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인 기자2019-12-02

다음세대를 중심으로 '웹툰'과 같은 만화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면서 복음의 메시지를 재미있게 풀어내려는 크리스천들의 다양한 시도도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30년 전부터 만화로 복음을 전해온 목회자가 있어 눈길을 끈다. 복음의 진수를 만화로 유쾌하게 풀어낸 조대현 목사를 만나봤다. <울퉁불퉁 삼총사> 출판 30주년…"만화, 전도 도구로" 말썽만 피우던 어린이들이 교회에서 변화되는 과정을 다양한 에피소드로 풀어낸 조인교회 조대현 목사의 만화책 <울퉁불퉁 삼총사>가 출판 30주년을 맞았다. 책은 용서와 겸손과 같은 윤리적인 덕목과 기독교 진리를 어린이 주인공들의 일상생활을 통해 유쾌하고 따뜻하게 담아냈단 평가를 받으며, 30만부 이상 판매됐다. 조인교회 조대현 목사는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은 주일학교에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라며 "책을 통해 복음을 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만화의 특징인 재미를 만화 안에 좀 더 많이 담기 위해 재미 90%, 복음 10%를 담는다는 목표가 있다"며 "재미있는 내용 속에 복음을 담아야 현대인들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해 가능하면 재미있는 책을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조대현 목사는 만화사역 30주년을 맞아<손바닥 전도만화>를 새롭게 출간했다.(사진제공=조대현 목사) 조대현 목사는 1989년 <울퉁불퉁 삼총사>를 시작으로 <만화로 보는 한국교회 부흥 이야기>, <만화 천로역정>, <어서와 교회는 처음이지?> 등 40여 편의 만화를 통해 복음전파에 앞장서고 있다. 새롭게 출간된 <손바닥 전도만화>도 관심을 끈다. 책은 영유아를 위해 만든 '하나님은 너를 이만큼 사랑해'부터 어르신을 위한 큰 글자의 '엄마 손은 약손 아기배는 똥배'까지 연령별로 나눠져 있으며 총 10권으로 구성됐다. 교회를 한번도 오지 않은 불신자들, 또 교회를 오긴 왔지만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초신자들이 대상이다. 조대현 목사는 "만화는 다음세대와 비기독교인들에게 효과적이고 강력한 전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며 "전도만화를 통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복음을 재미있게 접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울러"앞으로도 만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이어갈 것"이라며 "전국을 넘어 세계로 사역을 확장하고 싶다"는 비전을 밝혔다.

김신규 기자2019-12-01

기능성 탈모샴푸를 개발해 보급하고 있는 JU패밀리 김판수 대표. 그의 사업의 목표는 비즈니스 선교에 있다.세계에 흩어진 선교사와 그 가정을 도와 하나님 나라 확장에 한 역할을 감당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원대한 비전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의 인도로 집 근처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아니었기에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요. 하지만 1996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던 당시하고 있던 카 오디오점 사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됐지요.” 김 대표는 1996년 카 오디오 사업이 불황을 겪게 되면서 밤잠을 설칠 정도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을 설친 그가 새벽에 무작정 집을 나와 돌아다니다 집 인근의 개척교회에 들어갔다. 당시 이 교회 목회자는 동네에 전도하던 중 김 대표의 가게에 들러 전도했던 인연이 있었다. 마침 새벽기도 중이었던 교회 목사부부가 기도하던 것을 듣게 됐는데 자신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던 목사의 기도에 그는 하나님 앞에 완전히 엎드리게 됐고, 하나님을 온전히 자신의 주로 고백하게 됐다. 이후 서울 송파구의 제자들교회를 출석하게 된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어려움을 겪던 카 오디오사업 대신 우유대리점을 하게 됐다. 자신의 집에 심방을 온 목사에게 우유대리점을 하고 싶다며 기도를 요청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보증금마저 까먹을 정도로 골치를 썩였던 카 오디오점을 청산하고 계약금 200만원으로 강남 압구정에 우유대리점을 열게 된 것이다. “우유대리점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동안의 손해를 회복할 정도로 잘 됐습니다. 또 아내도 금융회사에 취업하게 되면서 물질적 축복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우유대리점을 한다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불혹의 나이에 새로운 출발을 위해 2달여 동안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그 응답이 생뚱맞은 것이어서 무슨 의미인가를 묵상하던 중 문득 골프가 떠올라 무작정 골프에 입문하기로 했다. 그렇게 자신의 진로를 정하자 곧 ‘주신 것도 하나님, 취하신 것도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믿고 2004년 잘 나가던 우유대리점을 정리한 750만 원을 하나님 앞에 무기명으로 바쳤다. 자칫 생활의 어려움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하나님의 도우심만 믿기로 했다. 반대할 것 같은 아내는 오히려 남편의 결정을 격려하며 힘을 북돋워줬다. 그렇게 그는 골프를 배우기 위해 태국으로 갔다. 이것이 계기가 돼 김 대표는 태국 선교사와 만나게 됐다. ▲김판수 대표가 태국 선교사와 함께 세운 촌부리한인교회 예배 모습. ⓒ데일리굿뉴스 2005년 할렐루야 축구단 출신의 오필환 선교사를 알게 됐고, 함께 태국 촌부리에 촌부리한인교회를 세웠다. 당시 김 대표는 교회에 필요한 시설물을 제공하기로 했다. “당시 앞 뒤 생각할 것 없이 현금카드로 300만 원을 빌렸고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까지 요청해 촌부리한인교회를 설립하게 됐지요. 설립 두 달 만에 70여명의 성도들이 늘었는데 전봇대에 교회를 알리는 전도지를 붙이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요.” 이후 태국에서 귀국한 김 대표는 성남시 분당에 골프연습장을 개설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6개월 만에 새로운 사업구상을 고민했다. 50~60대 시니어도 할 수 있는 전문 직업을 도전하기로 했다. 바로 현재 그가 하고 있는 온라인 사업이다. 2015년 온라인사업에 도전했을 때는 여러 차례 거듭되는 실패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 지금의 기능성 탈모샴푸 ‘닥터 라파’다. 닥터 라파를 온라인으로 유통하면서 관련 업계에서 점점 두각을 나타냈다. 업계에서 그의 이름을 알린 소위 ‘대박상품’인 닥터 라파 샴푸의 라파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여호와 라파‘에서 따왔다. 솔레오 화장품 회사의 연구실과 협력해 제품을 공급받아 온라인으로 보급하는 이 샴푸는 지난 7~8월에 쿠팡에서 매출 1~3위를 휩쓸었다. 제품의 명성과 함께 많은 수익을 창출했다. 그는 이 수익을 선교사역에 기꺼이 사용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길을 열어주시고 유능한 관계자들을 만나게 하셨지요. 이것은 저의 수익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닥터 라파의 성공으로 온라인 사업은 JU패밀리(Jesus Family)라는 사명(社名)으로 훨씬 체계를 갖추기시작했습니다. 작년 9월에는 17일간 러시아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이 단기선교를 경험한 후 선교현장의 어려움을 알게 됐고, 비즈니스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김 대표는 이후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 선교사 후원과 함께 C국 헌신자들이 국내에 와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을 돕고 있다. 그는 앞으로 세계에 흩어져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그 가정을 돕는 사역에 심혈을 기울일 계획이다. “선교사들 가운데는 선교사역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와 자괴감 등으로 심지어 자살 충동을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10여 년 전부터 선교사 5가정을 지원하고 있으며, 교회의 공동체에서 협력선교사 45개 팀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사업비전으로는 중국과 인도와 동남아에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또 오프라인으로도 사업 확장을 꿈꾸고 있다. 이 모든 계획의 바탕에는 하나님의 복음이 온 세계에 퍼지는 선교사역을 돕기 위함이다.

