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전 대표이사2017-12-15

세계의 유통산업이 혁명적 진화단계에 돌입해 있다. 백화점업계 1위 롯데가 2015년 이후 새 사업장을 내지 않고 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역시 국내 백화점 시장은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다. 매출액에서 확인된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최근 5년 동안 매출 총액은 29조 원대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형마트도 더 이상 매장을 확장하지 않는다. 이마트는 사업을 시작한 이래 올해 처음으로 매장 숫자가 줄었다. 147개에서 145개로 두 곳이 문을 닫았다. 홈플러스도 매장 증설 계획이 없다. 국내 대형마트 3곳을 모두 합해도 지난해부터 매장 증설은 사실상 정지 상태다. 반면 온라인은 폭풍 성장이다. 2012년 20조 원대에 진입한 이후 2016년 말 기준 65조 7천 억원으로 뛰었다. 이 같은 유통산업 트렌드 변화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백화점을 비롯한 대형마트 전성시대의 마감이다. 지금은 온라인 유통이 대세다.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인터넷 세상이 가져온 전자상거래의 발달은 어디까지일까?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송년 세일 '광군제'에서 3분 1초 만에 약 1조 7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루 매출액이 약 28조 3천 억 원이다. 지난해 국내 백화점 1년 매출 29조 9천억 원과 맞먹는 규모다. 이는 전자상거래 기술의 발달로 가능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전자상거래 방식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조만간 새로운 거래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디지털 정보기술(IT) 기반 위에 데이터기술(DT)과 인공지능(AI), IoT 등 신기술이 가세하며 상상 이상의 유통혁명이 진행 중이다. 유통산업의 기술혁명 퍼레이드라 할 수 있다. 기술혁명의 물결은 파도로 바뀌었다. 유통기업이 정보와 데이터 자산을 활용해 제품의 개발과 생산에 직접 나서는 방식이다. 다양한 Social 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다. 예를 들면 11월11일, 빼빼로데이에 맞춘 제품 개발이 사례다. 최근 1년간 1000만 개 이상의 게시글과 댓글을 분석해 소비자들의 입맛을 분석하고 제품의 소재에 대한 선호도 등 변화의 트랜드를 반영해 만들었다. 결과는 성공이다. 기술의 결합은 유통의 인프라에도 도입되고 있다. 3N(No Cash, No Card, No Phone) 결재 시스템이다. 매장에 입장할 때 입구에서 지문을 입력시킨다. 쇼핑이 끝나고 퇴장할 때 다시 지문을 입력시키면 결재가 완료된다. 스마트쇼핑에 스마트 편의점, 인공지능 쇼핑어드바이저 등장 등 지각변동이다. 유통산업의 밸류체인, 판매방식이 밑바닥부터 다시 구축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유통산업은 기회다. 한국 유통산업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우리나라 200대 유통기업의 매출액을 모두 합쳐도 미국의 코스트코 하나보다 적다. 그 이유는 거미줄 규제에 있다.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대형점포의 입점 제한을 풀고 있다. 미국은 아예 유통산업과 관련한 규제가 없다. 우리의 산업환경이 선진국과 같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은 일률적 규제로는 답이 없다. 규제의 방향은 글로벌 경쟁구조에서 유통산업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로 잡아야 한다. 한국형 아마존과 알리바바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방탄소년단' 같은 한류 미사일을 엔진으로 쓸 수 있는 창조의 힘이 있다. 발목을 잡지만 않는다면....

여주봉 목사2017-12-13

우리는 몇 번에 걸쳐서 성경이 말하는 사역을 살펴보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사역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사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면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이신다. 3.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그 일에 동참한다. 4.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성취하신다. 5.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한다. 우리는 지난번에 4번의 일부를 살펴보았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우리의 온 삶으로 그 일에 동참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를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그 중 하나는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길로만 성취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알려주시고, “이제 너희가 열심히 잘 해보아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을 보라, 기드온을 부르신 하나님을 보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목적 뿐 아니라, 그 일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알리셨다. 예수님께서 동일한 종류의 환자들을 고치실 때에도 어떤 때는 각기 다른 방법들을 사용하신 점에서도 나는 그 점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동참하셨기 때문이다(요 5:19-2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보고, 그 일에 동참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일을 성취하는데 방법에 있어서도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아무리 하나님의 목적을 보고 동참했더라도 그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자기 방법대로 하면 그것은 인본주의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방법을 뒷받침하지 않으신다. 만약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보이셨는데도 하나님의 길이 보이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찾으면서 기다려야 한다. 수년 전에 아시아선교센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필리핀 현지 목회자들을 통해서 보이셨다. 새물결선교회와 포도나무교회는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분별하고 헌금을 시작했다. 부지는 구입되었다. 그런데 10억이 넘는 건축 비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당시 포도나무교회도 주차장 등을 위해 몇 십억의 돈이 필요한 상태였다. 연말에 쉬기 위해 기도원에 가 있는데, 그 일은 선교회 일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큰 금액을 헌금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 보여졌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100만 원을 한 구좌로 하는 천사를(1004 구좌) 모집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동시에 하나님은 오늘날 성도들이 본 교회에서 아무리 많은 헌금을 한다 할지라도, 그 일을 위해 100만 원 한 구좌 헌금하는 것은 자세의 문제이지 더 이상 경제적인 문제는 아닐 것임을 분명하게 보이셨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나에게 보이시는 순간, 내 마음 속에는 이제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로부터 불과 며칠 후 새물결선교회가 주최한 한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었는데, 나는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 말을 녹화했다가 나중에 저에게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때부터 14개월 만에 천사가 다 채워졌다. 나는 국내외에서 통장으로 동참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경외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나도 전혀 모르는 분인데, 5천만 원을 보내오기도 했다. 하나님은 그 외 다른 일들은 우리 힘으로 전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방법을 통해서 역사하셨다. 다른 하나는 환경은 하나님의 때에 대한 전령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관련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움직이신다는 것이다. 환경은 하나님의 때에 대한 전령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영성을 인도하는 사람 중 하나인 달라스 윌라드 박사도 그의 책 『하나님의 음성』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있어서 감동과 성경과 환경의 삼박자가 항상 맞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도나무교회가 분당에 있을 때의 일이다. 개척한 지 3년 쯤 되었을 때 하나님은 지체들 중 여러 사람들에게 교회가 입주해 있던 건물의 지하를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감동을 기도 중에 주셨다. 그 당시 포도나무교회는 아직 재정적으로 자립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모여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다. 그리고 그 지하를 소유하고 있던 건설회사에 연락을 했다. 그 회사는 우리에게 총 분양 가격이 7~8억 원이었는데, 현찰로 3억만 달라고 했다. 우리는 헌금을 시작했다. 약 천만 원 남짓 헌금이 모아졌다. 그러나 그 뒤로 더 이상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우리는 기다렸다. 그 동안 모아놓은 그 건축헌금도 월세로 다 나가버렸다. 1년 쯤 지났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다시 그 지하에 대해서 감동을 주시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그 지하를 포도나무교회가 아닌 새물결선교회 소유로 사라는 감동을 나에게 주셨다. 나는 그것을 교회에 나누었고,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모으고, 다시 헌금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바로 얼마 후, 교회가 입주해 있던 건물의 일층에 있던 공인중계사에서 두 분이 나를 찾아왔다. 오자마자 그들은 나에게 교회가 지하로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고객이 그 건물 3층 전체를 사달라고 그 공인중계사에게 요청했고, 소유주들은 모두 팔기로 동의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를 지하로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 지하를 소유하고 있던 건설회사를 찾아가 금액에 대한 협상을 마치고 나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그들이 협상하고 돌아온 가격은 2억 원이었다. 순식간에 1억 원이 떨어져 나간 버린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 건물은 1억 8천 6백만 원에 구입했다. 요셉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와 같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움직이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도 환경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직 때가 안 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더 찾으면서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시지 않는데 앞서 가면 낭패를 본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고, 하나님은 뜻은 이루어진다.

