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라 기자2019-12-10

최근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찬양이 있다. 우리에겐 '꽃들도'로 알려진 일본 찬양 '花も'(하나모)다. '하나모'는 일본 삿포로에 있는 메빅(MEBIG)교회의 우치코시 츠요시 목사가 만든 어린이 찬양으로 2003년 발표된 곡이다. 일본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찬양을 발굴해 일본과 한국에 알린 한국인이 있다. 찬양사역자 이준석 선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요즘, 한일 교회를 이어갈 제2의 '하나모'를 꿈꾸며 일본을 품고 있는 이 선교사를 만났다. 그토록 싫어하던 일본을 간절히 품다 "'하나모'를 듣는 순간 큰 감동을 받았어요. 언젠가 일본어 앨범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이 찬양을 발표해서 일본 교회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준석 선교사(39)는 '하나모'를 듣던 첫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이 선교사가 처음 '하나모'를 듣게 된 건 2007년 선교훈련을 받기 위해 찾은 일본에서였다. 당시 찬양사역자의 꿈을 내려놓고 교회 선배를 쫓아 도망치듯 찾은 땅에서, 오히려 찬양을 통해 큰 위로와 감동을 얻었다. 단순히 '하나모' 선율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찬양을 부를수록 노랫말이 이 선교사의 마음에 와닿았다. "혼자인 것 같지만 혼자가 아니다"라는 일본 성도들의 신앙고백 같았고, 그 고백은 이 선교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저는 가족 중에 혼자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국에서 성도들이 일반적으로 겪지 못할 일들을 많이 겪었어요. 그런데 일본 성도들에겐 가족, 친구와 관계가 끊기고 쫓겨나는 일들이 당연한 거예요. 과거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잔혹한 탄압이 있었기 때문에, 몇백 년이 지난 지금도 교회에 나간다고 하면 죽거나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인식이 아주 뿌리 깊어요." 이 선교사는 일본 성도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떠올렸다. 무속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선교사로서 신앙생활을 지키기까진 무수히 많은 고난과 핍박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아픔은 가족과의 마찰이었다. 심지어 결혼식도 혼자 치러야 했다. 그런 이 선교사에게 1년 동안의 선교훈련은 회복의 시간이 됐다. 좋은 선교사를 만나 훈련을 받게 됐고, 일본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비록 일본말을 몰랐지만 일본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 하면서 교제의 즐거움도 알게 됐다. 어느새 이 선교사의 마음엔 일본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그렇게 싫어하는 일본에 와서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으니 일본 교회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찬양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다. 2008년 선교훈련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이 선교사의 일본을 향한 기도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틈틈이 단기선교로 일본을 방문하거나 일본복음선교회 협력간사로 섬기는 등 일본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4년이 지난 2012년 가을, 일본 목사에게서 반가운 연락이 왔다. 가스펠 그룹 NCM2 콰이어의 오디션을 볼 수 있겠냐는 제의였다. NCM2 콰이어는 결성된 지 33년 된 그룹으로 전 멤버가 일본계 미국인으로 구성돼있었다. "오디션을 보러 NCM2 콰이어 사무실이 있는 미국 LA로 갔죠. 멤버들이 진짜 올 줄 몰랐다며 놀라더라고요. 그때 오디션에서 그토록 바라던 '하나모'를 불렀어요. 멤버들이 처음 듣는 찬양인데 너무 좋다며 바로 앨범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2013년 봄, '하나모'가 수록된 앨범이 일본에서 발매됐다. 유튜브에 올린 뮤직비디오는 조회 수가 수십만 회를 넘겼다. 일본 성도들도 몰랐던 찬양이 일본 교회에서 불렸고, 2017년에는 제이워십, 마커스워십 등 찬양단체들이 번역·발표하면서 한국 교회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이준석 선교사가 소록도 북성교회에서 찬양을 드리고 있다.ⓒ데일리굿뉴스 한국과 일본, 주님의 사랑 증거돼야 일본의 복음화율은 1%가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개신교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인구가 지난해 70만 명이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영적 불모지와 다름없는 것. 불모지 같은 일본 땅을 복음의 씨앗으로 개척하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한국 선교사들이 있다. 이 선교사는 한국 선교사들이 일본과의 협력을 끊는다면 일본 교회는 존립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추측했다. "현재 일본 교회는 7,000개가 조금 넘어요. 이중 무목교회가 1,000개 이상이에요. 그런데 일본에 등록된 한국 선교사님 수는 1,500여 명이에요. 여기에 재일동포나 등록하지 않은 선교사까지 헤아리면 2,000여 명이 훨씬 넘어요. 어마어마한 숫자인 거예요." 그러나 최근 한일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일본 내 한국 선교사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 선교사는 오히려 지금 같은 갈등과 위기가 "하나님의 사랑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일본에 계신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장로님이나 성도들이 한국으로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셨다더군요. 또 한 일본 선교사님께서는 일본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발 벗고 도움을 줄 곳은 한국교회밖에 없다며 늘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 선교사는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하나모'가 한국에서 '꽃들도'로 불려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한국과 일본 교회가 하나의 교회로 주님을 찬양하는 것을 너무도 기뻐하신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큰 고난과 어려운 관계 속에서도 그걸 다 뛰어넘고 한국과 일본교회가 먼저 서로 하나 되는 것이 전 세계에 하나님의 사랑을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이 메시지는 한국과 일본만이 전할 수 있고요." 