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회 목사2019-04-17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목사는 1937년 미국 유니온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조국이 히틀러에 의해 억압당하는 것을 보고 자기는 자유세계에서 더 이상 편히 있을 수 없고 독일에 가서 히틀러의 잘못된 정치를 깨우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1939년 다시 독일로 돌아온 그는 죽을 줄 알면서도 반 나치 운동에 앞장서다가 결국 1945년 4월 9일 주일 아침에 사형선고를 받게 됐습니다. 그는 같이 있는 죄수들과 마지막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흑암 가운데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광명의 세계, 소망의 세계, 부활의 주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낙심하지 맙시다.” 예배 끝나고 찬송을 부르며 사형장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옥에 갇힌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한마디를 더합니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시작입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은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한 바 있습니다. “사망이여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다. 그것은 다만 감옥에서 빠져 나와 궁궐로 들어가는 통로가 될 뿐이요, 폭풍이 이는 사나운 바다에서 빠져 나와 안식의 항구로 들어가는 것이며, 수없이 많은 원수의 무리에서 빠져 나와 참으로 사랑하는 성실한 친구들에게로 들어가는 것이요, 수치와 비난과 경멸에서 빠져 나와 말할 수 없이 크고 영광스런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진정 세상 사람들은 죽음으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탄식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라는 소망을 가지기에 결코 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빌리그래함 목사가 작년 2월 하늘나라에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살아계실 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빌리그래함이 죽었다는 소식이 신문에 나거든 그 신문기사를 믿지 마시오. 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주소를 옮긴 것뿐이오.” 죽음 자체를 흔히 말하는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세상에 태어나는 태아는 엄마의 탯줄이 끊어버리는 순간 최초로 죽음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세태-세상이라는 태(胎) 속에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세상의 탯줄을 끊어버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출발하게 될 때, 세상에서는 이것을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바로 새로운 세계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면서도 주님을 끝까지 부인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기독교 순교자들의 용기 역시 부활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부활신앙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비겁했던 베드로 마침내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돼 죽을 때 그는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하게 됩니다. 이렇듯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담대함, 이 권세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영원한 내일이 있음을 믿기에 오늘을 소망 중에 살아갑니다. 이 부활신앙으로 오늘도 자신과 세상과 어둠의 권세를 이기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정기 목사2019-04-12

예수님을믿는다는것은예수님을따라간다는것이다. 그런데예수님을따라가려면먼저선행되어야하는것이있다. 예수님께서제자들에게말씀하셨다. "누구든지나를따라오려거든자기를부인하고자기십자가를지고나를따를것이니라."<마16:24> 자기를부인해야자기십자가를질수있고, 자기십자가를질수있어야예수님을따라갈수있다는것이다. 자기를부인한다는말은자기를버린다는말이다. 신앙생활하면서가장위험한것이인본주의이다. 내가어떻게해보려고하는것이다. 그러다보니내생각, 내지식, 내경험이앞서는것이다. 참된믿음은내가하려는것이아니라하나님이하시도록맡기는것이다. 하나님이하시도록맡기는사람은하나님의말씀이이해되지않아도순종한다. 아브라함은이해되지않아도순종하여이삭을번제로바친다. 베드로는이해되지않아도말씀에의지하여그물을내린다. 마리아는잉태하여아들을낳을것이라는말씀이이해되지않아도"주의계집종이오니말씀대로내게이루어지이다"하고응답한다. 내생각과경험과이성을포기한것이다. 내소원과계획과뜻을포기한것이다. 인생에는'그래서의인생'과'그러나의인생'이있다. '그래서'라는접속사는앞의원인과뒤의결과를이어주는역할을한다. '그래서'앞에는항상원인이있고, '그래서'뒤에는항상결과가있다. 느13:17-18절을보자. "내가유다의모든귀인들을꾸짖어그들에게이르기를너희가어찌이악을행하여안식일을범하느냐/ 너희조상들이이같이행하지아니하였느냐그래서우리하나님이이모든재앙을우리와이성읍에내리신것이아니냐~~" '그래서'앞에원인이있다. 그리고'그래서'뒤에는결과가있다. 안식일을범하는악을행하자그결과하나님이재앙을내리셨다는것이다. 그러니까원인이악이면결과도악이고, 원인이선이면결과도선인것이다. 눅14:16-20절을보자. "이르시되어떤사람이큰잔치를베풀고많은사람을청하였더니/ 잔치할시각에그청하였던자들에게종을보내어이르되오소서모든것이준비되었나이다하매/ 다일치하게사양하여한사람은이르되나는밭을샀으매아무래도나가보아야하겠으니청컨대나를양해하도록하라하고/ 또한사람은이르되나는소다섯겨리를샀으매시험하러가니청컨대나를양해하도록하라하고/ 또한사람은이르되나는장가들었으니그러므로가지못하겠노라하는지라" 어떤사람이큰잔치를베풀었다. 종을보내어많은사람들을초청한다. 그런데모두가사양한다. 한사람은'나는밭을샀으니나가보아야한다.' 그래서 가지못하겠다고한다. 또한사람은'나는소다섯겨리를샀으니시험하러가야한다.' 그래서가지못하겠다고한다. 또한사람은'나는장가들었다.' 그래서가지못하겠다고한다. 모두이유가있다. 그래서결국그들은잔치자리에참여하지못한다. 그들은모두'그래서의인생'이었다. 그런데'그러나의인생'이있다. '그러나'라는접속사는앞뒤서로반대되는내용을이어주는역할을한다. 요12:27절을보자. "지금내마음이괴로우니무슨말을하리오아버지여나를구원하여이때를면하게하여주옵소서그러나내가이를위하여이때에왔나이다."십자가를앞에두고예수님의마음은괴로웠다. 예수님은당신이마셔야할잔이어떤잔인지를알고계셨다. 육체적인고통보다사람들에게멸시천대받으시는정신적인고통보다, 하나님아버지께버림받는영적인고통때문에괴로워하셨다. 그래서이렇게기도하신다.‘아버지여나를구원하여이때를면하게하여주옵소서. '그런데예수님의기도는그래서로끝나지않았다.' '그러나내가이를위하여이때에왔나이다.' 죽기로작정하신것이다. 그래서가그러나로바뀌었다. 예수님의겟세마네의기도도똑같았다. 십자가를앞에두고예수님은제자들에게'내마음이매우고민하여죽게되었으니'라고말씀하신다. <마26:38>그래서이렇게기도하신다. "내아버지여만일할만하시거든이잔을내게서지나가게하옵소서."그런데예수님의기도가바뀐다. "그러나나의원대로마시옵고아버지의원대로하옵소서."<마26:39>그래서가그러나로바뀐것이다. 어떻게그래서가그러나로바뀌었나? 바로기도이다. 우리가주목해야할것이있다. 예수님의기도의내용이다. 요12:28절에"아버지여, 아버지의이름을영광스럽게하옵소서~" 아버지의영광을구하고있다. 이것이'그래서'가아닌'그러나'의인생을살게한것이다. 예수님의기도는당신의뜻을관철시키려는기도가아니었다. 하나님아버지를설득시켜자신이원하는것을얻어내려는기도가아니었다. 예수님의기도의목적은오직하나님아버지의이름을영광스럽게하는것이었다. 나중심적인기도에서하나님중심적인기도로바뀌지않으면우리는결코‘그러나’의인생을살수없다. 예수님은하나님의뜻에순종하기위해'힘쓰고애써더욱간절히'기도하셨다. 기도에얼마나힘쓰셨는지‘땀이땅에떨어지는핏방울같이’되었다고했다. '그래서'인생이 '그러나'인생으로바뀌지않는다면, 지금보다더힘쓰고애써기도해야한다. 언제까지그렇게기도해야하나? '그래서할수없습니다. 그래서섬기기싫습니다. 그래서용서할수없습니다. 그래서사랑할수없습니다. 그래서십자가질수없습니다.'이고백이'그러나하겠습니다. 그러나섬기겠습니다. 그러나용서하겠습니다. 그러나사랑하겠습니다. 그러나십자가지겠습니다.' 이고백으로바뀔때까지기도해야한다. '그래서'가'그러나'로바뀌면내영혼이고요해진다. 평안해진다. 어떤일을만나도요동하지않는다. 넉넉히승리한다. 많은열매를맺는다. 하나님이하시는놀라운일들을많이보게된다. 하나님의영광의도구로쓰임받게된다. 예수님처럼'그래서'가아닌'그러나'의인생을살자.

