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구 선교사 2020-04-05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에는 중국 내 확진자가 전 세계 뉴스로 보도되면서, 한인 선교사들의 경우 선교지에서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의 확진자가 급진적으로 증가하자, 선교지에서 한국에 대한 혐오도 늘었다. '코리아'와 '코로나'라는 비슷한 발음으로 놀림을 받았다는 지역도 있었다. 선교사들의 사역도 신천지처럼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주범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인들의 입국 금지를 하는 나라들이 늘어났다. 이때만 해도 많은 선교사는 한국에서 예배당 출입을 폐쇄하고, 예배를 중지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국의 상황을 걱정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확진자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 지역에서 한국보다 더 많은 확진자가 나오고, 중동과 미국에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확진자로 전 세계가 국경을 폐쇄하게 됐다. 또 항공 및 모든 출입국을 막는 조치를 강행하면서 선교사들은 몸으로 이 위기를 체감하게 됐다. 인도는 자국 내 거주 한국인의 모든 비자를 무효화했다. 그런 가운데 선교 현지에서 급속도로 확산되는 코로나19 확진자의 증가로 외국인들은 정해진 시간에 자국으로 철수하라는 행정 명령을 받기에 이르렀다. 결국 급박하게 나오려고 했으나 공항 폐쇄로 인해 구입한 항공권도 사용이 불가능해졌다. 수 없이 항공권 변경을 위한 연락을 해도 항공사나 여행사와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어려움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전에 구입했던 항공권의 환불은 나중에 처리하더라도, 곧바로 운항이 가능한 항공권을 구입하자니 가격이 너무 비싸다. 혹 구입을 하더라도 공항폐쇄나 이동 제한 명령에 발이 묶이면, 항공권으로 인한 손실이 불가피해져 항공권 구입을 고민하는 연락이 많았다. 방송 등 언론보도에 의하면 우리 정부에서 국적기나, 전세 항공기를 보내면 뭔가 지원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몇몇 선교지의 한인회나 대사관을 통해서 알아보니 이 경우도 자기 부담금이 원칙이며, 그 비용이 일반 항공요금보다 꽤 비싸다고 한다. 늘 저가 항공기를 이용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여러 번 경유하는 항공편을 애용하는 선교사들의 형편으로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특히 한국의 많은 후원교회가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대신 인터넷이나 가정예배를 드리다 보니, 헌금을 드리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선교사들에게 선교비 송금을 임시 중단한 교회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선교지에서 이동도 못 하고, 선교비 지원이 끊어진 상황에서 버텨야 하는 선교사들의 어려움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특히 한국의 분위기도 초기와 달리 해외에서 유입되는 확진자의 증가로 인해 귀국했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도 느껴진다고 한다. 특히 선교사들의 경우 스스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자가 격리를 하려고 해도 부족한 안식관 시설과, 일반 시민들의 생활 터전 중심에 자리 잡은 안식관에서는 외국에서 온 선교사를 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지금 코로나19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건물주는 임대료를 줄이고, 지방 자치단체는 자금 지원에 나서고 있다. 또 몇몇 대형교회들로부터 작은 교회의 임대료 지원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현실에서 선교 현지에서 몸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 선교사들을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도울지를 같이 고민하고, 이 위기를 같이 이겨 나갈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가장 절실하게 어려움을 겪는 안식관과, 선교사들의 항공권 비용을 위한 지혜와 동역의 손길이 선교사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한다.