이 선교사는 내년 3월 일본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시의 니가타타성서학원에 진학하기로 지난 6월 결정했다. 아내, 두 자녀도 함께 일본으로 이주할 계획이다. 결정 후 한일 무역 갈등이 생기면서 잠시 고민도 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할 일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처럼 일본 교단에서 신학을 한 케이스가 많진 않아요. 제가 가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 저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이 조금은 힘을 얻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한일 관계도 점점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요. 잘 열매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차진환 기자2019-12-15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살을 에는 듯이 찬 바람이 불고 기운이 영하로 뚝 떨어지면 자연스레 몸이 움츠러든다. 언 손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 넣어도 그때뿐이다. 특히 공복 상태에서 체감하는 추위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의 ‘토마스의 집’은 지역 행려인을 위해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하루 평균 500여 명, 연간 14만여 명에 달하는 가난한 이웃들이 이곳에서 한 끼를 해결한다. 지난 33년간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수백만 명. 토마스의 집 자원봉사자 정희일 할머니(95)는 이곳이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무료급식봉사를 이어왔다. 정 할머니는 1986년 토마스의 집이 시작할 때부터 봉사를 시작했다. 당시 영등포본당 주임신부였던 염수정 추기경(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은 영등포시장 부근에서 동사한 노숙인의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노숙인 무료 급식소를 열었다. 염 추기경은 “영등포 역전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으니 그분들이 배고프지 않게 밥을 나눌 봉사자를 찾는다”며 봉사자를 모집했다. 그 말을 들은 정 할머니는 ‘그럼 한 번 나가보자’는 마음에 자원했다. 토마스의 집이 재정난 등으로 세 번이나 자리를 옮겼지만 그동안에도 정 할머니는 묵묵히 다른 봉사자들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그녀는 정기휴일인 목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지난 33년이란 시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섬겼다. 정 할머니는 매일 아침 당산동 자택에서 버스를 타고 영등포역 인근 토마스의 집으로 출근해 한 끼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새벽부터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한다. 오전 8시부터 식탁을 행주로 닦고 수저와 물컵을 놓는 등 식사 준비를 하고, 식사를 마친 이들에게는 간식을 나눠준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직접 음식을 만들고 배식하는 일이 버거울 때도 있다. 오랜 기간 봉사를 이어오다 보니 병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제는 그만두고 쉬면 좋겠다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정 할머니는 봉사를 멈추지 않았다. 최근 정 할머니는 ‘LG 의인상’의 선정되며 이웃을 위해 헌신한 그녀의 삶이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정 할머니는 “대단한 일이 아닌데 주목받아 부끄럽다”며 “급식소를 찾는 사람들이 한 끼를 든든히 먹고 몸 건강히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에서 봉사를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렇게 봉사할 수 있는 건강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를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재현 기자2019-12-30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전 분야에는 신실하고 유능한 크리스천들이 많다. 그들의 선한 영향력은 복음의 향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선교사역이 된다. 본보는 '리더스미션'이라는 타이틀 아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심어주는 모범 크리스천 CEO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던 한맥아이티 최종배 대표는 '예수 믿는 사람이 잘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크게 섬기기 위한 사업을 꿈꿔 왔다. 그는 수 많은 기도와 연구 끝에 LED전광판을 예배의 도구로 여러 교회들을 섬기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신기술·제품으로 교회·선교 사역에 힘 보태 전자·IT 관련 개발 쪽에서 일했던 최종배 대표는 오랫동안 크리스천 기업을 만들겠다는 소망을 품어 왔다. 하나님을 크게 섬길 수 있는 사업으로 교회와 선교 사역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1987년 한맥 코퍼레이션을 설립한 그는 이후 한맥전자, 한맥아이티라는 이름으로 외국 첨단계측장비를 관련 산업체 등에 판매하고, LED전광판 특허로 LED 디스플레이를 공급 및 기술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는 대부분 교회들이 빔프로젝터에서 초대형 파노라마 LED전광판으로 디스플레이 형식을 바꾸는 것을 겨냥해 다채로운 교회 문화 행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선보이고 있다. 최종배 대표는 "주변이 어두워야 화면이 잘 보이는 빔프로젝터와 달리 LED전광판은 자체 발광으로 빛을 표출하기 때문에 화면이 선명하다"며 "이것이 교회의 예배 도구로 쓰임 받도록 신기술과 제품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파노라마 LED전광판 경우에는 세 개의 화면으로 분할돼 가운데 화면에는 목회자 설교가 생중계 되고, 양쪽 화면에는 성경 말씀과 광고 등 동시다발적으로 방영돼 원활한 예배 진행을 돕는 것이다. 