정용구 선교사2019-04-07

선교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선물 중 하나는 ‘한국라면’이다. 현지의 음식이 입맛에 잘 맞지 않을 때를 대비해 늘 라면을 비상식량으로 준비하는 선교사 가정이 많다. 선교지로 가면 ‘한국라면’은 한국 라면시장의 과다경쟁에 밀려서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불안정한 위치가 아니라 몸값이 부풀려지고, 그 존재감만으로도 가치가 높아져 그 위세를 실감하게 된다. 실제 가격도 한국과 멀수록 더욱 비싸진다. 이러다보니 선교사들 사이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간혹 ‘한국라면’을 대접하기도 하고,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이웃 선교사들에게 전해 주는 물품 가운데 ‘한국라면’이 포함되면, 활짝 웃는 선교사들을 많이 보게 됐다. 한번은 아주 오지에 계신 00 선교사께 ‘한국라면’ 한 상자를 사가지고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더운 지역이라 현지에서 는 국물을 버리고 라면을 조리하는데(우리나라의 짜장라면이나 비빔라면의 조리법과 같다), 마침 그 지역을 방문한 손님이 현지 음식이 잘 맞지 않아 고생을 하다가, ‘한국라면’ 한 상자를 보고, 선교대회 간식인 줄 알고, 행사를 돕던 현지인에게 라면을 끓여 달라고 했다. 라면이 준비됐다는 소식에 식당으로 내려 온 모든 선교사들은 ‘한국라면’의 상징인 얼큰한 국물은 모두 버려지고, 면에 라면 스프가 잔뜩 엉겨버린 라면에 깜짝 놀랐다. 자신의 개인 선물인 ‘한국라면’이 이렇게 엉망으로 망가진 모습으로 순식간에 사라진 아쉬움을 쉽게 달래지 못하던 00 선교사의 어이없다는 표정의 웃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는 소고기 먹는 것이 엄격한 현지 지역의 공항에서 누가 ‘한국라면’을 신고했다. 라면스프의 재료에 소고기가 들어 간 것이 이유였다. 이로 인해 한인마트에서도 3개월 정도 ‘한국라면’을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한동안 ‘현지라면’을 먹어야 했는데, 이를 계기로 아시아 지역의 여러 라면 맛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필자의 경우는 ‘한국라면’ 가격이 비싸서 한국에서 ‘대용량 라면스프’를 구해서 간다. 저렴한 가격으로 ‘얼큰한 한국라면 국물’ 맛을 낼 수 있고, 면은 가격이 저렴한 ‘현지라면’의 면만 이용한다. 부족한 맛이 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한 라면이 나온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라면티백’이 출시됐다. 여행자들의 고충을 고민하며 개발했는데 상품이 출시되자마자 많은 주문 폭주가 이어진다고 한다. 머리가 좋은 한국 사람들은 라면 티백만이 아니라 ‘사골국물 티백’, ‘육개장 티백’들이 이어지고 있는 추세다. 현지에서는 현지음식을 먹는 것이 원칙이지만,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을 모시고 외진 곳에 갈 경우 ‘한국라면’을 준비해 간다. 그리고 현지 식당에서 음식이 좀 맞지 않아서 ‘한국라면’을 좀 먹고 싶은데 주방을 좀 빌릴 수 없냐는 요청과 함께 맘 좋은 주인들에게 약간의 비용만 쥐어줘도 쉽게 주방을 빌릴 수 있다. 현지인들이 ‘국물라면’의 경험이 없기에 국물 없는 라면을 줄 것이 염려돼 직접 주방에 들어가서 ‘한국라면’을 끓이는 것이다. 계란이나 파도 있으면 넉살 좋게 좀 달라고 한다. 거기에다 쌀밥이 있으면 얼큰한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 히말라야 산맥을 가족들과 방문해 해발 3,000m 고지의 마을에서 현지인 주방의 도움을 받아 끓여 먹었던 ‘한국라면’의 맛은 정말 잊을 수 없었다. 라면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라면이 선교현지에는 주식도 되고, 때로는 비상식량도 된다. 어떤 경우에는 가장 좋은 선물이 되는 선교지에 여러분의 작은 사랑이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재영2019-04-03

사순절과 부활절의 사회적 의미 세계의 교회들이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에 40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을 묵상하는 절기이다. 그런데 부활절 날짜는 해마다 변하고 날짜를 계산하기도 간단치 않다. 부활절은 매년 춘분이 지난 첫 만월 직후의 일요일인데 이렇게 날짜가 정해진 유래는 이렇다. 유대 전통 달력과 로마의 태양력이 달라서 교회마다 서로 다른 부활절을 지키다가 325년 니케아 공의회의 부활절 논쟁에서 로마법에 따라 유월절이 봄의 축제이므로 봄의 시작인 춘분이 지나고 유월절 보름이 지난 일요일로 정한 이후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부활절 날짜에는 천문학, 물리학적 날짜보다 성서적 전통과 신학적 의미가 더 강하게 담겨 있다. 이렇게 부활절이 정해짐에 따라 마찬가지로 성서적 전통과 예수님의 자취에 따라 40일의 정화와 준비 기간인 사순절이 정해지고 부활 뒤에 예수 승천과 성령강림절이 정해졌다. 오늘날 태양력으로는 고정할 수 없는 기독교 특유의 날짜들이다. 사순절과 부활절 날짜에는 앞에서 말한 신학적 의미와 함께 당시에 큰 세력을 형성했던 두 교회가 합의를 이루었다는 사회적 의미도 담겨 있다. 유대 전통을 따르던 동방교회와 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교회가 하나의 부활절 날짜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성서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날인 부활절을 제각각 드리지 않고 한 날짜로 정해서 지키기로 마음을 모았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당시 사회는 종교가 지배력을 행사하던 매우 종교적인 사회임을 감안하더라도 부활절은 단순히 종교 행사가 아니라 기독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성대하게 치러진 전국가적이고 민족적인 축일이자 행사였던 데 반해 오늘날 부활절은 매우 좁은 의미의 종교 행사로 치러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교계 안에서조차 부활절은 매우 개인적인 신앙 회복의 의미가 강하다. 사순절은 더욱 그러하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는 사순절의 의미가 많이 강조되고 있지 않다. 특히 개혁주의를 표방할수록 예전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순절의 의미가 많이 약화되고 있다. 개혁주의에서는 어떠한 형식과 종교적 상징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의미 자체를 강조하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부활절의 의미를 깊이 새기자면 마찬가지로 사순절의 의미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죄 가운데 있던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룬 부활의 기쁨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을 묵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순절과 부활절 정신의 사회적 실천 역사적으로 10세기 이전에는 엄격한 금식과 절제된 식사로 사순절을 지켰지만, 점차 금식은 완화되고 말씀묵상과 기도 등 경건의 훈련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에 금식은 주로 건강과 미용의 목적으로 여성에 의해 주도되지만, 인류 역사에서 금식은 대개 종교적이거나 정치적 단식으로 남성에 의해 주도되었고 사회적 의미가 중요하였다. 단식 행위는 행위자의 확실한 자기 의지에서 비롯되며, 자신의 죽음을 건 고행 또는 저항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사순절 금식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광야에서의 40일 단식을 되새기고 여기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고행을 자초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탐욕과 무절제로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가난에 힘겨워하는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활절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죄에 빠진 개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나라로 부르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수많은 약자와 고통 받는 사람들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셨고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푸셨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개인만 구원하기 위해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창조세계의 회복과 이 땅의 모든 억눌린 자들이 태초에 지음 받은 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기 위하여 부활하신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부활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실천해야 한다. 단순히 부활의 기쁨을 나누고 구원의 소식을 알리고자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그분이 하신 사역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고 행하는 것이다. 5년 전 부활절을 즈음하여 벌어진 세월호 참사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큰 도전을 주고 있다. 이후 해마다 부활절과 세월호 참사 애도일이 겹치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사람들과 애서 피하고 의미를 축소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서 교회가 연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을 빚고 있다. 3백 명이 넘는 아까운 생명이 희생되었는데도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는 이념으로 갈라져서 유가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하지도 못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못했다. 부활절 의미조차도 매우 좁은 종교적 차원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이제 한국 교회는 이념과 사상을 넘어서 온 인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사역을 이어가기 위해 한 마음으로 헌신하고 결단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 사순절이다.