이영훈 위임목사 2020-03-30

지금 중국발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멈춰버렸다. 특히 대한민국은 중국과 위치·경제· 정치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여서 이 바이러스로 인해 큰 손해를 입었다. 지금도 확산이 멈추지 않은 상태라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앞으로 어느 정도가 될지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새롭게 나타난 신종 바이러스인 코로나19는 강한 전염성, 확실한 치료 방법이 없는 상황, 긴 잠복기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빠르게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코로나19라는 질병이 우리에게 주는 위험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에게 더 큰 문제다. 두려움은 우리가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도록 도덕의식과 이성을 마비시킨다. 평상시라면 절대로 하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게 만든다. 한 개인도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데, 지금은 사회 전체가 두려움에 빠져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유·평등·사랑·평화와 같은 가치가 약해지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점점 번지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마스크나 손 소독제와 같은 의료품 매점매석, 생필품 사재기, 외국인이나 특정 지역민에 대한 혐오 등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대해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어떻게 해서든 두려움을 극복해보겠다고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두려움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따로 있다. 건강을 위협하는 것, 혹은 관계가 깨지는 것, 진로가 막히는 것, 물질적인 손해를 보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서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들은 모두 우리의 육신의 문제와 관계돼 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이러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는 극복하고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처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때에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다가오는 문제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다른 방안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육신의 문제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영적인 문제에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4-5).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더 이상 육신의 문제로 인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신천지가 코로나19의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교를 쉬지 않는 것도 그들이 영적인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천지의 영적인 두려움은 거짓된 영적 두려움이다. 그들은 거짓된 영적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현혹시켜 일부 사람들의 육적인 욕심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절대로 두려움에 얽매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보호하시며 자유롭게 해주신다. 나의 건강, 관계, 물질에 시선을 두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일정이 취소된 지금 이 시간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우리의 영혼을 돌아보자. 영원한 가치에 소망을 두고 세상을 만드신 이에 대한 두려움을 품을 때, 지금 우리를 힘들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정기 목사 2020-03-29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될 때, 제일 먼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세기를 띄워 대피시킨 나라가 미국이다. 그리고 연이어 프랑스, 호주, 영국, 일본, 한국이 전세기를 띄워 대피시켰다. 자기 나라 백성이기에 보호한 것이다. 그리고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나라들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켰다. 북한, 대만, 베트남, 필리핀, 인도, 러시아, 몽골, 말레이시아, 싱가폴, 미국, 홍콩, 호주, 이스라엘, 뉴질랜드, 많은 나라들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켰다. 일찍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킨 대만이나 러시아 베트남 같은 나라들은 확산이 더딘 반면에,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후베이성에 한해서 금지한 나라는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래서 이제는 세계 180개 국가가 한국발 여행객의 입국을 금지시키는 상황이 되다. 그래서 인천 공항이 텅텅 비어있다. 박항서 감독으로 인해서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베트남 마저도 한국사람들을 피하고 있다. 호텔에서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방을 주지 않고 있다. 유럽도 안일하게 대처하더니 지금은 중국보다 확진자가 더 많아졌다. 이제는 유럽에 있는 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애써야 할 상황이다. 끝까지 힘써야 한다. 대한민국 백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라들도 자기 백성들을 구별한다. 하나님도 자기 백성을 구별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실 때 애굽의 바로왕이 순순히 보내주지 않자 애굽에 재앙을 내리신다. 모세가 지팡이로 하수를 치니 피로변한다. 지팡이를 잡은 손을 운하와 못위에 펴니 개구리들이 올라와 애굽땅을 덮는다. 그런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재앙인 피와 개구리 재앙은 애굽의 술객들도 따라한다. 그러나 세 번째 재앙은 사전 경고도 없었고, 애굽의 술객들도 따라하지 못한다. 지팡이로 땅의 티끌을 치니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생축에게 오른다. 그때서야 애굽의 술객들이 바로에게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출8:19> 고 고한다. 그런데 네 번째 재앙부터는 양상이 달라진다. 애굽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하셔서 애굽 땅에만 재앙을 내리신다. 출 8:20-23절을 보면 '내 백성'이라는 표현이 4번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다. '내 백성을 보내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애굽땅에 파리떼가 가득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땅은 구별하여 파리가 없게 할 것이다.' 내 백성을 특별하게 구별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구별하신 이유는 단순하다. '내 백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다. 사 4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너는 내것이라고 소유 삼아주셨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물가운데 지날때에 물이 침몰치 못하도록, 불가운데 지날때에 불이 사르지 못하도록 지켜주시고,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신다고 말씀하셨다. 다섯 번째 재앙인 가축들이 전염병으로 죽는 재앙에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않았다.<출9:6절>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이 애굽의 모든 사람과 짐승과 밭에 있는 모든 채소 그리고 모든 나무를 꺾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다.<출9:25-26절> 아홉 번째 흑암 재앙이 애굽 온 땅을 덮어 사람들이 3일동안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다.<출10:22-23절> 마지막 열 번째 재앙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었다. 처음 난 짐승들까지 다 죽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개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출11:5-7절> 하나님께서 애굽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를 구별하셨다. 그래서 애굽땅에 재앙이 있을때 고센땅에는 없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구별해주시는 것이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구별해주시는 것이 축복이다. 구별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출애굽기 20장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율법을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상 사람과 구별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먹을 것과 먹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 주셨다. 취할것과 취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주셨다.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주셨다. 날도 구별시켜주셨다. 사람도 구별시켜주셨다. 장소도 구별시켜주셨다. 언어도 구별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것도 구별시켜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십일조이다. 아무리 바빠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주일성수와 기도생활이다. 아무리 힘든 문제가 있어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찬송과 감사이다. 이것이 구별된 삶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다. 성경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씀이 많이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진실하신 하나님 등 많이 있는데 가장 많이 쓰여지는 말씀은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성도'는 '거룩한 무리, 거룩한 백성'이란 뜻이다. 이 "거룩"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코데쉬", 헬라어로 "하기오쉬네"라고 하는데 "구별되다"란 뜻이 있다. 그러므로 구별되게 사는 것이 거룩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구별하신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별하신다. 예배드리는 자와 예배 드리지 않는 자, 순종하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 기도하는 자와 기도하지 않는자, 충성하는 자와 게으른 자, 양과 염소를 구별하신다.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신다. 천국에 갈 자와 지옥에 갈 자를 구별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은 특별히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건져주시고, 응답하시고, 축복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구별되게 살자. 그래서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많이 받으며 살자.