김신규 기자2019-11-05

40여년의 목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은퇴 후 교회가 없는 경북 영천시 안천리에 귀촌한 한 원로 목회자가 마을 꽃길을 조성해 지역을 아름다운 꽃동산으로 변화시켜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예장 통합측 함해노회 소속의 대구 창신교회 원로목사인 조규화 목사(81)다. 1938년 경북 청송군 안덕면에서 태어난 조 목사의 모 교회는 복동교회로 그의조부인 조병국 영수(현 장로 직분 해당)가 설립한 교회다. ▲조규화 원로목사 부부ⓒ데일리굿뉴스 일찍부터 부친의 영향으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았던 그는 미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였던 구의령 선교사의 제자로 신학공부를 하게 됐으며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이후 영남 신학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거쳐 통합측 경안노회 100주년이 되던 1975년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는 미국 인터내셔널 신학대학교에서 명예 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백자·창락·탑리제일·대구효목제일·대구창신교회 등을 섬겼다. 지난 2000년 40여년의 목회사역을 내려놓은 조 목사는 고향과 가까운 영천 안천리마을로 이사했다. 비록 공식적인 목회일선에서 은퇴한 그이지만 완전히 사역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매 주일마다 영남지역의 은퇴 목회자들이 예배드리는 영남은목교회를 섬기고 있다. 이 교회는 은퇴목회자 23가정이 지난 2007년 12월 2일에 설립한 교회다. 교파를 초월한 은퇴목회자들이 모여 나라와 지역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다. 조 목사는 이 교회 설립을 주도했으며 설립이후부터 지금까지 설교자로 섬기고 있다. ▲조 목사의 영향을받은 마을 주민들이 꽃길 조성에 함께 동참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조 목사가 꽃길을 만든 것은 지난 2005년부터다. 농촌마을을 꽃길로 조성해 도로변을 아름답게 만들고, 영천 국도변 350m를 개간해 마을꽃동산과 꽃길을 조성함으로, 살고 있는 마을을 아름다운 꽃동산으로 변신시켰다. 조 목사는 “비록 지금은 목회 일선에서 은퇴했지만 농촌 목회 사역한다는 마음에서 마을 전체를 가꿔 주민들은 물론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따스함과 힐링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며 꽃길 조성의 동기를 설명했다. 또 지난해에는 마을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위해 육각형정자 두 곳을 건축하고 마을 주민들과 소통에 주력했다. 이를 통해 주민들에게 간접적인 전도의 기회를 삼고 있다. 이처럼 피폐된 농촌마을을 꽃동산으로 변신시킴으로, 각박한 민심을 정화시키고 복음전도에 주력한 결과, 마을 주민들이 감동을 받아 주민 일동이름으로 조 목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또 영천시청 공보실 홈페이지에 꽃길 사진들이 게재되는가하면, 영천 인터넷 방송과 경북도민신문 등 언론에서도 마을이 화제가 됐다. 때문에 이전보다 안천리를 찾는 발길들도 늘고 있다. 조규화 목사는 “농촌마을을 목회하는 마음으로 섬긴 결과 온 마을이 아름다운 꽃동산이 변신해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함께 수고한 주민들에게 감사드리며, 이를 통해 더욱 주님을 알아가는 주민들이 늘어나도록 기도하고 전도에 주력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그의 아들인 조용득 목사는 태국에서 소파왕으로 불릴 만큼 사업가로 성공했으나, 사업가로서의 사명 대신 선교사의 사명 감당을 위해 미얀마 선교사로 파송받아 사역하고 있다.