조건회 목사2019-03-31

유대인들의 율법과 윤리 철학 등에 대한 문헌인 <탈무드>에서는 남자의 일생을 일곱 단계로 나눠 설명합니다. “한 살 때는 임금님과 같다. 모두가 자기만을 위해주고 기분을 맞춰주고 떠받들어주니까./ 두 살 때는 돼지와 같다. 진흙탕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뒹굴고 뛰어놀 수 있으니까. /열 살 때는 새끼 양과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니까. /열여덟 살 때는 말과 같다. 다 성장해 힘을 자랑하고 싶어서 그저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니까./ 결혼하고 나면 당나귀와 같아진다. 가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걸어가야 하니까. /중년이 되면 개와 같아진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호의도 구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하면서 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노년이 되면 원숭이와 같아진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이제 다시 어린아이같이 되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과연 귀에 속속 박히는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인생 신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들마다 ‘나’라는 존재를 설명해주는 신분증에는 우선 자신의 이름이 있고, 생년월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속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는 것이 고작 그것입니다. 엄격히 따져보면 그 전부가 다 소속에 관한 것뿐입니다. 어디가 고향이냐, 어떤 집안사람이냐, 어떤 학교를 나왔느냐, 어떤 직장에 다니고 있느냐, 이렇듯 주로 소속에 의해서 나를 증명합니다. 그 이름 석 자에서마저도 한 글자는 자신의 것이 아닌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딴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누구입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자신의 정체성은 자신의 소유나 학벌, 외모나 백그라운드에 의해 평가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있음을 우리 모두는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은 그와 같은 외형적인 요소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내 인생은 누가 만든 작품이냐, 나아가 누구의 것이냐, 누구의 소유로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Who I am’(내가 누구냐) 이전에 ‘Whose I am’(내가 누구의 것이냐)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품’자가 들어가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상품이요, 또 하나는 작품입니다. 그 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첫째 상품은 값을 따라 삽니다. 그러나 작품은 가치를 따라 삽니다. 둘째 상품은 팔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지만 작품은 주인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오늘도 정말 자신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존재됨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세상 가치기준에 따라 살아갑니다. 소위 돈에 따라 움직이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을 좀 더 고상한 말로 하면 ‘시장지향성인간’(market oriented person)입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의 것인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은 자신을 지어주신 생명주인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작품으로 가치 있게 살아갑니다(Value-oriented person). 여러분은 상품으로 사십니까? 아니면 작품으로 사십니까?

정용구 선교사2019-03-25

요즘 자주 눈에 띄는 광고 중의 하나가 ‘새벽배송 마켓00’이다. 밤 11시에 주문한 캐나다산 랍스터와 완도산 바다전복이 다음날 아침 7시에 집 앞에 살아있는 채로 배달된다. 2018년 매출액이 1,800억 원으로 올 1월에는 100만 명 회원을 돌파했다. 국내 배달음식 시장 규모는 15조 원이며 이중에 휴대폰 앱을 통한 시장이 3조 원 정도라고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 중에 하나가 ‘인공지능의 도입’이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필자가 2011년 선교지에서 도착해서 아이들 책상을 주문했을 때는 집까지 배달 기한이 ‘한 달여’라고 들었다. 그것도 기다렸던 책상이 아니라 목수를 불러다가 조립을 해야 한다고 했다. 더구나 책상 두개를 주문했지만 하나만 도착했다. 한 번은 단기선교팀이 와서 어린이 학교 200명 분량의 간식을 구입하는데 계산대에서 하나씩 스캐너로 찍어 넣으며 거의 1시간 동안 기다려야 한다는데 많이 놀랐다. 선교지에서는 간혹 한국에서 오는 손님이나 단기선교팀이 현지에서 구하기 힘든 사역용품이나 생활용품을 전해주기도 한다. 필자도 미처 준비해 가지 못했던 전기장판을 선교지로 배달해 준 팀이 참 고마웠었다. 선교지에서 비자거부를 당해 철수할 때, 방문한 단기선교팀원들이 ‘1인당 10kg의 짐을 옮겨주겠다’며 중요 책자와 사역자료들을 옮겨 주었다. 영상 50℃에 다다르는 더위라 갈아입을 옷이 많이 필요했을 텐데 어려움을 당한 선교사의 짐을 옮겨준다고 자신들의 짐을 줄여서 사역 기간 내내 땀이 베인 옷을 그대로 입고 지내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20여명이 거의 250kg을 옮겼는데 비자거부를 당해 한국에 왔을 때 유난히 추웠던 그 해 겨울을 이 단기 선교팀이 옮겨줬던 겨울옷 덕분에 이겨 낼 수 있었다. 반면에 최근에 들은 이야기 중에는 선교사의 물품을 배달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팀도 있었다. 예전에는 선교사들을 위해 한국 음식을 선물로 배달하는 모습도 있었지만, 한국의 미세먼지와 음식방송에 대한 수준이 높아져서 그런지 선교지에 올 때 자신들이 먹을 물이나 마스크 등을 꼼꼼하게 챙겨 오는 지체들을 적지 않게 목격했다. 선교사 입장에서는 ‘1리터의 물 한 병이면 6개월 동안 먹을 고추장이나, 된장을 가져 올 수 있는 무게인데…’라고 마음속 대화를 몰래 시도한다. 비자 갱신이나 여러 일로 잠시 한국에 다녀 올 때면 선교사 가정은 조금이라도 생활용품을 넣어오려고 고심한다. 제한된 무게 앞에 두고 오는 물품들을 보면 아쉬움이 많이 생긴다. 사역지에서 귀하게 사용될 물품들을 향한 거룩한 욕심(?)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 자신들도 깜짝 놀란다. 선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배송 시스템과 더불어 물품들이 너무나 풍부하다. 개교회의 교회학교 공간이나 사무실을 둘러보면 쌓여 있는 사역용품들이 참으로 풍부하다. 교회의 사역용품의 재고 파악과, 선교지에 필요한 사역 물품들의 파악이 잘 이뤄져 거기에 맞는 적절한 물품 배송 시스템이 갖춰지거나 개발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초반에 언급한 마켓00는 ‘멍멍이’라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시스템이 주문을 예측해서 신선식품 폐기율 1%의 기적을 만든다고 한다. 선교재정 확보가 어려워지는 시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잘 활용하는 것도 좋은 지혜다. 특별히 물품을 구하기 너무 힘들고 어려운 선교사들의 사역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선교사님 혹시 저희가 뭐 배달해 드릴 물건이 있을까요?”라고 문의한다면 선교사에게는 그 어떤 위로보다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김성윤 교수2019-03-24