여주봉 목사 2020-03-22

비전과 관련하여 네 번째 종류의 사람은 리더다. 리더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온 삶으로 달려가 하나님의 비전이 그를 통해 성취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그 자리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바로 거기까지 가야 진정한 리더다. 리더에 대한 정의에서도 볼 수 있듯이, 리더는 성취자 중에서 나온다. 자신이 먼저 성취자가 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그 자리로 인도하는 리더가 될 수 없다. 영적인 면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이, 아무도 자기가 가보지 못한 곳으로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없다. 리더십이 결과에 의해 검증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나는 교회가 주님을 따라가고 주님의 뜻이 그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려면, 교회의 리더십이 네 종류의 밭 중 좋은 밭, 즉 성취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물론 모든 성취자가 다 리더는 아니다. 과거에 나는 좋은 밭에 해당하는 사람들, 즉 성취자들이 당연히 모두 리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목회의 경험을 통해, 자신은 성취자로서 귀한 “결실”을 맺었음에도 다른 사람들을 그 자리로 인도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모든 성취자들이 다 리더는 아님을 알게 되었다. ‘길 가’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리더로 세워서는 안 된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교회의 리더로 세워졌다고 생각해 보라. 그들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도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으며,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은 차치하고라도 자기 자신조차 변화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핵심적인 리더십의 자리에 있다면,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그 교회가 하나님을 따라가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 그 교회를 통해서 성취될 수 있겠는가? 사실 리더는 비전을 보는 사람들이다. 조지 바나도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리더는 당연히 하나님의 비전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정의상, 모든 리더들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다(By definition, all leaders are visionaries.)”라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교회의 소위 평신도 리더들도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그 비전에 헌신된 사람들을 중에서 세워야 한다. 성취자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그 비전에 온 삶을 드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룬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미국의 한 목사는 교회에서 일꾼을 양육하고 세울 때 다음의 세 종류의 사람들 중에서 리더를 분별하여 훈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세 종류의 사람은 (1) 구경꾼(spectators), (2) 참여자들(participators), (3) 리더들(leaders)이다. 첫째, 구경꾼들은 교회는 나오지만 교회의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비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다른 말로 하면 방관자들이다. 물론 교회는 그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잘 돌보는 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리더로 세워서는 안 된다. 그럼 교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둘째, 참여자들은 내가 말하는 돌밭과 가시밭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께 헌신되고 성숙하고 충성된 일꾼들이지만 교회의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그 비전에 헌신된 사람들은 아니다. 교회는 그들에게 이런저런 봉사의 기회를 줄 수는 있지만 그들을 리더로 세우는 것은 좋지 않다. 만약 그들이 리더가 되면 그들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교회의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비전으로 인도하지 않고 그들이 생각하는 엉뚱한 곳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럼 교회는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 셋째, 리더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리더는 태어나는 것, 즉 리더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이라고 믿는다. 리더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보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리더들을 분별하여 그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을 세워야 한다. 한 때 포도나무교회가 숫자적으로 상당히 빠르게 성장하면서 교회의 각 분야에 일꾼을 세워야 했다. 하지만 교회의 숫자적 성장에 비해 포도나무교회의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그 일에 헌신된 사람들이 부족했기에, 일꾼을 세우는 데에 큰 고충이 있었다. 나는, 좀 부족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헌신된 사람들을 일꾼으로 세웠지만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실패로 끝이 났다. 