실제 한맥은 국내 200여 개의 교회에 LED전광판을 납품, 공급하고 있으며, 대형교회와 중소형교회도 규모에 따라 맞춤 주문 제작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또 2년 전에는 청년선교에 도움이 되고자 육군 훈련소 안에 위치한 연무대교회에 1,000인치(가로27m)가 넘는 크기의 초대형 디스플레이를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 대표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려움도 뒤따랐다. 벤처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로 무리하게 투자를 받았고, 제품개발에 성공해도 판매할 수 있는 회사가 없어 설립 13년 만에 큰 적자를 남기게 됐다. 최 대표는 "당시 가장 어려웠던 시기인 IMF 때에도 계속 성장해 왔지만 2000년 이후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맥이 추구하는 비전인 '여호와를 기뻐하라(시편37:4)'라는 소명 아래 2년 만에 다시 일어서면서 지금은 연평균 8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함께 ISF 국제학생회 등재 이사로 한국 유학원 학생들을 섬기는 사역도 감당하며 예수를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최 대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크리스천 기업으로써 명성을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 뜨거운 열정이 있는 다른 기업도 함께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천보라 기자2020-01-22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개인 기부는 물론 후원도 많이 줄어드는 요즘. 하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나눔의 손길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김미자·최근영 부부는 강릉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부부가 모두 고액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해 감동을 전하고 있다. 포차부부, 고액 기부자가 되기까지 김미자·최근영 부부가 운영하는 엄지네포장마차는 강릉의 명물로 전국의 입소문이 났다. 꼬막무침비빔밥의원조를 맛보러 전국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몇 시간씩대기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 최근엔 꼬막무침비빔밥보다 더 주목받는 것이 있다. 대표 김미자(54)·최근영(63) 부부의선행이다. 이들 부부는 지난해 2월과 4월 각각 1억 원을기부하면서 김 씨는 9호, 남편 최 씨는 10호로 강릉 최초의 부부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됐다. "그동안 조금씩 모아 아파트를 장만했는데가게를 상가건물로 옮기면서 이곳에 거주하게 됐어요. 살집 하나만 있으면 되잖아요. 아파트는 팔아서 기부했죠. 큰 뜻은 없어요. 그저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서죠." 이들 부부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는 남모를 사연이 있다. 엄지네포장마차가 최고를 뜻하는 엄지가 되기 전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부부였다. 40세에 대기업 임원까지 지낸 남편 최 씨가 회사를 나와 건설업체를 차린 것이 긴 고난의 시작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시행업체들이 줄줄이 부도가 났고, 결국 최 씨는 파산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어린 3남매는 어머니께 맡겼다.술에 의존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이 힘든 나날이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를 악물고 살 수밖에 없었다. 부부는 0.7t 미니 트럭을 구매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떡볶이와 어묵 등을 팔았다. 하지만 서울살이를 더는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김 씨의 고향 충북 제천시로 이주했지만 여기서도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최 씨가 건설업을 할 때 인연을 맺었던강릉이 떠올랐다. 강릉에 정착한 부부는 사채를 빌려엄지네포장마차를 개업했다. 술을 끊고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장사에 전념한 지 12년. 고생 끝에 낙이 왔다. 2014년 부부가 개발한 꼬막무침비빔밥이 그야말로 대박친 것이다. 꼬막무침비빔밥 붐은바다 건너 미국까지 이어져, 팝업 매장 등을열 정도였다. 식당이 자리 잡으면서 부부는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지역 청소년과 어르신 등을 위한 기부는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운 손님이나 이웃주민을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이제라도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어 감사하다는 김미자·최근영 부부. 이들은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작은손길이라도 나누는 마음이 우리 사회에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기 쉽지 않은 요즘, 봉사를 통해 인생의 보람을 느낀다는 부부의 선행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김민주 기자2020-01-17

우리나라는 전 세계 170개국에 약 2만 7,000여 명 선교사를 파송했다. '선교사 3만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지만, 예전처럼 증가폭이 크지 않다. 선교사 고령화 문제도 심화되고 있다. 교회의 부흥이 주춤하면서 교회의 선교 재정 후원도 예전 같지 않아 선교사 후원 부담도 커졌다. 게다가 새로운 선교사들이 나가지 않으니 사역유지도 어려운 상황이다. 선교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 "평신도 시니어들이 선교사로 나서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64세에 필리핀 선교사로 자원해 10년간 선교사역을 하다 현재는 선교동원가로서 중장년층(시니어)의 선교를 장려하고 있는 김재복 선교사다. 군인·교육자에서 선교사로 "하나님은 선교하고 싶다고 했던 제 마음을 받으시고, 구체적인 사역 계획을 예비하고 계셨어요. 당시 60이 넘었지만 나이에 상관 없이 평생 제가 해 온 '가르치는 일'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신 거죠." 김재복 선교사는 해군사관학교 출신 직업군인이었다. 모교 해군사관학교에서 조선공학과 교수 및 교수부장을 맡고, 남해대학 총장, 창신대학 부총장을 역임하는 등 30여 년 가까이를 교육자로 살았다. 심지어 그는 불교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 교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모태신앙인 아내를 만나면서 서른 즈음부터 늦둥이 믿음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선교에 눈을 뜨게 된 건 한 필리핀 선교사의 제안으로 간 단기선교에서였다. 