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기자2021-09-08

김동찬(65) 선교사는 올해로 30년째 인도네시아에서 선교 사역을 펼치고 있다.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으로 1991년 7월 인도네시아 '바탐섬'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당시 인도네시아에는 한인 선교사 20여 가정이 들어와 있었다. 88올림픽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이뤄지면서 선교사들의 해외 입국이 점점 늘기 시작하던 때였지만 아직 선교 기반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는 않았었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선교지만, 자녀 셋을 데리고 낯선 땅에 정착하기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당시 바탐은 5만 인구에 전기, 수도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작은 시골 동네였다. 평균 기온 35도의 무더운 날씨를 이겨내야 했고 여권 없이 떠난 터라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언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반둥 지역에서 1년가량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현지인과의 소통을 위해 신문, 방송은 물론이거니와 집안 곳곳에 사전을 매달아 놓고 언어 공부에 매진했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로 복음을 전하는 데 장벽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무슬림 안에서도 '개방적 무슬림'과 '폐쇄적 무슬림'으로 나뉘는데, 심한 경우 기독교인인걸 들키기만 해도 지역에서 추방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고 김 선교사는 말했다. 여러 난관에도 '한 영혼을 살리라'는 하나님 말씀 하나만을 붙잡고 그는 수많은 사역을 전개했다. 수지침 사역과 영어 성경 교육, 나중에는 교회 개척을 통해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현지 교회들과의 협력으로 4년제 신학대학을 설립해 현지 목회자 양성에도 힘써 오고 있다. 김 선교사는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선교 사역이 학교 설립이나 마을 시설 조성, 현지교회와의 협력 강화에 등에 그쳤었다"며 "1990년대 들어서는 무슬림 사회로 선교사들이 직접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등보다 적극적인 사역의 형태로 전환해 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땅에 선교 열매가 맺어지는 만큼 강성 이슬람의 출현도 덩달아 같이 늘고 있다며 이를 대비한 선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교 방법의 다양화와 전문인 선교 분야의 발전을 언급하며 특히 이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무슬림 사회에 들어가 그들과이웃이 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빛과 소금이되는 착한 행실을 보이는 것이 이들의 마음을 여는 첫 단추라고 말했다. 김 선교사의 인도네시아 선교는 내년도 마침표를 찍는다.그는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모든 것이 은혜였다. 감사한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에는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소외된 이들이 많다"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인도네시아에 아름다운 선교의 열매가 계속 맺어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도네시아에서의 시간이 마지막이라 해서선교의 삶이 멈추는 것은 아니라며 "국내 이주민을 위한 다문화 사역 등 어떤 방식으로든은퇴 후 계속해서 복음 전파를 위한 사역을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민주 기자2021-09-07

