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경 기자2018-05-14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았던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한 교사가 고안해낸 작은 베품이 학교공동체에 크고 작은 기적들을 만들고 있었다. 고소한 붕어빵 향기 속에 피어나는 '선생과 학생들간의 유쾌한 이야기'는 스승의 날을 앞둔 지금, 찬란했던 우리들의 학창시절 속 선생님 얼굴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 강화 덕신고 김세환 교목과 붕어빵 나눔 강화도에 위치한 덕신고등학교는 매주 금요일 점심시간 때마다 진풍경이 펼쳐진다. 학교 건물 사이로 붕어빵 기계가 설치된 소형 승합차가 자리를 잡으면 붕어빵을 받으려는 학생들로 긴 줄이 늘어선다. 2005년 붕어빵 나눔을 처음 시작한 김세환 선생님의 섬김 활동은 10년을 넘어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비로 집기들을 구입해 출발한 사역은 수많은 변화를 일구는 결과를 낳았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관계였다면 이제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같이 가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붕어빵 나눔의 처음 시작은 제가 했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며 함께 파트너를 이루게 됐습니다. 학생들과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동일한 방향으로 가게 됐다는 게 가장 큰 변화죠." 시큰둥했던 학생들은 곧 이 나눔이 즐거워지자 점심 붕어빵 행사가 하루 중 가장 기대되는 시간이됐다. 팝콘 쿠폰을 꺼내든 김지연 학생(17)은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면 붕어빵 외에도 팝콘을 교환 받을 수 있는 쿠폰을 나눠준다"며 "오늘 질문을 적극적으로 했더니 많이 받았다"고 미소를 보였다. 옆에서쿠폰을 구경하던 정세은 학생(17)도 "붕어빵 차가 학교에 생겨 좋다"며 함께 웃음 꽃을 피었다. 소소하지만 의미있는 김 교사의 나눔은 학교 안에 행복한 문화가 확산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아낌없이 베풀고자 하는 김 교사의 마음이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다. "처음 붕어빵 나눔을 시작했을 당시만해도 학생들이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점은 아이들이 어떠한 대가가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점차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 의미를 통감하게 되는 학생들이 늘면서 섬김을 실천하고자 하는 문화가 공동체에 형성됐습니다." ▲점심시간 김세환 교사와 학생들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데일리굿뉴스 학생들까지 나눔 동참…"오병이어 기적 만들어 가다" 실제로 뜻을 모은 학생 20여 명은 '오병이어'라는 봉사단까지 만들었다. 반죽에서부터 붕어빵을 굽는 작업까지 붕어빵 사역에 모든 과정을 도맡아 실천하는 중이다. 동참하는 학생들이 늘면서 되려 김 교사는 학생들에게 배우는 지점이 많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제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해가 거듭될수록 저 역시 학생들에게 받는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서로 주고 받는 관계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된 것이죠. 이렇게 깨닫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실천하는 동력이 생깁니다. 섬김과 나눔을 경험한 아이들만이 나중에 이를 실천하게 되는 선순환을 낳게 되는 것이죠." 붕어빵 나눔은 교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점차 확장돼 지역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인근 강화 초·중·고등학교를 비롯한 요양원 같은 노인요양시설과 군부대, 교회 등 다양한 장소를 찾아 붕어빵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했다. 이러한 활동은 대외적으로 인정 받아 2016년 교육부로부터 학교 현장 우수 사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김 교사는그간 맺은 열매들을 상기하면서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데에 본인의 역량을 집중하고픈 마음을 전했다. "아이들과 가까워진 만큼 아이들의 고민도 더욱 여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대인관계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공동체를 강조하는 부분과도 연관되지요. 세상 속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갈등은 같이 부딪치면서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해결하는 법 밖엔 없어요. 이 과정 속에 아이들과 더불어 함께 하면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붕어빵 소형 승합차에는 아이들과 함께 하고픈 김세환 교사의 바람이 집약돼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갈 이들의 공동체 이야기는 교권추락과 입시위주의 경쟁구도로 허덕이는 지금의 현실을 돌아보기 충분했다. 향후 붕어빵 나눔을 통해 일어날 크고 작은 기적들이 유독 기대되는 이유다. ▲덕신고등학교의 붕어빵 나눔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크고 작은 기적들이 기대된다.ⓒ데일리굿뉴스

박혜정 기자2018-06-08

내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있듯이 부모가 자녀를 향한 애틋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자식에게 약도 없는 희귀 질환이 있다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홍성원 목사는 아들 원기가 소아조로증 환아라는 사실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가득했었다. 그러나 이제그는아픔을 통해 서로를 더욱 사랑하는 진짜 가족이 됐다고 고백한다. 가족과 함께 온 힘을 다해 행복을 느끼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고 고백하는 원기 아빠 홍성원 목사 이야기를 신앙계 6월호에서 만났다. "온 힘 다해행복하게 사는 삶, 가장 가치 있는 삶이죠" 뇌와 신경은 늙지 않는 병 소아조로증. 이 병에 걸릴 확률은 3천만분의 1 이하로 소아조로증은 현재까지 의학 및 과학기술로는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는 치명적이고 희귀한 병이다. 이 질병은 아이의 돌 무렵부터 발현되는데 프로제린이라는 독성물질이 지나치게 많이 나와 혈관과 피부, 장기만 빨리 노화시킨다. 게다가 이 병에 걸린 절반 이상은 10세 이전에 세상을 떠나고 20세를 넘긴 아이는 1%에 불과하다고 알려졌다. 내 자녀가 이런 질병에 걸렸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부모의 마음은어떠할까.원기 아빠 홍성원 목사는 원기가 다섯살 되던 해 소아조로증이란 진단을 받았던 그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는 목사이기 전에 한 아이의 아빠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하나님을 원망하며 소리쳤다고 한다. "미친 거지, 당신!" 홍 목사는 한동안 마음을 가눌 수 없었고, 그 당시 성도들 앞에서 설교해야 하는 것도 힘에 겨웠다고 고백했다. "그 당시 주일에 교회 가서 성도들에게 설교를 해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신이 가득 차 있는데 설교를 해야 한다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기억도 안 나는 시간이다." 그러나 홍 목사는 아내와 매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고 교회 성도들에게 깊은 위로를 받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원기를 치료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두 찾아 해맸다. 침도 맞아보고 원기에게 자신의 지방에서 추출한 지방 줄기세포 주사요법도 시도했다. 그러다가 그는 인터넷 검색 중 미국 보스턴에 조로증재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재단에서 실시하는 임상실험에 참여하기 위해 4년을 넘게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원기와 가족들은 임상실험 프로젝트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치료할 길이 있다는 희망의 빛 한 줄기를 붙들고 2년치 처방약을 받아 한국에 돌아왔지만 원기의 병세는 더욱 악화됐다. 약을 먹지 않겠다는 원기의 말은 홍 목사의 마음을 울렸지만 그는 결국 원기의 뜻을 존중했다. "원기가 약을 먹기 시작한지 이튿날부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자주 구토해 위벽이 헐어 핏덩어리까지 나왔다. 일주일을 그렇게 버티더니 원기가 울면서 말을 꺼냈다. "엄마, 나 약 그만 먹을래. 이거 먹는다고 오 래사는 것도 아니고 머리카락이 나는 것도 아니잖아."" 4년을 넘게 기다렸던 임상치료는 이렇게 일주일 만에 끝이 났다. 그러나 이 후 원기는 오히려 웃기 시작했고 다시 생기 있게 활동했다. 원기에게는 미겔이라는 특별한 친구도 생겼다. "보스턴 아동병원에서 원기는 미겔이라는 자신과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다. 처음에는 원기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을 못했는데 지금은 미겔과 어머니를 작년에 두 차례 한국으로 초청해서 좋은 추억을 함께 쌓을 만큼 각별한 사이다." "소아조로증 연구재단 설립, 기도제목입니다" 미겔을 알게 되고 나서 아빠 홍원기 목사에게도 비전이 생겼다. 바로 아시아 지역의 소아조로증 연구재단을 설립하는 일이다. 홍 목사는 질환으로 고통받는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아시아 프로제리아(소아조로증) 연구재단을 만드는 것이 기도제목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있는 소아조로증 재단은 아이들을 분석하고 약을 찾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소아조로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과 가족들이 함께 위로하고 연대하는 일이 더욱 필요하단 것을 깨닫고 이 비전을 품게 됐다. 그는 이어 이 재단이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했다. 아직은 재정과 상황들이 어렵지만 그는 아내와 힘을 합쳐서재단설립을 위해 노력하고있다. "아내가 원기처럼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인형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또한 판매 수익금 일부는 아시아 프로제리아 재단 설립하는 일에 쓰이게 될 예정이다. 원기가 어릴 때부터 자주 울었고 엄마와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 해서 아내가 직접 인형과 잠옷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원기의 가족들은 죽을 것 같았던 힘든 시간을 통해 더욱 끈끈한고 친밀해졌다. 그리고 어느덧 열세살이 된 원기는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잘 적응하고 있으며 여느 또래 친구들처럼 이것저것 하고싶은 것들이 많다. 원기의 꿈은 스파이더맨, 유투브 게임 방송VJ, 지금은 장난감 가게 사장님이다. 홍 목사는 원기가 피아노 치기에 소질이 있다면서 피아니스트가 된 원기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한때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아들과 함께하는 운명이 너무나도 가혹하다고 생각했던 홍원기 목사.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원망과 좌절이 아니라 아들과 함께하는 매 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매일 밤 원기를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 원기가 제 새끼손가락을 더 오랫동안 쥘 수 있게 해주세요." 원기와 그 가정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더욱 하나되고 그 사랑이 넘쳐 흐르는 축복의 샘이 되길 소망한다.