저명한 수의학자이며 기독교 선교사였던 프랭크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 박사는 대한민국과 한국국민을 끝없이 사랑한 외국인이었다. 한국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한 그는 1959년 5월 초 캐나다에서 가재를 정리하고 9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국립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잠들어 있다. 그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발이 불편해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 때 전쟁에 참가하지 못했다. 마음에 빚을 지고 살아오던 중,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인 올리버 R. 에이비슨(영어: Oliver R. Avison, 어비신)의 초청으로 1916년 부인과 함께 우리나라에 왔다. 그는 먼 이국 땅 아침의 나라, 조선에서의 부름을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응했다. 주위 사람들의 온갖 만류도 그의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렇게 캐나다에서의 안정적인 삶마저 포기한 채 서울에서 제2의 삶을 살았다. 그는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의 ‘石’은 그의 종교적 굳은 의지를 의미하고, ‘虎’는 호랑이, ‘弼’은 돕는다는 뜻으로 한국인을 돕겠다는 마음을 이름에까지 새기고 불어 넣었다. 당시 미국으로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윌슨의‘민족자결주의’는 동양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이에 고무된 동경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1919년 2월 8일 한국독립선언을 선포했다. 이 무렵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 옹의 부탁으로 스코필드 박사도 독립운동 준비에 동참하게 된다. 그가 맡은 일은 국제사정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민중들의 모습을 비롯한 시위자에 대한 일본 경찰의 폭력적인 만행을 사진으로 찍고, 글로 적어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그는 한국인 이상으로 한국인을 사랑했으며 한국독립운동에 크나큰 역할을 감당했다. 그는 3·1만세운동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영어의 몸으로 있는 유관순을 찾아가서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 싸우고 또 싸웠다. 3·1독립선언서의 33인외에 또 다른 사람을 넣어야 한다면 단연 스코필드박사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3·1독립선언서는 스코필드 박사와 함께 34인이라는 말을 한사람도 있다. 1958년 한국은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고 경제는 피폐했으며 거리는 전쟁고아와 상이군인으로 가득 찬 시기였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부패를 척결해 민생을 안정시킬 것을 주문했다. 나아가 독재를 중지하고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건의했다. 이에 대한 이승만과 이기붕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해 10월 경향신문에 한국 국민의 환대에 감사하는 편지를 싣는다. 이 편지는 정의와 사랑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라는 내용이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민주당정권이 들어서자 그해 4월 28일자 Korean Republic에 3·1독립운동의 영웅적 정신을 계승한 학생들에 의해 부패하고 잔인한 전제정치가 종식됨을 환영하는 글을 실었다. 그는 이 글에서 “새 정부는 정의를 구현하라. 정치적인 이익에 앞서 전체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라. 건전하고 유능한 정부가 들어 설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한다. 구 정부에 마지못해 동조했던 사람들에 대해 복수는 절대해서는 안 된다”라고 당부했다. 다음 글은 스코필드의 아버지 프란스 스코필드가 그의 아이들에게 가훈에 가까운 교훈으로 심어 주었던 말이다. 이 말은 장성한 후 스코필드 박사의 인생관으로 자리 잡는다. “인생에는 두 길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배려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기도의 길이다. 배려의 생활은 환경의 압박에서 자라나고, 상식을 그 인도자로 삼는다. 어떤 길을 가든 예측불허의 험난함을 각오해야하며, 항시 염려를 동반자로 삼아야한다. 기도의 생활은 사랑을 힘으로, 하나님을 인도자로, 진리를 가는 길로, 하나님의 평화를 무적의 수호로 삼는다.” 그는 임종을 며칠 앞두고 병상에서 “ 한국인이여, 부정부패와 용감하게 싸우는 한국인이 되어 다오”란 말을 한국인에게 남겼다. 이 말은 그가 조국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한국인에게 보내는 그의 간절한 기도요, 마지막 유언이었다. 그는 “내가 죽거든 한국 땅 햇볕 따사로운 터에 묻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81세를 일기로 우리 대한의 땅에서 영면했다. 그의 소원대로 그의 제2고향이자 조국인 한국 땅 국립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묻혔다. 이제 우리는 그가 살아생전 부르짖었던 “부정부패는 한국의 공적이요, 우리 사회의 병이다”란 말을 다시 새겨 볼 때이다. 그는 풍요로운 사회보다도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더 역설했다. 부정부패와 용감하게 싸우는 국민이 되라는 스코필드박사의 말이 더욱 새롭게 다가온 이유는 무엇일까?

조건회 목사2019-03-19

“손님! 어떤 빵을 찾고 계십니까?” 벌써 20분 째 물건은 사지 않고 진열된 빵들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청년에게 편의점 주인은 참다못해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유통기한을 봤어요. 혹시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진열하지 않았나 해서…”라며 얼버무렸습니다. 주인은 “몇 개는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지만, 안심하고 드셔도 좋을 빵만 있습니다.” 청년은 언뜻 보기에도 지저분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그런 청년을 내쫓지 않았습니다. 자정 무렵이 되자 청년은 조심스레 빵 하나를 집어 진열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곤 시계가 열두 시를 막 넘어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그 빵을 들고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러나 힘이 없는지 얼마 못 가 털썩 주저앉는 청년의 어깨 위로 잠시 후 누군가의 손이 다가왔지요. 돌아보니 놀랍게도 편의점 주인이었습니다. 당황한 청년은 들고 있던 빵을 서둘러 내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며칠째 아무 것도 먹지 못해 훔쳤습니다. 이 빵은 자정이 넘었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에요.” 그러자 편의점 주인은 우유를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이,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없으니 이것과 함께 천천히 들게나.” 한 심리학자는 인간에 대해 “첫째는 받는 단계, 두 번째는 소유하는 단계, 세 번째는 주는 단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물질이나 지식이나 권력 등을 받았으면 나눠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과일이나 곡식의 생육에 비유합니다. 땅에 씨를 심는 단계, 자라나는 단계, 열매를 맺어 주인을 기쁘게 해주는 단계가 그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어느 면에서는 그 사람이 ‘복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로 말할 수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진정 복일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1단계 복은 ‘TO HAVE’ 즉 많은 것을 소유하면 그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TO BE’ 즉 어떤 자리나 위치에 놓인 사람이 되면 그것 또한 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마다 VIP로 대접받으려고 합니다. 셋째는 ‘TO SHOW’ 즉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어떤 외적인 자랑거리입니다. 그것은 얼굴이나, 자신의 재능일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돈·권력·명예·인기 등을 누리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TO GIVE’ 즉 ‘나눔과 베풂’에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어린아이의 기쁨은 주로 ‘받는 기쁨’이요, ‘누리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어른의 기쁨은 ‘주는 기쁨’과 ‘베푸는 기쁨’이요.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더불어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어려서는 세뱃돈 받을 때가 기뻤지만, 어른이 돼서는 세뱃돈 주면서 기뻐합니다. 이처럼 진정한 기쁨과 행복은 내가 받을 때보다 진정 줄 때가 아닐까요? 물론 받아서도 기쁩니다. 그러나 더 차원 높은 기쁨은 내어주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쁨은 내가 소유한 기쁨보다 훨씬 더 깊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물을 주는 자의 기쁨이요, 제자들의 변화와 성숙을 바라보는 스승의 기쁨이요, 음식은 만드는 주방장의 기쁨이요,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위로와 소망을 얻는 모습에 더불어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랑의 수고자의 기쁨인 것입니다.

