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현 기자2021-08-18

“방송연예계에 하나님께 영광 올리는 엔터테이너를 양성하는 기업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게 저희 회사라면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책임져주세요.” 한국 최초의 장애인 배우 강민휘를 양성한 피플지컴퍼니 김은경 대표의 기도다. 1996년도부터 연예인 매니지먼트를 진행해온 김 대표는 배우 이일화, 박영규, 박상면 등 걸출한 배우들의 매니지먼트도 담당했었다. ▲김은경 대표가 양성한 장애인 배우들ⓒ데일리굿뉴스 그러던 중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를 보면서 장애인 배우 양성을 마음먹게 됐고 2004년부터 지금까지 10여 명의 장애인 배우를 데뷔시켰다. 김 대표는 이희아를 보면서 “장애인들도 충분히 공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비장애인들이 흉내 못나는 엔터테이너의 달란트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열정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장애인 배우에게 매일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현재 한 집에서 생활하며 밀착 지도하고 있다. 강민휘의 하루 일과인 운동, 연기, 춤 배우기, 노래 배우기 등을 함께 하고 있다. 함께 생활하며 어려운 점은 없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며 얻고 있다고 고백했다. 처음에는 돕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다고 생각이 변했다는 것이다. 강민휘는 15년여 동안 매일 꾸준히 연습하고 훈련한 끝에 이제는 연예계에서 인정받는 장애인 배우가 됐을 뿐만 아니라 김 대표에게 지하철 노선을 알려줄 만큼 스스로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강민휘는 “연기할 때 너무 좋다”며 “친구들이 요즘 나를 보면 예전과 다르게 칭찬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강민휘의 성장에 많은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 김 대표의 큰 기쁨 중 하나다. 김 대표는 “장애인 부모들이 ‘내 아이도 가능성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되고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 소망이 생긴다”고 전했다. 피플지컴퍼니에서는 장애인 배우 뿐만 아니라 일일드라마 <빨강 구두>에서 활약 중인 신인 배우 차승우 등 비장애인 배우들도 함께 연기 수업을 받고 있다. 대부분 김 대표의 비전에 함께하고 싶어 찾아온 이들이다. 배우 차승우는 “피플지컴퍼니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과 비전이 배우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었던 저의 비전과 맞아서 합류하게 됐다”고 밝혔다. ▲피플지컴퍼니에서 개설한 유튜브 채널 <피플지TV>ⓒ데일리굿뉴스 김 대표는 최근엔 코로나19로 돌봄 시설이 문을 닫자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을 위해 유튜브 채널 <피플지TV>도 개설했다. 장애인 배우들이 출연해 요리부터 연기, 영어 등을 선보여 집에서도 쉽게 따라하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김 대표는 장애인 배우들을 육성하며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장애인 배우와 비장애인 엔터테이너를 양성하는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10년 동안 장애인 배우를 양성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교재도 제작하고 있다. 올해 말에 교재를 출시해 유튜브로 장애인 배우의 연기지도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김 대표. 자극적인 것이 주목받는 방송연예계에서 복음을 전하길 꿈꾸고 있다.

김예지 기자2021-08-23

2002년을 뜨겁게 달궜던 한일월드컵 당시 ‘오! 필승코리아’라는 문구를 직접 쓰며 서체로 개발해 이목을 끌었던 인물이 있다. 바로 손영희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손 작가는 월드컵 이후 지금까지 작품활동과 재능기부에 힘써왔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작품활동에 타격을 입었지만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공감의 장을 열었다. 손 작가의 글씨 작품을 모은 전시회는 경기도 양평에서 만날 수 있다.300여 평의 공간에 종이와 천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작품 100여 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그 중에서도 단단한 종이 위에 새겨진 ‘아버지’라는 큰 글씨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손 작가의 전시에는 ‘아버지’라는 글씨가 항상 등장하는데, 이 세 글자엔 손 작가의 신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손 작가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자라면서 아버지라는 호칭을 불러보지를 못했다"며 "기독교 신앙을가지면서 하나님 아버지라는단어가 입에서 터지면서 너무 좋았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작품 곳곳에는 기억 속 아버지의 존재를 더듬어보고, 부모의 심정을 적은 애틋함이 새겨져 있다. 손 작가는 종이 위에 바느질하듯 글씨를 새겨 만든 작품들 속에 진정성을 담았다. 무엇보다 손 작가는 관람객들이 글씨를 통해 감동받을 때 진정성이 전달되는 것 같아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손 작가는 "바닥에 앉아서 우시는 분들이 꽤 있었다"며 "그럴 때마다 저도 감사해서 같이 운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라는 글씨에서 저와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절절함 속 아버지를 표현해 낸 작품들을 지나면 산뜻하면서도 위로가 되는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관람객들은 다양한 성경말씀을 표현한 작품들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관람객 A씨는 "마음에 평화가 필요해서 그런지 ‘내게 강 같은 평화’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제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느낌이 들었다"며 "글씨전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가는 시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관람객 B씨는 "9월부터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여기서 ‘걱정하지 말아요’라는 문구가 자주 봤던 글귀임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며"두려움과 걱정에서 다시 힘을 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손 작가가 모든 작품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데는, 손 글씨로 전할 수 있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손 작가는 앞으로도 글씨를 통해 위로를 전하고 세계 속에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전시는 8월 한달 간 계속되며, 손 작가가 전시장을 지키며 관람객에게 직접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할 계획이다.