교회 역사에서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평생 남모를 헌신으로 교회를 지탱해왔던 여성들을 조명한 특별전시가 마련됐다. 한국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의 시작과 부흥에 견인했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다. 이 중에는 일평생 복음을 위해 봉사했지만, 그 행적과 활동이 잘 알려지지 않은 기독 여성들이 많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담임목사 이상학)가 창립 134주년을 맞아 새문안 여성사 특별전시회를 마련했다. 새문안교회는 각 부서 구성원들이 교회 살림을 수행하는 ‘제직회’ 기록과 당회록을 바탕으로 여성들이 보여준 믿음의 역사를 조명했다. 전시 주제는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그대 이름은 여성'으로,1880년대 조선 후기부터 1945년 광복까지, 새문안교회 여성 성도들이 어떻게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했는지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새문안교회 여성면려회원들(1934년 5월 13일 촬영). 기독면려회는 기독 청년의 신앙생활과 사회활동의 증진을 목적으로 조직됐다.(제공=새문안교회 역사관) 여성활동 제한된 시절, 교회 섬긴 활약 돋보여 남녀가 유별하고 여성들이 바깥출입조차 자유롭게 하지 못하던 시절, 여 성도들은 복음에 대한 열정과 헌신으로 교회를 세워나갔다. 당시 여성들은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 남편의 성으로 불리며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을 찾은 여 선교사들은 여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이름이 없는 여성들에게 선교사들은 이름을 지어주고 복음을 전했다. "세상을 만든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그분의 계획 가운데 만드셨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줄 만큼 나는 사랑 받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복음 메시지는 여성들의 정체성과 삶을 변화시켰다.복음은 여성들이 복음을 살아내는주체이자 전도자로 살 수 있도록 했다. 기독교를 받아들인 여성들은 교회 사역에 적극적으로 헌신했다. 유교적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기독교는 여성이 교회 안에서 만큼은 주체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했다. ▲새문안교회 여집사이자 전도부인(여조사)으로 활동했던 여성들. (왼쪽부터)김구례 집사, 이라이 조사, 김진애 조사ⓒ데일리굿뉴스 여성 성도들, 교회 부흥의 숨겨진 주역 전도부인이라 불렸던 ‘여조사’(女助事)들의 이야기는 전도에 대한 열정을 일깨운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여성들로, 성경과 신학에도 밝았던 이들은 집마다 안방의 여성들을 찾아다니며 전도와 양육에 힘썼다. 성경을 공부하던 사경회에선 성경 교사 역할을 하며 교회 부흥을 견인했다. 한국 최초 자생교회인 소래교회 출신으로 남편과 함께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힘썼던 김구례 집사는 새문안교회 최초 여집사로서 성도들과 함께 교회 봉사에 앞장섰다. 그의 부모는 황해도 솔내 마을에서 기독교를 믿는양반이었으며, 형제자매 중에는 의사이자 구국운동을 펼쳤던 김필순, 한국 YWCA 공동창설자인 김필례 등이 있다. 오늘날의 전도사에 해당하는 직책을 맡았던 이라이 조사(助事)는 40대에 과부가 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심방과 전도, 가정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평생 교회에 헌신했다. 새문안교회의 첫 여집사 중 한 사람인 김진애 조사(助事)는 30년간 교회 집사로 활동했다. 김 조사는 '원수를 사랑으로 갚아라, 기도하면 다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기도의 삶을 실천해 새문안교회 교인들에게 본이 되는 인물이었다. 그의 손녀인 김정림 권사는 "성경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 애썼으며, 집에 찾아온 어려운 이들에게 항상 무엇인가를 들려보내는 분"이라고 회고했다. 새문안교회 이상학 목사는 "초기 한국 교회 부흥을 위해서 필요했던 모든 일들을 여성들이 뒤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감당했다"며 "신앙 여성 선배들이 가졌던 복음에 대한 열정, 여성으로서 누려야 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존귀함을 회복하며 마음에 새기고, 우리 후배들에게도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성사 전시는 10명의 장로교 여선교사들의 사역 발자취와 새문안교회 기독면려회, 찬양대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역사를 소개한다. 한국 교회를 지탱해 온 여성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새문안 여성사' 특별전시는 9월 30일까지 새문안교회 1층 갤러리에서 상시 관람할 수 있다.