이영훈 위임목사2019-03-17

지난 1월 22일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2018년 4/4분기 및 연간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따르면 작년 대한민국 경제성장률은 2.7%로 6년 만에 최저치였다. 2월 13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9년 1월 고용동향’ 자료에서도 2019년 1월 실업통계가 122만 4,000명으로 2000년 이후 19년 만에 최대치를 갱신했다. 실업자가 1년 사이에 20만 명이나 늘었다. 실업률도 4.5%로 2010년 이후 가장 높았다. 국민 체감 실업 상황을 보여주는 ‘고용보조지표3’(확장 실업률)도 13%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기업이 삼성전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작년 대한민국의 수출 총액 중 20% 이상을 삼성전자가 이뤄냈다고 한다. 작년 4분기에 삼성전자 반도체 수출 실적이 다소 감소했지만 삼성전자 반도체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올해도 2.6%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속 성장 배경에는 삼성전자 권오현 종합기술원 회장이 있다. 1992년 세계 최초로 64MB D램 개발 성공으로 삼성 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세계 1위로 발돋움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1988년 미국 삼성반도체 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해 팀장에서 삼성전자 회장 겸 종합기술원 회장으로까지 승진했다. 작년 9월에 출간된 그의 책 <초격차-넘볼 수 없는 차이를 만드는 격>에서 그는 기업이 단순하게 힘을 자랑하거나 상대적인 순위에 매여 안주하지 말고, 모든 부문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격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혁신을 차출해내고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절대 긍정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책에서 “역경(逆境)이라는 단어에 역(逆)자가 들어 있습니다. 역경이 닥치면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라는 뜻으로 저는 해석합니다. (중략) 역경에는 긍정적인 기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의 근본 이유인지 찾아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위기가 다가올 때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역경을 역이용해 기회로 만들었던 것이다. 중요한건 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다. 예레미야 29장 11절은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희망의 생각을 품고 계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긍정과 희망과 미래지향적이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붙잡아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100가지의 사실 중에 부정적인 면이 99가지라도 1가지의 긍정적인 면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지금 눈에 보이는 환경에 좌절하면 안 된다. 밤하늘과 같은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별처럼 밝게 빛나는 약속의 말씀들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신다. 문제없는 사람은 없다. 당장 눈앞에 문제가 보인다고 해도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걸 기억하자. 절대 긍정의 생각을 품은 사람만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더 나은 길을 찾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기저기서 힘들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신동식 목사2019-03-10

정말 정신없이 변화되는 세상입니다. 변화의 양도 속도도 엄청납니다. 더구나 사상의 흐름은 더욱 거센 것을 봅니다. 이전에는 한 세기마다 흐름이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시간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생각을 동시에 나눌 수도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생각이 한국에 올 때까지 긴 시간을 가졌던 옛 시대는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안방에서나 거실 그리고 카페 등 어디서나 동시에 생각을 볼 수 있고 나눌 수 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랄만한 것이 바로 한류 열풍이라고 생각합니다. 싸이와 BTS로 대변되는 K-POP의 위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습니다. 전혀 다른 문화와 피부와 인종들이 한국 가요를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 생각할 수 록 대단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가까워졌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를 향한 세속화의 도전은 참으로 엄청납니다. 거세게 교회를 향하여 돌진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성경관에 집요한 도전입니다. 그리고 이에 따른 기준의 파편화입니다. 교회의 기반은 성경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믿음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흐르면서 믿음 위에 세워진 교회의 의식이 소실되고 믿음 외에 행위와 형식이 덧붙여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믿음보다는 행위가 더욱 강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이 점점 신앙을 지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이 사라진 교회에는 외식과 우상숭배가 만연하며 결국 부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부패한 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개혁의 바람은 참으로 대단하였습니다. 교회가 개혁되자 삶의 모든 영역이 개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되어졌습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가 고백하였던 믿음으로 돌아갔을 때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더욱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하여 신앙고백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 최종적 결과물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입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무엇이 믿음의 기반인지를 첫 장부터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성경에 대한 분명한 고백으로부터 우리의 신앙은 시작됩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충만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하여, 그리고 세상의 악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세우기 위하여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기독교를 무너뜨리는 최전선입니다. 성경이 무너지면 기독교는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끊임없이 성경을 난도질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수호하셨고 세대를 이어 전달하셨습니다. 여전히 교회가 건강하게 유지 될 수 있는 것은 성경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모습은 매우 심각합니다. 성경을 사람의 기록으로 생각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므로 고쳐야 한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동성애를 인정하는 신학자들 가운데 이런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당시의 기준으로 보았던 성경이 이제 새 시대의 문화속에서 부족한 것이 있으므로 성경을 고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쉽게 편집될 수 있습니다. 편집이 가능한 성경이라면 구원의 도리도 언제든지 편집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당대의 문화의 눈으로 성경을 해석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은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점점 성경을 기준으로 삼아 살고자 하는 자세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시대의 문화로 성경을 재단하고 그것에 따라 신앙 생활하고자 합니다. 매우 편리한 생각이지만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세속화의 도전이 더욱 거세어 질 것입니다. 그 도전은 전방위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믿는 신앙인들은 점점 소수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바보 같다고 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 먼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세속화가 점령한 사회와 교회는 더 이상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교회와 성도를 바보로 보는 것이 당연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한다면 성경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속화를 이기는 것은 성경으로 질문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에 합당한지를 물어야 합니다. 성경의 빛은 성령이 조명하심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성경으로 질문하고 답을 얻을 때 세속화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맘몬, 쾌락, 몸, 성, 이념과 엄청나게 싸우고 있습니다. 더욱이 모방욕망으로 가득차 있어서 경쟁이 극을 달하고 있는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리는 길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이것을 진지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한 욕망을 모방하는 길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문제를 그리고 나의 상황을 정직하게 질문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답을 가지고 있을 때 세속화의 거센 물결 가운데 순결한 신앙을 지킬 수 있고 교회를 보호하고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정재영2019-03-06