천보라 기자2019-11-15

일명 'SKY' 의대 출신의 세브란스 병원 전공의 및 전임의. 많은 사람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이다. 그러나 의사라는 타이틀과 안정된 삶을 내려놓고 아프리카 오지로 떠난 이가 있다.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그중에서도 세계 최빈국 마다가스카르를 '생명의 땅'으로 일구는 이재훈 의료선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길 위에서 보낸 지 어느덧 14년, 지난해에는 오지 이동 진료 100회를 맞기도 했다. 이제는 '부시맨 닥터', '길 위의 닥터'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재훈 선교사를 서울 강남 소망교회에서 만났다. 하나님과의 약속에서 시작된 의료선교 이재훈 의료선교사(52)가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된 건 네 살 무렵이다. 동네 형을 따라 교회에 갔던 게 계기가 돼 집안에서 유일하게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이 선교사였다. 하루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라는 말씀을 읽고 가족을 전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 전도 대상은 제일 만만한 남동생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동생이 '형 같은 사람이 교회 다니면 나는 평생 죽어도 안 다녀'라는 거예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과거 동생에게 상처 준 일들이 떠올랐어요. 무엇보다 이런 저로 인해 우리 집이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제 믿음이 가짜였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때부터였다. 믿음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다. 당시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새벽기도를 비롯해 산기도, 철야기도 등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매일 성경을 읽고 십일조도 잊지 않았다. 심지어 부흥회를 다니며 안수기도를 받기도 했다. 절망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노력에도 아무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음속에 여전히 자리 잡은 죄에 대한 갈등이 이 선교사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대로 가짜로 살 수는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최후의 방법밖에 없었다. 바로 하나님과의 일종의 '딜'이었다.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떠올랐어요.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라고 하면 '식인종의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어린 나이에 아프리카 선교사 정도는 돼야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인정받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그래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기로 했어요." 잘하면 될 것 같다는 소망이 생겼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선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했다. 학생 신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공부였고, 당시 성적이 우수하면 법대와 의대 진학이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렇게 이 선교사는 아프리카 의료선교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 선교사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위장, 간, 대장 갑상선, 소아외과 등 여러 분야의 전임과정을 거쳤다. 앞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안정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선교사는 세상의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아프리카 오지로 향했다. "좋은 환경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어요. 그런데 사실 큰 희생을 한 것도, 큰 걸 포기한 것도 아니에요. 한국에서의 의사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리 편안한 삶은 아니 거든요. 더군다나 제가 아프리카에 가기로 한 건 제 구원에 대한 하나님과의 오랜 약속이었어요.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죠." ▲이재훈 의료선교사가 마다가스카르 북서부 베살람피시의 오지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사진제공=주마다가스카르 한국대사관) 절망에서 희망으로…한 사람이 바꾼 미래 아프리카 남동쪽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마다가스카르. 아프리카 의료선교사가 되기 위해 영국에서 신학을 하던 이재훈·박재연 선교사 부부에게 마다가스카르를 향한 부르심은 강렬했다. 하나님의 여러 사인과 인도하심 속에 이 선교사 부부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마다가스카르를 품게 됐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토록 바라던 선교지에 왔는데 이 선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법적 라이센스가 없어 환자를 볼 수 없었고, 불어를 못 한다는 이유로 강의를 나가는 것조차 허락이 안 됐다. "라이센스를 받는 과정부터 외국인 의사가 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갔어요.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법조문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계속 뒤집어지는 과정을 반복했죠. 덕분에 이제는 외국인 의사도 마다가스카르에서 임시면허증을 받아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세팅이 돼 있어요." 시스템이 구축됐지만 문제는 첩첩산중이었다. 턱없이 부족한 의료진과 병원, 열악한 의료 환경 등으로 수많은 말라가시(마다가스카르 원주민)가 평생 의사 한번 만나지 못하고 죽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목도했다. 이 선교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168㎢에 의사 188명이 있는데 이 중 90%가 전문의일 가능성이 높다"며 "반면 마다가스카르는 168㎢에 의사 1명이 있는데, 그 의사도 의대를 막 졸업한 일반의일 가능성이 96%"라고 말했다. "오지를 다니며 환자들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외과적 처치가 필요한 환자들이 너무 많이 쌓여있는 거예요. 의사를 만나기 위해 멀게는 수백 킬로를 걸어오는 환자들을 보며 이대론 안 되겠더라고요. 의사를 데리고 가서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는지 보여주고 이들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만든 게 이동진료팀이에요." 그렇다 보니 유독 기억에 남는 환자가 많다. 이 선교사는 특히 최근 기억이 가장 선명하다며 수십 년 동안 방광이 점점 자라서 만삭의 배를 갖고 살아온 환자와 배 속에 있는 장기가 고환으로 다 빠져나와 무릎까지 커지면서 20년 넘게 허리를 못 편 환자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도구 하나 제대로 구비되지 못한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한 오지 이동진료는 올해 10월까지 112회 진행됐고, 마다가스카르 19개 지역 중 16개 지역을 방문했다. 나머지 3개 지역도 한 곳은 굉장한 부촌으로 현대식 병원이 있었고, 2개 지역은 도로가 없어 갈 수 없는 지역이었다. 이 선교사는 지난해 이동진료 100회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마다가스카르 정부로부터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이 선교사와 의료팀이 진행해 온 이동진료가 그동안 최소한의 의료혜택도 받지 못한 자국민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한 사람의 의료가 한 나라의 의료체계를 변화시킨 놀라운 기적이었다. 그의 약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선교사는 "외과 수술 면에서 약 20가지 수술 기법을 배우고 진단명에서는 100~150가지만 잘 배워도 약 90%의 진료를 볼 수 있다"며 마다가스카르처럼 고통받는 많은 나라에 전할 수 있도록 오지통합의료전문의를 양성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프리카엔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니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하지만 여러 사람의 힘이 모이면 의외로 일이 빨리 끝날 수 있어요. 그리고 절망이 희망으로 변할 수 있어요. 혹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마다가스카르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세요."