그 뒤로 교회의 숫자적인 성장이 약간 더뎌지게 되었고 교회는 다져지는 기간을 거쳤다. 다행히 그 과정을 거치면서, 교회의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그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세워졌다. 그래서 현재는 포도나무교회가 숫자적으로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해도 흔들림 없이 그것을 잘 담을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김명전 GOODTV·데일리굿뉴스 대표이사 2020-03-18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다. 감염된 국가가 120여개 국,감염자도 13만 명에 이른다. 코로나19 감염자가 가장 많은 국가는 현재 중국, 이탈리아, 이란 순이다. 21세기들어 5번의 대형 감염병이 발생했다. 첫째는 2002년 중국 광동성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다. 두번째는 2009년 3월에 북미대륙에서 발생한 신종 인플루엔자(H1N1)로 214개국에서 최고 20만 3,000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어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메르스 코로나(MERS-CoV)와 2014년 서아프리카의 치사율 60% 에볼라(ebola)가 발생했다. 그리고 2019년 코로나19다. 바이러스 위기가 다시 왔다. 코로나19의 특징은 빠른 전파속도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니얼 퍼거슨 교수는 이 현상을 ‘네트워 크 효과’로 설명했다. 세계가 하나의 글로벌 공동체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사회연결 망’이 감염병의 확산 범위를 빠르고 넓게 하는 것은 확실하다. 퍼거슨 교수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감염병으로 인한 “네트워크 효과로 세계 제조업의 공급망(글로벌 가치사슬)이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방역을 위해 경제교역과 여행 등 국제 교류를 중지한 결과다. 코로나 19는 다가 올 바이러스 대재앙을 예고한다. 바이러스는 경계가 없다. 국경도 면역망도 그 앞에서는 무력하다. 인간의 방역체계보다 빨리 진화한다. 이제 일상적으로 바이러스 감염 공포 속에 살아야 한다. 바이러스는 기후에 민감하다. 지난 겨울은 역대 최고로 따뜻했다. 평균 기온이 3.1℃로 1973년 이래 가장 높았다.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러시아, 호주, 노르웨이, 브라질은 이상고온에 시달렸다. 이탈리아, 이집트, 파키스탄, 태국, 캐나다는 이상저온과 폭설에 갇혔다. 포루투갈, 스페인, 프랑스, 호주는 폭풍과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기후 현상이다. 그때마다 바이러스도 함께 왔다. 기후변화가 악(바이러스)의 연결고리다. 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사점을 준다. 바이러스가 중국의 산업 거점도시를 공습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 제조업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올 겨울은 한반도에서 미세먼지 고통이 줄었다. 깨끗한 겨울 공기를 누렸다. 에너지와 청정공기연구센터(CREA)가 2020년 1월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이 25% 줄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로 많은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에너지 소비가 줄고 항공, 육상운송 등 물류가 대폭 감소한 결과로 분석했다. 바이러스가 공기오염을 줄인 역설이다. 코로나19가 일으킨 팬데믹 사태는 인류 문명사의 획을 긋는 분기점이다. 전혀 다른 사회로의 진화를 예고한다. 그 분기점을 세울 단초는 인류 자신에서 찾아야 한다. 1998년 퓰리처상을 받은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총·균·쇠’에서 인류의 문명화가 가져온 질병, 각종 변종 바이러스의 대유행을 예견했다. 인간과 동물의공통전염병(인수공통전염병)출현이다. 인간이 노동력과 식량 확보, 즐거움을 충족하기 위해 동물과의 동거를 시작하면서다. 창조의 질서, 자연의 섭리는 인간에게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절제라는 예절을 요구한다. 특 히 종교적 차원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단 신천지를 공습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코로나19가 한국 기독교의 위기 상황을 들춰 내 보여주었다. 신천지로 인해 건강한 기독교, 교회성도들이 감염되어 투병 중이다. 한국교회의 예배까지 중지시켰다.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일까? 이 신호를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금은 신천지와 같은 이단 바이러스가 오염시킨 복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다. 종교의 힘만이 인간의 탐욕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역설이다. 코로나19는 종교를 넘어 인류 문명사를 새롭게 재단할 것 같다.인류의 문명화, 산업화는 창조의 질서인 자연 생태계를 교란시켰다. 수억 년의 세월이 농축된 화석연료를 캐내어 에너지로 쓰고 있다. 그 열이 지구를 따뜻하게 만들고 남·북극의 빙하를 녹였다. 지구 온난화다. 석유·석탄과 빙하 속에 잠들어 있던 바이러스를 깨웠다. 돌연변이 바이러스들이 속출하고 있다. 기후변화다. 글로벌바이러스네트워크(GVN)는 “사람과 동물, 자연생태계를 하나로 연결하여 다층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 생태계는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어 있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이러스가 가리키는 곳을 봐야 답이 보인다. 기후위기다. 기후변화협약만으로는 부족하다. 바이러스·세균의 무기화도 금지하고 감시해야 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국제감염병협약’ 같은 강제력 있는 기구와 국제법이 필요하다. 기후와 환경오염, 세균과 바이러스의 파괴력에 공감하고 방법을 찾자. 인류와 생명의 터전, 지구를 지킬 유일한 방법이다.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종교, 기독교의 소명 또한 거기에 있다.