2007년 김 선교사는 아내와 함께 2주 간의 선교지 탐방을 계획하고 필리핀으로 떠났다. 그때 나이 62세였다. 산골 빈민 사역, 청소년 교육과 신학교 사역, 농촌 교회 개척 등 필리핀 사역 현장을 직접 목격한 그는 '지금까지는 세상일에 충실했지만 남은 삶은 두 배로 하나님의 선교에 열심을 내어 살아보고 싶다'고 마음을 굳혔다. 선교의 마음을 품고 한국에 돌아온 김 선교사 부부는 '어떤 선교를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구체적인 인도하심을 받도록 기도했다. 더 구체적인 선교 정보를 얻고 싶어 1년 후 필리핀을 재방문했다.선교사의 소개로 필리핀 한 대학의 관계자와 만났을 때, 한국어 초빙교수 제안을 받았다. 선교사로서의 부르심을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김 선교사는 한국에 돌아와 선교 훈련과정을 듣고, 외국인 한국어교사양성과정을 이수하는 등 선교지로 들어가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했다. 2009년 12월, 출석교회인 서울 송파구 장지교회의 파송을 받아 필리핀 선교사로서의 걸음을 뗐다. ▲필리핀 ROS교회 주일학교 어린이들이교회 건축 기금 마련을 위한 뮤지컬 공연을 펼치고 있다.(사진제공=김재복 선교사) 주일학교 사역으로 현지교회 부흥 '현지 선교사들을 돕겠다'는 것이 김 선교사 부부가 세운 원칙이었다. 주중에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주말에는 선교사가 세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매주 예배에 참석하던 김 선교사는 현지교회에 어린이 주일학교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생각한 그는 자신에게 한국어를 배우던 현지교회 청년들을 동원해 3달간 교사훈련을 시킨 뒤 주일학교를 시작했다. 예배시간에 율동과 말씀을 배우고, 게임도 하고 간식도 먹으며 재미를 느낀 동네 아이들이 점차 교회로 모이기 시작했다. 1년 정도 되니 자체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한 필리핀 자매를 통해 교회와 30~40분 떨어져 있는 다른 교회에서도 주일학교를 시작했다. 이미 훈련 받아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던 청년들에게 3개월간 다른 교회를 도와 주일학교가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했다. "하나님의 일은 놀라워요. 동네 어린이들이 교회에 나오니 언니, 오빠, 부모까지 교회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마침 성탄절 맞아 어린이의 가족을 초청해 예배를 드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어요. 그 이후부터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해서 성도가 2배로 늘었어요." 주일학교에서 시작된 교회 사역은 교회 건축까지 이어졌다. 현지교회 목사는 김 선교사에게 "예배드릴 공간이 부족하니 새 예배당을 지어야겠다"며 "성도들이 자체적으로 작정헌금을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교회는 주일학교에서 '어린이 뮤지컬' 공연을열어 부족한 교회 건축 기금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어린이 뮤지컬 공연 준비는 교회 구성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동시에 필리핀에 있는 다른 현지교회에도 큰 도전을 주는 계기가 됐다. 필리핀 가난한 농촌에 있는 현지교회가 스스로 예배당 건축에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고자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퍼져나가자 표는 매진됐고, 이들의 뮤지컬 공연은 교회의 연례행사로 자리잡았다. 여기저기서 건축 헌금도 들어왔다. 김 선교사를 비롯한 한국 선교사 뿐만 아니라 필리핀 현지 성도들, 동네 마을주민 모두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볼 수 있었다. "선교사가 분유 사주고 교회 건축해주고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해도 복음을 전해서 제자를 키우지 않으면 복음이 확산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지인 중에 제자를 키워서 그들이 복음을 전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선교사님을 도와 여러 일을 하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 선교사는 주일학교 세우기, 교회건축 외에도 필리핀 내 선교사들의 요청으로 교회나 학교 등지를 다니며 한국어를 가르쳤다. 필리핀 내 신학교에서 현지 리더 양성을 위한 리더십 강의를 하기도 했다. 또 필리핀 한인회장으로부터 요청을 받아 한인학교를 교장을 맡는 등 전문성을 가진 교육자로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 ▲김 선교사가 다른 선교사를 도와 사역하다 맡게 된 말리왈루교회의 개척 건축 당시의 모습. 말리왈루교회는 목공소 작업장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건축까지 하게 됐다.(사진제공=김재복 선교사) "땅 끝까지 복음 전하는 일, 그리스도인의 사명" 김 선교사는 지난해 12월, 10년간의 필리핀 선교사역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선교지에서 뼈를 묻겠다는 생각으로 갔지만, 파송교회의 목사로부터 '선교 동원을 하는 사역을 맡아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선교사로 살고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갔기 때문에 필리핀을 떠나온 것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지만,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모든 지휘권을 넘겼듯 사역을 마무리하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현재 GP한국선교회에서 시니어 선교동원과 훈련 담당 직능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은퇴한 장년층, 4-50대 예비 은퇴자들이 선교에 대한 마음을 품고 훈련되어 선교지에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는 "요즘에는 50·60대의 재취업 문제도 심각하고, 과학기술이 발달해 은퇴 이후의 삶이 더 길어질 수 있다고 본다"며 "크리스천 중장년층이 그 동안 삶을 이끌어오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복음의 빚진 자의 마음으로 선교지에 나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도전해보기를 권면한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일을 해오면서 축적했던 노하우를 주일학교 세우기, 학교 강의 등을 통해 발휘했던 것처럼 은퇴한 중·장년층이현역에 종사하며 축적된 경험과 경력이 선교지에서 실질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60대에 선교사로 나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며 보니까 시니어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참 많았어요. 교육이면 교육, 제조업이면 제조업 등 전문인으로서 영혼 구원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선교는 그리 부담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땅 끝까지 복음 전하며 제자 삼으라'는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죠. 선교에 대한 열정과 마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시니어 선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조유현 기자2020-01-09