최상경 기자2018-05-21

이 시대 아버지는 고달프다. 자녀가 잘 되기 위해서는 도리어 '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아버지들의 역할은 날로 축소되고 있다. 이 같은 팍팍한 현실을 감내하면서도 오로지 자녀들을 위한 수다모임으로 의기투합한 아버지들이 있다. 이들 속에 활짝 핀 이야기 꽃은 자녀들이 이 세상을 신앙으로 굳건히 살아내길 바라는 아버지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팍팍한 현시대 아버지들…"같이 이야기 하며 위로 받아요" "요즘 아빠들 세대는 일과 함께 가정 일도 소홀히 해선 안 되죠. 결국 같이 해야 되는 구조인데 아직 스스로가 훈련이 안돼 있다는 것이죠.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는 게 고민이에요. 지금은 회사와 가정 양쪽 모두 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렇지 않을 때가 올 테니까요." -이종철(42·연구원) "직장 정년이 길어봐야 60세이니, 제 2의 인생에 대한 염려가 있어요. 이런 고민들이 가장으로서 겪게 되는 현실적인 고민 같아요. 경제적인 동력 말고 정서적으로도 가정의 리더로서 좋은 방향을 제시하는 아버지로 남고 싶습니다." -김덕훈(45·직장인) 아버지들로부터 직접 전해 들은 '가장의 현주소'는 결코 녹록치 않았다. 나이도 하는 일도 각기 다른 아버지 11명이 모여 결성한 '대디스토크(Daddy’s Talk)’는 높은뜻광성교회(이장호 목사) 소속 아빠들로 구성된 '가장들의 교육 토론모임'이다. 바쁜 회사일 가운데서도 퇴근길 마다 함께 모여 생각을 나눠 온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이러한 시간을 지속적으로 이어 온건 모임을 통해 자녀 교육은 물론 아버지의 역할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디스토크를 거쳐간 이야기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교수와 PD, 회계사 등 다양한 구성원들의 면면 만큼 공교육과 대안교육, 시험과 사교육, 가정 내 세대 갈등 등 폭넓은 논의가 오갔다. 실제로 13일 팟캐스트 녹음을 위해 뭉친 아버지들의 모습에서는 이야기 공유를 향한 일종의 열정까지느껴졌다. 아버지들은 하나같이 "함께 얘기하고 나눌 때 기적이 이뤄난다"고 입을 모았다. 삼남매를 둔 정성진 씨(44)는 "좋은 아빠들이 옆에 있으니 배울 수 있는 부분도 배가 됐다. 더불어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고 새로운 자극도 받으니 좋다"며 모임의 유익함을 전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건 "좀 더 좋은 아빠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심어준다는 것"이라며 대디스토크를 통해 변화가일어나고 있음을 강조했다. 모든 논의에 중점이 됐던것은 역시 신앙 안에서의 올바른 양육 방법이었다.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고 싶다던 이종철 씨는 "청소년 시기 때,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아 혼란스러움을 느꼈었다"며 "그 당시 성경 지침을 읽다가 성경말씀 위에 기초를 쌓으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들 역시 삶의 기준을 하나님 말씀 위에 놓고 모든 이들을 존중히 여기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정씨는 "인생의 시련의 순간이 올 때, 잘 이겨내는 아이들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힘든 일에 봉착할 수도 있지만 그 때마다 붙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기억들을 심어주고 싶다"고도 했다. 실제로 그는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은 힘들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아빠들의 신앙적 교육관은 2016년 4월 '대디스 교육선언'을 통해 SNS 상에 공유하기도 했다. 여기서 더 확장돼 지금은 매월 유튜브와 팟캐스트 등 인터넷 방송으로 토론의 핵심내용을 녹음해 게재 중이다. 아이들 교육에 있어 갈급함을 느끼는 아버지들에게 '대디스토크'만의 위로와 격려를 전하기 위함이다. "같이 의논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버지의 상을 함께 만들어 가게 되는 거죠. 동일한관심을 갖고 이를 바라보게 되면 주변에 비슷한 분들끼리 자연스레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위로를 받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것이죠." '큰 울타리 같은 아버지', '초심 잊지 말기' '가장으로서 집안의 원칙 기준 만들기'. 짧은 시간 동안 아버지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추려 낼 수 있는 의미들은상상 이상으로 무궁무진했다. 아버지들의 수다 속에는 진실로 작은 기적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윤인경 기자2018-05-14