김예지 기자2021-09-10

붕어빵은 추운 겨울철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길거리 간식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일주일에 두번씩 붕어빵을 직접 만들어 지역주민들에게 나누는 교회가 있어 화제다. 인천에 위치한 부평제이교회의 이야기다. 김철권 담임목사는 교회 성도들과 함께 6년 전부터 교회 앞 골목과 인근 공원 등에서 매주 붕어빵을 직접 만들어 나누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크게 나누기 위해 고민하던 김 목사는 성경 속 오병이어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말씀이 떠올라 붕어빵 전도를 시작하게 됐다. 기계 앞에서 붕어빵을 굽는 게 여전히 덥고 힘든 일이지만, 김 목사는 붕어빵을 받고 좋아하는 주민들을 생각하며 전도하는 날만을 기다린다고 고백한다. 사계절 내내 일주일에 두번씩 붕어빵을 나눠, 이미 주민들 사이에선 입소문이 났다. 붕어빵의 맛도 좋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주민 황도모(62) 씨는 "붕어빵을 받을 때마다 왠지 모를 행복감이 느껴진다"며 "교회에서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게 너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직접 만든 붕어빵은 트럭 앞을 지나가는 주민들에게만 나누는 게 아니라, 바구니에 잔뜩 담아 근처 상인들에게 찾아가 전달한다. 붕어빵을 나눈 뒤 격려의 말도 잊지 않는다. 붕어빵 전도로 매번 방문하는 미용실에서는 이미 입소문이 나 손님들이 더 반길 정도다. 미용실 정진영 원장은 "손님들이 붕어빵을 너무 좋아한다"며 "더우나 추우나 하루도 안 빠지고 매주 오시니까 손님들이 기다린다"고 말했다. 지역주민들에게 나눈 붕어빵은 자연스럽게 전도로 이어졌다. 코로나19로 많은 교회들이 어려운 시기지만 붕어빵 전도를 통해 새신자 등록도 꾸준히 증가했다. 김 목사는 "이번에 새로 등록하신 성도님 중에서 붕어빵을 드시고 교회 나오신 분이 계시다"며 "당장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더라도 붕어빵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맛보고 언젠가 주께로 돌아올 희망을 가지고 전도하고 있다"고 나눴다. 실제로 붕어빵 전도를 통해 교회에 출석하게 된 한 주민은 현재는 교회 집사가 되어 자신이 직접 붕어빵 전도에 나서고 있다. 처음 붕어빵을 통해 듣게 된 복음을 생각하며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다른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반정화 집사는 "어느 날 바구니에 붕어빵을 한가득 담아 주면서 교회에 나오라고 했다"며 "집 식구가 많아서 8명이 함께 교회에 등록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도할 때가 제일 좋고 기쁜 마음으로 한 사람이라도 구원을 한다는 게 행복하다고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김 목사는 "붕어빵 전도를 통해 성도들이 전도하는 일을 더 즐거워하고, 어려운 교회들도 함께 힘을 합쳐 전도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붕어빵 전도가 선교지까지 나아가 복음이 더욱 더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소망했다.

유창선 기자2021-09-16

GOODTV 기독교복음방송(대표이사 김명전)이 10월 천사후원의 달을 맞아 서울 영등포구 본사에서 16일 사전 공개녹화를 진행했다. 올해 후원방송은 방송제작 환경 개선을 위한 미디어선교센터 건립에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힘을 모으고자 마련된다. GOODTV 측은 “한 해 동안 진행한 미디어선교 사역을 안내하고, 동역자들과 소통하는 시간”이라며 “출연자들의 신앙과 삶이 어떻게 전 세계로 방송되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미디어선교센터 건립 기금마련 2021 특별후원방송 공개녹화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상황인 점을 감안해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입구 앞에서 체온을 확인한 후 QR코드 인증이나 수기를 통해 방문 기록을 남겼다. 입구에는 전신소독기를 설치해 임직원은 물론 후원자 모두 소독 후 입장토록 했다. 방역 조치를 취한 방문자는 우선 GOODTV 뉴스를 비롯해 생방송 기도프로그램 ‘달리다굼’, 녹톡, 훈민복음 등 주요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메인 스튜디오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방송 조정실과 녹음실 등 미디어 선교현장을 견학한 뒤 본사 내부에 마련된 세트에서 기도제목을 적었다. 방송국 내부 곳곳에서는 GOOD TV에 보내는 방문자들의 응원메시지도 담았다. 구리성민중앙교회 강영준 목사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미디어선교센터 건립을 응원하기 위해 참여했다"며 "GOODTV가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데 값지게 쓰여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공개녹화는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준수하려고 방송국 앞에 마련된 야외 세트에서 이뤄졌다. MC는 방송인 조래훈 씨와 GOODTV 이정은 기자가 맡았다. 코로나19 시기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녹화현장을 찾아 미디어센터 건립에 힘을 보탰다. 특히후원방송에 매년 참여해온 안산에이블대학에서는 신부식 에이블자립학과 학과장과 학생들이 방문했다. 신부식 학과장은 "GOODTV 보도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미디어선교센터로 제작환경이 개선돼 더 많은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GOOD TV 관계자는 “세상을 복음의 빛으로 밝히기 위해 지난 24년간 미디어선교 소명을 감당해왔다”며 “10월 한달동안 진행되는 후원방송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를 통해 미디어선교센터 기금마련에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신규 기자2021-09-16