이인현 GOODTV 문화예술전문위원2017-12-11

마틴 루터는 오직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청산하고자 1517년 10월 31일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조리한 관행에 맞서는 내용이 담긴 95개의 반박문을 발표하기 이른다. 가톨릭 교회 입장에선 단지 한 대학교 교수의 반박문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로마 가톨릭 교회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터라 그의 반박문은 삽시간에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그 결과, 루터의 종교개혁은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다. 자신의 죄를 면제받기 위해 신도들은 성유물 앞에서 정성스레 기도를 올렸고, 또한 성유물의 기증을 통해 그들의 죄의 구원은 가능해졌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과의 믿음을 통해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며, 오직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루터는 이러한 행동들을 미신적인 우상숭배라 여겼다. 루터의 종교개혁 후, 우상숭배로 여겨진 많은 그림과 조각상들은 처분의 대상이 되었고, 더 이상 성모 마리아와 성인상을 회화와 조각으로 제작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루터가 미술을 적대시한 건 아니었다. 루터가 원했던 건 모든 사람이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이 적힌 판화나 성경의 내용을 모티브로 한 그림들은 선교활동의 도구가 되었으며, 종교개혁 후 널리 확산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루터는 성서를 만들 당시 오직 글만이 아닌 123개의 판화를 삽입함으로써 글자를 읽을 수 없는 신도들도 판화와 그림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로마 가톨릭 교회에 보관되어 있는 그림과 조각상을 파괴하기보다는 이들 작품이 가진 의미와 내용을 이해하려 하였으며 오직 하나님을 위한 자신의 신념과 부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조건회 목사(예능교회)2017-12-11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인간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단 10퍼센트만이 사실이고, 나머지 90퍼센트는 사건에 대한 반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일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되고,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워싱턴시를 지나가시다가 한 흑인 청소부 청년이 욕설을 있는 대로 퍼붓고 짜증을 부리면서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그 곁에 다가가서 청년의 등을 두드리며 "여보게, 자네는 하나님이 자네에게 맡기신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는 없는가? 청소를 할 때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하듯,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하듯, 괴테가 작품을 쓰듯,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10퍼센트의 부정적 사실을 90퍼센트의 긍정적 반응을 통해서 다 뒤집는 사람들입니다. 세계적인 명설교자인 로버트 슐러가 연말에 어느 탄광을 방문했습니다. 광원들의 얼굴은 땀과 탄가루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로버트 슐러는 눈만 반짝이는 광원들이 불쌍하게 여겨져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날마다 이 굴속에서 석탄을 캐는 단조로운 일을 하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그러자 한 광원이 석탄 덩어리 하나를 집어 들고 명랑하게 말했다. "제가 캐는 이 석탄이 빛이 되고, 동력이 되고 열이 되어 가정과 공장, 사회와 국가를 움직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일이 얼마나 보람 있고 즐거운지 모릅니다." 여러분,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행복과 불행이 환경에 의한 것이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행복과 불행은 주관적인 체험이지 결코 환경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부귀공명을 다 누리며 사는 사람이라도 속으로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기에는 말할 수 없이 처참한 환경에 있으면서도 충만한 기쁨을 안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Pain is enebitable but misery is optioned" 즉 우리말로 해석하면 “고통은 피할 수 없어도 비참함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다가오는 문제는 피할 길이 없어도 문제 때문에 비참해지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환경이 가져다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어디까지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떤 문제가 우리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하더라도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안용준 목사2017-12-08