무슬림 인구의 증가율은 전 세계 평균 인구 증가율인 4.3%의 4배가 넘는 18.7%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하는 무슬림 관광객들이 크게 늘면서 이제는 한국사회에서도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정부와 기업이할랄 단지와 무슬림 기도실 조성 등 무슬림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무슬림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집트 콥트교인이자 무슬림 전문연구가인 이삭 선교사(가명)는 “무엇보다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슬림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려줄 누군가가 필요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켄싱턴호텔에서 만난 이삭 선교사는 비행기로 꼬박 하루 반나절이상을 타고 한국을 방문한이집트 콥트교인이다. 콥트교는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그리 익숙한 단어는 아니다. 기독교의 한 종파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콥트’는 그리스어로 이집트란 뜻으로, 콥트교는 2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집트의 기독교 자생종파다. 대표적인 이슬람권 국가로 꼽히는 이집트에서 콥트교는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인 IS로부터 집중적인 테러 공격을 받고 있다. 이삭 선교사는 오는 15일부터 개최되는 제27차 세계교회성장대회 참여를 위해 국제교회성장연구원(CGI)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이번이 세 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그는 “올 때마다 한국교회의 놀라운 성장에 감탄하는동시에 점차 무슬림이 한국사회에서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며 “한국교회가 이슬람에 대해 정확히 알고 이를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삭 선교사는 “가장 큰 문제는이슬람에 대해사람들이 무지하다는 데 있다”며 “이슬람이 각 나라에 어떤 전략으로 침투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테러와 폭력으로는 포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슬람 세력들이 이제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이슬람을 전하고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한국에서도 이런 이슬람의 비폭력적인 포교방식이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 이삭 선교사는 “이슬람이 교육과 문화, 출판 등을 통해 비폭력적이고 거부감 없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전쟁을 일으킬 것을 말하는 코란의 본질은 변하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만 이슬람과 무슬림은 구분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슬람의 길이 옳다고 굳게 믿으며 살아가는 무슬림에게는 사랑으로 다가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야한다”며 “그러나 동시에 기독교인들은 영적으로 깨어 이슬람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람은 그리스도인들이 경계해야 할 영적 전쟁의 대상이되 무슬림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는“무슬림들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려줄 누군가가 필요하고, 우리가 바로 그 역할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교회는 타 문화권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야 한다"강조했다. 비록 지난 수십년 간 이슬람에 의해 갖은 핍박을 받아왔지만 이삭 선교사는 "내 심장은 무슬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면서 "이집트 기독교인들은 무슬림을 사랑하며그들의 구원을 간절히 바란다는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란과 성경의 공통된 부분을 통해 무슬림들에게 다가가서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며 "코란에 예수님이 없는데 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냐.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빛은 어둠보다 강하고 생명은 죽음을 지배합니다. 빛이자 생명인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이슬람 정책이나 이슈는 철저히 경계하되 무슬림은 사랑하고 선교의 대상으로 섬겨야 합니다"

최상경 기자2018-06-11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의 고통을 어느 누가 짐작할 수 있을 까. 『스물두 살 태훈이』의 저자이자 자폐아 아들을 둔 박상미 작가는 그 고통의 무게를 유쾌한 시선으로 승화시킨다. 감내하기 어려운 슬픔에서 성숙한 방어기제인 재치나 유머의 단계로 접어들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쳤을지 감히 단정조차 할 수 없다. 모든 걸 이겨 낸 뒤 드디어 찾은 세상을 관통하는 '따뜻한 시선'은 삭막한 현실을 사는 우리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태훈이와의 동행…"이 또한 주어진 삶이죠" "태훈이와의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특히 아이와의 외출은 아이를 업은 채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도 같았다. 오늘은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가기 전에 큰 결심을 하곤 했다."(82쪽) 남들 모두가 맞는 평범한 일상도 '장애'라는 이름 앞엔 곧 특수함으로 둔갑돼 버렸다. 이들 모자에게 일상이 전쟁터가 된 순간, 박상미 작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고비의 순간을 맞았다. "이미 모든 것을 초연하게 받아들인 부모들이 부러울 정도였어요. '전 어떻게 해야 되죠' '이 고통이 미치겠어요!' 라며 하나님께 계속해서 발악했죠. 그러다 보니 결국엔 '어떻게 죽을까'라는 최악의 생각까지 가게 되는 거에요. 그때는 아이가 정상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집착이 마음을 옭아맨 요인이 됐다는 것을 몰랐을 때였죠." 전쟁터에 끌려 나온 억울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박상미 작가는 삶에 대한 원망 대신 집착을 버리고 오롯이 삶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했다. 아들의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자 의미 있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모든 상황과 사실을 받아들인 다는 것. 사실은 말이 쉽지 너무 어렵죠.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태훈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발견했죠. '얘는 정말 약하지. 인격적으로나 영적으로 섬길 대상이구나' 작은 자를 섬기신 하나님의 삶이 내 삶 가운데 임함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순간의 행복 쫓다보면…반드시 좋은 날도 옵니다" 모든 것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자, 태훈 씨를 향한 시선도 달라졌다. '서로 사랑에 빠졌다' '귀여워 죽겠다'라는 말이 시종일관 나올 정도로 긍정적인 마음이 넘쳐났다. 화가를 꿈꾸던 그는 사는 것에 바빠 그림 그리는 것을 잊고 살다가 아들로 인해 다시 그림도 그리게 됐다. "서로 사랑에 빠져야 될 것 같아요. 아이 자체를 존중해주고 타인의 삶과 비교하려는 태도를 없애려는 게 중요하죠. 결국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이에게 영향이 가거든요. 지긋이 바라보면 예쁜 부분이 있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높이를 맞추되 때로는 한 템포 물러서서 바라볼 필요성도 있죠." 그는 태훈 씨를 바라보면서 발견한 일상의 기쁨을 그림일기로 남기기 시작했다. 엉뚱한 태훈 씨의 어록과 함께 삶 속에서 찾은 소소한 순간이 기록으로 쌓여 특별한 삶으로의 변화를 이끌었다. 고통스럽기만 했던 예전의 삶이 어느덧 모자에게 '유쾌함'과 '소중함'으로 점철된 일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하루하루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행복에 대한 기준이 다르니까 결국 어디에 기준을 두냐에 따라 삶의 방향도 결정되죠. 하루만이라도 '행복을 위해 즐겨야겠다'는 마음이 큰 변화를 이끌었어요. 긍정적이고 늘 밝은 저희의 모습을 보고 요즘엔 주변사람들도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줍니다." 이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게 아닐 터다. 삶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자 치열하게 노력한 데서 빗어진 결과나 다름없다. 그러나 박상미 작가는 끝까지 이 과정들을 말로 옮기지 않았다. 책 속에서도 오로지 유머러스 한 감각만이 살아 움직일 뿐이다. 어쩌면 이것은 박상미 작가가 전하고픈 메시지이자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 자체일지 모른다. '나보다 힘든 이들이 수두룩할 것'이라며 수줍음마저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삶을 긍정하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 지온전히 전해졌다. "지금 세상엔 힘든 사람들로 넘쳐 나잖아요. 절망까지 거의 다 가기도 하고. 조금만 더 견뎌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무작정 인내하란 말은 아닙니다. 그저 방향을 조금 바꿔보라는 말을 건네고 싶어요. 결국 우리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자기 이치에 맞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소중하게 받아들여 보는 거에요. 그러면 분명 행복에 더욱 가까워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최상경 기자2018-06-07