김신규 기자2021-09-15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전북 전주시 완산구 각시미용실은 빨간 티셔츠와 재킷, 바지 차림의 ‘빨간 천사’로 불리는 김미선 원장(62). 김 원장은 미용실 옆 20평 남짓한 공간에 여러 구제 옷을 정리하며 머리를 손질하러 오는 손님들에게 개당 1,000∼5,000원의 저렴한 가격에 판다. 이들 구제 옷은 미용실 단골들이 주로 가져다준다. 또 타지에서도 물품을 직접 기부 받기도 한다. 옷가지 외에도 신발이나, 가방, 책 등도 가끔씩 받아 손님들에게 판매한다. 옷을 구매한 손님들은 사랑의 열매 로고가 그려진 상자에 돈을 넣는다. 이렇게 상자에 모인 돈은 김 원장이 모두 사랑의 열매에 기부한다. 지난 1월에는 지난해 판매 수익금 236만 원을 전달했다. 김 원장이 이렇게 구제 옷을 팔아 이웃을 위해 기부하기 시작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지난 4월부터는 매월 50만 원을 사랑의 열매에 보내고 있다. 한 달 수익금이 그 정도는 되지 않지만, 돈을 보태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다. ▲기부받은 구제옷을 팔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전주 각시 미용실 김미선 원장, 사진은구제 옷을 정리하는 김 원장. (사진출처=연합뉴스) 김 원장은 구제의류를 모아 판매하는 것과 관련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옷이 모일 줄 몰랐다”며 “새것과 다름없는 옷을 받아서 팔고, 이 돈으로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게 큰 기쁨이자 보람”이라고 말했다. 당초 김 원장은 27여 년간을 주위의 독거 장애인 등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무료식사를 제공하는 봉사를 해왔다. 전주 영광교회 권사인 김 원장은 남편 박상권 장로와 함께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실천해왔다. 김 원장은 “비록 없는 형편에 1,000~2,000원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생각으로 주변의 소외계층들을 위해 집에서 중식을 제공해왔다”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40여 명에 달하는 독거 장애인 등 불우이웃들을 위해 본인의 집에서 식사를 제공해온 것이다. 이를 위해 오전 5시에 일어나 국과 반찬을 준비해 정성껏 음식을 마련해 대접했다. 특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에도 음식을 차려놓은 덕분에 알아서 밥을 먹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김 원장은 식사 외에도 무료 이발과 쌀 등을 제공하는 선행을 베풀었다. 그러다보니 도움을 받는 장애인들 가운데는 김 원장을 ‘엄마’라고 부르며 따른다. 한 손이 불구인 어떤 장애인은 주변 아파트를 돌며 헌옷가지들을 주워 와서 김 원장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이런 정성에 너무 감사하고 감격했다고 김 원장은 전했다. ▲미용실에서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는 전북 전주시 각시미용실 김미선 원장 (사진출처=연합뉴스) 노인들에게는 3,000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머리를 손질해주는 주는 것도 김 원장의 또 다른 봉사차원의 서비스다. 처음에는 자녀들이 김 원장 부부의 선행을 말렸다. 6남매라는 적지 않은 자녀들을 키우면서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삶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김 원장 부부는 여행이나 외식 등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검소한 생활을 해왔다. 자녀들의 만류와 반대에도 이웃을 위한 봉사와 섬김을 멈추지 않자 자녀들도 이제 더 이상 부모의 선행과 섬김을 만류하지 않는다고 한다. 코로나19로 그동안 해오던 중식 대접을 못하게 된 만큼 김 원장은 "배가 고파 미용실 앞을 서성이던 손님, 신체 일부분이 없어 움직이지도 못하던 장애인 손님, 모두 어떻게 끼니를 해결하고 있을지 걱정"이라며 예전의 중식 대접을 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남편 박 장로는 적십자봉사 주민자치위원장으로, 그 자신은 전주시 사랑의열매 단장을 맡고 있는 김 원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지금의 봉사활동을 계속 할 것”이라면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남을 진정으로 돕고 섬길 수 있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는 소망을 전했다.