박은결 기자2019-12-01

40년이 넘는 오랜 세월, 한 길을 꾸준히 걸어오며 얻게 된 특기를 이용해 주위에 따뜻함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 원주에서 '지박사 막국수'를 운영하며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에서 한국예술문화명인으로 선정된 지준학 명인이다. 지 명인은 40년간 한 우물을 파며 강원 향토음식인 메밀 막국수의 고유 기술 연구와 대중화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막국수 명인의 길에 올라섰다. 조리학을 전공하거나 박사학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모의 어깨너머로 배운 막국수를 꼼꼼히 연구하고 자신만의 비법을 더해 '지박사'라는 별칭도 붙여졌다. 이렇게 꾸준히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지 명인은 자신이 가진 재주로 이웃을 돌아볼 때 보람을 느낀다.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막국수를 대접하는 등 주말마다 식사 봉사에 힘써온 지 벌써 5년째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해 배달도 한다. 지 대표는 "그분들의 삶을 나아지게는 할 수 없지만, 밥으로 따뜻함을 전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외 봉사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원주시에서 열리는 행사 때면, 부스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판매해 수익금으로 필리핀 클락에 있는 아이티 부족을 돕고 있다.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이며 전통 음식을 알리기도 하고 인형과 헌 옷, 생활용품 등을 모아서 기부한다. 작년에는 지역 사회복지 기관과 함께 필리핀을 방문해 식당을 지어주는 일에 참여했다. 그는 "바닥에서 밥을 먹는 게 안타까워 식사 장소를 만들어줘야겠다고 결심했다"며 "재정이 확보되면 우물을 파는 작업까지 이어가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제는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의 나눔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한 끼가 되어 돌아가길 바란다는 지준학 명인. 그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지혜택과 부족함 없는 세상은 앞 시대를 살아온 어르신들의 노력으로부터 온 것"이라며 "그 고마운 마음이 전해지는 따뜻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민주 기자2019-11-27

우리 주변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좌절에 빠지거나 심지어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고난의 가시밭길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어진 고난의 길을 헤쳐 나가는 사례들은 은혜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별기획 '복음이 희망이다'에서는 고난 중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열매를 맺어나가는 가슴 따뜻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책무지만 과거와 달리 전도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공공장소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복음을 제시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런 가운데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외치는 노부부가 있다. 부부는 38년 째 거리와 지하철 역사에서 '당신이 진정한 복을 누리길 바란다'는 축복의 말을 전하고 있다. "복음에 빚진 자로서 구원의 은혜를 갚을 길은 다른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밖에 없죠." 송베드로 목사(76)·지사라 사모(75)는 '내 사명은 평생 복음 전하는 일이다'란 생각으로 가는 곳마다 전도에 힘을 쏟고 있다. 2~3주 마다 한 번씩 지하철 역사에 나가 전도지를 나눠주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분들 예수님께로 오세요.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가까운 교회에 나가 예수님 믿고 축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자녀와 가정이 복을 받기를 축복합니다." 지 사모는 출근 시간대를 피한 오전 10시에 지하철 전도를 시작한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끝 칸부터 한 칸씩 이동하면서 2분 이내로 짧게 복음을 나눈다. 마지막에는 "축복합니다, 수고하십시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전도는 지하철 역사에 내려서 전도지를 나눠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뒤늦게 깨달은 구원의 기쁨 "매일 전도 다니니까 주변에서 미쳤다고 했어요. 심지어는 가족까지도요. 거기에다가 늦게 신학대 졸업해서 교회·기도원 개척하니까 더 그런 소리를 들었죠." 전도에 열심이던 지 사모는 소위 '못 말리는 전도자'로 통했다. 뒤늦게 전도 열정을 갖게 된 송 베드로 목사도 마찬가지였다. 큰 북을 치거나 자동차 앞뒤에 스피커를 달고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이들 부부가 원래부터 전도에 열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사라 사모는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기독교 집안이었던 시댁식구를 따라 교회에 출석하면서 믿음이 굳건해졌다. 예수님을 전하고 싶다는 열정이 생기면서부터는 신학대학교를 다니며 기도원 개척에 힘썼다. 송베드로 목사는 평신도 사업가였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신앙이 뜨겁진 않았다. 신학대를 다니던 지사라 사모가 용인에 기도원을 개척하러 내려간다고 했을 때 완강히 반대했다. 그럼에도 아내의 뜻을 굽힐 수 없던 송 목사는 사업체를 접고 지 사모를 따라 내려왔다. 송 목사는 말씀을 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소 외양간 300평을 기도원으로 가꾸면서 말씀과 기도에 매진했다. 성경에서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사셨던 예수님을 보면서 "평생을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다. 이후신학교에도 진학했다. ▲송베드로 목사는 전도할 때 '예수 생명'이 적힌 35년 된 흰 가운을 꼭 입는다고 말했다. 번갈아가며 복음을 전하던부부는 "무관심한 것 같아도 복음을 가만히 듣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데일리굿뉴스 "영혼 구원 그 무엇보다 귀해" 부부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미국 등지를 다니며 전도하고, 교회·기도원을 개척했다. 사역을 하면서 부부는 영혼들이 복음을 듣고 기도와 예배로 변화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지 사모는 "전도를 통해 이단에 빠졌던 사람이 교회로 돌아오는가 하면 간질을 앓던 사람이 치유를 경험했고, 불임으로 힘들어 하던 부부가 기도로 아이를 갖게 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전도 외에도 탈북 청소년의 사회 정착에 관심을 가졌다. 탈북자 정착 기관인 하나원에서 온 청소년 열댓 명에게 식사를 제공하면서 언어, 생활, 신앙교육을 받도록 도왔다. 이런 사실이 알려져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사역을 하며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눈물 흘리던 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지 사모는 "하나님이 다 아신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고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격려하면서 믿음으로 걸어왔다"고 말했다. 송 목사는 "너무 괴로워 금식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왜 이렇게 쉽지 않은 길을 가게 하시냐고 투덜거렸던 적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힘든 순간에도 저의 곤고한 심령에 위로를 주셨다"고 고백했다. ▲지하철 역사 입구에서 직접 제작한 전도지를 나눠주고 있는 지사라 사모ⓒ데일리굿뉴스 전도를 따로 나가지 않는 날에는가정에서 예배하며 기도에 매진하고 있다. 가끔 외부에서 부흥집회 요청이 들어오면 송 목사가 강사로 섬기곤 한다. 부부는 무엇보다 미국에 교회 겸 기도원을 세워 사역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기도하고 있다. 교회 이름은 '세계인의교회·세계인의기도원'으로 지을 생각이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전 세계 사람들이 기도하는 처소를 세우고 싶다"는 것이 부부의 바람이다. "저희는 복음 전하는 게 가장 큰 상급이라고 믿어요. 복음전파는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이에요. 우리는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잃어선 안 됩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주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고 했잖아요."