정재영 교수 2020-03-15

불신을 파고드는 전염병 지금 우리 사회는 코로나 19의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불안과 염려에 휩싸여 있다. 작년 12월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뒤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이 호흡기 감염질환은 다소 진정기에 들어선 중국과 달리 한국을 비롯한 이탈리아와 전 세계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초기에는 비교적 통제가 잘 되었고 확진자가 30명 이내로 유지되었으나 신천지 신자 중에 확진자가 나오면서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 외국 기관에서는 3월 20일에 가서야 바이러스 확산이 절정에 이르고 확진자가 1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지금 추세라면 이 예측이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사실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질병이다. 이미 사스와 신종플루, 그리고 메르스의 발병으로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홍역을 치렀고 인수공동 전염병의 위험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예고된 바이다. 이미 인류 역사 속에서도 다양한 전염병이 발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전염병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우리 사회는 그 치부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를 정쟁화 하면서 서로를 비난하기 바쁘다. 최근에는 의학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연예인들까지 나서서 정부와 의료진을 비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물론 국민 누구나 자신의 의사 표명을 할 수 있고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대해서 감정 표현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뚜렷한 근거도 없이 비방을 일삼거나 지나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불안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최근에는 언론까지도 이러한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고 있는 양상이다. 사회 비판의 기능을 담당하는 언론에서 잘못된 행정에 대해서 문제를 지적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감시의 역할을 하는 것은 마땅한 역할이다. 그러나 사실을 보도하고 개관적인 분석을 하기보다는 똑같은 문제를 반복적으로 주장할 뿐만 아니라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보도를 연일 다루는 것은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많은 의료진과 공무원들의 수고에도 물구하고 서로에 대한 불신만 더욱 커지고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쉽게 사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신뢰의 중요성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그의 저서 ?위험사회?에서 성찰과 반성이 없이 근대화를 이룬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커다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몰고 왔다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위험은 성공적인 근대가 초래한 딜레마이며,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요소도 증가하기 때문에, 후진국이 아니라 오히려 선진국에서 위험요소가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예외적 위험이 아니라 일상적 위험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때 크게 이슈가 되었고,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증대되어 이 이론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이러한 일상적 불안감은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근본 문제인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불안은 크게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 요소는 여전히 항존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현재 상태에 대해서도 인간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는 불안감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자연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이 가져오는 불확실성은 더 큰 공포로 다가오게 된다.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중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은 절대로 혼자가 아니며 협력과 연대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서 불안감을 해소하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문제 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 사회학자인 로버트 퍼트남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에 터한 사회자본은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보이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많은 것을 성취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뢰와 사회적 네트워크가 활성화 된 곳에서는 사람들을 다양한 파트너들과 연결시켜주고, 고급 정보들을 제공함으로써 경제적으로도 앞서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신뢰감은 사람들에게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며, 시민적 연대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정부에서 할 수 없는 사회 곳곳의 문제를 해결하고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그래서 사회 자본이 높은 지역에서는 공공장소도 더 깨끗하고 사람들도 더 친근하며 길거리는 더 안전하게 된다. 신뢰 회복을 위한 교회의 역할 이렇게 신뢰 회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이다. 교회는 스스로 공동체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빈번한 모임과 교제를 통해서 친숙성을 높임으로써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높일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 공동체의 일원인 기독교인들은 서로에 대해 깊은 신뢰를 할 수 있고, 공동체 활동은 이런 식으로 기독교인들이 시민으로서 연대하며 참여할 수 있도록 북돋을 수 있다. 특히 자기 희생의 규범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사회가 혼란하고 어려울수록 사회 곳곳에서 공적인 책임과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전염병의 확산 속에서 주일 예배를 지킬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에 대한 신학적 토론이 벌어지고 있지만, 주일 예배를 지키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신앙 고백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종교 의례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신앙고백이 우리 사회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안고 있고 실제적인 책임의식으로 표현되느냐 하는 것이다. 특정 신앙을 가지는 사람들끼리의 폐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의 본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의 전통과 그 정수를 지키면서도 이 시대와 사회의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국 교회 안에 있는 신앙 공동체들은 깊이 고민해야 한다. 개교회주의는 단순히 각자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지시에 일방적으로 따르기보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일치된 견해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획일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사고하여 창조적인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염려에 낙심하고 있는 이 시기에 신뢰와 연대를 통해서 난국을 이겨낼 수 있도록 모든 신앙공동체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정용구 선교사 2020-03-08