루터성경(Lutherbibel)의 미학적 특징 루터의 종교개혁 예술의 형성은 다양한 신학과 사상들이 함께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어 쉽게 이해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루터의 예술사상의 배경에 어느 특정한 단일 사상가나 신학이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는 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종교개혁 예술의 역동성을 제공한 것은 루터를 포함한 당시의 개혁자들의 한결같은 외침, 즉 성경으로 돌아가자 또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사상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루터성경의 미학적 기초를 이루는 종교개혁 당시 르네상스 미술론의 배경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여기에는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72)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두 인물이 있었다. 알베르티는 자연을 조화의 관계로 이해하고 미의 특성을 '규범(Canon)'에 두고 올바른 비율을 강조함으로써, 순수한 수학적 탐구를 의미하는 비율을 통해 자연을 연구했다. 레오나르도는 자연을 경험과 원리의 장으로 이해했고, 자연 현상의 과학적인 정보, 인간의 기능과 육체, 인간의 감정에 관한 심리적 표현, 사물과 동물의 특징, 대기와 빛에 관한 연구에 몰두했다. 그에 있어서, 미술은 과학(Scientia)이었다. 그러나 수학적·기하학적 질서(ordo geometricus)에 의한 과학으로서의 미술은 응용과학에 의지한 미술은 아니다. 왜냐하면 가르치고 배우면 되는 학문과는 달리, 예술은 자연이 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과학으로서의 미술 세계는 근본적으로 도덕과 문화를 가진 인간 세계(molti morali costumi)이다. 과학으로서의 미술은 다름 아닌 정신적 연구(discorso mentale)이다. 그 결과 레오나르도와 알베르티는 미의 형식적 기초 개념을 가시적으로 보이는 자연의 질서와 원리 안에 숨겨진 아름다운 비례에서 찾았다. 놀랍게도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는 이러한 아름다운 비례의 원리의 기초 위에 미와 진리, 예술과 과학, 하나님과 세계, 신앙과 지식,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이상적으로 발전시켜나갔다. 그는 비례의 수학적 추구를 정신의 형식 속에서 추구하되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통찰했던 것이다. 종교개혁 기간 동안 비텐베르크에서 시작된 크라나흐의 작업은 성례전과 설교 중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림들, 최후의 만찬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 등 교회의 새로운 교훈으로 남을 만한 중요한 주제를 다루었다. 크라나흐는 무엇보다 창조와 타락의 모습에 항상 열려 있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율법과 은총’(Gesetz und Gnade)이라는 주제로 접근하였다. 이 주제는 루터가 성경에서 새롭게 발견해낸 메시지, 즉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루터에게서 이 ‘율법과 은총’의 관계는 상반관계(gegeneinander)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율법이 심판의 메시지라면 은총인 복음은 용서와 회복과 구원이다. 율법은 인간에게 요구하고 심판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말씀으로 여기서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벗어버리고 은총을 구할 때 복음을 맞이하게 된다. 즉 인간이 자신의 행위의 한계성을 인지하고 복음에 대한 확신, 즉 믿음으로 회복될 때 의롭다 함을 인정받게 된다.

신동식 목사2017-12-06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특권을 가진 자라고 말했습니다(벧후 1:4).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만이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영광을 영원히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우리의 가진 것의 유무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다는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흥분과 감사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5-11). 베드로 사도는 믿음과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우애와 사랑을 공급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없는 자는 앞을 못 보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일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를 살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게을리 하거나 무시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지고 교회는 허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의 영광은 모든 관계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계는 위로는 하나님, 옆으로는 이웃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은 이웃과의 관계가 영화롭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성도의 자랑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선 상대방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관계는 서로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무시하면 그 관계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상대방에 대해 이중적인 말과 행동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말에 뒤통수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앞에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비웃고 돌아가서 비방하는 말을 하는 모습입니다. 여기에는 결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상대방을 향해 정직해야 합니다. 관계는 신뢰가 생명인데 신뢰는 정직성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만날 때도 정직해야 하지만 헤어질 때도 정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관계는 슬픈 결말을 갖게 됩니다. 네 번째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예의는 말과 행위에 있어서 배려가 있습니다. 종종 무례한 말과 행동이 나오면 심장이 움츠러듭니다. 그러면 다음부터는 경계하게 됩니다. 다섯 번째로 상대방과의 대화에 있어서 비밀을 지켜줘야 합니다. 믿고 이야기했는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거나 혹은 빌미를 잡아서 흉을 본다면 그 관계는 파탄이 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상대방에 대한 흑심이 없어야 합니다. 이 말은 필요에 의해 만나고 필요가 없으면 버리는 태도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필요에 의해 만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주목적이 된다면 관계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흑심은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지 못합니다. 일곱째, 물질적인 도구를 사용해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계가 유지되면 반드시 투자 대비 산출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준 만큼 받지 못하면 비난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정치적 관계이지 인격적 관계는 아닙니다. 물질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고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며 인격적인 삶을 영위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모습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한정국 선교사2017-12-05

히말라야에 대한 관심 세계의 지붕이라고 할 수 있는 히말라야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중국의 서부와 남부 그리고 북인도를 가르며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중앙아시아 키르키즈스탄과 타자키스탄의 파미르 고원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여러 민족이 살고 있다. 특히 선교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대상은 티벳 민족으로 중국의 캄티넷, 암도티벳족 등으로 분화되어 살아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들의 종교가 흥미로운데 라싸를 중심으로 하는 라마불교를 믿는 사람들이다. 달라이 라마를 살아있는 부처로 믿으며, 동영상에서 보는 오체투지(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머리)로 라싸를 향한 순례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중국정부로부터 핍박을 받은 달라이 라마가 독립을 이루기 위해 미국 등을 방문할 때 미 정부는 인권운동 차원에서 그를 극진히 대접하고, 그의 특이한 설법에 할리우드 배우들이 관심을 갖기도 하였다. 결국 유명 배우 리처드 기어는 추종자 중의 한 명이 됐다. 라마불교란? 불교의 지파 중에서 인도 북서쪽으로 전래된 불교가 현지 토착 애니미즘인 본교와 혼합되어 이루어진 일종의 밀교(비밀의 종교)다. 그들만의 비밀스런 신앙의 비결이 있다고 믿어, 불경 일부가 쓰인 문서를 둥근 원통에 집어넣고 이를 손으로 한 번 돌리면 일독을 한 것과 같다고 믿는다. 아마 마니차(원통)를 돌리는 것을 독자들도 뉴스 등을 통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산 위 또는 고개 위에 돌을 쌓아놓고 불경이 기록된 오색 깃발을 휘날리기도 한다. 그 경귀가 바람에 실려 자신의 소원이 성취되고 바람 따라 불도의 도리가 전파된다고 믿기도 한다. 이들은 '활불'이라고 믿는 라마를 중심으로 종교와 정치, 문화, 사회가 결합된 아주 폐쇄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을 향한 기독교 선교 너무나 오랫동안 은둔의 민족이었고, 접근이 힘든 지역에 살아왔기에 그들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30년이 채 안 된다. 중국의 철의 장막이 걷히면서, 몽골 땅이 개방되면서 한인 선교사들이 그들에게까지 나가게 되었다. 1990년대 초 몽골에서 복음을 전하던 한국선교사들이 몽골족의 신앙이 라마불교인 것을 알게 된다. 한국의 대승불교에 익숙한 선교사들은 라마불교가 전통적 소승 · 대승불교와 다른 점을 발견하고 이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중국 동쪽에서 주로 사역하던 선교사들은 서진을 하면서 신장과 청해성 그리고 사천성 등에 넓게 분포된 티벳족을 만나면서 그들이 사는 고지대 3,500M까지 나가게 되었다.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그들의 신앙 태도에 고전도 많이 했다. 중국교회도 예루살렘을 향한 서진 선교를 추구하다가 제일 먼저 부딪힌 민족이 티벳이었다. 지난 10월 제주도에서 티벳 및 히말라야 지역(네팔과 부탄, 북인도 포함)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전략가들이 3박 4일간 포럼을 가졌다. 사역 보고를 통해, 이들을 향한 사역이 쉽지 않았으나 복음의 능력은 그 어려움을 뚫고 계속 전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샤머니즘적 불교와 라마 불교의 유사성 한국의 불교가 구분상 대승불교에 속하지만 토착적인 민속신앙과 혼합된 점에서 라마불교와 그 유사성이 있다. 필자는 샤머니즘 불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거듭날 때까지 그 영향력 속에 자라왔기에, 라마불교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어색한 느낌이 없었고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사상이 라마불교들에게 오체투지 예배법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일천 번의 예불제도가 그들의 정성 어린 예배법과 유사한 점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인처럼 아주 종교적이다. 한국인이 뒤늦게 기독교를 전래 받아 급속한 복음화와 선교 대국이 되었다면, 히말라야벨트에 사는 라마불교도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이 저 북방 얼음산 민족에게 복음을 전달할 그날을 꿈꿔본다. 또한 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선교사도 한인선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왜 한국선교인가? 히말라야벨트에서 쓰이는 모든 언어 즉 티벳어, 몽골어, 힌디어, 네팔어, 부탄어 그리고 타직과 키르키즈 언어는 한국어와 같은 언어 족속군에 속해 있어 어순이 같거나 단어의 유사성도 많다. 그리고 혈통적으로도 아기 엉덩이에 푸른 반점이 있는 몽골리안 계통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김새도 비슷하고 많은 문화 유사성도 발견된다. 어린아이들의 노는 공기놀이, 팽이치기, 제기차기 등이 비슷하다. 따라서 한국 선교사들은 그들에게 친근한 이웃으로 받아들여지고, 언어도 쉽고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으니 대화도 훨씬 부드럽게 이어진다. 더구나 한국의 경제발전과 K-POP 등의 한국 대중문화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한국을 배우고 싶어 한다. 지난 수천 년간 가장 소외되었던 그들에게 한국교회는 정말 반가운 이웃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몸과 사랑을 통해 전달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들이 새로운 마케도니아인처럼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다. ‘어서 와서 우리를 도와주세요.’

