에 성공했고 해마다 교인이 늘어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은 몽골 농어촌 미자립 교회와 아시아 선교지에 도움을 손길을 뻗고 있다. 잉케 목사는 "몽골에 성경의 말씀 뿌리가 깊게 내려지길 소망한다. 세대를 이어서 끊어지지 않고 복음의 줄기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함팅토야교회의 몫"이라며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까지 십자가 복음을 전달하는 기회를 계속 만들어 갈 것이다. 몽골 사회에 축복의 통로가 되겠다"고 비전을 밝혔다. "한국의 몽골 노동자에게사랑과 복음 전해 달라" 잉케 목사는 1998년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로 들어왔다. 다니던 공장의 사장 부인이 그녀를 전도했고, 처음엔 '잘 보여야겠단 생각'으로 의무적으로 다녔다. 그러다가 기도와 성령의 힘을 체험하고 신앙인이 됐다. 2002년 몽골로 돌아갔고, 당시 함팅토야교회를 개척해 사역하던 한국의 정광윤 선교사(64)를 운명적으로 만났다. 통역을 돕던 잉케 목사를 정목사는 미래 목회자로 단박에 알아봤던 것이다. 정 목사는 함팅토야교회를 건강히 세우기 위해선 재정 자립과 함께 현지 목회자를 담임으로 세워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잉케 목사는, 정 목사의 도움으로 신학을 마쳤고 목회적 소양과 인성을 인정받아 함팅토야교회의 담임으로세워졌다. 잉케 목사는 "나와 같이 한국에 노동자로 나간 몽골인들이 많다"면서 "돈을 벌러 갔던 나라에서 복음 접하고 이렇게 조국으로 돌아와 섬기는 사역자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한국 기독교인의 사랑과 배려였다"고 말했다. 이어 "타지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그때에 복음을 먼저 접한 크리스천들이 따뜻하게 품어주고 인도해 줬으면 좋겠다. 그들이 결국 나처럼 몽골로 돌아와 복음의 씨앗을 심게 될 것이기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혜인 기자2017-11-30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엔 88년생 주인공들의 연애, 결혼, 직장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이들은 취업난에 힘들어 하고 사랑에 대해 고민하며 내 집 장만은 포기하고 현실의 장벽 앞에서 결혼을 미룬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말이 와 닿는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힘들다. 결혼과 연애를 포기한 채 '혼자 살겠다'는 외침도 늘고 있다. 이에 본지는 30일 청년들의 건강한 연애와 결혼을 돕고 있는 '갓데이트' 문형욱 대표를 만나 기독 청년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문 대표는 청년들에게 '무작정 피하지만 말고 만나볼 것'을 권했다. 쏟아진 청년들의 고민에…"만나보고, 나도 좋은 사람이 돼야죠" 연애와 결혼에 대한 청년들의 고민은 다양했다. "이별이 두려워 시작도 못한다"는 고민부터 "연애는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나요?" "좋은 배우자를 어떻게 구별하나요?"까지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고민 많은 청년들에게 문형욱 대표는 "피하지만 말고 연애를 하라"면서 "데이트를 통해 시간을 두고 나와 상대방의 신앙관, 연애관, 결혼관에 대해 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람을 보여지는 모습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데이트를 통해 서로의 마음, 비전, 삶을 나누다 보면 쭉정이와 알곡이 구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랑은 시간이 걸리기에 배우자를 결정할 때는 충분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내가 더욱 가까워지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이성친구와 데이트를 통해 내 삶 속에도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신앙과 인격 중에 어떤 것이 우선이 돼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문 대표는 신앙이 우선순위라고 답했다. 그는 "신앙인이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의미한다"면서,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신앙인은 반드시 인격이 바탕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결혼 후 상대방의 치명적 단점이 보일 것 같아 걱정된다며, 좋은 배우자를 구별하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좋은 배우자가 될 사람을 구별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연애하다가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실망하거나 기뻐할 수 있다"면서 "이는 건강한 데이트를 위해 필요한 과정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한 이별이 두려워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는 "이별이 없다면 만남이 기쁨이 없을 것"이라며, 이별을 통해 축복된 만남을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혼을 꼭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도 이어졌다. 이에 문 대표는 "이 질문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시작한 질문인 것 같다. 사실 결혼이라는 삶의 모습 속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신앙의 선배들이 많이 없다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또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경제적 어려움이나 자유로움 추구와 같은 이유도 있겠지만, 어려워진 시대의 영향으로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라는 마음이나 '이 사람한테 거절 당하면 어떻게 하지'와 같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둘이 만나 '더' 영광 드리기 위해…"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표는 결혼을 위해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이 기독 청년들에게 요구된다고 전했다. 문 대표는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돕는 배필로서 서로를 격려했듯이, 하나님은 결혼으로 하나된 두 사람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길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결혼은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말할 만큼 중요합니다. 준비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하면 안됩니다. 액션도 필요하죠. 요즘에는 결혼에 대해 교육하고, 훈련하는 모임이나 만남을 도와주는 모임이 많습니다. 용기가 없어 모임에 참석을 못하는 분들이 많은데 용기를 내셔야 합니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마음보다는 '하나님이 함께 하기에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움직여 보세요." 문 대표는 한국교회의 도움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비방하거나 무심코 말로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성도들이 배려해야 한다"면서 "청년들의 이성교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검증된 단체와 연합해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했다. 기독교인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결혼관은 무엇일까. 이에 문 대표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함께 복음을 전한다면 말에 힘이 더해지고,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문 대표는 청년들이 결혼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없애고, 결혼을 통해가정의 신앙을 바로 세움으로써믿음의 다음 세대를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길 바란다고 조언했습니다. "결혼은 어떠한 유익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를 성장을 시켜주며 끌어주고 밀어주며, 하나님에게 '지금보다 더 영광 돌리기 위함'입니다."