박재현 기자2019-11-11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북한이탈주민 3만 3,000명 시대라고 하지만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는 녹록치 않다. 취업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취업을 해도 서로 다른 문화와 북한이탈주민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적응이 힘든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북한이탈주민들의 남한사회 적응을 돕는 기관·단체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가운데함께하는재단 탈북민취업지원센터 최경일 센터장은 10년간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경제적 자립은 물론 사회 적응력을 키울 수 있도록 멘토 역할을 감당해 왔다. 지속적인 관심·AS 지원…또 다른 도약 '통일' 만들어 나가길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면 탈북보다 취업이 더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렵게 한국으로 왔는데 이곳에서도 또 다른 어려움들을 겪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어요." 8년 전 까지만 해도 한 기업의 인사팀장으로 근무했던 최경일 센터장은 2008년 대안학교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탈북 대학생들을 만나면서 인생 후반기 가슴 뛰는 새로운 삶을 찾게 됐다. 그 이후 대안학교의 인연으로 함께하는재단 탈북민취업지원센터(대표 장형옥)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도왔다. 최 센터장은 현재 함께하는재단 탈북민취업지원센터를 통해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한 취업상담과 교육을 통한 경제적 자립, 사회 적응력도 키우기 위해 힘쓰고 있다. ONE-STOP 취업지원 프로그램으로 취업에 대한 실무능력 향상부터 취업, 사후관리까지 장기적 맞춤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최 센터장은 "이 프로그램은 취업에 필요한 기술영역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도와 주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높여주는 프로그램을 일주일 간 진행한 뒤 자신의 취업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 어떠한 과정이 필요한지 등 집중적으로 진로상담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센터와 연계된 10개의 직영 굿윌스토어 등 관련 단체에서 인턴십을 통해 현장실무 능력을 길러주기도 한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1,300여명 되는 북한이탈주민의 취업과 정착을 도왔다. 도움을 받은 몇몇 북한이탈주민들은 사회적으로 잘 정착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더 많은 이들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고 살아가도록 아낌 없는 지지와 격려를 전하겠다 고백하는 최 센터장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AS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수 많은 AS 중 결혼식에서 신부 아버지 역할을 한 적도 있고, 아이의 이름을 지어 준 적도 있었다"며 "이들이 더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평생 도움을 주는 센터로 만들어 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통일을 위해서는 통일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그런 분들을 양성할 수 있는 일을 계획하고 있어요." 북한이탈주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을 연결하는 것처럼 통일을 위해서도 사람을 준비해야 한다는 최 센터장은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에 온 것이 축복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내년에는 100여명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1,000명의 통일 리더를 키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해 한국에 또 다른 도약인 통일을 함께 만들어 나가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김민주 기자2019-11-10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갑작스런 사고로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됐지만, 이를 계기로 오히려 장애인을 돌보는 일에 열정을 쏟아온 사람이 있다. 12년 동안 서울 강북구립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원장으로 근무하며 중증 지적장애인들을 돌봐온 이상원 목사다. "내 자신이 장애인이다 보니 장애인들이 겪는 고충과 어려움을 알겠더라고요." 이 목사는 사고로 다리를 다쳐 장애를 갖게 됐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좌절과 원망이 컸지만 아픈 만큼 또 다른 것이 보였다. 신학을 전공하던 시절, 한 교회에서 지적장애인에게 제빵과 바리스타 직업 교육을 시켜주는 걸 보면서 장애인 사역을 결심했다. 이후 사비로 컨테이너 박스를 지어 장애인에게 무료로 도장과 열쇠 제작하는 일을 10년간 남몰래 했다. 소문이 났는지 강북구청장으로부터 ‘장애인재활시설장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고 본격적으로 장애인 돌봄 일을 시작하게 됐다. "단순히 교육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내면이 건강해지고, 더 나아가 그들의 가정이 회복되는 것도 고민하게 됐죠." 그는 20대 중반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지적장애인들을 만나며 직업교육과 상담을 해왔다. 장애인을 잘 돌보기 위해서 전문지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사회복지, 재활과 관련한 학위와 자격증을 취득했다.가족과 함께하는 음악치료나 전국 문화탐방 등 장애인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회복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장애인 지도자를 양성하고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장애인평생교육원도 개설했다. 장애인에 대한 깨지지 않는 선입견, 장애인에게 걸려온 1억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 등 오해와 어려움도 많았다. 그러나 이 목사는 “장애인들이 사랑을 받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힘든 것이 싹 사라졌다”고 고백했다. "장애인들이 와서 ‘목사님 사랑한다’ 그러면서 안아주고, 말이 어눌한 뇌성마비 아이가 감사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기뻤죠. 대학을 졸업해서 일터로 나가는 장애인을 볼 때도 감격이었어요." 이 목사는 당뇨 합병증으로 건강이 나빠져 지난 달 원장 직을 은퇴했다. 좀 쉴까 생각했지만 아는 선배 목회자의 요청으로 현재는 시온성교회 내 ‘데이케어센터’ 시설장을 맡아 노인돌봄교실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회복과 돌봄이 필요한 이웃에게 다가가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차진환 기자2019-11-06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전 분야에는 신실하고 유능한 크리스천들이 많다. 그들의 선한 영향력은 복음의 향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선교사역이 된다. 본보는 ‘리더스미션’이라는 타이틀 아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심어주는 모범 크리스천 CEO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전국 묘지면적은 10만ha 정도로 국토의 1%로전국 주택이 차지하는 면적의 절반 정도 해당한다. 매년 여의도 면적의 1.2배인 900ha의 묘지가 추가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산림이 훼손될 우려가 큰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수목장이 가장 주목 받는 장례 방법으로 급부상 했다. 정부도 공공 수목장림을 대폭 늘릴 친환경적인 장지를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한국기독교 장지의전사업단 ‘한맘’의 조성태 대표는육이 땅에 남아 자연으로 돌아가는것. 그 성경의 원리를 가지고 한국의 장지 문화를 개척해 나갈 필요성을 느꼈다. 어려울 때만 찾았던 하나님…이제는 모든 것 맡기기로 “4살 막내 동생이 물에 빠져 실종된 적이 있습니다. 6시간 만에 찾아 집으로 데려 왔는데…죽은 줄 알았죠. 정말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초심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더라고요 기도를 마치자 동생이 물을 토해내고 깨어났습니다. 그 날의 감사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국내 유일한 한국기독교 장지의전사업단 ‘한맘’의 조성태 대표의 실제 이야기다. 예수를 잘 몰랐던어린 아이는 동생이 죽을 수도 있단두려움에 동생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 그때 받은 감동이컸던조 대표는 이후중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고등부 3년 내내 학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그의 10대는 성령으로 뜨거웠다. 24살 아파트 시공사업을 시작으로 손대는 사업마다 높은 수익을 냈다.조 대표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또래 친구들은 유치하게 느껴졌다. 친구는 멀리하고 오직 사업에만 전념했다. 그러자 인생의 주인이 서서히 돈으로 바뀌었다. 조성태 대표는 스스로 성공한 삶을 살아간다는 도취감에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언제부터 느껴지는 공허함을 견딜 수 없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 연이은 사업 실패로 가진 것을 모두 잃게 되자 조 대표는 세상 앞에 고개 숙일 수 밖에 없었고 잊고 지냈던 하나님께 엎드리게 됐다. ▲한맘의 수목장 사진.ⓒ데일리굿뉴스 돈의 노예가 아닌 예수 증거하는 삶으로 개척 후 자립하지 못한 채 문을 닫는 교회들을 많이 봤던 조 대표는 이들을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또한 크리스천 중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한국 장례문화였다. 가족이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나서 경황 없이 장례를 준비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상중에는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고 잘못된 장지선택으로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유족들이 지불하는 비용이 음지로 사라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조 대표는 크리스천의 마인드로장례의전사업을 계획했다. 조 대표는 “현재 수목장 분양 중개 등은 제도권이 아니다. 법적으로 정해진 수수료가 없기 때문에 유가족들은 업체가 달라는 대로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그 알선 수수료의 거품을 빼고 투명하고 정직하게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존 업계의 폐쇄적이고 투명하지 못한 부분을 양지로 꺼낼 것이라는 포부다. 음지로 사라지던 수수료를 유족을 위해 사용하고 돌려주겠다는 계획이다. 또 미자립 개척교회 선교후원과 식자재를 서비스 이용자의 이름으로지원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크리스천을 적극 채용할 예정이다. 조 대표는 ”하나님이 도약할 순간을 주신다고 믿고 나아가는 중이다. 내가 먼저 주님을 따라 살려고 마음 먹고 실천하는 믿음이 필요하다”며 “주님의 반석 위에 바로 서고 기독교 기업답게 성장해 하나님께 인정 받는 회사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데일리굿뉴스 2019-11-04