정재영 교수2017-12-04

소형 교회의 현실 현재 우리나라에는 6만 개 이상의 교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회들의 사정은 규모에 따라 매우 다르다. 비교적 편리한 시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중대형 교회들은 상대적으로 현상유지에 큰 어려움이 없으나 재정 자립이 어려운 작은 교회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고 1년에 수천 개 교회가 문을 닫는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중대형 교회들만으로 교세를 유지할 수는 없다. 건강한 작은 교회들이 활발하게 신앙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전체 교계를 선순환 구조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교계에 있는 크고 작은 교회들이 서로에게 건강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생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필자가 책임을 맡고 있는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설 <21세기교회연구소>와 <한국교회탐구센터>는 교인 수 100명 이하의 소형 교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소형교회의 실태와 목회자의 인식을 조사하였다. 이번 조사를 통해 밝혀진 소형 교회의 현실은 예상대로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다. 방문조사의 특성상 비교적 형편이 나은 교회들이 표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예산은 가장 많은 39.3%가 차지한 5천만 원 미만을 포함하여 1억 원 미만이 64.5%로 다수를 차지하였고, 미자립교회는 42.7%에 달했다. 특히 교회 설립 3년 이하의 교회들의 66.7%가 미자립이라고 응답하여 대부분의 교회들이 미자립 상태에서 개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교회 역사와 자립 비율이 비례하였는데 교회 설립 후 3년 유지가 쉽지 않다는 교계의 통설로 미루어볼 때 3년 안에 자립하지 못하면 그만큼 지속가능성이 줄어든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자립 교회 중 40.9%는 외부의 재정 지원이 없다고 하였고, 지원이 있는 경우에도 32.7%가 줄고 있다고 응답하여 미자립 교회의 존립이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여겨진다. 재정지원을 받지 않아도 되는 시기에 대해서 미자립 교회의 57.7%가 예측하기 어렵다고 응답하였고, 미자립 교회의 54.5%가 현 상태로 교회가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한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전체 응답자 중에는 47.1%가 현 상태로 교회가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한 적이 있다고 하였는데 응답자의 3분의 1(31.0%)은 앞으로 4년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교회 존립 고비 예상 기간의 평균은 4.9년이라고 하였는데, 특히 미자립 교회의 27.3%는 1~2년이 고비라고 응답하여 더 어려운 형편임을 나타냈다. 이 역시, 이번 조사가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교회들이 표집된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소형교회들이 훨씬 더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목회에 대한 어려움 이번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47.1%가 목회자의 영적 고갈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여 소형 교회 목회자들의 영적 상태도 우려스러운 상황임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하여 40대, 부임 목사에게서 응답률이 높았는데, 자립 여부와는 큰 상관이 없어서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목회관에 따른 차이였는데 교회성장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은 영적 고갈 경험이 23.2%였는데 반해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들은 59.1%로 3배 가까이 많았다. 영적 고갈과 함께, 소형 교회 목회자들은 3분의 1(29.6%)가량이 목회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 역시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들이 성장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았다.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들은 현 상태에서 교회 유지 가능성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걱정한 것으로 나타나 교회 성장을 추구하는 목회자들보다 더 큰 혼란과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전체의 34.5%는 다른 교회에 부임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이에 대하여 젊을수록 응답률이 높았고, 읍면 지역, 그리고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교회 목회자들에게서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시골 지역에서 높은 이유는 교회 자체보다는 시골 지역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개척 교회나 작은 교회 담임 목회자가 큰 교회 부목사로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큰 교회로 옮기고 싶다는 희망뿐만 아니라 작은 교회의 담임 목회에 대한 부담이 작용했을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목회에 대한 만족도는 만족한다는 응답이 73.3%로 결코 낮지 않게 나온 것이다. 특히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들이 상대적으로 만족도가 더 높았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결과이다. 만족하는 이유에 대해 ‘목회가 하나님의 소명이므로‘가 47.0%로 가장 많았는데 교회 성장을 추구하는 목회자는 이 대답이 35.6%인데 반해 ’교회 성장이 돼서‘가 24.4%로 높았다. 이에 반해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는 ’교회 성장이 돼서‘는 1.9%로 매우 적었으나, ’목회가 하나님의 소명이므로‘가 51.9%로 훨씬 높아 대조를 이루었다.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는 영적 고갈이나 목회 포기 등 더 큰 갈등과 혼란을 경험하고 있으나 이것을 소명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목회에 대한 만족도는 더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 작은 교회가 희망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소형 교회 목회자들이 작은 교회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은 교회가 성숙한 교인 양육에 더 좋다는 견해에 대해 동의율이 80.1%로 높게 나왔다. 이에 대하여 자립 여부에서는 차이가 없었는데, 50명 이상의 교회 목회자들에게서 더 높게 나온 것은 교인 수가 50명만 넘으면 작은 교회의 장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은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서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견해와 작은 교회가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각각 85.4%와 85.9%로 더 높은 동의율을 나타내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작은 교회의 의미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작은 교회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29.1%만 동의하였다. 소형 교회 목회자로서의 자기 인식과 관련하여, 열등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38.8%로 매우 낮았으며 작은 교회를 목회 실패로 보는 주변의 인식이 부담스럽다는 응답도 41.3%로 낮게 나와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자존감이 비교적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하여 성장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은 열등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60%에 달해 높게 나온 반면에,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들은 두 항목 모두 평균보다 낮은 동의율을 나타내 자기 인식이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앞에서 살펴본 목회에 대한 갈등은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이고, 목회에 대해서는 더 만족하고 있고 자존감도 더 뛰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교회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소형 교회의 특성과 장점을 잘 이해하고 작은 교회의 정신을 추구하는 목회가 중요하다. 작은 교회로서의 열패감을 딛고 작은 교회로서의 성서적 가치와 존엄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교회 정신을 추구하는 교회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작은 교회가 갖는 여러 가지 강점에도 불구하고 자원이나 인력이 부족하다는 제약이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뜻을 같이 하는 작은 교회들이 연계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작은 교회 문화를 형성하고 확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작은 교회 정신이 몇몇 교회의 작은 몸부림으로 그칠 것이 하니라 하나의 존재 양식으로 그리고 하나의 교회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이 정신을 확대 재생산해야 한다. 그리하여 ‘양극화’라는 교회 쏠림 현상으로 큰 교회는 더욱 성장하고 작은 교회는 고사 상태로 내몰리고 있는 한국 교계에서 새로운 대안 문화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정기 목사2017-11-30