천보라 기자2021-09-09

"엄마 나 머리 아파."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의 모임 '도너패밀리(Donor Family)' 회장 강호(66) 목사가 기억하는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다. 2000년 3월 23일, 당시 고등학교에 입학한 강석민 군은 두통을 호소하다 쓰러졌다. 자발성 뇌출혈이었다. 강 목사는 하루아침에 뇌사 판정을 받은 아들을 보며 황망했다. 하지만 문득 신체가 건강한 아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장기기증을 떠올렸다. 신학생 시절부터 생명 존중에 대해 깊이 생각해왔던 터라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가족도 강 목사의 뜻에 동의했다. "아들이 쓰러진 지 3일째 되던 날이었어요. 아들의 회복기도를 하고 있는데, 의사가 와서 뇌 석회화되고 폐에 물이 찰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바로 장기기증하겠다고 했죠." 강 군이 남긴 각막과 폐, 심장, 간 등 9개의 장기는 8명의 생명을 살렸다. 뼈와 연골, 피부 등 인체조직은 화상이나 조직 손상으로 고통받는 환자 100여 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했다. 강 목사 부부 역시 이날 장기기증에 서약했다. 강 목사는 아들이 없는 현실은 애통하지만, 누군가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장기기증을 두고 "아들을 두 번 죽인 거 아니냐"는 말로 강 목사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과 만남은 이때쯤 시작됐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을 위해 마련한 모임에 참석했다. 현재 강 목사가 회장으로 있는 도너패밀리의 전신이다. 강 목사는 모임에서 같은 아픔을 지닌 유가족들과 서로 위로하며 지탱할 힘을 얻었다. "유가족들은 가족모임이 잘 안 돼요. 생일이나 명절 등이 되면 오히려 심란해요. 당사자도 힘들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불편할 수 있죠. 그런데 도너패밀리 모임에서는 나 혼자만의 아픔이나 괴로움, 고독이 아니라 유대감, 연대감이 느껴져요. 그렇게 서로 극복해 나가는 거죠." 도너패밀리는 현재 음악 및 미술 심리상담과 전국 권역별 소모임, 캠프, 전시회 등 뇌사 장기기증인을 기리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D.F(도너패밀리) 장학회'를 출범하고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강 목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과 예우가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매일 7.5명이 장기기증을 기다리다 결국 사망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뇌사 장기기증인 수가 크게 저조한 원인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아들을 지금 눈앞에서 볼 수는 없지만, 같은 하늘 아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장기기증은 축복의 통로예요. 물론 상실의 아픔이 있지만, 기증을 통해서 생명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지킬 수 있거든요.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몸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풍성함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김신규 기자2021-09-15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전북 전주시 완산구 각시미용실은 빨간 티셔츠와 재킷, 바지 차림의 ‘빨간 천사’로 불리는 김미선 원장(62). 김 원장은 미용실 옆 20평 남짓한 공간에 여러 구제 옷을 정리하며 머리를 손질하러 오는 손님들에게 개당 1,000∼5,000원의 저렴한 가격에 판다. 이들 구제 옷은 미용실 단골들이 주로 가져다준다. 또 타지에서도 물품을 직접 기부 받기도 한다. 옷가지 외에도 신발이나, 가방, 책 등도 가끔씩 받아 손님들에게 판매한다. 옷을 구매한 손님들은 사랑의 열매 로고가 그려진 상자에 돈을 넣는다. 이렇게 상자에 모인 돈은 김 원장이 모두 사랑의 열매에 기부한다. 지난 1월에는 지난해 판매 수익금 236만 원을 전달했다. 김 원장이 이렇게 구제 옷을 팔아 이웃을 위해 기부하기 시작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지난 4월부터는 매월 50만 원을 사랑의 열매에 보내고 있다. 한 달 수익금이 그 정도는 되지 않지만, 돈을 보태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다. ▲기부받은 구제옷을 팔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전주 각시 미용실 김미선 원장, 사진은구제 옷을 정리하는 김 원장. (사진출처=연합뉴스) 김 원장은 구제의류를 모아 판매하는 것과 관련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옷이 모일 줄 몰랐다”며 “새것과 다름없는 옷을 받아서 팔고, 이 돈으로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게 큰 기쁨이자 보람”이라고 말했다. 당초 김 원장은 27여 년간을 주위의 독거 장애인 등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무료식사를 제공하는 봉사를 해왔다. 전주 영광교회 권사인 김 원장은 남편 박상권 장로와 함께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실천해왔다. 김 원장은 “비록 없는 형편에 1,000~2,000원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생각으로 주변의 소외계층들을 위해 집에서 중식을 제공해왔다”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40여 명에 달하는 독거 장애인 등 불우이웃들을 위해 본인의 집에서 식사를 제공해온 것이다. 이를 위해 오전 5시에 일어나 국과 반찬을 준비해 정성껏 음식을 마련해 대접했다. 특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에도 음식을 차려놓은 덕분에 알아서 밥을 먹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김 원장은 식사 외에도 무료 이발과 쌀 등을 제공하는 선행을 베풀었다. 그러다보니 도움을 받는 장애인들 가운데는 김 원장을 ‘엄마’라고 부르며 따른다. 한 손이 불구인 어떤 장애인은 주변 아파트를 돌며 헌옷가지들을 주워 와서 김 원장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이런 정성에 너무 감사하고 감격했다고 김 원장은 전했다. ▲미용실에서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는 전북 전주시 각시미용실 김미선 원장 (사진출처=연합뉴스) 노인들에게는 3,000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머리를 손질해주는 주는 것도 김 원장의 또 다른 봉사차원의 서비스다. 처음에는 자녀들이 김 원장 부부의 선행을 말렸다. 6남매라는 적지 않은 자녀들을 키우면서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삶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김 원장 부부는 여행이나 외식 등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검소한 생활을 해왔다. 자녀들의 만류와 반대에도 이웃을 위한 봉사와 섬김을 멈추지 않자 자녀들도 이제 더 이상 부모의 선행과 섬김을 만류하지 않는다고 한다. 코로나19로 그동안 해오던 중식 대접을 못하게 된 만큼 김 원장은 "배가 고파 미용실 앞을 서성이던 손님, 신체 일부분이 없어 움직이지도 못하던 장애인 손님, 모두 어떻게 끼니를 해결하고 있을지 걱정"이라며 예전의 중식 대접을 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남편 박 장로는 적십자봉사 주민자치위원장으로, 그 자신은 전주시 사랑의열매 단장을 맡고 있는 김 원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지금의 봉사활동을 계속 할 것”이라면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남을 진정으로 돕고 섬길 수 있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는 소망을 전했다.