GOODTV운영이사이자 모터펌프 전문 제조회사 길산업 최옥창 대표는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3일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된 G-Fair 전시회에 참가했다. 이 전시회는 ‘대한민국 우수 상품 전시회’로 국내 최다 상품 전시회로 알려져 있다. 최 대표는 이 전시회에 벌써 3번째 참가했다. 특히 이 전시회에는 드론, BLDC MOTOR, 다양한 블로워 모터, STEPPING MOTOR 등의 첨단 모터가 출시됐다. 또한 열찜질 팩, 핸드폰 앱을 이용한 저주파 물리치료기가 자매품으로 선보였다. 이 전시회에는 외국 바이어가 많이 몰리는 관계로 참여 업체들에게는 수출 길을 열수 있는 기회도 됐다. 30여 년간 모터 연구에 주력한 길산업은 모터를 응용한 다양한 제품화를 위해 노력해 오던 중 지난 2016년말 벼를 찜과, 증속, 후속 가공시켜 GI(혈당지수) 84를 50(현미수준)으로 떨어뜨리는 획기적인 특허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개발로 인해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과 발명진흥협회장상 수상은 물론 국내를 넘어 태국 발명협회에서도 금상을 받은 바 있다. 최 대표는 본 특허를 본격 사업화를 위해 대량 생산 체제가 가능한 빠른 건조기능을 갖춘 특허를 올해 추가 획득하고 대량생산을 통해 농민소득증대와 당뇨환자 식사 개선 및 관련산업의수출 길이 열리게 됐다. 또한 국가 기본 혁신성장 및 고용 창출 효과로 지난 11월 1일에는 중소벤처기업청장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오는 11월 27일(수)에는 발명진흥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발명특허대전에서 특허청장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모든 산업과 기계요소에 근본으로 사용하는 모터, 펌프를 통해 다각도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는 길산업 최 대표는 "60년의 인생을 맞아 부족하지만 인류 사회를 위해 보다 뜻있는 일을 해야 할 때"라며 그 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 대표는 지난 5월 기독교복음방송 GOODTV 운영이사(서기)로 위촉받고 방송선교 활동과 더불어 글로벌선교방송단의 교회기자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천보라 기자2019-11-03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신장을 기증한 부부 소식이 전해져 훈훈함을 안기고 있다. 올해 첫 '부부신장기증인'이 된 구신용(52, 인애교회) 목사와 홍선희(53) 사모가 그 주인공이다. 부부의 생명 나눔은 2006년 홍 사모의 신장 이식으로 먼저 시작됐다. 목사의 가장 큰 영광은 "성도를 위한 희생" "신학교 선배 목사님인데, 만성신부전으로 투병 중이었어요. 그때 신장 투석이 얼마나 힘든 건지 처음 알게 됐어요. 도울 방법을 알아보니 신장 기증밖에 없더라고요. 당연히 기증하겠다고 나섰지요. 그런데 저와는 혈액형이 안 맞아 이식이 어렵고, 제 아내와 혈액형이 일치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아내에게 기증하라고 이야기했죠." 부부는 일심동체였다. 남편의 제안에 놀랄 법도 한데, 홍 사모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신장 하나를 기증했다. 홍 사모는 "저와는 신학교 동기였는데 굉장히 신실하고 좋은 사람이었다"며 "오래 목회하면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 같아 기증해도 아깝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홍 사모의 기증에 감동한 구 목사는 대신 사후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진행했다. 또 지금까지 헌혈 100회 이상을 하는 등 생명 나눔에 앞장섰다. 지난 9월엔 구 목사의 신장 기증이 이어졌다. 구 목사는 "13년 전 이미 내 신장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다가 2년 전 새벽기도 때 신장을 주라는 마음을 주셨고 바로 알아보게 됐다"고 밝혔다. 그렇게 직접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던 구 목사는 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생면부지인 60대 만성신부전 환자에게 신장을 이식할 수 있었다. "그분이 저를 보고 싶다고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병실 앞에서 한 2분 정도 만났어요. 사실 누군가에게 줘야겠다는 마음뿐이었기 때문에 내 할 일만 했다고 생각했지, 다른 감흥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분을 만나 안아드리는데 제 신장을 받아줘서 잘 쓰실 것을 생각하니 제 입에서 먼저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목사의 가장 큰 영광은 성도를 위한 희생이라고 강조하는 구 목사. 부부는 "내가 조금 불편해서 누군가에게 더 큰 것을 줄 수 있다면, 그 불편함은 굉장히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도록 앞으로 홍보나 국가적인 제도가 잘 뒷받침됐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올해 첫 '부부신장기증인' 구신용(인천 인애교회) 목사와 홍선희 사모ⓒ데일리굿뉴스