최근 육아를 콘텐츠로 한 스타트업을 설립해 경력단절을 극복한 맘스라디오 김태은 대표가 주목 받고 있다. 유튜버와 책 출간으로 엄마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된 그녀를 만나봤다. 경단녀 엄마들과 함께 제작하는 콘텐츠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기혼여성 중 상당수가 경력단절을 경험한다. 경력단절의 가장 큰 원인은 단연 ‘육아’ 문제다. 출산 이후 돌아갈 곳이 없는 엄마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맘스라디오’ 김태은 대표도 14년 경력의 베테랑 방송작가였지만 출산 후 경력단절을 경험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육아를 콘텐츠로 한 유튜브를 시작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방 한 켠에서 ‘왜 엄마를 위한 라디오는 없을까?’ 라는 짧은 질문으로 유튜브를 시작한 그녀는 모든 이들의 삶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업에서 실패한 것도, 하나님을 만난 것도, 특별히 내가 어떤 요리를 잘 하는 것도, 아이를 잘 키우는 것도, 글을 잘 쓰는 것도 다 콘텐츠거든요. 내 삶에 힌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두를 이유가 있게, 목적이 있게 지으셨기 때문에 그것이 공유될 때, 콘텐츠로 만들었을 때 누군가의 삶에는 도움이 되더라고요.” ▲유튜브 '맘스라디오' 채널 캡처 맘스라디오는 구독자 4만 명을 훌쩍 넘기면서 많은 엄마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육아하면서 생긴 불면증, 부부 간 부딪히는 육아법 등 엄마라면 모두 공감할 내용을 나누며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변호사를 게스트로 초대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엄마들이 궁금해하는 법률적 고민을 해결해 주기도 한다. 다양한 콘텐츠에 김태은 대표 뿐 아니라 전문가 엄마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엄마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함께 방송을 꾸려 나가는 것이다. 공연 만드는 엄마들의 수다 ‘에미제라블’, 책 읽는 엄마 김보영 아나운서의 ‘우아한 Booking’, 후회 없는 육아를 위한 ‘박재연의 공감톡’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김 대표는 최근 유튜브를 하면서 나눈 다양한 경험들을 다룬 책, ‘엄마는 유튜브로 연봉 번다’도 출간했다. 자신처럼 유튜브를 하고 싶어하는 경력단절 엄마들을 위한 실제적인 팁을 기록했다. 맘스라디오는 시작한 지 2년 만에 매출 2억원을 달성했다. 김 대표는 수익금으로 미혼모와 아동학대 당한 아이들을 후원하는 등 선행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녀는 앞으로 힘들어하는 엄마들에게 손을 내밀어서 같이 성장하고 자기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소망을 밝혔다. “하나님이 주신 엄마라는 사명은 한 생명을 날 믿고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에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잖아요. 엄마들이 그 사명을 기쁘게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천보라 기자2020-01-05

2008년 '갈비뼈가 사라진 소녀' 이야기가 한 언론을 통해 처음 보도됐다. 의료사고로 갈비뼈가 모두 사라지고 스스로 숨을 쉴 수 없었던 그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의 응원이 쏟아졌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다. 그는 수십만 명의 앰부(수동식 인공호흡기) 봉사자 '릴레이 온유'와 함께 숨 쉬며 기적 같은 하루를 선물 받고 있다. 최근엔 자신의 간증을 담은 책 '숨 쉬지 못해도 괜찮아'를 출간해, 자신이 받은 선물을 나누기 시작했다. 김온유 작가를 만나 그와 릴레이 온유가 만든 기적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떤 것도 당연한 '내 것'이 아니었다 김온유(32) 작가는 16년째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장기입원 중이다. 14살 때 가벼운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았다가 잇따른 의료사고로 갈비뼈와 자가 호흡을 잃었다. 처음엔 현실이라 믿지 않았고, 이후엔 이 시간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다. "곧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어요. 중환자실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도 하나님께서 곧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주실 거라고 믿었죠. 심지어 누군가 병문안을 와서 제게 많이 좋아졌다고 말할 때면 불쾌했어요. 잃어버린 건강을 다 회복하지 못했는데 좋아졌다고 하니깐요. 잃어버린 것들이 당연한 내 것이고, 되찾아야 마땅하다고만 생각했던 거죠." 그러는 사이 16년이 흘렀고, 많은 것이 변해갔다. 부모님의 피부엔 어느새 주름살이 지었고, 소녀는 어느덧 성인이 됐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그의 믿음이었다. 이전의 '건강한 삶'도 지금의 '아픈 삶'도 모두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김 작가였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죠. 절박한 순간 기도밖에 붙들 것이 없었어요.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기도하고 있는데,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제야 주님께서 매일 주시는 생명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 나왔어요." ▲'릴레이 온유' 봉사자와 김온유 작가 ⓒ데일리굿뉴스 숨 나누며 하루하루 '기적' 만들다 김 작가는 11년 전부터 혼자서 숨 쉴 수 없다.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매일 매 순간 호흡을 선물했다. 