천보라 기자2021-09-13

5년간 남성으로 살았던 탈 트랜스젠더 이효진 전도사. 그는 지난 시간을 두고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왔다"고 회고한다. 이 전도사의 왜곡된 성 가치관은 7살 때 겪은 성폭행에서 비롯됐다. 당시의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아 그를 갉아먹었다. "힘이 있었다면" "여자가 아니었다면" "남자였다면"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분노와 혐오로 이어졌다. 그가 또래 여자친구들과 다른 성향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남성으로 살면 행복할 수 있겠다고 상상했다. 원피스, 치마보다는 바지를 선호했고 인형놀이보다는 총싸움이나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이성보다 동성에 관심이 많고 끌렸다. 사춘기로 접어들고 2차 성징이 찾아오자 혼란은 가중됐다. 이 전도사는 자신에게 찾아온 신체적인 변화가 힘들다 못해 혐오스러웠다. 대학생이 돼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억지로 화장하고 치마도 입어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런 이 전도사에게 첫 사회생활은 트랜스젠더에 눈을 뜨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스타일리스트 일을 돕게 된 그는 트렌드에 민감한 이들과 생활하며 기존의 틀을 파괴하는해체주의에 빠졌다. 그동안 간신히 붙들고 있던 성 인식도 흔들렸다. "당시 패션계는 이미 남성적인 감각을 여성복에 도입한 매니시룩이 유행이었어요. 남자처럼 옷을 입어도 색안경 끼고 보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이 없었죠. 오히려 게이나 동성애를 힙하게 보는 문화였어요. 그런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까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하게 됐어요." 하지만 이 전도사는 일반적인 동성애와는 달랐다. 여자로서 여자를 좋아하는게 혐오스러웠다. 특히 남자들이 자신을 여자로 대하는 게 싫었다. 그에게 남자는 경쟁상대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남자만 되면 모든 게 행복해질 것 같았다. 유튜브에서 본 FtM(female to male,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사람)의 영상은 그가 결심을 굳히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남자가 되는 과정은 감기약 처방처럼 간단했다. 이 전도사는 당시 20만 원으로 '성 정체성에 장애가 있다'는 정신과 진단서를 쉽게 발급받았고, 바로 남성 호르몬을 투약할 수 있었다. 수염부터 목소리까지 완벽한 남성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데는 1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겉모습만 바꾼 그가 마주한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트랜스젠더가 된 후 처음에는 만족감을 느꼈어요.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어요. 원하는 모습을 얻으면 얻을수록 점점 더 공허하고, 갈급함만 커졌어요. DNA나 뼛속까지 남성으로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이 전도사는 "남성으로 살면서 매 순간 한계에 부딪히며 자괴감이 들었다"며 "달라진모습에서 이질감을 느꼈고 분리 장애와 우울증, 공황장애, 대인 기피증까지 생겼다"고 고백했다. ▲트랜스젠더 당시 이효진 전도사의 모습 ⓒ데일리굿뉴스 이 전도사가 방황하던 때 그의 손을 잡은 건 교회에 다니는 지인이었다. 그는 "교회에 가볼래?"라는 지인의 한마디에 이끌려 난생처음 교회에 가게 됐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됐다. "심령이 가난하니까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거예요. 처음으로 알 수 없는 기쁨을 맛봤고 갈급했던 마음이 온전히 채워졌어요. 내가 틀렸구나, 그동안의 일들이 성의 문제가 아닌 내면의 문제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어요." 이 전도사가 문제의 핵심을 깨닫자 7살 때의 끔찍한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순간 들리는 용서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네'라고 답했고,그때 성령이 임했다. 성령은 이 전도사의 내면을 바꿔놓았다. 5년간 남성의 모습으로 살아온 그가 2018년 남성 호르몬 투약을 중단한 것이다. 물론외형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았다. 투약 중단 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자도 남자도 아닌 모습으로 살았다고 밝혔다. 굵은 수염과 허스키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호르몬 투약에 따른 후유증으로 망가진 간과 생식기, 면역체계 등이 회복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실제 경험한 트랜스젠더의 삶은 상상과 달리 결코 만만치 않다"며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후회와 절망에 빠져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경고했다. 그는 최근 미디어와 SNS를 통해 동성애와 트랜스젠더가 미화되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그 역시유튜브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누군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언급이라도 해줬다면, 이후에 생겨날 모든 부작용과 문제점들에 대해 미리 알려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봐요.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이들이 남자면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청소년 때부터 제대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예요." 특히 이 전도사는 트랜스젠더나 동성애 문제는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라며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역할을 당부했다. 그는 "왜곡된 성 가치관으로 혼란을 겪는 성도들이 많지만 정죄하는 시선으로 인해 대부분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난다"며 "교회와 성도들이 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특별한 관심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기도뿐"이라고 강조했다. "복음이 먼저예요. 저를 보세요. 복음이 들어가면 다 해결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이 상처받아 떠나지 않도록 정죄하거나 고치려 하지 마시고, 똑같이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려주고 기도해주세요. 빛이 들어가면 어둠은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천보라 기자2021-09-09