코로나 19(COVID-19)의 영향력이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관계된 많은 뉴스를 접하고, 그 내용이 우리의 삶에 이렇게 가깝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낀 적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한 가운데 치료약에 대한 뚜렷한 보도가 없는 상황에서, 넘쳐나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료진들의 수고가 연일 계속되고 있고, 의료진들도 감염이 되거나, 사망하는 뉴스를 접하다보니, 그 위험과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매일 실감하고 있다. 닥터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 쓴 “조선회상”을 보게 되면 아버지인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선교사는 1894년 청일 전쟁 때 부상당한 수 많은 병사들과 환자들을 밤낮없이 치료하다가 과로로 쓰러져서 급성 발진티푸스에 걸려 고열로 35세의 나이로 선교활동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순직하였다.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한 글에서는 의료선교사로서 열악한 의료시설로, 조선의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를 알게 한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를 위해 많은 의료진들의 수고의 이야기를 듣는다. 중국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최초로 발견해서 그 위험을 알리기 위해 힘썼던 의사 리원량(李文亮)은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를 치료하다가 자신도 감염이 되어서 3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가 의사로서 사명을 가지고 전했던 최초 보고가 제대로만 인식되고, 거기에 대한 대비만 잘했어도, 지금과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고 하며,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언더우드 후손이 쓴 한국의 선교역사”라는 책에서는 1884년-1934년의 선교역사들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 당시 의료선교사들의 고민들이 많이 실려 있다. 새롭게 발견된 점은 의료선교사들은 기존의 선교사들이 복음 전도를 하기 위해 조선의 언어 공부에 집중을 했던 것과는 다르게, 의료선교사들은 조선에 오자마자 많은 환자들을 바로 치료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쉽게 조선의 언어를 잘 접하지 못한 내용이 많았다는 것이다. 반면 그들은 당시 조선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로서, 가난하며,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났지만,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내적인 갈등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의료선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있었겠지만, 생명을 구하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조선인의 생명을 구하고, 치료해 준 의료선교사들에게는 다시 한 번 그 고귀한 희생에 감사를 드리고, 그것이 당시에는 최고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조선인들의 마음에 심겨졌을 것이라는 위로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지금 코로나 19로 많은 의료진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계속되는 확진자와 사망자를 접하면서, 자신의 위험에도 묵묵히 싸워나가는 의료진들에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매일 초췌한 얼굴로 확진자 상황을 보고하는 질병관리본부, 의료진이 절대 부족한 대구에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병원 행정직 직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힘은 안되겠지만, 이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위로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한국국제재난구호팀에서도 선교사들 가운데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당하여 한국에 들어 왔을 경우 자가 격리를 할 수 있는 시설을 준비하고, 상담과 의료지원 시스템을 준비하면서 이번 코로나 19의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수고하고 있다. 곳곳에서 수고하는 의료진들이 너무나 귀하다. 특별히 이번 코로나 19가 종교시설에서 많은 확산 요인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그리스도인으로 당혹감이 크겠지만,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어렵고, 위기에 처한 이웃들을 위해, 특별히 귀한 수고를 담당하는 의료진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일들로 용기를 주기를 기대한다. 오래전 우리를 치료해 준 의료선교사들에게는 충분하게 감사의 이야기를 못 전했지만, 이번 일로 수고하는 의료진들을 위한 감사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좀 더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신동식 목사 2020-03-05

시대마다 전염병이 돌았던 역사가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중세에 페스트가 창궐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역병이라고 불리는 전염병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최근의 모습만 보아도 메리스와 사스와 같은 각종 전염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파급력이 높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였습니다. 전염병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생성됩니다. 그리고 그 변화에 대하여 사람들은 잘 대처하였습니다. 마치 역사의 발전처럼 도전과 응전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막강한 바이러스들의 도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만만치 않은 도전입니다. 