한연희 기자2017-12-14

'일어나라 아이야/다시 한번 걸어라/ 뛰어라 젊음이여/ 꿈을 안고 뛰어라.' 1983년 대형 히트를 쳤던 '날개'(조운파 작사 작곡)를 부른 가수 허영란. 노래 발표 7개월만에 6개의 상을 휩쓸만큼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하나님께 시기를 못 박고 작정한기도였기에 뒤따르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미국으로 홀연 떠날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34년만에 리메이크 곡으로 전격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프로필에 추가된 것은 오로지 '목사'뿐이다. '날개' 부른 허영란...기억하시나요? "활동을 접고 나서는 아예 대중 가요계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다시 활동해서 인기를 누려라'라는 유횩이 정말 많았지만 내 마음은 요동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날개를 만들어주신 조운파 선생님의 작곡 40년 콘서트를 위해 귀국했는데 작곡가님은 선교사가 되어 있었다. 내게 '좋은 달란트를 주님을 위해 쓰라'고 하셨고 거기에서 마음이 움직여 리메이크를 결정하게 됐다." 노래를 만든 작곡가는 선교사, 노래를 부른 가수는 목사가 되어 정확히 33년만에 만났던 것이다. 허 목사는 몇년전 목사안수를 받고 미국에서 R7비전교회를 개척했다가 현재는 남가주 빛과소금교회에서 선교목사로 활동 중이다. 대중 가수는 내려놨지만 찬양집회 등 달란트를 이용한 신앙사역은 한국을 오가며 꾸준히 해왔다. 가수 활동을 접고 사업가 남편을 따라 곧바로 떠난 미국에서 엄마와 주부로 충실했다. 하지만 몸 속에 흐르는 음악인이란 DNA까지 완전히 묻고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찬양 사역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도 어찌 보면 끼를 '달란트'로 바꿔보겠다는 개인적 간구와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자그마치 30년 넘게이런 절제와 내려놓음을 통해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인기는 마약과 같은 것이라 한번 맛을 보면 잊지 못한다. 그 인기를 누렸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가정주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생은 늘 즐거울 수만은 없다. 고난과 불만족한 상황일 때면 화려한 가수 생활에 대한 유혹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지금은 유혹에 작은 흔들림도 없다." "인간 허영란으로만 있었다면 힘들었을 텐데 정말 하나님에 미쳐 살았다. 오직 하나님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신학생, 전도사, 선교사, 목사가 되어 있더라"(웃음) 허 목사는 자신의 가수생활에 날개를 달아준 '날개'를 현재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리메이크 작업 중이다. 유혹에 흔들려서가 아니다. 자신이 자처해서 현대 감각에 맞게 편곡했으며 내년 상반기 정도면 앨범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과거 활동시절의앨범 자켓 큰 인기 누린 '날개' 원래는 복음 성가 목적은 찬양사역. 재즈 블루스를 입힌 가스펠곡으로 재탄생시켜 대중과 성도들에게 동시에 어필한다는 계획이다. 가사가 그 만큼이 좋다는 점이 자신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날개'가 본래대로 복음성가로 쓰임받게 되길 바란다.모두 신앙적으로 희망을 주는 메시지다. 작곡가도 당시에 곤고한 상황에서 천사의 음성 같은 꿈을 꾸고 난 후 바로 써내려 간 게 이 곡이라고 했다. 이 곡은 실제로 자살을 결심한 사람도 돌려세울 만큼 힘이 있고 좋은 곡이다. 대중에게여전히 인기가 있는 이 곡이 신앙적으로 재해석돼 사람들에게 넓게 퍼진다면 그게 복음이고 선교란 생각이다." "조운파 선교사님의 '네 달란트를 하나님을 위해 쓰면 된다'란 조언을 듣고 리메이크를 결정짓는 순간. 내게 기쁨과 평안이 소름 끼칠 만큼 충만했다. 하나님이 또 다른 차원에서 일하시겠구나하는 확신과 기대감이 있다. 원곡 가수인 허영란이 부르는 가스펠 '날개'를 기대해 달라." 허 목사는 특히 날개가희망을 잃고 교회를 떠나거나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다시금일으켜주는 환한메시지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주저 앉았다면 다시 일어나 걷고 뛰고 날아오르길. 하나님을 떠났다면 결국 인생은 그분을 떠나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오길 말이다. 그 바램이새롭게 만들어질 '날개'를 통해 이뤄지길 소망해 본다.