3·1운동과 교회 올해는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로 이와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3·1 운동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일어나서 교계에서도 이를 기념하기에 여념이 없다. 1919년의 3·1 운동은 33명의 민족 대표들의 철저한 비폭력 평화 시위였는데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 중 기독교인이 16명이었을 정도로 기독교인이 절대 우세했다. 이 기독교인은 모두 개신교인으로서 정교분리를 주장하며 3·1 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천주교와 비교된다. 또한 3·1 운동을 통해 희생된 사람 중 다수가 기독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3·1운동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기독교인들의 애국심은 식지 않았다. 해외로 나가서 임시정부를 세우고, 독립군이 되거나 혹은 국내에서 의열단 운동에 가입하였던 인사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많았다. 이와 같이 3·1 운동은 기독 신앙에 바탕한 애국심으로 무장한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당시에 개신교 인구가 약 2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일제 탄압 속에서 교회가 피난처이자 시민들의 공간이 됐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선교 초기에는, 개종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기독교인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공부하며 설교를 들었던 동네 가옥의 사랑방이 교회의 역할을 감당했다. 초기에 여자 선교사들은 안방에서, 남자 선교사는 사랑방에 들러 각각의 공간에서 대화의 문을 열기 시작했으나 이후에 안방이라는 사사로운 공간에 갇혀 공공의 자리로부터 고립되어 있던 여성들도 교회의 공공 공간으로 들어오게 됐다. 이것이 잘 알려진 ‘ㄱ’자 형태의 교회 건물이다. 당시 교회에서는 남녀와 신분의 차별이 없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토론회가 활성화됐으며 자발결사체로서의 교회가 전국 곳곳에 세워지면서 공공의 공간으로서 수평의 의사소통을 수행하는 시민들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그리하여 교회에 속한 교인은 공공의 공간에 참여하는 자를 뜻했으며, 초월의 가치에 자신을 이어 기존하는 관행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새로운 삶에 헌신하겠다며 공중 앞에서 선서하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시의 기독교인이었다. 3·1 운동이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것은 이러한 바탕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에 전국을 망라하는 시민 조직은 교회 밖에 없었고 교회가 전국적인 의사소통의 망이 되었던 것이다. 3·1 운동 이후의 한국 교회 그러나 3·1 운동 이후에 한국교회는 빠르게 변해간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평양대부흥기를 거치면서 부흥하기 시작한 한국교회는 3·1 운동 이후에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된다. 3·1 운동 이후 조선의 독립운동은 이념적, 조직적으로 나뉘기 시작한다. 이념적으로는 오른편에 문화적 민족주의 그룹이 있었고, 왼편에는 공산주의 세력이 있었다. 전략적으로는 외교 노선이 있는가 하면 무장 투쟁 노선도 있었다. 그런데 3·1 운동 이전까지 개혁 정치와 독립운동 전선의 맨 앞에 서 있던 기독교는 ‘순수 종교화’ 작업에 열중하고 교회의 ‘비정치화’에 더욱 몰두하면서 민족의 문제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이 세상 문제를 논의하는 곳이 아니라 ‘저 세상’을 바라보는 곳이 되어갔다.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던 목사들도 교회와 사회, 정치 문제를 분리하고자 했다. 교회와 독립운동이 분리되기 시작한 이유는, 일제가 ‘문화 정치’라는 이름으로 집회, 결사, 언론의 자유를 제한적이나마 허용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은 더 이상 종교의 보호벽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교회 공동체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회 지도자들이 사회 문제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민족주의 좌파뿐만 아니라 우파도 교회에 등을 돌리고 교회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비사회화, 비정치화 경향은 한국 교회의 제도화와 관련돼 있다. 1920년대에 이르면 한국교회는 조직상으로 전에 없이 엄청난 수의 봉급자들을 가지게 된다. 장로교와 감리교만 해도 1,000명이 넘는 성직자와 2,000명 가까운 행정 요원들이 교회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이들은 25만 명이 넘는 신도들과 수천의 교회와 수백의 학교를 운영하고 가르치는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이 종교 지도자로서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얻게 되자, 옛 양반들처럼 이들도 교인과 일반 사람들에 대해 지적, 문화적, 사회적 우월감을 갖고 이들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기독교 안에서조차 지도자들이 점점 상층 계급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짝하여 간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연구이다. 이는 교회 성장이 몰고 온 ‘평범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사회 발전 운동이 낳은 열매를 얻고 기독교 지도자들은 사회적 상승 이동을 하게 됐다. 기독교가 베푼 교육과 새정치 훈련을 받고 그 안팎에서 자리를 얻어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지도자 그룹을 형성했고, 점차 보통 사람이 돼 간 것이다. 결국 사회 혁신 그룹이었던 기독교 공동체가 기득권층화 되면서 그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도 약화되고 보수화의 길을 걷게 됐다.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더욱 굳건한 제도 위에 서 있다. 전래 초기 한국교회는 교육과 의료 활동을 주도하며 구습 개혁, 신분제 타파, 여권 신장과 여성교육, 술·담배·아편 금지, 혼례·장례 개혁 등을 통해 근대 의식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존엄성, 인간의 권리와 자유, 평등과 정의와 같은 근대적 가치를 제공했다. 당시에 한국교회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수가 적고 교인 수도 적었지만, 남녀차별과 신분 차별을 철폐하며 사회를 앞서나가면서 선구적인 역할을 감당하였고 이것이 3·1 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교회는 3·1 운동 당시의 교회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사회에서의 공신력을 잃어버리고 기득권 층으로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3·1 운동 당시 신흥 종교였던 한국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구습을 타파하며 새로운 질서를 세워나갔지만, 오늘날의 제도화된 개신교는 기존의 정치 및 사회 체제와 타협하고 그것에 순응하는 종교 단체로 전락하고 있다. 창조적 소수에서 지배적 다수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교회 모습에 실망해 교회를 떠나는 이른바 가나안 성도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제 교회는 초기의 순수한 신앙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어떠한 기득권이나 이해관계를 넘어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고 쉽게 타협하지 않는 도전 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고 희생적 소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현실의 형편을 핑계 삼아 교회 본연의 모습을 훼손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모든 세속의 가치를 넘어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는 숭고한 가치에 헌신해야 한다. 이것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참된 의미가 될 것이다.