우리나라는 장관이나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국회 인사 청문회를 통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 청문회를 통해 개인정보가 다 공개된다. 감춰져 있던 각종 비리들이 다 드러난다. 탈세, 자녀병역면제,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등…만약, 공직에 추천되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망신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청문회 제도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생방송을 통해서 인민재판식으로 공개하면서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청문회에서 힐난하게 잘못을 지적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과연 저들은 깨끗할까 의문이 생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 필요한 검증과정을 거치게 하신다. 작은 일에 충성했는지, 정직하고 진실했는지, 자기 이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는지 검증하신다. 그리고 큰 일을 맡기신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에 검증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비둘기 같은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3:22>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거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광야에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성령충만할 때 시험받으셨다. 그런데 왜 성령께서 예수님을 이끌고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셨는지 의아심이 생긴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양면성을 함께 볼 수 있어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시험에도 양면성이 있다. 사단이 주는 시험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험이 있다. 이 양면성을 우리는 테스트(Test)와 템테이션(Temptation) 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테스트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좋은 의도가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험의 목적은 마침내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시험하고 낮추사 마침내 복을 주려하심었느니라”<신8:16>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우리를 골탕 먹이고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익되게 하려고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내가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으니 고난당한 후에는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다. 야고보도“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욥도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템테이션은‘유혹’이다. 마귀가 주는 시험이다. 아주 그럴 듯 하고, 아주 매력적이고, 혹 하게 만든다. 그러나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은 절대적 진리를 거부한다. 기존의 모든 진리들을 상대화시킨다. 다양성을 최고로 여긴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융합하여 퓨전화시킨다. 어느 한 종교만을 고집하지 말고 각자의 종교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듣기에는 정말 그럴듯하고 좋아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속아넘어간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배타적이라고 공격한다. 천주교는 불교와 손을 잡고 일을 하는데 기독교는 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느냐고 공격한다. 오늘 이 시대에 마귀의 강력한 유혹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도 섬기라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는 속 좁은 사람들이 다니는 종교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물론 타 종교를 비방하거나 무시하면 않된다. 다른 종교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다른 종교를 통해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바른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진리와 비진리를 혼합시킬 수는 없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오직 예수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 <요14:6> 이것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길이 아닌 것을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생명이 없는 것을 생명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귀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안다. 약점도 잘 안다. 그리고 거래에 약하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거래의 덫을 놓고 우리를 유혹한다. 아담과 하와가 그 마귀의 거래의 덫에 걸려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마귀는 예수님과도 거래하려고 했다.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내게 한 번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했다. 정말 매력적인 거래 였다. 이 정도의 조건이면 안넘어 갈 사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얼마나 간교한 거래 조건인지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으로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검증 과정을 통과하시고 쓰임받으셨다. 마귀가 주는 시험은 말씀으로 물리치고,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믿음으로 인내하며 하나님의 검증 과정을 통과하고 쓰임받자. 최후의 승리자가 되자.