김경한 기자2017-11-30

냉전시대, 러시아 '레닌의 도시' 레닌그라드는 공산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개방의 물결을 타고 이 도시는 옛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이는 '성 베드로의 도시'라는 뜻이다. 1993년, 최영모 선교사는 공산주의가 시작됐던 이 도시로 향했고 냉전의 사슬에 묶여 있던 러시아인들을 주님의 품으로 돌려세우고 있다. "왜 이제서야 왔습니까?" 러시아에서 복음을 전한 지 24년이 흐른 지금, 최 선교사는 150명의 성도가 모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장로교회를 시무하고 있다. 40여 개 교회도 개척해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도록 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정교를 믿는 러시아인이 73%에 이르지만, 이들 중 천국에 간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0.1%에 불과하다"고 말한다.그러다 보니 최 선교사는 이 곳에 복음 전도가 시급함을느끼고 있고,그럴수록 사역에 더욱 매달리고 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신학대학의 총장도 맡으며 기독교 이론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목회학 석사(M.Div)와 교역학 석사 과정을 갖춘 상트페테르부르크 신학대학의 총장을 맡으며 기독교 이론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최 선교사는 어느 날 한 시골 교회에 갔다가 사역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된 일이 있었다. 그가 설교를 마치자마자 노파 한 분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어떻게 이런 시골까지 오게 됐냐"고 물었다. 최 선교사가 러시아에 온 계기를 설명하니, 노파는 그제서야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외쳤다고 한다. 그가 의아해 하니까 그 할머니는 "내가 이제 생애 마지막을 볼 때다. 그런데 주님을 영접한 게 이렇게 좋을 수 없다. 왜 이제서야 왔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최 선교사는 이 일을 계기로 러시아 선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다. ▲현재 최영모 선교사가 시무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장로교회에는 150여 명의 러시아인과 고려인,한국인 교인이 출석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기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 체험해 2~3년 전, 최영모 선교사는 사역을 멈출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 당시 러시아 정부가 외국인 사립학교나 자선재단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는데, 이로 인해 선교사들의 건물이 하나둘 정부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최 선교사의 건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러시아 정부는 그의 선교센터를 고발했고 재판으로 이어졌다. 최 선교사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인해 흔들렸던 그는 기도를 하던 중 아내에게 "선교센터가 넘어가면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의 답변은 최 선교사의 마음을 돌려세웠다. "아내는 안 돌아가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교인들이 하루 아침에 예배당을 빼앗기고 목사까지 잃어버리면 어떻겠냐는 거였죠. 어떤 일이 발생하든 저들과 함께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니냐고 반문했어요." 최 선교사는 이게 하나님이 주시는 신호임을 깨닫고, 결과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기로 결심했다. 이 후론 기적의 연속이었다. 어떤 이들은 뇌물을 주면 쉽게 해결된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깨달은 최 선교사는 뇌물을 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비리 경찰관의 뇌물 스캔들이 터지면서 뇌물을 주고받은 이들이 대거 검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물론 최 선교사는 무사했다. 다음으론 선교센터 자체가 회복된 일이다. 원래 최 선교사와 같은 경우는 재단의 명의를 변경하면 재산상의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변경 기간이 워낙 길다 보니 재판 판결이 나기 전까지 바꾸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이 재판을 맡은 판사가 이상하리만치 재판을 길게 끌었다. 판사는 서류에서 단어 하나가 잘못돼도, 혹은 마침표가 하나 안 찍혀도 서류를 되돌리며 한 달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렇게 귀찮고 지루한 일을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1년이 지났고, 최 선교사는 지칠 대로 지쳤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 덕분에 충분한 시간을 벌어 재단 명칭을 변경할 수 있었다. 이 일을 두고 최 선교사는 '기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밝혔다. 재판 과정에서 여러고비를 넘기고 선교센터가 무사할 수 있었고, 20여 년을 바쳐온 선교를 계속 이어가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최 선교사는 신학대학 기숙사와 게스트룸 신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 대학에서 120km나 떨어진 볼호프라는 도시에서 온 13명의 신학생이 입학했기 때문이다. 우선 학교 측이 이들에게 교통비의 절반을 장학금 명목으로 주고 있지만, 워낙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이다 보니 미리 대비는 해놓고 있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공산주의 혁명가의 도시에서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 베드로의 도시로 이름을 되찾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침묵의 시간만큼 갈급했을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온 한 선교사의 열심과 섬김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와 같이 시원하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풍성히 나누는 그의 사역에 동참하는 손길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한혜인 기자2017-11-15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웹툰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기독교계에서도 복음의 메시지를 웹툰에 담아내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위성동 대표가 설립한 '디아툰'도 그 중 하나다. 