수만 명의 앰부 봉사자 ‘릴레이 온유’가 그의 곁에서 함께 숨쉬기 시작한 것. 그동안 함께 숨을 나눈 봉사자만도 1만 5,0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24시간 4교대로 앰부를 누르며 김 작가에게 호흡을 공급하고 있다. "아침에 눈뜰 때 친한 친구의 얼굴을 보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쓰다듬을 때가 있어요. 또 어떨 때는 현실을 자각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요. 난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많은 사람에게 호흡을 선물 받아 살아가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러나 앰부 봉사자들은 오히려 김 작가와 함께 숨을 나누며 기적 같은 하루를 선물 받았다. 봉사자 중에는 마음이 아프거나 정신적으로 헤매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모두 김 작가를 만나 상처를 치유 받고 회복했다. 특히 비기독교 봉사자들은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이 가장 큰 선물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봉사자들의 모습은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와도 맞물렸다. 많은 사람이 "너만의 특별한 은혜를 나눠보라"고 권면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을 굳이 남들에게 보여 동정받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움에 사로잡힌 그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번 감동을 주셨다. "'네 삶 속에서 내가 이뤄낸 일들까지도 부끄럽다고 하며 모두 묻어두려는 것이냐?'는 말씀이 들렸어요. 제 연약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삶 속에서 이루신 은혜와 기적을 나누라는 감동이 밀려왔죠. 막막했지만, 하나님을 믿고 선포하자 담대함이 생겼죠." 그렇게 믿음으로 써 내려간 책은 또 다른 기적을 낳고 있다. 실제로 인터뷰 중 만난 한 봉사자는 그의 책을 읽고 위로와 감동을 받아 릴레이 온유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벌써 3번째 방문이라던 그의 미소에서 특별한 은혜를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많은 독자는 고난이 해결된 해피엔딩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김 작가는 여전히 아프고, 병원과의 문제는 힘겹다. 무엇보다 릴레이 온유와 가족들이 언제까지 자신을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오늘 하루 숨 쉴 수 있음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여전히 가장 쉬운 길은 주님 곁에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덤으로 숨을 쉬고 있잖아요. 나를 향하신 계획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그러셨듯이 힘겨운 상황 속에서 또 어떤 기쁨을 주실까 하는 기대로 살아가요."

최상경 기자2020-01-05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정식 의사가 될 때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분이다. 의학의 아버지, 의성(醫聖)이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의료인들에게 윤리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를 통해 잘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은 사뭇 다르다. 선서의 정신이 빛을 바랠 정도로 의사들의 불법 일탈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진심으로 환자를 위하고, 환자의 입장에 서서 몸소 인술(仁術)을 실천하는 의사들이 많다. 대구에서 박언휘종합내과를 운영하고 있는 박언휘 원장(한국노화방지연구소 이사장)이 바로 그런 의사다. 울릉도 소녀, '대구의 슈바이처' 되다 "사랑은 이 세상을 밝게 비출 수 있는 등불입니다. 나눔을 실천할 때 나만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박원휘 원장은 그동안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박 원장은 '대구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인술을 펼치는 이 시대 '진정한 의사'로 평가 받는다. 고액기부자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한 그는 2005년 병원을 개원한 이후 본격적인 나눔실천에 나서 불우이웃을 무료로 진료해주고, 매년 1억 원 상당의 독감백신을 대구·경북 노인복지시설에 기부하는 등 의료 사각지대를 챙겨왔다. 또한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점자 약봉지를 개발하는 한편 지난해 10월에는 박언휘슈바이처나눔재단도 창단해 매월 요양원 4곳에서 정기 봉사를 한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사회봉사대상·자랑스러운 대구시민상·울릉도를 빛낸 사람 등 다수의 상을 수상, 지난해엔 청와대에서 대통령 표창까지 수훈했다. 이토록 숨 가쁘게 달려온 이유를 묻자 "어릴 적부터 사각지대 속에서 맞는 안타까운 죽음을 많이 봤다"면서 "내가 보고 있는 이 외에도 많은 곳에서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깨달음이 계속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실제 울릉도에서 4녀 1남 중 장녀로 태어나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울릉도에서 살았던 박 원장은 어릴 적 주민들이 감기나 맹장염에만 걸려도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슈바이처'의 꿈을 안고 대구로 건너와 경북대 의과대학에 진학했지만 숱한 어려움에 부딪쳤다. 박 원장은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할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고 말했다. 비록 당시 상황은 어려웠지만 덕분에 소외된 이웃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고 나눔을 실천하는 계기가 됐다고.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한 그는 매일의 삶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친다. 박 원장이 늘 기도하는 것도 '지속적인 사랑나눔과 모두의 행복'이다. "올해는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함께 행복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작은 움직임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타인을 돕게 되는 마중물이 되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게 되길 바랍니다."