그래서 지금 많은 곳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점점 지구가 한 마을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질병에 걸려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같은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제 지역과 관계없이 민족과 상관없이 동일한 질병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맞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이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전염병을 막는 일에는 백신 개발이 가장 중요합니다. 백신은 응전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백산이 개발되기 전까지 개인이 하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역사 속에서 해 왔던 방법입니다. 바로 개인 청결입니다. 특별히 손 씻기는 가장 중요합니다. 손 씻는 것이 전염병을 예방하는 보편적인 응전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하여 조심하는 것입니다. 대규모의 전염병이 돌면 국가는 부여된 권한으로 교회를 통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조심해야 합니다. 국가의 권한이 교회의 자발성을 앞서면 안 됩니다. 그러면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선제적으로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개인위생은 물론이고, 교회 방역도 잘 감당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예배하는 날인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이때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가정에서 가장이 중심이 되어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시적이며 위기적인 상황일 때 가능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방법에 있어서 현대의 기기를 이용하여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가장이 중심이 되어서 예배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때 교회는 목사의 설교문을 가정에 배포하여서 모두가 함께 그 말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따로 떨어져 있지만 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이며 동시에 가장에게 위임된 방식으로 예배할 때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정의 영적인 가장은 정말 중요한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는 큰 가정이고, 가정은 작은 교회라고 하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영적인 가장이 잘 세워지는 것이 이래서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돌아보면서 이러한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뜻을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른 이를 향한 손가락질 전에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함부로 저주의 말을 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말이 부메랑 되어서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가르침을 듣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뜻을 묻고 아는 일에 집중하려면 기도의 자리를 가져야 합니다. 기도가 위기의 시대를 사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기도는 방어와 공격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적의 침략을 막을 수 있고, 적을 향하여 대적할 수 있습니다. 시편의 기도는 이러한 모범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 군왕들의 어리석음을 향하여 책망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악인의 멸망을 향하여 탄원하는 기도를 봅니다.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마침내 승리가 있을 것임을 확신하는 기도를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도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두려움은 그 어떤 도전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모든 도전에 응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 기도가 정말 필요합니다. 고통 받고 있는 분들과 의료진과 각종 공적인 영역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교회가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건강을 위하여 더욱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바이러스로 유례가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더욱 힘을 다한 기도가 필요하고 지혜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뤄 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불편하고 힘들고 어렵지만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감당할 것을 책임 있게 감당할 때 순식간에 봄이 찾아오듯이 복된 일상을 맞이할 것입니다.

신동식 목사 2020-02-20

시대가어수선할때정보를막는것이좋을까요? 정보를세세하게알려주는것이좋을까요? 쉽지않다고생각합니다. 중국에서는코로나바이러스에대하여언론통제를하고있어서매우불만이라고합니다. 반면에너무세세한정보를제공함으로두려움과혼란이가중되고있다고말합니다. 그래서적당한선을찾아야하는데이것이그렇게쉬운일이아닙니다. 왜냐하면확증편향성때문입니다. 즉자신이본것만을보고듣는것만을듣기때문입니다. 요즘같이정보의홍수시대에사람들은자신이본것만을믿습니다. 그래서자신의생각이항상옳다는생각을합니다. 이러한모습이오래되면소통이더어려워집니다. 정보가많은데소통이되지않습니다. 자신이본것만을생각하기에대화는단절됩니다. 마치점을보는것과같습니다. 점에한번빠지면헤어나오기가쉽지않습니다. 점은그러한점을노립니다. 이것이정보를취하는우리의태도와도비슷합니다. 자신의생각을강화시키는것만을취하여서자신은결코틀릴수없다는자기합리화에깊게빠지게합니다. 그런데이모습이신앙가운데도존재합니다. 자신이가진생각이항상옳다고생각하면바른것을알고자하지않습니다. 그래서합리적인생각을하지못하고독단적인상태에빠지고마침내모든관계를파멸에이르게합니다. 이처럼슬프고가슴아픈일이없습니다. 예수님께서안식일에일을하셨습니다. 안식일에병자를고쳐주셨습니다. 안식일의주인이누구이고, 안식일이무엇을위하여있는날인지모르고있어서친절하게그날의바른의미를알려주었습니다. 얼마나감사한일입니까? 기쁘고즐거운일이아닙니까? 그런데확증편향에빠진사람들은이것을이해할수없었고, 용납하지도못하였습니다. 오히려바른것을가르쳐준예수님을죽이려고하였습니다. 참으로기가막힌일이아닐수없습니다. 하지만이것은부정할수없는역사적사실입니다.[마12:14] 결국예수님은자기지식에사로잡혀있는이들을떠납니다. 진리를얻을수있는기회를주지않았습니다. 요즘우리는서로의이야기를잘듣지않습니다. 매우위태로운시대입니다. 사상적으로진리와권위가해체되었기에매우힘든시간을보내고있습니다. 더구나권위의기반인성경이찢어지고있습니다. 그러므로어디에서도참된것이무엇인지알수없게되었습니다. 그래서이시대를Post-truth라고말합니다. 진리이후의시대라는말은진리를인정하지않는시대임을의미합니다. 이미있는진리를받아들이지않습니다. 진리가부정되고권위가해체된세상에서는다양한정보를소유하고큰소리내는사람이권력을가지고인기를누릴것입니다. 그러한현상이네이버를넘어서유튜브로몰려가는일입니다. 이제직접검색하지않습니다. 다른이의이야기를듣고자신의것인양말합니다. 스스로공부하는시대에서다른사람의것을검색하는시대를살다가이제는다른사람이정리한정보를듣는시대를살고있습니다. 놀라운것은미디어는일방성의마약인데거의중독되어있습니다. 미디어는새로운선지자라고제책에서비판하였습니다. 이제유튜브를통하여그지위를확고하게가지게되었습니다. 유튜브는일방성의지식입니다. 그리고강제적이고집중적인지식입니다. 생각할기회도주지않고자극적으로우리의뇌를자극합니다. 이것은마약을하는사람들과비슷합니다. 점을치는사람들과유사합니다. 그래서생각하고논의하는일이점점사라집니다. 많은이들은새로운미디어환경이라고말합니다. 이것은부정할수없는사실입니다. 하지만맹목적이면안됩니다. 고민하고질문하고검색하고공부하는것이 함께있어야중독에서벗어날수있습니다. 특별히스스로살피고자하는부지런함이없는사람에게는유튜브지식은매우치명적입니다. 시대가어수선합니다. 갈수록심해질것입니다. 이러한시대에진리의줄을굳게붙잡고참된자유를누릴수있어야합니다. 남의지식에노예로살지말고, 내지식을가지고분별할수있어야합니다.