웹툰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의와 평화, 기쁨'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위 대표를 직접 만났다. "웹툰 통해 독자들이 하나님 알아가길" '디아툰'은 봉사의 뜻을 가진 헬라어 '디아코니아(diaconia)'와 '웹툰(webtoon)'의 합성어로 만들어졌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신앙적 토대 위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취지로 설립된 디아툰은 작년 7월 기독교 만화서비스를 시작했다. 위 대표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독교 만화 작가를 비전으로 품었다. 그는 "내게 주어진 '그림'이란 달란트로 하나님을 전하겠다고 다짐했다"면서 "기독교문화학과 신학을 공부한 후, 기독교문화 사역에 대한 마음을 품고 디아툰을 설립하게 됐다"고 전했다. 위성동 대표를 비롯한 10여 명의 디아툰 작가는 기독교 콘텐츠를 통해 종교, 세대, 인종에 제한을 두지 않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에 예수님의 생애, 선교사의 삶, 영어로 배우는 성경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은 웹툰 연재에 힘쓰고 있다. 웹툰 <예수그리스도>는 요한복음을 토대로 예수님의 생애를 담았으며, <권력과 신앙>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핍박 받았던 기독교인의 삶을 담았다. <퍼가는 만화>는 선교사의 삶을 캐리커처를 통해 묘사했다. 생활에서 느낀 예수님을 전하는 <동행>, <주향>, 영어 어휘 웹툰 <베스트 보카>, 만화로 이해하는 신앙원리 <SOS 보람이를 구출하라!>, 성경 구절을 담은 <전하리 묵상>, <뻠쌤의 묵상방>도 연재 중이다. 모험 만화 <라하트하헤렙>, <진흙이의 모험>을 비롯해 작년 디아툰 공모전에서 입상한 <오예스>, <천로역정 일지>, <조금은 두근> 등도 만날 수 있다. 그는 "웹툰을 통해 크게 공의, 평화, 기쁨 이 세 가지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비록 지금은 미미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한다"며, "단순히 만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영화로 문화 콘텐츠 사역을 확장해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위 대표는 "문화 사역은 그에게 준 하나님의 사명이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일이기에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들에게 만화 잘 봤다는 연락을 받을 때 가장 기쁩니다. 중국에서도 기독교 만화 콘텐츠에 대해 묻는 연락이 오기도 했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기 때문에 사역의 특성상 재정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콘텐츠의 다양성도 고민이 필요하지만 이 길이 하나님이 디아툰에 원하는 길이기에 묵묵히 걸어갈 것입니다." 디아툰은 내년 1월부터 해외서비스도 실시할 예정이다. 중국 파견 선교사와 협력해 중국어 웹툰을 준비하고 있으며, 한국기독만화선교회와 함께 일본 만화 전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번역을 통해 영어, 중국어, 일어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뜻도 비췄다. 마지막으로 그는 "독자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전도하는 것이 디아툰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독자들이 복음에 대해 궁금해 했으면 좋겠다. 웹툰을 보고 독자가 살아가는 방향이나 목표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비전을 위해 한 걸음씩 내딛는 디아툰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홍의현 기자2017-10-17

지난 2015년 교단 분열을 겪었던 예장대신 수호 측. 건강한 중견 교단으로 이름을 떨쳤던 대신 수호 측 교단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내실을 다지는 작업에 한창이다. 지난 9월 새롭게 취임한 김동성 총회장은 교회 개척을 강조하며 공교회성 회복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김동성 신임 총회장을 직접 만나 한해 사역 계획을 들어봤다. '통합결의무효소송'의 건은 항소심에 집중하기로 작지만 강한 교단을 기치로 내걸고 한 해를 달려왔던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수호)교단. 지난 9월 취임한 김동성 총회장은 어려움을 겪었던 교단의 현실을 직시하고 마음을 모은 결과 지금은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성 총회장은 "대신-백석 통합과 관련해 우리 교단이 고난을 당했지만, 총회 산하 교회와 목회자들이 협력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며 "여러가지 현안의 문제는 있지만, 급하게 움직이지 않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겠다"고 전했다. 김 총회장은 총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교회 개척 운동'을 다시 한 번 확산시키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교회 개척이 뜸한 오늘날 한국교회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해 공교회성을 회복하겠다는 생각이다. 김 총회장은 "우리 교단 설립자인 김치선 목사님은 '이만 팔천 동네에 우물을 파라'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복음사역에 앞장섰다"며 "물론 예전과는 다르게 목회 현장이 많이 힘들어졌지만, 노회별로 진행되는 여러 지원사업을 확장시켜 나간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교단 명칭' 사용과 '통합결의무효소송'에 대해서는 내달 10일 처음 열리는 서울고등법원 재판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김 총회장은 "이번 재판의 쟁점은 정족수 문제인 만큼, 1심 승소 판결이 뒤집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내며 "항소심에서도 이길 수 있도록 교단 내 법률팀과 철저히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동성 총회장은 한 때 형제처럼 지냈던 교단 이탈자(대신 통합 측)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우리가 이탈자들을 받아주지 않기 위해 무척 애를 쓴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우리는 모든 문을 열어놓고 조건 없이 환영할 것이다. 