서울 송파구 거여2동 사회복지법인 임마누엘복지재단(이사장 김경식 목사)이 지난 9월 15일(수) 2021년 추석명절맞이 제48회 ‘임마누엘 사랑의 쌀나눔잔치’(이하 쌀나눔잔치)를 가졌다. 재단은 지난 1989년부터 매년 민족 대명절 설과 추석을 앞두고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기 위한 ‘사랑의 쌀나눔잔치’를 계속해오고 있다. 이번 ‘쌀나눔잔치’는 지체장애인, 교통장애인, 농아인, 시각장애인 등 송파구 관내 다양한 유형의 장애 노인 및 지역사회 빈곤가정 저소득 노인 등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추석 명절을 따뜻하고 풍성하게 보낼 수 있도록 사랑의 쌀과 마스크를 지원했다. 이번 ‘쌀나눔잔치’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후원이 급감한 막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임마누엘 교회의 지원은 물론, 김경식 목사가 받는 개인 사례비용을 아낌없이 이번 행사에 위해 내 놓은 것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이번에는 코로나로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마스크 1,000박스도 별도로 지원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재단 이사장이자 송파기독교연합회 대표회장인 김경식 목사는 송파구청을 비롯해 송파구 지체장애인협회, 교통장애인협회, 농아인협회, 시각장애인협회, 기능장애인협회 등 다양한 장애인협회와 연계해 지역사회 사각지대에서 도움이 필요한 수혜대상자를 효과적으로 발굴 및 선정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광환 지체장애인협회 중앙회장을 비롯해 김근식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정진철 시의원 등 지역의원, 관공서 및 지역사회 유관단체 기관장 등 많은 귀빈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김경식 목사는 행사 자리에서 “작은 나눔으로 어려운 이웃들이 풍성하고 따뜻한 명절을 맞이하게 하는 것이 행사의 목적이자 송파구민 분들께 그동안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는 취지”라며 “저희 재단도 어렵지만 그래도 지역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이어갈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 임마누엘복지재단은 전국에 장애인복지시설 11개의 산하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 본부시설인 장애인 생활시설 임마누엘집은 1983년 도봉구 안골부락 천막집에서 장애인 10명과 함께 시작해 현재는 송파구 거여동에서 장애인가족 50명이 거주하고 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라는 원훈 아래 지난 38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는 임마누엘집, 임마누엘복지재단은 보다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 매년 장학금 전달사업과 쌀 나눔 행사 등 지역사회 공헌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한편 김경식 목사는 임마누엘복지재단 뿐만 아니라 강원도 애향원복지재단까지 총 2개의 법인 이사장으로 전국 11개 산하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300명의 직원과 700여명의 장애인가족들을 섬기고 있다.