박재현 기자2019-10-29

우리의 전통음악인 국악과 CCM을 결합해 첫 앨범을 선보인 밴드가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인의 정서인 한을 담은 판소리와 밴드음악을 접목해 만든 퓨전국악 밴드 경지가 그 주인공. 호소력 있는 창법과 다양한 악기를 활용한 개성 있는 사운드로 주목을 받고 있는 밴드 경지를 직접 만나봤다. "하나님 전하는 도구로…" 퓨전국악 밴드 경지는 2015년 제7회 대학국악제에 참여해 대상을 받은 계기로 결성된 팀이다. 건반과 기타, 드럼, 베이스 그리고 전통악기 피리 등 한국의 독보적인 음색을 전하는 보컬까지 총 6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퓨전국악'이라는 장르에서 다양한 음악을 펼치고 있다. 팀이 결성된 이후 일제강점기, 광개토대왕 등 한국의 역사를 주제로 한 곡들을 주로 선보여왔던 이들은 최근 국악과 CCM을 결합한 첫 앨범 '두려움이 없어지리라'를 내 놓게 됐다. 밴드 경지의 보컬 오현은 "CCM 음악을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이번 앨범을 만들게 됐다"며 "그 동안 쌓아왔던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들을 주님 앞에 토해내는 듯한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번 앨범에서 부르는 곡은 완급적인 조절 부분에서 큰 파급력이 있으며 사운드 적으로 강하다"라고 덧붙였다. ▲밴드 경지 CCM 첫 앨범 '두려움이 없어지리라' (사진제공=밴드 경지) 특히 이번 앨범은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에 풍성히 채워진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가사와 멜로디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신앙 생활을 돌아보고 진정으로 회개와 감사를 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밴드 경지 맴버들도 이번 앨범을 제작하면서 다른 음악과는 달리 각자의 마음 속에도 은혜가 가득 채워짐을 느끼게 됐다고 고백했다. 밴드 경지의 건반을 맡고 있는 박슬아는 "조금 더 영향력 있는 팀이 돼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과 나아가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당당히 전할 수 있는 도구로 쓰임 받고 싶다"고말했다. 밴드 경지는 앞으로도 다양한 행사를 통해 크리스천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퓨전국악으로 하나님을 전하는데 힘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한길을 나아 가겠다는 밴드 경지. CCM 전문가들은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를 담은 경지 특유의 음악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을 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밴드 경지는 오는 11월 1일 6·25전쟁 당시 상황을 토대로 만든 곡으로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김신규 기자2019-10-27