"엄마 나 머리 아파."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의 모임 '도너패밀리(Donor Family)' 회장 강호(66) 목사가 기억하는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다. 2000년 3월 23일, 당시 고등학교에 입학한 강석민 군은 두통을 호소하다 쓰러졌다. 자발성 뇌출혈이었다. 강 목사는 하루아침에 뇌사 판정을 받은 아들을 보며 황망했다. 하지만 문득 신체가 건강한 아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장기기증을 떠올렸다. 신학생 시절부터 생명 존중에 대해 깊이 생각해왔던 터라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가족도 강 목사의 뜻에 동의했다. "아들이 쓰러진 지 3일째 되던 날이었어요. 아들의 회복기도를 하고 있는데, 의사가 와서 뇌 석회화되고 폐에 물이 찰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바로 장기기증하겠다고 했죠." 강 군이 남긴 각막과 폐, 심장, 간 등 9개의 장기는 8명의 생명을 살렸다. 뼈와 연골, 피부 등 인체조직은 화상이나 조직 손상으로 고통받는 환자 100여 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했다. 강 목사 부부 역시 이날 장기기증에 서약했다. 강 목사는 아들이 없는 현실은 애통하지만, 누군가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장기기증을 두고 "아들을 두 번 죽인 거 아니냐"는 말로 강 목사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과 만남은 이때쯤 시작됐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을 위해 마련한 모임에 참석했다. 현재 강 목사가 회장으로 있는 도너패밀리의 전신이다. 강 목사는 모임에서 같은 아픔을 지닌 유가족들과 서로 위로하며 지탱할 힘을 얻었다. "유가족들은 가족모임이 잘 안 돼요. 생일이나 명절 등이 되면 오히려 심란해요. 당사자도 힘들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불편할 수 있죠. 그런데 도너패밀리 모임에서는 나 혼자만의 아픔이나 괴로움, 고독이 아니라 유대감, 연대감이 느껴져요. 그렇게 서로 극복해 나가는 거죠." 도너패밀리는 현재 음악 및 미술 심리상담과 전국 권역별 소모임, 캠프, 전시회 등 뇌사 장기기증인을 기리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D.F(도너패밀리) 장학회'를 출범하고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강 목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과 예우가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매일 7.5명이 장기기증을 기다리다 결국 사망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뇌사 장기기증인 수가 크게 저조한 원인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아들을 지금 눈앞에서 볼 수는 없지만, 같은 하늘 아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장기기증은 축복의 통로예요. 물론 상실의 아픔이 있지만, 기증을 통해서 생명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지킬 수 있거든요.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몸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풍성함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김신규 기자2021-09-08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된장이 먹고 싶다 하셔서, 집에서 만든 걸 가져다드렸죠.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됐어요. 그 할머니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찡해서 마음이 좋지 않아요.” 지난 2005년부터 홀몸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는 봉사를 해온 울산동구여성봉사단의 김귀선 회장(65). ▲김귀선 회장ⓒ데일리굿뉴스 37년여 경력 베테랑 자원봉사자인 김 회장은 매주 금요일마다 20명 가까운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도시락을 드리는 일은 그에게 보람이자 즐거움이다. 김 회장이 동네 독거노인 등 어려운 형편에 있는 노인들에게 도시락 배달봉사에 나선 것은 그가 울산 동구 전하2동의 반장으로 활동할 당시 반 회보를 통해 도시락 봉사자 모집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6개월 후부터 차량으로 동네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봉사를 하게 됐다. 동네 반장으로 활동하다보니 동네 지리를 속속들이 잘 안다는 것이 물론 도시락 배달봉사는 단순히 도시락만 전달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도시락을 받는 주 대상 노인들이 홀몸노인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랜 시간 홀로 지내다보니 건강도 좋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필히 건강 점검 및 최악의 경우 생사 확인까지 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할 때도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가 되면서 대다수 대면 봉사에 큰 제약이 생겼다. 그래서 도시락 배달봉사는 더 중요해졌다. 전염병에 가장 취약한 노인들을 일일이 만나서 건강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이 오랜 시간 도시락 배달봉사를 하는 과정에서 만난 노인들 가운데는 요양병원에 들어가는 것이나, 병원 면회 때의 만남이 마지막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드물게는 집에서 고독사하는 노인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한동안 마음이 시린 고통을 겪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복지가 많이 좋아진 측면이 있음에도, 현장을 돌아보면 꼭 필요하지 않은 곳에 복지 혜택이 남발되는 사례도 접하게 된다. 때문에 김 회장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꼭 필요한 맞춤형 혜택이 돌아가는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 회장은 단순히 도시락만 전달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통장 수당으로 선풍기나 반찬 등을 마련해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가 하면, 대한적십자사 봉사회에 가입해 취약계층 결연, 재난 지원, 김장 등 다양한 봉사를 펼쳐오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동구 여성단체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김 회장의 봉사가 특히 차량을 이용한 봉사이다 보니 노인들의 목욕을 위한 이동이나, 코로나19 예방접종을 위해 차량 요청을 하는 동네 경로당의 요청에도 언제나 먼저 나선다. 이웃을 위한 다양한 활동과 헌신을 인정받은 김 회장은 올해 울산시자원봉사센터 선정 ‘울산 자원봉사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보람도 있었다. 오랜 봉사를 하는 과정에서 김 회장은 남편과 함께 경북 경산의 호산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홀몸노인 등에게 전달할 도시락을 운반하는 모습. ⓒ데일리굿뉴스 이처럼 워낙 분주하게 활동하는 김 회장에게 주변에서 “도대체 무슨 직장을 다니기에 그렇게 바쁘냐”고 묻기도 한다. “그런 분들에게 ‘자봉(자원봉사) 주식회사에 다닌다. 월급날은 매달 32일이다’라고 대답하면, 어리둥절하다가 곧 농담을 이해하십니다. 간혹 몸이 아프거나 생활에 지쳐서 봉사할 여유가 없다는 분들도 계시는데, 저는 반대로 그런 분들에게 오히려 봉사를 권합니다. 남을 돕는 일에 집중하면서 갱년기나 우울증은 모르고 넘어갔어요.” 김 회장은 특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시대의 흐름에 의해 봉사의 개념이 달라져야 함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이제는 봉사 시간을 기부해서 다른 형태의 혜택을 돌려주거나, 아예 일정 부분의 금전적 보상을 하는 등의 형태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선의에만 기댈 것이 아닌, 제도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예지 기자2021-09-06