김예지 기자2021-09-10

붕어빵은 추운 겨울철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길거리 간식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일주일에 두번씩 붕어빵을 직접 만들어 지역주민들에게 나누는 교회가 있어 화제다. 인천에 위치한 부평제이교회의 이야기다. 김철권 담임목사는 교회 성도들과 함께 6년 전부터 교회 앞 골목과 인근 공원 등에서 매주 붕어빵을 직접 만들어 나누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크게 나누기 위해 고민하던 김 목사는 성경 속 오병이어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말씀이 떠올라 붕어빵 전도를 시작하게 됐다. 기계 앞에서 붕어빵을 굽는 게 여전히 덥고 힘든 일이지만, 김 목사는 붕어빵을 받고 좋아하는 주민들을 생각하며 전도하는 날만을 기다린다고 고백한다. 사계절 내내 일주일에 두번씩 붕어빵을 나눠, 이미 주민들 사이에선 입소문이 났다. 붕어빵의 맛도 좋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주민 황도모(62) 씨는 "붕어빵을 받을 때마다 왠지 모를 행복감이 느껴진다"며 "교회에서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게 너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직접 만든 붕어빵은 트럭 앞을 지나가는 주민들에게만 나누는 게 아니라, 바구니에 잔뜩 담아 근처 상인들에게 찾아가 전달한다. 붕어빵을 나눈 뒤 격려의 말도 잊지 않는다. 붕어빵 전도로 매번 방문하는 미용실에서는 이미 입소문이 나 손님들이 더 반길 정도다. 미용실 정진영 원장은 "손님들이 붕어빵을 너무 좋아한다"며 "더우나 추우나 하루도 안 빠지고 매주 오시니까 손님들이 기다린다"고 말했다. 지역주민들에게 나눈 붕어빵은 자연스럽게 전도로 이어졌다. 코로나19로 많은 교회들이 어려운 시기지만 붕어빵 전도를 통해 새신자 등록도 꾸준히 증가했다. 김 목사는 "이번에 새로 등록하신 성도님 중에서 붕어빵을 드시고 교회 나오신 분이 계시다"며 "당장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더라도 붕어빵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맛보고 언젠가 주께로 돌아올 희망을 가지고 전도하고 있다"고 나눴다. 실제로 붕어빵 전도를 통해 교회에 출석하게 된 한 주민은 현재는 교회 집사가 되어 자신이 직접 붕어빵 전도에 나서고 있다. 처음 붕어빵을 통해 듣게 된 복음을 생각하며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다른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반정화 집사는 "어느 날 바구니에 붕어빵을 한가득 담아 주면서 교회에 나오라고 했다"며 "집 식구가 많아서 8명이 함께 교회에 등록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도할 때가 제일 좋고 기쁜 마음으로 한 사람이라도 구원을 한다는 게 행복하다고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김 목사는 "붕어빵 전도를 통해 성도들이 전도하는 일을 더 즐거워하고, 어려운 교회들도 함께 힘을 합쳐 전도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붕어빵 전도가 선교지까지 나아가 복음이 더욱 더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소망했다.

김민주 기자2021-09-10

세계관 전쟁이치열하게 펼쳐지는오늘날 비기독교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도움을 제공하는 특별 강좌가 마련된다. 이슬람 선교 전문 연구기관 우드베리연구소(소장 김아영)가 오는 10월 '선교현장을 위한 기독교 교리 해설 세미나'를 개최한다. 무슬림 등 비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의 핵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강좌로 횃불트리니티 김진혁 조직신학 교수가 강의를 맡는다. 김 교수는 하버드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신학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젊은 신학자다. '질문하는 신학' 등 저서 출간으로 신학이 딱딱하고 진부하다는 편견을깨고 있다. 강좌에서는 △신론 :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예배하는가? △그리스도론 : 기독교 신앙에서 나사렛 출신의 유대인은 왜 중요한가? △인간론 : 신약 성경은 인간의 본성과 운명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구원론 :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고백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종말론 : 그리스도인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희망하는가? 등의 세부 주제를 다룬다. 세미나는 10월 7일부터 11월 4일까지 5주간 목요일마다 줌(zoom)을 통해 진행되며, 수강신청은 연구소 홈페이지 등에 안내된 큐알코드를 통해 할 수 있다. 수강료는 10만원이다.