김명전 대표이사2017-11-29

1997년 11월 22일, 한국이 외환부족으로 인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날이다. 이날로 부터 우리경제는 IMF관리체제로 복속되었다. 경제주권을 넘긴 국치일이다. 해외 언론은 한국경제를 혹평했다.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 거품이었다”는 보도에서부터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는 등 비판과 조롱이 주류였다. 당시 우리 기업은 은행 대출로 몸집 불리기 경쟁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대기업은 못 쓰러뜨린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에 기대어 구조조정을 외면했다. 은행은 고금리 대출로 돈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정치와 사회는 부정 부패에 찌들었고, 정부는 고도성장에 취해 있었다. 경제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과 정책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IMF관리 첫 해의 시련은 가혹했다. 2만 여 개의 기업이 문을 닫았고 160만 명이 직장을 잃었다. 국민의식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대량해고와 실직이 보편화되면서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졌다. 좋은 직장의 기준이 공무원으로 바뀌었다. 직업의 안정성을 첫째로 꼽을 수 밖에 없는 탓이다. 2001년 8월 IMF구제금융 195억 달러를 상환하고 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 그 후 16년, 사회와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경제력이 집중되어 부의 양극화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늘어나 지난해 말 849만 명에 달했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40%를 넘는 수준이다. 소득의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최상위 10% 계층의 전체소득 점유율은 1999년 32.9%에서 2015년 48.5%로 높아졌다. 청년실업률은 97년 5.7%에서 지난해 말 기준 9.8%로 뛰었다. 빈곤의 구조화다. 한국 기업의 지형도 바뀌었다. 기술집약형 제조업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30대 그룹 중에서 19개가 해체되거나 문을 닫았다. 살아남은 30대 상장기업의 현금유보액은 올 3월말 기준 700조 원에 달한다. 비상장 기업까지 포함하면 1천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30대 재벌의 자산총액은 200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50% 수준이었다. 2015년 90.4%로 치솟았다. 자산의 비중은 30대 재벌 중에서도 삼성, 현대차, SK,LG등 4대그룹 집중화로 쏠리고 있다. 국가의 브랜드경쟁력은 정상으로의 복귀했다. 국가신인도를 보면 97년 투기등급인 B+에서 11단계나 상승해 AA로 치솟았다. 세 번째 높은 등급이다. 일본보다 높고 영국, 프랑스와 같다. IMF의 한국경제 구조개혁은 미완으로 끝났다. 외국 투기자본이 한국의 부를 합법적으로 약탈했던 수탈의 시대라는 혹평도 있다. 문제는 그 후유증으로 인한 대가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을 가진 대기업은 투자를 망설이고 성장은 정체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수요는 위축되어 있고 소득의 배분은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되고 있다. 양극화의 심화다. 분배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소득증대 성장전략'과 동시에 산업구조 개혁을 손 놓아서는 안 된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반도체와 자동차, 전자에 쏠려있다. 서비스, 특히 국내시장에 갇힌 금융과 지식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은 개도국 수준이라는 평가다. 외환극복 이후 15년의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 너무 안타깝다. 구조개혁, 더 미룰 여유가 없다.

김성윤 교수2017-11-17

순하고 착한 것만 보고 살면 천당에 갈수 있을까? 좋은 노래만 듣고 염주만 돌리고 살면 극락에 갈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죄를 짓지 말고 혹여 죄를 지어도 마음의 죄업을 매일매일 깨끗이 씻어야 한다. 오스트리아나 독일의 성당을 비롯한 오래된 대형 교회에서는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주는 모습 을 그린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그림을 볼 수 있다.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머지않아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 올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일상 속 묵은 마음의 때를 벗긴다는 의미의 세심(洗心)이란 말은 교회뿐만 아니라 마을 이름에서 또는 다리이름까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세심정’이라는 정자를 세워 난세를 씻어내는 명상을 그곳에서 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아예 강물에서 목욕을 하는 것으로 마음의 때를 씻어내려고 하였다. 인도인들의 갠지스 강에서의 목욕은 삶 그 자체임을 목격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부터 브라만교도의 한 수행 방법으로 하루 세 번씩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는데 하루 세 번 목욕을 하면 지은 죄업을 모두 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죽은 사람을 이곳에서 화장하여 골분을 강물에 뿌리는 것 또한 모든 악업이 소멸되어 좋은 곳으로 환생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심지어 골분을 뿌린 강물로 차까지 끓여 마시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불교 수행자인 한 비구니 스님이 보았다. 그래서 목욕하는 브라만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갠지스 강에서 몸을 씻고 있소?” “나의 죄를 씻기 위해서요.”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면 정말 죄가 씻어진다는 말이오?” “물론이오. 주위를 보시오. 다들 이 신성한 강에서 몸을 씻고 있지 않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강의 물고기들이 가장 먼저 해탈에 들겠소.” 라고 한비구니 스님이 말했단다. 오염된 마음을 깨끗이 씻고 싶은 것이 인간의 원천적인 간절한 소망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그만큼 우리는 순수하게 우리의 이상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너도 나도 죄인인데도 “내 탓이오” 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네 탓이오” 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은 여야를 떠나 입장이 바뀌면 현실을 보는 시각과 사회문제 해결방법까지 바꾸어 버린다. 그리고 서슴없이 네 탓 타령이다. 성경의 이사야서 제 59장 1절에서 15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함도 아니라고, 질타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일상적으로 죄를 지으며 성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이곳을 좀 더 살펴보면 너희 손바닥은 사람을 죽인 피로 더러워졌고 너희 손가락은 살인죄로 피투성이가 되었구나! 너희 입술은 거짓이나 지껄이고 너희 혀는 음모나 꾸미며 터무니없는 것을 믿고 사실무근한 소리를 지껄인다. 정의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 독사의 알이나 품어 까려는 것들 거미줄을 치려는 것들, 그 알을 하나만 먹어도 사람은 죽고 그 알을 누르거나 밟아 터트리면 독사가 나온다. 그들이 치는 거미줄로는 옷을 만들지 못하고 천을 짜서 몸에 두르지도 못한다. 그들이 한다는 것은 잔악뿐이요, 손으로 한다는 것은 횡포뿐이다. 그들의 발은 나쁜 짓이나 하러 뛰어다니고 죄 없는 사람의 피나 흘리러 돌아다닌다. 잔악한 계책을 구며 닥치는 대로 빼앗아 먹고 짓부수어 평화의 길은 아득한데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어찌 정의가 있겠는가? 빛을 기다렸는데 도리어 어둠이 오고 환희를 고대 하였는데 앞길은 깜깜하기만 하다. 우리는 담을 더듬는 소경처럼 되었고 갈 길을 몰라 허둥대는 맹인이 되었다. 한낮인데 황혼 무렵인 듯 발을 헛딛기만 하는 모양이 몸은 피둥피둥한데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정의를 바라나 정의는 없고 구원을 바라나 구원은 우리에게서 멀리 있다. 이는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다고 나와 있다. 이런 죄를 씻고자 사람들은 바르게 살기를 원하고 지은 죄를 세심하기를 기원하려고 교회나 절로 간다. 그렇다고 우리의 죄가 씻어졌는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부터라도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제일 좋고 부득이 죄를 지었다면 남을 위한 봉사로 되 갚아야한다. 내 탓이오,의 삶을 살아야한다. 그것이 진정한 세심일 것이다. 당신 탓이 아니라 내 탓이란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마음의 평화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상은2017-11-16