이기창 장로2019-03-03

친족승계에는첨언할 수준 높은 고려요소가 하나 더 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세상으로부터 비방이나 오해 소지가 있다면 세상이 비방할 여지를 주지 않도록(마 17:27), 또 모든 것이 가하더라도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나 세상과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는 경우에는 비록 내 자유가 판단과 제재를 받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면 행하지 말아야 하는(고전 10:23~33, 14:32) 기독교 윤리강령이다. 따라서 설사 자격이 충분하더라도 친족승계는 피하는 게 더 좋다. 실례로 서울 강남의 화평교회와 강변교회, 성동의 성락성결교회, 홍성의 홍성성결교회, 부산의 수영로교회와 호산나교회는 모두 전임자의 아들이나 사위가 있고, 일부는 교인들이 원했음에도 친족승계를 마다하고 외부 인물에게 아름다운 승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므로 교회의 리더십을 교체하는 경우 성경적 방법은 사전에 중립적인 위원회를 구성해 해당 교회에 맞는 청빙 조건을 엄중히 정하고, 후보를 자천 또는 타천 방식으로 공개모집하고, 검증과정을 통해 반드시 2명 이상의 복수 후보자를 추린 다음, 일정기간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 규모에 따라 당회원 투표-공동의회 인준 표결(작은 교회의 경우 공동의회 직접선출)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교회의 후임자는 선임자가 임명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발하신다는 관념을 갖는 것이다. 선임자는 후임 선발 과정에서 공정한 선거관리자 역할만 하거나, 바람직하기는 선발 기간 동안 그 교회와 스스로 지리적으로 격리하고 교회와 일체의 소통이나 영향력 행사가 없어야 한다. 또 처음부터 목사의 '위임'을 금지하고 최소한 한 차례는 교인들의 재신임을 받아 2~3년 후에 위임하도록 정교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교단이나 개교회에서는 이러한 성경적인 정교한 규정을 제정해서 시행해야 한다. 존경했던 세 원로목사님들이 떠오른다. C 교회에서는 인간적 정리로 아들에게 승계시켰다가 공개적 후회를 하였고, S 교회에서는 검증 절차 없이 단독식견으로 새 인물을 청빙했지만 인품, 공동체 지향가치 및 선호문화가 달라 큰 갈등 속에 휩싸여 있으며, D 교회에서는 선임자가 추천해 청빙한 인물의 사상이 교단에서 이단으로 판정되어 교회가 분열되었다. 이분들 모두 신령하신 분들로 교회의 장래를 염려해 단독권위로 심사숙고해 단일후보로 추천해 위임한 경우다. 인간이 어찌 완전한 결정을 할 수 있으며 사람의 속 인품을 알 수 있단 말인가. 한 사람의 후보만 내고 가부투표를 하는 방식은 분명히 사도행전의 원칙에 어긋나 비성경적이고, 사실은 공산 독재방식이다. 카리스마 리더십의 독단은 일사불란 해 효율적이지만 위험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필자가 직접 목격한 한 대형교회의 모범적인 사례를 들고자 한다. 창립해 위상이 큰 교회로 성장시킨 전임자는 카리스마 리더십을 가지신 분이었지만, 기도를 많이 하시고 하나님의 음성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매우 엄중하게 여기셨다. 물론 개인적으로 제자 중 한, 두 분 마음에 두신 듯 보였지만 누구도 지명을 하지 않았고, 주위여론을 파악해 7명의 후보군을 정한 뒤에는 일체 어떤 언사나 행동이 없으셨다. 개인적 바람은 있었겠지만 최종결정은 하나님과 성령께서 하시도록 완전히 맡기신 것이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이 인간의 생각으로 방해받지 않게 하시려는 철두철미, 단호함에 존경심이 더 갔다. 당회원의 선거는 투표용지, 투표인 명부로부터 투표함, 기표소, 개표소, 계수 요원, 개표감시위원 등 가히 국가에서 대통령선거 하는 것 이상으로 철저히 진행되었다. 1차 투표로 3명의 후보로 압축되었고, 소리 없는 공정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 '담임목사 서리'가 성공적으로 선출되었다. 이 결과를 놓고 천명 가깝던 당회원 대부분이 하나같이 "정말 하나님께서 세우셨다"고 공감했다. 그 후 약 2년간 담임서리로서의 시무를 잘 마치자, 공동의회의 투표로 정식 위임목사로 인준되었다. 교회를 향해 늘 비판의 날을 세웠던 A 언론사는 이 교회의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승계 과정을 세계 최고 글로벌 기업인 GE의 잭 웰치 회장이 이멜트에게 회장직을 성공적으로 인계한 것과 비교하며 성공 요인을 심층, 분석했다. 이때는 대기업의 친족세습이 문제 되던 때였다. 이 '아름다운 승계' 사례는 한국교회 최초의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승계모델이 탄생하고, 교회가 세상에서 극찬을 받았던 2006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극찬 대신 극한 비난 속에 빠져있다. 지금까지도 S 대형교회의 리더십은 지루하고 끝없는 송사로 도마 위에 얹혀있다. 절차적, 도덕적으로 사회의 비판받을 정도의 물의가 일어났다면 깨끗하게 물러나 교회가 사회의 지탄을 받지 않게 하는 게 목자의 모습이다. 그게 아무리 고액연봉으로 평생 보장이 되는 '매혹적인 자리'일지라도. 교회 스스로가 정한 교단 헌법을 제대로 못 지켜 생긴 분쟁을 법원이 판결한 것에 대하여 국가가 종교에 간섭한다고 반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법원이 민법이나 다른 어떤 사회법으로 판결한 게 아니고 교회가 자체적으로 제정한 법절차를 따랐는지를 판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도 정해 놓은 절차를 교회법이건 사회법이건 제대로 지켜야 한다. 다시금 얼마 전 지구촌교회의 담임목사님이 대형교회의 그 '안락한' 자리를 버리고 '험난한' 아프리카 선교사로 떠났다는 무척이나 신선하고 놀라운 소식이 귓가에 메아리쳐 들려온다. 그래도 한국교회에 그런 분이 아직 계신다! 대교회라고 카리스마 지도력을 휘둘러선 안 된다. 카리스마 리더십은 하나님의 음성에 전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하나님의 사람, 기도의 사람, 자신에게 냉철한 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속히 한국교회의 승계 문제가 성경적으로 정착되어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바란다.

이정기 목사2019-02-27

세상은 나 우선의 사회이다. 그래서 섬기는 삶은 인기가 없다. 세상은 권력, 재력, 명성, 지위 등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많이 갖고 많은 이를 지배할수록 성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의 판단은 다르다. 주님은 다른 이를 얼마나 지배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섬겼느냐로 성공을 판단하신다. 사람들은 이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조차 지배자가 되려고 애쓰는 일이 벌어진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6-27> 세상에서는 지배자가 큰 자이지만, 하늘나라에선 섬기는 자가 큰 자이다. 인간을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왜 세상에 내가 존재 하는지 존재 목적을 모른다는 것이다. 행복의 길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언덕 너머에 있는 무지개를 찾아 헤매다가 세월을 다 보낸다. 예수님은 이 땅에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오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자로 오셨다.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 그래서 섬기며 사셨고, 죽기까지 섬기셨다. 종의 위대함을 아시는 주님은 우리더러 종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은 지배자가 되라고 가르치지만 하나님은 종이 되라고 가르치신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롬 1:1절에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이 표현은 당시의 상황을 알면 매우 충격적인 고백이었다. '종'이란 '노예'를 가리킨다. 당시에 이런 말이 있었다. "노예하고 당나귀는 똑 같은데, 노예는 말을 할 줄 알고 당나귀는 말을 못하는 차이었다" 그러니까 노예는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자기의 생각도, 의지도, 꿈도, 계획도 있을 수 없었다. 그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만 할뿐이었다. 그런데도 바울은 한번도 대면한 일이 없는 로마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기 신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당대의 석학이었다. 당당한 로마 시민이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아라비아로 갔다가 3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갈1:17-18> 3년간 바울이 그곳에서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펴들고 연구를 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롬 1:2-4절에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메시야이고,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분이고, 죽었다가 다시 사신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때 바울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예수를 핍박했던 지난 날의 삶을 가슴깊이 회개하며 눈물이 솟구쳤다. 그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얼굴을 감히 못 들고 뜨거운 가슴으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된다. 인생의 주인이 바뀐 것이다. 그 후 그는 어디를 가든지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때로는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모욕과 멸시를 당해도 종으로 헌신했다. 그리고 이런 멋진 고백을 한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그렇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다. 주의 종이다. 이것이 영광스러운 우리의 신분이다. 한국교회의 우스꽝스러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주의 종'을 목사의 고유명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목사가 주의 종이면 성도는 상전인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다 주의 종이다. 그런데 문제는 종들이 다 주인처럼 행세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주인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순간도 우리의 신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주의 종이다. 종은 주인을 위해 일한다. 그런데 가장 아이러니 한 것은 교회에서 자기를 위해 달라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시험드는 성도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유는 많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다 자신 위주로 생각한다. 자기 생각대로 안 해주었다고 시험에 든다. 이런 사람들이 어찌 종인가? 주인이지… 종은 일을 구별하지 않는다. 종은 자기가 잘하는 일,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없다. 주인이 시키는 일이면 싫어도 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그래야 큰 일을 맡기신다.하나님의 일에는 중요한 일, 중요하지 않은 일, 작은일, 큰일이 없다. 종은 주인을 의식하며 일한다. 바울의 고백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주의 종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자이다. 누가 알아준다고 일하고 누가 몰라준다고 그만 두는 사람은 주의 종이 아니다. 성경은 초지일관 이렇게 말씀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마6:1>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았는데,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주의 종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아니다. 하나님의 상급이다. 하나님의 칭찬이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23>