한반도 통일을 구상함에 있어 통일을 먼저 이룬 독일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가 될 터다. 독일 통일 전후로 교회는 동서독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실천하면서 독일 사회의 통합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몸소 체험했던 독일 크레첼 목사(H.C. Werner Kratschell)는 현 상황에 필요한 한국교회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조명했다. 독일통일'교회역할'…"사회적 중재자였다" “1989년 11월 11일에서 12일까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잊지 못할 밤이 찾아왔습니다. 그날 저녁 베를린 중심에 있는 한 교회에서 교회 지도자와 믿는 정치인과 함께 정치적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단에 프랑스 기자가 다가와서 놀라운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28년간 목회활동을 해온 베르너 크레첼 목사는 당시 통일의 경험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940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질 무렵 장벽 안에 갇힌 동독사람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자발적으로 동독으로 들어가 신학공부를 계속했고, 목회활동을 하다가 통일의 역사 가운데서 중추적인 역할을 도맡았다. 이 맥락에서 크레첼 목사는 한국교회가 특히나 관심을 가질만한 한 가지 질문, 즉 ‘통일 과정에서의 교회의 역할’에 관해 폭넓은 조언을 이어갔다. 그가 먼저 강조한 교회의 역할은 ‘어떠한 극적인 상황에서도 안정과 침착함을 유지하는 태도’였다. 크레첼 목사는 “장벽붕괴와 독일통일 사이의 짧은 기간 동안 교회에서는 중요한 역할이 주워졌다”면서 “그것은 바로 나라의 안정과 비폭력을 유지시키는 일이었다”고 밝혔다. 1990년 두 독일 국가는 통일을 이뤘지만 이에 따른 역효과도 발생했다. 경제적으로 동독은 서독에 훨씬 뒤쳐져 있었고, 동·서독 간의 불균형은 장기간 해소되지 못한 과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교회들은 모든 이들의 갈급함을 영적인 위로와 격려로 채워갔다. 이를 설명함에 있어 ‘나눔의 미덕’ 강조한 크레첼 목사는 “교회가 동독 사람들의 어려운 상태를 위로하고, 명예직을 수여하거나 영적 공급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도록 했다”면서 “전 독일 교회에게는 ‘나눔의미덕’이 강조되고 통일 전에도 실천했듯이 동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서독의 부를 일부 나누어 주는 삶을 실행하도록 권면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통일 전후 과정에서 독일 교회는 중요한 ‘사회적 중재역할'을 수행했다고도 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뒤 5개월 가량은 과도기적 정부를 거쳤다. 공산주의자뿐 아니라 새로운 정당과 정치 그룹을 포함한 모든 기득권 세력들이 '대화의 장'으로 초대됐고, 정치적 공백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원탁회의’가 지속적으로 열렸다. 그는 “당시 ‘원탁 회의’를 교회가 주도했고 그 안에는 목회자들이 많이 속해 있었다”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이들이 중재 역할을 자임하며 민주화를 향한 첫 번째 단계에 참여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대화의 장' 가운데 하나님의 명철과 지혜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교회가 주도적으로 그 장을 만들며 통일을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결국 크레첼 목사는 현 상황에서 한국교회에 가장 필요한 건 ‘교류의 장’ 마련임을 강조했다. 교회의 역할은 “영적인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본질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정치 일은 정치가들에게 맡기고 교회는 남북의 영혼 구원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남과 북의 수많은 영혼들이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힘써야 한다. 이 교류를 통해 결국 큰 역사의 길이 한반도에 열릴 것임을 확신한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통일 과정 상 서독이 동독의 특별성을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본인들의 가치를 주입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이 같은 태도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낳았다”면서 “북한의 독특한 문화와 정체성을 먼저 인정하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이 서로를 인정하며 화해하면서 밝은 미래를 꿈꾸며 나아가야 할 때”라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박혜정 기자2018-06-01

우리의 인생은 크고 작은 변화가 번갈아 가며 펼쳐지는 변화의 연속이다. 자신의 뜻이었든지 그렇지 않았든지 이 수많은 변화는 스스로에게 깨달음의 시간이자 성숙할 수 있는 기회다. <부흥의 우물> 저자 김재호 교수는 하나님을 뒤늦게 인격적으로 체험했다. 이 후로 그의 인생이 변했다. 무엇보다 예수를 믿게 되면서 윤인구란 인물을 탐구하게 된 것이 그의 교육관을 뒤바꿨다. 그는 책에서 기독교 정신으로 부산대학교를 설립한 초대총장 윤인구의 교육철학을 조명하면서 이 시대 부모들과 교사, 교수들에게 교육의 본질을 제시한다. 진정한 부흥,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개인의 변화' "교사와 교수가 다음세대를 위해서 자기 삶을 다 던져 그들을 사랑하고 꿈과 노래를 심어주는 스승으로 산다면 생명이 생명을 낳는 것이다." <부흥의 우물> 저자 김재호 교수가 이 시대 부모와 교육자들에게 제안하는 메시지다. 김 교수는 40세에 성령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믿었다. 그리고 그는 확신했다. 하나님이 그가 윤인구란 인물을 파고드는 길로 인도했단 것을. 김 교수는 이 확신을 가지고 윤인구의 교육정신과 자신이 경험한 내면의 부흥 이야기를 책에서 풀어간다. 그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생명력 있는 부흥의 역사가 있기를 바랬다. "우리는 부흥을 이야기하면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생각하지만 그런 의미의 부흥이 아니다. 부흥은 하나님을 만나 내면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부흥을 통해 옆 사람이 또 부흥을 경험하고 그 다음사람에게도 부흥이 넘어가면 이것이 진정한 부흥. 부흥은 생명력 있게 퍼져나가야 한다. 하나님이 이 책을 내게 쓰게 하신 목적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기도 중 윤인구를 드러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가 찾아왔고 김 교수는 정말로 부산대학교 설립자이자 초대총장 윤인구의 교육역사를 탐구하고 조사하게 됐다. "공대출신으로 영상 촬영 음악 편집에 문외한이던 내가 내뜻과 상관 없이 2007년 부산대 문화콘텐츠개발원장이 됐다. 어떤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고심하고 기도하다가 윤인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김 교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이전엔 윤인구가 부산대학교 설립자이자 총장이라는 것 말고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윤인구의 정체가 하나씩 발견될 때마다 김 교수는 그의 교육정신에 감격했고 자신의 교육인생에도 전환점을 맞았다. "놀랍게도 윤인구는 단순한 대학 설립자가 아니었다. 20대에 일본과 미국, 영국까지 가 신학수업을 하고 온 선구적 신학자이자 부흥목사였다. 일제의 핍박 속에서 목회자이자 교육가로서 교육이 나라의 미래를 되살릴 중요한 길이라고 외친 분이었다. 이는 내가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공개되면서 알려진 것이다. 그 전까지는 부산대 관계자들마저도 몰랐다." 참된 교육정신, 아이들의 존재만으로 기뻐하는 것' 김재호 교수는 학생들의 존재만으로 기뻐하고 이들을 사랑했던 윤인구의 교육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윤인구의 교육이 단순히 가르치고 배우는 차원이 아니라 생명을 전하는 '새 생명 교육'이라고 말한다. "윤인구가 1949년도에 '교육과 종교'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던 자료를 발견했다. 강연 자료에서 그는 "교육은 버려진 차디찬 돌덩어리에서 혈맥이 뛰는 생명체를 조각해내려는 것이다. 교육가의 노력은 사람의 아들들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나의 가슴을 찔렀다." 사실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고 윤인구를 조명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가멜 교수'라고 불렸던 김 교수.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이 추구했던 세상적 가치관을 버리고 이전과다른교수가됐다. "나는 꿈 없는 청년 학생들을 불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학생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학생들과 꿈을 회복하는 것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고 놀랍게도 학생들이 꿈을 회복했다. 정말 벼랑 끝에 있으며 어려운 현실에 놓인 학생들에게 꿈을 꾸라는 메시지에는 생명력이 있단 것을 깨닫고 있다." 김 교수는 교육이 기독교적 본질을 따르기 위해서 생명력 있는 부흥이 우리나라 교육계에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우리나라 교육가들이 제자가 닮고 싶은 스승이 된다면 한국교회와 교육이 살아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부모와 교사, 교회는 대가 없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이들이 아름답게 변할 것이란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교육은 살아날 것이다. 현재 교수 교사들은 학생들이 닮고 싶은 스승이 되야 한다. 이러한 스승은 제대로 된 선생님이다." ▲<부흥의 우물>책 표지, 아르카