김민주 기자2021-09-07

교회 역사에서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평생 남모를 헌신으로 교회를 지탱해왔던 여성들을 조명한 특별전시가 마련됐다. 한국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의 시작과 부흥에 견인했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다. 이 중에는 일평생 복음을 위해 봉사했지만, 그 행적과 활동이 잘 알려지지 않은 기독 여성들이 많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담임목사 이상학)가 창립 134주년을 맞아 새문안 여성사 특별전시회를 마련했다. 새문안교회는 각 부서 구성원들이 교회 살림을 수행하는 ‘제직회’ 기록과 당회록을 바탕으로 여성들이 보여준 믿음의 역사를 조명했다. 전시 주제는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그대 이름은 여성'으로,1880년대 조선 후기부터 1945년 광복까지, 새문안교회 여성 성도들이 어떻게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했는지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새문안교회 여성면려회원들(1934년 5월 13일 촬영). 기독면려회는 기독 청년의 신앙생활과 사회활동의 증진을 목적으로 조직됐다.(제공=새문안교회 역사관) 여성활동 제한된 시절, 교회 섬긴 활약 돋보여 남녀가 유별하고 여성들이 바깥출입조차 자유롭게 하지 못하던 시절, 여 성도들은 복음에 대한 열정과 헌신으로 교회를 세워나갔다. 당시 여성들은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 남편의 성으로 불리며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을 찾은 여 선교사들은 여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이름이 없는 여성들에게 선교사들은 이름을 지어주고 복음을 전했다. "세상을 만든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그분의 계획 가운데 만드셨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줄 만큼 나는 사랑 받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복음 메시지는 여성들의 정체성과 삶을 변화시켰다.복음은 여성들이 복음을 살아내는주체이자 전도자로 살 수 있도록 했다. 기독교를 받아들인 여성들은 교회 사역에 적극적으로 헌신했다. 유교적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기독교는 여성이 교회 안에서 만큼은 주체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했다. ▲새문안교회 여집사이자 전도부인(여조사)으로 활동했던 여성들. (왼쪽부터)김구례 집사, 이라이 조사, 김진애 조사ⓒ데일리굿뉴스 여성 성도들, 교회 부흥의 숨겨진 주역 전도부인이라 불렸던 ‘여조사’(女助事)들의 이야기는 전도에 대한 열정을 일깨운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여성들로, 성경과 신학에도 밝았던 이들은 집마다 안방의 여성들을 찾아다니며 전도와 양육에 힘썼다. 성경을 공부하던 사경회에선 성경 교사 역할을 하며 교회 부흥을 견인했다. 한국 최초 자생교회인 소래교회 출신으로 남편과 함께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힘썼던 김구례 집사는 새문안교회 최초 여집사로서 성도들과 함께 교회 봉사에 앞장섰다. 그의 부모는 황해도 솔내 마을에서 기독교를 믿는양반이었으며, 형제자매 중에는 의사이자 구국운동을 펼쳤던 김필순, 한국 YWCA 공동창설자인 김필례 등이 있다. 오늘날의 전도사에 해당하는 직책을 맡았던 이라이 조사(助事)는 40대에 과부가 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심방과 전도, 가정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평생 교회에 헌신했다. 새문안교회의 첫 여집사 중 한 사람인 김진애 조사(助事)는 30년간 교회 집사로 활동했다. 김 조사는 '원수를 사랑으로 갚아라, 기도하면 다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기도의 삶을 실천해 새문안교회 교인들에게 본이 되는 인물이었다. 그의 손녀인 김정림 권사는 "성경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 애썼으며, 집에 찾아온 어려운 이들에게 항상 무엇인가를 들려보내는 분"이라고 회고했다. 새문안교회 이상학 목사는 "초기 한국 교회 부흥을 위해서 필요했던 모든 일들을 여성들이 뒤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감당했다"며 "신앙 여성 선배들이 가졌던 복음에 대한 열정, 여성으로서 누려야 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존귀함을 회복하며 마음에 새기고, 우리 후배들에게도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성사 전시는 10명의 장로교 여선교사들의 사역 발자취와 새문안교회 기독면려회, 찬양대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역사를 소개한다. 한국 교회를 지탱해 온 여성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새문안 여성사' 특별전시는 9월 30일까지 새문안교회 1층 갤러리에서 상시 관람할 수 있다.