정치적 문제에 대해 잘 모르고 가신 분들이 많은 데 꼭 돌아와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끝으로 김동성 총회장은 "대신교단이 한국교회 자생교단이자 건강한 중견교단으로 활약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무엇보다 교단의 성장과 더불어 한국교회의 공교회성을 회복하는 작업에 주력하겠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교회 선언문'과 '목회자 윤리강령'을 제작·배포해 지역사회에서 사랑 받고 존경 받는 목회자와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김 총회장은 또 "건강한 교단과의 협력과 교류를 적극 추진하면서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의 일치 운동을 앞장서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인경 기자2017-10-08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무작정 고아원에 가서 봉사를 하다가 미혼모들을 알게 된 이효천 선교사. 미성년자인 미혼모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이 선교사를 비롯해 중학교 친구 다섯 명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았고, 그렇게 비영리법인 한부모가정지원센터 위드맘이 시작됐다. 어느날, 공원 화장실에서 아기 셋과 함께 살고 있는 엄마가 있다며 위드맘으로 연락이 왔다. 이효천 선교사가 즉시 멤버들과 찾아가보니 정말로 한 어린 엄마가 공원 화장실에 아기들 옷을 펼쳐놓고 지내고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두 아이를 낳고 셋째를 임신한 이 여성과 남편 앞에 어릴 때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가 간암말기 환자가 돼 나타났다고 해요. 이런 현실이 부담스러웠는지 셋째의 출산 직후 남편은 집안에 있는 돈을 다 들고 도망을 갔고요. 아버지 병간호도 하면서 아이들도 건사해야 했기에 이 어린 엄마는 병원 앞 공원 화장실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거에요." 위드맘의 도움으로 그녀는 아버지의 장례까지 무사히 치렀고, 이효천 선교사의 전도로 세 아이와 함께 교회에 잘 다니고 있다. 이 선교사는 '위드맘'을 통해 24세 미만의 청소년미혼모들에게 긴급거주지를 제공하고 자립을 돕고 있다. 비영리법인으로서 특별히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미혼모들 곁에 함께 있는 것이다. "저희가 돕는 미혼모들은 주로 혼인신고가 된 상태로 미혼모가 된 경우, 가령 부양자 몇 명 이상이면 군 면제가 되니까 남자가 일부러 혼인신고를 하고 아이들을 낳은 뒤 도망간 경우 등이에요. 이런 경우 국가가 도움을 주기 힘들기 때문에 저희가 이혼재판, 이혼무효소송과 같은 법적인 도움을 주고 미혼모들이 찜질방, 모텔을 전전하지 않도록 거주지 마련과 자립을 돕고 있어요." 지난해에만 위드맘에서 후원물품을 제공받은 미혼모들이 700여 명이고 현재 정기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미혼모들은 약 300명 정도다. 미혼모들은 병원비, 분유값 등 돈이 들어갈 데가 많다. 하지만 미성년자인데다가 아기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조차 구하기 어렵다. 이에 위드맘이 직접 나서게 됐다. "미혼모들이 그래도 손쉽게 딸 수 있는 자격증이 바리스타 자격증이에요. 그래서 위드맘에서 '프롬맘'이라는 카페를 열어 미혼모들이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프롬맘 카페에서 일하는 미혼모들의 시급은 1만원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기초생활수급비가 줄어들게 되는데, 그렇다해도 일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심어주려고 내린 위드맘의 결단이다. 그에 반해 프롬맘 카페에서 상주하며 일하는 이 선교사 부부는 무급이다. "들어오는 후원금과 수익은 100% 미혼모들을 위해 사용하고 저희들은 자비량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강의 들어오는 것이 유일한 제 수입원이죠." 10년 가까이 미혼모들을 돌보다 보니 열매도 맺히고 있다. 이른 나이에 엄마가 돼 학교를 중퇴한 미혼모들이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자립에 성공한 미혼모들이 늘면서 자발적으로 나서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이 선교사는 "자립에 성공한 미혼모들이 자신들의 재정을 모아 베이비박스 후원, 위안부 할머니들 돕기 등을 매달 하고 있다"며 "손가락질 당하던 미혼모들이 다른 이웃들을 살리고 있는 이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미혼모들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내가 사랑하는 딸들이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진다는 이 선교사 부부. 이 선교사는 "사람들이 미혼모들을 비행청소년이라는 따가운 시선이 아닌 '생명윤리를 지킨 용감하고 씩씩한 엄마'로 바라봐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김준수 기자2017-09-28

최근 달걀과 생리대에서 인체에 해로운 화약성분을 사용한 것이 밝혀져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인체에 무해한 천연성분 제품들이 주목 받고 있다. 라이프온에서 생산하는 엑소덴 치약도 그 중 하나다. 건강한 제품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라이프온 이우승 회장을 만났다. "이윤보단 하나님 영광 위해 살고싶어" 20년 전, 잇몸 속 세균으로 인해 발병한 심장질환으로 일주일이 넘게 혼수상태에 빠졌던 라이프온 이우승 회장. 심장 이식 수술을 한 후에야 기적적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고 고백하는 이 회장은 치주질환이 전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겪고 난 후, 기능성 천연치약인 엑소덴 치약을 개발했다. 치아건강 예방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개발한 엑소덴 치약은 파라벤, 트리클로산, 합성계면활성제 등과 같은 화학성분을 첨가하지 않고 천연재료를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국내에선 치과의사가 추천하는 치약으로 소문이 나 미국과 중국, 필리핀 등에 수출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조선대학교 치과병원, 대한예방치과학회 등과 협약을 맺어 제품의 기능 향상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엑소덴 치약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도와주셨죠. 양심적으로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 인물들에게서 경영의 지혜를 찾는다는 이 회장은, 매일 잠언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제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객을 내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할 때라야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아침마다 솔로몬의 지혜와 다윗의 겸손함, 모세의 온유함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라이프온은 작은 회사지만, 나눔을 실천하는 일에도 앞장선다. 제3세계 지역으로 떠나는 의료봉사팀에게 정기적으로 라이프온 제품을 후원하고 있다. 또 서울의료봉사재단과 제휴를 맺고 저소득층의 구강건강 예방과 치주질환 수술을 지원 중이다. 이윤을 추구하기 보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라이프온 이우승 회장. 이 회장은 앞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고 싶단 바람을 전했다. 이 회장은 "지금도 전세계 성인인구의 절반 정도가 치주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며 "라이프온은 잇몸질환 퇴치운동을 펼치는 가운데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의현 기자2017-09-27