박혜정 기자2018-05-31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란 뾰족한 끝부분을 살짝 건드리면 어느새 큰 변화를 가져오는 상태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한 사람의 행동이 두세 사람 수십 명, 그 이상까지도 움직여 변화를 이끄는 '변화의 출발점'이다. 본지가 만나 본 가재울녹색교회 양재성 목사가 환경문제 해결이라는 거대한 과제 속에서 티핑포인트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양 목사의 태양광발전소 도입 실천을 시작으로 교회성도들과 이웃 더 나아가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 지역주민들이 시의 지원을 받아 태양광미니발전 설치에 참여하고 있다.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행복하게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양재성 목사. 그가 지역주민들과 함께 펼치고 있는 환경선교 이야기가 흥미롭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확보 실천, 미니태양광발전소 설치" "가장 먼저 환경문제해결을 시작했던 교회가 지금은 가장 환경에 둔감한 단체가 됐다. 사회의식적으로도 불행하고 신앙의식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1990년에 목회를 시작할 때 환경문제가 이 시대에 하나님이 교회에게 준 시급한 사명이라고 봤다. 선교의 중심축에 환경선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가재울녹색교회는 환경선교를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다." 서울시 북가좌동에 위치한 가재울녹색교회 양재성 목사의 말이다. 2014년에 개척교회를 시작한 그는 작은 교회의 목사지만 교회성도들과 함께 지구를 품고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양 목사가 교회에 미니태양광발전소를 도입하게 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환경문제를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소식을 접하면서 환경오염의 극심함을 절감했고 미세먼지 문제에 시달리는 오늘날을 경험하면서 대안책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방사능과 미세먼지 원인이 다 에너지 문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경험하면서 핵발전소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됐다. 핵폐기물을 10만년 이상을 안전하게 저장해야 하는데 사실상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요즘 미세먼지 문제도 날로 심각하다. 한 순간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다는 위기도 느꼈다. 미세먼지 주범은 화력발전소다. 결국은 핵발전과 화력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이다. 그 중 하나가 태양광 발전이다." 그는 바로 집과 교회에 미니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했고 이에 긍정적인 효과를 많이 얻었다고 말한다. "먼저 우리 교회에 미니태양광 발전소 1개 설치하고 집에는 2개를 설치했다. 발전소 1대를 설치하면 한 달에 8천원 전후의 전기요금이 절약된다. 미니태양광 발전소 설치 전에는 삼만 오천원 정도 전기요금이 나왔는데 미니 태양광 2개를 설치한 후 요금이 일 만원 전후로 나온다. 전기료도 많이 절약되고 있다. 서울시에서 미니태양광발전소 설치비를 충분히 지원해주고 있다. 보통 1대 미니태양광 발전소 설치를 기준으로 보통 70만원의 설치비가 드는데 서울시로부터 설치비의 대략 85~90퍼센트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양재성 목사의 환경을 위한 이 작은 실천은 교회 성도들과 지역사회에까지 이어졌다. 양 목사는 가재울녹색교회가 지역과 소통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만들어가는 교회로 자리매김하길 기도했고 현재 서울시와 함께 북가좌동 중심으로 에너지 자립마을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운동에는 교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동참하고 있다. "에너지마을 공식이름은 서대문녹색마을이다. 서대문구에 속해있는 에너지마을이다. 서울시는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의 일환으로 에너지 자립마을 운동을 펼치고 있다. 어떻게든 이 일을 돕고 싶어 교우들과 마을 주민들과 논의하는 중 참여하자는 결론을 얻었다. 주민조직과 제가 서대문구로부터 위탁 받아 운영하고 있는 아동센터의 부모들과 가재울 녹색교회 성도들 등이 주체가 돼 80가구를 모아 함께 에너지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가재울녹색교회 옥상에 설치된 미니태양광발전소ⓒ데일리굿뉴스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에너지마을자립운동 양 목사는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에너지 교육을 받고 태양광 미니발전시설을 설치하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띈다고 말한다. 마을주민들의 주택 옥상에 설치된 햇빛 발전소를 보면 그의 마음과 미래도 뿌듯해지는 느낌이다. "작년에 교인 중 한 분이 자신이 살고 있는 빌라에 미니태양광을 설치하고 싶어서 마을주민들에게 건의를 했다. 주민들이 서로 다같이 미니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열두 가구가 있는 빌라였는데 일곱 가구가 미니태양광발전을 설치했다. 옥상에 올라가면 일곱 개의 미니태양광발전소가 설치돼 있다." 그는 에너지자립마을 운동을 통해 미니 태양광발전소 설치 장려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가재울녹색교회 안에서 천연비누와 천연세제 만들기를 하고 있다. 우리교회 권사님이 이 일에 전문가다. 그래서 성도들과 모여 함께 천연제품들을 만든다. 교회 내 녹색성서학당과 생태영성학교를 열어 교회가 환경을 지키는데 앞장서도록 성경공부모임을 갖는다. LED 전등설치도 장려하고 있다. 한 해 스무 가구가 이에 참여하고 있다. LED 전구는 생태적이고 육체와 조감이 잘되기 때문에 눈에 피로도 적고 인간의 몸이 거부하지 않는 빛이다. 몸에 해롭지 않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에너지는 줄고 우리의 수명은 길어지는 것이다." 양 목사는 이러한 에너지 자립마을운동을 단순한 지역사회 업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교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이 운동에 임하고 있다. 그는 환경 속에 영성이 담겨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면서 자연을 가까이 하는 일이 곧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경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다. 잘 보전하고 가꾸는 일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사명이다. 창세기 1장 2절에서 이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이 동산을 잘 돌보고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환경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인 거다. 또한 창조세계는 하나님의 몸과도 같다.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과도 같다. 환경운동을 단순히 좋은 운동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인들의 진짜 신앙운동인 거다." 자연을 사랑하고 보존하며 존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앙을 지키는 것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창조세계를 잘 지키기 위해 우리는 속한 곳에서 아주 작은 것부터라도 실천해보자.