정용구 선교사2019-02-24

최근 종영된 ‘스카이 캐슬’ 드라마의 열기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상위 1% 가정의 자녀교육을 다룬 내용으로, 비지상파 방송 사상 23.7%라는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소위 상류층이라는 가정의 모순되고 이기적인 모습에 대학입시라는 주제가 시청률 상승의 원인이라고 한다. 드라마를 본 뒤, 이들과 아주 상반된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선교지에서 만난 많은 선교사 자녀들과 가정이 생각이 났다. 고1 남자였던 한 아이가 너무 외로워서 ‘한국 친구’를 달라고 기도를 했었는데, 오지인 그곳에는 더 이상 한국인 가정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기도제목을 바꾸었다. “하나님, 그럼 개나 한 마리 주세요”라고 했다. 사람이 개와 대치된다고 하니 웃음이 나왔지만, 정말 한참 친구들이 필요할 나이에 외롭게 오지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는 선교사 자녀의 마음을 알게 되니 마음이 아팠다. 필자의 막내도 현지 초등학교 4학년에 입학했다. 3,500명 중에 외국인은 자신 뿐이었다. 자기소개도 못하는 영어 실력이었는데, 현지어까지 해야 하고, 50도가 넘는 더위에 달구어진 에어컨이 없는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다. 중1이었던 큰 아이는 어려워진 진도와 언어에 대한 염려로 학생이 적을 것 같았던 신설학교를 택했는데, 막상 가보니 학생들이 없어서 7, 8학년 내내 반에서 혼자 공부했었다. 어떤 초등학생 자녀는 삼각 김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검은 종이를 먹는다고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현지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을 하거나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비즈니스 선교를 하시는 부모님의 가게를 돕고자 일하는 아이들과 학교 친구가 댕기모기에 물려 죽어서 어린 나이에 마음 아파했던 여고생. 단기선교팀과 짧은 정을 나누었지만 떠난 뒤에 외로움을 이기려고 세 시간 동안 울면서 풀룻을 불었던 중1 여학생. 최근에는 추방과 비자거부로 인해 어렵게 적응한 현지 학교를 그만두고 교과 과정도 맞지 않고 더 어색해진 한국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대입 준비생과 토플 만점을 받고도 현지에서 대학 입시 정보를 놓쳐 재수를 하는 고3 여학생, 대학 진학에 많은 정보가 필요한데 선교현장에서 일하시는 부모님의 사역을 방해하기 싫어서 느린 인터넷을 참아가며 대학 정보를 찾아 입시를 혼자 준비하는 아이들도 보았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 사람들이 만약 실재 존재해서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 현장’을 보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를 생각해 본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열정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사례를 모아 보았다. 그 중에 제일 마음에 다가 온 이야기는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을 하면 학생들은 1년 정도 휴학을 하면서 6개월 정도는 여행 경비를 모우고 자기가 방문할 가난하고 힘든 나라의 삶을배운다. 그리고는모은 돈으로 실제로 그 나라에 6개월 정도 가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고 나면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할 지를 정하고 그때부터 정말 무섭게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이야기를 적용해 보니, 선교지의 열악한 상황과 어려움을 어려서부터 접하고그 문화에 어렵게 적응한 선교사 자녀들은 ‘스카이 캐슬 사람들’이 보지 못한 인생에서 정말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되고 그 일을 위해 학업에 전념한다. 선교사인 부모님 때문에 학비조달의 어려움도 있지만 그 가운데 ‘고난’을 친구로 삼아 정말 강한 아이로 자라가는 아이들을 본다. 몇몇 뜻이 있는 분들과 ‘선교사 자녀들의 진학, 취업 사례’등을 연구하고, 그들이 선교지나 제3세계, 한국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추적조사를 해보려고 한다. 어려서부터 선교지에서 많은 고생을 한 이들이 부모의 세대를 뛰어 넘어 다음세대의 리더십으로 다문화 경험과 현지어 구사 등과 같은 소중한 자원들과 실력이 합쳐져 부모의 세대보다 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살고 있는 그 모습을 한국교회에 소개하고 싶다. 외교부 모임에서 정부 관계자들에게 이 선교사 자녀들이 민간 대사로 얼마나 영향력 있게 살고 있는지 지켜봐 달라고 했었다. 특별히 선교사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준비시키시고 이들을 위해 어떻게 일하시고 계신지를 꼭 알리고 싶다. 너무나 귀한 우리의 영적 자원들이다.

신동식 목사2019-02-21

국사학자 이만열 교수는 역사의식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사인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의식만 있고 인식이 없다면 입으로는 시인하나 행위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 인식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른 역사인식'입니다. 역사인식이 바르지 않으면 역사를 가지고 사리사욕을 탐하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나라마다 바른 역사를 세우려고 온 힘을 다 쓰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독일입니다. 독일은 히틀러에 의해 학살을 당했던 나라임을 참회했습니다. 그리고 악랄한 일을 행한 사람들을 끝까지 징벌했습니다. 그러기에 건강한 나라로 인정받고 새로운 시대에 리더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일본입니다. 국권을 침탈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징용하고 죽였으면서도 반성이 없습니다. 더구나 위안부에 대한 처리를 정치적 타협으로만 끝내려고 하는 아주 못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아픔을 달래 줄 수 있는 것이 바른 역사인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친일의 역사에 대해 바르게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의 역사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의 자유가 저절로 온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많은 이들의 피가 흘려졌기 때문입니다.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나라는 독립운동의 역사도 바르게 세우지 못합니다. 역사가 왜곡되면 다음 세대는 불행한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역사는 공의를 드러내야 하는데 역사가 왜곡되면 정의를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건강한 나라로 세워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최근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일부 정치인들의 일탈적 모습을 보면서 역사인식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군부 독재정권의 희생물이 되었던 많은 이들의 아픔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정치적 권력만을 탐하려고 하는 것은 건강한 나라를 세우는 일에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3.1운동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중에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교회의 조직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피해를 당한 곳은 교회와 교회가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불의에 항거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의 일관된 자세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해방공간에도 있었습니다. 이승만은 장로였습니다. 여운영은 평양신학교 출신 전도사였습니다. 김구도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이 땅에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 공화국을 세우는 일에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지대했습니다. 그들의 순교적 신앙이 오늘의 자유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나라에 대한 인식은 현대의 공간에서도 그 힘을 발휘합니다. 이것은 국가를 하나님의 창조물로 보는 자세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국가 제도를 허락하셨습니다. 교회를 유지하고 질서를 바로 잡아서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해 국가를 허락하셨습니다. 국가는 항상 이 지점에 존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의식의 자리에서 역사인식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바른 역사를 알아가는 일에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시대를 부끄럽지 않게 사는 작은 발걸음입니다.

prev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goodtvICGICGCCMLOVE굿피플KCMUSA기독뉴스GoodPeople아멘넷