김신규 기자2019-12-29

“은퇴 후 영적 방황을 하는 목사들이 꽤 있습니다. 수십 년간 설교해 오던 일상에서 벗어나면 해방감을 느낄 것 같지만 그런 게 아니죠. 저도 은퇴 전에는 ‘내가 은퇴하면 그동안 밀린 책도 읽고 제대로 쓰지 못했던 글도 마음껏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은퇴에 이르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런데 악기를 연주하고 공연하면서 이제는 기쁨을 느낍니다.” 매주 수요일 오전 서울 노원구 월계동 두란노교회 교육관. 플루트, 클라리넷, 색소폰, 유포니움을 든 6명의 연주자들이 모여 잠시 예배를 드리고 커피로 담소한 후 각자의 악기로 화음을 맞춰간다. 이들 모두 목회 현장에서 은퇴한 6명으로 구성된 조이로드(JoyRoad) 윈드 앙상블 멤버들이다. 최연장자 이병일 목사 78세, 막내격인 한명원·이광형 목사가 75세인 이 악단은 2016년 결성돼 지금까지 60여 차례 공연을 했다. 교도소, 양로원, 교회 등이 이들의 주 활동 무대다. 앙상블 결성은 두란노교회 원로 목사인 오광섭 목사(78)의 제안에 의해서다. 덕성여중고 교사출신의 오 목사는 교회를 개척해 28년간 사역하다 지난 2012년 은퇴했다. 은퇴 후 처음에는 자유로움도 느꼈지만 이후 ‘자칫 영적 백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조이로드 윈드앙상블 단원들(앞쪽 좌로부터 클라리넷 오광섭, 플루트 장은혜, 뒤쪽 좌로부터 튜바 이병일, 색소폰 이광형, 클라리넷 이영철, 플루트 한명원 목사). ⓒ데일리굿뉴스 그때 예장 통합측의 은퇴목사들의 모임인 ‘서울은퇴목사회’ 모임에 나갔다. 거기서 악기를 연주하는 동료들을 만났다. 그 자신 목회시절 색소폰을 배웠고 동생에게서 클라리넷을 선물 받아 틈틈이 연습해왔던 그는 가끔 다른 교회 행사에서 연주봉사도 했다. 이 경험을 떠올려 ‘교회 행사에서만 연주하기보다 악단을 만들어 봉사하자’고 설득해 5명으로 출발한 것이 지금의 조이로드다. 이후 대전에서 장은혜 목사가 ‘홍일점’으로 합류했다. 물론 멤버들 중에 음악 전공자는 없다. 군 복무 중 군악대에서 악기를 불어본 목사가 2명, 학창시절 악기를 다뤘던 목사 1명이 그나마 약간의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배우다시피 악기를 익혔다. 그렇게 매주 수요일 두란노교회에서 연습모임을 이어갔다. 2016년 4월 7일 남부구치소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첫 연주회를 가졌다. 단장인 오 목사는 “한번은 남부구치소에서 ‘고향의 봄’, ‘어머니 은혜’ 등을 연주했더니 현장이 눈물바다가 됐다”며 “여성재소자들 앞에서 연주했는데 한 재소자가 저희에게 다가와 ‘저도 모태신앙’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편곡과 단원들의 음악 지도는 서울대 음대를 나와 전문 지휘자로 활동하는 김희수 씨가 도와준다. 김 씨는 오 목사의 덕성여중 교사 시절 제자다. 미국에서 활동하다 귀국했다. 단원들이 고령이라 건강이 가장 큰 걱정. 악기의 무게도 매년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단원들이 나누는 인사는 “아프지 말자!”이다. 그만큼 봉사할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진은희 기자2019-12-08

본지는 우리 주변의 선한 이웃과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굿-뉴스>를 연재한다.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선한 행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올해로 4년째 소아당뇨 환우를 돕고 있는 유앤아이바자회(U&I BAZZAR). 서른 살 동갑내기 여성 5명이 힘을 모았다. 방송 관련 일을 하며 만났고, 또 다른 이는 친구의 선행을 보고 돕고 싶다며 의기투합했다. 그래서인지 TV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익숙한 얼굴도 있다. 바자회를 계획한 엄지민 씨가 소아당뇨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소아당뇨협회가 주관하는 행사를 도우면서 부터다. 겉으로 봐선 티가 나지 않는 소아당뇨라는 병의 심각성을 깨닫게 것도 이때다. 당뇨관리법과 같은 정보를 제공하는 행사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아당뇨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성인당뇨의 경우 식습관 등 후천적인 원인이 많기에 막연히 소아당뇨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도 있었다. 엄 씨는 “협회 일을 도우면서 소아당뇨는 일상에서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합병증까지 이어질 수 있기에 일상에서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소아당뇨로 고생하는 환우들과 가족들을 지켜보며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소아당뇨 특성상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린다. 엄 씨가 바자회를 구상한 이유다. 필요한 물품은 일일이 발품을 팔며 구했다. 마침 친구인 이윤정 씨가 힘을 보탰다. 2016년 첫 바자회를 마친 후 동료들이 하나둘 늘었다. 김지현 씨와 신수현 씨, 오승애 씨까지 뜻을 모았다. 동료들은 각자 일을 하면서도 바쁜 와중에 연말마다 따뜻한 나눔을 이어오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며 제안해오기도 했다. 그 중 플로리스트를 하는 김지현 씨는 본인의 일을 해왔던 경험을 살려서 바자회의 장소를 멋지게 꾸미기도 했다. 각자가 가진 재능으로 바자회에 힘을 보탠 것이다. 이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바자회가 입소문이 나면서 먼저 돕겠다고 나서는 기업과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장소를 제공하는 곳도 생겼다. 개인 후원자도 여럿이다. 소규모로 시작한 바자회가 해를 거듭할수록 참여 인원과 규모도 커졌다. 바자회에서 얻은 수익금은 전액 소아당뇨인협회에 기부한다. 5명의 여성이 시작한 나눔은 저소득층 소아당뇨 환우들의 학비 지원과 치료비 등에 쓰이고 있다. 선한 행동이 알려지면서 최근 보건복지위원회로부터 표창도 받았다. 이들은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아왔기에 그것을 다시 베풀며 살고 싶다”면서 “연말맏 열리는 바자회를 통해 소아당뇨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환우들의 어려움도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 올해는6~7일까지 서울 종로구 패스트바이브시청점 2층에서 U&I바자회를 열었다.ⓒ데일리굿뉴스