박혜정 기자2018-05-09

청와대가 지난 3월 26일 대통령 발의로 발표한 개헌안에 '토지공개념'이 명시되면서 사회적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청와대는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적 근거 마련'을 위해 토지 공개념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토지공개념이 사회적 불평등 해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단 의견이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이를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사회주의화 현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 가운데 본지는 이태경 헨리조지포럼 사무처장을 만나 기독교인들은 토지공개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들어봤다. 핸리조지포럼 이태경 사무처장 인터뷰 통해 밝혀 대통령 개헌안에 반영된 토지공개념이란 토지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공공의 재산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토지에 공공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즉 국가가 개인이 소유한 토지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다른 재화와 달리 천연자원인 토지에만 공개념이 적용된 이유는 무엇일까. 헨리조지포럼 이태경 사무처장은 이미 몇 해전부터 토지불로소득 같은 특권은 모두가 평등하게 누려야하는 권리라고 강조해왔다.8일 본지와의인뷰에서 그는 토지에 공공성을 적용하면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단언했다. 토지공개념적 정의실현을 접근하기 위해선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자신이 경제에 기여한 만큼 보상 받는 것이 정의롭다는 전제가 수반된다. 그런데 토지에는 토지자체의 가치가 노동력의 가치보다 높게 평가돼 정의로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속할 수 없고 빈부격차를 야기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 사무처장은 "한 사람이 자신의 노동력을 땅에 투입해만들어낸 가치가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흘러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땅과 땅 주인, 그 주인의 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이 땅 주변에 서서히 사회 기반시설 등이 들어서면서 땅이 좋은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러면서 토지가격은 급격히 상승한다. 동시에 이 땅의 토지소유권을 가진 주인은 따로 일 하지 않아도 오른 땅 값 덕분에 더 큰 재산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이 땅에서 일한 노동자의 임금은 토지가격처럼 오르진 않는다. 토지공개념은 지극히 기독교적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면 이와 같은 빈부격차 문제를 감소시킬 수 있으며 효율적이고 정의로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 사무처장은 "대한민국은 한 해 부동산 불로소득이 최소 300조가 넘는다. 그러나 이 소득에서 회수한 대부분의 금액을 사회복지에 사용하면 사회 소외계층과 약자를 돕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서 "개인이 토지를 독점하지 않고 토지불로소득을 공적으로 환수한 이윤을 사회가 여러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도인들은 토지공개념을 신앙의 연장선에서 바라봐야 한다"면서 "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이웃사랑과 행복을 실현할 수 있다"고제시했다. 그러면서 "토지는 인간의 생활에서 필요한 쌀, 옷과 같은 재화와 완전히 다르다. 토지와 같은 천연자원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들을 위해 선물로 주신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 만들거나 늘릴 수 없다"면서 "기독교 관점에서 바라볼 때 토지공개념은 옳은 조항이다. 토지를 비롯한 환경 및 천연자원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만인이 공유해야 한다"고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토지공개념 개헌을 두고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질문했다. 이 사무처장은 한국교회가 우리사회에서 영향력이 줄어든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교회가 먼저 세상의 빛과 소금 된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로 힘 있고 땅이 있는 교회들은 토지보유세를 높이자는 사회적 흐름에 맞춰 선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교회가 적극적으로 토지공개념에 대한 의제를 제안하고 토지보유세를 내는데 앞장선다면 교회를 향한 사회의 일부 왜곡된 시각이 교정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혜정 기자2018-04-23

35년동안 무신론자로 살면서 기독교인을 비웃었던 미국 강력계 형사가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는 과정에서하나님을 만났다. 현재 목사이자 한글번역책 <베테랑 형사 복음서 난제를 수사하다> 저자이기도 한 그는 하나님을 만난 후 세상에 복음을 열정적으로 증거하는 '복음의 증인'이 됐다. 미국 크리스천 브로드캐스팅 네트워크 'CBN뉴스'를 통해 월리스 목사의 신앙 이야기를 정리해 봤다. J. 워너 월리스, 첨단 과학수사 기법으로 복음 증명해 살인사건 전담 수사관 및 미제사건 담당 형사답게 날카로운 안목과 예리한 판단력을 가진 월리스 목사는 담당사건을 처리했던 기법으로 성경을 공부했다. 그러던 중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 본인의 성향에 딱 맞는 방법으로 만나주셨다고 고백했다. "사건을 수사할 때 내게 주어진 증거들을 가지고 사건 속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계속 질문한다. 이처럼 복음서가 말이 되는지 궁금해서 6불 짜리 성경책을 사 성경말씀 속 증언들을 샅샅이 파헤치고 분석했다. 말씀 속 증거들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달았다." 그가 복음을 신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성경말씀 속 증언들의 특징이 자신의 의심과 궁금증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증인들의 목격담이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수의 증인들이 같은 사건을 봤다면, 그들은 절대 같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퍼즐을 맞출 수 있는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마찬가지로 복음서에 이 같은 특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복음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과 후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 내 인생은 무(無)에서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죄인은 내가 감옥에 넣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착하고 선한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후 더러운 내 자신을 발견했고 나는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불필요한 신화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복음은 진리며 이는 내가 기독교인인 이유이기도 하다." 복음의 진리를자신의 괜한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월리스 목사는 성령의 역사를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미제 살인사건 수사기법을 적용해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지 못하거나 비판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는 미국 현지에서 2013년 '콜드케이스 크리스채너티(Cold-Case Christianity)' 출간을 시작으로 2016년에 '갓스 크라임 씬(God's Crime Scene)'2017년 '포렌식 페이스(Forensic Faith)'를 저술해 호평을 받았다. 특히 원제 '콜드케이스 크리스채너티(Cold-Case Christianity)'의 한글 번역본 <베테랑 형사 복음서 난제를 수사하다>가 2017년 국내에 발행되면서 독자들로부터 흥미진진하고 설득력 넘치는 책이라는 평을 받았다. 크리스천 포스트 기독교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복음을 통해 '놀랍도록 선명한 깨달음'을 얻었다면서 기독교는 자신이 형사로서 처리했던 어느 사건들만큼 설득력 있다고 전했다.

한혜인 기자2018-04-18

20년 동안 말레이시아 정글에 100개가 넘는 교회를 세운 박철현 선교사의 선교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영화 <파파 오랑후탄>이 19일 개봉한다. 이에 개봉 전인 18일 박철현 선교사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배우 염광호를 만났다. 배우 염광호 "말레이시아 원주민에게 감사" 19일 개봉하는 <파파 오랑후탄>은 원주민과 사랑에 빠진 '원주민 바보' 박철현 선교사의 말레이시아 정글 사역을 그린 영화다. 영화에는 선교사로서 감당해야 하는 삶의 애환과 천국 소망이 담겨있다. 박철현 선교사의 젊은 시절은 배우 염광호가 연기했다. 배우 염광호는 1985년생으로, 2011년 KBS 드라마 <브레인>을 통해 데뷔했다. 18일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GOODTV사옥 인근 카페에서 만난 배우 염광호는 영화 촬영 현장이었던 말레이시아 정글은 그야말로 예배의 현장이었다고 전했다. 촬영 전에는 스태프와 출연진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영화는 5년 전이었던 2013년에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제작비가 열악해 말레이시아 정글로 떠날 땐 이성관 감독과 저 둘뿐이었죠. 시작할 때는 막막했지만,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니까 단기 선교사들이 피디, 섭외, 오디오, 분장 등 적극적으로 영화 제작에 협력해줬습니다. 이후 제작팀은 말레이시아 정글에서 원주민을 설득했다. 그는 제작 초반에는 원주민들이 못하겠다고 도망 다녔던 탓에 촬영이 많이 지연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원주민들도 국내 제작팀에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도와줘 무사히 영화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이에 그는 원주민 도움 없이는 영화가 탄생할 수 없었다며 원주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에게 <파파 오랑후탄>은 소중한 영화다. 신앙적으로 가장 어려울 때 영화 촬영이 시작됐고, 영화를 찍으며 그의 신앙이 회복됐기 때문이다. 영화가 그의 삶에오아시스가 된 셈이다. 또, 말레이시아에서 박철현 선교사의 사역을 보며 도전을 받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박철현 선교사의 선교적인 태도와 생각을 배울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역사를 어떻게 펼쳐가시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의 영향으로 감사하게도 촬영 현장이 하나의 작은 교회가 되어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5년이 지나서 개봉하게 됐다. 그는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이 영화와 그의삶에 살아있는 말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 기독 문화가 대중적으로 사랑받길 원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기독 문화에는 세상이 따라올 수 없는 무언가를 하나님께서 채워주고 계신다 생각합니다. <파파 오랑후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 문화인들이 선한 경쟁을 서로펼치다보면 보다 희망적이고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나 문화의 산물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더불어 선교적 사명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영화는 파이오니아 21(대표 김상철 감독)이 배급하며, 함께하는사랑밭, 애플브릿지, 애플망고 선교회가 공동 제공한다. 영화는 필름포럼(02-363-2537)과 부평대한극장(032-503-3330)에서 개봉하며, 80명 이상 단체 관람 시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인근 극장에서 대관 상영이 가능하다.