한국교회 주요 장로교단 중 가장 먼저 정기총회를 치른 예장대신 교단. 올해 대신교단은 '구 대신과 구 백석'의 교단 통합 이후 처음으로 구 대신교단 출신 목회자를 총회장으로 추대해 눈길을 끌었다. 새롭게 취임한 유충국 신임 총회장을 만나 주요 쟁점에 대한 입장과 향후 사역 계획을 들어봤다. '대신' 명칭 문제…항소심 결과에 관심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정기총회를 마친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신임 총회장 유충국 목사, 이하 대신)교단. 새롭게 취임한 유충국 신임 총회장은 구 대신 출신 총회장으로서 소속된 교회와 목회자들의 화합을 첫 번째 목표 사역으로 꼽았다. 구 백석 출신 총회장이었던 장종현 목사와 이종승 목사가 재임기간 내내 구 대신 측 목회자들의 입장을 대변해준 만큼, 이번에는 반대로 구 백석 측 목회자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겠다는 방침이다. 유충국 총회장은 "우리는 같은 신학의 뿌리를 갖고 있는 한 가족"이라며 "한해 동안 아름답게 교단을 섬겨 행복한 목회를 할 수 있는 교단을 만들고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명문 교단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신의 가장 큰 쟁점은 '대신'이라는 교단의 명칭을 사용하는 문제다. 현재 대신은 수호 측에서 제기한 '명칭 관련 소송 항소심' 결과를 지켜보고 향후 추이에 따라 입장을 정리하기로 총회 결의를 마쳤다. 이번 총회에서는 구 대신 출신 목회자들과 구 백석 출신 목회자들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기도 했지만, 증경총회장단의 권면으로 일단락 된 바 있다. 유충국 총회장은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지금 대신 명칭을 포기한다면 여러가지 파생되는 문제점들이 많다"며 "다행히 항소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신 명칭을 고수하기로 한 만큼, 최대한 잡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소통하며 일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은 이번 총회에서 새롭게 출범한 연합기관 '한국기독교연합'에 가입하기로 결의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보수 연합기관이 하나돼 사회적 현안에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 내년부터 시행되는 종교인 과세 문제에 대해서는 소속 교회와 목회자의 '자발적 납세'를 기본으로 결의했지만, 앞으로 세무당국에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특히 교계 안팎의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성경에서 분명히 금하는 죄악이면서도 동성애 당사자는 물론 일반인들과 국가 기반을 흔드는 동성애를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퀴어신학을 주창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임보라 목사에 대해서 대신은 '1년간 연구'한 뒤 다음번 총회에서 보고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유충국 총회장은 이 문제에 대해 "동성애는 그들 본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무엇보다 퀴어신학과 임보라 목사는 일정 부분 이단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연구하기로 한 이번 1년간은 교단과 소속 목회자들이 교류하지 못하도록 결의했다"고 강조했다. 대신은 내부적으로 새 총회회관 입주를 앞두고 있다. 이를 통해 급격한 성장을 이룬 교단이 외적으로 뭉쳐 하나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와 함께 8천 여 교회로 성장한 교단 위상에 걸맞은 '연금제도'를 마련해 소속 교회들이 오로지 복음 전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유충국 총회장은 "총회회관은 오는 11월 입주를 눈앞에 두고 있고, 연금제도 마련은 본인(유충국 총회장)의 교단활동 판공비를 내 놓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또 교단 소속 대형교회들이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를 통해 명실상부 한국교회 대표적 장로교단이 되길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총회장직을 수행하겠다"고 전했다.

박은정 기자2017-09-11

한 교회 지붕 아래, 두 개의 교회가 예배 드리는 곳이 있다. 바로 벧엘성서침례교회와 요한서울교회의 이야기. 서로 다른 교단, 다른 신학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지난 주부터 한 예배당에서 오전, 오후로 나뉘어 두 개의 교회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두 교회가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하는 그 첫 걸음에, 직접 다녀왔다. "목사님 우리 교회로 오세요"…지역교회의 손길로 일어나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벧엘성서침례교회(담임 현상웅 목사)와 요한서울교회(담임 백상욱 목사)의 '동행'은, 요한서울교회 예배당 신축 고민으로부터시작됐다. 예배당 신축을 앞둔 요한서울교회는 신축공사가 진행될 약 1년여 기간 동안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릴 공간을 찾고 있었다. 인근 공립•사립 학교 강당은 물론 체육관까지 알아봤지만 모두 "종교기관에 대여해주기가 쉽지 않다"란 답변만 돌아왔다. 교회 건물은 다른 곳에 세우는 것도 고민 했지만, 백 목사는 몇 십년 동안 기도의 재단을 쌓은 교회터를 쉽게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고민을 하던 때, 요한서울교회와 불과 500m도 안 되는 곳에 위치한 벧엘성서침례교회가 손을 내밀었다. 지역 목회자들과활동 중인 '좋은동네 만들기 이웃교회 연합회'에서 함께 사역하고 있는벧엘성서침례교회 현상웅 목사가, 이 사연을 듣고 선뜻 "목사님, 우리교회로 오세요"라고 말한 것. "예배 장소를 두고 여러 가지 방법을 구하던 중, 연합회에 소속된 목회자들에게 고민을 나눴어요.그랬더니 현상웅 목사가 흔쾌히 "우리교회로 오라"고 말해줬어요.본인들이 오전에 예배당을 사용하고, 오후에는 우리교회 성도들이 예배 드리라고 해준 거죠."