11월 중순, 이제 한 해도 저물며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서로에게 감사를 표하는 추수의 계절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서로 가장 아껴야 할 가정이 폭력이 난무하는 싸움터로 변질되고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3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사태도 알고 보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평형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컨테이너를 넣어 일어났으며, 가습기 사태도 돈에 눈이 어두워 사용해서는 안 될 유해물질을 섞어 무고한 수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생명경시 풍조는 어쩌면 가장 안전해야할 어머니의 자궁 속의 아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면서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무뎌지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를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간주하고 모든 정책을 경제 최우선주의에 맞추어 진행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제보다 더 우선되는 사안이 생명과 안전이기에 이제 서로 만나면 돈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생명을 말합시다. 특히 여성과 청소년, 노인, 그리고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생명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함께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사회가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살과 독고사, 저출산, 고령화사회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의 산적한 현안은 알고 보면 생명의 존엄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침 굿TV뉴스가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특집을 이어간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지면을 통하여 다양한 생명윤리 이슈들이 활발히 논의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이러한 관심이 기폭제가 되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생명의 날을 함께 제정해 생명존중 문화를 일구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지난해에 제정한 생명존중 선언문이 연약한 한 생명을 일으켜 세우며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서로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는 데 소중한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나의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내 곁의 이웃의 생명 역시 소중하게 여기는 생명사랑운동이 확산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승구 교수2017-11-14

시골 어떤 마을에 어떤 작은 교회 공동체가 있다고 해 보자. 목회자의 사례도 변변히 드리지 않는 곳인 이 공동체, 담임 목사의 은퇴시기가 다 된 가운데 다른 방도를 찾지 않으면 결국 이 교회 공동체를 파(破)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해 보자. 그런 상황에서 서울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그 목사의 아들이 아버지의 후임으로 그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고 해 보자. 그렇게 되면 이를 비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방도로는 없어질 교회 공동체를 이어 갈 수 있게 해 주신 것을 감사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세습’이라는 말은 그저 아버지를 이어 아들이 목사가 되는 것이나, 심지어 한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어려움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비판할 사람은 없다(그래서 최근에 “큰 교회를 목회하는 것은 큰 십자가를 지는 것인데, 그 고통의 길로 가려고 한다”는 말도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개의 경우에 상당히 힘이 들고, 더 나아가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교회 개척(church planting)이라는 고난이 없이 상당히 규모가 큰 교회의 담임 목사직을 그 아들이나 친척이 계승하려고 할 경우이다. 또한 상당히 규모 있는 교회 공동체의 장로들의 아들이나 친척이 계승하려고 하는 경우도 이에 포함시키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비판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이는 혈연의 끈을 가지고 어떤 유리함을 얻으려 하는 것의 하나로 보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고난의 길로 나아가려 한다면 그것을 세습이라고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 지금까지도 만연한 혈연, 지연, 학연의 끈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는 오랜 관행을 참으로 잘라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서도 그리할 때에 비판한다면 더 그러하여야 할 교회 공동체에서야 얼마나 더 하겠는가? 고난스러운 과정을 생략하고, 그 후에 오는 과정에 동참하려는 일종의 사회적 편승을 이 세상이 비판적으로 보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세상과는 다른 길을 제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으로 요구하는 교회 공동체가 그런 편승을 용인하고 심지어 조장한다면 그것이 과연 교회다운 결정과 행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사람 한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깊이 생각하면서 과연 아주 구체적인 우리의 삶의 과정에서 주께서 무엇을 원하시려는 지를 숙고(肅考)하고, 그에 근거해서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과연 성령님과 함께 생각하고 사는 방식이다. 그것을 벗어난 것은 비성경적이고, 비성령적이며, 비기독교적인 것이고, 그런 것은 결국 교회를 해치는 것이다.