박혜정 기자2018-04-16

"포기하는 것이 제일 힘든 길로 들어서는 것. 어떤 상황 속에서도 Do not give up."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자 플루티스트 장은도 목사의 말이다.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과 장애 때문에 어린시절 마음껏 공부하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만난 후 장애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음악예술사립대 출신 최초 장애인 플루티스트이자 목사인 장은도 목사는 자신의 모든 것이 '복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장은도 목사는 어린 시절에 술을 벗 삼는 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3살에 잘 걷고 뛰어 다니다가 척추로 바이러스가 들어가면서 열이 나 하반신부터 마비되는 소아마비 판정을 받았다. 영원히 완쾌되지 않고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 진단에 장 목사와 그의 가족들은 절망의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신앙생활을 하며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하나님의 자상함으로 극복해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내 인생은 실패자였다. 장애인으로 살 팔자, 고생할 팔자, 가난할 팔자,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이후엔 그 모든 팔자가 복의 근원이 됐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선배로부터 교회를 가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됐다. 선배의 말이라면 무조건 몸을 조아려야만 했던 시절이라서 그는 긴장이 앞섰지만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꿈에 교회를 갔다. 그렇게 만난 교회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예배장소에 들어가자마자 표현할 수 없는 평안함이 느껴져 눈물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신실한 친구들을 만났을 뿐 아니라, 지인을 통해 플루트를 접하게 돼 학교 기악 반에서 연주법을 배우면서 플루트와 평생 인연을 맺었다." 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의견과 달리 장 목사는 "네가 밟는 땅이 모두 너의 것이 될 것이다"는 말씀에 힘을 얻어 가장 즐거워하는 음악을 하기로 확신했다. 그는 독학으로 플루트를 불렀고, 아무 대학연습실을 들어가 보이는 형들에게 동냥레슨을 받으면서 연습했다. 작은 방이 딸린 레코드 가게에서 플루트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1년 후엔 신촌 종합학원 악기 선생님으로 일했다. 이렇게 늘 함께 한 플루트는 장 목사의 건강도 나아지게 했다. "심한 척추측만증 때문에 소화가 힘들었는데 악기를 분 다음부터 잘 됐다. 플루트를 하면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심폐기능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에게도 플루트와 거리를 두는 방황의 시기가 있었다. 그는 4년 동안 플루트를 하지 않고 다른 분야를 해보려고 교회음악계통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런데 이 공부가 오히려 제대로 된 플루트전공공부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장은도 목사가 플루트 즉흥연주를 선보이고 있다.ⓒ데일리굿뉴스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기로 장 목사는 4년 학사학위로 중앙대 대학원에 입학해 본격적인 플루트 전공을 20대 후반에 시작했다. 그는 29살 대학원 졸업을 하고 플루트를 가르치면서도 학부전공부터 시작하지 못한 것 때문에 스스로 반쪽자리 선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때, 대학원 논문지도 교수님 제안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여행 차 갔다가 오디션까지 보게 돼 비엔나음악예술사립대에 입학했다. "유럽학교에서는 실기 전공생을 뽑을 때 성적합격이 되더라도 학생을 가르치겠다는 선생님이 한 명도 없으면 입학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오디션에서 장애까지 있는 나를 책임지고 가르치겠다는 교수가 있었다." 장 목사는 입학 후 아내와 두 딸을 한국에 두고 홀로 하는 유학생활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기도의 힘으로 대학(4년) 대학원(4년) 최고연주자(2년) 과정을 6년만에 마쳤다며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졸업식때 지도교수님은 나를 껴안으면서 제자가 아니라 친구라고 말했다. 나는 교수님께 대한민국 학생 1호였다. 어린 나이에도 마치기 힘들다는 최고 연주자과정을 삼십대에 마친 것은 기적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덕분이다." 공부하지 못했던 '한'을 제대로 푼 그는 목사가 되기까지 많은 연단의 시간을 겪고 순종했다고 고백했다. "결혼해서 피아노 학원운영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부도 누려봤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교만해져 있었다. 교회에서 연주 봉사만 하면 된다는 생각들이 틈타면서 하나님께 헌신하겠다고 고백했던 초심을 잃었다. 하나님은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았던 나를 연단하셨고 마침내 나는 하나님께 순종해 목회의 길을 갔다." 현재 장 목사는 'D.C&Logos'라는 크리스천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방문 연주를 하고있다. 가족예배를 드리기 위해개척교회를 시작한장 목사는 음악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계속 알리겠다고 말했다. "음악선교에 뜻을 둔 학생들의 선생이자 목사로 살고 싶다. 음악선교를 통해 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각자의 은사에 맞게 그들의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