(요한서울교회 백상욱 목사) "이 교회에 부임한 지 2년 정도 됐어요. 처음 교회에 왔을 때부터 지역을 섬기는 교회를 만들고 싶다란 마음을늘 품고 있었어요. 그래서 교회 예배당을 작은교회에 빌려주는 건 어떨까 고민하던 찰나, 요한서울교회의 어려움을 듣게 됐죠.요한서울교회의 고민이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풀어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벧엘성서침례교회 현상웅 목사) 하지만 한 교회를 두 개의 교회가 함께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목회자들끼리의 뜻이 합하더라도 성도들의 입장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목사가 결정한다고 되는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평소 설교를 통해 지역사회와 어떻게 연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성도들과 많이 나눴기 때문에, 다행히 성도들도 한 번 동참해보겠다고 결심해줬어요.불편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서로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 섬김의 정신을 배우는 통로가 될 것이라 기대해요."(현상웅 목사) "교회 공간을 우리가 오로지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도들의 걱정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요. 교회학교도 모두 운영할 수 없어 현재 유치부는 성도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에서 드려지고, 영아부는 없어졌죠. 하지만 성도들도 벧엘성서침례교회의 섬김에 감사하며 모든 불편을 서로 감안하고 예배드리기로 결정했어요."백상욱 목사) ▲벧엘성서침례교회와 요한서울교회가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한다.ⓒ데일리굿뉴스 "1년 여 동안의 아름다운 동행, 기대돼요" 사실 교회 성도는 요한서울교회가 더 많은 상황. 때문에 벧엘성서침례교회 예배당이 요한서울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수용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요한서울교회 성도들은 예배당에 간이 의자를 설치하는 등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다. 요한서울교회 김신애 집사는 "벧엘성서침례교회 성도들이 예배당을 개방해주고 우리 교인들에게 마음을 열어줘 감사하다"며 "이 기간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지만 지역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벧엘성서침례교회 오한나 청년은 “목사님께서 ‘그리스도인은 더불어살아가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더불어 사는삶을 배울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요한서울교회는 벧엘성서침례교회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벧엘성서침례교회 1층 교육관을 리모델링 해주는 것은 물론, 공과금도 함께 부담하기로 했다. 요한서울교회가 진행 중이던 대안학교 프로그램 '요한기독학교'는 벧엘성서침례교회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두 교회는 현재 어떻게 하면 지역과 연합을 이뤄나갈 지 함께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는 주변 교회들과 함께 김장 담그기, 연주회 개최하기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펼칠 예정이다. 이 같은 요한서울교회와 벧엘성서침례교회의 '아름다운 동행'은 개교회중심인 한국교회에 도전을 주고 있는 대목이다. 현상웅 목사는 "우리가 연합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응원 해주고 있어 감사하다"며 "다른 교회들도 각자 갖고 있는 달란트를 통해 지역과 함께선을 이뤄나가길 소망한다"고전했다. 이어 백상욱 목사는 "한국교회 안에서 한 지붕 아래 두 교회가 경쟁하지 않고 동역한다는 것에 기대가 되고 설렌다"며 "우리의 모습이 한국교회에 선한 영향력으로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준수 기자2017-08-25

교육 전도사 사역이 끝나기 무섭게 첫 선교지였던 중국 광동성으로 떠난 이국찬 선교사. 15년째 중국과 태국에서 선교사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진정성 있는 사역을 위해 늘 기도한다는 이 선교사는 매일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고 싶단 소망을 전했다. "현지 마을 찾아 다니며 사람들 도와요" 태국 치앙마이드림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국찬 선교사는 올해로 15년째 해외에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한인교회이지만 태국 현지 교단 소속돼 있어 실질적으론 태국교회다. 불우한 환경에 처한 태국 아이들이나 신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거나 마을을 찾아 다니며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살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곳과 연결해주는 사역을 펼치고 있다. 15년 동안 가족들과 마음 편히 휴가 한 번 가지 못할 정도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처음부터 목회나 선교사에 대한 꿈은 없었다고 한다. 목회자였던 자신의 아버지 역시 좋은 목사가 되기보다 교회를 섬기는 좋은 장로가 되라고 권했었다고. 하지만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대만으로 유학을 갔던 것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중국어 공부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한인교회를 가지 않고 현지 교회를 다녔어요. 마침 올네이션스 경배와찬양 팀이 인도하는 집회를 참석했는데, 거기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됐죠. 그날 남은 인생을 중국인들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이 선교사는 대학 졸업 후, 1994년 공채 35기로 롯데그룹에 입사했다. 중국어를 전공했던 것이 결정적인 장점으로 크게 작용했다. 롯데건설에서 근무하며 베트남 호치민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1년 동안 주재원 생활도 했다. 하지만 1997년 IMF 위기는 롯데그룹도 이겨내지 못했다. 이듬해 퇴사를 결심한 이 선교사는, 본격적으로 선교사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2000년에 장로회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신대원을 졸업한 후에는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가납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3년을 섬긴 뒤, 지체 없이 첫 선교지였던 중국으로 떠났다. "이상하게도 국내에서의 목회는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연말쯤에 전도사를 사임하고 그 다음해 1월에 중국으로 갔던걸 보면 말이죠. 