코로나19 장기화로 고용불안과 실업문제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많다. 이를 통해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청년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화하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화선 작가의 묵상집이 청년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평범한 일상 속 받은 은혜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들. 이화선 작가는 3년째 매주 1~2개씩 SNS를 통해 글과 그림을 공유하고 있다. 현재는 크리스천 청년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2만여 명의 팔로워를 보유 중이다. 작년과 올해, 이 작가는 하나님의 위로와 따뜻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을 모아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모든 작품은 그가 일상 속 묵상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물론 평소 소심하고 자존감이 낮은 자신의 모습과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시는 모습 등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 작가는 "첫 번째 책 표지에 한 아이가 넘어져 있는데 사실 그게 내 모습"이라며 "항상 넘어지고 실수투성이인 나를 하나님께서는질책하지 않으시고매번 위로해 주셨다"고 설명했다. ▲이화선 작가가 말씀묵상 그림일기를 작업 중이다. ⓒ데일리굿뉴스 SNS에선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는 청년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신앙생활을 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공감된다는 반응이다. 신앙생활에서 관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한 청년은 따뜻한 글이 신앙 회복에 도움이 됐다고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신앙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자신의 글과 그림을 통해 다시 일어날 힘을 얻고, 은혜의 간증을 나눌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게 이 작가의 고백이다. 그는 "평소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도 아니고 한발 뒤로 빼는 사람인 저와 비슷한 청년들이 많을 것"이라며 "잘하는 게 없어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살아가고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이 작가는 책에 다 담지 못한 일상의 모습을 기록해 놓은 작품들을 모아 개인전시회를 열었다. 평상시 만난 사람들과 경험한 일, 교회학교 사역 현장과 선교지에서 보낸 시간 등 일상 속 하나님의 은혜가 작품마다 담겨 있다. 앞으로도 이 작가는 SNS와 전시회, 교육 활동을 통해 문화예술계에서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최상경 기자2021-08-31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켰어요. 초기 대응이 중요한데 코로나까지 겹쳐 구호단체들이 들어오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아이티 한인선교사협의회 김월림 회장은 2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이티 지진 피해 소식을 알리며 안타까워했다. 리히터 규모 7.2의 지진이 강타한 지 보름이 지났으나 아이티의 복구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현재까지 약 2,100 명이 숨지고 1만 2,000 명 넘게 다쳤다. 300여 명은 실종된 상태다. 지진으로 완전히 부서지거나 망가진 집이13만 채가 넘는다. 기약 없는 천막생활을 하는 이재민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김 회장은 "지진이 발생한 곳은 아이티 수도 포르토 프랭스에서 차로 5시간이 넘게 걸린다"며 "열악한 시골 지역이라 구호 물자가 제때 도달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유엔을 비롯해 국제사회의 지원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지만 구호물품이 아이티 남서부의 지진 피해자들 손에 전달되는 속도는 여전히 느리고 양도 충분치 않다는 게 김 회장의 얘기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으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던 당시 현지에 와 정착한 김 회장은 “그때보다 지금이 여러모로 상황이 더 안 좋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달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의 피살과 의회 임기 종료 등으로 정부 기능이 사살상 마비된 데다 치안이 부실해 범죄가 횡행하고, 수도에서 지방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산사태로 막혔기 때문이다. “지진 발생 지역 내 교회만 200여 곳이 완파된 상탭니다. 학교나 공공기관은 말할 것도 없죠. 집을 잃은 이재민들은 나무 막대와 방수포, 비닐 등으로 만들어 놓은 엉성한 천막에서 지내고 있어요. 여러 위험에 노출돼 있어 도움이 시급합니다.” 김 회장은 아이티에서 사역 중인 10여 명의 한인 선교사와 구호활동에 나서고 있다. 오전 5시쯤 출발해 6~7시간을 이동해야 현장에 도착, 밤 10시 집으로 돌아오는 빡빡한 일정이다. 그는 “선교사들끼리 십시일반 재정을 모아 함께 움직이고 있다”며 “현지 교회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긴급구호 활동은 며칠 내로 마치고 아이티 재건을 돕는데 힘쓰려 한다”고 말했다. 아이티를 향한 김 회장의 애정은 남다르다. 2010년 1월 12일, 30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아이티 대지진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김 회장은 지진이 발생하고 며칠 뒤 가장 먼저 긴급구호팀의 일원으로 현장에 달려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현지에서 긴급구호와 의료지원, 난민촌 어린이 교육과 설립 등 난민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6 해외봉사상’ 민간 부문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소속 NGO ‘써빙프렌즈’의 아이티 지부장도 역임 중이다. “살기로 하고 아이티에 갔을 때 할리우드 전쟁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살면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하던 잔잔한 행복, 작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법을 배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남은 인생을 지극히 작은 자들, 내가 돌 수 있는 이들을 도우며 살고 싶어요. 내가 가장 기뻐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모두가 어려운 시기,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축복을 모두가 함께 누리게 되길 김 회장은 바랐다. 특히 절망의 땅인 ‘아이티’에 희망이 찾아오길 함께 기도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다들 아이티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 땅이라고 말한다”며 “오랫동안 자연재해와 열악한 환경에 놓이며 두려움이라는 이슈를 늘 안고 있다. 아이티가 ‘평화의 땅, 축복의 땅’이 되도록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기도로 마음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김월림 회장과 아이티 어린이들.(김월림 회장 제공)