박혜정 기자2018-04-11

기독교인이라면 잘 알고 있는 한동대학교 초대총장 김영길 박사는 진화론을 전공했던 과학자였지만, 하나님을 만나면서 창조론으로 돌이켰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고 여전히 고백한다. 이제 그는 유엔아카데믹임팩트 한국협의회(이하 UNAI Korea) 회장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키는 참교육으로 세계의 여러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시민교육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여든에도 불구하고 공부해서 남 주는 것이 여전히 꿈이라며 교육의 철학을 지키고 있는김영길 박사이야기를 정리해봤다. 안동이 고향인 김영길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어리석어도 좋으니 어질어라'는 뿌리깊은 경천애인의 유교사상 가정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고향이 안동인 만큼 비행기를 많이 보고 자란 덕분에 자연스레 비행기 제작에 호기심이 많았고 금속재료공학을 전공하게 됐다. 그는 196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편지로 지금의 아내 김영애 권사와 연애를 시작했다. 아내는 그가 하나님을 믿게 해준 축복의 통로였지만, 그는 처음에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1974년 NASA연구원이 되면서 성경과 가까워졌다. NASA에서 첨단과학을 다루는 백여 명의 박사들이 매주 예배하며 찬송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도대체 저들이 왜 기쁘게 찬송하고 간절히 기도하는지 궁금해서 성경책을 읽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말씀이 과학적 논리에 맞지 않아 의심이 들었고, 그 의문들을 아내에게 제기하면 아내는 "너무 따지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는 대답만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김 박사가 깨달은 한 가지가 성경지식들을 한 번에 거리낌없이 맞춰지게 했고 그는 드디어 성경을 믿었다. "성경은 1600년 동안 각각 다른 장소와 관점에서 40여명의 기자들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능력이야기다." 그렇게 그는 예수님에게로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그 때 <지구의 해방>이란 책을 읽게 됐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확실한 답을 찾았다고 전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고 이유 모를 눈물도 흘렸다. 이러한 감격을 아내와 밤늦도록 나눴고, 아내와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논리와 이성으로 성경의 이야기를 판단하는 내 모습은 이제 없다." 주님을 만난 후 하나님이 예배하신 길을 따르게 돼 김 박사는 그가 만난 하나님을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전하고 싶은 소망 때문에 어렵게 귀국을 결심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삶도 이미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셨다. 1978년 12월, 12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유치 과학자로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과 교수로 왔다. 1980년 8월 C.C.C(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 '세계복음화성회, 창조냐 진화냐'를 주제로 개최되는 세미나에 그가 유일한 한국측 강사가 된 것이다. 1981년 1월에 그는 300여명의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창립한 '한국창조과학회'에 초대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이 때 자신을 바라보는 비판의 시선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분까지도 해결해주시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해주시는 귀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해외 유치(誘致)과학자로 갓 귀국한 제가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다는 비판적 기사가 실렸다. 또 연구하랬더니 창조과학이나 강의하러 다닌다는 색안경 낀 시선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미국에서 'NASA 체크 브리프 상'과 'IR-100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또한 김 박사가 풍산금속과 협력해 발명한 반도체 리드 프레임 'PMC-102'합금 제조기술이 독일에 수출돼 우리나라 최초의 '선진국 기술 수출 1호'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는 창조과학회에서도 날로 많은 연구업적을 쌓다가 1994년 순수 기독교신앙으로 교육하는 대학 초대총장 제안을 받았다. 그는 교육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스스로 기도를 많이 했고, 주변사람들 기도의 힘도 컸다. 그는 결단을 내리고 총장직을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그는 영어교육, 컴퓨터교육, 인성훈련을 위한 무(無)감독 시험제를 학교에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등 학생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글로벌 자질을 갖추도록 노력했다. ▲김영길 박사는 1994년부터 2014년 2월까지 한동대학교 초대총장으로 재임했다.(사진제공=신앙계)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심을 느껴 하지만 학교를 시작했던 이사장의 사업상 문제로 재정난이 심각했다. 몇 달간 교직원들 월급이 나가지 못한 상황 속에 국고금 지원을 받은 것으로 잠시 전용했다가 몇 달 후 원상복귀 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게 문제가 돼 그는 53일간 감옥생활을 했다. 감옥생활 중에서도 그는 그 안에서 복음을 전했다. 스승의 날엔 1천800여 명의 한동대 학생들과 학부모,교직원들이 감옥 밖에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주었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53일을 사용하셨고 하나님이 일하셨다고 고백했다. "신기하게도 제가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오히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동대가 자동홍보 됐고, 부족한 재정들이 채워져서 이전보다 더 많은 후원금이 모아졌다" 20년을 한동대 총장으로 재임하며 좁은 길을 걸어온 김박사는 2016년 5월,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그는 수명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했지만, 시편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평안한 마음으로 치료받고 모든 병이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김영길 박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음의 통로로 사용하시기 위해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허락하신 것을 믿고 고백했다. "치료를 잘 받게 하시고 독이 몸이 퍼지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김 박사는 UNAI Korea에서 그동안의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기구와 협력하여 국내외 세계시민 양성 교육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한편, UNAI Korea는 2010년 유엔에서 출범한 유엔아카데믹임팩트(UNAI)의 미션실행 주체로서, 국내외 고등교육(대학교) 및 학술기관과 협력해 고등교육과 세계시민교육 증진을 통한 글로벌 과제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김영길 박사의 자세한 간증은 <신앙계> 4월호에서 만날 수 있다.

한혜인 기자2018-04-10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자기소개서를 내야 한다. 왜일까? 회사 입장에서는 같이 일하게 될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알고 싶다면 성경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보면 된다. 베이직교회 조정민 목사가 신간 <예수는 누구인가?>를 출간했다. 요한복음을 바탕으로 쓴이 책은 한마디로 '예수님 소개서'다. 지난 6일 서울시 강남구 베이직교회 사무실에서 조정민 목사를 만났다. 요한복음 8가지 키워드 바탕…"진정한 예수 만나길" "교회는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곳이지 개인의 꿈을 이루는 곳이 아닙니다. 기자로 일할 때 제 야망을 갖고 입사했으니 첫 사회생활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회사의 목적과 내 꿈이 안 맞으면 갈등하죠.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요구하는 크리스천의 모습이 있습니다. 내 목적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면 신앙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조정민 목사(베이직교회)는 25년 동안 언론인으로 일하다 예수를 만난 후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MBC사회부·정치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뉴스데스크 앵커, 보도국 부국장,IMBC대표이사. 그의 이력을 보면 세상에서 성공 가도를 달려온 인생으로 보이지만, 예수를 만난 후 이 땅에서의 성공은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성경은 일종의 신입사원 안내 지침서입니다. 신앙의 세계에 입문한 이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죠. 새신자들이 예수님을 몰라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라며 예수를 소개하는 책을 썼습니다." 1951년 생인 조 목사는 MBC 기자로 입사한 후, 당시로는 드물게 대학원까지 나온 그를 회사가 충분히 대접해주지 않는다 생각해 내적 갈등을 겪었다. 이후 시행착오를 거치며 회사에 적응했다는 그는 진작에 회사에 대해 알았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불교 신자였던 그는 교회에 다니는 아내를 말리기 위해 교회에 출석하다 하나님을 만났다. 그래서 비기독교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이에 새신자와 비기독교인이 쉬운 언어로 예수님을 알아가길 바라며 이 책을 썼다. <예수는 누구인가?>는 요한복음의 8가지 키워드를 통해 '예수가 소개하는 예수'를 담아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들의 문 △선한 목자 △부활 생명 △길과 진리 △포도 나무 △내가 그라 등 8가지 키워드로 자신을소개한다. 타인에게 듣는 예수가 아닌 예수님이 직접 소개하는 예수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바르게 알 수 있다는 것이 조 목사의 설명이다. "초신자여도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는 데에 문제가 없도록 예수님에 대해 쉽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첫 번째 키워드인 '생명의 떡' 부분만큼은 꼭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내가 네 안에 있겠다", "내가 너와 하나 되겠다"고 말하는 부분이기 때문이죠.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비결입니다." 조 목사는 예수님을 모르면서 본인이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예수는 누구인가?>는 새신자를 위해 쓴 책이지만, 기존에 교회를 다니고 있던 성도들도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예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또 진정한 전도를 위해서는 기독교인들이 먼저 회복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는 말씀처럼 '사랑'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사랑은 입으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지기에 그리스도인이 먼저사랑의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되면, 올인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게 됩니다. 자발적으로 종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시고, 그 사랑을 깨달으면 우리는 스스로 그분의 종이 되길 자처할 겁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좋은 선물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사로운 것들에 마음이 향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이긴 예수님을 만나면, 이 세상 것들은 비교할 가치조차 없을 만큼 무의미해진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조 목사는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만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159페이지로 구성된 이 책은 5천 원. 커피 한 잔 값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음료 대신 복음이 담긴 책을 선물하는 건 어떨까. 조 목사와 두란노서원의바람대로 이 책이 전도지로 활용되어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알게 되는 사람이 늘어나길 바란다. ▲조정민 목사 신간 <예수는 누구인가?>, 두란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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