이정기 목사 2020-02-27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재앙은 하나님의 경고이다. 아합왕 때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것도 하나님의 경고였다. 코로나19도 하나님의 경고이다.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이 내리시는 경고이다. 살 길은 회개하는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문자들이 있었다. 신천지가 '이번주는 신천지 에배에 참석하지 말고 일반교회 예배에 첨석하여 코로나 전파후 코로나가 신천지인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라' 하고 지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문구를 보면서 두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신천지라면 그럴수도 있겠다' 또 하나는 '사단이 성도들 주일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장난치겠구나'였다. 그 생각은 안타깝게도 적중했다. 예배 참여 인원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충격이었다. 물론 조심할 것은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사단이 조장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앞으로 난리와 난리의 소문은 더하여져 갈 것이다. 그것이 말세의 징조이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해 볼 것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허락속에 일어난다. 욥에게 일어난 사건도 하나님의 허락속에 일어났다. 그래서 우연은 없다. 마 10:29절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참새 한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다. 그런데 많은 경우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된다. 요셉의 경우를 보면 형제들에게 미움을 사 노예로 팔려간다. 애굽의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종살이 하다 누명쓰고 감옥에 갇힌다.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신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그러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꿈대로 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는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모세를 보면 바로왕 공주의 양자가 되어 왕궁에서 자란다. 40세가 되어 쓸만할 때 살인을 저지르고 광야로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어떤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화가난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이고 모래속에 감추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탄로나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고 찾자 광야로 도망간 것이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까지 하셨는지 잘 이해가 안된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후, 모세가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빠른길인 블레셋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돌아가는 길 홍해길로 인도하셨다.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하게 되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까봐서 하나님께서 홍해길로 인도하신 것이다.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 오는 급박한 위기의 상황을 허락하신 것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애굽의 바로를 벌하시고 영광을 얻으시기 위함이었다.<출14:4>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모세를 믿고 따르게 하기 위함이었다.<출14:31> 그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셔서 추격하게 하신다. 그리고 홍해에서 애굽 군대를 수장 시켜버리신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보이는 상황만 보며 심히 두려워하고 원망하게 된다. 좌절하고 절망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모세는 담대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고 하나님의 구원을 외칠수 있었다. 로마서에 보면 사도 바울이 얼마나 간절하게 로마에 가고 싶어 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수도나 다름없었다. 바울은 보다 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로마로 가기를 원했다. 당시 정치, 군사, 문화 등 모든 것의 중심은 단연코 로마였다. 그러나 바울은 무리하지 않았다. 초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롬 1:10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바울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로마로 갈 좋은 길 얻기를 구했다. 좀더 평탄하고, 좀더 효과적이고, 좀더 선교에 보탬이 되고,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는 좋은 길이 열리기를 기도했다. 그러다가 바울이 제3차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환란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간다. 그리고 체포당하여 재판을 받게 된다. 바울은 재판을 받으면서도 총독에게, 아그립바 왕에게, 그리고 헤롯 왕에게도 복음을 전한다. 그리고 바울은 일부러 로마 황제에게 상소를 한다.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살기위해서가 아니고, 오직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로마로 가는 항로가 순탄하지 않았다. 바울이 출항을 말렸는데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항해를 하다가 유라굴로라는 엄청난 풍랑을 만난다. 구원의 여망마져 없어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해가 안된다. 그런데 그 배가 섬에 도착하게 되고 그 곳에서 되어진 일을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오묘한지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이해 할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해 할 수 없는 사건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합력해서 선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롬 8:28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선포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모든 것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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