익숙하고 안정적인 곳을 떠난다는 불안감보다는 중국에서 저를 인도할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중국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이 선교사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인교회인 심천사랑의교회에서 8년을 섬기고, 사역지를 강소성 소주로 옮겨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실천이 가능한 효과적인 전도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었다고 이 선교사는 회상했다. "태국으로 사역지를 옮긴 이유 중에 하나도 중국인들을 선교사로 세우기 위해서였어요. 현재는 중단된 상태지만, 태국에 온지 3년 동안은 이곳에서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내년부터는 중국 목회자들의 신학 연수를 위해 한국으로 보내는 사역을 계획하고 있어요." 이 선교사는 제대로 된 양육을 받고 있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고 있는 현지 목회자의 사역을 지원하고 있다. 전체 아이들과 봉사자들의 식비를 후원한다. 태국 멧사이 지역에 있는 베델신학교 학생 37명에게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또 올해 처음으로 치앙마이에 있는 한인교회들과 연합해 태국 코스타를 개최했다. 지난 2월에는 포항대도교회 장년부 단기선교팀과 함께 건기 철이 되면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카족 마을을 찾아 새로운 수도관으로 교체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이제는 풍족하게 물을 받아놓고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환경이 개선돼 이웃들과 싸울 일도 사라져버렸다. 선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역의 지속성과 현지인을 향한 진정성이라고 말하는 이국찬 선교사는 앞으로도 태국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 선교사는 "예수님은 이 마을, 저 마을 다니시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고, 무슨 필요가 있는지 살펴보셨다"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사역을 잘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은정 기자2017-08-25

한국전쟁 당시 '내 잔이 넘치나이다'란 마지막 고백을 남기고 포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청년 맹의순. 최근 제자들이 기증한 육필일기가 책으로 출간되면서 맹의순의 삶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죽기까지 복음전파와 이웃사랑을 멈추지 않았던 맹의순의 삶을 되돌아보자. 억울하게 갇혔지만 '복음전파 위해' 석방 거부 부유한 장로의 아들로 태어난 맹의순. 조선신학교를 다니며 남대문교회 중등부 교사로 섬기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겨우 피난길에 올랐지만, 그는 미군의 오해로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억류됐다. 억울할 법도 하지만 맹의순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곳 만큼 전도하기 좋은 곳은 없다'고 말하며 포로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수용소 당국은 포로들에게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했고, 맹의순은 당국의 협조를 받아 포로들에게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바로 포로수용소의 '광야교회'가 세워지게 된 시초가 됐다. 맹의순은 늘 낮은 자세로 전도활동을 펼쳤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낮 예배와 성경공부 등을 실시하며 밤에는 투병 중인 중공군 포로들을 간호했다. 맹의순은 영어 통역이 가능해 미국인 의사들이 환자를 진찰할 때 그 옆에서 통역을 담당했다. 이를 기회로 삼아, 매일 새벽 1~2시가 되면 병동을 찾아 포로들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찬양을 불러주곤 했다. 이런 가운데 석방될 기회가 찾아왔지만, 그는 자신의 사명을 수용소에서 끝까지 감당하겠다며 석방마저 거부했다. 하지만 과로한 피로상태와 부족한 영양실조가 계속 그를 힘들게 했다. 밤낮없이 포로들의 곁을 지켰던 맹의순은 결국 석방을 나흘 앞둔 채 죽음을 맞이했다. 맹의순의 모습을 봐 온 중공군 포로들은 참된 천사를 보았다고 고백한다. "선생은 하늘에서 보낸 천사였습니다. 마지막 환자를 다 씻기고 일어난 선생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시편 23편을 우리말로 더듬더듬 읽어주셨습니다. 다 봉독하신 뒤 높은 곳을 바라보시며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당시 중공군 포로 환자가 맹의순 죽음을 추모하며 쓴 글- 맹의순이 마지막으로 고백했던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결국 그의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말았다. 남대문교회 손윤탁 목사는 그의 고백에, "병마와 싸우면서도 천국을 향한 맹의순의 열정, 그리고 죽기 전까지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삶과 신앙을 일치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했던 그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제자들의 도움으로 <십자가의 길> 출간 27살이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맹의순에 대한 자료는 많이 ▲<십자가의 길>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맹의순과 함께 포로수용소에서 교회를 섬기던이원식 목사(서울 국일교회 원로)가 남대문교회 역사위원회에 맹의순의 육필일기 원본을 기증하며 빛을 보게 됐다. 영어와 일본어, 한문이 섞인 원고를 남대문교회 손호인 목사가 한글로 번역하고 신재의 원로장로가 일기와 교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맹의순의 삶을 되살려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육필일기를 묶은 <십자가의 길>을 펴냈다. 맹의순의 삶은 비록 짧았지만, 그의 신앙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교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말씀과 삶의 일치를 중요시했던 루터의 종교개혁. 이 가치를 맹의순 선생은 죽기 직전까지 실천했던 인물입니다. 수용소에서 석방될 기회마저 버리고 전도에 힘썼던 그의 삶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제사장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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