한혜인 기자2019-12-02

다음세대를 중심으로 '웹툰'과 같은 만화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면서 복음의 메시지를 재미있게 풀어내려는 크리스천들의 다양한 시도도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30년 전부터 만화로 복음을 전해온 목회자가 있어 눈길을 끈다. 복음의 진수를 만화로 유쾌하게 풀어낸 조대현 목사를 만나봤다. <울퉁불퉁 삼총사> 출판 30주년…"만화, 전도 도구로" 말썽만 피우던 어린이들이 교회에서 변화되는 과정을 다양한 에피소드로 풀어낸 조인교회 조대현 목사의 만화책 <울퉁불퉁 삼총사>가 출판 30주년을 맞았다. 책은 용서와 겸손과 같은 윤리적인 덕목과 기독교 진리를 어린이 주인공들의 일상생활을 통해 유쾌하고 따뜻하게 담아냈단 평가를 받으며, 30만부 이상 판매됐다. 조인교회 조대현 목사는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은 주일학교에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라며 "책을 통해 복음을 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만화의 특징인 재미를 만화 안에 좀 더 많이 담기 위해 재미 90%, 복음 10%를 담는다는 목표가 있다"며 "재미있는 내용 속에 복음을 담아야 현대인들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해 가능하면 재미있는 책을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조대현 목사는 만화사역 30주년을 맞아<손바닥 전도만화>를 새롭게 출간했다.(사진제공=조대현 목사) 조대현 목사는 1989년 <울퉁불퉁 삼총사>를 시작으로 <만화로 보는 한국교회 부흥 이야기>, <만화 천로역정>, <어서와 교회는 처음이지?> 등 40여 편의 만화를 통해 복음전파에 앞장서고 있다. 새롭게 출간된 <손바닥 전도만화>도 관심을 끈다. 책은 영유아를 위해 만든 '하나님은 너를 이만큼 사랑해'부터 어르신을 위한 큰 글자의 '엄마 손은 약손 아기배는 똥배'까지 연령별로 나눠져 있으며 총 10권으로 구성됐다. 교회를 한번도 오지 않은 불신자들, 또 교회를 오긴 왔지만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초신자들이 대상이다. 조대현 목사는 "만화는 다음세대와 비기독교인들에게 효과적이고 강력한 전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며 "전도만화를 통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복음을 재미있게 접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울러"앞으로도 만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이어갈 것"이라며 "전국을 넘어 세계로 사역을 확장하고 싶다"는 비전을 밝혔다.

박은결 기자2019-12-01

40년이 넘는 오랜 세월, 한 길을 꾸준히 걸어오며 얻게 된 특기를 이용해 주위에 따뜻함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 원주에서 '지박사 막국수'를 운영하며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에서 한국예술문화명인으로 선정된 지준학 명인이다. 지 명인은 40년간 한 우물을 파며 강원 향토음식인 메밀 막국수의 고유 기술 연구와 대중화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막국수 명인의 길에 올라섰다. 조리학을 전공하거나 박사학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모의 어깨너머로 배운 막국수를 꼼꼼히 연구하고 자신만의 비법을 더해 '지박사'라는 별칭도 붙여졌다. 이렇게 꾸준히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지 명인은 자신이 가진 재주로 이웃을 돌아볼 때 보람을 느낀다.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막국수를 대접하는 등 주말마다 식사 봉사에 힘써온 지 벌써 5년째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해 배달도 한다. 지 대표는 "그분들의 삶을 나아지게는 할 수 없지만, 밥으로 따뜻함을 전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외 봉사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원주시에서 열리는 행사 때면, 부스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판매해 수익금으로 필리핀 클락에 있는 아이티 부족을 돕고 있다.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이며 전통 음식을 알리기도 하고 인형과 헌 옷, 생활용품 등을 모아서 기부한다. 작년에는 지역 사회복지 기관과 함께 필리핀을 방문해 식당을 지어주는 일에 참여했다. 그는 "바닥에서 밥을 먹는 게 안타까워 식사 장소를 만들어줘야겠다고 결심했다"며 "재정이 확보되면 우물을 파는 작업까지 이어가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제는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의 나눔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한 끼가 되어 돌아가길 바란다는 지준학 명인. 그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지혜택과 부족함 없는 세상은 앞 시대를 살아온 어르신들의 노력으로부터 온 것"이라며 "그 고마운 마음이 전해지는 따뜻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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