김민주 기자2021-09-06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면서 사실상 현지인 모두가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목숨이 위태로운 건 현지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탈레반에게 살해 협박을 받는가 하면, 곳곳의 감시로 탈출마저 쉽지 않다. 탈레반이 외국기업과 단체, 국가재건사업에 참여한 현지인 등 사실상 현지에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살인이나 구금, 협박을 저지르고 있단 소식이 외신 등을 통해계속 전해지고 있다. 탈레반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자비훌라 무자히드 대변인을 통해전국에 사면령을 내려 보복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어여성 인권을 존중하고 아프간인들의 외국 대피도 막지 않겠다고 했으나, 그런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여성이 부르카(온 몸을 덮는 이슬람 여성 복장)를 입지 않고 외출했다 총살을 당했고, 지방의 경찰청장과 정부에서 근무했던 민간인이 처형당했단 보도가 나왔다. 탈레반이 외국 단체와 일했던 협력자를 잡으려 집에쳐들어와서는 행방을 말하지 않았단 이유로 조카를 살해한 사건, 하자라족 부락에서 9명을 공개 참수하는 사건도 보고됐다. 기독교인 살해 위협…스파이 심어 수소문까지 현지 기독교인들은 신변 노출 위험과 탈레반의 살해 위협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상황이다. 탈레반은 마을 도처에 스파이와 정보원을 심어 기독교인이 있는지 수소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교 소식통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은 주변국에 있는 선교사나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육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비밀리에 국경을 넘는 데다 탈레반 검문소가 곳곳에 있어 상황이 좋지 않다. 아프간에서 11년간거주했던 장영수 선교사는 "탈출을 시도하다 걸리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며 "호텔도 탈레반이장악해서못 들어가고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도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어떤 사람들은 국경 근처에 숨어서 계속 국경을 넘으려 시도하고 있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덧붙였다. 외국 기업이나 NGO와 일했던 현지 아프간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포함돼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기독교 박해감시단체 '릴리스 인터내셔널'은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정부를 위해 일하다가 위험에 처한 이들도 포함돼 있다는 아프간 교회 리더의 말이 있었다”고 밝혔다. ▲오픈도어선교회가 요청한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5가지 기도 중 일부(사진=유튜브 갈무리) “기독교인 이유만으로 살해 위험…기도 시급” 중동과 난민 사역을 해온 선교사들은 아프간 교회는 대부분 지하교회 형태로 운영되는 만큼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배신당하고 살해될 위험이 있다며 이들의 보호와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도록 기도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오픈도어선교회는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기도를 요청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크리스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며"그들은 현재 극도로 조심스럽고,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지 알 수 없고 불안하다.이들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힘과 지혜와 초자연적인 평안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예지 기자2021-09-06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기독교 문학인 '천로역정'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고전으로 알려져 있다. 1600년대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천로역정이 200여 년이 흐른 뒤 한국 땅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게일 선교사의 공이 컸다. 게일은 천로역정을 최초로 한글로 번역한 인물로, 번역이 완료된 천로역정은 배재학당 등 초기 기독교학교의 교재로 활용됐으며 기독교의 토착화에 일조했다. 1888년에 한국에 들어온 게일 선교사는 조선 최초의 번역가이자 문학자, 교육자로도 기억된다. 한국의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한 대표적인 선교사로 불릴 정도로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일 선교사는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특히 성경에 나오는 'GOD'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으로 바꿔 부를 것을 제안해 현재까지도 사용하게 됐다. 게일은 요한복음과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와 고린도서를 번역하며 7만 단어 이상을 정리했고, 최초의 한영사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게일 선교사의 이러한 일생과 한국선교에 대한 업적을 소개하는 기획 전시가 지난 3일부터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박물관 측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게일의 시선에서 바라본 조선의 전통문화와 한글의 가치에 대해 살펴보고, 열정적인 선교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천로역정을 포함한 신구약 전서 등 게일 관련 30여 점의 주요 유물자료가 소개될 예정이다. 전시는 오는 12월 30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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