김신규 기자2021-08-23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주말에 남편과 나들이를 갑니다.’ 매주 일요일 오후 황나란 씨(44) 컴퓨터에서는 미숙한 한국어 발음이 흘러나온다. 목소리 주인공은 국제결혼을 한 베트남 여성. 외국인 이주민을 상대로 진행하는 한국어 수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화상으로 진행되는 풍경이다. ‘반만년 역사의 단일민족’이라는 민족의 긍지는 더 이상 한민족을 설명하는 특징이 되지 못하게 됐다. 지난 6월말 현재 국내 거주 외국인의 수는 대략 198만 여명(한국계 포함)에 달한다.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으로 구성된 다문화 가정도 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정착 외국인들과 다문화 가정의 수가 증가하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주민들이 늘고 있다. 한국어 선생님인 황씨는 2016년부터 취약계층 외국인을 상대로 수업하고 있다. “21살 국문과 편입을 준비하던 중 예수님을 만나면서 선교에 대한 마음을 품었던 저는 경기도 양평의 아세아연합신학대학에 편입했습니다. 당시 경기도 광주의 외국인노동자쉼터에서 활동하는 지인의 요청으로 주말마다 그곳에 가게 됐죠. 그곳에서 동남아 및 중동 쪽 친구들을 만나 생활하며 한국어도 공부하게 된 것이 오늘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2019년 캄보디아에서 한국문화의 날 행사장에서황나란 씨(왼쪽에서 두 번째). ⓒ데일리굿뉴스 이를 계기로 결국 1년간 공부해 한국어교원자격증을 취득했고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한국어 선생님으로 봉사하기 시작했다. 황 씨가 한국어교원자격증을 딴 이유는 자신의 외국어 서투른 만큼 선교지로 가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침 한국어 강사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됐고, 결국 한국어 교원자격증을 취득하게 됐다. 황 씨는 “법률, 의료 등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외국인 이주민들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었다”며 “외국인이 타지에서 잘 지내기 위해 갖춰야 할 가장 필수적으로 요소가 언어”라고 말했다. 현재 초급반을 담당하는 황 씨의 학생은 주로 20∼30대로 직업은 다양하다. 국제결혼을 한 주부부터 외국인 근로자까지 모두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대단하다. 황씨는 “일을 마친 뒤 피곤함에 못 이겨 졸면서 수업을 듣는 외국인 노동자 학생을 볼 때면 안타깝다”며 “그래도 열심히 따라와 주며 공부할 때면 고맙다”고 말했다. 특히 “수업을 마친 뒤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때가 가장 뿌듯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고국에 돌아가서도 황 씨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연락하는 학생도 있다. 황 씨는 “네팔 국적 학생이 결혼한다고 해 아내에게 화장품을 선물한 적이 있는데, 이후 꾸준히 연락하며 네팔로 귀화하라며 권유한다”며 웃음을 내비쳤다. 또 “열정이 넘치던 베트남 여성도 고국으로 돌아간 뒤 SNS를 통해 안부를 묻는다”며 자랑(?)했다. ▲지난 2019년 캄보디아 바탐방대학 한국어학과 장학기금 마련 바자회 행사장의 모습. ⓒ데일리굿뉴스 더 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싶다는 황 씨의 열망은 외국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17년 10월 코이카 활동으로 캄보디아에 봉사활동을 간 황 씨는 바탐방 대학 한국어학과 학생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황 씨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장학회를 만들고, 코로나19 사태로 조기 귀국했을 때는 화상 수업을 진행했다. 황씨는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장학회를 마련했다”며 “2018년 캄보디아에서 활동한지 1년 정도 됐을 때 지인이 건넨 장학금 550달러가 씨앗이 됐다. 후원액이 많지 않다 보니 대학원 선배가 학부생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등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씨는 외국인 이주민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품지 않길 당부했다. 그는 “오히려 외국인들 당장 돈이 없어서 어려울 뿐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계층도 많다”며 “이주민에 대한 선입견 문제가 사회 공론화돼 앞으로 긍정적 인식이 생기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예지 기자2021-08-23

2002년을 뜨겁게 달궜던 한일월드컵 당시 ‘오! 필승코리아’라는 문구를 직접 쓰며 서체로 개발해 이목을 끌었던 인물이 있다. 바로 손영희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손 작가는 월드컵 이후 지금까지 작품활동과 재능기부에 힘써왔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작품활동에 타격을 입었지만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공감의 장을 열었다. 손 작가의 글씨 작품을 모은 전시회는 경기도 양평에서 만날 수 있다.300여 평의 공간에 종이와 천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작품 100여 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그 중에서도 단단한 종이 위에 새겨진 ‘아버지’라는 큰 글씨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손 작가의 전시에는 ‘아버지’라는 글씨가 항상 등장하는데, 이 세 글자엔 손 작가의 신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손 작가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자라면서 아버지라는 호칭을 불러보지를 못했다"며 "기독교 신앙을가지면서 하나님 아버지라는단어가 입에서 터지면서 너무 좋았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작품 곳곳에는 기억 속 아버지의 존재를 더듬어보고, 부모의 심정을 적은 애틋함이 새겨져 있다. 손 작가는 종이 위에 바느질하듯 글씨를 새겨 만든 작품들 속에 진정성을 담았다. 무엇보다 손 작가는 관람객들이 글씨를 통해 감동받을 때 진정성이 전달되는 것 같아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손 작가는 "바닥에 앉아서 우시는 분들이 꽤 있었다"며 "그럴 때마다 저도 감사해서 같이 운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라는 글씨에서 저와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절절함 속 아버지를 표현해 낸 작품들을 지나면 산뜻하면서도 위로가 되는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관람객들은 다양한 성경말씀을 표현한 작품들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관람객 A씨는 "마음에 평화가 필요해서 그런지 ‘내게 강 같은 평화’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제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느낌이 들었다"며 "글씨전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가는 시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관람객 B씨는 "9월부터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여기서 ‘걱정하지 말아요’라는 문구가 자주 봤던 글귀임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며"두려움과 걱정에서 다시 힘을 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손 작가가 모든 작품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데는, 손 글씨로 전할 수 있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손 작가는 앞으로도 글씨를 통해 위로를 전하고 세계 속에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전시는 8월 한달 간 계속되며, 손 작가가 전시장을 지키며 관람객에게 직접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할 계획이다.