정재영 교수2017-11-06

한국 대학생들의 생활 ‘학원복음화협의회’가 5년 만에 <한국 대학생의 의식과 생활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한국 대학생 의식 전반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조사가 별로 없는 현실에서 매우 의미 있는 조사라고 생각된다. 특히 기독교인 대학생과 비기독교인 대학생들의 의식과 생활을 비교할 수 있는 전국적인 대규모 조사로는 유일한 조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 의미가 크다. 그 내용 중에 먼저, 삶에 대한 만족도는 61.4%로 높지 않으며 5년 전의 87.7%에 비해 상당히 낮아졌다. 또한 “거의 매일 피곤하거나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는 무기력증에 대해서 44.2%가 동의하여 5년 전(24.3%)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자살 충동도 5년 전 16.3%에 비해 23.8%로 늘었다. 이것은 통계청이 실시한 ‘2016년 사회조사’에서 20대의 자살충동이 7.9%였던 것에 비하면 3배 정도 높은 수치이다. 그러나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28.6%만이 동의하여 5년 전(31.9%)에 비해 오히려 더 떨어졌다. 대학생들의 재정 상황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다섯 명 중에 한 명 꼴로 개인 빚이 있다고 응답했고, 빚의 규모는 평균 840만원으로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비율이 35.3%로 5년 전에 비해 10%p 이상 늘었고, 전체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없는 대학생이 14.0%에 불과할 정도로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었다. 아르바이트 목적은 역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가 52.2%로 과반수를 차지했다. 아르바이트를 통한 평균 수입은 60만원이었는데 현재 시급을 감안해서 이 정도의 돈을 벌려면 평일 기준으로 매일 4시간 이상을 아르바이트에 할애해야 한다. 이것은 학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정도이므로 아르바이트로 인한 압박이 심각한 수준으로 판단된다. 대학에 진학한 이유는 학문에 대한 관심(13.8%)보다도 취업 및 성공(42.7%)과 진로(12.1%) 등 현실적인 이유가 과반을 차지했다. “남들이 꼭 가야한다고 해서”(13.9%)와 “친구들이 다 가니까”(6.8%) 등 다섯 명 중에 한 명은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이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나 세계적으로 높은 대학진학률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취업 준비 시간은 5년 전보다 50분이 늘어 매일 3시간 24분 할애를 하고 있는데, 이전 조사들과 달리 외국어 공부의 비중이 큰 폭으로 하락하였고, 자격증 취득이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대학 본연의 기능인 학문 활동보다 취업을 위한 준비과정으로서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청년들의 취업과 경제적인 어려움은 청년 이후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여겨온 결혼에 대해 대학생들은 불과 36.8%만이 결혼할 것이라고 응답했고, 절반에 가까운 47.8%가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응답하였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14.1%로 나타났다. 5년 전 조사결과와 비교해 보면, 결혼할 것이라는 응답은 20%p 가까이 줄었고,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10%p 이상 늘어 결혼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이 크게 증가하였다. 특히 여학생들은 결혼할 것이라는 응답이 4명 중 1명에 불과하였고,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와 비슷한 22.2%로 나타나 매우 충격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여학생들의 결혼 의향은 5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현재 저출산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결혼 의향이 이렇게 약하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결과이다. 계층별 의식 차이 이러한 대학생들의 생활과 의식은 계층에 따라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대학생들의 삶이 매우 불안정하고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대학생활 만족도의 감소와 취업 스트레스의 증가와도 관련이 있다. 그런데 자살 충동과 무기력증에 대해서 하류층으로 갈수록 동의율이 높았고 스트레스도 중상층에 비해 중하층의 대학생들이 10%p 이상 동의율이 높게 나왔다. 삶의 만족도에 대해서도 상층의 대학생들에 비해 하층의 대학생들은 30%p 가까이 낮게 나와 경제적인 형편에 따라서 삶의 질이 매우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결혼 의향이 경제적인 상황과 관련 있다는 것 역시 계층별로 보았을 때 뚜렷하게 나타난다. 상류층 학생들의 결혼 의향은 49.3%로 거의 절반에 가까웠으나 하류층 학생들의 결혼 의향은 32.1%에 머물렀다. 반면에 상류층 학생들의 비혼 의향은 8.7%로 10% 이하였으나, 하류층 학생들의 비혼 의향은 17.1%로 2배 이상 높았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이야기가 입증된 것이다. 자녀 계획에 대해 평균 2.2명이라는 결과가 나왔으나 이것은 “결혼을 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응답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계획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희망사항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혼 이유로는 “경제적인 문제”(37.3%)와 함께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고 싶어서”(44.5%)가 가장 많이 나왔다. 남학생들은 가장 많은 49.2%가 “경제적인 문제”를 이야기한 반면에, 여학생들은 가장 많은 50.9%가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고 싶어서”라고 응답하여 대조를 이루었다. 이에 대해서도 상류층 대학생들의 51.6%가 “구속받지 않고 싶어서”라고 응답한 반면에 하류층 대학생들의 가장 많은 44.4%가 “경제 문제”라고 응답하여 계층에 따른 의식의 차이를 나타내었다. 저소득층 대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개신교 대학생들의 보수적인 정치의식 한국의 대학생들은 자신의 정치의식에 대해 절반 가량(46.3%)이 중립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진보라는 응답(35.2%)이 보수라는 응답(18.4%)보다 두 배 정도 많았다. 5년 전에 비해 보수라는 응답은 비슷했으나 진보적이라는 응답이 2배 가까이 늘었고, 중보라는 응답이 10%p 가까이 줄었다. 작년에 있었던 국정농단과 관련된 촛불집회 등의 정국이 대학생의 정치의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점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진보적이라는 응답이 5.8%p 더 많았고, 보수적이라는 응답은 10.6%p 더 적게 나와 더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계층별로는 상류층의 대학생들이 하류층에 비해 더 진보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장년층에서도 마찬가지 경향을 나타내는데, 사회학자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유한계급론에서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는 생산 활동에 시달리는 사람 즉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사람일수록 보수적이 된다고 말한다. 극빈층과 더불어 일상적인 생존 투쟁에 에너지를 모조리 쏟아 부어야하는 사람들은 내일의 생각에 노력을 기울일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개신교 대학생들은 다른 종교인들보다 정치의식이 더 보수적이었는데, 정치의식 형성에 도움을 준 대상이 비개신교인에 비해 부모 및 가족이라는 응답이 더 많았다. 이번 조사에서 개신교 대학생들은 모태신앙이 많기 때문에 같은 개신교인 가족에 의해 보수적인 성향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촛불 집회지지 응답이 가장 적은 것도 같은 이유로 해석된다. 개신교인 대학생들의 정치의식이 다른 대학생들에 비해 가장 보수적이라는 점은 다소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보수적인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인 사회관은 현실 유지와 기득권 수호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기 때문에 건전한 비판마저도 결여되기 쉽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자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기독교적인 가치관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사회 정의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면 성경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른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대세에 따르기보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며 통회하고 공의를 실천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세계변혁적 하나님 나라 운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청년 대학생들이 균형 있는 신앙을 갖고 특히 공공성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청년 사역자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주봉 목사2017-11-06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사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면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이신다. 3.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그 일에 동참한다. 4.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성취하신다. 5.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한다. 우리는 지난번에 3번을 살펴보았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우리는 믿음에 의한 삶을 반드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하나님 크기의 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가려면, 반드시 믿음에 의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이 없이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갈 수 없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모두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랐다. 개인이 믿음에 의한 삶을 살아야 할 뿐 아니라, 특히 교회가 믿음에 의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출애굽 사건에서도 이 부분을 잘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실 때는 모세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생활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집중적으로 믿음의 훈련을 시키셨다. 애굽에서 나온 1 세대는 하나님의 반복되는 훈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불신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흩으셨다. 그러나 2 세대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셨다.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가르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신 사건들은 여호수아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들이 아니었다. 그 일들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일들이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순종하려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동참하는 삶을 살려면, 반드시 교회 전체가 믿음에 의한 삶을 살아야 한다. 4.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성취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면, 이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보이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뒷받침하신다. 우리는 출애굽 사건이나 기드온의 경우나 사울을 전도한 아나니아의 경우 등 성경의 모든 사건에서 이 부분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포도나무교회가 군 선교에 동참하게 된 과정은 이렇다. 새물결선교회에 연합하는 한 목사께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지역 교회 사역을 내려놓고 군 선교로 헌신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해서 군 선교가 가운데 참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그 소식들을 들으면서 “응 이건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건데.......”라는 생각이 나에게 들었다. 포도나무교회에는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신 것이 보이면, 그 일에 온 삶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DNA 속에 들어 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 저녁, 예배를 마치고, 나는 지체들에게 군 선교와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이신 것들을 나누고, 교회가 전체적으로 그와 관련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들으면 마치 과대망상증 환자들이 모여서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은, 군 선교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놀라운 것들을 지체들이 나누기 시작했다. 한 가지 의심할 나위 없이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포도나무교회를 군 선교로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해서 포도나무교회 군 선교가 시작되었다. 현재 포도나무교회와 새물결선교회는 군선교연합회, 대한민국ROTC기독장교연합회와 협력해서 ROTC 학군단 113개 학교에 간사들을 세워서 그들을 돌보고 있고, 문무대, 상무대, 부사관학교, 공군교육사령부 등을 섬기면서 하나님께서 참 놀랍게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포도나무교회나 새물결선교회의 모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의 다음 세대를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작정하셨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군 선교를 시작할 때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뒷받침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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