우물 기부를 위해 극지를 달리는 극지 마라토너 박태훈 씨(28). 그가 극지를 완주하는 이유는 식수가 부족한 아프리카에 우물을 기부하기 위해서다. 지난 7월 ‘몽골 고비사막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250㎞를 7박 8일간 완주했다. 그는 미리 약속대로 후원금으로 아프리카 차드 다르발 라반 지역에 우물 1기를 지난 8월 기부했다. 그는 대학 시절인 2016년 ‘칠레 아타카마 크로싱’에서 처음 출전해 250㎞ 코스 중에 170㎞까지만 달려 완주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2017년 ‘사하라 사막 레이스’와 ‘칠레 아타카마 크로싱’를 완주했고, 올해 고비사막 도전에 성공했다. 세계 4대 극지 마라톤대회 중 3개 대회 도전에 성공했다. 앞서 대회 후원금으로 아프리카 니제르, 르완다, 잠비아 등 3곳에 우물을 기부했던 박 씨는 고비사막 도전 성공으로 후원사의 도움을 받아 차드 다르발 지역 식수시설지원사업 기금을 굿네이버스에 전달했다. ▲박태훈 씨의 역주 모습ⓒ데일리굿뉴스 아프리카에 우물기부를 하게 된 것은 고교시절 도덕선생이 보여준 식수부족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다큐멘터리가 계기가 됐다. 당시 그는 ‘언젠가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우물을 선물하고 싶다’는 꿈을 공책에 적었다. 30살이 되기 전에 아프리카 우물 기부를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그렇게 박 씨는 우물 기부사업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 4학년 재학 중 사막 횡단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도전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아프리카에 우물을 만드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행위를 통한 기부로 기부에 대한 장벽을 낮추고 싶었지요.” 극지 마라톤 참가비 마련을 위해 수백 건 전화와 편지 보내기는 예사였고 하루 17시간씩 환풍기 설치나 실내야구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2017년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중견 건축회사에 취업한 박 씨는 극지 마라톤을 통한 꿈을 찾아 도전하기 위해 직장도 그만뒀다. 이후 창업에 도전해 올 초 스포츠 앱 분야 사업을 시작했다. “운동 분야 사업은 가장 잘 할 수 있고 관심 분야여서입니다. 7월에 앱을 출시했습니다. 전국에서 열리는 각종대회 정보와 이벤트 알려주는 플랫폼을 운영합니다. 앱 이름도 ‘터닝포인트’처럼 달려서 인생을 바꾸자는 의미로 ‘러닝포인트’라고 지었습니다.” 이제 그는 남미 아마존 250km대회와 가장 추운 남극 250㎞ 완주를 목표하고 있다. 박 씨는 “아마존을 통해서는 우물을, 남극 완주 후 아프리카에 작은 학교를 세울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목표가 있으면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생은 망설이다가 끝이 난다. 도전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2019-10-24

요즘 젊은이도 드라마보단 웹툰을 즐겨 본다고 할 정도로 SNS가 보편화되면서 웹툰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이다. 이런 가운데 성경적인 메시지를 웹툰으로 풀어내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가 있다. SNS 안에도 하나님이 계신다고 고백하는 웹툰 '초롱이와 하나님' 김초롱 작가를 직접 만나봤다. 한 영혼 살리는 도구 '웹툰' 김초롱 작가는 목회자의 딸로 자랐지만 대학시절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을 만큼 힘든 시기를 보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 보니 자신의 문제를 터놓고 나눌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밝고 명랑한 성격이지만 하루에도 수 십 번 삶과 죽음을 고민했다는 김 작가는 태국에서 만난 한 선교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변화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후 그림을 통해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된 것이다. 김 작가는 "기독교 청년으로서 겪는 어려움과 아픔들이 많다"면서 "그런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제가 좋아하고 저에게 주어진 달란트인 글과 그림을 통해 공감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1년부터 연재된 웹툰 '초롱이와 하나님'은 최근 2만 팔로우와 500만 뷰 이상을 기록할 만큼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일상적인 신앙 이야기를 솔직하고 간결하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김 작가의 개성이 묻어나는 귀여운 캐릭터도 인기요인 중 하나이다. 김 작가는 또 매일 묵상한 말씀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드로잉 클래스'도 운영하는 한편 초롱이 캐릭터를 넣어 만든 메모지와 휴대촌 용품 등 직접 만든 '굿즈'를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있다. 그림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드로잉 클래스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매달 열리고 있으며, 그림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굿즈도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김 작가는 "SNS 안에도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있으며, 굿즈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충분히 알릴 수 있다 생각한다"며 "이곳에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회복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 작가의 소망처럼 웹툰을 통해 우울증이 회복되고, 공황장애로 고통 받는 청소년이 이제는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소식을 전해 오기도 했다. 한 50대 아주머니는 웹툰을 통해 하나님을 다시 깊게 만나게 됐다고 고백했다. 웹툰을 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회복되는 모습들을 전해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김 작가는 앞으로 더 많은 이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자 한다. 김 작가는 "웹툰이 한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열매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귀하다"며 "이 땅에서 하나님만 믿고 살아도 기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과정 가운데 웹툰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 영광을 모두 하나님께 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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