조유현 기자2021-08-18

“방송연예계에 하나님께 영광 올리는 엔터테이너를 양성하는 기업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게 저희 회사라면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책임져주세요.” 한국 최초의 장애인 배우 강민휘를 양성한 피플지컴퍼니 김은경 대표의 기도다. 1996년도부터 연예인 매니지먼트를 진행해온 김 대표는 배우 이일화, 박영규, 박상면 등 걸출한 배우들의 매니지먼트도 담당했었다. ▲김은경 대표가 양성한 장애인 배우들ⓒ데일리굿뉴스 그러던 중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를 보면서 장애인 배우 양성을 마음먹게 됐고 2004년부터 지금까지 10여 명의 장애인 배우를 데뷔시켰다. 김 대표는 이희아를 보면서 “장애인들도 충분히 공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비장애인들이 흉내 못나는 엔터테이너의 달란트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열정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장애인 배우에게 매일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현재 한 집에서 생활하며 밀착 지도하고 있다. 강민휘의 하루 일과인 운동, 연기, 춤 배우기, 노래 배우기 등을 함께 하고 있다. 함께 생활하며 어려운 점은 없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며 얻고 있다고 고백했다. 처음에는 돕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다고 생각이 변했다는 것이다. 강민휘는 15년여 동안 매일 꾸준히 연습하고 훈련한 끝에 이제는 연예계에서 인정받는 장애인 배우가 됐을 뿐만 아니라 김 대표에게 지하철 노선을 알려줄 만큼 스스로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강민휘는 “연기할 때 너무 좋다”며 “친구들이 요즘 나를 보면 예전과 다르게 칭찬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강민휘의 성장에 많은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 김 대표의 큰 기쁨 중 하나다. 김 대표는 “장애인 부모들이 ‘내 아이도 가능성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되고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 소망이 생긴다”고 전했다. 피플지컴퍼니에서는 장애인 배우 뿐만 아니라 일일드라마 <빨강 구두>에서 활약 중인 신인 배우 차승우 등 비장애인 배우들도 함께 연기 수업을 받고 있다. 대부분 김 대표의 비전에 함께하고 싶어 찾아온 이들이다. 배우 차승우는 “피플지컴퍼니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과 비전이 배우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었던 저의 비전과 맞아서 합류하게 됐다”고 밝혔다. ▲피플지컴퍼니에서 개설한 유튜브 채널 <피플지TV>ⓒ데일리굿뉴스 김 대표는 최근엔 코로나19로 돌봄 시설이 문을 닫자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을 위해 유튜브 채널 <피플지TV>도 개설했다. 장애인 배우들이 출연해 요리부터 연기, 영어 등을 선보여 집에서도 쉽게 따라하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김 대표는 장애인 배우들을 육성하며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장애인 배우와 비장애인 엔터테이너를 양성하는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10년 동안 장애인 배우를 양성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교재도 제작하고 있다. 올해 말에 교재를 출시해 유튜브로 장애인 배우의 연기지도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김 대표. 자극적인 것이 주목받는 방송연예계에서 복음을 전하길 꿈꾸고 있다.

김신규 기자2021-08-13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국내 유명 대형 교육기업에 근무하다가 교회에서 중등부 교사로 사역하게 된 것이 현재의 청소년 전문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심묘탁 용산청소년수련관장(58). 심 관장을 중견직장인의 길에서 청소년 전문가로 인생2막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지난 2006년 노량진교회에서 중등부를 교사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중등부를 맡은 지 4년째 되던 해 담임을 하던 중3년 남자아이들의 예배드리는 모습이 불량하고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하게 됐다. 그런데 기도 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이 교회에 왔잖아. 그런데 너는 뭘했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심 관장이 청소년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아이별로 문제 상황을 적어놓고 기도했지만 몇 달이 지나도 전혀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문제와 사고를 일으키는 아이가 생겼고, 결국 자책감으로 교회학교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다시 들린 하나님의 메시지는 “그 아이를 위해 너가 뭘 했니?”였다. 이를 계기로 심 관장은 딸이 다니던 대학에 청소년학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2012년 48세의 나이에 대학원에 입학해 청소년에 대해 공부했다. 중등학교 정교사 자격에 국내 최고의 교육기업에서 20년 경력의 그였지만 청소년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꿨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아무 계획도 없이 오랜 직장을 사직한 후 배운 대로 실천하는 것에 집중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해 주면서 기다리다가 도움을 청할 때 아낌없이 지원했다. 그리고 교회 청소년들만이 아닌 세상 속의 청소년들을 케어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2014년 대학원 졸업 후 청소년법인에 취업해 청소년인성·인권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도자를 양성하는 한편, 구립청소년시설의 관장으로 일하면서 지역 청소년들의 행복을 지원해오고 있다. 그가 2018년부터 사당청소년문화의집 관장으로 있을 때는 1991년 개소 이후 첫 ‘최우수등급’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3월 사당청소년문화의집이 여성가족부 청소년시설평가에서 설립이후 최초로 최우수평가를 받아 지역언론과 인터뷰하는 모습.ⓒ데일리굿뉴스 심 관장은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의 열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프리스타일 농구를 도입하는 등 청소년들이 즐겨 찾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되도록 했다”며 “청소년들에게는 특정 프로그램이나 행사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에는 현 용산구의 용산청소년수련관으로 옮겨 청소년 안전과 직결되는 노후화된 수련관 시설 개선과 비대면 시대에 청소년의 디지털역량을 강화하는 일을 시도했다. 그 결과 구청으로부터 20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스마트청소년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심 관장은 청소년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청소년들을 만났고 문제아들을 접했다. 문제청소년들은 심 관장의 케어를 거치면서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 건전한 사회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가운데 중학교 때 몇 번이나 자해를 하며 놀라게 했던 여학생이 심 관장을 통해 회복되고 벌써 두 아이의 엄마로 행복한 삶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한없는 보람을 느낀다. ▲2020년 8월 사당청소년문화의집에서 청소년 축제 ‘방구석 롤드컵 대회’를 마치고 1등한 청소년들과 함께 한 심묘탁 관장.ⓒ데일리굿뉴스 또 소외계층 청소년 대상의 프로그램을 기획해 지역의 어려운 청소년들을 찾아내고 물질적 지원과, 은둔형 청소년들을 시설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해 그들의 자존감을 높여준 결과 이들의 삶이 변화된 것도 감사할 일이다. 심 관장은 “모든 청소년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매일에 닥치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을 지며 살아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기대한다”면서 “교회학교 교사는 물론 청소년 시설의 직원들이 청소년들의 성장을 보며 우리가 하는 일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며 행복하게 일하는 곳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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